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007
통일사상요강 원문 007/012.
-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
- 시작 부분: 3)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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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성 인간은 하나님의 개별상의 하나하나를 닮도록 지어진 개성체個性體이 다. 따라서 창작에 있어서도 예술가의 개성이 작품을 통하여 표현되어 야 한다. 창작은 작가의 개성 -신래성神來性의 개별상- 의 예술적 표현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가는 개성을 발휘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 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한다. 실제로 위대한 예술작품에는 작가의 개 성이 충분히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작품에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이라든가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과 같이 작가의 이름이 붙게 된 다. (2) 대상의 요건 작가의 모티브(目的), 주제, 구상 등의 ‘성상적 조건’이 작품 속에 잘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 대상인 작품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성상적 조건을 나타내는데 가장 적합한 재료를 사용할 필 요가 있다. 그리고 그 재료를 사용하여 창작할 때 작품에서의 물리적 요건(구성요소)이 최고의 조화를 나타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 이 ‘형상적 조건’이다. 436 예술작품 속에서 물리적 요소(구성요소)가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말 은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많은 예술가나 미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했 다. 즉 물리적요소의 조화란 선의 율동, 형태의 집합의 조화, 공간의 조화, 명암의 조화, 색채의 조화, 음률의 조화, 회화에서의 양감量感의 조화, 선분분할線分分割의 조화, 무용에서의 동작의 조화 등을 말한다. 예 를 들면 선분분할의 조화에는 옛부터 알려져 있는 황금분할이 있다. 그것은 주어진 선에 있어서 선분의 단변短邊과 장변長邊의 비比가 장변과 전체의 비比에 동등하게 되도록 자르는 것이며, 대개 5대8의 비율로 나누는 것이다. 이 비율을 사용하면 형태적으로 안정감을 주어 미를 느끼게 된다. 회화에 있어서 지평선의 상하공간上下空間의 관계, 전경과 배경의 관계를 그와 같은 비율로 한다면 조화가 이루어지게 되며, 피 라밋이나 고딕사원의 첨탑에 있어서도 이러한 분할방식이 적용되고 있 다. 五. 창작의 기교, 소재, 양식 다음은 창작의 요건과 관련된 창작의 기교, 소재, 양식에 관해서 설 명하고자 한다. (1) 기교와 소재 ‘원상’에 있어서 창조의 2단구조란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내적성상 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함으로써 로고스가 형성되고, 다음에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로고스(본성상)가 형상(본형상)과 수수작용함으로써, 피 437 조물이 만들어진다는 2단계의 구조를 말한다. 인간의 창조활동도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예컨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든다 든가, 농민이 논밭을 경작하는 것, 혹은 학자가 연구하거나 발명하는 것 등은 모두 ‘창조의 2단구조’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예술창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적사위기대’의 형성에 있어서 주체의 요건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대로, 모티브(목적)를 중심하고 ‘내적성상’(지정의)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구상이 만들어지 는 것이 ‘내적사위기대’의 형성 과정이다. 또한 내적사위기대의 형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구상에 따라, 소재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외적사위기대’의 형성 과정이다. 즉 외적사위기대는 모티브(목적)를 중심으로 한 성상(구상)과 형상(소재)의 수수작용으로 형성된다. 외적 사위기대의 형성에 있어서는 특수한 기술 또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것 을 창작에서의 기교라고 한다. 다음은 작품을 만들 때 필수요소가 되는 소재素材에 대해서 살펴보자. 소재에는 성상적인 소재 즉 표현대상으로서의 소재와, 형상적인 소재 즉 표현수단으로서의 소재가 있다. 성상적인 소재를 제재題材(subject) 라고 한다.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가공의 것이든 혹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건 간에 작품 가운데 묘사되는 행위나 사건을 제재라 하는데, 회 화의 경우 인물이나 풍경 등을 말한다. 따라서 제재는 주제의 내용을 뜻한다. 형상적인 소재 즉 물리적인 소재를 매제媒材(medium)라고 한다. 조각 에 있어서는 연장이나 대리석, 목재, 브론즈 등의 소재가 필요하며 회 화에 있어서는 회구繪具나 캔버스 등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 는데 있어서 이와 같은 물리적소재의 질과 양을 결정한 후에 구체적으 438 로 창작을 시작하게 된다. 즉 창작은 먼저 구상을 한 다음 일정한 소 재를 사용하여 구상을 작품으로 마무리 짓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창 작의 2단구조라고 한다.14) 창작에서의 2단구조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그림 7-2와 같다. 그림 7-2. 창작의 2단구조 (2) 창작의 양식과 유파 창작의 양식이란 예술적 표현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요컨대 창작의 2단구조를 어떠한 방법으로 형성해 가는가라는 문제이 다. 그 중에서 특히 ‘내적사위기대’의 형성을 어떻게 하는가라는 것, 즉 구상의 양식이 기본적인 것이 된다. 내적사위기대는 모티브(목적)를 중심으로 하여 ‘내적성상’(지정의)과 ‘내적형상’(주제)이 수수작용을 하 여 형성된다. 따라서 모티브(목적)가 다르면 작품은 완전히 다르게 표 현된다. 모티브(목적)가 같더라도 내적성상이 다르면 작품은 다르게 표현된 다. 또 내적형상이 달라도 작품은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즉 내적사위 기대 중의 3위치에 세워지는 정착물이 달라짐에 따라서 결과(구상)는 다르게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이 세 가지 정착물 중에서 하나라도 다 르면, 형성되는 구상은 다르게 되고, 그 결과 작품도 다르게 표현되는 439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생기는 창작의 다양성 속에서 여러 가지 창작 의 양식(style)이 형성된다. 유파流派(school)도 그 한 예이다. 역사적으 로 나타났던 대표적인 유파를 살펴보자. 1) 이상주의(Idealism) 이것은 인간 또는 세계를 이상화하여 조화가 이룩된 이상적인 미를 표현코자 하는 입장이다. 16세기 르네상스시대 예술가의 대다수가 이 상주의적이었으며 라파엘로가 그 대표자라 할 수 있다. 2) 고전주의(Classicism) 그리스․로마 예술의 표현형식을 규범으로 하는 17~18세기의 예술경 향을 말하는 것으로서 형식의 통일성과 균형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문 학작품으로서는 괴테(J. W.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가 있으 며, 화가로서는 다비드(J. David, 1748~1825), 앵그르(J. Ingres, 1780~1867) 등을 들 수 있다. 3) 낭만주의(Romanticism) 형식을 강조한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생긴 것이 낭만주의이며, 인간의 내면적인 정열을 단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18~19세기의 예 술 경향을 말한다. 작가 유고(V. Hugo 1802~1885), 시인 바이런(G. Byron, 1788~1824), 화가 드라크르와(Delacroix, 1798~1863) 등을 440 들 수 있다. 4) 사실주의(Realism)․자연주의(Naturalism) 사실주의는 현실주의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으 로 나타난 것으로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였으며, 19세기 중반경에서 후반에 걸쳐 나타났다. 화가 고로(J. Corot, 1796~1875), 밀레(F. Millet, 1821~1875), 끄루베(G. Courbet, 1819~1877), 작가 인 플로베르(G. Flaubert, 1821~1880)가 그 대표자이다. 사실주의는 더욱 더 실증주의적, 과학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발전했는데, 그 후 자 연주의로 이행하였다. 자연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졸라(Zola, 1840~1920)를 들 수 있으며, 미술상에 있어서의 사실주의와 자연주 의는 크게 구별이 없었다. 5) 상징주의(Symbolism) 상징주의는 현실주의, 혹은 자연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19세기 후반 부터 20세기 초엽에 걸쳐 나타난 것으로, 종래의 전통이나 형식을 버 리고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문학의 일파이다. 시인 랭보 (A. Rimbaud, 1854~1891)가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6) 인상주의(Impressionism) 이것은 순간적으로 포착한 모습이야말로 사물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441 하여 개별적, 순간적인 형태나 색채를 포착하려고 하였다. 19세기 후 반에 불란서를 중심으로 전개된 운동으로서 마네(E. Manet, 1832~1883), 모네(C. Monet, 1840~1926), 르노아르(Renoir, 1841~1919), 드가(Degas, 1834~1917) 등이 그 대표적인 화가이다. 7) 표현주의(Expressionism) 인상주의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상을 묘사한데 대하여 반대로 인간 내부의 감정을 외부로 표현코자 한 것이 표현주의이다. 20세기 초엽에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출현했으며, 화가 칸딘스키(V. Kandinsky, 1866~1944), 마르크(F. Marc, 1880~1916), 작가 웨펠(F. Werfel, 1890~1945) 등이 대표자이다. 8) 입체주의(Cubism) 20세기 초엽의 미술운동으로서 그 특색은 기하학적 형체를 단위로 하는 구성에 있으며, 대상을 일단 단순한 형체로 분해한 후, 그것을 자기의 주관에 의하여 재구성코자 하였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피카소 (P. Picasso, 1881~1973)이다. 9) 통일주의(Unificationism) 그러면 ‘통일예술론’의 창작태도는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창조목적 을 중심으로 하여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통일된 것으로서 이것을 통 442 일주의라 한다(그림 7-3). 그림 7-3. 통일주의 창작양식 ‘통일주의’는 지상천국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현실을 중시한 다. 그러므로 이것은 현실주의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살면서 도 본연의 세계를 복귀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상주의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실과 이상의 통일이 원리적인 창작태도이다. 예컨대 현실의 죄악세계 속에서 창조이상세계를 동경하면서 고난을 극복해가 는 희망에 찬 인간상을 그리는 것이 통일주의이다. 통일주의는 하나님 의 심정을 중심으로 한 심정주의이다. 따라서 통일주의는 하나님을 중 심으로 한 이상적인 사랑을 표현하게 된다. 거기에는 낭만주의적인 요 소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종래의 낭만주의를 그대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의 사 랑을 그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 인류의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형제자매로서의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것이 다. 그런데 상기上記의 여러 양식이나 유파를 대별大別하면, 넓은 의미에 있어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로 나눌 수가 있다. 이 때의 현실주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뜻의 현실주의가 아니고 그 당시의 ‘현재에 유행하던 유파’라고 하는 뜻의 현실주의이며, 이상주의는 인간 이나 세계를 이상화해서 묘사한다는 뜻의 이상주의가 아니라 그 당시 의 ‘현재의 유파에 반대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새로이 대두하고자 하는 443 유파’라는 뜻의 이상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유파는 어느 것이거나, 처음에는 이상주의였다가 나 중에는 모두 현실주의의 입장이 되어 버리곤 했다. 통일주의는 이와 같은 의미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와의 통일을 뜻하는 창작양식 또는 창작태도이다. 그런데 이 통일주의적인 양식은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 목적을 중심한 하나님의 창조방식을 닮은 양식이기 때문에 작가의 개 별적인 차이가 나타나면서도 양식 자체는 영원불변이다. 이상으로 ‘창 작의 요건’의 항목을 전부 마치고 다음은 ‘감상의 요건’을 다루고자 한 다. 六. 감상의 요건 예술작품의 감상도 수수작용의 한 가지 형태로서, 여기에도 주체(감 상자)와 대상(작품)이 각각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요건이 있다. 먼 저 주체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살펴보자. (1) 주체의 요건 먼저 ‘성상적 요건’으로서 감상자는 첫째로, 작품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일이다. 이 적극적 관심을 터로 하고 미를 향수享受 (enjoyment)하려고 하는 기본자세를 가지고 작품을 관조觀照(intuition), 또는 정관靜觀(contemplation)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잡념을 버리고 맑은 심경으로 작품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심과 육심 이 조화를 이루는 것, 즉 생심과 육심이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와 444 대상의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게 된다. 생심과 육심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진선미의 가치의 추구를 1차적으로 하고, 물질 적인 가치의 추구를 2차적으로 함을 뜻한다. 다음으로 감상자는 일정한 교양, 취미, 사상, 개성 등을 구비하지 않 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작품을 만든 작가의 성상면 즉 모티브(목적), 주 제, 구상이나 작가의 사상, 시대적․사회적 환경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 다.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감상자가 자기의 성상을 작품의 성상에 맞춘다는 뜻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상자는 작품과의 상사성(닮기)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밀레의 작품을 깊이 감상하고자 한다면 그 당시의 사회적 환 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47년의 2월혁명 당시, 프랑스는 사회주의 운동의 분위기 속에 싸여 있었으나 밀레는 그러한 분위기를 싫어했다 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농민들의 순박한 모습 에 매우 마음이 끌려서 농민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표현코자 했 다.15) 그와 같은 밀레의 심경을 알게 되면 그의 그림에 대한 미가 한 층 더 깊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또한 감상자는 작품과의 상사성相似性을 보다 높이기 위하여, 감상하 면서 주관작용主觀作用(Subject Effect)에 의한 부가창조附加創造를 병행한 다. 주관작용이란 감상자가 자기의 주관적인 요소를 대상(작품)에 부가 하고, 작가가 만든 가치(요소)에 새로운 가치(요소)를 주관적으로 더 첨가하여, 그 합쳐진 가치를 대상가치로서 향수하는 것을 말한다. 주 관작용은 립스(T. Lipps, 1851~1914)의 감정이입感情移入(Einfuhlung, empathy)에 해당한다.16) 예컨대 연극이나 영화에 있어서, 배우는 연 기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우는 척한다. 그러나 그 때 관객은 배우가 정 445 말로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함께 우는 일이 가끔 있다. 관객이 자 기의 감정을 배우에게 투영하여 주관적으로 대상을 판단하기 때문이 다. 이것이 감정이입 즉 주관작용의 한 예이다. 주관작용에 의해서 감 상자는 작품과 보다 강하게 일체화하고 한층 더 깊은 기쁨을 얻게 된 다. 