통일교 교리 원문/원리강론/002: 두 판 사이의 차이
교리 원문 전문 위키 페이지 등록 |
교리 원문 전문 위키 페이지 등록 |
||
| 6번째 줄: | 6번째 줄: | ||
== 원문 == | == 원문 == | ||
== 제2장 타락론 70 == | |||
제2장 타락론 70 | |||
인간은 누구나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어떠한 악의 세력에 몰리어, 본심이 원하는 선을 버리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악의 세력 가운데서 인류의 죄악사(罪惡史)는 연면히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이 악의 세력의 주체를 사탄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 사탄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사탄이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탄이 되었는가하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악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함으로써 인류 죄악사를 청산하고 선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는 먼저 사탄이 사탄된 동기와 경로와 그 결과를 밝히 알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타락론(墮落論)을 알아야 한다. | 인간은 누구나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어떠한 악의 세력에 몰리어, 본심이 원하는 선을 버리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악의 세력 가운데서 인류의 죄악사(罪惡史)는 연면히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이 악의 세력의 주체를 사탄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 사탄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사탄이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탄이 되었는가하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악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함으로써 인류 죄악사를 청산하고 선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는 먼저 사탄이 사탄된 동기와 경로와 그 결과를 밝히 알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타락론(墮落論)을 알아야 한다. | ||
제1절 죄의 뿌리 | |||
=== 제1절 죄의 뿌리 === | |||
이제까지 인간 속에 깊이 그 뿌리를 박고 쉬임없이 인간을 죄악의 길로 몰아내고 있는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기독교 신도들만이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것이 죄의 뿌리가 된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나무의 과실이라고 믿는 신도들과, 또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도 그 어떠한 것에 대한 상징이나 비유일 것이라고 믿는 신도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제각기 구구한 해석을 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이제까지 인간 속에 깊이 그 뿌리를 박고 쉬임없이 인간을 죄악의 길로 몰아내고 있는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기독교 신도들만이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것이 죄의 뿌리가 된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나무의 과실이라고 믿는 신도들과, 또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도 그 어떠한 것에 대한 상징이나 비유일 것이라고 믿는 신도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제각기 구구한 해석을 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
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
=== 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 |||
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해와가 따먹고 타락(墮落)되었다는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어떠한 나무의 열매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부모 되시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자녀들이 따먹고 타락할 수 있는 과실(果實)을 그렇게도 보기 좋고 탐스럽게 만들어서(창세기 3장 6절), 그들이 손쉽게 따먹을 수 있는 곳에 두셨을 것인가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장 11절)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먹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케 할 수 있었을 것인가 ? 한편 인간의 원죄(原罪)는 인간의 시조로부터 유전(遺傳)되어 나오고 있는 것인데, 먹는 물건이 어떻게 원죄를 유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유전은 오직 혈통(血統)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그 무엇을 먹었다고 하여 그 결과가 후손에게까지 유전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선악과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고 믿고 있는 신도들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인간에게 사망이 따르는 방법으로써 그렇게 무자비한 시험을 하셨으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그들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으면 정녕코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먹으면 죽을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따먹었다. 기아(棄兒)에 허덕였을 리도 없는 아담과 해와가 먹을 것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렇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어떠한 물질이 아니고 생명에 대한 애착까지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자극을 주는 다른 무엇이었음에 틀림없다. 즉 선악과가 이와 같이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무엇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성경(聖經)의 많은 주요한 부분이 상징이나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무엇 때문에 선악과만은 굳이 문자대로 믿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은 모름지기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 있었던 지난날의 고루하고도 관습적인 신앙태도를 버려야 하겠다. 선악과를 비유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해명하는 방법으로서 창세기 2장 9절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었다고 하는 '생명나무'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이 '생명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와 함께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이라는 것도 바로 알 수 있겠기 때문이다. | 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해와가 따먹고 타락(墮落)되었다는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어떠한 나무의 열매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부모 되시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자녀들이 따먹고 타락할 수 있는 과실(果實)을 그렇게도 보기 좋고 탐스럽게 만들어서(창세기 3장 6절), 그들이 손쉽게 따먹을 수 있는 곳에 두셨을 것인가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장 11절)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먹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케 할 수 있었을 것인가 ? 한편 인간의 원죄(原罪)는 인간의 시조로부터 유전(遺傳)되어 나오고 있는 것인데, 먹는 물건이 어떻게 원죄를 유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유전은 오직 혈통(血統)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그 무엇을 먹었다고 하여 그 결과가 후손에게까지 유전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선악과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고 믿고 있는 신도들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인간에게 사망이 따르는 방법으로써 그렇게 무자비한 시험을 하셨으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그들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으면 정녕코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먹으면 죽을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따먹었다. 기아(棄兒)에 허덕였을 리도 없는 아담과 해와가 먹을 것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렇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어떠한 물질이 아니고 생명에 대한 애착까지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자극을 주는 다른 무엇이었음에 틀림없다. 즉 선악과가 이와 같이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무엇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성경(聖經)의 많은 주요한 부분이 상징이나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무엇 때문에 선악과만은 굳이 문자대로 믿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은 모름지기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 있었던 지난날의 고루하고도 관습적인 신앙태도를 버려야 하겠다. 선악과를 비유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해명하는 방법으로서 창세기 2장 9절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었다고 하는 '생명나무'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이 '생명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와 함께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이라는 것도 바로 알 수 있겠기 때문이다. | ||
1. 생명나무 | |||
==== 1. 생명나무 ==== | |||
성서(聖書)의 말씀에 의하면 타락인간(墮落人間)의 소망은 '생명나무'앞으로 나아가 '생명나무'를 이루는 데 있다. 즉 잠언 13장 12절을 보면,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생명나무'를 소망의 대상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고,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소망도 역시 '생명나무'에 나아가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타락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이 '생명나무'인 것을 보면 타락 전 아담의 소망도 '생명나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 하면 복귀과정에 있는 타락 인간은 원래 타락전 아담이 이루려다가 못 이룬 바로 그 소망을 다시 찾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4절에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화염검(火焰劍)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막아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소망이었던 이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창세기 3장 24절), 그 '생명나무'는 그 후 한결같이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져 내려왔던 것이다.그러면 완성될 때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던 미완성(未完成)한 아담에 있어서의 소망이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그가 타락되지 않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생명나무'의 내용을 바로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은 곧 완성한 아담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생명나무'는 결국 완성한 아담을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타락되지 않고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어서 '생명나무'를 이루었다면, 그의 후손들도 모두 '생명나무'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화염검(火焰劍)으로 막아버리고 말았다(창세기 3장 24절). 그렇기 때문에 '생명나무'는 창조이상을 복귀하려는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죄(原罪)가 있는 타락인간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생명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이 '생명나무'가 되기 위하여는 로마서 11장 17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한 남성이 이 지상에 '생명나무'로 오셔 가지고 모든 인간을 그에게 접붙이어 하나되게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생명나무'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3장 12절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고대하였던 '생명나무'는 바로 초림(初臨)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24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화염검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아담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이것이 걷히지 않고는 인간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2장 3절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五旬節) 날에 성도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불같은 혀 곧 화염검이 갈라진 후에야 성령(聖靈)이 강림하여, 전 인류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그에게 접붙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기독교 신도들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에게 영적(靈的)으로만 접붙임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또다시 속죄(贖罪)를 받아야 할 죄악의 자식을 낳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나온 원죄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그 자식에게 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전편 제4장 제1절).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상에 '생명나무'로 재림(再臨)하셔서, 온 인류를 다시 접붙이심으로써, 원죄까지 속죄해 주시는 섭리를 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말씀대로, 신약성도(新約聖徒)들이 또다시 '생명나무'를 고대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나무'는 바로 재림 예수 님을 비유한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생명나무'로서 복귀하시려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이 타락(墮落)하여 창세기 2장 9절의 첫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타락인간들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후'생명나무'로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린도전서 15장 45절). | 성서(聖書)의 말씀에 의하면 타락인간(墮落人間)의 소망은 '생명나무'앞으로 나아가 '생명나무'를 이루는 데 있다. 즉 잠언 13장 12절을 보면,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생명나무'를 소망의 대상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고,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소망도 역시 '생명나무'에 나아가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타락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이 '생명나무'인 것을 보면 타락 전 아담의 소망도 '생명나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 하면 복귀과정에 있는 타락 인간은 원래 타락전 아담이 이루려다가 못 이룬 바로 그 소망을 다시 찾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4절에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화염검(火焰劍)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막아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소망이었던 이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창세기 3장 24절), 그 '생명나무'는 그 후 한결같이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져 내려왔던 것이다.그러면 완성될 때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던 미완성(未完成)한 아담에 있어서의 소망이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그가 타락되지 않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생명나무'의 내용을 바로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은 곧 완성한 아담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생명나무'는 결국 완성한 아담을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타락되지 않고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어서 '생명나무'를 이루었다면, 그의 후손들도 모두 '생명나무'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화염검(火焰劍)으로 막아버리고 말았다(창세기 3장 24절). 그렇기 때문에 '생명나무'는 창조이상을 복귀하려는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죄(原罪)가 있는 타락인간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생명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이 '생명나무'가 되기 위하여는 로마서 11장 17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한 남성이 이 지상에 '생명나무'로 오셔 가지고 모든 인간을 그에게 접붙이어 하나되게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생명나무'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3장 12절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고대하였던 '생명나무'는 바로 초림(初臨)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24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화염검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아담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이것이 걷히지 않고는 인간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2장 3절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五旬節) 날에 성도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불같은 혀 곧 화염검이 갈라진 후에야 성령(聖靈)이 강림하여, 전 인류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그에게 접붙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기독교 신도들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에게 영적(靈的)으로만 접붙임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또다시 속죄(贖罪)를 받아야 할 죄악의 자식을 낳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나온 원죄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그 자식에게 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전편 제4장 제1절).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상에 '생명나무'로 재림(再臨)하셔서, 온 인류를 다시 접붙이심으로써, 원죄까지 속죄해 주시는 섭리를 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말씀대로, 신약성도(新約聖徒)들이 또다시 '생명나무'를 고대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나무'는 바로 재림 예수 님을 비유한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생명나무'로서 복귀하시려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이 타락(墮落)하여 창세기 2장 9절의 첫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타락인간들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후'생명나무'로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린도전서 15장 45절). | ||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
====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 |||
하나님은 아담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배필로서 해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동산 가운데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남성을 비유하는 나무가 있었다면 그러한 여성을 비유하는 또 하나의 나무도 있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생명나무'와 같이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창세기 2장 9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한 그 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할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완성한 해와를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요한복음 15장 5절) 혹은 감람나무(로마서 11장 17절)로 비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간 타락(墮落)의 비밀을 암시하심에 있어서도 완성한 아담과 해와를 두 나무로 비유하셨던 것이다. | 하나님은 아담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배필로서 해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동산 가운데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남성을 비유하는 나무가 있었다면 그러한 여성을 비유하는 또 하나의 나무도 있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생명나무'와 같이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창세기 2장 9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한 그 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할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완성한 해와를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요한복음 15장 5절) 혹은 감람나무(로마서 11장 17절)로 비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간 타락(墮落)의 비밀을 암시하심에 있어서도 완성한 아담과 해와를 두 나무로 비유하셨던 것이다. | ||
Ⅱ. 뱀의 정체 | |||
=== Ⅱ. 뱀의 정체 === | |||
해와를 꼬여서 범죄케 한 것은 뱀이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장 4-5절). 그러면 또 이 뱀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우리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 내용에 의하여 뱀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하자.성경에 기록된 뱀은 인간과 담화(談話)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인간을 타락시킨 것을 보면 그것도 영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뱀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더욱 영물(靈物)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또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면, 하늘에서 큰 용(龍)이 땅으로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魔鬼)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옛 뱀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해와를 꼬인 그 뱀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뱀이 하늘로부터 내쫓겼다고 하였으니, 하늘에 있었던 그 옛 뱀이 영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편 이 뱀을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였는데, 이 사탄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인간의 마음을 악(惡)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온 것이 사실이니 그것은 영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사탄이 영물인 것이 사실이라면, 사탄으로 표시된 뱀이 영물임을 말할 것도 없다. 성서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사실로 보아, 해와를 꼬인 뱀은 동물이 아니고 어떠한 영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그러면 이처럼 뱀으로 비유한 영물(靈物)이 과연 창세 전(創世前)부터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피조물(被造物) 중의 하나였던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뱀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대립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라면, 피조세계(被造世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 악(善惡)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으로서 영속(永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는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버리고 말 것이며, 모든 존재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일원론(一元論)은 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뱀으로 비유한 이 영물은, 원래 선(善)을 목적으로 창조되었던 어떠한 존재가 타락되어 사탄이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담화(談話)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또 그 소재(所在)가 하늘이었고, 한편 또 그것이 만일 타락(墮落)되어 악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심령(心靈)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존재는 과연 무엇일 것인가? 천사(天使) 이외에는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존재가 없으므로 우선 그 뱀은 천사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어두운 지옥(地獄)에 던져두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을 꼬여 가지고 범죄 하였던 뱀을 곧 천사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뱀은 혀끝이 둘로 갈라져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한 혀로 두 말을 하고, 한 마음으로 이중의 생활을 하는 자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또 뱀은 자기의 먹을 것을 몸으로 꼬아서 먹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유혹하는 자의 표상이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인간을 꼬인 천사(天使)를 뱀으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 해와를 꼬여서 범죄케 한 것은 뱀이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장 4-5절). 그러면 또 이 뱀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우리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 내용에 의하여 뱀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하자.성경에 기록된 뱀은 인간과 담화(談話)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인간을 타락시킨 것을 보면 그것도 영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뱀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더욱 영물(靈物)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또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면, 하늘에서 큰 용(龍)이 땅으로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魔鬼)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옛 뱀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해와를 꼬인 그 뱀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뱀이 하늘로부터 내쫓겼다고 하였으니, 하늘에 있었던 그 옛 뱀이 영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편 이 뱀을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였는데, 이 사탄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인간의 마음을 악(惡)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온 것이 사실이니 그것은 영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사탄이 영물인 것이 사실이라면, 사탄으로 표시된 뱀이 영물임을 말할 것도 없다. 성서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사실로 보아, 해와를 꼬인 뱀은 동물이 아니고 어떠한 영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그러면 이처럼 뱀으로 비유한 영물(靈物)이 과연 창세 전(創世前)부터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피조물(被造物) 중의 하나였던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뱀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대립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라면, 피조세계(被造世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 악(善惡)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으로서 영속(永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는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버리고 말 것이며, 모든 존재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일원론(一元論)은 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뱀으로 비유한 이 영물은, 원래 선(善)을 목적으로 창조되었던 어떠한 존재가 타락되어 사탄이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담화(談話)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또 그 소재(所在)가 하늘이었고, 한편 또 그것이 만일 타락(墮落)되어 악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심령(心靈)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존재는 과연 무엇일 것인가? 천사(天使) 이외에는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존재가 없으므로 우선 그 뱀은 천사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어두운 지옥(地獄)에 던져두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을 꼬여 가지고 범죄 하였던 뱀을 곧 천사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뱀은 혀끝이 둘로 갈라져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한 혀로 두 말을 하고, 한 마음으로 이중의 생활을 하는 자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또 뱀은 자기의 먹을 것을 몸으로 꼬아서 먹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유혹하는 자의 표상이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인간을 꼬인 천사(天使)를 뱀으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 ||
Ⅲ.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 | |||
=== Ⅲ.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 === | |||
우리는 위에서 인간을 꼬여 타락케 한 뱀이 바로 천사였으며, 이 천사가 범죄 하여 타락(墮落)됨으로써 사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다음으로 우리는 천사와 인간이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 우리는 위에서 인간을 꼬여 타락케 한 뱀이 바로 천사였으며, 이 천사가 범죄 하여 타락(墮落)됨으로써 사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다음으로 우리는 천사와 인간이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 ||
1. 천사의 범죄 | |||
==== 1. 천사의 범죄 ==== | |||
유다서 1장 6절에서 7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천사가 간음(姦淫)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런데 간음이란 혼자서는 행할 수 없는 범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행하여진 천사의 간음에 있어 그 대상이 되었던 존재가 무엇이었던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인간은 어떠한 죄를 저질렀던가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 유다서 1장 6절에서 7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천사가 간음(姦淫)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런데 간음이란 혼자서는 행할 수 없는 범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행하여진 천사의 간음에 있어 그 대상이 되었던 존재가 무엇이었던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인간은 어떠한 죄를 저질렀던가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 ||
2. 인간의 범죄 | |||
==== 2. 인간의 범죄 ==== | |||
창세기 2장 25절을 보면, 범죄하기 전 아담 해와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墮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無花果)나무 잎으로 하체(下體)를 가리었다(창세기 3장 7절). 만일 선악과(善惡果)라고 하는 어떠한 과실이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따먹고 범죄를 하였다면, 그들은 필시 손이나 입을 가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허물을 가리는 것이 그 본성(本性)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손이나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리었었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의 하체가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체로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욥기 31장 33절에는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한 후 그의 하체를 가리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아담이 가리었던 그의 하체가 허물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의 하체가 어찌하여 허물이 되었을 것인가 ?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하체로써 범죄하였기 때문이다.인간이 타락되기 전의 세계에 있어,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저지를 수도 있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식하라(창세기 1장 28절)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사랑으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두고 볼 때 사랑은 가장 귀하고 가장 거룩한 것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천시하여 온 것은 그것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도 또한 음란(淫亂)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창세기 2장 25절을 보면, 범죄하기 전 아담 해와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墮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無花果)나무 잎으로 하체(下體)를 가리었다(창세기 3장 7절). 만일 선악과(善惡果)라고 하는 어떠한 과실이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따먹고 범죄를 하였다면, 그들은 필시 손이나 입을 가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허물을 가리는 것이 그 본성(本性)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손이나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리었었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의 하체가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체로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욥기 31장 33절에는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한 후 그의 하체를 가리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아담이 가리었던 그의 하체가 허물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의 하체가 어찌하여 허물이 되었을 것인가 ?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하체로써 범죄하였기 때문이다.인간이 타락되기 전의 세계에 있어,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저지를 수도 있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식하라(창세기 1장 28절)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사랑으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두고 볼 때 사랑은 가장 귀하고 가장 거룩한 것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천시하여 온 것은 그것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도 또한 음란(淫亂)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
3. 천사와 인간과의 행음 | |||
==== 3. 천사와 인간과의 행음 ==== | |||
우리는 위에서 밝힌 바 인간이 천사(天使)의 꼬임에 빠져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나 천사는 모두 행음(行淫)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그 위에는 피조세계(被造世界)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어떠한 정적(情的)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는 인간과 천사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등을 결부하여 볼 때, 인간과 천사와의 사이에 행음관계가 성립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는 마귀(魔鬼)는 곧 사탄이요 사탄은 곧 인간을 꼬인 옛 뱀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성구(聖句)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은 마귀의 후손이요 따라서 사탄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국 뱀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그러면 인간은 어떤 경위로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의 후손이 되었는가 ?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천사와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사탄의 혈통(血統)에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이 아니고 사탄의 혈통으로써 태어났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친자식이 못되고)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 3장 7절에는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 즉 사탄의 자식이라고 질책하였고, 마태복음 23장 33절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책망하신 기록이 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천사와 인간 사이에 행음관계(行淫關係)가 있어서 그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위에서 밝힌 바 인간이 천사(天使)의 꼬임에 빠져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나 천사는 모두 행음(行淫)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그 위에는 피조세계(被造世界)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어떠한 정적(情的)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는 인간과 천사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등을 결부하여 볼 때, 인간과 천사와의 사이에 행음관계가 성립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는 마귀(魔鬼)는 곧 사탄이요 사탄은 곧 인간을 꼬인 옛 뱀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성구(聖句)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은 마귀의 후손이요 따라서 사탄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국 뱀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그러면 인간은 어떤 경위로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의 후손이 되었는가 ?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천사와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사탄의 혈통(血統)에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이 아니고 사탄의 혈통으로써 태어났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친자식이 못되고)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 3장 7절에는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 즉 사탄의 자식이라고 질책하였고, 마태복음 23장 33절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책망하신 기록이 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천사와 인간 사이에 행음관계(行淫關係)가 있어서 그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
Ⅳ. 선악과 | |||
=== Ⅳ. 선악과 === | |||
