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008
통일사상요강 원문 008/012.
-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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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발전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와 같은 직선적이며 유럽 중심적인 역사상歷史像을 깨뜨린 사람이 슈펭글러(O. Spengler, 1880~1936)였다. 슈펭글러는 역사의 기초를 문화라고 하면서 문화사관을 주창하였다. 그는 문화를 유기체로 보았으며, 유기체인 이상 탄생과 함께 성장하고 는 멸망하게 되어 있어서 문화의 사멸은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로마의 몰락에 대응하는 몰락의 징후를 서양문명 에서 발견하여 서양의 몰락을 예언했다. 이러한 서양의 몰락을 예지豫知 하면서도 페시미즘에 빠지거나 불가피한 운명에 움추리지 말고, 받아 들이면서 살아갈 것을 역설했다. 거기에는 니체와의 강한 연결이 있었 다. 슈펭글러의 역사관은 결정론적이다. 슈펭글러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문화사관을 수립한 사람이 토 인비(A. J. Toynbee, 1889~1975)이다. 토인비에 의하면, 세계사를 구성하는 구극적인 단위는 지역도 민족도 국가도 아니며 개개의 문명 이었다. 그리고 문명은 출생(genesis), 성장(growth), 좌절 (breakdown), 해체(disintegration), 소멸(dissolution)의 단계를 거친 다고 하였다. 문명발생의 원인은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으로부터의 도전 應戰 (challenge)에 대한 인간의 응전 (response)에 있다. 창조적 소수자 가 대중을 인도하면서 문명을 성장시켜 가지만, 머지않아 창조적 소수 자가 창조성을 상실하게 되어서 문명은 좌절한다. 이때 창조적 소수자 는 지배적 소수자로 전화轉化하며, 문명의 내부에서는 ‘내적 프롤레타리 아트’가, 주변에는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생겨서 지배적 소수자에게 서 이반한다. 그리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혼란기를 맞게 되지만, 510 머지않아 지배적 소수자 중의 최강자에 의해 ‘세계국가’가 수립되면서 혼란기는 끝난다. 세계국가에 의한 압정 하에서 내적 프롤레타리아트 는 ‘고등종교’를 키우고, 외적 프롤레타리아트(주변의 만족蠻族)는 ‘전투 집단’(침략세력)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세계국가, 고등종교, 전투집단의 3자가 정립鼎立한다. 얼마 안가서 고등종교는 지배층을 개종시킴으로써 ‘세계종교’가 되지만, 세계국가는 곧 붕괴되고 그와 더불어 문명은 죽 음을 맞게 된다. 이리하여 하나의 문명이 소멸한 후,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침입하 는데, 이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고등종교로 개종됨으로써 다음 대의 문명을 탄생시킨다. 이 문명의 계승을 ‘친자관계’라고 한다. 세계사 속 에서 발생하여 충분히 성장한 문명은 21개인데, 현존하는 문명은 모두 그 3대째에 속하며 기독교문명(서양과 그리스 정교권), 회교문명, 힌두 교문명, 극동문명의 4가지 계보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토인비가 주 장한 3대에 걸친 문명의 계승은 통일사관에서의 복귀기대섭리시대, 복 귀섭리시대, 복귀섭리연장시대라는 3대의 섭리적동시성에 대응하는 것 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토인비의 역사관의 특징은 결정론을 배제하고, 비결정론, 자유의지 론을 주장한데 있다. 즉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응전하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 나아갈 길은 결 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인간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토인비는 인류역사의 미래상으로서 명백히 신국(Civitas Dei)을 그 리고 있으나, 비결정론의 입장에서 ‘신의 나라’냐 ‘어둠의 나라’냐 하는 미래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511 말하였다. 하나님 자신의 ‘존재’의 법인 사랑의 법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기희생은 인간 앞에 영적완성이라고 하는 이상을 목표로 세워 놓고 인간에게 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에 있어서 이 도전을 수용할 것인가, 혹은 거 부할 것인가는 완전히 자유인 것이다. 사랑의 법은 인간이 죄인이 될 것 인가, 성인이 될 것인가를 인류의 자유에 맡기고 있다. 즉 사랑의 법은 인간의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을 ‘하나님의 나라’로의 전진 방안으로 삼 든지 어둠의 나라로의 전진 방안으로 삼든지, 그 선택은 인류의 자유에 일임하고 있는 것이다.15) 토인비 역사관의 또 하나 특징은 근대사회가 망각한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을 역사관속에 다시 도입했다는 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 고 있다. 나는 역사란,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섭리에 의해서 자신 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모습의, 희미하고도 불완전한 영상에 불과하다 고 본다.16) (7) 역사관의 변천과 통일사관 이상으로 종래 역사관의 개요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여기서 종래 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비교하여, 통일사관이 종래의 역사관을 통일 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첫째로,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보는가 직선운동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 512 가 있다. 그리스의 순환사관, 슈펭글러의 문화사관은 역사를 원환운동 으로 파악했으며, 기독교사관이나 진보사관, 유물사관은 역사를 직선 운동으로 파악했다. 한편 생의 철학사관은 유동하는 생의 성장과 더불 어 역사는 발전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진보사관의 변형으로 볼 수 있 을 것이다. 역사를 직선운동으로 파악하면 역사의 발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으 나, 인류역사에 있어서의 좌절과 부흥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 편,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파악할 때, 국가나 문화의 멸망은 운명적인 것이 되어 희망을 발견할 수가 없다. 통일사관은 재창조와 복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를 전진운동 과 원환운동이라는 양면을 가진 나선형운동으로서 파악한다. 즉 역사 는 목표 -창조이상세계의 실현- 를 향하여 발전해 간다는 전진적 성 격과 더불어, 섭리적 인물을 세워서 탕감법칙에 따라 잃어버린 창조이 상세계를 복귀한다는 원환운동의 성격을 함께 지닌 나선형운동의 역사 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로, 결정론이냐 비결정론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역사는 운명에 따라 필연적으로 운동한다는 그리스의 운명사관과 슈펭글러의 문화사 관은 결정론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진행한다는 섭리사관 도 결정론이다. 이성 또는 세계정신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헤겔의 정신사관이나, 역사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공산 주의사회에 도달한다고 하는 유물사관도 결정론이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을 초월한 어떤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하는 견해인 것이다. 이 와 같은 결정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언제나 역사의 힘이나 법칙 에 끌려다니는 피동적 존재에 불과하며,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한 노력 513 에 의해서 역사를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한편 토인비는 자유의지론의 입장에서 비결정론을 주장했다. 즉 인 간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역사가 가는 길이 선택된다고 주장한다. 그러 나 토인비의 비결정론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의 미래상은 불분명하며, 따라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이에 대해서 통일사관은, 역사의 목표는 결정적이지만 섭리적인 사 건의 성취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 외에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역사의 과정은 비결정론이라고 본다. 즉 통일 사관은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양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론을 책임분담론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비교해 볼 때 종래의 역사관 은 각각 통일사관의 한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통일사관이 총합적, 통일적인 역사관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토인비의 역사관에는 통일사관을 닮은 내용이 많이 있다. 섭리적으로 볼 때, 토인비의 역사관은 통일사관이 출현하기 위한 전단계를 준비한 사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토인비의 사관은 종래의 역사 관과 통일사관을 연결하는 교량의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六. 섭리사관과 유물사관과 통일사관의 비교 끝으로 종래의 사관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섭리사관 (기독교사관)과 유물사관, 그리고 통일사관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 514 해 보고자 한다(그림 8-1 참조). 즉 역사의 시작, 성격, 발전의 원동 력, 변천의 법칙, 투쟁, 종말의 현상․사건, 종말을 고하는 역사, 이상세 계 등의 項目을 가지고 비교해 보려는 것이다. 서로 비교해 봄으로써 각각의 사관의 특징을 보다 단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겠기 때문 이다. 515 (1) 역사의 시작 섭리사관은 창조된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역사가 시작했다고 보고 있 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죄악사로서 출발하였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 유물사관은 인간이 동물계에서 분리된 후 인류역사가 시작되었 으며, 최초의 사회는 원시공동체사회라고 하였다. 