그리고 감상자는 관조에 의해서 발견된 여러 가지 물리적 요소들의 조화를 총합하고, 그 전체적인 통일적 조화와 작품 속에 있는 작가의 성상(구상)을 결부시킨다. 즉 작품에 있어서의 성상과 형상의 조화를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주체(감상자)의 ‘형상적 요건’ 즉 ‘신체적 요건’에 대해서 살펴보자. 감상자는 건전한 시청각의 감각기관, 신경, 대뇌 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성상과 형상의 통일체이므로 성상적인 미의 감상에 있어서도 건전한 신체적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2) 대상의 요건 다음은 ‘대상의 요건’에 관하여 살펴보자. 대상(작품)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란, 먼저 미의 요소 즉 물리적 제요소(구성요소)가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작품의 성상(모 티브, 목적, 주제, 구상)과 형상(물리적 제요소)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야 한다. 감상에 있어서 작품은 감상자 앞에 놓여진 완성품(완제품)이므로 이 와 같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조건을 감상자가 마음대로 변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감상자는 주관작용에 의하여 작품과의 446 사이에 상사성을 높일 수 있다. 또 감상에 보다 적합한 분위기를 만들 기 위하여 작품의 전시에 있어서 위치, 배경, 조명 등의 환경을 적절 히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3) 미의 판단 다음은 미의 판단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가치는 주체와 대상 의 상대적 관계(수수작용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라는 원리에 의해 이상 과 같은 감상의 조건을 구비한 주체(감상자)와 대상(작품)과의 수수작 용에 의해서 미가 판단(결정)된다. 즉 감상자의 미에 대한 추구욕이 작 품에서 오는 정적자극으로 채워짐으로써 미가 판단되고 결정되는 것이 다. 작품에서 오는 정적자극이란 작품 속의 미의 요소가 주체의 정적 기능을 자극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미 그 자체는 객관적으로 있 는 것이 아니고 작품 속에 있는 어떤 미의 요소가 감상자의 정적기능 을 자극하여, 감상자에 의해서 아름답다고 판단되어야 비로소 그 요소 가 현실적인 미가 된다. 다음에 미의 판단과 인식에 있어서의 판단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해 보자. 인식에 있어서의 판단은 주체(내적요소-원형)와 대상(외적요소- 감각적내용)의 조합照合에 의해 이루어진다. ‘미적 판단’도 마찬가지로 주체와 대상의 조합에 의해 성립된다. 이 조합의 단계에서 지적기능이 작용하면 인식이 되고, 정적기능이 작용하면 미적 판단이 된다. 즉 대 상이 가지는 물리적요소의 조화를 지적으로 포착하면 인식이 되고 정 적으로 포착하면 ‘미적 판단’이 되는 것이다(그림 7-4). 그런데 지와 447 정의 기능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므로 ‘미적 판단’에도 인식을 동반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컨대 ‘이 꽃은 아름답다’라는 ‘미적 판단’은 ‘이 것은 꽃이다’라는 인식을 동반하게 된다. 이 관계를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7-4와 같다. 그림 7-4. 미적 판단과 인식 七. 예술의 통일성 다음은 예술의 통일성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예술활동에는 몇 가지의 상대적인 두 측면(요소)이 있다. 예컨대 상기上記의 창작과 감상 을 위시해서 내용과 형식, 보편성과 개별성, 영원과 순간 등의 各各의 통일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측면(요소)은 본래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의 예술활동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상대적인 요소를 분리하거나 한편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통일예술론에서는 이들의 상대적 측면의 통일 성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1) 창작과 감상의 통일 보통 창작은 예술가가 하고, 감상은 일반 사람들이 한다는 식으로 448 분리해서 생각해 왔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보면 양자는 주관활동主管 活動 의 두 가지 계기에 불과하다.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실 천이라는 상대적인 두 측면이 필요한데, 정적기능情的機能을 중심으로 행 해지는 인식과 실천이 바로 예술에 있어서의 감상과 창작에 해당한다. 인식과 실천은 각각 주체(인간)와 대상(만물)의 수수작용의 두 가지 회 로의 한 방향一方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인식이 없는 실천은 있을 수 없 고, 실천이 없는 인식도 있을 수 없다. 창작과 감상에 있어서도 창작 이 없는 감상은 있을 수 없고 감상이 없는 창작 또한 있을 수 없다. 예술가는 창작을 하면서 자기의 작품을 감상한다. 또 감상자도 작품 을 감상하면서 창작을 하게 된다. 감상에 있어서의 창작이란, 앞에서 말한 주관작용에 의한 부가창조를 말한다. (2) 내용과 형식의 통일 오늘날까지 형식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와 이러한 형식을 무시하고 내 용을 중시하는 유파가 있었으나, 예술작품에 있어서 내용과 형식의 관 계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이므로 본래는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모티브, 목적, 주제, 구상 등의 성상적인 내용과 소재를 사용하여 내용 을 작품으로 표현할 때, 형식이 잘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한 미학자美學者는 ‘형식이란 실은 내용의 형식이며 내용이란 다름 아닌 형식의 내용이다’17) 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이것은 바로 내용과 형 식은 통일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449 (3)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 모든 피조물은 보편상과 개별상이 통일되어 있는 것처럼 예술에도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이 나타난다. 먼저 예술가 자신이 보편성과 개 별성의 통일이다. 예술가는 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그는 일정한 유파에 속하거나 일정한 지역적, 시대적으로 공통된 창작 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개별성이고 후자는 보편성이다. 이와 같이 예술가 자신이 보편성과 개별성을 통일적으로 지니고 있 기 때문에 그의 작품도 필연적으로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로서 나타 내게 된다. 즉 작품에는 개별적인 미와 보편적인 미가 통일적으로 나 타나는 것이다. 문화에 있어서도 보편성과 개별성이 통일되어 나타난다. 즉 어떤 지 역의 문화는 그 지역의 특성을 지니면서 그 문화가 속해 있는 보다 넓 은 지역의 문화와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석굴암의 불 상은 신라 문화의 대표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 중에는 그리스예술과 불교문화를 융합시킨 국제적인 간다라미술의 요소가 함께 포함되어 있 음도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즉 석굴암의 불상은 민족적인 요소 (신라예술)와 초민족적인 요소(간다라미술)의 통일, 즉 개별성과 보편 성의 통일이다. 여기에서 민족문화와 통일문화와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각 민족은 각각 전통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는데, 앞으로 통일문화가 형성되는데 있어서 전통적인 민족문화는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 다. 예술의 당파성과 상부구조론을 주장하던 마르크스주의 예술론은 전통적인 민족문화를 무시하였으나 통일주의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450 통일주의는 각 민족의 민족문화를 보존하면서 통일문화를 형성한다. 즉 개성이 다른 민족문화의 정수를 보존하면서 한층 더 차원 높은, 보 편적인 종교와 예술로써 통일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4) 영원과 순간의 통일 모든 피조물은 ‘자동적사위기대’(정적사위기대)와 ‘발전적사위기대’ (동적사위기대)의 통일체이므로 불변과 변화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 런데 여기의 불변은 영원을 뜻하며, 변화는 순간순간의 변화이기 때문 에 바로 순간을 뜻한다. 따라서 피조물이 불변과 변화의 통일을 이루 고 있다는 말은, 바로 피조물이 영원과 순간의 통일을 이루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에 있어서도 영원적인 요소와 순 간적인 요소가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밀레의 ‘만종’에는 교회와 기도하는 농부와 그의 아내, 시골 풍경 등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서도 영원적인 요소와 순간적인 요소 의 통일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나 기도하는 모습 등은 시대를 초월한 영원에 속하는 것이지만, 시골의 풍경이나 부부가 입고 있는 의복 등 은 그 시대 즉 순간에 속하는 것들이다. 또 하나의 예로서 수반水盤에 꽂혀 있는 꽃을 들 수 있다. 수반에 꽂 혀 있는 꽃 그 자체는 옛날부터 꽂혀온 것이지만, 꽃을 꽂는 방법이나 수반은 시대마다 특유하다. 따라서 꽃꽂이에도 영원과 순간의 통일이 나타나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도 이와 같이 ‘영원속의 순간’ 혹은 ‘순 간속의 영원’을 느끼면서 감상한다면 미는 한층 돋보일 것이다. 451 八. 예술과 윤리 최근에 이르러 예술의 저속화가 자주 지적된다. 이것은 예술과 윤리 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술은 만물주관萬物主管 의 한 형식이다. 본래 인간은 소생, 장성, 완성이라는 3단계의 성장과 정을 거쳐서 완성한 후에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다. 완성이란 사랑 의 완성, 인격의 완성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은 먼저 사랑의 인간, 즉 윤리인이 된 후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예술가는 동시 에 윤리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과 미의 관계에서 윤리와 예술의 관계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사랑은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정적인 힘이고, 미는 주체가 대상 으로부터 받는 정적인 자극이다. 따라서 사랑과 미는 표리일체의 관계 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취급하는 윤리와 미를 취급하는 예 술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참다운 美는 참다운 사랑을 기초로 하여 성립한다는 결론에 이르 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예술가들은 그와 같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예술 가들도 윤리성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철학적 근거가 예 술가들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 특히 문예작가文藝 作家 들은 사랑을 테마로 삼아 작품활동을 해왔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랑은 타락한 세계의 비원리적인 사랑이었다. 예술지상주의자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O. Wilde, 1854~1900)는 예술상의 탐미주의를 주창하면서 동성애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실의 452 와 궁핍 속에서 지내다가 일생을 마쳤다. 또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 (G. G. Byron, 1788~1824)도 방탕한 여성편력女性遍歷을 계속하면서 창작하고, 유랑생활을 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다름 아닌 그들의 타락 한 사랑을 표현하거나 혹은 그 고뇌를 그린 것이다. 한편 참사랑을 표현한 작가도 있었다. 톨스토이(L. N. Tolstoi, 1828~1910)가 그러하다. 그는 러시아의 타락한 상류사회의 생활상을 폭로하면서 참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즉 그의 작풍은 한편에서는 현 실을 묘사하는 리얼리즘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 주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톨스토이와 같이 참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남기거나, 참다운 사랑을 추구하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가는 그리 흔치 않은 것이다. 九. 미의 유형 다음은 미의 유형類型을 다루고자 한다. 종래의 미학이 미의 유형을 다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의미에서 이 같은 제목을 다루려는 것이다. (1) 통일사상에서 본 사랑과 미의 유형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미가 결정 된다. 그러므로 보는 사람(주체)에 따라 결정되는 미는 달라지고, 또 대상(예술작품, 자연물)의 종류에 따라서도 미는 달라진다. 그와 같이 453 미에는 무한한 다양성이 있으나 비슷한 미를 한 데 모음으로써 미의 유형이 정해질 수 있다. 종래의 학자들 중에는 이러한 미의 유형을 제 시한 학자도 있었던 것이다. 통일사상에서 보면,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랑은 미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미 또한 사랑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할수록 자식은 그만큼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사랑이 양적 으로 증대하면 미도 양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사랑과 미는 주체와 대 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상대적인 회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주체와 대상이 사랑을 주고받을 때, 주는 편은 사랑을 주고, 받는 편 은 그것을 미로써 받는다. 이와 같이 사랑과 미는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미의 유형을 생각하려면 먼저 사랑의 유형을 생각하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정을 통하여 분성적으로 나타난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그리고 형제자매의 사랑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형태의 분성적인 사랑이 바로 사랑의 기본형이다. 이 기본형의 사랑은 다시 1)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2)남편의 사랑, 아내의 사랑 3)아들의 사랑, 딸의 사랑으로 구분된다. 이 3대 분성적 사랑이 다시 양성兩性으로 분화되어 여러 가지의 편측 적片側的인 사랑(편측애)이 된다. 그리고 이 6종의 편측애는 각각 다시 세분되어서 더욱 다양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아버지는 엄격성嚴 格性 , 아량성雅量性, 광활성廣闊性, 장중성莊重性, 심오성深奧性, 외경성畏敬性 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은 엄한 사랑, 아량있는 사랑, 넓은 사랑, 장중한 사랑, 깊은 사랑, 외경의 사랑 등으로 나타나며, 어머니 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은 우아한 454 사랑, 고상한 사랑, 따뜻한 사랑, 섬세한 사랑, 부드러운 사랑, 다정한 사랑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남편의 사랑은 남성적인 것으로서 아내에 대해서 적극적인 사랑, 믿음직한 사랑, 비장한 사랑, 과단성 있는 사랑 등으로 나타난 다. 아내의 사랑은 여성적인 것으로서 남편에 대하여 소극적인 사랑, 내조적인 사랑, 유순한 사랑, 알뜰한 사랑 등으로 나타난다. 또 자녀의 사랑은 부모에 대하여 효성스러운 사랑, 복종하는 사랑, 의지하는 사랑, 어리광스러운 사랑, 익살스런 사랑으로서 나타난다. 그 외에 형의 남동생이나 여동생에 대한 사랑, 누나의 남동생이나 여동생 에 대한 사랑, 동생의 형이나 누나에 대한 사랑, 여동생의 오빠나 언 니에 대한 사랑도 있는 바, 이것들은 모두 자녀 상호간의 사랑으로서 역시 ‘자녀의 사랑’의 개념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사랑의 기 본형이 편측화되고 다시 다양화되어 무수한 색깔의 사랑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사랑의 유형에 대응하여 미의 유형이 나타난다. 먼저 사랑의 3형태에 대응하여 부모미父母美, 부부미夫婦美, 자녀미子女美라는 3형태의 미 의 기본형이 세워진다. 그것이 또 1)부성미父性美, 모성미母性美 2)남편미, 아내미 3)자식미子息美, 여식미女息美의 여섯 가지의 편측애片側愛로 구분된 다. 