우리는 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해와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또 선악과(善惡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그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목(果木)이 과실에 의하여 번식되는 것과 같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자녀를 번식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 해와는 이와 같이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또한 악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던 성장기간(成長期間)을 통하여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을 선악과라고 하였던 것이며, 그 사람을 말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던 것이다.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사랑으로 선과(善果)를 따먹고, 선의 피와 살을 받아 선의 혈통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사탄을 중심한 악의 사랑으로 악과(惡果)를 따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악의 혈통을 번식하여 죄악의 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천사)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창세기 3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저주하시어 배로 다니고 또 종신토록 흙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다리로 다니지 못하고 배로 다닌다는 것은, 천사가 창조본연(創造本然)의 활동을 하지 못하하고 비참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흙을 먹는다는 것은 것은 하늘로부터 쫓겨남으로 말미암아(이사야 14장 12절, 요한계시록 12장 9절),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의 요소를 받지 못하고, 죄악의 세계에서 악의 요소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우리는 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해와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또 선악과(善惡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그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목(果木)이 과실에 의하여 번식되는 것과 같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자녀를 번식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 해와는 이와 같이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또한 악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던 성장기간(成長期間)을 통하여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을 선악과라고 하였던 것이며, 그 사람을 말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던 것이다.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사랑으로 선과(善果)를 따먹고, 선의 피와 살을 받아 선의 혈통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사탄을 중심한 악의 사랑으로 악과(惡果)를 따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악의 혈통을 번식하여 죄악의 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천사)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창세기 3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저주하시어 배로 다니고 또 종신토록 흙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다리로 다니지 못하고 배로 다닌다는 것은, 천사가 창조본연(創造本然)의 활동을 하지 못하하고 비참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흙을 먹는다는 것은 것은 하늘로부터 쫓겨남으로 말미암아(이사야 14장 12절, 요한계시록 12장 9절),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의 요소를 받지 못하고, 죄악의 세계에서 악의 요소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
Ⅴ. 죄의 뿌리 | |||
=== Ⅴ. 죄의 뿌리 === | |||
우리는 성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여, 죄(罪)의 뿌리는 인간 시조가 과실을 따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뱀으로 표시된 천사(天使)와 불륜(不倫)한 혈연관계를 맺은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의 악의 혈통을 번식하게 되었던 것이다.한편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서 인간의 죄의 뿌리가 음란(淫亂)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죄의 뿌리가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원죄(原罪)는 자자손손(子子孫孫)에게 유전되어 왔다. 그리고 죄를 벗으려고 하는 종교마다 간음(姦淫)을 가장 큰 죄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것을 막기 위하여 금욕생활(禁慾生活)을 강조하여 온 것이니, 이것도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되기 위한 속죄(贖罪)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행하였던 것은, 죄의 뿌리가 음란에 의하여 악의 피를 받아들인 데 있었기 때문에, 타락인간의 몸으로부터 그 악의 피를 뽑는다는 조건을 세워서 성별(聖別)하기 위함이었다.수많은 영웅 열사(英雄烈士)와 국가들이 멸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음란(淫亂)에 있었던 것은, 음란이란 죄의 뿌리가 항상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로써 인륜도덕(人倫道德)을 세우고, 제반 교육을 철저히 하며, 범죄를 빚어내는 경제사회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른 모든 죄악들은 이 사회로부터 불식(拂拭)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되면서 날로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증대되어가고 있는 음란이란 범죄만은 그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이 범죄를 발본색원(拔本塞源) 할 수 없는 한, 결코 이상세계(理想世界)는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림(再臨)하시는 메시아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죄의 뿌리가 어디까지나 음란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성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여, 죄(罪)의 뿌리는 인간 시조가 과실을 따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뱀으로 표시된 천사(天使)와 불륜(不倫)한 혈연관계를 맺은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의 악의 혈통을 번식하게 되었던 것이다.한편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서 인간의 죄의 뿌리가 음란(淫亂)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죄의 뿌리가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원죄(原罪)는 자자손손(子子孫孫)에게 유전되어 왔다. 그리고 죄를 벗으려고 하는 종교마다 간음(姦淫)을 가장 큰 죄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것을 막기 위하여 금욕생활(禁慾生活)을 강조하여 온 것이니, 이것도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되기 위한 속죄(贖罪)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행하였던 것은, 죄의 뿌리가 음란에 의하여 악의 피를 받아들인 데 있었기 때문에, 타락인간의 몸으로부터 그 악의 피를 뽑는다는 조건을 세워서 성별(聖別)하기 위함이었다.수많은 영웅 열사(英雄烈士)와 국가들이 멸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음란(淫亂)에 있었던 것은, 음란이란 죄의 뿌리가 항상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로써 인륜도덕(人倫道德)을 세우고, 제반 교육을 철저히 하며, 범죄를 빚어내는 경제사회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른 모든 죄악들은 이 사회로부터 불식(拂拭)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되면서 날로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증대되어가고 있는 음란이란 범죄만은 그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이 범죄를 발본색원(拔本塞源) 할 수 없는 한, 결코 이상세계(理想世界)는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림(再臨)하시는 메시아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죄의 뿌리가 어디까지나 음란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 ||
제2절 타락의 동기와 경로 | |||
=== 제2절 타락의 동기와 경로 === | |||
우리는 이미 제1절에서 뱀은 곧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天使)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인간의 타락(墮落)된 동기가 천사에게 있었으므로, 그 타락의 동기와 경로를 알려면 먼저 천사에 관한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 우리는 이미 제1절에서 뱀은 곧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天使)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인간의 타락(墮落)된 동기가 천사에게 있었으므로, 그 타락의 동기와 경로를 알려면 먼저 천사에 관한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 ||
Ⅰ. 천사의 창조와 그의 사명 및 그와 인간과의 관계 | |||
=== Ⅰ. 천사의 창조와 그의 사명 및 그와 인간과의 관계 === | |||
모든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따라서 천사(天使)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被造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먼저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절 에 씌어 있는 천지창조(天地創造)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스스로를 복수(複數)로 부르셨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대로 삼위신(三位神)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보다도 먼저 창조되어 있었던 천사들을 놓고 그들을 포함시킨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창조와 그의 경륜(經綸)을 위하여 먼저 천사를 사환(使喚)으로 창조하셨다(히브리서 1장 14절).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중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였고(창세기 18장 10절), 그리스도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전하였으며(마태복음 1장 20절, 누가복음 1장 31절), 옥중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베드로를 풀어 성 밖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사도행전 12장 7절 - 10절). 이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천사가 활동한 예는 성서에서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는 천사가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천사를 '부리는 영(靈)'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리고 천사는 하나님에게 송영(誦詠)을 드리는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증거를 성서 가운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요한계시록 5장 11절, 요한계시록 7장 11절).다음에는 천사와 인간과의 창조 원리적인 관계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 창조하시고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권(主管權)을 부여하셨기 때문에(창세기 1장 28절), 인간은 천사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3절을 보면, 인간에게는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계(靈界)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천사들이 낙원(樂園)에 있는 성도들을 옹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천사의 인간에 대한 시종적(侍從的)인 관계를 말해 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다. | 모든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따라서 천사(天使)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被造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먼저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절 에 씌어 있는 천지창조(天地創造)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스스로를 복수(複數)로 부르셨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대로 삼위신(三位神)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보다도 먼저 창조되어 있었던 천사들을 놓고 그들을 포함시킨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창조와 그의 경륜(經綸)을 위하여 먼저 천사를 사환(使喚)으로 창조하셨다(히브리서 1장 14절).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중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였고(창세기 18장 10절), 그리스도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전하였으며(마태복음 1장 20절, 누가복음 1장 31절), 옥중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베드로를 풀어 성 밖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사도행전 12장 7절 - 10절). 이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천사가 활동한 예는 성서에서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는 천사가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천사를 '부리는 영(靈)'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리고 천사는 하나님에게 송영(誦詠)을 드리는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증거를 성서 가운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요한계시록 5장 11절, 요한계시록 7장 11절).다음에는 천사와 인간과의 창조 원리적인 관계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 창조하시고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권(主管權)을 부여하셨기 때문에(창세기 1장 28절), 인간은 천사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3절을 보면, 인간에게는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계(靈界)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천사들이 낙원(樂園)에 있는 성도들을 옹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천사의 인간에 대한 시종적(侍從的)인 관계를 말해 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다. | ||
Ⅱ.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 | |||
=== Ⅱ.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 === | |||
하나님은 영적인 부분과 육적인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創造)하셨기 때문에, 타락에 있어서도 영육(靈肉) 양면의 타락(墮落)이 성립된 것이다. 천사와 해와와의 혈연관계(血緣關係)에 의한 타락이 영적 타락이고, 해와와 아담과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육적 타락인 것이다. | 하나님은 영적인 부분과 육적인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創造)하셨기 때문에, 타락에 있어서도 영육(靈肉) 양면의 타락(墮落)이 성립된 것이다. 천사와 해와와의 혈연관계(血緣關係)에 의한 타락이 영적 타락이고, 해와와 아담과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육적 타락인 것이다. | ||
그러면 천사(天使)와 인간과의 사이에 어떻게 성적(性的)인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 인간과 영물(靈物)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모든 감성은 어떠한 점에서나 실체적인 존재 사이에서 느끼는 그 감성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천사와의 성적 타락은 사실상 가능한 것이다.한편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하여서도 위에서 말한 내용을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사회에 있어서 지상인간들이 영인(靈人)들과 결혼생활을 하는 예가 왕왕 있다는 것, 그리고 천사(天使)가 야곱과 씨름을 하여서 그의 완도 뼈를 부러뜨렸다는 예(창세기 32장 25절)와 함께, 천사가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나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창세기 18장 8절)과, 또 롯의 집에 찾아온 두 천사가 롯이 대접한 무교병(無酉孝餠)을 먹었을 뿐 아니라, 그 성 백성들이 그 천사를 보고 색정(色情)을 일으키어 롯의 집을 둘러싸고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대하리라(창세기 19장 5절)고 외친 사실 등은 모두 이에 속한 예들인 것이다. | 그러면 천사(天使)와 인간과의 사이에 어떻게 성적(性的)인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 인간과 영물(靈物)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모든 감성은 어떠한 점에서나 실체적인 존재 사이에서 느끼는 그 감성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천사와의 성적 타락은 사실상 가능한 것이다.한편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하여서도 위에서 말한 내용을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사회에 있어서 지상인간들이 영인(靈人)들과 결혼생활을 하는 예가 왕왕 있다는 것, 그리고 천사(天使)가 야곱과 씨름을 하여서 그의 완도 뼈를 부러뜨렸다는 예(창세기 32장 25절)와 함께, 천사가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나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창세기 18장 8절)과, 또 롯의 집에 찾아온 두 천사가 롯이 대접한 무교병(無酉孝餠)을 먹었을 뿐 아니라, 그 성 백성들이 그 천사를 보고 색정(色情)을 일으키어 롯의 집을 둘러싸고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대하리라(창세기 19장 5절)고 외친 사실 등은 모두 이에 속한 예들인 것이다. | ||
1. 영적 타락 | |||
==== 1. 영적 타락 ==== | |||
하나님은 천사세계(天使世界)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26절), 누시엘(啓明星이란 뜻, 사도행전 14장 12절)을 천사장(天使長)의 위(位)에 세우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복(福)의 기관이 되었던 것같이 누시엘은 천사세계의 사랑의 기관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종으로 창조된 누시엘보다도 그들을 훨씬 더 사랑하시었다.사실상 누시엘은 인간이 창조(創造)되기 전이나 후나 조금도 다름없는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기보다도 아담과 해와를 더 사랑하시는 것을 볼 때에 그는 사랑에 대한 일종의 감소감(減少感)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침부터 노동을 한 일꾼이 자기대로의 상당한 노임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일꾼도 자기와 똑같은 노임(勞賃)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가 받는 노임에 대한 감소감을 느꼈다고 하는 성서(聖書)의 예화(마태복음 20장 1 - 15절)와 같은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랑의 감소감을 느끼게 된 누시엘은, 자기가 천사세계에서 가졌던 사랑의 위치와 동일한 것을 인간세계에 대하여서도 그대로 가져 보고자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곧 영적 타락(靈的 墮落)의 동기였다. | 하나님은 천사세계(天使世界)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26절), 누시엘(啓明星이란 뜻, 사도행전 14장 12절)을 천사장(天使長)의 위(位)에 세우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복(福)의 기관이 되었던 것같이 누시엘은 천사세계의 사랑의 기관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종으로 창조된 누시엘보다도 그들을 훨씬 더 사랑하시었다.사실상 누시엘은 인간이 창조(創造)되기 전이나 후나 조금도 다름없는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기보다도 아담과 해와를 더 사랑하시는 것을 볼 때에 그는 사랑에 대한 일종의 감소감(減少感)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침부터 노동을 한 일꾼이 자기대로의 상당한 노임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일꾼도 자기와 똑같은 노임(勞賃)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가 받는 노임에 대한 감소감을 느꼈다고 하는 성서(聖書)의 예화(마태복음 20장 1 - 15절)와 같은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랑의 감소감을 느끼게 된 누시엘은, 자기가 천사세계에서 가졌던 사랑의 위치와 동일한 것을 인간세계에 대하여서도 그대로 가져 보고자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곧 영적 타락(靈的 墮落)의 동기였다. | ||
피조세계(被造世界)는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사랑은 피조물의 생명의 근본이요, 행복과 이상(理想)의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많이 받는 존재일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으로 창조된 천사(天使)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해와를 대할 때, 그가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해와가 누시엘의 유혹에 끌려오는 빛을 보였을 때, 그는 해와로부터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자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누시엘은 죽음을 무릅쓰고 더욱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랑에 대한 과분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난 누시엘과,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 해와가(창세기 3장 5 - 6절) 서로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인한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그들로 하여금 불륜(不倫)한 영적인 정조관계(貞操關係)를 맺게 하였던 것이다. | 피조세계(被造世界)는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사랑은 피조물의 생명의 근본이요, 행복과 이상(理想)의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많이 받는 존재일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으로 창조된 천사(天使)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해와를 대할 때, 그가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해와가 누시엘의 유혹에 끌려오는 빛을 보였을 때, 그는 해와로부터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자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누시엘은 죽음을 무릅쓰고 더욱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랑에 대한 과분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난 누시엘과,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 해와가(창세기 3장 5 - 6절) 서로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인한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그들로 하여금 불륜(不倫)한 영적인 정조관계(貞操關係)를 맺게 하였던 것이다. | ||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서로 그 대상으로부터 그의 요소를 받도록 창조된 원리에 의하여(창세기 3장 7절), 해와는 누시엘과 사랑으로써 일체를 이루었을 때 누시엘의 요소를 받았던 것이다. 즉 첫째로 그는 누시엘로부터 창조목적(創造目的)에 대한 배치(背馳)로 말미암아 양심은 가책에서 오는 공포심을 받았고, 둘째로는 자기가 본래 대해야 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부부로서의 상대자는 천사가 아니고 아담이었다는 사실을 감득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그에게서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에 있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완성기에 처해 있었던 천사 장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천사 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다.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完成期에 처해 있었던 천사장(天使長)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그는 천사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서로 그 대상으로부터 그의 요소를 받도록 창조된 원리에 의하여(창세기 3장 7절), 해와는 누시엘과 사랑으로써 일체를 이루었을 때 누시엘의 요소를 받았던 것이다. 즉 첫째로 그는 누시엘로부터 창조목적(創造目的)에 대한 배치(背馳)로 말미암아 양심은 가책에서 오는 공포심을 받았고, 둘째로는 자기가 본래 대해야 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부부로서의 상대자는 천사가 아니고 아담이었다는 사실을 감득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그에게서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에 있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완성기에 처해 있었던 천사 장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천사 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다.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完成期에 처해 있었던 천사장(天使長)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그는 천사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 ||
2. 육적 타락 | |||
==== 2. 육적 타락 ==== | |||
아담과 해와는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천사장(天使長)과 불륜(不倫)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은 후, 다시 뒤미처 아담과 부부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도 역시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 이렇게 때 아닌 때에 사탄을 중심 삼고 아담과 해와 사이에 이루어진 부부관계는 그대로 육적 타락(肉的 墮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 아담과 해와는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천사장(天使長)과 불륜(不倫)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은 후, 다시 뒤미처 아담과 부부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도 역시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 이렇게 때 아닌 때에 사탄을 중심 삼고 아담과 해와 사이에 이루어진 부부관계는 그대로 육적 타락(肉的 墮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 ||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와는 천사 장과의 영적인 타락에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온 공포심과 자기의 원리적인 상대가 천사 장이 아니고 아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해와는 그제서나마 자기의 원리적 상대인 아담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 또 타락으로 인하여 오게 된 공포심을 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담을 유인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육적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와는 천사 장과의 영적인 타락에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온 공포심과 자기의 원리적인 상대가 천사 장이 아니고 아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해와는 그제서나마 자기의 원리적 상대인 아담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 또 타락으로 인하여 오게 된 공포심을 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담을 유인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육적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 ||
이때에 불륜한 정조관계(貞操關係)에 의하여 천사 장과 일체를 이루었던 해와는 아담에 대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은 해와의 눈에 매우 아름답게 보여졌다. 그리하여 해와에게 있어 아담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와는 자기를 유혹하였던 천사 장과 똑같은 입장에서 아담을 유혹하였다. 아담이 누시엘과 같은 입장에 서 있었던 해와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일어났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아담으로 하여금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위치를 떠나게 하여, 마침내 그들은 육적인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 이때에 불륜한 정조관계(貞操關係)에 의하여 천사 장과 일체를 이루었던 해와는 아담에 대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은 해와의 눈에 매우 아름답게 보여졌다. 그리하여 해와에게 있어 아담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와는 자기를 유혹하였던 천사 장과 똑같은 입장에서 아담을 유혹하였다. 아담이 누시엘과 같은 입장에 서 있었던 해와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일어났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아담으로 하여금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위치를 떠나게 하여, 마침내 그들은 육적인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 ||
아담은 해와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해와가 누시엘로부터 받았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이 요소는 다시 그 후손에게로 연면히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해와는 타락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아담이 타락된 해와를 상대하지 않고 완성되었더라면, 완성한 주체(主體)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대상(對象)인 해와 하나에 대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대단히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마저 타락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계승한 인류가 오늘날까지 번식하여 내려온 것이다. | 아담은 해와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해와가 누시엘로부터 받았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이 요소는 다시 그 후손에게로 연면히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해와는 타락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아담이 타락된 해와를 상대하지 않고 완성되었더라면, 완성한 주체(主體)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대상(對象)인 해와 하나에 대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대단히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마저 타락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계승한 인류가 오늘날까지 번식하여 내려온 것이다. | ||
제3절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 및 믿음을 위한 계명 89 | |||
Ⅰ.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으로 본 타락 | === 제3절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 및 믿음을 위한 계명 89 === | ||
=== Ⅰ.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으로 본 타락 === | |||
인간은 원리로써 창조되어 원리궤도(原理軌道)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의 힘 그 자체가 인간을 원리궤도에서 탈선케 하여 타락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레일이나 기관에 고장이 없는 한, 기차가 스스로 궤도를 탈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기차도 그가 달리는 힘보다도 더욱 강한 외력(外力)이 그와 방향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탈선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자신을 성장케 하는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그 어떠한 힘이 그와 목적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타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힘이 곧 사랑의 힘이다. 그러므로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어서의 인간은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인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그러면 왜 원리(原理)의 힘보다도 사랑의 힘이 더 강하여서, 미완성기에 있어서의 인간이 목적을 달리한 그러한 사랑의 힘에 부딪칠 때, 그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도 있게 되었던가? | 인간은 원리로써 창조되어 원리궤도(原理軌道)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의 힘 그 자체가 인간을 원리궤도에서 탈선케 하여 타락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레일이나 기관에 고장이 없는 한, 기차가 스스로 궤도를 탈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기차도 그가 달리는 힘보다도 더욱 강한 외력(外力)이 그와 방향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탈선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자신을 성장케 하는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그 어떠한 힘이 그와 목적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타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힘이 곧 사랑의 힘이다. 그러므로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어서의 인간은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인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그러면 왜 원리(原理)의 힘보다도 사랑의 힘이 더 강하여서, 미완성기에 있어서의 인간이 목적을 달리한 그러한 사랑의 힘에 부딪칠 때, 그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도 있게 되었던가? | ||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삼대상 사랑에 의하여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한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주체적인 사랑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인간 창조의 목적인 사위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사랑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된다.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하므로, 그 사랑이 사랑답기 위하여는,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도 더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약하다면,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원리를 더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진리(眞理)로써 세워 가지고, 사랑으로써 구원(救援)하고자 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삼대상 사랑에 의하여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한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주체적인 사랑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인간 창조의 목적인 사위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사랑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된다.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하므로, 그 사랑이 사랑답기 위하여는,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도 더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약하다면,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원리를 더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진리(眞理)로써 세워 가지고, 사랑으로써 구원(救援)하고자 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 ||
Ⅱ.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신 목적 | |||
=== Ⅱ.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신 목적 === | |||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강하므로, 아직 미완성기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주관을 받을 수 없는 아담과 해와가, 만일 천사장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목적을 달리하는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장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천사를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였더라면,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작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천사장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그와 수수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그 불륜(不倫)한 사랑의 힘은 그들을 탈선케 하였던 것이다. |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강하므로, 아직 미완성기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주관을 받을 수 없는 아담과 해와가, 만일 천사장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목적을 달리하는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장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천사를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였더라면,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작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천사장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그와 수수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그 불륜(不倫)한 사랑의 힘은 그들을 탈선케 하였던 것이다. | ||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던 인간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던 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타락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밖에 또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게 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主管性)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그리고 이 계명을 천사장에게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주셨던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할 인간의 창조 원리적인 자격과 위신을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던 인간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던 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타락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밖에 또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게 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主管性)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그리고 이 계명을 천사장에게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주셨던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할 인간의 창조 원리적인 자격과 위신을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 ||
Ⅲ. 믿음을 위한 계명이 필요한 기간 | |||
=== Ⅲ. 믿음을 위한 계명이 필요한 기간 === | |||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은 언제까지라도 필요한 것이었던가 ? 사랑을 중심하고 볼 때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 완성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부부를 이루어, 그 자녀가 번성함으로써(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직접적인 주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되면 따먹는 것은 원리적인 것으로서 허용되도록 창조되어 있었던 것이다.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게 되면, 이 절대적인 부부의 사랑의 힘을 끊을 자나 그것을 끊을 힘은 없으므로 그들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다. 더구나 인간보다도 저급한 천사장(天使長)의 사랑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을 중심한 그들 부부간의 사랑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필요했던 것이다. |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은 언제까지라도 필요한 것이었던가 ? 사랑을 중심하고 볼 때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 완성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부부를 이루어, 그 자녀가 번성함으로써(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직접적인 주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되면 따먹는 것은 원리적인 것으로서 허용되도록 창조되어 있었던 것이다.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게 되면, 이 절대적인 부부의 사랑의 힘을 끊을 자나 그것을 끊을 힘은 없으므로 그들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다. 더구나 인간보다도 저급한 천사장(天使長)의 사랑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을 중심한 그들 부부간의 사랑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필요했던 것이다. | ||
제4절 인간 타락의 결과 | |||
=== 제4절 인간 타락의 결과 === | |||
아담과 해와가 영육(靈肉) 아울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천사를 비롯한 피조세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 우리는 여기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 아담과 해와가 영육(靈肉) 아울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천사를 비롯한 피조세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 우리는 여기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 ||
Ⅰ. 사탄과 타락인간 | |||