통일사관은 섭리사 관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인간의 타락에서 역사가 시작됨으로써 인류역 사는 죄악사로서 출발했다고 본다. (2) 역사의 성격 섭리사관은 역사를 하나님에 의한 구원의 역사로 보며, 유물사관은 계급투쟁사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재창조역사와 복귀 역사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를 파악한다. (3)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 섭리사관에 의하면,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섭리사관에 있어서는,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유물사관에 있어서는, 물질적인 힘인 생산력의 발전이 역사를 움직이 는 기본적인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분담이라고 본다. 기독교 의 섭리사관에 의하면, 하나님이 역사 전체를 섭리하고 있기 때문에 516 역사상의 모든 비참한 사건도 하나님이 이러한 사건을 용인하였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그러나 통일사관에서 보면,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역사상의 모든 비참한 사건의 책임도 인간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4) 역사변천의 법칙 섭리사관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신국神國’과 악마를 따르는 자 들의 ‘지상국’이 싸워서 마지막으로 신국이 승리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역사의 법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유물사관은 유물 변증법을 역사에 적용하여 ‘인간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로 부터 독립한 일정한 생산관계를 맺는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대응한다’, ‘생산관계가 토대이고 의식의 제형태는 상부구 조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생산관계가 생산력 의 발전에 대하여 질곡화桎梏化할 때 혁명이 일어난다’ 등을 유물사관의 법칙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역사에 작용한 법칙으로 서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5) 종말에 나타나는 투쟁 섭리사관에 있어서는, 섭리역사가 종말에 이르게 되면 ‘신국’과 ‘지 상국’ 사이에 최후의 투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성서에 의하면, 하늘에 서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천사(미가엘)와 악마가 싸운다고 되어 있다. 517 유물사관에 의하면 역사의 최후의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르 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진다고 되어 있 다. 통일사관에 있어서 역사는 선악의 투쟁사이며, 종말기에서의 선악 의 투쟁은 세계적인 규모로 전개되는 바, 민주주의세계와 공산주의세 계의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 투쟁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하고 자유세 계가 승리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메시아에 의하여 양편의 화해가 이루 어져서 통일되게 된다. (6) 종말의 현상 성서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 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태 24:29)고 한 기록에 근거하여 섭리사관은 종말에 이르러 천변지이天變地 異 가 일어난다고 한다. 유물사관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빈곤, 억압, 예속, 타락, 착취가 더욱 더 증대하고 경제파탄經濟破綻과 사회혼란 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사관은, 역사가 종말에 이르게 되면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 무시되고 붕괴되어서, 특히 성도덕의 퇴폐가 극 에 달하여서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진다고 본다. (7) 종말의 사건 섭리사관에 의하면, 종말에 ‘최후의 심판’이 벌어진다. 즉 성서에 의 하면, 끝날의 심판 때에 양羊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마태 518 25:32) 양羊편에 속한 자, 즉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축복을 받을 것 이며(마태 25:34), 염소 편에 속한 자, 즉 악마를 따르는 자는 영원한 불속에 던져진다고 기록되어 있다(마태 25:41). 유물사관에 의하면, 폭 력혁명으로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를 타도함으로써 인류의 전사前史는 끝난다고 되어 있다. 통일사관은 종말 에 있어서 세계적인 규모로 선편과 악편이 분립된 후 선편이 악편에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전함으로써 악편을 자연굴복시킨다고 보고 있 다. (8) 종말을 고하는 역사 이 항목에서는 ‘끝날에 무엇이 끝나는가’ 즉 ‘종말의 때에 어떠한 역 사가 끝나는가?’를 다루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종말 때에 죄악사 가 끝난다고 한다. 즉 섭리사관에 의하면, 신국이 지상국에 승리함으 로써 죄악사가 종말을 고한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타도함으로써 계급투쟁의 역사가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통일사관에 있어서는, 선편이 참사랑으로 악편을 자연굴복시켜서 장자 권을 복귀함으로써 죄악사와 선악투쟁사가 종말을 고하게 된다. (9) 도래하는 이상세계 역사가 종말을 고한 뒤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일 것인가? 섭리사관에 의하면, 역사의 종말의 심판이 끝난 뒤에는 새 하늘 새 땅의 시대가 519 도래한다고 되어 있다(계 21:1~2). 그러나 그 새 하늘, 새 땅의 시대 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대인가는 전연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물사관 에 의하면, 혁명 후에는 계급이 없는 자유의 왕국인 공산주의사회가 실현된다고 한다. 통일사관에서는, 전인류가 참부모되시는 메시아를 맞이하여 ‘한 가족세계’를 이루는 창조이상세계, 즉 지상천국이 실현된 다고 본다. 이상의 세 가지의 사관에 관한 9가지의 항목의 요점을 일괄하여 도 표로 표시하면 그림 8-3과 같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독교사 관은 신비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서 오늘날에 이르러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로 보고는 있으나, 법칙이 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섭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분명하지 않 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왼편의 염소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 한 벌을 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또 끝날의 새 하늘과 새 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물사관은 기독교사관에 비하여 도리어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고 설득력도 있어서 최근까지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 다. 그리고 한 때는 세계의 거의 절반을 적화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 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공산주의사회가 자유의 왕국도, 부가 넘치는 사 회도 아닐 뿐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나서, 이 제 그 사회는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본래 공산주의는 토인비 의 말과 같이 기독교가 그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세속화하였기 때문 에 기독교에 대한 사탄편으로부터의 참소장, 고발장으로서 나타난 것 이었다. 그리하여 유물사관은 마치 기독교사관을 뒤집어 놓은 것같은 외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관련하여 칼 뢰비트는 다음과 같이 말 520 했다. 사적유물론이 이상적 토대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유대인의 낡은 메시아사상과 예언자주의, 그리고 유대적인 끈질기고도 절대적인 정의의 고집이다. ‘공산당선언’은 과학적 예언이라는 전도된 형식으로 ‘희망을 거는 자 에 대한 확신'이라는 신앙의 특징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적대 하는 두 진영 즉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최종적인 적대가, 역사 최후의 시기에 있어서의 기독교와 반기독교와의 최후의 싸움에 대 한 신앙과 일치하고 있으며,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가 선민의 세 계사적 사명과 유사한 것은 하등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피억압 계급의 세계적 구원의 역할은 십자가 부활과의 종교적 변증법 에 일치하며, 필연의 왕국이 자유의 왕국으로 변하는 것은 옛 에이온 (old aion)이 새로운 에이온(new aion)으로 변하는 것과 일치한다. ‘공산당선언’에 서술되어 있는 것같은 역사의 전과정은, 역사가 뜻있는 최종목표를 향하는 섭리에 의하여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유대교=기 독교적인 해석의 일반적 도식을 반영하고 있다. 사적유물론은 정치, 경 제학의 용어를 사용한 救援史인 것이다.17) 521 역 사 의 역 사 의 원동력 변 천 의 종 말 의 종 말 의 종 말 의 종 말 을 도 래 하 시작 성격 법칙 투쟁 현상 사건 고하는 는 이 역사 상세계 섭리사 인간의 구원섭 신 의 (무) 신 국 과 천 변 지 최 후 의 죄악사 새 하 늘 관 창 조 와 리사 섭리 지상국 이 심판 새땅 타 락 의 투 ( 죄 악 쟁 ( 천 사) 사 와 악마의 투쟁) 유물사 원시공 계급투 생산력 유물변 부르주 경제파 폭력혁 계급투 공산주 관 동체 쟁사 의 발 증법 아지와 탄 명 쟁사 의세계 전 프롤레 사회의 타 리 아 혼란 트의투 쟁 통 일 사 인 간 의 재 창 조 신의 창조의 선악의 가치관 신 의 죄악사 창조이 관 창조와 사 섭리 법칙 투쟁 붕괴 진리와 선악투 상세계 타 락 복귀섭 인간의 복귀의 사 회 대 사 랑 의 쟁사 ( 지 상 ( 죄 악리 사 책 임 분 법칙 혼란 전 파 천국) 사) ( 선 악담 ( 선 악 투 쟁 의 분 사) 립) 그림 8-3. 섭리사관, 유물사관, 통일사관의 비교 522 통일사관은 기독교사관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것이기는 하지만, 기 독교 사관의 신비성․비합리성을 극복하고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역사 관으로 제시된 것으로서, 공산주의의 기독교사관에 대한 참소를 극복 할 수 있는 유일한 사관이다. 