그리고 그것들은 또 다시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美로서 세분화되 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부성미父性美 …… 엄격미, 아량미, 광활미, 장중미, 심오미, 외경미 모성미母性美 …… 우아미優雅美, 고상미, 온정미, 섬세미, 유화미柔和美, 다정미 남편의 미 …… 남성미, 적극미, 신뢰미, 비장미, 과단미, 용감미, 신중미愼重美 455 아내의 미……여성미, 소극미, 내조미, 순종미, 비애미, 상냥미(명랑미), 알뜰미 자식미 …… 남아적男兒的인 특성을 지닌 효성미, 복종미, 의지미, 유약미幼若美, 익살미(골계미滑稽美), 어리광미 등의 남성미 여식미 …… 여아적女兒的인 특성을 지닌 효성미, 복종미, 의지미, 유약미幼若美, 익살미(골계미滑稽美), 어리광미 등의 여성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하여 언제나 따뜻한 사랑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 옳지 못한 일을 할 때는 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그 때, 자식은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나 후에는 감사한다. 봄과 같은 따뜻한 사랑뿐만 아니라 겨울과 같은 엄한 사랑도 사랑의 한 형태인 것이다. 그와 같은 엄한 사랑도 자식에게는 미로서 느껴지게 된다. 이것이 엄격미이다. 또한 자식이 어떤 잘못을 크게 저지른 다음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 을 것으로 생각하고 집에 돌아왔다고 하자. 그런데 아버지는 ‘괜찮다’ 고 용서해 줄 때가 있을 것이다. 자식은 그 때 아버지에게서 바다와 같은 넓은 미를 느끼게 된다. 그것이 아량미이다. 즉 아버지로부터 여 러 가지의 사랑을 받으면 거기에 따라 자식은 여러 가지 색조의 미를 느끼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 다르다. 어머니의 사랑은 대단히 온화하고 평화스럽다. 그와 같은 어머니로부터의 사랑 을 자식은 우아미, 유화미 등으로 느끼게 된다. 남편의 사랑은 아내에게 있어서 남성다움, 늠름성 등으로 느끼게 된 다. 그것이 곧 남성미이다. 그리고 아내의 사랑은 남편에게 있어서 여 성다움, 부드러움, 상냥함 등으로 느끼게 된다. 그것이 여성미이다.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자식의 본성이다. 자식은 공부를 잘 456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는 것 등을 통해서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한다. 그것이 자녀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을 부모는 미로써 귀엽게 느끼게 된다. 혹은 익살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익살미라고 한다. 게다가 자식이 성장함에 따라 연령에 상응한 미를 부모는 느끼게 된다. 이러한 미는 같은 자녀라 하더라도 남아男兒 에게서 느끼는 미와 여아女兒에게서 느끼는 미가 또한 다르다. 전자前者 는 자식미子息美요 후자後者는 여식미女息美이다. 자녀들끼리 즉 형제자매사 이에도 형제 및 자매의 사랑에 대응하여 특유한 미가 나타난다. 즉 형 제미 및 자매미가 나타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어렸을 때,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에 다양한 미 의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다양한 미의 감정이 복합 되거나 분리 또는 변형되면서 천태만상의 미를 느끼게 된다. 자연이나 예술작품을 대할 때에 느껴지는 미의 감정은 그 유래가 모두 이와 같 이 가정에서 형성된 미의 유형에 있었던 것이다. 가정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에서 형성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미가 자연으로 옮겨지고 작 품으로 옮겨진 것이 자연미, 작품미 등의 미의 유형이다. 예컨대 험준한 산이나 높은 벼랑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보게 될 때 장엄한 미를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부성미의 연장이요 변형이다. 조 용한 호수나 화창한 평야에서 느끼는 미는 모성미의 연장이요 변형이 다. 또 동물의 새끼나 식물의 싹이 돋아나올 때의 귀여움은 자녀미의 연장이요 변형이다. 예술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모마리아의 그림이나 상像은 모성미의 표현이며 고딕양식의 건축은 여성미의 연장 혹은 변형으로 볼 수 있다. 457 (2) 종래의 미의 유형 미학에 있어서 기본적인 미의 유형이 된 것은 우미優美(Grazie)와 숭 고미崇高美(Erhabenheit)이다. 우미란 아주 긍정적이고 직접적으로 쾌감 을 주는 미이고, 균형이 잡힌 조화의 미이다. 한편 숭고미란 높이 솟 은 산이나 소용돌이치는 성난 파도와 같이 경이驚異의 감동, 외경의 감 정 등을 주는 미이다. 칸트는 또한 미(우미)에는 자유미(Freie Schonheit)와 부용미附庸美 (anhangende Schonheit)가 있다고 하였다. 자유미란 일반적으로 누구 에게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미로서 어떤 특정한 개념에 의해서도 구속 되지 않는 미를 말한다. 부용미란 입는 데 어울린다거나, 사는 데 어 울리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 같은, 어떤 목적(혹은 개념)에 의존하는 미를 말한다. 그 밖에 일반적으로 예술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서 순수미 (Reinschone), 비장미悲壯美(Tragische), 익살미(Komische) 등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래의 미의 유형은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서,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분류되는지 애매하다. 거기에 대하여 ‘통일 예술론’에서의 미의 유형은 상술上述한 대로 명확한 원리에, 즉 사랑의 유형에 근거하고 있다. 十. 사회주의리얼리즘 비판 (1) 사회주의리얼리즘 458 공산주의의 혁명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중의 하나가 예 술활동이었으며, 그 창작 방법은 사회주의리얼리즘이었다. 그러면 사 회주의리얼리즘이란 어떠한 것일까. 레닌은, 예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 서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술은 인민의 것이다. 예술의 가장 깊은 근원은 광범위한 노동자계급에 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 예술은 그들의 감정, 사상의 요구를 기초 로 하며, 또 그들과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18) 문학은 당에 속해야 한다. …… 비당적 문학가를 매장하라! 초당문학가 들을 매장하라! 문학의 일은 전 프롤레타리아트의 일거리의 일부, 전 노 동자계급의 모든 의식적인 전위에 의해서 운전되는, 하나의 위대한 사회 민주주의적 기계의 ‘톱니바퀴와 나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19) 또 사회주의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 고르키(M. Gorky, 1868~1936) 는 사회주의리얼리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 작가는 자본주의의 더러운 범죄적인 모든 것, 그 비열하고 피비 린내 나는 의도의 모든 것을 명백히 간취看取할 수 있는, 그리고 프롤레 타리아의 영웅적인 활동의 위대성의 모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는 그 높은 관점에 -오로지 그 관점에 서는 것이, 생활에 있어서나 창작에 있 어서나 필요하다.20) 현대에 있어서 작가는 동시에 두 가지 역할 즉 〔사회주의에 대한〕 조 산부의 역할과 〔자본주의에 대한〕 무덤 파기꾼의 역할을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21) 459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주요한 목표는 사회주의적인 그리고 혁명적인 세계 관 즉 세계감각을 고취하는데 있다.22) 즉 시를 짓는 것, 소설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등등은 자본주 의의 범죄를 폭로하고 사회주의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읽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감에 불타면서, 혁명을 위하여 떨쳐 일어나도록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32년, 스탈린의 지도하에서의 사회주의리얼리즘은 소련 예술가들 에 의해 公式化되면서 문학, 연극, 영화, 회화, 조각, 음악, 건축 등의 모든 예술분야에 적용되게 되었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의 측면에서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정확히 묘사할 것. ②예술적 표현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의 혁신 및 노동 자들의 교육이라는 과제와 일치시킬 것. 그러면 이와 같은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성립시킨 이론적 근거는 무엇 인가. 그것은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구조’에 관한 이론이었다. 마르 크스는 ‘경제학비판’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산 제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기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것이 현실의 토대가 되어서 그 위에 법률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며, 또 일정한 사회적 의식 제형태 (예술을 포함)는 이 현실의 토대에 대응하고 있다.23) 460 또한 스탈린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 다. 상부구조가 생겨나면 그것은 최대의 능동적인 힘이 되어서 자기의 토대 가 강하게 되도록 능동적으로 협력하며……, 상부구조가 토대에 의해 형 성되는 것은 토대에 봉사하기 위해서이며, 토대가 형성되고 강하게 되는 것은 능동적으로 돕기 위해서이며, 수명이 다한 토대를 낡은 상부구조와 함께 근절시키려고 능동적으로 싸우기 위해서인 것이다.24) 상부구조는 어떤 경제적 토대가 살아서 일하는 한 시대의 산물이다. 따 라서 상부구조가 사는 기간은 길지 않으며, 한 경제적 토대의 근절과 함 께 근절되고 소멸한다.25) 이상을 총합하여 요약하면 ‘공산주의예술은 자본주의 제도와 그 상부 구조인 정치, 법률, 예술 등을 근절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공산주의사회(사회주의사회)에서 노동자들을 교 육하면서 그 경제체제의 유지․강화에 적극적으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은 이론을 근거로 하여 사회주의리얼 리즘이 세워진 것이다. (2) 사회주의리얼리즘에 대한 비판 ‘문학은 당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레닌의 말, ‘작가는 인 간정신의 기사技師’라는 스탈린의 말, ‘작가는 사회주의의 조산부助産婦요, 461 자본주의의 무덤파기꾼이다’라는 고르키의 말처럼 예술가나 작가에게 는 당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만이 요구되며, 예술가나 작가의 개성 이나 자유는 완전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혁명 이후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까지 소련의 예술가, 작가들은 감시와 억압 속에서 살 아 왔다. 그리고 특히 스탈린이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추진한 1930년대 의 후반에는 많은 예술가, 작가들이 이단의 이름으로 체포되고 숙청되 었던 것이다.26) 스탈린의 사후에도 사회주의리얼리즘은 상당한 기간동 안 예술이론으로서 군림해 왔지만, 그러는 동안에 많은 예술가, 작가 들이 반체제로 돌아서게 되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을 비판한 미술평론가 ‘리드’는 ‘사회주의리얼리즘 은 지적 또는 독단적인 목적을 예술에 쓸데없이 억지로 밀어 넣으려는 기획에 불과하다’27)라고 하였다. 스탈린상을 수상했다가 나중에 스탈린 비판자로 돌아섰던 소련의 작 가 이리아 에렌부르그(I. Ehrenburg, 1891~1967)는 ‘방적공장의 여직 공을 그린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이며 인간 의 감정이 아니라 생산과정에 불과하다’28)라고 하면서 사회주의리얼리 즘에서 그려지는 인간상을 혹평했던 것이다. 예술평론가 조요한趙要翰도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있어서의 인간상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소련의 작가… 필자)이 묘사한 농민과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일말의 불안도 엿볼 수 없는 희한한 주인공들이었다. 그것은 무갈등 (non-conflict)의 이론이 유포되면서 더욱 그러하였다. 즉 인간적인 깊 은 고민과 관련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자기의 독특한 생활이 없는 주인 공들이다. 그러니 거기에 인간의 내적세계가 표현될 리가 만무하다.29) 462 1986년 4월, 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그것과 관련하여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원전原 電 의 참사 원인이 소련의 관료주의에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고 ‘비극이 다. 참사도 문제였지만 우리 사회에 관료주의가 이처럼 뿌리깊게 박혀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더욱 슬픈 일이다’라고 개탄하였으며, 당과 정부 차원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한 관료주의의 청산 노력을 작가들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6월말(1986)의 제8차 소련 작가동맹전국 대회에 즈음하여 ‘官吏의 위선을 풍자한 고르키의 본을 받아서 여러 작가들은 관리에 대해서 더욱 비판적인 글을 써 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일부 작가들은 ‘그렇다면 문학작품의 사전 검열을 폐지해 달 라’고 요구하였다. 소련의 예술가, 작가들은 오랫동안 사회주의리얼리 즘이라는 이름아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공에서는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직전에 백가쟁명정책百家爭鳴政策의 일 환으로 한 때 문화인들에게 자유가 주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대부 분의 문화인들은 사회주의정책을 비판했던 것이다. 그 후 등소평이 집 권한 후 실용주의를 채택하여 문화인들에게 자유를 조금씩 허락해 주 었더니, 중공의 저명한 이론가 왕약수王若水는 사회주의에도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소외가 있음을 폭로하였다. 이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예술, 그리고 당의 방침에 순응 해야 하는 예술로서의 사회주의리얼리즘은 완전히 거짓된 예술임을 알 았을 것이다. (3) 작가에 의한 공산주의의 고발 463 공산주의의 지도자들은 예술가나 작가들에 대하여 사회주의리얼리즘 의 입장에서 공산주의를 찬미할 것을 강요했지만, 참다운 예술을 추구 하는 예술가나 작가들은 오히려 공산주의시대에도 공산주의의 허위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그 전까지 공산주의에 매혹魅惑되어 있던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 (Gide, 1869~1951)는, 1936년 고르키의 장례식에 초청되어 참석한 후, 약 일개월간 소련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그가 실제로 본 소련사회에 대한 실망을 ‘소비에트 기행기紀行記’에서 솔직히 표현하 였다. 그는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년 전 나는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나의 감탄과 사랑을 감히 선언했다. 그 나라에서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실험이 시도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부풀게 했고 또 거기에 대하여 우리들은 무한한 진보와 인류를 이끌어 갈 만한 비약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 우리들 의 마음과 정신 속에서 우리들은 미래의 문화 그 자체를 소비에트연방 의 빛나는 운명에 연결시키고 있었다.30) 그런데 그는 1개월간의 여행도중 소련의 민중들과 접촉해 본 감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소비에트에 있어서는 어떤 일이든지, 그리고 모든 것에 일정한(한 가지) 의견 이외의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전부터, 그리고 확고하게 인정되 고 있었다. …… 그러므로 한 사람의 러시아인과 말하고 있어도 마치 러 시아인 전체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31) 464 그리고 드디어 그는 소련사회를 다음과 같이 심하게 비난하였다. 오늘날 소비에트에서 요구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수락하는 정신이며, 순응주의이다.……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어떤 나라에서도, 예컨대 히 틀러시대의 독일에서마저 인간의 정신이 이렇게까지 불자유하고, 이렇게 까지 억압되어 있고, 공포에 떨며 종속되었을까.32) 소련의 작가 파스테르나크(B. L. Pasternak, 1890~1960)는 아무도 모르게 ‘닥터 지바고’를 써서 러시아혁명에 대한 환상을 토로吐露하고 사랑의 사상을 호소했었다. 그 책은 소련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외국에 서 출판되어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며 그것으로 그에게는 노벨문학상이 수여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는 국내의 작가동맹으로부 터 제명되었고, 반동적 반소작가反蘇作家로서 비난받게 되었다. 