=== Ⅰ. 사탄과 타락인간 === | |||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을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 있다. 누시엘과 인간조상이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어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사위기대(四位基臺)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魔鬼)의 자식이라고 하셨고, 또 마태복음 12장 34절과 동 23장 33절에서는 그들을 뱀 또는 독사(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셨다(마태복음 3장 7절). 한편 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처음 익은 열매된 우리들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養子)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었더면, 그 때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완성기에 타락되어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사탄주권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31절에는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는 사탄을 세상의 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어 사탄은 피조세계의 주관주(主管主)로 창조된 인간을 주관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피조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9절에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만물이 완성된 인간의 주관을 받지 못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탄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인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을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 있다. 누시엘과 인간조상이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어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사위기대(四位基臺)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魔鬼)의 자식이라고 하셨고, 또 마태복음 12장 34절과 동 23장 33절에서는 그들을 뱀 또는 독사(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셨다(마태복음 3장 7절). 한편 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처음 익은 열매된 우리들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養子)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었더면, 그 때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완성기에 타락되어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사탄주권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31절에는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는 사탄을 세상의 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어 사탄은 피조세계의 주관주(主管主)로 창조된 인간을 주관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피조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9절에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만물이 완성된 인간의 주관을 받지 못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탄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인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 ||
Ⅱ. 인간세계에 대한 사탄의 활동 | |||
=== Ⅱ. 인간세계에 대한 사탄의 활동 === | |||
사탄은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듯이(욥기 1장 9절), 항상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지옥으로 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탄도 그의 대상을 취하여서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지 않고는 사탄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탄의 대상은 영계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이다. 그리고 이 악영인들의 대상은 지상에 있는 악인(惡人)들의 영인체(靈人體)이며,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의 활동대상은 바로 그들의 육신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2장 3절에는 사탄이 가룟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16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리켜 사탄이라고 하셨다. 한편 이러한 악영인체를 마귀의 사자(使者)라고 한 기록도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1절). | 사탄은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듯이(욥기 1장 9절), 항상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지옥으로 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탄도 그의 대상을 취하여서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지 않고는 사탄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탄의 대상은 영계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이다. 그리고 이 악영인들의 대상은 지상에 있는 악인(惡人)들의 영인체(靈人體)이며,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의 활동대상은 바로 그들의 육신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2장 3절에는 사탄이 가룟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16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리켜 사탄이라고 하셨다. 한편 이러한 악영인체를 마귀의 사자(使者)라고 한 기록도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1절). | ||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한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전 인류가 사탄과의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완전히 끊고, 하늘과의 상대기준을 복귀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사탄이 전혀 활동할 수 없게 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말세(末世)에 이르러서 사탄을 무저갱(無底坑)에 가둔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사탄의 상대자가 없어지므로 사탄이 활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인간이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끊고, 더욱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6장 3절의 말씀대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서는, 사탄이 사탄된 죄상과 그 정체를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를 복귀하시는 데 있어서도 강제로 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책임분담으로써 말씀을 찾아 세워 가지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만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섭리하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연장을 거듭해 내려오게 된 것이다. |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한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전 인류가 사탄과의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완전히 끊고, 하늘과의 상대기준을 복귀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사탄이 전혀 활동할 수 없게 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말세(末世)에 이르러서 사탄을 무저갱(無底坑)에 가둔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사탄의 상대자가 없어지므로 사탄이 활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인간이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끊고, 더욱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6장 3절의 말씀대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서는, 사탄이 사탄된 죄상과 그 정체를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를 복귀하시는 데 있어서도 강제로 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책임분담으로써 말씀을 찾아 세워 가지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만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섭리하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연장을 거듭해 내려오게 된 것이다. | ||
Ⅲ. 목적성으로 본 선과 악 | |||
=== Ⅲ. 목적성으로 본 선과 악 === | |||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 중 '창조본연의 가치'에서 논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목적성으로 본 선악(善惡)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였더면, 그들은 선의세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서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 중 '창조본연의 가치'에서 논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목적성으로 본 선악(善惡)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였더면, 그들은 선의세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서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 ||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그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그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 ||
| 71번째 줄: | 118번째 줄: | ||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선(善)은 이와 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상에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존(永存)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어 그로부터 오는 이념이 세워질 때는, 그 이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선의 기준도 절대적인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재림주(再臨主)님에 의하여 세워질 천주적(天宙的)인 이념인 것이다. |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선(善)은 이와 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상에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존(永存)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어 그로부터 오는 이념이 세워질 때는, 그 이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선의 기준도 절대적인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재림주(再臨主)님에 의하여 세워질 천주적(天宙的)인 이념인 것이다. | ||
사실상 인류역사는 수많은 투쟁과 혁명을 거듭하면서, 본심(本心)이 지향하는 이 절대선(絶對善)을 찾아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투쟁과 혁명은, 이 절대적인 목적을 추구하여 절대적인 선의 세계를 이룩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사실상 인류역사는 수많은 투쟁과 혁명을 거듭하면서, 본심(本心)이 지향하는 이 절대선(絶對善)을 찾아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투쟁과 혁명은, 이 절대적인 목적을 추구하여 절대적인 선의 세계를 이룩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Ⅳ.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 | |||
=== Ⅳ.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 === | |||
선신(善神)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편에 있는 선영인(善靈人)들과 천사(天使)들을 총칭하는 말이고, 악신(惡神)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과 사탄 편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선과 악이 그러하듯이 선신의 역사(役事)와 악신의 역사도 동일한 모양으로 출발하여 그 목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 선신(善神)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편에 있는 선영인(善靈人)들과 천사(天使)들을 총칭하는 말이고, 악신(惡神)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과 사탄 편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선과 악이 그러하듯이 선신의 역사(役事)와 악신의 역사도 동일한 모양으로 출발하여 그 목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 ||
선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개체의 평화감과 정의감을 증진시키며 그 육신의 건강도 좋아지게 한다. 그러나 악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로 이기심을 증진케 하며 건강도 해롭게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역사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분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결과를 보아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선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개체의 평화감과 정의감을 증진시키며 그 육신의 건강도 좋아지게 한다. 그러나 악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로 이기심을 증진케 하며 건강도 해롭게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역사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분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결과를 보아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
그러나 타락인간(墮落人間)은 하나님도 사탄도 모두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신의 역사인 경우에도 악신의 역사를 겸행하는 때가 있다. 또 악신의 역사도 어느 기간을 지나면 선신의 역사를 겸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별하기가 곤란하다. 오늘날에 있어 많은 교역자(敎役者)들이 이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선신의 역사까지도 악신의 것으로 몰아, 하늘 '뜻'에 상반되는 처지에 서게 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잘 분간하여 분립할 수 없는 한 영통인(靈通人)들을 지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러나 타락인간(墮落人間)은 하나님도 사탄도 모두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신의 역사인 경우에도 악신의 역사를 겸행하는 때가 있다. 또 악신의 역사도 어느 기간을 지나면 선신의 역사를 겸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별하기가 곤란하다. 오늘날에 있어 많은 교역자(敎役者)들이 이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선신의 역사까지도 악신의 것으로 몰아, 하늘 '뜻'에 상반되는 처지에 서게 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잘 분간하여 분립할 수 없는 한 영통인(靈通人)들을 지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 ||
Ⅴ. 죄 | |||
=== Ⅴ. 죄 === | |||
죄(罪)라는 것은 사탄과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킴으로써, 천법(天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그런데 죄를 분류해 보면, 첫째로 원죄(原罪)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이 저지른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에 의한 혈통적인 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원죄는 모든 죄의 뿌리가 되고 있다. | 죄(罪)라는 것은 사탄과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킴으로써, 천법(天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그런데 죄를 분류해 보면, 첫째로 원죄(原罪)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이 저지른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에 의한 혈통적인 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원죄는 모든 죄의 뿌리가 되고 있다. | ||
둘째로는 유전적(遺傳的) 죄가 있다. 이것은 부모가 지은 죄가 몇대에 이른다고 한 십계명(十誡命)의 말씀과 같이, 혈통적인 인연으로 그 후손들이 물려받은 선조의 죄를 말한다. | 둘째로는 유전적(遺傳的) 죄가 있다. 이것은 부모가 지은 죄가 몇대에 이른다고 한 십계명(十誡命)의 말씀과 같이, 혈통적인 인연으로 그 후손들이 물려받은 선조의 죄를 말한다. | ||
| 81번째 줄: | 132번째 줄: | ||
넷째로 자범죄(自犯罪)가 있으니 이것은 자신(自身)이 직접 범한 죄다. | 넷째로 자범죄(自犯罪)가 있으니 이것은 자신(自身)이 직접 범한 죄다. | ||
여기에서 우리가 전기(前記)한 바와 같이 원죄를 죄의 뿌리라고 한다면, 유전적인 죄는 죄의 줄기, 연대적인 죄는 죄의 가지, 자범죄는 죄의 잎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죄는 그의 뿌리되는 원죄로 말미암아서 생긴다. 그러므로 원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다른 죄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 있는 이 죄의 뿌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인간의 뿌리로서 참부모로 오시는 예수님만이 이것을 알고 청산하실 수 있는 것이다. | 여기에서 우리가 전기(前記)한 바와 같이 원죄를 죄의 뿌리라고 한다면, 유전적인 죄는 죄의 줄기, 연대적인 죄는 죄의 가지, 자범죄는 죄의 잎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죄는 그의 뿌리되는 원죄로 말미암아서 생긴다. 그러므로 원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다른 죄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 있는 이 죄의 뿌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인간의 뿌리로서 참부모로 오시는 예수님만이 이것을 알고 청산하실 수 있는 것이다. | ||
Ⅵ. 타락성본성 | |||
=== Ⅵ. 타락성본성 === | |||
천사장(天使長)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해와와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을 때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모든 성품을 해와가 계승하였고, 이렇게되어서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된 해와와 다시 혈연관계를 맺은 아담도 그 성품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성품이 타락인간의 모든 타락성을 유발하는 근본된 성품이 되었다. 이것을 말하여 타락성본성이라고 한다. | 천사장(天使長)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해와와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을 때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모든 성품을 해와가 계승하였고, 이렇게되어서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된 해와와 다시 혈연관계를 맺은 아담도 그 성품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성품이 타락인간의 모든 타락성을 유발하는 근본된 성품이 되었다. 이것을 말하여 타락성본성이라고 한다. | ||
이와 같이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이 생기게 된 근본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에 대하여 질투심(嫉妬心)을 갖게 된 데 있었다. 그러면 선(善)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된 천사 장에게서, 어떻게 되어 사랑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 이와 같이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이 생기게 된 근본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에 대하여 질투심(嫉妬心)을 갖게 된 데 있었다. 그러면 선(善)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된 천사 장에게서, 어떻게 되어 사랑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 ||
| 91번째 줄: | 144번째 줄: | ||
셋째는 주관성(主管性)을 전도(顚倒)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을 받아야 할 천사가 거꾸로 해와를 주관하였고,또 아담의 주관을 받앙야 할 해와가 거꾸로 아담을 주관하게 된 데서 타락의 결과가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서 주관성을 전도하는 데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는 문란(紊亂)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 셋째는 주관성(主管性)을 전도(顚倒)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을 받아야 할 천사가 거꾸로 해와를 주관하였고,또 아담의 주관을 받앙야 할 해와가 거꾸로 아담을 주관하게 된 데서 타락의 결과가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서 주관성을 전도하는 데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는 문란(紊亂)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 ||
넷째는 범죄행위(犯罪行爲)를 번식하는 것이다. 만일 해와가 타락한 뒤에 자기의 범죄를 아담에게 번식시키지 않았더면 아담은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해와만의 복귀는 용이(容易)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해와는 이와 반대로 자기의 죄를 아담에게도 번식시켜 그를 타락케 하였다. 악인(惡人)들이 동료를 번식시키려는 성품은 이와 같은 타락성본성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 넷째는 범죄행위(犯罪行爲)를 번식하는 것이다. 만일 해와가 타락한 뒤에 자기의 범죄를 아담에게 번식시키지 않았더면 아담은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해와만의 복귀는 용이(容易)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해와는 이와 반대로 자기의 죄를 아담에게도 번식시켜 그를 타락케 하였다. 악인(惡人)들이 동료를 번식시키려는 성품은 이와 같은 타락성본성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 ||
제5절 자유와 타락 | |||
Ⅰ. 자유의 원리적 의의 | === 제5절 자유와 타락 === | ||
=== Ⅰ. 자유의 원리적 의의 === | |||
자유(自由)에 대한 원리적인 성격을 논할 때, 첫째로 우리는 원리(原理)를 벗어난 자유는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유라고 하는 것은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따르는 자유행동(自由行動)을 일괄하여 표현한 말이다. 전자와 후자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과의 관계와 같아서, 이것이 합하여서만 완전한 자유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없는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자유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유의지도 완전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행동은 자유의지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자유의지는 곧 마음의 발로 인 것이다. 그런데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원리를 벗어나서 그 마음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원리를 벗어난 자유의지나 그로 인한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본연의 인간에 있어서는, 원리를 벗어난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자유(自由)에 대한 원리적인 성격을 논할 때, 첫째로 우리는 원리(原理)를 벗어난 자유는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유라고 하는 것은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따르는 자유행동(自由行動)을 일괄하여 표현한 말이다. 전자와 후자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과의 관계와 같아서, 이것이 합하여서만 완전한 자유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없는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자유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유의지도 완전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행동은 자유의지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자유의지는 곧 마음의 발로 인 것이다. 그런데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원리를 벗어나서 그 마음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원리를 벗어난 자유의지나 그로 인한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본연의 인간에 있어서는, 원리를 벗어난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
둘째로 책임(責任) 없는 자유는 없다. 원리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그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된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 따라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추구하여 나아가는 인간은 항상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을 행하려 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둘째로 책임(責任) 없는 자유는 없다. 원리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그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된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 따라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추구하여 나아가는 인간은 항상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을 행하려 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
셋째로 실적(實績) 없는 자유는 없다. 인간이 자유로써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려는 목적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실적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항상 실적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므로, 실적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셋째로 실적(實績) 없는 자유는 없다. 인간이 자유로써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려는 목적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실적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항상 실적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므로, 실적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
Ⅱ. 자유와 인간의 타락 | |||
=== Ⅱ. 자유와 인간의 타락 === | |||
위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자유(自由)는 원리를 벗어나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자유는 스스로의 창조 원리적인 책임을 지게 되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실적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자유행동은 선(善)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본심(本心)의 자유라고 한다. | 위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자유(自由)는 원리를 벗어나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자유는 스스로의 창조 원리적인 책임을 지게 되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실적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자유행동은 선(善)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본심(本心)의 자유라고 한다. | ||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말라는 권고를 받은 이상,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오직 본심의 자유에 의하여 그 명령을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해와가 원리를 이탈하려 하였을 때,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그의 본심의 자유는, 그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여 원리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 타락된 뒤에 있어서도, 이 본심의 자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도록 작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작용을 하는 본심의 자유로 인하여 타락될 수는 없다. 인간의 타락은 어디까지나 그의 본심의 자유가 지향하는 힘보다도 더 강한 비원리적(非原理的)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자유가 구속되었던 데 기인한다. |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말라는 권고를 받은 이상,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오직 본심의 자유에 의하여 그 명령을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해와가 원리를 이탈하려 하였을 때,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그의 본심의 자유는, 그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여 원리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 타락된 뒤에 있어서도, 이 본심의 자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도록 작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작용을 하는 본심의 자유로 인하여 타락될 수는 없다. 인간의 타락은 어디까지나 그의 본심의 자유가 지향하는 힘보다도 더 강한 비원리적(非原理的)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자유가 구속되었던 데 기인한다. | ||
결국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도 이 자유를 추구하는 본성(本性)만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유를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는 것은, 인간이 사탄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이 자유를 복귀해 나아가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를 찾는 목적은,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행동으로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세워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 결국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도 이 자유를 추구하는 본성(本性)만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유를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는 것은, 인간이 사탄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이 자유를 복귀해 나아가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를 찾는 목적은,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행동으로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세워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 ||
Ⅲ. 자유와 타락과 복귀 | |||
=== Ⅲ. 자유와 타락과 복귀 === | |||
천사(天使)는 인간을 시종(侍從) 하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천사를 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유에 속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천사에게 유혹을 당하던 때의 해와는, 아직도 지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다. 따라서 해와가 천사의 유혹에 의하여, 지적으로 미혹되고 심정적으로 혼돈 되어 유인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본심의 자유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불안을 느꼈으나, 보다 더 큰 천사와의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선(墮落線)을 넘고 말았다. | 천사(天使)는 인간을 시종(侍從) 하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천사를 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유에 속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천사에게 유혹을 당하던 때의 해와는, 아직도 지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다. 따라서 해와가 천사의 유혹에 의하여, 지적으로 미혹되고 심정적으로 혼돈 되어 유인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본심의 자유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불안을 느꼈으나, 보다 더 큰 천사와의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선(墮落線)을 넘고 말았다. | ||
해와가 아무리 천사를 자유로이 대하였다 하더라도,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만을 믿고 천사의 유혹의 말에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천사와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발동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유가 해와로 하여금 천사를 상대하게 하여 타락 선까지 끌고 나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타락선을 넘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가 아니고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 해와가 아무리 천사를 자유로이 대하였다 하더라도,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만을 믿고 천사의 유혹의 말에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천사와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발동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유가 해와로 하여금 천사를 상대하게 하여 타락 선까지 끌고 나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타락선을 넘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가 아니고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 ||
인간은 천사에 대해서도 자유로써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해와가 누시엘을 대하게 되어, 그와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함으로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타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타락인간도 자유로써 하나님의 상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진리(眞理)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유를 부르짖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이하여서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려는 본심의 자유의 지향성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 인간은 천사에 대해서도 자유로써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해와가 누시엘을 대하게 되어, 그와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함으로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타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타락인간도 자유로써 하나님의 상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진리(眞理)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유를 부르짖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이하여서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려는 본심의 자유의 지향성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 ||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떨어져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서 그의 심정도 모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이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취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락인간에 있어서는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에 의하여, 신령(내적인 知)과 진리(외적인 知)가 밝혀짐에 따라, 창조목적을 지향하는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도 복귀되어 왔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심정(心情)도 점차로 복귀되어 그 뜻대로 살려는 의지도 높아 가는 것이다.또 그들은 이와 같이 자유를 복귀코자 하는 의지가 고조됨에 따라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환경에 자유를 찾는 그 시대의 인간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필연적으로 사회혁명(社會革命)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18세기에 있어서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은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러한 혁명은 결국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자유가 완전히 복귀될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떨어져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서 그의 심정도 모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이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취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락인간에 있어서는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에 의하여, 신령(내적인 知)과 진리(외적인 知)가 밝혀짐에 따라, 창조목적을 지향하는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도 복귀되어 왔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심정(心情)도 점차로 복귀되어 그 뜻대로 살려는 의지도 높아 가는 것이다.또 그들은 이와 같이 자유를 복귀코자 하는 의지가 고조됨에 따라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환경에 자유를 찾는 그 시대의 인간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필연적으로 사회혁명(社會革命)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18세기에 있어서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은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러한 혁명은 결국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자유가 완전히 복귀될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
제6절 하나님이 인간조상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시지 않은 이유 | |||
=== 제6절 하나님이 인간조상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시지 않은 이유 === | |||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므로 인간조상의 타락행위(墮落行爲)를 모르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한편 그들이 타락행위를 감행할 수 없도록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들의 타락행위를 아시면 서도 그것을 간섭하여 막지 않으셨던가? 이것은 아직까지의 인류역사를 통하여 풀려지지 않은 중대한 문제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치 않으신 이유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므로 인간조상의 타락행위(墮落行爲)를 모르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한편 그들이 타락행위를 감행할 수 없도록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들의 타락행위를 아시면 서도 그것을 간섭하여 막지 않으셨던가? 이것은 아직까지의 인류역사를 통하여 풀려지지 않은 중대한 문제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치 않으신 이유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 ||
Ⅰ.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위하여 | |||
=== Ⅰ.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위하여 === | |||
창조원리(創造원리(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음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만물세계를 주관하도록 창조하였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기 위하여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수행하면서 성장하여 완성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성장기간(成長期間)을 우리는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 혹은 원리결과주관권(原理結果主管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주관권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적으로 주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완성된 뒤에야 그들을 직접 주관하시게 되는 것이다. | 창조원리(創造원리(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음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만물세계를 주관하도록 창조하였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기 위하여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수행하면서 성장하여 완성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성장기간(成長期間)을 우리는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 혹은 원리결과주관권(原理結果主管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주관권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적으로 주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완성된 뒤에야 그들을 직접 주관하시게 되는 것이다. | ||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직접 주관하실 수 없는 성장기간에 있어서 그들의 행위를 간섭하시게 되면 인간의 책임분담을 무시하는 것이 되므로, 따라서 인간에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의 주관주로 세우시려는 창조원리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자에 서시게 된다. 이와 같이 원리가 무시되면, 동시에 원리의 절대성(絶對性)과 완전무결성(完全無缺性)은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자 이시며 완전무결하신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원리도 또한 절대적이며 완전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위하여, 미완성기(未完성기(成期))에 있는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직접 주관하실 수 없는 성장기간에 있어서 그들의 행위를 간섭하시게 되면 인간의 책임분담을 무시하는 것이 되므로, 따라서 인간에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의 주관주로 세우시려는 창조원리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자에 서시게 된다. 이와 같이 원리가 무시되면, 동시에 원리의 절대성(絶對性)과 완전무결성(完全無缺性)은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자 이시며 완전무결하신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원리도 또한 절대적이며 완전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위하여, 미완성기(未完성기(成期))에 있는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
2.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 |||