기독교사관은 악마를 따르는 지상국 사 람들이 영원히 벌을 받는다고 했으며, 유물사관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 가 부르주아지들을 폭력적으로 타도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통일사관은 선편이 악편을 참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 악편도 선편으로 복귀시킴으 로써 전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참된 이상세계에서는 전 인류가 모두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사관이야 말로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 유물사관은 기독교사관을 미신 또는 신화라고 공격하면서, 유물 사관 자체는 법칙성을 가진 과학적인 역사관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나, 유물사관이 제시한 법칙은 사실상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허구의 법 칙에 불과하며, 혁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의적인 가짜 법칙에 불과하 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의 법칙은 예외없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문자 그대로의 법칙들인 것이다. 523 제9장 인 식 론 Epistemology 인식론은 인식(Erkenntnis)에 관한 여러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철학의 한 부문으로서 객관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가, 또 어떻게 해야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을 말 한다. 즉 인식의 기원과 대상은 무엇이며, 인식의 방법과 발전은 어떻 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 등을 밝히는 이론이다. 인식론의 영어인 Epistemology는 그리스어의 ‘지식’을 의미하는 episteme와, ‘학문’을 의미하는 logia를 결합한 말로서 페리어(J. F. Ferrier, 1808~1864)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 독일어 Erkenntnistheorie는 라인홀트(K. L. Reinhold, 1758~1823)에 의해 사용된 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인식론은 이미 고대 및 중세철학에도 존재하고 있었으나, 근세에 이 르러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주관이 제고되면서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존재론과 더불어 철학의 주요한 부문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사상은 많은 현실문제를 근본적으로 해 결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 이르러 인식론에 대 한 연구열이 점차 식어가고 있으며, 인식에 관한 문제는 철학계에서 의학계로 넘겨진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의학이 그 문제를 완전히 524 해결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의학이 인식의 과정에 대한 생리학적 기초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인식에 관한 문제점의 해결에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학적인 인식의 이론에도 아직 해결되지 아니한 점 이 있다. 이와 같이 미해결의 문제를 포함하여 종래의 일체의 인식상 의 문제를 일괄적으로 해결한 것이 본 인식론이다. 인식론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라는 본체론적인 문제와도 관련 되어 있다. 또 인식은 실천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올바른 인식론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현실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의 인식론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새 로운 인식론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여기에 그와 같은 요청에 보답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 통일사상에 근거한 본 통일인식론이다. 먼저 종래의 주요한 인식론에 대해서 그 요점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에 통일인식론을 소개한 후 종래의 인식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본 인식론에 의해서 훌륭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과, 종래의 모든 인식론의 핵심이 본 인식론에 모 두 포함되어 있어서, 본 인식론은 문자 그대로의 ‘통일인식론’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끝으로 본 통일인식론도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문선명 선생의 지도하에 체계화되었음을 밝혀둔다. 一. 종래의 인식론 인식론에 관한 연구는 이미 고대로부터 행해져 왔으며, 그것이 철학 의 중심과제로서 제기된 것은 근세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인식론을 525 처음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로크(J. Locke, 1632~1704)로서 그 의 ‘인간오성론’은 획기적인 노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상을 올바르게 인식하는데 있어서 종래의 인식론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 측면이 바로 인식의 세 가지 논점이다. 그리고 하나의 논점에 각각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인식의 세 가지 측면의 논점이란 첫째로 ‘인식의 기원’에 관한 것이며, 둘째로 ‘인식의 대상’에 관한 것이며, 셋째로 ‘인식의 방법’에 관한 것 이다. 그리하여 이 각각의 논점에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의 입장이 있 다. 인식의 기원에 있어서는 인식이 감각에 의해 얻어진다는 ‘경험론’ 과 생득관념生得觀念에 의해 얻어진다는 ‘이성론’(또는 합리론)의 두 입장 이 대립해 왔고, 인식의 대상에 관해서는 대상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 는 ‘실재론’과 인식의 대상은 주관(주체)의 관념 또는 표상만이라는 ‘주관적 관념론’의 두 입장이 대립해 왔으며,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는 주로 ‘선험적 방법’과 ‘변증법적 방법’ 등이 주장되었다. 경험론과 이성론의 대립에 있어서 경험론은 나중에 회의론에 빠졌 고, 이성론은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칸트는 이 양자를 ‘비판 적 방법’ 또는 ‘선험적 방법’에 의해서 종합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1) 이것이 인식의 대상은 주관에 의해 구성된다고 하는 ‘선천적 종합판 단’ 이론이다. 그 후,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표절한 마르크스의 유물변증 법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 유물변증법적 방법에 의한 인식론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인식론 즉 변증법적 인식론이다. 이것은 인식의 내용과 형식(사고형식)이 외계의 사물의 반영이라고 보는 공산주의의 반영론反 映論 또는 모사설模寫說이다. 526 여기서 특히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본 항목에서 종래의 인식론을 다루는 것은 종래의 인식론의 내용을 구체적, 학술적으로 소개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통일인식론이 종래의 인식론이 지녔던 미해결의 문 제점들을 해결해냈다는 것을 참고로 보이기 위해서, 그 문제점과 관련 된 사항을 간단히 소개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본 통일인식론 그 자체만을 이해하는 데는 ‘종래의 인식론’의 항목을 생략해도 좋을 정도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울러 밝혀둔다. 1. 인식의 기원 모든 지식은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경험론이며, 거기 에 비해서 참다운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이성론 또는 합리론이다. 양자 모두 17~18세기 에 나타났는데, 영국의 철학자들은 경험론을 옹호하였고, 대륙의 철학 자들은 이성론을 옹호하였다. (1) 경험론 1) 베이컨 경험론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 1561~1626)이다. 그의 저명한 노작 ‘노붐 오르가눔’(Novum 無用 Organum, 1620)에서 그는 전통적인 학문은 무용 한 말의 연속에 527 지나지 않으며, 내용적으로는 공허하다고 하면서 올바른 인식은 자연 의 관찰과 실험에 의해 얻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 때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선입적인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서, 그 편견으로서 네 가지의 우상偶像(Idola)을 들었다.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Idola Tribus)이다. 이것은 사람의 지성은 평평하지 않은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성을 왜곡해서 반 사하기 쉽다고 하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빠지기 쉬운 편견을 말한다. 예컨대 자연을 의인화시켜서 보는 경향이 그것이다. 둘째로, 동굴洞窟의 우상(Idola Specus)이다. 이것은 마치 동굴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개인의 독특한 성질이나 습관, 좁은 선입 관 등에 의해서 생기는 편견을 말한다.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Idola Fori)이다. 이것은 지성이 언어에 의하 여 영향받는 데서 오는 편견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공허한 논쟁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Idola Theatri)이다. 이것은 권위나 전통에 의지하려는 데서 오는 편견을 말한다. 예컨대 권위있는 사상이나 철학 에 무조건 의지하려 하는 데에서 오는 편견 따위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우상을 제거한 후, 우리들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 여 개개의 현상 속에 있는 본질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베이컨은 귀납법을 제시하였다. 2) 로크 528 경험론을 체계화한 사람은 로크(J. Locke, 1632~1704)이며, 그는 주저主著 ‘인간오성론’에서 그의 주장을 상세히 전개하였다. 그는 먼저 인식에 있어서 생득관념生得觀念을 배격했다. 생득관념이란,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인식에 필요한 관념을 말한다. 그는, 인간의 마음 은 본래 백지白紙(tabula rasa)와 같은 것이며, 백지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면 그대로 남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간 관념은 마음의 백지에 그 대로 적혀진다(인식된다)고 하였다. 