파스테르 나크는 그 책 속에서 그 자신의 양심을 상징하는 ‘지바고’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라구요? ……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적 분야이기에 는 너무도 자제自制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과학은 보다 더 균형적일 것 이라고 보아요. 마르크스주의가 객관적이라구요? 나는 마르크스주의보다 사실에서 더 유리遊離되어 있고 더 자기폐쇄적인 사상은 없다고 봅니 다.33) 그는 또 혁명가가 지식인들에게 취한 태도를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465 처음에는 모든 것이 훌륭했지요. ‘일을 성실하게만 해 주시면 대환영이 지요. 사상 특히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면 더욱 좋구요. 환영은 당연지사 지요. 잘 해 주어요. 일에 전념하고, 투쟁심을 갖고 탐구해 주어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일거리를 잡고 보면 사상이라는 것은 단순한 겉 치레일 뿐이며, 실제로는 혁명과 권력의 좌座에 있는 자를 구가謳歌하는 말씀의 액세서리(부속품)에 불과하였지요34) (4) 통일사상에서 본 공산주의예술론의 오류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오류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원인은 예술을 ‘작가의 개성을 살리면서 전체를 위한 창작 또는 자신을 위한 감상과, 미와 기쁨의 창조활동’으로 보지 않고, 당의 방침에 순응하면서 인민 을 교육하는 어용수단으로서의 예술로 본 데 있다. 예술가는 작품 속에서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인류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개성을 박탈하고 작품을 획일화시켜 버렸다. 따라서 거기에서 참다운 예술작품이 생길 리가 없는 것이다. 둘째 원인은 하나님을 부정함으로써 예술활동의 근본 기준을 상실해 버린 데 있다. 그 대신 당의 방침에 입각한 제멋대로의 기준을 세워서 예술가, 작가를 그 기준에 일치하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셋째 원인은 미와 사랑이 표리表裏의 관계이기 때문에 예술과 윤리도 표리의 관계여 야 함을 모르는 데에 있다. 공산주의사회는 사랑의 윤리를 부정하기 때문에 예술은 사랑이 없는 예술 또는 공산당의 인민지배의 도구로서 의 예술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466 넷째 원인은 예술이 결코 상부구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리 얼리즘은 예술을 상부구조로 본 데에 있다. 그 때문에 예술은 경제체 계(토대)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예술은 경제체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경제학비판’의 마지막 부분의 ‘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곤란한 것은 그리스의 예술이나 서사시가 사회적인 발전형태에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곤란한 것 은 그것들이 우리들에게 아직도 예술적인 즐거움을 주고, 어떤 점에서는 규범으로서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理想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는 점 을 이해하는 데 있다.35) 유물사관에 의하면, 그리스의 상부구조의 일부인 예술이나 문학이 지 금쯤(마르크스 당시)은 형태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야 하며,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것에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 의 예술이나 일리아드(Iliad), 오디세이(Odysseia)와 같은 서사시가 오 늘날의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생활의 규범으로까지 삼 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유물사관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마르 크스는 곤란을 느낀다고 실토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마르크스 자신이 ‘토대와 상부구조’의 이론의 오류를 자증自證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욕망(기본적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은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그리고 어느 시대 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따라서 작품 중에 진․선․미의 가 치가 나타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만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그 467 리스의 예술이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음은 그것에 크건 작건 간에 인간이 바라는 영원한 진․선․미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 기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의 동시대에 소련사회의 부패를 다같이 고발하였지만, 작풍作風에 있어서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작가, 고르키와 톨스토이에 대 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고르키는 폭력에 의하여 자본주의사회를 타도 하고자 공산주의에 동조하면서, 예술가의 사명은 혁명을 고무하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예술가였다. 그리하여 그는 혁명운동을 미화 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고르키의 작품인 ‘어머니’는 사회주의리얼리 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한 노동자의 무학無學의 어 머니가 혁명운동으로 투옥된 외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일념에서, 계 속해서 그 아들을 설득하려다가 도리어 그 아들에게 설득당하여 사회 의 모순성을 자각하고 드디어 혁명운동의 적극적인 참가자가 되는 모 습을 그린 것이다. 한편 톨스토이는 당시의 사회악을 고발하면서 그 해결의 길은 사랑 에 의한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에 있다고 설파하였다. 톨스토이의 대표 작의 하나가 ‘부활’이다. 배심원으로서 법정에 선 한 귀족청년이, 자기 가 젊었을 때 한 순간의 잘못으로 유혹한 하녀가 범죄하여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본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던 끝에 회개하여 그녀를 구할 결심을 한다. 드디어 그녀는 갱생되고 그 청년 도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다는 내용이다. 고르키가 택한 것은 외적인 사회혁명의 길이고, 톨스토이가 택한 것 은 내적인 정신적 혁명의 길이었다. 어느 것이 올바른 길이었을까. 고 르키가 택한 폭력혁명에의 길은 그 후 사회주의사회의 실태가 보여준 468 바와 같이 인간성의 억압과 관료주의의 부패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 었다. 한편 톨스토이가 택한 길은 비록 사회전체를 구한다는 점에서는 성공치 못한 점이 있지만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점에서는 올바른 방향 의 길이었다. 통일사상은 인간과 사회가 다 같이 본연의 모습으로 개혁되는 가장 올바른 길을 추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인간과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의 속성을 정확히 앎 으로써 본래의 인간의 모습, 본연의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 에, 그 방향을 향하여 인간과 사회를 개혁해 가면 된다. 이미 말한 바 와 같이 통일사상이 주장하는 새로운 예술은 하나님의 심정(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통일된 통일주의예술이다. 그것 은 본연의 인간과 본연의 사회라는 이상을 향하여 현실을 개혁해 나아 가는 예술인 것이다. 469 제8장 역 사 론 Theory of History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역사론은, 사실史實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 려는 것이 아니다. 인류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어 어떠한 법칙에 의해서 흘러 왔으며, 어떠한 方向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 등 역사 해석 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일종의 역사철학으로서 통일사 상에 근거한 역사 해석을 말한다. 그리하여 이 역사론을 ‘통일역사론’ 또는 ‘통일사관’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역사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미래상을 확립함으로써 역사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 하면, 오늘날의 복잡한 세계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명확한 비전을 가진 확고한 역사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날까지 많은 역사관이 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되었으나 공산주의 의 역사관, 즉 유물사관처럼 영향력이 있는 사관은 없었다. 유물사관 은 인류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사 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계급투쟁, 즉 혁명에 의해서 무너지고 공산주의사회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 나름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470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유물사관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신념의 원동력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와의 대결은 역사관과 역사 관의 대결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자유주의세계에는 유물 사관에 대처할 수 있는 기존의 역사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자유주의세계는 그동안 끊임없이 공산주의의 공세와 위협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유물사관도 결국은 쓰러지고 말았으니, 이것은 바로 ‘문 총재님’의 ‘통일역사론’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통일역 사론’은 새로운 신관神觀에 근거한 사상인 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공산주의와의 이론적 대결에 있어서 유물사관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폭 로해 왔다. ‘통일역사론’은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통일된 창조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흘러왔음을 역사적 사실로써 실증적으로 해 석하는 역사이론인 것이다. 一. 통일사관의 기본입장 통일사관의 기본입장은 통일원리중의 복귀원리를 근거로 한 입장이 다. 그런데 복귀원리에 근거해서 통일사관은 역사를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첫째는 죄악사罪惡史로서, 둘째는 재창조역사再創造歷史로서, 셋째 는 복귀역사復歸歷史로서 역사를 해석한다. 그리고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서, 역사에 법칙이 작용했는가 하는 문제와, 역사의 시원始元이나 방향 의 문제도 제기되곤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제문제도 본 항本項에서 함께 다루고자 한다. 471 (1) 죄악사 먼저 통일사관이 보는 죄악사에 관해서 살펴보자. 역사는 인간 조상 의 타락에 의해서 출발한 죄악사이다. 그 때문에 인류역사는 원리적이 고도 정상적인 역사로 출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역사는 대립과 갈등, 전쟁과 고통, 슬픔과 참상 등으로 얽혀진 혼란의 역사로서 이어져 왔 다. 이것이 역사가 죄악사란 말의 뜻이다. 따라서 역사상에 제기된 여 러 가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이러한 타락문제의 해결없이는 불가 능하다. (2) 재창조역사 다음은 인류역사가 재창조역사라고 하는데 대해서 살펴보자. 인류 시조의 타락으로 인류는 본연의 인간과 본연의 세계를 상실했다. 즉 본연의 인간은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떨어지게 되었고, 본연의 세계는 파괴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인간 을 재창조하고 세계를 재건설하는 섭리를 하시게 되었다. 이러한 섭리 의 역사가 재창조역사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적용되었던 법칙(창 조의 법칙)과 말씀이 그대로 역사의 섭리에도 적용되었던 것이다. 하 나님의 창조는 말씀(로고스)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재창조도 말씀에 의 해서 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재창조라 하여 우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타락은 인간만이 하였기 때문에 재창조는 인간만의 재창 조이다. 즉 인간만을 말씀으로 재창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 472 나님은 성인, 의인, 예언자 등 정신적 지도자를 세운 후 그들을 통하 여 사람들에게 진리(말씀)를 전해서 그들을 영적으로 인도해 오셨다. (3) 복귀역사 다음은 복귀역사復歸歷史에 관하여 살펴보자. 인간 시조의 타락으로 인 하여 인간은 본연의 세계(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본연의 인간상을 잃 었으며, 비본연非本然의 모습 또는 비원리적非原理的인 모습이 되어서 비원 리적非原理的인 세계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연의 세계와 본연의 인간상은 다시 회복해야 할 이상으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창조가 실패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 떻게 해서든지 비원리적인 세계와 인간을 본연의 상태로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시작과 동시에 죄 악의 인간과 죄악의 세계를 본연의 상태로 복귀하는 섭리(복귀섭리)를 하시게 된 것이다. 인류역사가 복귀섭리역사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리의 하나님이고,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일정한 조건을 지키지 않은데 있었으므로, 복귀섭리에는 일정한 법칙 이 작용되게 된다. 이것이 복귀의 법칙이다. (4) 역사의 법칙성 역사관을 세움에 있어서 역사 속에서 법칙을 발견한다는 것은 대단 히 필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역사의 법칙을 제시한 473 종교가나 학자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기독교의 섭리사관을 두고 볼 때, 설득력이 있는 법칙은 제시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기독교의 사관 은 오늘날 과학(사회과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학문분야에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근세에 이르러 헤겔은 역사의 설명에 변증법(관념변증법)을 적용하 여, 인류역사는 절대정신(이성)이 변증법적으로 자기 자신을 외부세계 에 전개해 나온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으로서, 최후에는 자유가 완전히 실현된 이성국가理性國家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헤겔이 이상국 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러시아는 자유가 실현되지 않은 채 역사 와 더불어 흘러가 버렸다. 헤겔이 말한 역사법칙은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었다. 또 20세기에 들어와 토인비가 방대한 문명사관을 수립하여 문명의 발생, 성장, 붕괴, 해체의 과정을 상세히 분석했지만 거기에서 도 명확한 역사의 법칙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유물사 관은 역사의 법칙을 명시했으며, 그것을 과학적인 역사관이라고까지 자칭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통일사관은 역사에 법칙이 작용해 왔음을 인정함은 물론, 그 법칙에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의 두 가지 법칙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법칙이야말로 실제로 역사에 작용한 참된 법칙이다. 이와 같 은 역사의 법칙이 제시됨으로써 유물사관의 허구성이 여실히 폭로되었 던 것이다. 유물사관이 주장하는 법칙이란 실은 사이비 법칙이며, 독 단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통일사관 은 신학적 입장이면서도 훌륭히 역사법칙을 정립하고 있으며, 그 때문 에 오늘날까지 비과학적이라고 간주해 왔던 신학적 역사관도 이를 사 회과학으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474 (5) 역사의 시원과 방향과 목표 역사가 언제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시원에 관해서, 통일사관은 인간의 창조와 타락을 그 시원으로 본다. 