==== 2.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 | |||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원리적인 존재와 그 행동만을 간섭하시기 때문에, 범죄행위(犯罪行爲)나 지옥(地獄)과 같은 자기가 창조하시지 않은 비원리적인 존재나 행동은 간섭하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일 어떠한 존재나 행동을 간섭하시게 되면, 간섭을 받은 그 존재나 행동은 벌써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된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는 거다. |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원리적인 존재와 그 행동만을 간섭하시기 때문에, 범죄행위(犯罪行爲)나 지옥(地獄)과 같은 자기가 창조하시지 않은 비원리적인 존재나 행동은 간섭하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일 어떠한 존재나 행동을 간섭하시게 되면, 간섭을 받은 그 존재나 행동은 벌써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된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는 거다. | ||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볼 때, 만일 하나님이 인간시조의 타락행위(墮落行爲)를 간섭하시게 되면 그 타락행위에도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서, 그 범죄행위는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범죄행위도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하신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세우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어디가지나 사탄 때문이므로, 그렇게 되면 사탄이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창조한 것이 되어 그도 역시 창조주의 입장에 서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홀로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볼 때, 만일 하나님이 인간시조의 타락행위(墮落行爲)를 간섭하시게 되면 그 타락행위에도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서, 그 범죄행위는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범죄행위도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하신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세우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어디가지나 사탄 때문이므로, 그렇게 되면 사탄이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창조한 것이 되어 그도 역시 창조주의 입장에 서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홀로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
Ⅲ. 인간을 만물의 주관위에 세우시기 위하여 | |||
=== Ⅲ. 인간을 만물의 주관위에 세우시기 위하여 === | |||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萬物)을 주관하라고 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을 주관하려면, 만물과 동등한 처지에서는 그를 주관할 수 없으므로 인간은 그를 주관할 수 있는 어떠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 |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萬物)을 주관하라고 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을 주관하려면, 만물과 동등한 처지에서는 그를 주관할 수 없으므로 인간은 그를 주관할 수 있는 어떠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 | ||
하나님이 창조주(創造主)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주관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같이, 인간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갖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하시기 위하여, 성장기간(成長期間)을 두시고 이 기간이 다하기까지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원리과정을 통하여 완성됨으로써만,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가지고 비로소 만물을 주관할 수 있게 된다. | 하나님이 창조주(創造主)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주관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같이, 인간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갖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하시기 위하여, 성장기간(成長期間)을 두시고 이 기간이 다하기까지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원리과정을 통하여 완성됨으로써만,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가지고 비로소 만물을 주관할 수 있게 된다. | ||
그런데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게 되면, 이것은 아직도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만물을 주관할 자격이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주관케 하시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미완성한 인간과 동일한 취급을 하신다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또 이 인간에게 그의 창조성을 부여하심으로서 만물을 주관케 하시기 위하여 세우셨던 창조원리(創造原理)를 스스로 무시하시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에 의하여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하시고 그 원칙을 따라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을 주관위(主管位)에 세우시기 위하여 아직도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내에 있었던 미완성한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런데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게 되면, 이것은 아직도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만물을 주관할 자격이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주관케 하시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미완성한 인간과 동일한 취급을 하신다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또 이 인간에게 그의 창조성을 부여하심으로서 만물을 주관케 하시기 위하여 세우셨던 창조원리(創造原理)를 스스로 무시하시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에 의하여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하시고 그 원칙을 따라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을 주관위(主管位)에 세우시기 위하여 아직도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내에 있었던 미완성한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
== 제3장 인류역사 종말론 == | |||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人類歷史)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또 이것이 어디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왔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終末)에 관한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人類歷史)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또 이것이 어디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왔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終末)에 관한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
많은 기독교(基督敎) 신도들은 다만 성서(聖書)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하늘과 땅이 모두 불에 타서 소멸(消滅)되고(베드로후서 3장 | 많은 기독교(基督敎) 신도들은 다만 성서(聖書)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하늘과 땅이 모두 불에 타서 소멸(消滅)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베드로후서 3장 12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마태복음 24장 29절{{ 마태복음 24장 29절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 천사장(天使長)의 나팔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름 속으로 끌어 올리어 공중(空中)에서 예수님을 상봉(相逢)하리라고(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 17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 17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믿고 있다. | ||
그러나 사실 성서의 문자 그대로 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성서의 중요한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말씀도 무엇을 비유(比喩)하여 말씀하신 것인지, 이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기독교 신도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하나님이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創造)하신 목적과, 타락(墮落)의 의의와, 그리고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은 근본문제(根本問題)를 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 그러나 사실 성서의 문자 그대로 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성서의 중요한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말씀도 무엇을 비유(比喩)하여 말씀하신 것인지, 이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기독교 신도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하나님이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創造)하신 목적과, 타락(墮落)의 의의와, 그리고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은 근본문제(根本問題)를 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 ||
제1절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과 인간의 타락 | |||
1.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 | === 제1절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과 인간의 타락 === | ||
==== 1.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 ==== | |||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그의 창조본연의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 |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그의 창조본연의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 | ||
인간 이외의 피조물(被造物)은 자연 그대로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도록 창조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원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의한 행동을 통하여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유의지와 그에 의한 행동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 드리는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스스로 노력하여서, 그 뜻대로 생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체휼하여 그 뜻을 알아 가지고, 그 뜻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개성완성(個性完成)이라고 한다.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타락 전의 아담, 해와나 선지자(先知者)들이 하나님과 일문일답(一問一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인간에게 이와 같이 창조되었던 소성(素性)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인간 이외의 피조물(被造物)은 자연 그대로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도록 창조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원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의한 행동을 통하여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유의지와 그에 의한 행동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 드리는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스스로 노력하여서, 그 뜻대로 생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체휼하여 그 뜻을 알아 가지고, 그 뜻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개성완성(個性完成)이라고 한다.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타락 전의 아담, 해와나 선지자(先知者)들이 하나님과 일문일답(一問一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인간에게 이와 같이 창조되었던 소성(素性)이 있었기 때문이다. | ||
개성을 완성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는, 몸과 마음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몸은 마음이 거하는 하나의 전(殿)으로서,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므로, 결국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는 것과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개성(個性)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이룸으로써, 성령(聖靈)이 그 안에 살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인간은 신성(神性)을 갖게 되므로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타락할 수도 없게 된다. | 개성을 완성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는, 몸과 마음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몸은 마음이 거하는 하나의 전(殿)으로서,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므로, 결국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는 것과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개성(個性)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이룸으로써, 성령(聖靈)이 그 안에 살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인간은 신성(神性)을 갖게 되므로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타락할 수도 없게 된다. | ||
개성을 완성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룬 선(善)의 완성체인데, 선의 완성체가 타락된다면 선 그 자체가 파멸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불합리(不合理)한 결과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전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완성된 입장에서 타락되었다면 하나님의 전능성마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영원(永遠)한 주체로 계시는 절대자(絶對者)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도 영원성과 절대성을 가져야 하므로,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는 것이다. | 개성을 완성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룬 선(善)의 완성체인데, 선의 완성체가 타락된다면 선 그 자체가 파멸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불합리(不合理)한 결과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전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완성된 입장에서 타락되었다면 하나님의 전능성마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영원(永遠)한 주체로 계시는 절대자(絶對者)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도 영원성과 절대성을 가져야 하므로,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는 것이다. | ||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하여 죄를 지을 수 없게 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축복하신 말씀대로(창세기 1장 |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하여 죄를 지을 수 없게 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축복하신 말씀대로(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선의 자녀를 번식하여 죄 없는 가정과 사회를 이루었다면, 이것이 바로 한 부모를 중심한 대가족(大家族)으로 이루어지는 천국(天國)이었을 것이다. 천국은 마치 개성을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과 같은 세계여서, 인간에 있어 그 두뇌의 종적(縱的)인 명령에 의하여 그의 사지백체(四肢百體)가 서로 횡적인 관계를 가지고 활동하듯이, 그 사회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종적인 명령에 의하여, 서로 횡적인 유대(紐帶)를 맺어 생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 있어서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보시고 같이 서러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사회전체가 그대로 체휼하게 되기 때문에,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 ||
그리고 아무리 죄 없는 인간들이 생활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이 원시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개한 생활들을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고 또 인간이 원하는 천국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신 말씀대로(창세기 1장 28절), 개성을 완성한 인간들은 과학을 발달시켜 자연계(自然界)를 정복함으로써, 극도로 안락한 사회환경을 이 지상에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창조이상(創造理想)이 실현된 곳이 바로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완성되어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영계(靈界)로 가게 되면, 바로 거기에 천상천국(天上天國)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어디까지나 먼저 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 그리고 아무리 죄 없는 인간들이 생활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이 원시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개한 생활들을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고 또 인간이 원하는 천국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신 말씀대로(창세기 1장 28절), 개성을 완성한 인간들은 과학을 발달시켜 자연계(自然界)를 정복함으로써, 극도로 안락한 사회환경을 이 지상에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창조이상(創造理想)이 실현된 곳이 바로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완성되어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영계(靈界)로 가게 되면, 바로 거기에 천상천국(天上天國)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어디까지나 먼저 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 ||
2. 인간의 타락 | |||
==== 2. 인간의 타락 ==== | |||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아직도 성장기간(成長期間)에 있어서, 미완성(未完成)한 입장에 있었을 때에 타락되었다. 인간에게는 왜 성장기간이 필요하였으며, 인간시조가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도 이미 창조원리에서 밝혔다. |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아직도 성장기간(成長期間)에 있어서, 미완성(未完成)한 입장에 있었을 때에 타락되었다. 인간에게는 왜 성장기간이 필요하였으며, 인간시조가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도 이미 창조원리에서 밝혔다. | ||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이루지 못하고 사탄이 우거(寓居)하는 전(殿)이 되어 그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신성(神性)을 갖지 못하고 악성(惡性)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악성을 가진 인간이 악의 자녀를 번식하여 악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지상지옥(地上地獄)이다. 지옥인간들은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유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서 체휼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는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자행하게 된 것이다. |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이루지 못하고 사탄이 우거(寓居)하는 전(殿)이 되어 그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신성(神性)을 갖지 못하고 악성(惡性)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악성을 가진 인간이 악의 자녀를 번식하여 악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지상지옥(地上地獄)이다. 지옥인간들은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유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서 체휼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는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자행하게 된 것이다. | ||
인간은 지상지옥(地上地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을 벗은 후에는 천상지옥(天上地獄)으로 가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 주권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사탄 주권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사탄을 세상임금(요한복음 12장 | 인간은 지상지옥(地上地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을 벗은 후에는 천상지옥(天上地獄)으로 가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 주권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사탄 주권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사탄을 세상임금(요한복음 12장 31절{{ 요한복음 12장 31절 :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 또는 세상의 신(고린도후서 4장 4절{{ 고린도 후서 4장 4절 :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 ||
제2절 구원섭리 | |||
1. 구원섭리는 곧 복귀섭리다. | === 제2절 구원섭리 === | ||
이 죄악(罪惡)의 세계는 인간이 서러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도 서러워하시는 세계인 것이다(창세기 | |||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계를 어느 정도로 구원하셔야 할 것인가 ?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이 죄악의 세계에서 사탄의 악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사도행전 26장 | ==== 1. 구원섭리는 곧 복귀섭리다. ==== | ||
병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뜻이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빠지기 전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죄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죄가 없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곧 복귀섭리(復歸攝理)인 것이다(사도행전 1장 | |||
이 죄악(罪惡)의 세계는 인간이 서러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도 서러워하시는 세계인 것이다(창세기 6장6절{{ 창세기 6장 6절 :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설움의 세계를 그대로 방치하실 것인가 ? 기쁨을 누리시려고 창조하셨던 선(善)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로 영속할 수밖에 없이되었다면, 하나님은 창조에 실패한 무능한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필코 이 죄악의 세계를 구원(救援)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계를 어느 정도로 구원하셔야 할 것인가 ?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이 죄악의 세계에서 사탄의 악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사도행전 26장 18절{{ 사도행전 26장 18절 :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먼저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을 복귀(復歸)하는 데까지 구원하시고, 그 위에 선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시어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데까지(사도행전 3장 21절{{ 사도행전 3장 21절 :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 나아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 |||
병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뜻이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빠지기 전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죄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죄가 없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곧 복귀섭리(復歸攝理)인 것이다(사도행전 1장 6절{{ 사도행전 1장 6절 :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 마태복음 17장 11절{{ 마태복음 17장 11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 | |||
타락(墮落)은 물론 인간 자신의 과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이란 결과도 있을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결과에 대하여 창조주(創造主)로서의 책임을 지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잘못된 결과를 창조본연의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타락(墮落)은 물론 인간 자신의 과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이란 결과도 있을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결과에 대하여 창조주(創造主)로서의 책임을 지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잘못된 결과를 창조본연의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
하나님은 영존(永存)하시는 주체이시므로, 그의 영원한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도 역시 영원성을 갖지 않으면 아니된다. 인간에게는 이와 같이 영원성을 두고 창조하셨던 창조 원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이라고 해서 이를 아주 없애버리어 창조원리(創造原理)를 무위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을 구원하시어 그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하시지 않으면 아니된다. | 하나님은 영존(永存)하시는 주체이시므로, 그의 영원한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도 역시 영원성을 갖지 않으면 아니된다. 인간에게는 이와 같이 영원성을 두고 창조하셨던 창조 원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이라고 해서 이를 아주 없애버리어 창조원리(創造原理)를 무위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을 구원하시어 그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하시지 않으면 아니된다. | ||
그런데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창세기 1장 | 그런데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이사야 46장 11절{{ 이사야서 46절 11절 :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 }}에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고하신 말씀대로, 사탄 때문에 잃어버렸던 이 축복들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심으로써, 약속의 뜻을 이루어 나오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8절{{ 마태복음 5장 48절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 전하라. }}에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도, 곧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본연의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신성(神性)을 갖게 됨으로써,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 ||
2. 복귀섭리의 목적 | |||
그러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시고, 그들을 중심하고 먼저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인간 시조(始祖)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역시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나(마태복음 6장 | ==== 2. 복귀섭리의 목적 ==== | ||
3.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 |||
그러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시고, 그들을 중심하고 먼저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인간 시조(始祖)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역시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나(마태복음 6장 10절{{ 마태복음 6장 10절 :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 마태복음 4장 17절 :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등은 모두 복귀섭리의 목적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 |||
==== 3.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 | |||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바로 복귀섭리(復歸攝理)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善)의 세계를 복귀케 하시려는 섭리역사(攝理歷史)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바로 복귀섭리(復歸攝理)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善)의 세계를 복귀케 하시려는 섭리역사(攝理歷史)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 ||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문화권발전사(文化圈發展史))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문화권발전사(文化圈發展史))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 ||
| 162번째 줄: | 242번째 줄: | ||
이제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천륜은 드디어 재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빼앗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의 단계를 지나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이름을 띠고 이 땅에 찾아왔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패전국가(敗戰國家)가 식민지를 내놓더니,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전승국가(戰勝國家)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늘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다. | 이제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천륜은 드디어 재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빼앗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의 단계를 지나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이름을 띠고 이 땅에 찾아왔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패전국가(敗戰國家)가 식민지를 내놓더니,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전승국가(戰勝國家)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늘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다. | ||
그러면 이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일 것인가 ? 그것은 이념(理念)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올 때, 비로소 종교를 부인하고 과학편중의 발달을 꾀해 나온 공산주의 사상은 전복되고, 두 세계는 하나의 이념 아래 완전히 통일될 것이다. 이와 같이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면 이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일 것인가 ? 그것은 이념(理念)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올 때, 비로소 종교를 부인하고 과학편중의 발달을 꾀해 나온 공산주의 사상은 전복되고, 두 세계는 하나의 이념 아래 완전히 통일될 것이다. 이와 같이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 ||
넷째로, 우리는 성서(聖書)를 중심하고 좀더 이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세기 2장 | 넷째로, 우리는 성서(聖書)를 중심하고 좀더 이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 창세기 2장 9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를 중심한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전편 제2장 제1절 1). 그런데 에덴동산은 아담과 해와가 창조된 어떤 국한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 만일 에덴동산이, 인간 시조(始祖)가 창조되었던 그 어느 한정된 지역만을 말한다면, 이 땅에 충만하도록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에 의하여 번식될 그 숱한 인류가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다 살 수 있을 것인가 ? | ||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창세기 3장 |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창세기 3장 24절{{ 창세기 3장 24절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 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그래서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罪惡歷史)가 오메가로 끝날 때의 타락인간(墮落人間)의 소망은, 죄악으로 물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복귀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를 다시 찾아 나아가는 데 있다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요한계시록 22장 13 - 14절 :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이 성서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 ||
이미 타락론(墮落論)에서 밝혀진 바이지만,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原罪)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중생(重生)) 않으면 아니된다(중생론 참조).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니, 역사의 종말기(終末期)에 들어 성도(聖徒)들이 소망하고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미 타락론(墮落論)에서 밝혀진 바이지만,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原罪)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중생(重生)) 않으면 아니된다(중생론 참조).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니, 역사의 종말기(終末期)에 들어 성도(聖徒)들이 소망하고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7절{{ 요한계시록 21장 1 - 7절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던 옛 하늘과 옛 땅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의 주관 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만물(萬物)도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요한 계시록 21장 |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의 주관 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만물(萬物)도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요한 계시록 21장 5절{{ 요한계시록 21장 5절 :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귀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섭리역사(攝理歷史)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 ||
제3절 말세 | |||
1. 말세의 의의 | === 제3절 말세 === | ||
==== 1. 말세의 의의 ==== | |||
하나님이 인간 조상(祖上)에게 허락하셨던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루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하고 비원리적(非原理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 하나님이 인간 조상(祖上)에게 허락하셨던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루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하고 비원리적(非原理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 ||
그런데 악으로 시작된 인류역사는 실상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이기 때문에, 사탄주권의 죄악세계(罪惡世界)는 메시아의 강림(降臨)을 전환점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을 이룬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주권의 죄악세계가 하나님 주권의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에로 교체되는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한다. 따라서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어지는 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지금까지 기독교 신도들이 믿어 온 대로의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는 공포의 때가 아니고, 창세이후 유구한 역사노정을 통하여 인류가 유일한 소망으로 바라고 나왔던 기쁨의 한 날이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 그런데 악으로 시작된 인류역사는 실상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이기 때문에, 사탄주권의 죄악세계(罪惡世界)는 메시아의 강림(降臨)을 전환점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을 이룬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주권의 죄악세계가 하나님 주권의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에로 교체되는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한다. 따라서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어지는 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지금까지 기독교 신도들이 믿어 온 대로의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는 공포의 때가 아니고, 창세이후 유구한 역사노정을 통하여 인류가 유일한 소망으로 바라고 나왔던 기쁨의 한 날이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 ||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으로 미루거니와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의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여러 차례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곤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세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으로 미루거니와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의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여러 차례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곤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세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 ||
1) 노아 때도 말세였다 123 | |||
창세기 6장 | ==== 1) 노아 때도 말세였다 123 ==== | ||
2) 예수님 때도 말세였다 p.124 | |||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기 때문에(전편 제6장),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선지자(先知者)들을 부르시어 믿음의 터를 닦으시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복귀하려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 때도 말세(末世)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스스로 심판주(審判主)로 오셨다고 말씀하셨고(요한복음 5장 | 창세기 6장 13절{{ 창세기 6장 13절 :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 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의 기록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였기 때문에,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노아 때가 말세였던가 ?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시작된 사탄을 중심한 타락세계를, 1600년의 죄악사(罪惡史)를 일기로 하여 홍수심판(洪水審判)으로 멸하시고, 하나님만을 신봉(信奉)하는 노아가정을 세우심으로써, 그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주권의 이상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노아 때가 말세였던 것이다(후편 제1장 제2절 참조).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그들이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창세기 9장 22절{{ 창세기 9장 22절 :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 | ||
==== 2) 예수님 때도 말세였다 p.124 ==== | |||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기 때문에(전편 제6장),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선지자(先知者)들을 부르시어 믿음의 터를 닦으시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복귀하려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 때도 말세(末世)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스스로 심판주(審判主)로 오셨다고 말씀하셨고(요한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5장 22절 : 아버지께서 아무도 비판하지 아니하시고 비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그 때도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라기 4장 1절{{ 말라기 4장 1절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 |||
예수님은 이와 같이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를 복귀하려고 오셨던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불신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도 이루어지지 않고 재림(再臨) 때에로 다시 연장되었다. | 예수님은 이와 같이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를 복귀하려고 오셨던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불신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도 이루어지지 않고 재림(再臨) 때에로 다시 연장되었다. | ||
3) 예수님의 재림 때도 말세다 | |||
유대 민족의 불신을 당하게 된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신 후에야 영육(靈肉) 아울러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을 완수하여(전편 제4장 제1절 4)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때도 또한 말세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재림 때)에도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장 | ==== 3) 예수님의 재림 때도 말세다 ==== | ||