즉 그는, 인식은 외부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관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2)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관념觀念은 두 가지의 방향에서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데, 하나는 감각(sensation)의 방향이며, 또 하나는 반성反省(reflection)의 방향이다. 이것이 로크의 ‘인식의 기원’이다. 즉 로크에 있어서는, 인식 의 기원은 관념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반성에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로크의 경험론은 감각이나 반성을 통한 경험이 인식의 기원이라고 보 는 입장이다. 감각이란, 감각기관에 비치는 대상의 지각知覺을 말한다. 즉 노란黃, 하얀白, 뜨거움熱, 차가움冷, 부드러움柔, 단단함堅, 쓴맛苦, 단맛 甘味 등의 관념을 말한다. 반성이란, 마음의 작용을 말하며 ‘생각한다’, ‘의심한다’, ‘믿는다’, ‘추리한다’, ‘의지한다’ 등이 그것이다. 이 반성 때 에도 관념이 얻어진다. 그런데 관념에는 단순관념單純觀念(simple idea)과 복합관념複合觀念 (complex idea)이 있다고 한다. 단순관념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 얻어진, 따로 따로 떨어진 관념이며, 그것들이 오성悟性의 작용에 의해 결합結合, 비교比較, 추상抽象됨으로써 보다 고차적인 관념을 이룬 것이 복 합관념이다. 그리고 단순관념에는 고체성固體性(solidity), 연장延長(extension), 형상 529 形象 (figure), 운동運動(motion), 정지靜止(rest), 수數(number)와 같이 대상 자체對象自體에 객관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성질과, 색(color)․냄새(smell)․ 맛(taste)․소리(sound)와 같이 주관적主觀的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성 질이 있다고 하면서 전자를 제1성질, 후자를 제2성질이라고 불렀다. 복합관념에는 양상樣相(mode), 실체實體(substance), 관계關係(relation) 의 세 가지가 있다. 양상이란, 공간의 양상(거리, 평면, 도형 등), 시간 의 양상(계기, 지속, 영원 등), 사유思惟의 양상(지각, 상기, 추상), 수數 의 양상, 힘의 양상 등, 사물의 상태나 성질 즉 속성을 나타내는 관념 들이다. 실체란 단순관념을 일으키는 물자체物自體를 말하며, 여러 성질 을 지니고 있는 기체基體(substratum)에 대한 관념이다. 그리고 관계란, 인과의 관념과 같이 두 가지의 관념을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관념(동 일, 차이, 원인, 결과 등)을 말한다. 로크는 ‘인식이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결합과 일치 또는 불일치와 배반背反의 지각知覺’3) 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대개 진리란 관 념의 일치, 불일치를 그대로 언어로 표기한 것이다’4) 라고 하였다. 즉 그는 관념을 분석함으로써 인식의 기원의 문제에 답하려고 하였던 것 이다. 로크는 직각적으로 인식되는 정신과 논리적으로 인식되는 신의 존재 를 확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물체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으므로 확실성을 지닐 수는 없다고 하였다. 3) 버클리 530 버클리(G. Berkeley, 1685~1753)는 로크가 말한 물체의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별을 부정하고, 제1성질도 제2성질과 마찬가지로 주관적 이라고 하였다. 예컨대 거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연장延長), 즉 제1성질의 관념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거리의 관 념은 다음과 같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들은 일정한 거리의 저 편에 있는 어떤 사물을 눈으로 보고, 다음에 그곳까지 발바닥으로 땅 을 밟으며 걸어가서, 손으로 만져본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할 때, 어떤 종류의 시각은 이윽고 어떤 종류의 촉각(예컨대 걸을 때의 발바닥의 촉각)을 수반한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게 된다. 거기에 거리의 관념이 생긴다. 즉 우리들은 연장延長으로서의 거리를 그대로 객관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버클리는 로크가 말한 여러 성질의 담하체擔荷體로서의 실체를 부정하 면서, 사물은 관념의 집합(collection of ideas)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이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고 주 장하였다. 이리하여 버클리는 물체라는 실체의 존재를 부정했으나, 지 각하는 실체로서의 정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4) 흄 경험론을 궁극에까지 추구한 사람이 흄(D. Hume, 1711~1776)이었 다. 그는 우리의 지식은 인상印象(impression)과 관념觀念(idea)에 근거한 다고 생각하였다. 인상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을 말하 며, 관념이란 인상이 없어진 후에 기억 또는 상상에 의해 마음에 나타 나는 표상을 말한다. 그리고 인상과 관념의 양자를 총칭하여 지각 531 (perc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는 단순관념의 복합에 있어서 유사類似(resemblance), 접근接近 因果性 (contiguity), 인과성 (cause & effect)을, 세 가지의 연상법칙聯想法 則 으로 들었다. 여기서 유사와 접근에 관한 인식은 확실한 것이어서 문 제는 없으나 인과성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인과성에 관한 예로서, 번개가 친 뒤에 우뢰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면, 이때 보통 사람들은 번개가 원인이고 우뢰소리는 그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흄은 단순한 인상으로서의 양자를 원인과 결과로서 결합 시킬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고 하면서, 인과성의 관념은 주관적인 습 관이나 신념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닭이 울고 난 후 잠깐 있다가 태양이 뜬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현상이 지만, 이 때 닭이 우는 것이 원인이고, 태양이 올라오는 것이 그 결과 라고 할 수는 없다. 인과성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인식은 그와 같이 주 관적인 습관이나 신념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회의론懷疑論에 빠져 버렸다. 그는 또 실체성의 관념에 대해서도 버클리와 마찬가지로 물체라는 실체의 존재 를 의심하였다. 또한 그는 정신(마음)이라는 실체의 존재까지도 의심하 였으며, 정신이란 지각의 묶음束(bundle of perceptions)에 지나지 않 는다고 생각하였다. (2) 이성론 이와 같은 영국의 경험론에 대해서, 감각에 의해서는 올바른 인식이 불가능하며 이성에 의한 연역적, 논리적인 추리에 의해서만 올바른 인 532 식이 얻어진다고 보는 입장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프 등을 중심한 대륙의 이성론(합리론)이다. 1) 데카르트 이성론의 시조로 알려지고 있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참된 인식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으 로부터 출발하였다. 그것이 소위 그의 방법적회의方法的懷疑(methodical doubt)이다. 그는 먼저 감각이 우리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감각적인 것을 의심하였다. 왜 이러한 방법을 취하였을까. 그것은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즉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의심해 보고, 그리고서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면 그것은 바로 ‘진실’이며, ‘진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 능한 한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또 의심해 보았다. 그 결과 한 가지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음을 그는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의심한다(사 유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 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를 세웠던 것이다. 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데카르트가 말하 는 철학의 제1원리로서,5) 이 명제가 틀림없이 확실한 것은 이 인식이 명석明晳(clear)하고 판명判明(distinct)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우리들이 극히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되는 것은 모두 참眞 이다’6) 라는 일반적 규칙(제2원리)이 도출된다. 여기에서 명석(clear)이란, 사물이 정신에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을 533 의미하고 판명(distinct)이란 명석하면서 타자와 확실히 구별되어 혼동 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7) 명석의 반대가 애매曖昧(obscure)이며, 판명 의 반대가 혼동混同(confused)이다. 이 규칙에 따라 사유를 속성으로 하는 정신과, 연장을 속성으로 하는 물체의 존재가 확실한 것으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이 제1원리와 제2원리에서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物 心二元論 이 성립된다. 그것은 제1원리에서 ‘마음’(사유)의 실재實在가, 그리 고 제2원리에서 ‘물질’(연장)의 실재가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석하고 또 판명한 인식이 확실한 것으로 보증되기 위해서 는, 악령이 몰래 사람을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 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하다. 성실한 하나님이 인간을 속인다는 일 은 있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하면 인식에 잘못이 생길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 였다. 첫째, 하나님의 관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득관념(본유관념)이지 만, 그 관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원인이 없어서는 안 된 다. 