이것은 기독교의 섭리사관과 같은 입장이다. 또 인류의 시조에 관하여 일원론 (monogenism)이냐 다원론(polygenism)이냐 하는 문제가 있으나, 통 일사관은 인류의 시조가 아담․해와 뿐이라고 하는 일원론을 주장한다. ‘창조는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창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의 목표는 높은 차원에서의 창조이상세계로의 복귀이며, 역사의 방향은 이 복귀의 방향이다. 따라서 역사의 목표와 방향은 결 정적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 목표에 도달하는가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인간이 -특히 섭리적인 중심인물들이- 책 임분담을 다 하게 될 때, 그때그때의 섭리의 뜻은 성공적으로 달성되 게 된다. 따라서 역사가 흘러가는 과정이 직행이냐 우회냐, 단축이냐 연장이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즉 역사 의 과정은 비결정적이어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특 히 섭리적 인물들이 주어진 사명을 훌륭히 다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 려 있는 것이다. 이것을 책임분담수행責任分擔遂行 또는 그냥 책임분담이 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역사의 목표는 결정적이지만 그 과정이 비결정적이라고 보는 입장, 즉 역사의 진행과정이 인간의 책임분담 혹은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견해를 책임분담론責任分擔論(theory of responsibility, responsibilism)이라고 부른다. 475 二. 창조의 법칙 위에서 말한 역사의 법칙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인류역사는 재창조역사인 동시에 복귀섭리역사이다. 따라서 역사의 변천에는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이 작용되었던 것 이다. 여기서는 먼저 창조의 법칙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창조의 법칙에는 (1)상대성의 법칙 (2)수수작용의 법칙 (3)상극의 법칙 (4)중 심의 주관의 법칙 (5)3단계완성의 법칙 (6)6수기간의 법칙 (7)책임분 담의 법칙 등이 있다. (1) 상대성의 법칙 피조물 하나하나는 모두 내적으로 서로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체적 요소와 대상적 요소가 그것이다. 뿐만 아 니라, 그 개체는 외적으로도 다른 개체와의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상 대적 관계를 맺고서 존재하고 운동한다. 이러한 관계 하에서 생물들은 생존하고 번식하고 발전한다. 여기서 주체와 대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 는다는 말은 양자가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체와 대 상이 마주 대함에 있어서,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대할 때와 공동목적 없이 대할 때가 있다. 여기의 주체와 대상이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서 로 마주 대하는 것, 즉 상대적 관계를 맺는 것을 특히 ‘상대기준을 조 성한다’ 라고 말한다. 476 여하간에 이와 같이 한 개체가 반드시 타자他者와 더불어 주체와 대 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상대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따 라서 사회(역사)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상대물)가 상대관계를 맺는 일이다. 이러한 상대적관계가 형성되지 않고는 발전이 이루어지 지 않는다.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란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 주 요소와 종요소(주개체와 종개체)를 말한다. 그 예로서 정신과 육체, 마음과 몸, 이데올로기와 경제적조건(물질적 조건), 정신문화와 물질문명, 정부와 국민, 경영자와 노동자, 노동자와 생산용구, 기계의 주요부분과 종속부분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이와 같은 상대적 요소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 를 맺음으로써 상호간에 작용이 벌어져서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2) 수수작용의 법칙 사물의 내부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두 요소가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 이때에 일정한 요소 또는 힘을 주고받는 작용이 벌어진다. 주 체와 대상간의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이 수수작 용이 행해지는 곳에서 발전이 이루어진다. 역사의 발전도 이러한 수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즉 역사에 있어서 모든 사회분야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상대물)가 상대적 관계를 맺은 후 공동목 적을 중심하고 원만 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각 분야의 발전이 이루어 졌던 것이다. 477 예컨대 국가가 존재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이 국가의 번영을 공동목적으로 하여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고 원만한 수수작 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기업에 있어서도 기업의 번창을 위해서 는 자본가, 경영자, 노동자, 기술자, 기계 등이 서로 주체와 대상의 관 계를 이루어 원만한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상대성 의 법칙’과 ‘수수작용의 법칙’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으며, 이 두 법 칙을 합쳐서 광의廣義의 ‘수수작용의 법칙’이라고 한다. 수수작용은 조화적이지, 결코 대립적이거나 상충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물사관은 대립물의 투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쟁은 발전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투쟁이 행 해지는 동안 발전은 오히려 정지하거나 후퇴한다. 그러므로 발전에 관 한 한 유물사관의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으로서 계급투쟁을 합리화하 기 위한 위장이론에 불과했던 것이다. (3) 상극의 법칙 수수작용은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 또는 상대적 개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주체와 주체(혹은 대상과 대상)는 서로 배척한다. 이와 같 은 배척현상을 상극작용이라고 한다. 상극작용은 본래 자연계에 있어 서는 잠재적인 것일 뿐 표면화되지 않으며,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을 강화 또는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자연계에서 양전기와 양전기(혹은 음전기와 음전기)는 서로 배척한다. 이것은 주체(양전기)와 대상(음전기)의 수수작용을 강화․보강 하기 위한 작용이며, 그 자체로서 표면화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 478 연계에서는 이와 같은 상극작용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교란되지는 않는 다. 그런데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주체와 주체의 상극작용은 두 지도자 간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혁명시에 새로운 지도자와 과거의 지도자와 의 대립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은 상극작용에 있어서 두 주체(보수파의 주체와 개혁파의 주 체)는 각각의 대상층(인민대중)과 수수작용을 하여 각각의 세력을 형 성한다. 그 결과 두 세력이 대결하게 된다. 이 때, 두 주체(지도자)중 의 한편은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에 보다 가까운 입장에 서게 되고 다 른 한편은 보다 먼 입장에 서게 된다. 전자를 선편이라 하고 후자를 악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회에 있어서 주체와 주체의 상극작용은 선 악의 대결 또는 선악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이 투쟁에서 선편이 승리 하면 역사의 진행방향은 조금씩 선의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타락한 사회라 할지라도 상극작용은 그 본래의 수수작 용의 보완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국가와 국 가 또는 민족과 민족간에 평화적으로 경쟁하면서 문화적․경제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4) 중심의 主管의 법칙 다음은 중심의 주관의 법칙에 대하여 설명한다. 주체와 대상의 수수 작용에 있어서 주체는 중심이 되고, 대상은 주체의 주관을 받게 된다. 그 결과 대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원환운동을 하게 된다. 자연계에 있 어서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전자가 핵을 중심으로 도는 것과 같이, 물리적인 원환운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주 479 체와 대상의 관계는 주체의 마음과 대상의 마음과의 관계이므로, 대상 의 마음이 주체의 명령, 지시, 부탁 등에 쾌히 따른다는 의미에서의 원환운동이 벌어진다. 복귀역사에서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세운 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적합한 방향, 즉 선의 방향으로 역사를 인도해 가지만, 그 경 우 사회환경을 먼저 조성하여 놓은 다음, 중심인물로 하여금 그 환경 을 하나님의 섭리에 맞는 방향으로 수습하게 한다. 따라서 중심인물에 게는 항상 환경을 수습(주관)해야 하는 책임분담이 주어지게 된다. 이 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중심인물이 사회환경을 주관하는 것을 중심의 주관의 법칙이라 한다. 이것은 선민뿐만 아니라 모든 민 족이나 국가의 역사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중심사로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사를, 예수 이후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신약시대에는 서양사를 섭리해 나 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중심사를 섭리함에 있어서 중심인물을 세워 나오셨다. 구약시대의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열왕들, 예언자들 그리고 신약시대의 어거스틴, 여러 교황들, 루터, 칼빈 등의 기독교 지 도자들과 프랑크왕국의 촬스대제, 영국의 헨리 8세, 미합중국의 워싱 턴, 링컨 등의 정치적지도자들도 각 시대에 세워진 중심인물들이었다. 한편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해온 사탄도, 자기를 중심으로 한 지배권 을 확립하고자 사탄편의 중심인물을 세운 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면서 사회환경을 주관해 나왔다.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하 면서 세계를 제패하려고 한 카이젤(빌헬름2세)이나 히틀러, 공산주의 사상을 확립한 마르크스, 공산주의혁명을 지도한 레닌, 스탈린, 모택동 등이 그와 같은 인물들이다. 그들의 사상이나 지도력이 없는 전체주의 480 의 대두나 공산주의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토인비는 ‘문명의 성장은 창조적 개인 혹은 창조적 소수자에 의해서 성취되는 사업이다.’1) 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수자인 대중은 창조적 개인 또는 창조적 소수자의 지도를 받아서 그들을 따른다고 하였다. 토인비의 이러한 주장은 바로 역사에 중심의 주관의 법칙이 작용해 왔 음을 말해 준다. 유물사관은 유물론의 입장에서 지도자보다도 환경(사회환경)을 더 중시함으로써, 사회환경의 기층인 인민대중이 사회발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다 해왔으며, 지도자는 다만 일정한 사회적 조건의 제약을 받 으면서 활동을 해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신이 물질에서 발 생하기 때문에 정신이 물질의 제약을 받는 것처럼, 지도자의 정신은 물질적환경인 사회환경의 제약을 받는다는 유물론을 근거로 한 사고방 식이 다. 이와 같이 공산주의는 사회환경(인민대중)을 물질적 개념으 로, 중심인물(지도자)을 정신적인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지도자는 주체이며, 인민대중은 대상으로 서 지도자는 그 종교적 혹은 사상적인 이념을 가지고 대중이나 사회를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 (5) 3단계 완성의 법칙 창조원리에 의하면, 모든 사물의 성장이나 발전은 소생, 장성, 완성 의 3단계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식물은 씨에서 싹이 나는 단계, 줄기가 자라고 잎이 생겨나는 단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단계를 통하여 그 성장을 완성한다. 이 법칙이 역사에도 적용되어서 3 481 단계의 과정을 통하여 재창조의 섭리가 이루어져 왔다. 즉 어떤 하나 의 섭리적인 행사가 실패로 끝나면 비슷한 섭리가 3차까지 되풀이되 면서 3단계에서는 반드시 완성하곤 하였다. 예컨대 복귀섭리의 기대를 세우려던 섭리가, 가인․아벨의 헌제獻祭실 수로 인하여 아담가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노아가정을 거쳐 아브 라함가정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졌으며, 또 아브라함가정에 있어서도 아브라함의 대에 이루려던 복귀기대조성의 섭리가 아브라함의 제물실 수祭物失手로 이삭의 대를 거쳐서 3대째인 야곱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었다. 메시아(후아담)의 강림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의 타 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은 제2의 아담으 로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나 십자가형十字架刑으로 인하여 예수님마 저 창조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없게 되자, 제3의 아담으로서 재림주再 臨主 를 강림케 하신 것이다. 재림주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인 근세에 있어서 헤브라이즘 복고운동 復古運動 과 헬레니즘 복고운동도 각각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전개되었 다. 헤브라이즘 복고운동이란 신본주의운동神本主義運動, 즉 종교개혁을 말 하며, 루터, 칼빈을 중심으로 하는 제1차 종교개혁에 이어 웨슬레, 폭 스 등에 의한 제2차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하고 제3차 종교개혁(제3차 신본주의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 헬레니즘 복고운동이란 인본주의운동을 말한다. 제1차 인본주의 운동인 르네상스에 이어 제2차 인본주의운동으로서 계몽사상운동이 일어났고, 이어서 제3차 인본주의운동인 공산주의운동이 오늘에 이르 기까지 전개되어 왔다. 헤브라이즘 복고운동(신본주의운동)은 하나님편의 복고운동으로서 전 482 개되었으며, 헬레니즘 복고운동은 인본주의운동으로서 전개되었던 것 이다. 이 인본주의운동은 인간을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사 탄편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마침내 무신론(공산주의)으로 흐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신본주의운동이 3단계를 통하여 성공하면, 사탄 편의 사상운동인 인본주의운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편의 3단계완성의 법칙은 사탄편에 있어서 3단계 필멸의 법칙 이 되는 것이다. 즉 제3차 신본주의운동인 ‘통일교회 운동’의 성공과 제3차 인본주의운동인 공산주의운동의 멸망은 모두 필연지사必然之事이 다. (6) 6수기간의 법칙 성서에는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이어서 아담의 창조까지 6일이 걸 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아담의 창조는 6수기간을 앞에 두고 개시되 었는데, 이 기간은 아담을 만들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마찬가지로 재창조역사에 있어서도 제2아담인 메시아(예수) 강림의 6수기간전 즉 6세기 전부터 하나님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신 것이다. 기원전 6세기경에 유대민족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여 그들 의 불신앙을 회개토록 하신 것은 6세기 후에 강림할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였다. 기원전 6세기경 중국에서는 공자(551?~479 B.C.)가 나와서 유교를 세웠으며, 공자이후 6세기에 걸쳐서 제자백가로 알려진 여러 사상가들이 나타나 중국사상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인도에도 B.C. 6세기경 석가(565~485. B.C.)