2.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 |||
유대 민족의 불신을 당하게 된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신 후에야 영육(靈肉) 아울러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을 완수하여(전편 제4장 제1절 4)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때도 또한 말세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재림 때)에도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장 26절{{ 누가복음 17장 26절 :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고 말씀하셨고, 그가 재림하실 때도 말세가 되어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장 29절{{ 마태복음 24장 29절 :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 | |||
==== 2.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 | |||
이미 위에서 논한 바대로,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천지에 이변이 일어나며, 인간사회에도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이(變異)가 생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해 가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의 징조는 실제에 있어서 그 문자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에 관한 성서의 모든 기록은 각각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 이미 위에서 논한 바대로,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천지에 이변이 일어나며, 인간사회에도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이(變異)가 생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해 가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의 징조는 실제에 있어서 그 문자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에 관한 성서의 모든 기록은 각각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 ||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장 1절, 베드로후서 3장 13절, 이사야 66절 22절) | |||
====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장 1절, 베드로후서 3장 13절, 이사야 66절 22절) ==== | |||
창세기 6장 13절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가 되어 땅을 멸한다고 하셨지만, 사실상 멸하지는 않으셨다. 전도서 1장 4절에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신 말씀이나, 시편 78편 69절에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땅은 영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그의 대상도 영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상으로 창조된 땅도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파멸되어 없어질 세계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을 리는 없는 것이다. | 창세기 6장 13절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가 되어 땅을 멸한다고 하셨지만, 사실상 멸하지는 않으셨다. 전도서 1장 4절에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신 말씀이나, 시편 78편 69절에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땅은 영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그의 대상도 영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상으로 창조된 땅도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파멸되어 없어질 세계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을 리는 없는 것이다. | ||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인가 ? 한 국가를 멸한다는 것은 그의 주권(主權)을 멸한다는 것을 의미함이요, 또 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요한계시록 21장 |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인가 ? 한 국가를 멸한다는 것은 그의 주권(主權)을 멸한다는 것을 의미함이요, 또 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요한계시록 21장 1절{{ 요한계시록 21장 1절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새 주권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 주권하의 새로운 천지(天地)를 복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 ||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장 12절) | |||
====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장 12절) ==== | |||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말라기 4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때도 그가 심판주(審判主)로 오셔서(요한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9장 39절) 불로써 심판하신다고 예언되어 있고, 또 누가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님이 불로써 심판하신 아무 흔적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임을 알 수 있다. |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말라기 4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때도 그가 심판주(審判主)로 오셔서(요한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9장 39절) 불로써 심판하신다고 예언되어 있고, 또 누가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님이 불로써 심판하신 아무 흔적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임을 알 수 있다. | ||
그러면 말씀심판에 관한 성구(聖句)의 예를 찾아보자.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는,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 즉 말씀으로 그를 죽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4절에서는, 그 입의 막대기(혀)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말씀)으로 악인(惡人)을 죽이 리라고도 말씀하였으며,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 그러면 말씀심판에 관한 성구(聖句)의 예를 찾아보자.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는,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 즉 말씀으로 그를 죽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4절에서는, 그 입의 막대기(혀)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말씀)으로 악인(惡人)을 죽이 리라고도 말씀하였으며,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 ||
그러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1장 3절에 인간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 시조가 말씀의 실체로서 말씀의 목적을 완수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타락되어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에 의하여, 타락인간을 재창조하심으로써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 하셨으니, 이것이 곧 진리(성서)에 의한 복귀섭리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 완성 자로 재림하셔서, 스스로 말씀심판의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말씀의 목적을 이루었는가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 그러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1장 3절에 인간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 시조가 말씀의 실체로서 말씀의 목적을 완수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타락되어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에 의하여, 타락인간을 재창조하심으로써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 하셨으니, 이것이 곧 진리(성서)에 의한 복귀섭리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 완성 자로 재림하셔서, 스스로 말씀심판의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말씀의 목적을 이루었는가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 ||
이렇듯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이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는데 있으므로, 그 목적을 위한 심판도 말씀으로 그의 기준을 세워 행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씌어 있는 바,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생명의 말씀을 이미 선포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여 하신 말씀이다. | 이렇듯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이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는데 있으므로, 그 목적을 위한 심판도 말씀으로 그의 기준을 세워 행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씌어 있는 바,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생명의 말씀을 이미 선포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여 하신 말씀이다. | ||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태복음 27장 52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 |||
====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태복음 27장 52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 | |||
마태복음 27장 5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썩어 버린 그들의 육신이 다시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전편 제5장 제2절 3). 만일 영계(靈界)에 머물러 있던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살아 나와 성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반드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을 것인가 ? 그리고 그렇듯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육신(肉身)을 쓰고 무덤에서 다시 일어났다면, 그 후의 그들의 행적(行跡)에 관한 기사가 반드시 성서에 남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들에 관한 아무런 기사도 달리 씌어 있지 않다. | 마태복음 27장 5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썩어 버린 그들의 육신이 다시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전편 제5장 제2절 3). 만일 영계(靈界)에 머물러 있던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살아 나와 성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반드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을 것인가 ? 그리고 그렇듯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육신(肉身)을 쓰고 무덤에서 다시 일어났다면, 그 후의 그들의 행적(行跡)에 관한 기사가 반드시 성서에 남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들에 관한 아무런 기사도 달리 씌어 있지 않다. | ||
그러면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 그것은 마치 모세와 엘리야의 영인체(靈人體)가 변화산상(變化山上)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마 17:3),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부활(再臨復活)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적으로 보고(전편 제5장 제2절 3) 기록한 말씀이다. | 그러면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 그것은 마치 모세와 엘리야의 영인체(靈人體)가 변화산상(變化山上)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마 17:3),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부활(再臨復活)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적으로 보고(전편 제5장 제2절 3) 기록한 말씀이다. | ||
그러면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낙원(樂園)에서 보면,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머물러 있던 영형체급 영인(靈形體級靈人)의 세계는 보다 어둠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곳을 가리켜 무덤이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영인들은 모두 이 영계에 머물러 있다가 지상성도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 그러면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낙원(樂園)에서 보면,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머물러 있던 영형체급 영인(靈形體級靈人)의 세계는 보다 어둠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곳을 가리켜 무덤이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영인들은 모두 이 영계에 머물러 있다가 지상성도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 ||
4) 지상인간들이 끌어 올리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 |||
==== 4) 지상인간들이 끌어 올리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 | |||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공중은 공간적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성서에 있어서 땅은 타락된 악주권(惡主權)의 세계를 의미하고, 하늘은 죄가 없는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은 땅에도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태복음 6장 9절)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땅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한복음 3장 13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主)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주권을 물리치시고, 지상천국을 복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공중은 공간적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성서에 있어서 땅은 타락된 악주권(惡主權)의 세계를 의미하고, 하늘은 죄가 없는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은 땅에도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태복음 6장 9절)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땅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한복음 3장 13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主)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주권을 물리치시고, 지상천국을 복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마태복음 24장 29절) | |||
====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마태복음 24장 29절) ==== | |||
창세기 37장 9절 이하를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째인 요셉 이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요셉이 커서 애급의 총리대신(總理大臣)이 되었을 때, 과연 이 꿈대로 그 부모와 형제들이 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해와 달은 부모를 상징했고, 별들은 자녀들을 상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창세기 37장 9절 이하를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째인 요셉 이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요셉이 커서 애급의 총리대신(總理大臣)이 되었을 때, 과연 이 꿈대로 그 부모와 형제들이 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해와 달은 부모를 상징했고, 별들은 자녀들을 상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
기독론(基督論)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예수와 성신(聖神)은 아담과 해와 대신 인류를 중생(重生)해 주실 참부모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고, 별들은 자녀된 성도들을 상징한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을 참 빛으로 비유한 것은(요한복음 1장 9절), 그가 ‘말씀’으로 육신을 이루신 분으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진리의 빛을 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는 햇빛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빛을 이름이며, 달빛은 진리의 신으로 오신 성신(요한복음 16장 13절)의 빛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新約)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 기독론(基督論)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예수와 성신(聖神)은 아담과 해와 대신 인류를 중생(重生)해 주실 참부모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고, 별들은 자녀된 성도들을 상징한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을 참 빛으로 비유한 것은(요한복음 1장 9절), 그가 ‘말씀’으로 육신을 이루신 분으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진리의 빛을 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는 햇빛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빛을 이름이며, 달빛은 진리의 신으로 오신 성신(요한복음 16장 13절)의 빛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新約)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 ||
그러면 어찌하여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될 것인가 ? 마치 예수님과 성신이 어셔서 구약(舊約)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신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셔서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한(요한계시록 21장 | 그러면 어찌하여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될 것인가 ? 마치 예수님과 성신이 어셔서 구약(舊約)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신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셔서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한(요한계시록 21장 1절{{ 요한계시록 21장 1절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새 말씀을 주시게 되면(본장 제 5절 1 참조), 초림(初臨) 때에 주셨던 신약의 말씀은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여기에 말씀이 그 빛을 잃는다는 것은 새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사명기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 ||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末世)에 있어서의 성도들이 모두 실족(失足)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의 강림(降臨)은 열망해 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다가 전부 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 날에 실족하게 됨으로써, 그와 같이 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2 참조). |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末世)에 있어서의 성도들이 모두 실족(失足)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의 강림(降臨)은 열망해 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다가 전부 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 날에 실족하게 됨으로써, 그와 같이 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2 참조). | ||
누가복음 18장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으냐하신 말씀이나, 마태복음 7장 23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가 잘 믿는 성도들을 보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떠나가라"고 배척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끝날 의 성도들이 불신으로 실족하게 될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 것이었다. | 누가복음 18장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으냐하신 말씀이나, 마태복음 7장 23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가 잘 믿는 성도들을 보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떠나가라"고 배척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끝날 의 성도들이 불신으로 실족하게 될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 것이었다. | ||
제4절 말세와 현세 | |||
=== 제4절 말세와 현세 === | |||
예수님께서 장차 있을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 가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요한복음 21장 18 - 22절)고 대답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사도(使徒)들은 모두 '요한'의 생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마태복음 10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고하셨고, 마태복음 16장 28절에는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거니와,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성도들은 저마다 자기 당대(當代)에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말세라는 절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 예수님께서 장차 있을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 가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요한복음 21장 18 - 22절)고 대답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사도(使徒)들은 모두 '요한'의 생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마태복음 10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고하셨고, 마태복음 16장 28절에는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거니와,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성도들은 저마다 자기 당대(當代)에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말세라는 절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 ||
이것은 말세(末世)에 대한 근본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으로 세우고 이루어 나오시던 3대 축복(三大祝福)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임을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하셨다. | 이것은 말세(末世)에 대한 근본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으로 세우고 이루어 나오시던 3대 축복(三大祝福)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임을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하셨다. | ||
1. 제1축복 복귀의 현상 | |||
==== 1. 제1축복 복귀의 현상 ==== | |||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논술한 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약속하셨던 제1축복(제일축복(第一祝福))은 바로 그들이 개성(個性)을 완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인간(墮落人間)을 개성을 완성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 최종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여러 현상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논술한 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약속하셨던 제1축복(제일축복(第一祝福))은 바로 그들이 개성(個性)을 완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인간(墮落人間)을 개성을 완성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 최종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여러 현상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 ||
첫째로 타락인간의 심령(心靈)이 복귀되어 가는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인간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완전히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서로 교통(交通)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도 불완전한 상태이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던 단계에서 타락되어, 그의 후손은 하나님을 모르는 데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타락된 인간이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게 됨에 따라 점차 그 심령이 복귀됨으로써, 말세에 이르러서는 사도행전 2장 17절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고하신 말씀대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靈通)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서는 영통하는 성도들이 우후(雨後)의 죽순(竹筍) 같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이기 때문에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첫째로 타락인간의 심령(心靈)이 복귀되어 가는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인간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완전히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서로 교통(交通)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도 불완전한 상태이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던 단계에서 타락되어, 그의 후손은 하나님을 모르는 데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타락된 인간이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게 됨에 따라 점차 그 심령이 복귀됨으로써, 말세에 이르러서는 사도행전 2장 17절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고하신 말씀대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靈通)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서는 영통하는 성도들이 우후(雨後)의 죽순(竹筍) 같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이기 때문에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
| 210번째 줄: | 315번째 줄: | ||
셋째로 타락인간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가치성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인간의 창조본연의 가치를 횡적으로 보면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다지 귀중한 것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을 중심하고 종적으로 보면, 각 개성은 가장 존귀한 천주적인 가치를 제각기 띠고 있는 것이다(전편 제7장 제1절).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 민주주의사상(民主主義思想)이 고조됨에 따라 인간이 노예 해방, 흑인 해방, 약소민족 해방 등을 주장하며, 인권옹호(人權擁護)와 남녀평등(男女平等)과 만민평등(萬民平等)을 부르짖음으로써, 창조본연의 개성의 가치를 최고도로 추구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은 바로 말세가 다 되어 타락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 셋째로 타락인간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가치성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인간의 창조본연의 가치를 횡적으로 보면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다지 귀중한 것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을 중심하고 종적으로 보면, 각 개성은 가장 존귀한 천주적인 가치를 제각기 띠고 있는 것이다(전편 제7장 제1절).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 민주주의사상(民主主義思想)이 고조됨에 따라 인간이 노예 해방, 흑인 해방, 약소민족 해방 등을 주장하며, 인권옹호(人權擁護)와 남녀평등(男女平等)과 만민평등(萬民平等)을 부르짖음으로써, 창조본연의 개성의 가치를 최고도로 추구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은 바로 말세가 다 되어 타락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 ||
넷째로 타락인간의 본성(本性)의 사람이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세계는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의 세계로서, 그 세계의 인간은 모두 하나님과 종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 상호간에 있어서도 횡적으로 일체를 이루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종횡(縱橫)으로 얽히어 한 몸같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종적인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사랑도 따라서 끊어지게 되어, 인류역사는 투쟁으로써 엮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세(現世)에 이르러서는 박애주의사상(博愛主義思想)이 고조되면서 인간이 점점 그 본성애(本性愛)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하나님의 제1축복(제일축복(第一祝福))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개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말세(末世)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넷째로 타락인간의 본성(本性)의 사람이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세계는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의 세계로서, 그 세계의 인간은 모두 하나님과 종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 상호간에 있어서도 횡적으로 일체를 이루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종횡(縱橫)으로 얽히어 한 몸같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종적인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사랑도 따라서 끊어지게 되어, 인류역사는 투쟁으로써 엮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세(現世)에 이르러서는 박애주의사상(博愛主義思想)이 고조되면서 인간이 점점 그 본성애(本性愛)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하나님의 제1축복(제일축복(第一祝福))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개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말세(末世)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2. 제2축복 복귀의 현상 | |||
==== 2. 제2축복 복귀의 현상 ==== | |||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은 아담과 해와가 참 부모로 완성되어, 선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선주권(善主權)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타락되어, 악주권(惡主權)에 구속된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편으로 종교를 세워 역사 하심으로써, 내적인 사탄 분립에 의한 심령복귀(心靈復歸)의 섭리를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투쟁과 전쟁으로 외적인 사탄 분립을 하심으로써, 내외 양면에 걸친 주권복귀(主權復歸)의 섭리를 해 내려 오셨던 것이다. |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은 아담과 해와가 참 부모로 완성되어, 선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선주권(善主權)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타락되어, 악주권(惡主權)에 구속된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편으로 종교를 세워 역사 하심으로써, 내적인 사탄 분립에 의한 심령복귀(心靈復歸)의 섭리를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투쟁과 전쟁으로 외적인 사탄 분립을 하심으로써, 내외 양면에 걸친 주권복귀(主權復歸)의 섭리를 해 내려 오셨던 것이다. | ||
이와 같이 인류역사는 內外 양면의 사탄 분립에 의한 복귀섭리(復歸攝理)로써, 장차 참부모 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녀를 찾아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복귀해 온 것이므로,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의 발전 사와 국가흥망사에 의해 나타난 내 외 양면에 걸친 하나님의 주권 복귀의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末世)임을 알 수 있다. | 이와 같이 인류역사는 內外 양면의 사탄 분립에 의한 복귀섭리(復歸攝理)로써, 장차 참부모 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녀를 찾아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복귀해 온 것이므로,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의 발전 사와 국가흥망사에 의해 나타난 내 외 양면에 걸친 하나님의 주권 복귀의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末世)임을 알 수 있다. | ||
| 226번째 줄: | 333번째 줄: | ||
이와 같이 선(善) 악(惡) 두 주권의 역사노정(歷史路程)이 교차되는 때가 말세(末世)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때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된 장성기 완성급(長成期 完成級)의 시기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때이므로, 마치 에덴동산의 인간시조가 어디에다 중심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혼돈되었던 것과 같이 모든 인간들도 사상의 혼돈을 일으키어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 이와 같이 선(善) 악(惡) 두 주권의 역사노정(歷史路程)이 교차되는 때가 말세(末世)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때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된 장성기 완성급(長成期 完成級)의 시기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때이므로, 마치 에덴동산의 인간시조가 어디에다 중심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혼돈되었던 것과 같이 모든 인간들도 사상의 혼돈을 일으키어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 ||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 있어 이와 같이 말세가 되어, 선 악의 두 주권이 교차되었던 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노아 때나 예수님 때도 말세여서 이 두 주권은 서로 교차되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하여 악주권을 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권분립(主權分立)의 섭리를 다시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 재림기(再臨期)에 있어 다시 한번 두 주권의 교차가 있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은 이렇듯 주기적으로 상사(相似)의 나선상(螺線狀)을 반복하면서 원형과정(圓形過程)을 거쳐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지향하여 내려왔기 때문에, 역사상에는 필연적으로 동시성의 시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후편 제3장 제1절 참조). |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 있어 이와 같이 말세가 되어, 선 악의 두 주권이 교차되었던 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노아 때나 예수님 때도 말세여서 이 두 주권은 서로 교차되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하여 악주권을 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권분립(主權分立)의 섭리를 다시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 재림기(再臨期)에 있어 다시 한번 두 주권의 교차가 있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은 이렇듯 주기적으로 상사(相似)의 나선상(螺線狀)을 반복하면서 원형과정(圓形過程)을 거쳐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지향하여 내려왔기 때문에, 역사상에는 필연적으로 동시성의 시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후편 제3장 제1절 참조). | ||
3. 제3축복 복귀의 현상 | |||
==== 3. 제3축복 복귀의 현상 ==== | |||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은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성(主管性)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은 내외(內外) 양면의 주관성이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 양면의 주관성을 상실하였던 것인데, 현세(現世)에 이르러 이것이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末世)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은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성(主管性)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은 내외(內外) 양면의 주관성이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 양면의 주관성을 상실하였던 것인데, 현세(現世)에 이르러 이것이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末世)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 ||
내적 주관성이라는 것은 심정적 주관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그대로 체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완성됨으로써,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에 대하여 사랑을 주고 그로부터 미(美)를 돌려 받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써 피조세계를 대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나 종교(宗敎), 철학(哲學), 윤리(倫理) 등에 의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타락인간의 심령(心靈)이 점차로 밝아지게 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의 자격을 복귀해 가고 있는 것이다. | 내적 주관성이라는 것은 심정적 주관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그대로 체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완성됨으로써,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에 대하여 사랑을 주고 그로부터 미(美)를 돌려 받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써 피조세계를 대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나 종교(宗敎), 철학(哲學), 윤리(倫理) 등에 의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타락인간의 심령(心靈)이 점차로 밝아지게 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의 자격을 복귀해 가고 있는 것이다. | ||
그리고 외적 주관성은 과학(科學)에 의한 주관성을 의미한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어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대하여 내적 주관을 할 수 있었다면, 인간의 영감(靈感)은 고차적으로 발달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도 극히 단시일에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됨으로써 피조물(被造物)에 대한 외적인 주관을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일찍이 천체(天體)를 비롯한 자연계(自然界) 전체를 완전히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안락한 생활환경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짐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을 상실하게 되어, 동물과 같이 영감이 둔한 미개인으로 영락(零落)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 그리고 외적 주관성은 과학(科學)에 의한 주관성을 의미한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어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대하여 내적 주관을 할 수 있었다면, 인간의 영감(靈感)은 고차적으로 발달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도 극히 단시일에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됨으로써 피조물(被造物)에 대한 외적인 주관을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일찍이 천체(天體)를 비롯한 자연계(自然界) 전체를 완전히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안락한 생활환경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짐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을 상실하게 되어, 동물과 같이 영감이 둔한 미개인으로 영락(零落)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 ||
[[분류:통일교 교리 원문]] | [[분류:통일교 교리 원문]] | ||
[[분류:원리강론]] | [[분류:원리강론]] | ||
2026년 7월 7일 (화) 17:29 기준 최신판
원리강론 원문 002/008.
-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원리강론
- 시작 부분: 제2장 타락론 70
- 이전/다음: 이전 · 다음
원문
제2장 타락론 70
인간은 누구나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어떠한 악의 세력에 몰리어, 본심이 원하는 선을 버리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악의 세력 가운데서 인류의 죄악사(罪惡史)는 연면히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이 악의 세력의 주체를 사탄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 사탄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사탄이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탄이 되었는가하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악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함으로써 인류 죄악사를 청산하고 선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는 먼저 사탄이 사탄된 동기와 경로와 그 결과를 밝히 알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타락론(墮落論)을 알아야 한다.