둘째,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한 존재(하나님)의 관념을 가진다는 사실 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셋째, 가장 완전한 존재자(하나님)의 개념은 그 본질로서의 실체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包含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이와 같이하여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 인 무한, 전지, 전능이 명백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로서 성실성(veracitas)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명석․판명한 인식에 확 534 실한 보증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하나님과 정신과 물체 (물질)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그 중에서 참다운 의미에 서의 독립적인 존재는 하나님뿐이며, 정신과 물체는 하나님에 의존하 고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과 물체는 각각 사유와 연장을 그 속성 으로 하는, 서로 전적으로 독립한 실체라고 하면서 그는 이원론을 주 장하였다. 이상과 같이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인식이 틀림없이 확실하다는 것 을 논증하였는데, 그는 그것으로써 수학적 방법을 터로 하는 합리적인 인식의 확실성까지도 주장하였던 것이다. 2) 스피노자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도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엄 밀한 논증에 의해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기하학 적 방법을 철학에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이성에 의해서 일체의 진리를 인식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스피노 자 철학의 전제이다. 즉 이성에 의해 ‘영원한 상相 아래에서’ 사물을 파 악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필연의 관계에서 전체적, 직각적直覺的으로 사 물을 파악할 때 참다운 인식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한 상 아래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 필연의 과정에서(필연의 연 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인간은 덧없는 사물, 흘러가는 현상에 집착해서 마음을 쓰지 않아도 좋게 되며, 오히려 지금까지 덧없는 것으로 알았던 사물이나 현상,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들까지도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표현으로서 귀한 535 것으로 파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참다운 생명을 얻게 되고 완전 에 도달하며, 무한한 기쁨,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의 상 아래에서 사물을 파악한다는 말의 뜻이다. 또한 이것은 명석․판명한 이성과 영감靈感에 의하여 얻어지는 자각이 라는 것이다. 그는 인식을 ‘감성지感性知’, ‘이성지理性知’, ‘직각지直覺知’의 셋으로 나누었다. 그 중, 지성知性에 의한, 질서가 없는 ‘감성지’는 불완 전한 것이며, ‘이성지’와 ‘직각지’에 의해서 참다운 인식이 성립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직각지란, 어디까지나 이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을 각각 사유思惟와 연장延長을 그 속성으로 하 는, 서로 독립된 실체라고 생각한데 대하여, 스피노자는 실체는 하나 님뿐이며, 사유와 연장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능산적 자연能産的 自然(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所 産的 自然 (natura naturata)의 관계로 보았으며, 양자는 분리할 수가 없다 고 하면서, ‘하나님은 자연이다’라고 하는 범신론적 사상汎神論的 思想을 전개하였다. 3)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도 수학적 방법을 중요시하 고 소수의 근본원리에서 모든 명제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 했다. 그는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즉 첫째로, 순수하게 이성에 의해 논리적으로 파악되는 것, 둘째로 경험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나누어서 전자를 ‘영원의 진리’ 또는 ‘이성의 진리’라 고 부르고, 후자를 ‘사실의 진리’ 또는 ‘우연의 진리’라고 불렀다. 이성 536 의 진리를 보증하고 있는 것은 동일률과 모순율이며, 사실의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충분한 이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충족이유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진리의 구별은 인간의 지성에 대해서만 해당 되며, 인간에 있어서 사실의 진리로 간주되는 것도, 하나님은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에 있어서는 구극적究極的으로 이성적인 인식이 이상적인 인식으로 여겨지 게 되었다. 그는 또 참다운 실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의 살아있는 거울鏡’로 서의 모나드(monade, 단자)라고 하였다. 모나드는 지각知覺과 욕구의 작용을 가진 비공간적인 실체이며, 무의식적인 미소지각微小知覺(petite perception)에서 그 집합으로서의 통각統覺(apperception)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나드에는 물질적 차원의 ‘잠든 모나드’, 감각과 기억 을 가진 동물차원의 ‘혼의 모나드’(또는 ‘꿈꾸는 모나드’), 보편적 인식 을 가진 인간 차원의 ‘정신의 모나드’라는 3단계의 모나드가 있으며, 최고 차원의 모나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4) 볼프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기조基調로 하면서, 이에 더하여 이성적인 입장을 체계화한 사람이 볼프(C. Wolff, 1679~1754)이다. 그런데 그의 이론 의 체계화 과정에서 라이프니츠의 참정신이 희미해졌거나 왜곡되었으 며, 또한 라이프니츠의 주요 부분이 그의 이론체계에서 빠졌던 것이 다. 특히,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이나 예정조화론은 왜곡되었다. 칸트 537 는 처음에 이 볼프학파에 속해 있었지만 후에 그를 합리주의적인 독단 론의 대표자라고 하면서 예리하게 그를 비판했다. 또한 볼프는 근본원 리에 있어서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인도되는 이성적인 인식이야말로 참다운 인식이라고 하면서, 모든 진리는 동일률(모순율)에 의해서 성립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에 관한 경험적 인식의 존재도 인정하고 있으나, 이성적 인식과 경험적 인식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 으며, 경험적 인식은 참다운 인식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대륙의 이성론은 사실에 관한 인식을 경시하고, 모든 것을 이성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결국 볼프 에 이르러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8) 2. 인식대상의 본질 다음은 인식대상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식의 대상은 주체에서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 ‘실재론’이 며, 인식의 대상은 객관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의 의식 속에 관 념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주장이 ‘주관적 관념론’이다. (1) 실재론 실재론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즉 ‘소박실재론’, ‘과학적 실재 론’, ‘관념적 실재론’,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 등이 그것이다. 첫째의 ‘소박실재론’은 ‘자연적 실재론’이라고도 하며, 물질로 되어 있는 대상 538 이 주관에 대하여 독립해 있다는 입장으로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물이 존재한다는 상식적인 견해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 리들의 지각은 대상을 정확하게 모사模寫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두번째의 ‘과학적 실재론’은 다음과 같다. 즉 대상은 주관과 독립하 여 존재하고 있지만, 감각적인식 그대로는 객관적인식이 될 수 없으 며, 감각을 초월한 오성의 작용에 의해서 대상으로부터 얻은 경험적 사실에 과학적인 반성을 가함으로써 실재를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견해 이다. 예를 들면, 색채는 시각적 현상이지만, 과학은 여기에 과학적 비 판을 가하여 색채(예를 들면 빨강)는 일정한 파장을 가진 전자파(광선) 에 대한 주관적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또 시각상의 번 갯불과 청각상의 천둥은, 과학적으로는 공중에서 일어나는 방전현상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상식적인 실재관에 과학적인 반성을 가한 이론이 과학적 실재론이다. 세번째의 ‘관념론적 실재론’은 ‘객관적 관념론’이라고도 한다. 대상의 본질은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정신적, 객관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말한 다. 즉 정신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세계의 근원으로서 존재하였으며, 이 근원적인 정신이야말로 세계의 참된 실재로서 우주의 원형이며, 만물은 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컨대 플라톤은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참된 실재 로 생각하면서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헤겔은 세계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에 있어서, 대상은 의식에서 독립하여 존재 하며, 의식에 반영된 객관적 실재라고 보기 때문에 역시 실재론이다. 이것은 사물이 거울에 비치는 것과 같이, 외부의 만물이 인간의 의식 539 (뇌수)에 반영된 것이 인식이라고 보는 입장으로서, 공산주의의 인식론 이다. 그러나 반영된 내용 그 자체가 반드시 그대로는 진실이 아니며, 실천(검증)에 의해서 그 진실성이 확인될 때 비로소 객관적으로 진실 이 된다. 이와 같이 검증에 의해서 확인될 때 비로소 진리가 된다고 보는 입장을 변증법적 인식론이라고 한다. (2) 주관적 관념론 실재론은 상술한 바와 같이 인식의 대상이 물질이냐 관념이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주관과 독립해서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반면에, 인식 대상이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해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의 식에 나타나는데 있어서만 그 존재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주관적 관 념론이다. 