가 나타나 불교를 세웠으며, 또 비 슷한 시기를 전후하여 우파니샤드(오의서奧義書)라고 불리는 고대 인도 483 철학서가 출현하였다. 같은 시기에 중동지방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일 어났으며, 그리스에서는 철학, 예술, 과학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 다. 이것은 전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였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각 지역의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善한 방향으로 인도 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기원전 5백년 경을 전후하여 중국, 인 도, 이란, 팔레스타인, 그리스 등에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이 정신적 지도자들(종교의 개조開祖나 철인哲人)이 나타난 것에 주목하고 그 시대 를 ‘추축시대樞軸時代’라고 불렀다.2) 거의 같은 시대에 그와 같은 정신적 지도자들이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세계의 각지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 일까. 그는 그것을 역사적인 비밀이요, 풀 수 없는 수수께끼3)라고 하 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6수기간의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풀려지게 된다. 재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제3아담인 재림메시아를 맞이할 때에도 메시아재림의 6수기간 전부터 하나님은 재림맞이 준비를 시작하셨다. 그것이 14세기경부터 태동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이르러 본격화되었 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문예부흥) 운동이다.4) 18세기말에 일어난 산 업혁명, 그리고 그 후의 과학과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도 역시 이 재림 을 위한 준비였다. 복귀섭리역사에 의하여 하나님은 20세기에 재림메 시아를 지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이와 같은 준비를 해오신 것이다. 예수를 맞이하기 위하여 6세기 전에 나타난 종교가나 철학자들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진 천사장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 들이 말한 사랑과 진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이었다. 하 484 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만이 참사랑을 실천하며 참진리를 밝힐 수 있으 며, 그 사랑과 진리를 통하여 비로소 그때까지의 종교나 사상의 모든 미해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의 교리나 철학의 내용 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가르친 불완전한 사랑이요, 불완전한 진리 이기 때문에 메시아강림 때가 되면 어차피 미해결의 문제들이 드러나 게 된다. 그리하여 그때까지의 종교는 무력화하게 된다. 이 때 메시아 가 강림해서 종래의 무력화한 종교나 사상을 절대적인 참사랑과 참진 리로써 보완하여 소생시킨 후 종교통일, 사상통일을 이루면서 통일세 계를 실현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통일세계는 실현되지 못한 채 그 사명은 재림주에게로 인계되었으며, 따라서 유교, 불교, 동 양철학, 그리스철학 등도 통일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재림 때까지 남아 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림 때에 이루어야 했던 종교통일, 사상통일 의 과업을 재림 때에 비로소 완성하게 된다. 즉 재림주는 이때까지의 종교나 사상의 미해결의 문제를 하나님의 참사랑과 참진리로써 해결한 후, 종교통일․사상통일을 이루어서 통일세계를 실현하게 된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재림주를 맞기 위한 6세기 전부터의 준 비기간은 메시아 초림시의 6세기 전과 같이 굳이 새로운 종교나 철학 을 세울 필요가 없으며, 기존의 종교나 철학을 잔존시키면 되는 것이 다. 오늘날까지 불교 등이 남아져 왔던 것은 그 때문이다. 단, 중동에 있어서의 조로아스터교는 선악의 2신의 종교였기 때문에 7세기경에 유일신교唯一神敎인 이슬람교에 의해서 대치代置되었던 것이다. (7) 책임분담의 법칙 485 인간시조 아담․해와에게는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책임분담이 주 어져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우주의 주관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책임분담의 터 위에서 아담․해와가 자 신들에게 부여된 인간으로서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만물에 대한 주관주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재창조의 섭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특히 섭리적인 중심인물)의 책임분담이 완전히 합쳐짐으로써 이러한 재창조의 섭리가 완성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책임분담이란, 인간(섭리적 인물)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책임을 지고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섭리적 인물들이 자신의 지혜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 도록 책임분담을 다 하면 복귀섭리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지만, 만일 그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 하지 못하면 그를 중심으로 한 섭리는 실패 하게 된다. 그리하여 섭리는 연장되고 일정한 수리적 기간을 경과한 후에 하나님은 새로운 인물을 召命하여 동일한 섭리를 다시 반복하시 는 것이다. 인류역사가 죄악역사로서 오늘날까지 연장되어온 것은, 섭리적 인물 들이 계속해서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 자가에 달림으로써 통일세계를 실현하지 못한 것은 세례요한이나 제사 장, 율법학자 등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 였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공산주의가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이유 도 산업혁명 이후 기독교국가의 지도자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 486 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시점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국가의 지도자들은 대오각성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나님의 참말씀과 참사랑으로 공산주의국가 사람들까지 인 도하여, 하나님편에 서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 된 세계평화와 함께 지상천국의 실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三. 복귀의 법칙 인류역사는 재창조역사인 동시에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창조 이상세계를 회복하기 위한 복귀역사이다. 여기에 창조의 법칙과는 다 른 별개別個의 법칙들이 역사에 작용해 왔다. 이것이 일련의 복귀의 법 칙이다. 이 법칙에는 (1)탕감의 법칙 (2)분립의 법칙 (3)4수복귀의 법 칙 (4)조건적 섭리의 법칙 (5)거짓과 참의 선후의 법칙 (6)종의 횡적전 개의 법칙 (7)동시성섭리의 법칙 등이 있다. (1) 탕감의 법칙 타락이란 인간이 본래의 위치와 상태를 잃어버린 것을 말한다. 그리 고 복귀란 그 잃어버린 본래의 위치와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래의 위치와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세우 지 않으면 안 된다. 복귀를 위한 그 조건을 탕감조건이라고 한다. 인간이 세워야 할 이 탕감조건은 첫째로 믿음의 기대요, 둘째로 실 487 체기대實體基臺이다. 믿음의 기대를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 (중심인물)를 만나서 그를 중심하고 일정한 수리적 탕감기간을 거쳐서 일정한 조건물을 세우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실체기대를 세운다는 것 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에게 죄의 인간들이 순순히 따르는 것을 뜻한 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죄악사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박해했다. 따라서 의인이나 성현들이 걷는 길은 항상 고난의 노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 님은 이와 같은 의인들의 고난을 제물적인 탕감조건으로 삼아서 죄악 세계의 사람들을 굴복시켜 하나님편으로 복귀해 오시곤 하셨다. 즉 의 인들의 고난을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은 죄인들을 회개시키곤 하셨다. 이것이 탕감의 법칙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예수의 십자가였다. 예수 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많은 죄악세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공산주의자는 많은 종교인, 의인, 선량한 사람들을 박해 하고 살해해 왔다. 하나님은 마침내 그들의 수난을 조건으로 하여 공 산 독재정권을 굴복시킴으로써 공산세계의 인민들을 해방으로 인도해 오셨다. 따라서 ‘탕감의 법칙’으로 보아 공산주의의 멸망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2) 분립의 법칙 창조주는 하나님뿐이기 때문에 창조본연의 인간은 항상 하나님과 관 계를 맺어야 했다. 그러나 타락에 의해 아담은 사탄과도 관계를 맺게 488 되었다. 그리하여 아담은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을 상대하면, 사탄도 아담을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비원리적인 입 장에 놓인 아담을 통하여 원리적인 섭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담으 로 하여 금 두 아들을 낳게 하여 각각 하나님편과 사탄편으로 분립하 였는데, 하나님편에는 아우인 아벨을, 사탄편에는 형인 가인을 세웠던 것이다.5)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 굴복함으로써 가인과 아벨을 함께 하나님편으로 복귀하고자 하셨다. 하나님편에 있던 인간(아담)이 사탄 의 유혹에 굴복하여 타락했으므로, 탕감복귀를 위해서는 사탄편 입장 의 가인이 하나님편 입장의 아벨에게 순종굴복해야 하는 것이 원리였 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사탄편입장인 가 인은 제물을 직접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었으며, 아벨을 통하여 바쳐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제물을 하늘 앞에 직접 드렸을 뿐 아니라 끝내는 아벨을 살해하였다. 그 결과 역사는 죄악역사로서 출발 하게 된 것이다.6) 그러나 하나님편 입장으로 분립된 아벨이 끝까지 하 나님에 대하여 충성을 다 한 심정의 터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 을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사탄세계에서 선편의 인간 을 분립할 수 있게 되었다.7) 하나님은 선편의 개인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선편의 가정, 씨족, 민족, 국가, 세계를 분립하면서 점차 선편의 판도를 확대해 오셨 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항하던 사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앞서 악편의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악편의 가정, 씨족, 민족, 국가, 489 세계를 이루어 나오면서 악의 판도를 확대해 왔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해 왔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선편의 인간들(성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악편의 인간 들에게 전하곤 하였으나, 악편 인간들이 듣지 않고 도리어 물리적으로 박해 또는 공격을 가하곤 했다. 그래서 하나님편은 그에 응전하는 입 장에서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역사상에는 선편의 개인과 악편의 개인, 선편의 가정과 악편의 가정, 선편의 씨족과 악편의 씨족, 선편의 민족과 악편의 민족, 선편의 국가와 악편의 국가, 선편의 세계 와 악편의 세계 사이에 싸움이 전개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따라서 역사는 선악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 편이 선이고 다른 한 편이 악이라 하더라도, 복귀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완전한 선이나 완전한 악은 있을 수 없다. 상대 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보다 가까운 측이 선편으로, 보다 먼 측이 악 편으로 분립되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 세계는 선편과 악편의 2대 진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자유세계와 공산세계로서 종교(특히 기독교)를 인정 하는 국가군과 종교를 부정하는 국가군이었다. 하나님이 세계를 선편과 악편으로 분립하신 목적은, 악편이 선편에 굴복함으로써 악편도 구원하여 하나님편으로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따 라서 이 양 진영의 투쟁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마지막에는 선편이 승리하게 되어 있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제 최종적으로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통일이 메시아를 맞이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 다. 아담의 불신으로 가인과 아벨이 분립되었으므로 후아담인 메시아 에 의해서 가인편과 아벨편의 통일이 성취되는 것이다. 490 (3) 4수복귀의 법칙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가정적 사위기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데에 있다. 즉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장하 고 완성했더라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부부가 된 후 합성일체화合性 一體化 하여 子女를 번식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아담夫․해와妻․자 녀로 구성된 ‘가정적 사위기대’가 이루어져서,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 (종적인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 의 타락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적사위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 탄을 중심한 가정적사위기대가 형성됨으로써 전피조세계가 사탄주관권 내에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을 중심한 가정적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이 복귀역사의 중심적인 목적이었던 것이다.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4수의 기간을 가지고 상징적, 조건적인 섭리를 해오셨다. 이것을 4수복귀의 법칙이라고 한 다. 이 때의 4수기간은 가정적사위기대를 수리적으로 회복하는 탕감조 건이다. 4수기간이란 40일, 40년, 400년 등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 로서 이 기간은 사탄에 의해서 혼란이 벌어지는 기간이며, 그 기간동 안 하나님편의 인간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그 예가 노아의 40일 홍수, 모세의 광야노정 40년, 기독교도에 대한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 등이다. 이 탕감기간이 지나면 조건적으로 사위기대를 복귀했다는 의미에서 혼란은 수습되고 하나님의 복귀섭리 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곤 하였다. 4수복귀의 법칙은 이스라엘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타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에 적용되기도 했다. 491 토인비는 4백년간의 혼란기(동란시대)를 거친 후에 통일이 달성된 세계국가의 예를 들고 있다. 예컨대 그리스․로마 문명시대에 있어서 펠 로폰네소스전쟁으로부터 로마의 통일까지의 4백년(B. C. 431~31), 중 국의 역사에 있어서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진·한제국奏․漢帝國에 의한 통일 까지의 약 4백년(B. C. 634~221), 일본의 역사에서 가마꾸라·아시까 가시대鎌倉․足利時代의 봉건적 무정부상태에서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을 통일하고 도꾸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성립에 이르기까지의 약 4백 년(1185~1597) 등의 예가 그것이다. 