제1절 죄의 뿌리
이제까지 인간 속에 깊이 그 뿌리를 박고 쉬임없이 인간을 죄악의 길로 몰아내고 있는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기독교 신도들만이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것이 죄의 뿌리가 된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나무의 과실이라고 믿는 신도들과, 또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도 그 어떠한 것에 대한 상징이나 비유일 것이라고 믿는 신도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제각기 구구한 해석을 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해와가 따먹고 타락(墮落)되었다는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어떠한 나무의 열매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부모 되시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자녀들이 따먹고 타락할 수 있는 과실(果實)을 그렇게도 보기 좋고 탐스럽게 만들어서(창세기 3장 6절), 그들이 손쉽게 따먹을 수 있는 곳에 두셨을 것인가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장 11절)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먹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케 할 수 있었을 것인가 ? 한편 인간의 원죄(原罪)는 인간의 시조로부터 유전(遺傳)되어 나오고 있는 것인데, 먹는 물건이 어떻게 원죄를 유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유전은 오직 혈통(血統)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그 무엇을 먹었다고 하여 그 결과가 후손에게까지 유전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선악과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고 믿고 있는 신도들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인간에게 사망이 따르는 방법으로써 그렇게 무자비한 시험을 하셨으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그들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으면 정녕코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먹으면 죽을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따먹었다. 기아(棄兒)에 허덕였을 리도 없는 아담과 해와가 먹을 것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렇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어떠한 물질이 아니고 생명에 대한 애착까지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자극을 주는 다른 무엇이었음에 틀림없다. 즉 선악과가 이와 같이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무엇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성경(聖經)의 많은 주요한 부분이 상징이나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무엇 때문에 선악과만은 굳이 문자대로 믿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은 모름지기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 있었던 지난날의 고루하고도 관습적인 신앙태도를 버려야 하겠다. 선악과를 비유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해명하는 방법으로서 창세기 2장 9절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었다고 하는 '생명나무'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이 '생명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와 함께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이라는 것도 바로 알 수 있겠기 때문이다.
1. 생명나무
성서(聖書)의 말씀에 의하면 타락인간(墮落人間)의 소망은 '생명나무'앞으로 나아가 '생명나무'를 이루는 데 있다. 즉 잠언 13장 12절을 보면,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생명나무'를 소망의 대상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고,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소망도 역시 '생명나무'에 나아가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타락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이 '생명나무'인 것을 보면 타락 전 아담의 소망도 '생명나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 하면 복귀과정에 있는 타락 인간은 원래 타락전 아담이 이루려다가 못 이룬 바로 그 소망을 다시 찾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4절에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화염검(火焰劍)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막아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소망이었던 이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창세기 3장 24절), 그 '생명나무'는 그 후 한결같이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져 내려왔던 것이다.그러면 완성될 때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던 미완성(未完成)한 아담에 있어서의 소망이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그가 타락되지 않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생명나무'의 내용을 바로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은 곧 완성한 아담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생명나무'는 결국 완성한 아담을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타락되지 않고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어서 '생명나무'를 이루었다면, 그의 후손들도 모두 '생명나무'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화염검(火焰劍)으로 막아버리고 말았다(창세기 3장 24절). 그렇기 때문에 '생명나무'는 창조이상을 복귀하려는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죄(原罪)가 있는 타락인간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생명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이 '생명나무'가 되기 위하여는 로마서 11장 17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한 남성이 이 지상에 '생명나무'로 오셔 가지고 모든 인간을 그에게 접붙이어 하나되게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생명나무'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3장 12절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고대하였던 '생명나무'는 바로 초림(初臨)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24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화염검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아담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이것이 걷히지 않고는 인간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2장 3절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五旬節) 날에 성도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불같은 혀 곧 화염검이 갈라진 후에야 성령(聖靈)이 강림하여, 전 인류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그에게 접붙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기독교 신도들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에게 영적(靈的)으로만 접붙임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또다시 속죄(贖罪)를 받아야 할 죄악의 자식을 낳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나온 원죄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그 자식에게 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전편 제4장 제1절).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상에 '생명나무'로 재림(再臨)하셔서, 온 인류를 다시 접붙이심으로써, 원죄까지 속죄해 주시는 섭리를 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말씀대로, 신약성도(新約聖徒)들이 또다시 '생명나무'를 고대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나무'는 바로 재림 예수 님을 비유한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생명나무'로서 복귀하시려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이 타락(墮落)하여 창세기 2장 9절의 첫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타락인간들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후'생명나무'로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린도전서 15장 45절).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하나님은 아담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배필로서 해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동산 가운데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남성을 비유하는 나무가 있었다면 그러한 여성을 비유하는 또 하나의 나무도 있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생명나무'와 같이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창세기 2장 9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한 그 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할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완성한 해와를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요한복음 15장 5절) 혹은 감람나무(로마서 11장 17절)로 비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간 타락(墮落)의 비밀을 암시하심에 있어서도 완성한 아담과 해와를 두 나무로 비유하셨던 것이다.
Ⅱ. 뱀의 정체
해와를 꼬여서 범죄케 한 것은 뱀이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장 4-5절). 그러면 또 이 뱀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우리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 내용에 의하여 뱀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하자.성경에 기록된 뱀은 인간과 담화(談話)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인간을 타락시킨 것을 보면 그것도 영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뱀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더욱 영물(靈物)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또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면, 하늘에서 큰 용(龍)이 땅으로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魔鬼)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옛 뱀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해와를 꼬인 그 뱀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뱀이 하늘로부터 내쫓겼다고 하였으니, 하늘에 있었던 그 옛 뱀이 영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편 이 뱀을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였는데, 이 사탄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인간의 마음을 악(惡)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온 것이 사실이니 그것은 영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사탄이 영물인 것이 사실이라면, 사탄으로 표시된 뱀이 영물임을 말할 것도 없다. 성서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사실로 보아, 해와를 꼬인 뱀은 동물이 아니고 어떠한 영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그러면 이처럼 뱀으로 비유한 영물(靈物)이 과연 창세 전(創世前)부터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피조물(被造物) 중의 하나였던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뱀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대립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라면, 피조세계(被造世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 악(善惡)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으로서 영속(永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는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버리고 말 것이며, 모든 존재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일원론(一元論)은 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뱀으로 비유한 이 영물은, 원래 선(善)을 목적으로 창조되었던 어떠한 존재가 타락되어 사탄이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담화(談話)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또 그 소재(所在)가 하늘이었고, 한편 또 그것이 만일 타락(墮落)되어 악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심령(心靈)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존재는 과연 무엇일 것인가? 천사(天使) 이외에는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존재가 없으므로 우선 그 뱀은 천사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어두운 지옥(地獄)에 던져두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을 꼬여 가지고 범죄 하였던 뱀을 곧 천사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뱀은 혀끝이 둘로 갈라져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한 혀로 두 말을 하고, 한 마음으로 이중의 생활을 하는 자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또 뱀은 자기의 먹을 것을 몸으로 꼬아서 먹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유혹하는 자의 표상이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인간을 꼬인 천사(天使)를 뱀으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Ⅲ.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
우리는 위에서 인간을 꼬여 타락케 한 뱀이 바로 천사였으며, 이 천사가 범죄 하여 타락(墮落)됨으로써 사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다음으로 우리는 천사와 인간이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1. 천사의 범죄
유다서 1장 6절에서 7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천사가 간음(姦淫)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런데 간음이란 혼자서는 행할 수 없는 범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행하여진 천사의 간음에 있어 그 대상이 되었던 존재가 무엇이었던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인간은 어떠한 죄를 저질렀던가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2. 인간의 범죄
창세기 2장 25절을 보면, 범죄하기 전 아담 해와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墮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無花果)나무 잎으로 하체(下體)를 가리었다(창세기 3장 7절). 만일 선악과(善惡果)라고 하는 어떠한 과실이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따먹고 범죄를 하였다면, 그들은 필시 손이나 입을 가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허물을 가리는 것이 그 본성(本性)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손이나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리었었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의 하체가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체로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욥기 31장 33절에는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한 후 그의 하체를 가리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아담이 가리었던 그의 하체가 허물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의 하체가 어찌하여 허물이 되었을 것인가 ?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하체로써 범죄하였기 때문이다.인간이 타락되기 전의 세계에 있어,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저지를 수도 있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식하라(창세기 1장 28절)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사랑으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두고 볼 때 사랑은 가장 귀하고 가장 거룩한 것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천시하여 온 것은 그것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도 또한 음란(淫亂)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 천사와 인간과의 행음
우리는 위에서 밝힌 바 인간이 천사(天使)의 꼬임에 빠져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나 천사는 모두 행음(行淫)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그 위에는 피조세계(被造世界)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어떠한 정적(情的)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는 인간과 천사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등을 결부하여 볼 때, 인간과 천사와의 사이에 행음관계가 성립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는 마귀(魔鬼)는 곧 사탄이요 사탄은 곧 인간을 꼬인 옛 뱀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성구(聖句)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은 마귀의 후손이요 따라서 사탄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국 뱀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그러면 인간은 어떤 경위로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의 후손이 되었는가 ?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천사와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사탄의 혈통(血統)에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이 아니고 사탄의 혈통으로써 태어났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친자식이 못되고)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 3장 7절에는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 즉 사탄의 자식이라고 질책하였고, 마태복음 23장 33절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책망하신 기록이 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천사와 인간 사이에 행음관계(行淫關係)가 있어서 그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Ⅳ. 선악과
우리는 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해와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또 선악과(善惡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그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목(果木)이 과실에 의하여 번식되는 것과 같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자녀를 번식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 해와는 이와 같이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또한 악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던 성장기간(成長期間)을 통하여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을 선악과라고 하였던 것이며, 그 사람을 말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던 것이다.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사랑으로 선과(善果)를 따먹고, 선의 피와 살을 받아 선의 혈통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사탄을 중심한 악의 사랑으로 악과(惡果)를 따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악의 혈통을 번식하여 죄악의 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천사)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창세기 3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저주하시어 배로 다니고 또 종신토록 흙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다리로 다니지 못하고 배로 다닌다는 것은, 천사가 창조본연(創造本然)의 활동을 하지 못하하고 비참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흙을 먹는다는 것은 것은 하늘로부터 쫓겨남으로 말미암아(이사야 14장 12절, 요한계시록 12장 9절),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의 요소를 받지 못하고, 죄악의 세계에서 악의 요소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Ⅴ. 죄의 뿌리
우리는 성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여, 죄(罪)의 뿌리는 인간 시조가 과실을 따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뱀으로 표시된 천사(天使)와 불륜(不倫)한 혈연관계를 맺은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의 악의 혈통을 번식하게 되었던 것이다.한편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서 인간의 죄의 뿌리가 음란(淫亂)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죄의 뿌리가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원죄(原罪)는 자자손손(子子孫孫)에게 유전되어 왔다. 그리고 죄를 벗으려고 하는 종교마다 간음(姦淫)을 가장 큰 죄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것을 막기 위하여 금욕생활(禁慾生活)을 강조하여 온 것이니, 이것도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되기 위한 속죄(贖罪)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행하였던 것은, 죄의 뿌리가 음란에 의하여 악의 피를 받아들인 데 있었기 때문에, 타락인간의 몸으로부터 그 악의 피를 뽑는다는 조건을 세워서 성별(聖別)하기 위함이었다.수많은 영웅 열사(英雄烈士)와 국가들이 멸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음란(淫亂)에 있었던 것은, 음란이란 죄의 뿌리가 항상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로써 인륜도덕(人倫道德)을 세우고, 제반 교육을 철저히 하며, 범죄를 빚어내는 경제사회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른 모든 죄악들은 이 사회로부터 불식(拂拭)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되면서 날로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증대되어가고 있는 음란이란 범죄만은 그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이 범죄를 발본색원(拔本塞源) 할 수 없는 한, 결코 이상세계(理想世界)는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림(再臨)하시는 메시아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죄의 뿌리가 어디까지나 음란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제2절 타락의 동기와 경로
우리는 이미 제1절에서 뱀은 곧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天使)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인간의 타락(墮落)된 동기가 천사에게 있었으므로, 그 타락의 동기와 경로를 알려면 먼저 천사에 관한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Ⅰ. 천사의 창조와 그의 사명 및 그와 인간과의 관계
모든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따라서 천사(天使)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被造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먼저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절 에 씌어 있는 천지창조(天地創造)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스스로를 복수(複數)로 부르셨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대로 삼위신(三位神)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보다도 먼저 창조되어 있었던 천사들을 놓고 그들을 포함시킨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창조와 그의 경륜(經綸)을 위하여 먼저 천사를 사환(使喚)으로 창조하셨다(히브리서 1장 14절).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중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였고(창세기 18장 10절), 그리스도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전하였으며(마태복음 1장 20절, 누가복음 1장 31절), 옥중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베드로를 풀어 성 밖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사도행전 12장 7절 - 10절). 이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천사가 활동한 예는 성서에서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는 천사가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천사를 '부리는 영(靈)'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리고 천사는 하나님에게 송영(誦詠)을 드리는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증거를 성서 가운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요한계시록 5장 11절, 요한계시록 7장 11절).다음에는 천사와 인간과의 창조 원리적인 관계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 창조하시고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권(主管權)을 부여하셨기 때문에(창세기 1장 28절), 인간은 천사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3절을 보면, 인간에게는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계(靈界)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천사들이 낙원(樂園)에 있는 성도들을 옹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천사의 인간에 대한 시종적(侍從的)인 관계를 말해 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다.
Ⅱ.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
하나님은 영적인 부분과 육적인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創造)하셨기 때문에, 타락에 있어서도 영육(靈肉) 양면의 타락(墮落)이 성립된 것이다. 천사와 해와와의 혈연관계(血緣關係)에 의한 타락이 영적 타락이고, 해와와 아담과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육적 타락인 것이다. 그러면 천사(天使)와 인간과의 사이에 어떻게 성적(性的)인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 인간과 영물(靈物)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모든 감성은 어떠한 점에서나 실체적인 존재 사이에서 느끼는 그 감성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천사와의 성적 타락은 사실상 가능한 것이다.한편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하여서도 위에서 말한 내용을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사회에 있어서 지상인간들이 영인(靈人)들과 결혼생활을 하는 예가 왕왕 있다는 것, 그리고 천사(天使)가 야곱과 씨름을 하여서 그의 완도 뼈를 부러뜨렸다는 예(창세기 32장 25절)와 함께, 천사가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나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창세기 18장 8절)과, 또 롯의 집에 찾아온 두 천사가 롯이 대접한 무교병(無酉孝餠)을 먹었을 뿐 아니라, 그 성 백성들이 그 천사를 보고 색정(色情)을 일으키어 롯의 집을 둘러싸고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대하리라(창세기 19장 5절)고 외친 사실 등은 모두 이에 속한 예들인 것이다.
1. 영적 타락
하나님은 천사세계(天使世界)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26절), 누시엘(啓明星이란 뜻, 사도행전 14장 12절)을 천사장(天使長)의 위(位)에 세우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복(福)의 기관이 되었던 것같이 누시엘은 천사세계의 사랑의 기관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종으로 창조된 누시엘보다도 그들을 훨씬 더 사랑하시었다.사실상 누시엘은 인간이 창조(創造)되기 전이나 후나 조금도 다름없는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기보다도 아담과 해와를 더 사랑하시는 것을 볼 때에 그는 사랑에 대한 일종의 감소감(減少感)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침부터 노동을 한 일꾼이 자기대로의 상당한 노임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일꾼도 자기와 똑같은 노임(勞賃)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가 받는 노임에 대한 감소감을 느꼈다고 하는 성서(聖書)의 예화(마태복음 20장 1 - 15절)와 같은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랑의 감소감을 느끼게 된 누시엘은, 자기가 천사세계에서 가졌던 사랑의 위치와 동일한 것을 인간세계에 대하여서도 그대로 가져 보고자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곧 영적 타락(靈的 墮落)의 동기였다. 피조세계(被造世界)는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사랑은 피조물의 생명의 근본이요, 행복과 이상(理想)의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많이 받는 존재일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으로 창조된 천사(天使)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해와를 대할 때, 그가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해와가 누시엘의 유혹에 끌려오는 빛을 보였을 때, 그는 해와로부터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자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누시엘은 죽음을 무릅쓰고 더욱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랑에 대한 과분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난 누시엘과,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 해와가(창세기 3장 5 - 6절) 서로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인한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그들로 하여금 불륜(不倫)한 영적인 정조관계(貞操關係)를 맺게 하였던 것이다.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서로 그 대상으로부터 그의 요소를 받도록 창조된 원리에 의하여(창세기 3장 7절), 해와는 누시엘과 사랑으로써 일체를 이루었을 때 누시엘의 요소를 받았던 것이다. 즉 첫째로 그는 누시엘로부터 창조목적(創造目的)에 대한 배치(背馳)로 말미암아 양심은 가책에서 오는 공포심을 받았고, 둘째로는 자기가 본래 대해야 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부부로서의 상대자는 천사가 아니고 아담이었다는 사실을 감득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그에게서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에 있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완성기에 처해 있었던 천사 장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천사 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다.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完成期에 처해 있었던 천사장(天使長)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그는 천사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2. 육적 타락
아담과 해와는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천사장(天使長)과 불륜(不倫)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은 후, 다시 뒤미처 아담과 부부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도 역시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 이렇게 때 아닌 때에 사탄을 중심 삼고 아담과 해와 사이에 이루어진 부부관계는 그대로 육적 타락(肉的 墮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와는 천사 장과의 영적인 타락에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온 공포심과 자기의 원리적인 상대가 천사 장이 아니고 아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해와는 그제서나마 자기의 원리적 상대인 아담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 또 타락으로 인하여 오게 된 공포심을 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담을 유인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육적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불륜한 정조관계(貞操關係)에 의하여 천사 장과 일체를 이루었던 해와는 아담에 대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은 해와의 눈에 매우 아름답게 보여졌다. 그리하여 해와에게 있어 아담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와는 자기를 유혹하였던 천사 장과 똑같은 입장에서 아담을 유혹하였다. 아담이 누시엘과 같은 입장에 서 있었던 해와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일어났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아담으로 하여금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위치를 떠나게 하여, 마침내 그들은 육적인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아담은 해와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해와가 누시엘로부터 받았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이 요소는 다시 그 후손에게로 연면히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해와는 타락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아담이 타락된 해와를 상대하지 않고 완성되었더라면, 완성한 주체(主體)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대상(對象)인 해와 하나에 대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대단히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마저 타락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계승한 인류가 오늘날까지 번식하여 내려온 것이다.
제3절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 및 믿음을 위한 계명 89
Ⅰ.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으로 본 타락
인간은 원리로써 창조되어 원리궤도(原理軌道)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의 힘 그 자체가 인간을 원리궤도에서 탈선케 하여 타락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레일이나 기관에 고장이 없는 한, 기차가 스스로 궤도를 탈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기차도 그가 달리는 힘보다도 더욱 강한 외력(外力)이 그와 방향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탈선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자신을 성장케 하는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그 어떠한 힘이 그와 목적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타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힘이 곧 사랑의 힘이다. 그러므로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어서의 인간은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인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그러면 왜 원리(原理)의 힘보다도 사랑의 힘이 더 강하여서, 미완성기에 있어서의 인간이 목적을 달리한 그러한 사랑의 힘에 부딪칠 때, 그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도 있게 되었던가?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삼대상 사랑에 의하여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한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주체적인 사랑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인간 창조의 목적인 사위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사랑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된다.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하므로, 그 사랑이 사랑답기 위하여는,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도 더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약하다면,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원리를 더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진리(眞理)로써 세워 가지고, 사랑으로써 구원(救援)하고자 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Ⅱ.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신 목적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강하므로, 아직 미완성기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주관을 받을 수 없는 아담과 해와가, 만일 천사장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목적을 달리하는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장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천사를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였더라면,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작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천사장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그와 수수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그 불륜(不倫)한 사랑의 힘은 그들을 탈선케 하였던 것이다.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던 인간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던 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타락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밖에 또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게 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主管性)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그리고 이 계명을 천사장에게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주셨던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할 인간의 창조 원리적인 자격과 위신을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Ⅲ. 믿음을 위한 계명이 필요한 기간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은 언제까지라도 필요한 것이었던가 ? 사랑을 중심하고 볼 때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 완성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부부를 이루어, 그 자녀가 번성함으로써(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직접적인 주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되면 따먹는 것은 원리적인 것으로서 허용되도록 창조되어 있었던 것이다.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게 되면, 이 절대적인 부부의 사랑의 힘을 끊을 자나 그것을 끊을 힘은 없으므로 그들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다. 더구나 인간보다도 저급한 천사장(天使長)의 사랑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을 중심한 그들 부부간의 사랑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필요했던 것이다.
제4절 인간 타락의 결과
아담과 해와가 영육(靈肉) 아울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천사를 비롯한 피조세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 우리는 여기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Ⅰ. 사탄과 타락인간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을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 있다. 누시엘과 인간조상이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어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사위기대(四位基臺)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魔鬼)의 자식이라고 하셨고, 또 마태복음 12장 34절과 동 23장 33절에서는 그들을 뱀 또는 독사(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셨다(마태복음 3장 7절). 한편 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처음 익은 열매된 우리들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養子)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었더면, 그 때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완성기에 타락되어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사탄주권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31절에는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는 사탄을 세상의 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어 사탄은 피조세계의 주관주(主管主)로 창조된 인간을 주관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피조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9절에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만물이 완성된 인간의 주관을 받지 못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탄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인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Ⅱ. 인간세계에 대한 사탄의 활동
사탄은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듯이(욥기 1장 9절), 항상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지옥으로 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탄도 그의 대상을 취하여서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지 않고는 사탄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탄의 대상은 영계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이다. 그리고 이 악영인들의 대상은 지상에 있는 악인(惡人)들의 영인체(靈人體)이며,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의 활동대상은 바로 그들의 육신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2장 3절에는 사탄이 가룟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16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리켜 사탄이라고 하셨다. 한편 이러한 악영인체를 마귀의 사자(使者)라고 한 기록도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1절).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한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전 인류가 사탄과의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완전히 끊고, 하늘과의 상대기준을 복귀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사탄이 전혀 활동할 수 없게 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말세(末世)에 이르러서 사탄을 무저갱(無底坑)에 가둔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사탄의 상대자가 없어지므로 사탄이 활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인간이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끊고, 더욱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6장 3절의 말씀대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서는, 사탄이 사탄된 죄상과 그 정체를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를 복귀하시는 데 있어서도 강제로 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책임분담으로써 말씀을 찾아 세워 가지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만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섭리하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연장을 거듭해 내려오게 된 것이다.