버클리가 그 대표자이며, ‘실재는 곧 지각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명제가 그 주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자아自我의 작용 을 떠나서 비아非我(대상)가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전혀 말할 수 없다’고 한 피히테(J. G. Fichte, 1762~1814)나, ‘세계는 나의 표상表象이 다’(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라고 말한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도 똑 같은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이다. 3. 방법에서 본 인식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식의 기원을 경험으로 본 경험론은 나중에 회의론에 빠지게 되었고, 인식의 기원을 이성에 있다고 본 이성론은 540 나중에 독단론에 빠졌다. 그와 같은 결과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경험 이 어떻게 해서 인식되어지는가, 그리고 이성에 의해서 어떻게 인식이 성립되는가 하는 문제, 즉 인식의 방법을 고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식의 방법을 중시하고 이것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 칸트 의 ‘선험적 방법’과 헤겔․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이다. 여기서는 칸 트와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해서 그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칸트의 선험적방법 영국의 경험론은 회의론에, 대륙의 합리론은 독단론에 빠졌지만 이 두 가지 입장을 종합하여 새로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칸트(I. Kant, 1724~1804)이다. 경험론은 인식의 기원을 경험으로 보고 이성의 작 용을 무시함으로써, 그리고 이성론은 이성을 만능의 것으로 간주함으 로써 양자가 모두 오류에 빠졌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그래서 칸트는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이 될 수 있는 가 하는데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작용의 검토, 즉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 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의 세 가지 비판 서를 저술하였는데, 각각 진리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선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미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라는 진․선․미의 가치의 실 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중 인식론에 관한 것을 다룬 부분이 ‘순수이성비판’이다. 541 1) ‘순수이성비판’의 요점 칸트는, 지식은 경험을 통하여 증대한다는 사실과, 올바른 지식은 보편타당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경험 론과 이성론을 통일하려고 하였다. 경험에 의해서 비로소 인식능력이 작용하는 것은 자명하지만, 여기에서 칸트가 찾아낸 것은 인식하는 주 관 속에 선천적인 인식의 형식(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즉 대상 에서 오는 ‘감성적 내용’(감각적 질료, 감각의 다양, 감각적 소재라고도 한다)이 주관의 ‘선천적 형식’에 의해서 질서가 세워짐으로써 ‘인식의 대상’(경험의 대상)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종래의 경험론이나 이성론이 모두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한다고 한 데 대하여, 칸트는 인식의 대 상이 주관에 의해 ‘구성된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이러한 착상을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라고 자찬하였다. 칸트의 인식론은 이와 같이 대상 그 자체의 인식을 목표로 삼지 않고 객관적 진리성은 어떻게 해 야 얻어지는가를 명백히 하고자 한 것으로서, 이것을 선험적先驗的(또는 초월적, transzendental) 방법이라고 불렀다. 칸트에 의하면, 인식은 판단이다. 판단은 명제인 것으로서 거기에는 주어와 술어가 있다. 따라서 인식을 통하여 지식이 증가한다는 것은, 판단(명제)에 있어서 주어의 개념 속에 없던 새로운 개념이 술어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칸트는 그와 같은 판단을 종합판단綜合判斷이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어의 개념 속에 술어의 개념이 이미 포함 되어 있는 판단을 분석판단分析判斷이라고 한다. 결국, 종합판단에 의해 서만 새로운 지식이 얻어지는 것이다. 칸트가 들고 있는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의 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542 있다. ‘물체는 연장을 가지고 있다’라는 판단은 물체의 개념 속에 이미 연장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분석판단이다. 한편 ‘직선은 두 점간 의 최단의 선이다’라는 판단은 종합판단이다. 직선이라는 개념은 장단 長短 이라는 양을 포함하지 않고 단지 똑바르다는 성질을 가리키고 있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최단이라는 개념은 전혀 새로이 첨가添加된 것이다. 그러나 종합판단에 의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 지식 이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을 갖지 않으면, 그것은 올바른 지식이 될 수 없 다. 지식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단순한 경험적 인 식이어서는 안 되며, 경험에서 독립된 선천적(아프리오리)인 요소를 갖 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종합판단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것은 선천적先天的인 인식 즉 선천적 종합판단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 서 칸트가 부딪혔던 문제는 ‘선천적인 종합판단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 가’9)하는 것이었다. 2) 내용과 형식 칸트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로써 경험론과 이성론을 종합하려고 하였 다. 내용이란, 외계의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우리의 감성에 주어 지는 표상 즉 의식 내용을 말한다. 내용은 인식의 소재(Stoff) 또는 질 료(Materie)로서 외래적인 것이므로 후천적, 경험적인 요소이다. 한편 형식이란 질료 즉 다양한 감각의 내용을 종합 통일하는 한정성 限定性 이며 테두리이다. 즉 감각적 단계에서 형성된 각종의 질료를 통일 하는 뼈대이다. 이 형식이야말로 선천적인 것이며, 그 감성적 내용에 543 통일성을 주는 테두리이다. 이 선천적인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 나는 감각의 다양한 내용을, 직감적으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정하는 테두리로서의 직관형식直觀形式이며, 또 하나는 오성悟性의 사유를 한정하 는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이러한 선천적인 형식에 의해서 보편타당성을 지닌 종합판단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시간적, 공간적 개념으로서의 직관형식은 감성적 단계에서 감각의 다양한 내용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직감적直感的인 틀(형식)이 다. 그러나 감성적 단계에서의 직감만으로는 인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인식이 성립되려면 대상이 오성에 의해 사유되는 과정이 필요하며, 따 라서 오성단계에 있어서의 사유를 한정하는 테두리로서의 선천적인 형 식, 즉 선천적인 개념으로서의 사유형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직관형식으로 포착한 내용과 사유형식(개념)의 결합에 의해 인식이 성 립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칸트는 ‘내용없는 사유는 공허하며,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10)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칸트는 오성에 있어서의 선천적인 개념(사유형식)을 순수오성개념 (reiner Verstandesbegriff) 또는 카테고리(Kategorie, 범주)로 불렀 다. 그리고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일반논리학에 있어서의 판 단의 형식(오성형식)을 정리해서 다음과 같은 12가지 카테고리를 도출 하였다. 1. 분량(Quantität)……단일성單一性(Einheit) 수다성數多性(Vielheit) 총체성總體性(Allheit) 544 2. 성질(Qualität)……실재성實在性(Realität) 부정성否定性(Negation) 제한성制限性(Limitation) 3. 관계(Relation)……실체성實體性(Substanz) 인과성因果性(Kausalität) 상호성相互性(Gemeinschaft) 4. 양상(Modalität)……가능성可能性(Möglichieit) 현실성現實性(Wirklichkeit) 필연성必然性(Notwerdigkeit) 이와 같이 칸트는 대상의 감성적 내용이 직관형식을 통하여 직감되 고 사유형식思惟形式(카테고리)을 통하여 사유됨으로써 인식이 가능해진 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감각적 단계에 있어서의 감성적 내용(직관적 내용)과 오성적 단계에 있어서의 사유형식은 자동적으로 종합되는 것 이 아니다. 감성과 오성은 같은 인식능력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본 질적으로는 이질적인 것이다. 여기에 양 요소를 공유하는 제3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구상력構想力(상상력, Einbildungskraft)이며, 이 구상 력에 의해서 ‘직관적 내용’과 ‘사유형식’이 통일되어서 다양한 질료의 단편들이 종합․통일되게 된다. 이와 같이 ‘감각적 단계’의 ‘직관적 내 용’과 ‘오성적 단계’의 ‘사유형식’이 구상력에 의해 종합․통일되어 생긴 구성물이 바로 칸트에 있어서의 ‘인식의 대상’이다. 따라서 칸트에 있 어서의 ‘인식의 대상’은 객관적으로 외계外界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545 인식의 과정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인식의 대상은 경험론의 후천적인 요소와 이성론의 선천적인 요소가 하나로 통일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때 인식하는 우리들의 의식은 경험적, 단편적인 의식이어서는 안 되며, 경험적인 의식의 근저根底에 통일력을 지닌 순수의식純粹意識이어야 한다. 