그러나 토인비는 왜 이와 같은 4백년기간이 나타나는가를 밝히지 못하였다.8) 그 외에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기간 40년(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에서 1945년의 한국 해방까지)도 그 한 예이다. (4) 조건적 섭리의 법칙 조건적 섭리의 법칙이란, 섭리적인 어떤 사건에 있어서 중심인물이 하나님의 뜻에 적합하도록 그 책임분담을 다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섭리시대의 성격이 결정됨을 말한다. 섭리적인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복귀섭리의 과정에서 그때그때의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것 은 물론이지만, 그 후에 일어나는 섭리적인 사건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조건을 짓기도 한다. 예컨대 구약시대의 섭리에 있어서, 모세가 광야에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낸 사건이 있었다(민수기 20장). 모세의 행위 그 자체는 그 때의 현실적인 사정상, 즉 광야에서 목이 마른 백성에게 물을 먹여야 한다는 상황에서 필요한 행위였다. 그러나 동시에, 장차 예수님의 강 492 림시 하나님의 섭리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조건짓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에 관하여 ‘원리강론’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글을 적고 있다.9) 반석이란 아담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모세가 치기 전에 물을 내지 않는 반석은 첫째 아담을, 그리고 모세가 한 번 쳐서 물이 나오게 된 반석은 제2아담인 예수를 상징한다. 왜냐 하면 물은 생명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타락에 의해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제1아담은 물을 내지 않는 반 석에 비유되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오시는 제2아담인 예수님 은 물을 내는 반석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세는 불신하는 이 스라엘민족에 대한 노여움에서 한 번 더 쳐버렸다. 그 결과 장차 예수님 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하게 되면, 사탄은 반석의 실체되신 예수를 칠 수가 있다고 하는 조건이 成立(底線.…… 筆者)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의 불신 때문에 십자가에 달렸 는데, 이것은 모세의 반석 2타가 메시아강림 후의 섭리를 조건 지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사실의 한 예에 불과하지만, 그 밖에 섭리적으로 의의있는 역사적 사건에도 마찬가지로 이 법칙이 적 용되어 왔다. 즉 섭리적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그 이전의 여 러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어느 정도 조건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시대의 섭리적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따라서 그 후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의 성격이 조건 지워진다. 이러한 내용을 조건적 섭리의 법칙이라 한다. (5) 거짓과 참의 선후의 법칙 493 이것은 참된 것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된 것이 먼저 나타난다는 법칙 이다. 사탄은 인간 시조를 타락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 계를 占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탄이 하나님에 앞서서 하나님이 하 시는 섭리를 흉내내면서 원리형의 비원리세계를 만들어 나왔던 것이 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아담이 책임분담을 다 하지 않고 타락했 기 때문에 사탄의 이 비원리적인 세계의 조성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 었다. 그 대신 하나님은 사탄의 뒤를 좇아오면서 사탄이 만든 비원리 세계를 원리의 세계로 돌려놓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이다. 사탄에 의한 비원리세계는 비록 번영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된 것이기 때문에 번영은 일시적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진전함에 따라 반드시 붕 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구극究極의 목적은 지상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창조이 상이 실현된 세계, 즉 전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국가를 실현하는 것이 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신한 인류의 참부모)을 최고의 주권자로 모시는 하나님의 나라요, 지상천국으로서 그것은 메시아가 강림함으로 써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 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먼저 훔쳐다가 메시아 강림(또는 재강림) 이전에 사탄편의 메시아적인 인물을 세워서 사탄편 의 이상세계를 만들려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거짓 메시아에 의한 거짓 통일세계가 먼저 나타나곤 하였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나타난 로마제국이 그 좋은 예이다. 로마에 카이사르(율리우스 시저)가 나타나서 全갈리아를 정복하여 속국으로 만듦으로써 로마의 통일을 성취하였다(B. C. 45년). 그런데 그가 암살 494 되자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내란을 수습하고(B. C. 21 년), 전지중해를 통일하여 문자 그대로의 세계제국을 건설했다. 로마제 국의 번영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고 하여 약 2세기동안 계속 되었다. 카이사르나 옥타비아누스는 사탄편의 메시아적 인물이었다. 그들은 참된 메시아(예수)가 강림하여 영원한 사랑과 평화와 번영의 통일세계를 이루기에 앞서, 거짓된 평화와 번영의 통일세계를 만들었 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으므로 참된 통일세계, 참된 이상세계는 실제로 출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재림 때에도 이 법칙에 따라서 거짓 재림주와 거짓 통일세계가 재림 의 섭리에 앞서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스탈린과 공산주의 세계였 다. 사실상 스탈린은 당시 인류의 태양으로 자처하고 메시아와 같이 숭배되었으며 공산주의에 의한 세계통일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스 탈린은 1953년에 죽었으나 섭리적으로 보면, 그 때가 재림섭리의 공 식노정이 출발한 때였다. 국제공산주의의 그 후의 분열은, 거짓된 통 일세계의 붕괴와 메시아에 의한 참된 세계통일의 실현의 진척을 보이 는 증거였다. (6) 종의 횡적 전개의 법칙 이것은 종적縱的인 역사적 사건들을 복귀역사의 종말기에 횡적橫的으로 다시 전개시킨다는 법칙이다. 종縱이란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횡橫이란 공간적 넓이를 말한다. 즉 종은 역사이고 횡은 현실세계를 뜻한다. 따 라서 종의 횡적전개란 역사상의 모든 섭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종말 시대에 세계적으로 재현시켜서 섭리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495 하나님은 섭리역사에 있어서 섭리적인 인물들의 실패로 말미암아 제때 제때에 미해결로 끝난 여러 가지 섭리적 사건들을 끝날에 한꺼번에 뜻 맞게 마무리해서 복귀섭리역사를 완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간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사 탄의 침범으로 잃어버린 종적인 탕감조건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3대로써 탕감복귀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건적이었다. 즉 아담가정의 섭리와 노아가정의 섭리가 모두 미해결로, 즉 실패로 끝났지만 아브라 함 가정에서는 일단 조건적으로나마 섭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또 예 수 때에 하나님은 아담에서 예수까지의 4천년의 역사에 있어서, 사탄 의 침입으로 실패로 끝난 여러 섭리적 사건들을 횡적으로 전개하여 그 것들을 한꺼번에 탕감복귀하고자 하였으나, 십자가형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리고 재림의 섭리가 시작될 때에는 아담이후 재림주님 때까지 6 천년 기간동안 사탄에게 침범당했다가 조건적으로만 마무리되었던 모 든 사건들을 횡적으로 다시 전개하여, 그것들을 재림주를 중심하고 총 체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탕감복귀하여 죄악역사의 섭리를 완결짓는다. 이와 같이 역사상의 사건들이 미해결인 채 남아져 있는 한 지상의 참 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역사상의 이 모든 사건들을 끝날에 근본 적으로 해결함으로써만, 현실적인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게 되어서 여 기에 비로소 참된 평화의 세계가 실현되게 된다. 예컨대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제국의 대립은 그것이 비록 오늘의 문제이긴 하지만 근원을 따져보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민족과 주변민 족과의 싸움이 오늘날 재현된 성격의 싸움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오 늘날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대립을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로만 파악해서 496 는 그 해결이 불가능하다. 즉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그 근본적인 원 인을 발견하여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대립은 종식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종말시대가 오면 종적인 역사상의 여러 사건들이 재현再現 하게 되므로 여러 가지의 예상하지 않았던 사태가 빈발하게 되며, 그 때문에 세계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종의 횡적전개의 법칙에 의하여 끝날에 이와 같이 세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므로 성경에는 이런 상황을 ‘큰 환난’으로 표시하면서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태 24:21)는 예수님 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오로지 인류가 재림주를 맞이 하여 그분의 참말씀과 참사랑의 가르침을 따를 때에만 근본적으로 해 결되게 된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역사의 모든 사건을 종말시에 재현시켜서, 그것 들을 재림주님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섭리하시는 것은 첫째 로, 6천년의 죄악역사를 인간이 실수하지 않고 꾸려 나왔다고 하는 승 리의 조건을 세움으로써, 역사상의 수많은 비참한 사건의 기억을 하나 님과 인류의 마음에서 영원히 불식하기 위함이요, 둘째로 사탄의 참소 조건을 일소하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서 사탄까지도 영원히 구원하 기 위함인 것이다. (7) 동시성섭리의 법칙 과거의 역사에 있었던 일정한 섭리적 사건들이 시대마다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동시성섭리의 법칙이라 한다. 동시성의 관계에 있는 섭 497 리적 시대는 중심인물, 사건, 수리적 기간 등에 있어서 흡사한 양상을 나타낸다. 이것은 섭리역사에서 어떤 섭리적 중심인물이 그 책임분담 을 다 하지 못했을 때, 그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나 게 되고, 일정한 기간을 경과한 후에 유사한 다른 인물이 세워져서, 전시대의 섭리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같은 섭리역사攝理役事를 되풀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복귀섭리의 연장과 더불어 탕감조건이 점 차로 가중되어 나타나므로, 완전히 전시대와 똑 같이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원을 높인 형태로 반복한다. 그 결과, 역사는 나선형을 그리면서 발전하게 된다. 그러면 동시성섭리의 법칙은 어떻게 역사에 적용되었는가.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복귀기대섭리시대)의 가정을 중심으로 한 복귀섭리가 실패함으로써 메시아가 강림할 수 없었으므로, 거기에 대 한 동시성섭리로서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2천년동안 이스라엘민족 을 중심으로 한 복귀섭리(복귀섭리시대)가 동시성섭리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또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2천년간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한 복 귀섭리가 예수의 십자가형으로 또 실패했으므로, 예수님이후 오늘날까 지 2천년간의 기독교를 중심한 복귀섭리(복귀섭리연장시대)가 다시 이 에 대한 동시성섭리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이후 예 수까지의 2천년과 예수이후 오늘날까지의 2천년의, 두 시대에 있어서 의 동시성의 내용을 정리하면 그림 8-1과 같이 된다. 498 복귀섭리시대 복귀섭리연장시대 애급 고역시대(400년) 로마제국 박해시대(400년) 士師 사사 시대(400년)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400년) 통일왕국시대(120년) 기독 왕국시대(120년) 남북왕조 분립시대(400년) 동서왕조 분립시대(400년) 유대민족 포로시대(70년) 교황 포로시대(70년) 유대민족 귀환시대(140년) 교황 귀환시대(140년) 메시아강림 준비시대(400년) 메시아재강림 준비시대(400년) 신앙의 쇄신, 그리스문명 종교개혁, 문예부흥(르네상스) 그림 8-1. 복귀섭리 시대와 복귀섭리 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섭리적동 시성 역사 속에서 동시성을 발견한 사람은 슈펭글러였다. 그는 모든 문화 는 동일한 형식에 의하여 발전하게 되며, 따라서 두 문화 사이에는 대 응하는 유사한 사상事象이 나타나며, 대응하는 사상事象을 ‘동시성’이라고 하였다.10) 슈펭글러와 거의 같은 때에 역사의 동시성을 발견한 사람이 토인비 였다. 토인비는 투키디데스를 강의하면서, 고대 그리스 역사와 근대서 양사가 동시대적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14년이라는 해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 그리스사를 가르치고 있던 나를 붙들었다. 1914년 8월,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지금 499 내가 붙들린 것과 같은 경험을 그는 이미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내 마 음 가운데 떠오르게 되었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속해 있는 세 계가 정치적으로 분할됨으로써 모든 국가간에 발생한 골육상쟁의 대 전 쟁으로 지쳐 있었다. 투키디데스는 당시의 대 전쟁이 당시의 세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의 경과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나는 지금 고대 그리스사와 근대 서양사 가 경험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동시대적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 두 개의 코스는 평행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비교 연구할 수 있다.11) 이와 같이 토인비는 고대 그리스역사와 근대 서양사를 동시성으로 다 루었는데, 통일사관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는 메시아강림준비시대 이며, 근대 서양사는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여서 다 함께 메시아를 맞 기 위한 준비시대라는 점에 있어서 동시성의 본질적인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四. 역사의 변천 이상 열거한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은 모두가 역사의 변천에 작 용된 법칙들이지만,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수수작용의 법칙, 상 극의 법칙, 탕감의 법칙, 분립의 법칙이다. 그 중 수수작용의 법칙은 역사의 변천에서의 ‘발전의 법칙’이 되고, 다른 셋은 합쳐서 ‘전환의 법칙’이 된다(‘전환의 법칙’은 ‘선악의 투쟁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500 역사가 수수작용에 의하여 발전해 온 것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즉 정신과 물질, 인간과 환경(자연, 사회), 정부와 국민, 단체와 단체, 개인과 개인, 인간과 기계 등의 여러 가지 주체와 대상 간에 수수작용 이 원만히 행해짐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발전 이 이루어져 온 것이다. 