Ⅲ. 목적성으로 본 선과 악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 중 '창조본연의 가치'에서 논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목적성으로 본 선악(善惡)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였더면, 그들은 선의세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서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그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죄(罪)라고 생각하는 욕망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창조본성(創造本姓)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목적(創造目的)은 기쁨에 있고, 기쁨은 욕망을 채울 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동시에 기쁨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살고자 하는 욕망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도,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복귀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간사회의 유지와 그 발전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의 욕망은 창조본성이기 때문에, 이 성품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선(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탄의 뜻을 목적 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악(惡)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 악한 세상도 예수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놓으면, 이 악한 세상도 예수 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놓으면, 선한 것으로 복귀되어 지상천국(地上天國)이 이루어진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II), 이러한 원리로 보아 자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는 사탄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이 타락세계(墮落世界)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룬 지상천국에로 그 방향성을 바꾸어 나아가는 섭리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이 섭리의 과정에 있어서 다루어지는 선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왜냐 하면 어떤 특정한 시대를 놓고 볼 때, 그 시대의 주권자의 이념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면 선이 되고, 그 목적에 반대하면 악이 되지만, 한번 그 시대와 주권자가 바뀌어 그 이념이 달라지게 되면, 동시에 그의 목적도 달라지고, 따라서 선과 악의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宗敎)나 사상(思想)에 있어서도,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 교리와 그 사상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는 것이 선이고 그에 반대하는 것이 악이 된다. 그러나 일단 그 교리나 사상이 달라지거나 혹은 다른 종교로 개종(改宗)하거나, 또는 다른 사상으로 전향하게 되면 그에 따라서 목적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악의 기준도 자연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사회에 항시 투쟁과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은, 이와 같이 인간이 지향하는 목적이 달라짐에 따라서 선악의 기준이 항시 달라지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선(善)은 이와 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상에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존(永存)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어 그로부터 오는 이념이 세워질 때는, 그 이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선의 기준도 절대적인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재림주(再臨主)님에 의하여 세워질 천주적(天宙的)인 이념인 것이다. 사실상 인류역사는 수많은 투쟁과 혁명을 거듭하면서, 본심(本心)이 지향하는 이 절대선(絶對善)을 찾아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투쟁과 혁명은, 이 절대적인 목적을 추구하여 절대적인 선의 세계를 이룩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Ⅳ.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
선신(善神)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편에 있는 선영인(善靈人)들과 천사(天使)들을 총칭하는 말이고, 악신(惡神)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과 사탄 편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선과 악이 그러하듯이 선신의 역사(役事)와 악신의 역사도 동일한 모양으로 출발하여 그 목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선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개체의 평화감과 정의감을 증진시키며 그 육신의 건강도 좋아지게 한다. 그러나 악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로 이기심을 증진케 하며 건강도 해롭게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역사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분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결과를 보아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인간(墮落人間)은 하나님도 사탄도 모두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신의 역사인 경우에도 악신의 역사를 겸행하는 때가 있다. 또 악신의 역사도 어느 기간을 지나면 선신의 역사를 겸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별하기가 곤란하다. 오늘날에 있어 많은 교역자(敎役者)들이 이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선신의 역사까지도 악신의 것으로 몰아, 하늘 '뜻'에 상반되는 처지에 서게 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잘 분간하여 분립할 수 없는 한 영통인(靈通人)들을 지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Ⅴ. 죄
죄(罪)라는 것은 사탄과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킴으로써, 천법(天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그런데 죄를 분류해 보면, 첫째로 원죄(原罪)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이 저지른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에 의한 혈통적인 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원죄는 모든 죄의 뿌리가 되고 있다. 둘째로는 유전적(遺傳的) 죄가 있다. 이것은 부모가 지은 죄가 몇대에 이른다고 한 십계명(十誡命)의 말씀과 같이, 혈통적인 인연으로 그 후손들이 물려받은 선조의 죄를 말한다. 셋째로는 연대적(連帶的) 죄가 있다. 자신이 범죄하지도 않았고 또 유전적인 죄도 아니지만, 연대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죄다.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죄로 말미암아, 유대인 전체가 그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벌을 받았고 전 인류도 공동적인 책임을 지고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까지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넷째로 자범죄(自犯罪)가 있으니 이것은 자신(自身)이 직접 범한 죄다. 여기에서 우리가 전기(前記)한 바와 같이 원죄를 죄의 뿌리라고 한다면, 유전적인 죄는 죄의 줄기, 연대적인 죄는 죄의 가지, 자범죄는 죄의 잎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죄는 그의 뿌리되는 원죄로 말미암아서 생긴다. 그러므로 원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다른 죄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 있는 이 죄의 뿌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인간의 뿌리로서 참부모로 오시는 예수님만이 이것을 알고 청산하실 수 있는 것이다.
Ⅵ. 타락성본성
천사장(天使長)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해와와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을 때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모든 성품을 해와가 계승하였고, 이렇게되어서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된 해와와 다시 혈연관계를 맺은 아담도 그 성품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성품이 타락인간의 모든 타락성을 유발하는 근본된 성품이 되었다. 이것을 말하여 타락성본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이 생기게 된 근본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에 대하여 질투심(嫉妬心)을 갖게 된 데 있었다. 그러면 선(善)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된 천사 장에게서, 어떻게 되어 사랑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원래 천사장에게도 그의 창조본성(創造本性)으로 욕망과 지능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천사장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오는 그것보다 크다는 것을 비교하여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 그에게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자동적으로 질투심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투심은 창조본성으로부터 유발되는 불가피한 부산물로서, 마치 빛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완성되면 이러한 부수적인 욕망으로 인하여서는 결코 타락(墮落)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욕망을 충당할 때에 느껴지는 일시적인 만족감보다도, 그 욕망을 충당함으로써 일어나는 자기 파멸에 대한 고통이 더 클 것을 실감하게 됨으로써, 그러한 범행은 감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한 세계는, 마치 사람 하나의 모양과 같이 서로 유기적(有機的)인 관계를 가지는 조직사회이기 때문에, 개체의 파멸은 곧 전체적인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의 파멸을 방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에 있어서의 창조본성으로부터 일어나는 부수적인 욕망은, 인간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요소는 될지언정 결코 타락의 요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을 대별하면 넷으로 가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사장(天使長)이 타락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그를 도리어 시기하여 해와의 사랑을 유린한 데 있다. 군왕이 사랑하는 신하를 그의 동료가 그 군왕(君王)과 같은 입장에서 같이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성품은, 바로 이런 타락성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다. 누시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천사세계(天使世界)에서 가졌던 것과 동일한 사랑의 위치를,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가지려 하였던 불의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나 타락하게 되었다. 불의(不義)한 감정으로 자기의 분수와 위치를 떠나 행동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본성의 발로인 것이다. 셋째는 주관성(主管性)을 전도(顚倒)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을 받아야 할 천사가 거꾸로 해와를 주관하였고,또 아담의 주관을 받앙야 할 해와가 거꾸로 아담을 주관하게 된 데서 타락의 결과가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서 주관성을 전도하는 데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는 문란(紊亂)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넷째는 범죄행위(犯罪行爲)를 번식하는 것이다. 만일 해와가 타락한 뒤에 자기의 범죄를 아담에게 번식시키지 않았더면 아담은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해와만의 복귀는 용이(容易)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해와는 이와 반대로 자기의 죄를 아담에게도 번식시켜 그를 타락케 하였다. 악인(惡人)들이 동료를 번식시키려는 성품은 이와 같은 타락성본성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제5절 자유와 타락
Ⅰ. 자유의 원리적 의의
자유(自由)에 대한 원리적인 성격을 논할 때, 첫째로 우리는 원리(原理)를 벗어난 자유는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유라고 하는 것은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따르는 자유행동(自由行動)을 일괄하여 표현한 말이다. 전자와 후자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과의 관계와 같아서, 이것이 합하여서만 완전한 자유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없는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자유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유의지도 완전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행동은 자유의지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자유의지는 곧 마음의 발로 인 것이다. 그런데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원리를 벗어나서 그 마음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원리를 벗어난 자유의지나 그로 인한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본연의 인간에 있어서는, 원리를 벗어난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책임(責任) 없는 자유는 없다. 원리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그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된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 따라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추구하여 나아가는 인간은 항상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을 행하려 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셋째로 실적(實績) 없는 자유는 없다. 인간이 자유로써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려는 목적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실적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항상 실적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므로, 실적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Ⅱ. 자유와 인간의 타락
위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자유(自由)는 원리를 벗어나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자유는 스스로의 창조 원리적인 책임을 지게 되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실적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자유행동은 선(善)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본심(本心)의 자유라고 한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말라는 권고를 받은 이상,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오직 본심의 자유에 의하여 그 명령을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해와가 원리를 이탈하려 하였을 때,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그의 본심의 자유는, 그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여 원리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 타락된 뒤에 있어서도, 이 본심의 자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도록 작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작용을 하는 본심의 자유로 인하여 타락될 수는 없다. 인간의 타락은 어디까지나 그의 본심의 자유가 지향하는 힘보다도 더 강한 비원리적(非原理的)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자유가 구속되었던 데 기인한다. 결국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도 이 자유를 추구하는 본성(本性)만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유를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는 것은, 인간이 사탄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이 자유를 복귀해 나아가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를 찾는 목적은,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행동으로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세워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Ⅲ. 자유와 타락과 복귀
천사(天使)는 인간을 시종(侍從) 하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천사를 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유에 속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천사에게 유혹을 당하던 때의 해와는, 아직도 지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다. 따라서 해와가 천사의 유혹에 의하여, 지적으로 미혹되고 심정적으로 혼돈 되어 유인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본심의 자유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불안을 느꼈으나, 보다 더 큰 천사와의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선(墮落線)을 넘고 말았다. 해와가 아무리 천사를 자유로이 대하였다 하더라도,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만을 믿고 천사의 유혹의 말에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천사와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발동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유가 해와로 하여금 천사를 상대하게 하여 타락 선까지 끌고 나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타락선을 넘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가 아니고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천사에 대해서도 자유로써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해와가 누시엘을 대하게 되어, 그와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함으로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타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타락인간도 자유로써 하나님의 상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진리(眞理)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유를 부르짖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이하여서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려는 본심의 자유의 지향성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떨어져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서 그의 심정도 모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이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취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락인간에 있어서는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에 의하여, 신령(내적인 知)과 진리(외적인 知)가 밝혀짐에 따라, 창조목적을 지향하는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도 복귀되어 왔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심정(心情)도 점차로 복귀되어 그 뜻대로 살려는 의지도 높아 가는 것이다.또 그들은 이와 같이 자유를 복귀코자 하는 의지가 고조됨에 따라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환경에 자유를 찾는 그 시대의 인간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필연적으로 사회혁명(社會革命)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18세기에 있어서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은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러한 혁명은 결국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자유가 완전히 복귀될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제6절 하나님이 인간조상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시지 않은 이유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므로 인간조상의 타락행위(墮落行爲)를 모르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한편 그들이 타락행위를 감행할 수 없도록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들의 타락행위를 아시면 서도 그것을 간섭하여 막지 않으셨던가? 이것은 아직까지의 인류역사를 통하여 풀려지지 않은 중대한 문제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치 않으신 이유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Ⅰ.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위하여
창조원리(創造원리(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음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만물세계를 주관하도록 창조하였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기 위하여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수행하면서 성장하여 완성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성장기간(成長期間)을 우리는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 혹은 원리결과주관권(原理結果主管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주관권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적으로 주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완성된 뒤에야 그들을 직접 주관하시게 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직접 주관하실 수 없는 성장기간에 있어서 그들의 행위를 간섭하시게 되면 인간의 책임분담을 무시하는 것이 되므로, 따라서 인간에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의 주관주로 세우시려는 창조원리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자에 서시게 된다. 이와 같이 원리가 무시되면, 동시에 원리의 절대성(絶對性)과 완전무결성(完全無缺性)은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자 이시며 완전무결하신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원리도 또한 절대적이며 완전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위하여, 미완성기(未完성기(成期))에 있는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2.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원리적인 존재와 그 행동만을 간섭하시기 때문에, 범죄행위(犯罪行爲)나 지옥(地獄)과 같은 자기가 창조하시지 않은 비원리적인 존재나 행동은 간섭하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일 어떠한 존재나 행동을 간섭하시게 되면, 간섭을 받은 그 존재나 행동은 벌써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된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는 거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볼 때, 만일 하나님이 인간시조의 타락행위(墮落行爲)를 간섭하시게 되면 그 타락행위에도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서, 그 범죄행위는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범죄행위도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하신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세우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어디가지나 사탄 때문이므로, 그렇게 되면 사탄이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창조한 것이 되어 그도 역시 창조주의 입장에 서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홀로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Ⅲ. 인간을 만물의 주관위에 세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萬物)을 주관하라고 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을 주관하려면, 만물과 동등한 처지에서는 그를 주관할 수 없으므로 인간은 그를 주관할 수 있는 어떠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주(創造主)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주관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같이, 인간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갖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하시기 위하여, 성장기간(成長期間)을 두시고 이 기간이 다하기까지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원리과정을 통하여 완성됨으로써만,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가지고 비로소 만물을 주관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게 되면, 이것은 아직도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만물을 주관할 자격이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주관케 하시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미완성한 인간과 동일한 취급을 하신다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또 이 인간에게 그의 창조성을 부여하심으로서 만물을 주관케 하시기 위하여 세우셨던 창조원리(創造原理)를 스스로 무시하시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에 의하여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하시고 그 원칙을 따라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을 주관위(主管位)에 세우시기 위하여 아직도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내에 있었던 미완성한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제3장 인류역사 종말론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人類歷史)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또 이것이 어디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왔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終末)에 관한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基督敎) 신도들은 다만 성서(聖書)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하늘과 땅이 모두 불에 타서 소멸(消滅)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베드로후서 3장 12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마태복음 24장 29절{{ 마태복음 24장 29절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 천사장(天使長)의 나팔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름 속으로 끌어 올리어 공중(空中)에서 예수님을 상봉(相逢)하리라고(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 17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 17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 성서의 문자 그대로 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성서의 중요한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말씀도 무엇을 비유(比喩)하여 말씀하신 것인지, 이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기독교 신도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하나님이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創造)하신 목적과, 타락(墮落)의 의의와, 그리고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은 근본문제(根本問題)를 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제1절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과 인간의 타락
1.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완성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그의 창조본연의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 인간 이외의 피조물(被造物)은 자연 그대로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도록 창조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원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의한 행동을 통하여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유의지와 그에 의한 행동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 드리는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스스로 노력하여서, 그 뜻대로 생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체휼하여 그 뜻을 알아 가지고, 그 뜻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개성완성(個性完成)이라고 한다.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타락 전의 아담, 해와나 선지자(先知者)들이 하나님과 일문일답(一問一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인간에게 이와 같이 창조되었던 소성(素性)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을 완성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는, 몸과 마음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몸은 마음이 거하는 하나의 전(殿)으로서,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므로, 결국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는 것과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개성(個性)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이룸으로써, 성령(聖靈)이 그 안에 살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인간은 신성(神性)을 갖게 되므로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타락할 수도 없게 된다. 개성을 완성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룬 선(善)의 완성체인데, 선의 완성체가 타락된다면 선 그 자체가 파멸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불합리(不合理)한 결과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전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완성된 입장에서 타락되었다면 하나님의 전능성마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영원(永遠)한 주체로 계시는 절대자(絶對者)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도 영원성과 절대성을 가져야 하므로,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하여 죄를 지을 수 없게 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축복하신 말씀대로(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선의 자녀를 번식하여 죄 없는 가정과 사회를 이루었다면, 이것이 바로 한 부모를 중심한 대가족(大家族)으로 이루어지는 천국(天國)이었을 것이다. 천국은 마치 개성을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과 같은 세계여서, 인간에 있어 그 두뇌의 종적(縱的)인 명령에 의하여 그의 사지백체(四肢百體)가 서로 횡적인 관계를 가지고 활동하듯이, 그 사회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종적인 명령에 의하여, 서로 횡적인 유대(紐帶)를 맺어 생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 있어서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보시고 같이 서러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사회전체가 그대로 체휼하게 되기 때문에,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죄 없는 인간들이 생활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이 원시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개한 생활들을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고 또 인간이 원하는 천국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신 말씀대로(창세기 1장 28절), 개성을 완성한 인간들은 과학을 발달시켜 자연계(自然界)를 정복함으로써, 극도로 안락한 사회환경을 이 지상에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창조이상(創造理想)이 실현된 곳이 바로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완성되어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영계(靈界)로 가게 되면, 바로 거기에 천상천국(天上天國)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어디까지나 먼저 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2. 인간의 타락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아직도 성장기간(成長期間)에 있어서, 미완성(未完成)한 입장에 있었을 때에 타락되었다. 인간에게는 왜 성장기간이 필요하였으며, 인간시조가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도 이미 창조원리에서 밝혔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이루지 못하고 사탄이 우거(寓居)하는 전(殿)이 되어 그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신성(神性)을 갖지 못하고 악성(惡性)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악성을 가진 인간이 악의 자녀를 번식하여 악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지상지옥(地上地獄)이다. 지옥인간들은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유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서 체휼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는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자행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지상지옥(地上地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을 벗은 후에는 천상지옥(天上地獄)으로 가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 주권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사탄 주권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사탄을 세상임금(요한복음 12장 31절{{ 요한복음 12장 31절 :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 또는 세상의 신(고린도후서 4장 4절{{ 고린도 후서 4장 4절 :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제2절 구원섭리
1. 구원섭리는 곧 복귀섭리다.