칸트는 그것을 의식일반意識一般(Bewusstsein Überhaupt), 순수통각純粹統覺(reine Apperzeption) 또는 선험적통각先驗的統覺(transzendentale Apperz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감성과 오성의 작용이 어떻게 결 부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칸트는 구상력構想力이 그 매개의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3) 형이상학의 부정과 물자체 이리하여 현상세계에 있어서의 인식, 즉 자연과학이나 수학에 있어 서, 어떻게 해서 확실한 인식이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논한 후 에, 칸트는 형이상학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지 아니한가를 검토하였 다. 감각적인 내용이 없는 형이상학은 감성적직관의 대상이 될 수 없 으며, 따라서 인식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작용은 오성만에 관한 것이어서 감성과는 직접 관계하지 않으므로, 현실로 존재하지 않 은 것을 마치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와 같은 착각을 칸트는 선험적 가상(transzendentaler Schein)이라고 불렀다. 선험적 가상先驗的仮象에는 영혼의 이념, 우주(세계)의 이념, 그리고 신의 이념11)의 세 가지가 있다. 그 중 우주의 이념 즉 우주적 가상宇宙的仮象을 순수이성의 이율배반二律 背反 (Antinomie)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성이 무제약자(무한한 우주)를 546 추구할 때, 동일한 논거에서 두 개의 전혀 상반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있고, 공간적 으로 한계가 있다’(정립),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없고, 공간적으로 한계가 없다’(반정립)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명제가 그 예이다. 이것은 감성에 주어진 내용을 그대로 세계 전체로서 파악하려고 하는 데서 오 는 오류라고 하였다. 칸트는 대상에서 오는 감성적 내용이 주관의 선천적인 형식에 의해 서 구성되는 한에 있어서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며, 대상 그 자체, 즉 물자체(Ding an sich)는 결코 인식될 수 없다고 하였다. 물자체物自體의 세계란 현상적 세계의 배후에 있다고 보는 세계이며, 예지계叡智界라고 도 한다. 그러나 칸트가 물자체의 세계를 부정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실천이성비판’에서 그것은 도덕을 실현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세계라 고 하였다. 그리고 예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와 영혼의 불사不死 와 신의 존재가 요청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2)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 다음은 유물변증법에 근거한 인식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유 물변증법에 의한 인식론은 마르크스주의 인식론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 의 인식론이라고 불려진다. 1) 반영론(모사설) 유물변증법에 의하면, 정신(의식)은 뇌의 산물 또는 기능이다.12) 그 547 리고 객관적 실재가 의식에 반영됨(모사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진다 고 보고 있다. 이것을 반영론反映論 또는 모사설模寫說(teoriya otrazhenia, copy theory)이라고 한다. 그것을 엥겔스는 ‘우리들 은…… 다시 유물론적으로, 우리들의 두뇌 속의 개념을 현실의 사물의 모사라고 이해하였다’13)고 말하고, 레닌은 ‘인간의 의식은(인간의 의식 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 거기에서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고, 또 발전 하고 있는 외계를 반영한다’14)고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에 있어 서는 칸트가 말하고 있는 감성적 내용이 그대로 객관적 실재의, 의식 에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사유형식도 객관세계의 실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2) 감성적 인식, 이성적 인식, 실천 인식은 단순히 객관적 세계의 반영이 아니다. 반영된 내용은 반드시 실천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레닌은 그 과정을 다음과 같 이 설명하고 있다. ‘생생한 직관으로부터 추상적 사고로, 그리고 이것 에서 실천으로…… 이것이 진리인식의, 즉 객관적 실재의 인식에 대한 변증법적인 과정이다’15). 유물변증법적 인식의 과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모택동이 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식은 실천을 터로 하고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것 이 인식의 발전과정에 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론이다. …… 즉 인식 은 낮은 단계에서는 감성적인 것으로서 나타나며, 높은 단계에서는 논리 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어느 단계거나 모두 하나의 통일적인 인식과정 548 의 단계이다. 감성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성질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 서 그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기초 위에서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16) 인식과정의 제1보는 외계의 사물에 접촉하기 시작하는 것으로서, 그것 은 감각의 단계이다 [감성적 인식의 단계]. 제2보는 감각된 재료를 종 합하여 정리하고 개조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개념, 판단 및 추리의 단계 이다 [이성적 인식의 단계].17) 이와 같이 인식은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또는 ‘논리적 인 식’)으로, 그리고 ‘이성적 인식’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데 인식과 실천은 일회한一回限의 것이 아니다. ‘실천, 인식, 재실천, 재 인식이라는 형식이 순환왕복하여 무한히 반복되며, 그리고 각 순환마 다 실천과 인식의 내용이 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18)는 것이다. 칸트는 주관主觀이 대상을 구성하는 한에 있어서만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물자체’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함으로 써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는 현상을 통해서만 사물의 본질이 인식되어지며, 실천에 의하여 사물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상에서 유리遊離된 ‘물자체’의 존재는 부정했다. 엥겔스는 칸트에게 반론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칸트의 시대에는 자연의 물체에 관한 우리들의 지식이 극히 단편적이었 으므로, 칸트도 그 자연물에 대해서 우리들의 얼마 안 되는 지식의 배후 에 무엇인가 아직 신비한 ‘물자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놀라운 진보에 의해서 이러한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차 549 례차례로 파악되고 분석되었다. 그뿐 아니라 재생산(reproduce)되기까 지에 이르렀다. 적어도 우리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우리들이 인식할 수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19) 그런데 인식과 실천의 과정에 있어서 실천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다. 즉 모택동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을 제일의 지위에 놓으며, 인간의 인식은 조금도 실천으로부터 떠날 수 없다’20)고 말하 고 있다. 그리고 실천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작용이나 인간의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말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경 우에는 그 중에서도 혁명을 최고의 실천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 식의 최종적인 목적은 혁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모택동은 다 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식의 능동적 작용은,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으로의 능동적인 비약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중요 한 것은 그것이 더욱 이성적 인식으로부터 혁명적 실천으로 라는 비약 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21) 여기서 ‘논리적 인식’(이성적 인식)에 있어서의 사유형식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논리적 인식’은 개념을 매개로 하는 판단, 추리 등 의 사유활동을 말하지만, 그 때 사유형식은 중요한 역할을 다 하고 있 다. 반영론反映論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는 사유형식이 객관세계에 있어 서의 제과정의 의식에의 반영, 즉 존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 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의 카테고리(실재형식․사유형식)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22) 물질 한도限度 550 운동 모순 공간 개별과 보편 시간 원인과 결과 의식 필연성과 우연성 유한과 무한 가능성과 현실성 양 내용과 형식 빌 본질과 현상 3)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 인식과 실천의 반복에 의해서 지식이 발전해 가는데, 지식의 발전이 란 지식의 내용이 풍부해지는 것과 지식의 정확도가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 지식(진리)의 상대성과 절대성이 문제가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 실재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 진리라고 한 다. 즉 ‘우리들의 감각, 지각, 표상, 개념, 이론이 객관세계와 일치하며, 그것을 올바르게 반영한다면 그것들은 참眞이다 라고 한다. 또 참된 언 명言明, 판단 또는 이론을 진리라고 부른다’23)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마르크스주의는 실천 -결국은 혁명적 실천- 이 진리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식이 참인가 아닌가는 실천을 통하여 현실 과 비교하며, 인식이 현실에 일치하고 있는가 있지 않은가를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실천 속에서 인간은 그 사고의 진 리를, 다시 말하면 그 사고의 현실성과 힘力, 차안성此岸性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24)고 했고,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사람들의 사 회적 실천만이 외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진리인가 아닌가의 기준 551 이라고 생각한다’25)고 하였다. 