발전이란 성장, 발육, 향상 등을 말한다. 또한 새로운 질의 출현을 뜻하며, 이것들은 모두 불가역적인 전진운동이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 의 상대적인 요소가 공동목적을 중심으로 조화로운 수수작용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에 반하여 투쟁은 서로 목적이 다르고 이해가 다른 주체와 주체 간에 생기는 것이다. 투쟁이 일어날 때 발전은 정지 되거나 또는 오히려 후퇴한다. 따라서 역사상에 나타난 어떠한 종류의 발전도 예외없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주체와 주체는 상극의 법칙에 따라 대립하고 투쟁하는데, 역사상에 있어서의 주체와 주체의 상극이란 지도자와 지도자의 대립을 말한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에 있어서 중산시민층(부르주아지)의 지도자와 루이 16세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귀족들, 즉 새로운 지도자와 낡은 지도자와 의 투쟁이 그 예이다. 양자兩者는 분립의 법칙에 따라 상대적으로 선편 의 입장(하나님의 섭리에 적합한 입장)과 악편의 입장(하나님의 섭리 를 방해하는 입장)으로 분리된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체가 대상인 대중을 서로 자신편에 끌어들임으로써(따라서 이때 대중은 둘로 나뉨) 선편의 진영과 악편의 진영을 형성하여 싸우게 된다. 지도자 중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의 입장인가 하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섭 리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대체로 낡은 사회의 지도자 들은 자기중심으로 기울어짐으로써 전제적 지배를 일삼게 된다. 따라 501 서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악편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이 때에 하나님은 섭리의 진행에 보탬이 되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편의 입장에 세워서 그를 통하여 섭리하시곤 했다. 선악의 투쟁에서 선편이 이기면 역사의 진행방향은 보다 선한 방향 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 후 역사가 일정한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되 면 이때까지의 지도자는 다시 악편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보 다 선한 지도자가 또 다시 나타난다. 여기에 다시 선악의 투쟁이 벌어 진다. 여기에서 선편이 이기면 역사의 방향은 더욱 선한 방향으로 전 환하게 되며, 드디어는 완전한 선의 단계, 즉 창조이상세계가 실현되 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 비로소 선악의 투쟁은 종말을 고한 다. 이와 같이 투쟁은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다만 역사 발전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구실을 다할 뿐이다. 선편의 주체와 악편의 주체와의 투쟁에 있어서 악편이 강력할 경우, 하나님은 탕감의 법칙을 통하여 악편을 굴복시키곤 하셨다. 즉 선편의 지도자로 하여금 악편 세력의 박해 또는 공격을 받으면서 고난과 역경 의 길을 걷게 함으로써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악편의 지도자를 자연굴 복시켰던 것이다. 만일 그래도 악편의 지도자가 굴복하지 않을 때는 선편의 지도자의 수난을 조건으로 전체대중을 감화시켜서 악의 지도자 를 고립시킨다. 이렇게 되면 악편의 지도자는 결국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선악투쟁의 법칙의 내용이다. 따라서 이 법칙을 ‘맞 고 빼앗는 법칙’ 또는 ‘맞고 빼앗는 전술’이라고도 부른다. 오늘날까지 종교가 박해를 받으면서 전 세계에 전파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맞고 빼 앗는 법칙에 의한 것이었다. 선악의 투쟁에 있어서 선편 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악 502 편이 승리할 경우, 역사는 물론 선한 방향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그대 로 연장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하나님은 보 다 선한 지도자를 다시 세워서 악편을 굴복시킨다. 그리하여 결국은 역사가 선편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하나님은 배후에서 부단히 섭리해 나오신 것이다.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에 의해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선악의 투쟁에 의해서 변천되어 왔다. 이와 같이 역사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발전해 왔으며, 선악의 투쟁에 의해서 방향이 전환되어 왔다. 즉 역사는 발전과 전환 이 반복되는 가운데에서 변천되어 왔던 것이다. 역사변천의 과정을 도 형으로 표시하면 그림 8-2와 같다. 그림 8-2. 수수작용 및 선악의 투쟁에 의한 역사의 변천 이상으로 역사는 두 가지의 방향을 향하여 변천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는 발전(진전)의 방향이며, 다른 하나는 복귀(전환)의 방향이다. 발전이란 과학이나 경제, 문화가 발달하는 것을 의미하고 복귀란 잃어 버린 창조이상세계 -사랑과 평화의 세계- 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역사에 두 방향이 생긴 것은, 인류역사가 재창조역사임과 동시에 복귀섭리역사이기 때문이다. 미래세계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 명의 세계임과 동시에 고도의 윤리사회로서 과학문명의 세계는 발전에 의해서 도달되고 윤리사회는 복귀에 의해서 도달하게 된다. 복귀는 선악의 투쟁에 의해서 이뤄지기는 하지만 반드시 물리적인 503 투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악편이 선편에 순순히 굴복하면 평화적 인 전환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선악의 투쟁을 종결짓 는 최후의 투쟁, 즉 메시아가 직접 사탄을 굴복시키는 투쟁은 이름이 투쟁일 뿐, 사실은 참사랑을 가지고 평화적으로 사탄을 자연굴복시키 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는 발전과 복귀라는 두 방향을 향하여 나선 형을 그리면서 변천해 왔다. 그런데 발전은 영원히 계속하는데 대하여 복귀는 창조이상세계(선의 세계)가 회복되면 그것으로 끝나고, 그 이후 에는 평화와 참사랑의 이상세계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역사의 법칙과 변천의 내용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친다. 五. 종래의 역사관 다음은 종래의 대표적인 역사관의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과의 비교에 참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순환사관(운명사관) 그리스人들은 춘하추동이 해마다 반복․순환되는 것처럼 역사도 순환 적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하였다. 역사적인 사건의 발생과 소멸은 운명 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 라, 역사에는 의미도 목표도 없다고 보는 입장이 순환사관 또는 운명 사관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역사가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면서 ‘역사’(Historiai)를 쓴 헤로도토스(Herodotos, B. C. 484~425)와 ‘펠 504 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Thukydides, B. C. 460~400)이 다. 운명론자인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전쟁의 줄거리를 이야기 식으로 서술했으며,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충실히 사실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양자에 다같이 공통적인 것은, 역사는 반복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12) 순환사관은 역사의 경과를 필연적(운명적)인 것으로만 이해하였으며,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역사의 동향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 지 않았으며, 또 역사에는 목표가 없으므로 미래상도 제시될 수가 없 었다. (2) 섭리사관 역사는 처음도 끝도 목표도 없으며, 순환운동을 반복할 뿐이라고 보 는 그리스의 역사관에 대하여, 기독교는 역사에는 처음이 있으며 일정 한 목표를 향하여 직선적으로 진행한다는 등 순환사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관을 제시했다. 즉 역사는 인간의 창조와 타락으로부터 시작 하여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이며,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신의 섭리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섭리사관 또는 기독교사관이라 고 한다. 기독교사관을 체계화한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쓴 ‘신국론(The City of God)’ 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신국(Civitas Dei)과 악마에 유혹된 사람들이 사는 지상국(Civitas terrena)과의 투쟁의 역사로 보 았으며, 끝 날에 가서는 신국이 승리하여 영원한 평안을 얻는다고 하 505 였다. 이와 같은 역사의 진행은 하나님이 미리 정한 계획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는 타락에서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역사를 다음의 여섯 단계로 구분했다. (1)아담에서 노아홍수까지 (2)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3)아 브라함에서 다윗까지 (4)다윗에서 바빌론포로까지 (5)바빌론포로에서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6)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섯번째의 최후의 기간이 얼마나 계속되는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기독교사관에 의하여 역사는 목표를 지향하는 의미있는 역사로 비춰지고 있으나,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는 도구적 존재 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역사관의 내용은 신비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 고, 논리성이나 법칙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오늘날에 이르러 사회과학 으로서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3) 정신사관(진보사관)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오면서 신학적인 역사관은 점차 모습을 감추게 되었으며, 18세기의 계몽주의시대에 이르러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신 의 섭리가 아니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역사관이 출현하였다. 이것은 역사가 인간의 정신의 진보에 따라 거의 일직선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진보해 간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관을 정신사관 또 는 진보사관이라고 한다. 506 비코(G. Vico, 1668~1744)는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섭리를 인 정했으나 세속의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역사는 하나님 의 의지를 가지고서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역사의 파악에 있 어서 하나님은 역사의 배후에 숨게 되고 인간이 전면에 나오게 되었 다.13)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역사에 작용한 신의 힘을 배제했 다. 즉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신이 아니고 높은 교육을 받은 자 들로서 과학을 받아들인 사람들 즉, 계몽사상가들이라고 하였다. 콩도르세(Condorcet, 1743~1794)는, 인간의 이성이 각성하면 역사 는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진보한다고 주장했다. 칸트(I. Kant, 1724~1804)는, 역사의 목적은 인간의 모든 고귀한 재능의, 제민족諸民族의 결합체結合體에서의 실현이라고 하면서, ‘세계시민 적 의도에 있어서의 인류의 역사’를 제언하였다. 낭만주의 철학자 헤르더(J. G. Herder, 1744~1803)는 인간성의 발 전이 역사의 목표라고 하였다. 헤겔(Hegel, 1770~1831)은 역사를 ‘정신의 자기실현’ 혹은 ‘이념의 자기실현’으로 보았다.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사는 이성적으로 진행한다는 견해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을 그는 세계정신이 라고 불렀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은 인간을 조종하면서 활동하 고 있다고 보고 이것을 이성의 간계奸計라고 하였다. 헤겔의 역사관은 특히 정신사관 또는 관념사관이라고도 불린다. 헤겔은 프러시아에서 자유의 이념이 실현된 이성국가가 도래한다고 보고 있었으나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고 도리어 착취나 인간소외 등 의 반이성적인 사회문제가 심화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역사 507 철학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었다. (4) 유물사관 헤겔은 이념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는 정신사관을 주장한데 대하여 마르크스는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은 물질적인 힘이라고 주장하 면서 유물사관(혁명사관이라고도 함)을 제시하였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념이나 정신의 발 전이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이다. 생산력의 발전에 상응하여 일정한 생 산관계가 성립되며, 생산관계가 일단 성립되면 그것은 곧 고정화됨으 로써 드디어는 생산력의 발전에 대해서 질곡화桎梏化한다. 여기에서 낡 은 생산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계급(지배계급)과 새로운 생산관계를 희구하는 계급(피지배계급)과의 사이에 계급투쟁이 전개된다. 따라서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계급투쟁이 그 극에 달하여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 인 부르주아지를 타도함으로써 드디어 계급이 없는 ‘자유의 왕국’ 곧 공산주의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유물사관이 잘못이었다는 것은 오늘의 공산주의의 종언(끝났음) 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론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유물사관의 법칙이라는 것은 전부 독단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예컨대 유물 사관은 생산력의 발전을 물질적인 발전으로 보았는데, 생산력이 어떻 게 해서 발전하는가에 대해서는 유물변증법적인 해명이 되어 있지 않 다. 또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에 의한 사회변혁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으 나 그것은 말 뿐이며, 실제로 계급투쟁에 의해서 사회가 변혁된 예는 508 한번도 없었다. 이와 같이 유물사관의 이론은 전부가 허구의 이론이었 던 것이다. (5) ‘생의 철학’의 사관 딜타이(W. Dilthey, 1833~1911)와 짐멜(T. Simmel, 1858~1918) 은 ‘생의 성장’과 더불어 역사는 성장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생 의 철학’의 사관이라고 한다. 딜타이에 의하면, 생이란 인간적인 체험이며, 체험은 반드시 표현되 어서 외부 세계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나타난 것이 역사의 세 계요 문화의 세계이다. 따라서 종교, 철학, 예술, 과학, 정치, 법률 등 의 인간의 문화체계는 생이 객관화된 것이다. 짐멜도 마찬가지로 역사란 생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생이란 무한 히 계속되는 유동이다. 그리고 ‘생(정신적인 생)’의 생성의 흐름이 역 사가 된다.14) 그런데 ‘생의 철학’의 사관은, 역사상에 나타나는 인간의 고통이나 불행은 ‘생의 성장’에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 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인간이 어떻게 해야 고통이나 불행에서 해방되 는가 하는 문제는, 이 철학으로써는 해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6) 문화사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에 있어서 역사의 진보나 발전에 대한 신뢰는 기본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있었으며, 역사는 유럽을 중심으로 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