이 죄악(罪惡)의 세계는 인간이 서러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도 서러워하시는 세계인 것이다(창세기 6장6절{{ 창세기 6장 6절 :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설움의 세계를 그대로 방치하실 것인가 ? 기쁨을 누리시려고 창조하셨던 선(善)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로 영속할 수밖에 없이되었다면, 하나님은 창조에 실패한 무능한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필코 이 죄악의 세계를 구원(救援)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계를 어느 정도로 구원하셔야 할 것인가 ?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이 죄악의 세계에서 사탄의 악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사도행전 26장 18절{{ 사도행전 26장 18절 :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먼저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을 복귀(復歸)하는 데까지 구원하시고, 그 위에 선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시어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데까지(사도행전 3장 21절{{ 사도행전 3장 21절 :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 나아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병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뜻이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빠지기 전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죄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죄가 없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곧 복귀섭리(復歸攝理)인 것이다(사도행전 1장 6절{{ 사도행전 1장 6절 :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 마태복음 17장 11절{{ 마태복음 17장 11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 타락(墮落)은 물론 인간 자신의 과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이란 결과도 있을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결과에 대하여 창조주(創造主)로서의 책임을 지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잘못된 결과를 창조본연의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존(永存)하시는 주체이시므로, 그의 영원한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도 역시 영원성을 갖지 않으면 아니된다. 인간에게는 이와 같이 영원성을 두고 창조하셨던 창조 원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이라고 해서 이를 아주 없애버리어 창조원리(創造原理)를 무위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을 구원하시어 그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하시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이사야 46장 11절{{ 이사야서 46절 11절 :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 }}에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고하신 말씀대로, 사탄 때문에 잃어버렸던 이 축복들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심으로써, 약속의 뜻을 이루어 나오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8절{{ 마태복음 5장 48절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 전하라. }}에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도, 곧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본연의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신성(神性)을 갖게 됨으로써,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2. 복귀섭리의 목적
그러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시고, 그들을 중심하고 먼저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인간 시조(始祖)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역시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나(마태복음 6장 10절{{ 마태복음 6장 10절 :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 마태복음 4장 17절 :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등은 모두 복귀섭리의 목적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3.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바로 복귀섭리(復歸攝理)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善)의 세계를 복귀케 하시려는 섭리역사(攝理歷史)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문화권발전사(文化圈發展史))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은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들로써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갈 곳은 결국 선(善)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심이 아무리 선을 지향하여 노력한다고 하여도, 이미 악주권하(惡主權下)에 놓여진 이 세계에서는 그 선의 실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서 그 선의 주체를 찾으려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니, 이러한 필연적인 요구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종교(宗敎)인 것이다. 이와 같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끊임없이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설혹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였다 할지라도, 종교 그 자체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국가흥망사(國家興亡史)를 중심하고 더듬어 보기로 하자. 먼저 중국(中國)의 역사를 보면, 춘추전국(春秋戰國)의 각 시대를 거치어 진(秦) 통일 시대가 왔고, 전한(前漢), 신(新), 후한(後漢), 삼국(三國), 서진(西晉), 동진(東晉), 남북조(南北朝)의 각 시대를 거치어 수(隨) 당(唐) 통일시대가 왔으며, 오대(五代), 북송(北宋), 남송(南宋), 원(元), 명(明), 청(淸)의 시대를 거치어 오늘의 중화민국(中華民國)에 이르기까지 복잡다양한 국가의 흥망과 정권의 교체를 거듭하여 내려왔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儒). 불(佛). 선(仙)의 극동종교(極東宗敎)만은 엄연히 그대로 남아져 있다. 다음으로 인도(印度)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우리아, 안드라, 굽다, 바루다나, 사만, 가즈니, 무갈 제국을 거쳐서 오늘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변천은 거듭되어 내려왔으나 힌두교만은 쇠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중동지역(中東地域)의 역사를 보면 사라센제국, 동. 서 칼리프, 셀주크 터어키, 오스만 터어키 등 나라의 주권은 여러 차례 바뀌어 내려왔으나, 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만은 연면하게 그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나아가 유럽사의 주류에서 그 실증을 찾아보기로 하자. 유럽의 주도권은 그리스, 로마, 프랑크, 스페인과 폴투갈을 거쳐 일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지나 영국으로 옮겨갔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基督敎)만은 그대로 융흥(隆興)해 왔으며, 유물사관(唯物史觀) 위에 세워진 전제정체하(專制政體下)의 소련에서마저 기독교는 아직도 멸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남아져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모든 국가 흥망의 발자취를 깊이 더듬어 보면, 종교를 박해하는 나라는 망하였고, 종교를 보호하고 육성시킨 나라는 흥하였으며, 그 나라의 주권은 보다 더 종교를 숭앙(崇仰)하는 나라에로 넘겨져간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종교를 박해하고 있는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가 괴멸될 날이 기필코 오리라는 것은 종교사(宗敎史)가 실증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가 오고 갔다. 그 가운데서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文化圈)을 형성하여 왔는데, 문헌에 나타나 있는 문화권만 해도 21 내지 26개나 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또는 융화되어 왔다. 그리하여 근세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열거한대로 수다한 국가 흥망의 굽이침 속에서, 결국 극동문화권(極東文化圈), 인도교문화권(印度敎文化圈), 회회교문화권(回回敎文化圈),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 등의 4대 문화권이 남아지게 되었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군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선을 지향해 온 모든 종교의 목적을 함께 달성해야 할 초종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사가, 수많은 종교의 소장(消長) 또는 융합(融合)에 따라, 결국 하나의 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에로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아도, 우리는 인류역사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타락인간의 양면의 무지(無知)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함은 이미 총서(總序)에서 논술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이래 서로 관련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각각 제 갈 곳을 다 가서, 한 자리에서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이제까지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나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墮落)되지 않았다면, 인간의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에까지 향상하였었을 것이기 때문에,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그 때 극히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과학사회(科學社會)는 벌써 인간시조 당시에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써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다. 그런데 오늘의 과학사회는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으로는 이상사회(理想社會)에로 전환될 수 있는 그 전 단계에까지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투쟁역사(鬪爭歷史)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물을 빼앗고 땅을 빼앗으며 사람을 빼앗으려는 싸움은, 인류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벌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되어왔다. 그리고 이 싸움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중심한 싸움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와, 오늘에 이르러는 민주(民主)와 공산(共産) 두 세계가 마지막 싸움을 겨루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천륜은 드디어 재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빼앗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의 단계를 지나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이름을 띠고 이 땅에 찾아왔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패전국가(敗戰國家)가 식민지를 내놓더니,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전승국가(戰勝國家)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늘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이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일 것인가 ? 그것은 이념(理念)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올 때, 비로소 종교를 부인하고 과학편중의 발달을 꾀해 나온 공산주의 사상은 전복되고, 두 세계는 하나의 이념 아래 완전히 통일될 것이다. 이와 같이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성서(聖書)를 중심하고 좀더 이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 창세기 2장 9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를 중심한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전편 제2장 제1절 1). 그런데 에덴동산은 아담과 해와가 창조된 어떤 국한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 만일 에덴동산이, 인간 시조(始祖)가 창조되었던 그 어느 한정된 지역만을 말한다면, 이 땅에 충만하도록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창세기 1장 28절{{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에 의하여 번식될 그 숱한 인류가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다 살 수 있을 것인가 ?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창세기 3장 24절{{ 창세기 3장 24절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 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그래서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罪惡歷史)가 오메가로 끝날 때의 타락인간(墮落人間)의 소망은, 죄악으로 물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복귀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를 다시 찾아 나아가는 데 있다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요한계시록 22장 13 - 14절 :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이 성서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미 타락론(墮落論)에서 밝혀진 바이지만,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原罪)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중생(重生)) 않으면 아니된다(중생론 참조).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니, 역사의 종말기(終末期)에 들어 성도(聖徒)들이 소망하고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7절{{ 요한계시록 21장 1 - 7절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던 옛 하늘과 옛 땅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의 주관 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만물(萬物)도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요한 계시록 21장 5절{{ 요한계시록 21장 5절 :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귀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섭리역사(攝理歷史)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제3절 말세
1. 말세의 의의
하나님이 인간 조상(祖上)에게 허락하셨던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루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하고 비원리적(非原理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악으로 시작된 인류역사는 실상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이기 때문에, 사탄주권의 죄악세계(罪惡世界)는 메시아의 강림(降臨)을 전환점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삼대축복(三大祝福)을 이룬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주권의 죄악세계가 하나님 주권의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에로 교체되는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한다. 따라서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어지는 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지금까지 기독교 신도들이 믿어 온 대로의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는 공포의 때가 아니고, 창세이후 유구한 역사노정을 통하여 인류가 유일한 소망으로 바라고 나왔던 기쁨의 한 날이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으로 미루거니와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의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여러 차례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곤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세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노아 때도 말세였다 123
창세기 6장 13절{{ 창세기 6장 13절 :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 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의 기록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였기 때문에,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노아 때가 말세였던가 ?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시작된 사탄을 중심한 타락세계를, 1600년의 죄악사(罪惡史)를 일기로 하여 홍수심판(洪水審判)으로 멸하시고, 하나님만을 신봉(信奉)하는 노아가정을 세우심으로써, 그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주권의 이상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노아 때가 말세였던 것이다(후편 제1장 제2절 참조).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그들이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창세기 9장 22절{{ 창세기 9장 22절 :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
2) 예수님 때도 말세였다 p.124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기 때문에(전편 제6장),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선지자(先知者)들을 부르시어 믿음의 터를 닦으시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복귀하려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 때도 말세(末世)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스스로 심판주(審判主)로 오셨다고 말씀하셨고(요한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5장 22절 : 아버지께서 아무도 비판하지 아니하시고 비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그 때도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라기 4장 1절{{ 말라기 4장 1절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를 복귀하려고 오셨던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불신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도 이루어지지 않고 재림(再臨) 때에로 다시 연장되었다.
3) 예수님의 재림 때도 말세다
유대 민족의 불신을 당하게 된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신 후에야 영육(靈肉) 아울러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을 완수하여(전편 제4장 제1절 4)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때도 또한 말세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재림 때)에도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장 26절{{ 누가복음 17장 26절 :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고 말씀하셨고, 그가 재림하실 때도 말세가 되어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장 29절{{ 마태복음 24장 29절 :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
2.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이미 위에서 논한 바대로,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末世)에는 천지에 이변이 일어나며, 인간사회에도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이(變異)가 생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해 가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의 징조는 실제에 있어서 그 문자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에 관한 성서의 모든 기록은 각각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장 1절, 베드로후서 3장 13절, 이사야 66절 22절)
창세기 6장 13절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가 되어 땅을 멸한다고 하셨지만, 사실상 멸하지는 않으셨다. 전도서 1장 4절에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신 말씀이나, 시편 78편 69절에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땅은 영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그의 대상도 영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상으로 창조된 땅도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파멸되어 없어질 세계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인가 ? 한 국가를 멸한다는 것은 그의 주권(主權)을 멸한다는 것을 의미함이요, 또 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요한계시록 21장 1절{{ 요한계시록 21장 1절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새 주권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 주권하의 새로운 천지(天地)를 복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장 12절)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말라기 4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때도 그가 심판주(審判主)로 오셔서(요한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9장 39절) 불로써 심판하신다고 예언되어 있고, 또 누가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님이 불로써 심판하신 아무 흔적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말씀심판에 관한 성구(聖句)의 예를 찾아보자.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는,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 즉 말씀으로 그를 죽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4절에서는, 그 입의 막대기(혀)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말씀)으로 악인(惡人)을 죽이 리라고도 말씀하였으며,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1장 3절에 인간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 시조가 말씀의 실체로서 말씀의 목적을 완수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타락되어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에 의하여, 타락인간을 재창조하심으로써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 하셨으니, 이것이 곧 진리(성서)에 의한 복귀섭리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 완성 자로 재림하셔서, 스스로 말씀심판의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말씀의 목적을 이루었는가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이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는데 있으므로, 그 목적을 위한 심판도 말씀으로 그의 기준을 세워 행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씌어 있는 바,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생명의 말씀을 이미 선포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여 하신 말씀이다.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태복음 27장 52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마태복음 27장 5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썩어 버린 그들의 육신이 다시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전편 제5장 제2절 3). 만일 영계(靈界)에 머물러 있던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살아 나와 성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반드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을 것인가 ? 그리고 그렇듯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육신(肉身)을 쓰고 무덤에서 다시 일어났다면, 그 후의 그들의 행적(行跡)에 관한 기사가 반드시 성서에 남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들에 관한 아무런 기사도 달리 씌어 있지 않다. 그러면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 그것은 마치 모세와 엘리야의 영인체(靈人體)가 변화산상(變化山上)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마 17:3),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부활(再臨復活)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적으로 보고(전편 제5장 제2절 3) 기록한 말씀이다. 그러면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낙원(樂園)에서 보면,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이 머물러 있던 영형체급 영인(靈形體級靈人)의 세계는 보다 어둠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곳을 가리켜 무덤이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영인들은 모두 이 영계에 머물러 있다가 지상성도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4) 지상인간들이 끌어 올리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공중은 공간적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성서에 있어서 땅은 타락된 악주권(惡主權)의 세계를 의미하고, 하늘은 죄가 없는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은 땅에도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태복음 6장 9절)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땅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한복음 3장 13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主)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주권을 물리치시고, 지상천국을 복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마태복음 24장 29절)
창세기 37장 9절 이하를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째인 요셉 이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요셉이 커서 애급의 총리대신(總理大臣)이 되었을 때, 과연 이 꿈대로 그 부모와 형제들이 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해와 달은 부모를 상징했고, 별들은 자녀들을 상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독론(基督論)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예수와 성신(聖神)은 아담과 해와 대신 인류를 중생(重生)해 주실 참부모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고, 별들은 자녀된 성도들을 상징한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을 참 빛으로 비유한 것은(요한복음 1장 9절), 그가 ‘말씀’으로 육신을 이루신 분으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진리의 빛을 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는 햇빛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빛을 이름이며, 달빛은 진리의 신으로 오신 성신(요한복음 16장 13절)의 빛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新約)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될 것인가 ? 마치 예수님과 성신이 어셔서 구약(舊約)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신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셔서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한(요한계시록 21장 1절{{ 요한계시록 21장 1절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새 말씀을 주시게 되면(본장 제 5절 1 참조), 초림(初臨) 때에 주셨던 신약의 말씀은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여기에 말씀이 그 빛을 잃는다는 것은 새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사명기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末世)에 있어서의 성도들이 모두 실족(失足)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의 강림(降臨)은 열망해 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다가 전부 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 날에 실족하게 됨으로써, 그와 같이 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2 참조). 누가복음 18장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으냐하신 말씀이나, 마태복음 7장 23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가 잘 믿는 성도들을 보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떠나가라"고 배척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끝날 의 성도들이 불신으로 실족하게 될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 것이었다.
제4절 말세와 현세
예수님께서 장차 있을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 가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요한복음 21장 18 - 22절)고 대답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사도(使徒)들은 모두 '요한'의 생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마태복음 10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고하셨고, 마태복음 16장 28절에는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거니와,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성도들은 저마다 자기 당대(當代)에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말세라는 절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말세(末世)에 대한 근본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으로 세우고 이루어 나오시던 3대 축복(三大祝福)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임을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하셨다.
1. 제1축복 복귀의 현상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논술한 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약속하셨던 제1축복(제일축복(第一祝福))은 바로 그들이 개성(個性)을 완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인간(墮落人間)을 개성을 완성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 최종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여러 현상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첫째로 타락인간의 심령(心靈)이 복귀되어 가는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인간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완전히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서로 교통(交通)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도 불완전한 상태이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던 단계에서 타락되어, 그의 후손은 하나님을 모르는 데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타락된 인간이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게 됨에 따라 점차 그 심령이 복귀됨으로써, 말세에 이르러서는 사도행전 2장 17절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고하신 말씀대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靈通)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서는 영통하는 성도들이 우후(雨後)의 죽순(竹筍) 같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이기 때문에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타락인간이 본심(本心)의 자유를 복귀해 가고 있는 역사적인 귀추가 더욱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의 주관 권에 들어, 본심의 자유가 구속을 받게 됨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세에 이르러서는 육신의 생명을 버리고라도,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고 있으니, 이것은 말세(末世)가 되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타락인간이 사탄에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을 복귀하여, 하나님 앞으로 자유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타락인간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가치성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인간의 창조본연의 가치를 횡적으로 보면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다지 귀중한 것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을 중심하고 종적으로 보면, 각 개성은 가장 존귀한 천주적인 가치를 제각기 띠고 있는 것이다(전편 제7장 제1절).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 민주주의사상(民主主義思想)이 고조됨에 따라 인간이 노예 해방, 흑인 해방, 약소민족 해방 등을 주장하며, 인권옹호(人權擁護)와 남녀평등(男女平等)과 만민평등(萬民平等)을 부르짖음으로써, 창조본연의 개성의 가치를 최고도로 추구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은 바로 말세가 다 되어 타락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넷째로 타락인간의 본성(本性)의 사람이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세계는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의 세계로서, 그 세계의 인간은 모두 하나님과 종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 상호간에 있어서도 횡적으로 일체를 이루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종횡(縱橫)으로 얽히어 한 몸같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종적인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사랑도 따라서 끊어지게 되어, 인류역사는 투쟁으로써 엮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세(現世)에 이르러서는 박애주의사상(博愛主義思想)이 고조되면서 인간이 점점 그 본성애(本性愛)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하나님의 제1축복(제일축복(第一祝福))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개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말세(末世)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제2축복 복귀의 현상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은 아담과 해와가 참 부모로 완성되어, 선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선주권(善主權)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타락되어, 악주권(惡主權)에 구속된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편으로 종교를 세워 역사 하심으로써, 내적인 사탄 분립에 의한 심령복귀(心靈復歸)의 섭리를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투쟁과 전쟁으로 외적인 사탄 분립을 하심으로써, 내외 양면에 걸친 주권복귀(主權復歸)의 섭리를 해 내려 오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역사는 內外 양면의 사탄 분립에 의한 복귀섭리(復歸攝理)로써, 장차 참부모 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녀를 찾아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복귀해 온 것이므로,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의 발전 사와 국가흥망사에 의해 나타난 내 외 양면에 걸친 하나님의 주권 복귀의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末世)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우리는 문화권 발전사가 어떻게 흘러 내려와서, 현세를 말세에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문화권 발전사에 관한 문제는 이미 여려 차례 논술한 바이지만, 하나님은 타락인간에게 성현(聖賢)들을 보내시어,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을 따라 종교를 세우게 하심으로써, 그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을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역사상에는 많은 문화권이 일어났던 것이었으나,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이것들은 서로 융합 또는 흡수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기독교(基督敎)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추세는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님을 중심하고 모든 민족이 같은 형제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이 복귀되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전인류(全人類)의 참부모를 찾아 세워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중생(重生)하여 선의 자녀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대가족의 세계를 복귀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기독교가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할 중심종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는 세계가 기독교를 중심하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되어, 인류의 참 부모 되신 예수와 성신(전편 제7장 참조)을 중심하고 모든 인간이 선의 자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 복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우리는 현세가 바로 말세(末世)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가흥망사는 어떻게 주권복귀(主權復歸)의 목적을 향하여 흘러와서, 현세를 말세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투쟁이나 전쟁을 단순히 어떠한 이해관계나 이념의 상충에서 빚어지는 결과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섭리(根本攝理)를 모르는 데서 일어나는 잘못이다. 인류역사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惡主權)으로 출발하여 죄악의 역사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이 남아 있는 한, 그 역사의 목적도 어디까지나 사탄을 분립하여 하나님의 선주권(善主權)을 복귀하는 데 있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악주권의 세계에 전쟁도 분열도 없다면, 그 세계는 그대로 영속(永續)할 것이요, 따라서 선주권은 영원히 복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에게 성현(聖賢)들을 보내시어, 선을 세우고 종교를 일으키심으로써, 보다 선한 주권으로 하여금 보다 악한 주권을 멸하게 하시면서, 점차적으로 하늘편 주권을 복귀하시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는 투쟁과 전쟁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후편에서 더욱 상세히 논하겠거니와 인류역사는 탕감복귀(蕩減復歸)의 섭리노정을 밟아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국한된 시간권내에서만 보면, 악이 승세(勝勢) 한 때도 없지 않았으나, 결국 그것은 패망하여 보다 선한 판도 내에 흡수되곤 하였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인한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선주권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노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나안 7족을 멸하셨던 것이고, 사울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멜렉족과 그에 속한 짐승들을 전멸시키지 않았다가 엄벌을 받았던 것이다(사무엘상 15장 18 - 23절). 하나님은 이와 같이 직접 이민족(異民族)들을 멸할 것을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선민(選民)이었던 북조 이스라엘도 악으로 돌아갈 때, 아낌없이 그들을 앗시리아에 내주시어 멸망케 하셨던 것이다(열왕기하 17장 23절). 하나님이 이와 같이하셨던 것은, 오직 악주권(惡主權)을 멸하시고 선주권(善主權)을 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같은 하늘편 안에서의 개인적인 투쟁은 선주권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가 되므로 악이 되지만, 선주권이 악주권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은 선이 된다. 이와 같이 사탄 분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점차적으로 땅과 재물을 세계적으로 빼앗아 하늘편 주권으로 복귀하는 데 이르렀고, 인간에 있어서도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로 하늘편 기대를 넓혀, 오늘날에는 이것을 세계쩍으로 복귀하는 데 이르렀다. 이렇듯 사탄분립을 위한 섭리가 씨족주의시대(氏族主義時代)에서 출발하여, 봉건주의시대(封建主義時代)와 군주주의시대(君主主義時代)를 거치어 민주주의시대(民主主義時代)로 들어오게 된 오늘날에 와서는, 이 인간세계를 하늘편 주권을 세우는 민주주의세계와, 사탄편 주권을 세우는 공산주의세계의 두 세계로 분립하여 놓았다. 이와 같이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惡主權)으로써 출발한 인류 역사는, 한편으로 종교와 철학과 윤리에 의하여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창조본성(創造本性)이 환기됨에 따라, 점차 악주권에서 선주권(善主權)을 위한 세력이 분립되어, 마침내 세계적으로 대립되는 두 주권을 형성하는데 이른 것이다. 그런데 목적이 상반되는 이 두 주권이 결코 공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이르르면, 이것들은 반드시 한 점에서 교차(交叉)되어, 이념을 중심하고 내적으로 상충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군사력을 중심하고 외적으로 전쟁을 하여, 결국 사탄주권은 영원히 파멸되고, 하늘편 주권만이 영원한 하나님의 단일주권(單一主權)으로서 복귀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는 선주권을 지향하는 하늘편 세계와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의 세계가 대결하여, 서로 교차되고 있는 때이므로 또한 말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악주권에서 선주권을 분립하여 나온 인류역사는, 마치 흐르는 흙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흙은 가라앉고 물은 위에 뜨게 되어, 나중에는 흙과 물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과 같이,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악주권은 점차 쇠망(衰亡)의 길로 내려오고, 선주권은 융흥(隆興)의 길로 올라가게 되어,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이 두 주권은 얼마동안 교차되었다가, 결국 전자는 영원히 멸망하고 후자는 하나님의 주권으로서 영원히 남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善) 악(惡) 두 주권의 역사노정(歷史路程)이 교차되는 때가 말세(末世)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때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된 장성기 완성급(長成期 完成級)의 시기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때이므로, 마치 에덴동산의 인간시조가 어디에다 중심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혼돈되었던 것과 같이 모든 인간들도 사상의 혼돈을 일으키어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 있어 이와 같이 말세가 되어, 선 악의 두 주권이 교차되었던 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노아 때나 예수님 때도 말세여서 이 두 주권은 서로 교차되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하여 악주권을 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권분립(主權分立)의 섭리를 다시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 재림기(再臨期)에 있어 다시 한번 두 주권의 교차가 있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은 이렇듯 주기적으로 상사(相似)의 나선상(螺線狀)을 반복하면서 원형과정(圓形過程)을 거쳐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지향하여 내려왔기 때문에, 역사상에는 필연적으로 동시성의 시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후편 제3장 제1절 참조).
3. 제3축복 복귀의 현상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은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성(主管性)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은 내외(內外) 양면의 주관성이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 양면의 주관성을 상실하였던 것인데, 현세(現世)에 이르러 이것이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末世)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내적 주관성이라는 것은 심정적 주관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그대로 체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완성됨으로써,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에 대하여 사랑을 주고 그로부터 미(美)를 돌려 받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써 피조세계를 대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나 종교(宗敎), 철학(哲學), 윤리(倫理) 등에 의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타락인간의 심령(心靈)이 점차로 밝아지게 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의 자격을 복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 주관성은 과학(科學)에 의한 주관성을 의미한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어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대하여 내적 주관을 할 수 있었다면, 인간의 영감(靈感)은 고차적으로 발달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도 극히 단시일에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됨으로써 피조물(被造物)에 대한 외적인 주관을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일찍이 천체(天體)를 비롯한 자연계(自然界) 전체를 완전히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안락한 생활환경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짐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을 상실하게 되어, 동물과 같이 영감이 둔한 미개인으로 영락(零落)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