결국 혁명적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시대의 지식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해서 상대적 진리에 머물지만,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지식은 완전한 절대적 진리에 한없이 가까워진다고 하면서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승인한다. 그러므 로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의 사이에 넘기 어려운 경계는 존재하 지 않는다’26)라고 레닌은 말했다. 그리고 ‘상대적인 진리 속에 절대적 으로 참다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이 부단히 축적되었을 때 절대적진리가 된다’27) 고 하였다. 이상으로 ‘종래의 인식론’의 항목을 전부 마친다.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상은 종래의 인식론의 요점을 참고로 소개했을 뿐이며, 따라서 통일인식론의 이해를 위해서 꼭 필요 한 부분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혀둔다. 二. 통일인식론 이상에서 종래 인식론의 개요를 살펴보았는데, 다음은 통일사상에 의한 인식론 즉 통일인식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통일인식론은 통일원리 중 인식에 관련된 개념과 문선명 선생의 설교, 강연 중에서 이에 관련된 내용 및 저자의 질문에 대한 문 선생님의 답변 등을 근거 로 하여 세운 인식에 관한 이론체계28)이며 문 선생님의 지도 하에 이 루어진 것이다. 552 1. 통일인식론의 개요 통일인식론은 종래의 인식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 다. 그리하여 종래의 인식론이 다룬 문제, 예컨대 인식의 기원, 인식의 대상, 인식의 방법 등을 다루면서 통일인식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인식의 기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인식의 기원이 경 험에 있다고 보는 경험론과 이성에 있다고 보는 이성론(합리론)이 형 성되었으나,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회의론에 빠졌고, 합리론은 볼프에 이르러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칸트 는 ‘선험적 방법’에 의해 경험론과 합리론의 통일을 기도하였다. 그러 나 칸트는 물자체를 불가지不可知의 세계에 남겨놓고 말았다. 이에 대하 여 통일인식론의 입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까지의 인식론은 인식의 주체(인간)와 인식의 대상(만물)의 관 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명확히 몰랐기 때문에, 이성론과 같이 인식의 주체에 중점을 두고 이성(또는 오성)이 추론하는 대로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거나, 경험론과 같이 대상 에 중점을 두고 감각을 통하여 대상을 그대로 파악함으로써 인식이 이 루어진다고 하였던 것이다. 칸트는 대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요소와 주체가 갖고 있는 사유형식 이 구상력에 의하여 종합․통일되어 인식의 대상이 구성構成됨으로써 인 553 식이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주체(인간)가 지닌 요소와 대상(만물) 이 지닌 요소와의 종합에 의해 인식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그러나 그 는 양자(주체와 대상)의 필연적인 관계를 몰랐기 때문에, 주체의 카테 고리라고 하는 테두리 내에서밖에 인식할 수 없다는 논리가 되어서 결 국 물자체는 불가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에 있어서, 이념이 자기를 외부에 소외 시켜서 자연이 되었다가 나중에 인간의 정신을 통하여 본래의 자기를 회복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연은 인간의 정신이 발생하기 까지의 하나의 과정적 존재에 불과하며, 항구적인 존재로서의 적극적 인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는,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립하는 우연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인식의 주체(인간)와 인식의 대상(만물)의 관계를 어 떻게 해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무신론 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과 만물과의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 되지 않는다. 또 우주는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우주생성설의 입장에 서 보더라도 인간과 만물은 서로 우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나 님에 의해서 인간과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질 때 비로소 인간과 만물은 필연적인 관계가 확인되게 된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인간과 만물은 모두 피조물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즉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 즉 주관의 주체이며, 만물은 인간에 대하여 기쁨의 대상이요 미의 대상이며, 따라서 주관의 대상이 다. 주체와 대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기계에 있어서의 원동기原動機와 작업기作業機의 관계와 같다. 원동기가 없는 작업기는 있 을 필요가 없고, 또 작업기가 없는 원동기도 있을 수 없다. 양자는 주 554 체와 대상이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찬 가지로 인간과 만물도 주체와 대상이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도록 창 조된 것이다. 인식이란, 인간주체가 기쁨의 대상이요, 미의 대상이요, 주관의 대상 인 만물을 판단하는 행위이다. 그 때 인식 즉 판단에는 ‘경험’이 수반 되는 동시에, 판단 그 자체는 ‘이성’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 서 인식에는 경험과 이성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경험과 이성은 다같이 필수적인 것이며, 양자가 통일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만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으므로, 인간은 만물을 완전히 또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것 이다. (2) 인식의 대상 통일사상은 우선 인간의 외부에 만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즉 실 재론을 인정한다. 인간은 만물에 대하여 주체이므로, 만물을 주관하고 (재배․육성하거나, 취급․가공․이용하거나 하는 것 등) 만물을 인식한다. 그것을 위하여 만물은 인식의 대상으로서, 또 주관의 대상으로서, 인 간과 독립하여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인식론은 또, 인간은 만물의 총합실체상으로서 우주의 축소체 즉 소우주이기 때 문에, 인간은 만물의 구조構造, 요소要素, 소성素性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몸을 표본으로 하여 상징적으로 인간과 비 슷하게 창조된 것이 만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몸과 만물은 상사성相似性 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에 있어서 몸은 마음을 닮도록 지 555 어진 것이다. 인식은 반드시 판단을 동반하는데, 판단이란 일종의 측정작용測定作用 이라고 볼 수 있다. 측정에는 기준(척도)이 필요한 바, 인식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觀念이며, 그것을 ‘원형原型’ 이라고 한다. 원형은 마음속에 있는 영상映像이며, 내적인 대상이다. 이 마음속의 영상(내적영상)과 외계의 대상에서 오는 영상(외적영상)이 조 합照合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실재론은 인간 속에 있는 선재성先在性의 관념을 무시하고 외계의 존재만을 주장했다. 반영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가 그 대표 이다. 또 그와 반대로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 관념만이 인식의 대상 이 된다고 하는 주장이, 버클리에 의해 대표되는 ‘주관적 관념론’이다. 그런데 통일인식론에 있어서는 이 실재론과 관념론(주관적 관념론)이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 (3) 인식의 방법 통일인식론의 방법은 칸트의 선험적 방법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과는 다르다. 수수법授受法, 즉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의 원리가 통 일인식론의 방법이다. 따라서 방법에서 볼 때 통일인식론은 수수법적 인식론이 되는 것이다. 인식은 주체(인간)와 대상(만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주체와 대상에는 각각 지니지 않으면 안 되 는 조건이 있다. 마치 예술의 감상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이 각각 갖추 어야 할 조건이 있었던 것과 같다. 작품을 감상할 때 주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대상에의 관심과 가치추구욕 및 주관적요소 등이며, 대상이 556 갖추어야 할 조건은 창조목적과 상대적요소의 조화였다. 그와 마찬가 지로 인식에 있어서도 주체와 대상에 조건이 필요하다. 주체적 조건은 주체가 ‘원형’과 ‘관심’을 갖는 것이며, 대상적 조건은 대상이 ‘속성(내 용)’과 ‘형식’을 구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수작용에는 존재의 이단구 조의 원칙에 따라 내적수수작용(내적사위기대)과 외적수수작용(외적사 위기대)이 있다. 인식은 먼저 외적수수작용이 행해지고 이어서 내적수수작용이 행해 짐으로써 성립된다. 이와 같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인식이 이루어진다 는 이론을 수수법적 인식론이라고 한다. 즉 관심을 가진 주체(인간)와 대상적 조건을 구비한 만물과의 사이에 수수작용이 행해진다. 이 때 먼저 감성적 단계의 마음(감성)에 대상의 속성(내용)과 형식(존재형식) 이 반영되어서, 영상映像으로서의 내용(감성적 내용)과 형식(감성적 형 식)이 형성된다. 이것을 ‘외적영상外的映像’이라고 한다. 외적수수작용(또 는 외적사위기대)에서 나타나는 영상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 및 형식 (외적영상)과, 주체가 전부터 가지고 있던 원형原型(내용과 형식:내적영 상)과의 사이에 또 수수작용(대비형의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이것이 내적수수작용(또는 내적사위기대 형성)이다. 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비 로소 인식이 성립된다. 여기서 통일인식론의 방법과 칸트의 선험적 방법 및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과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칸트에 있어서의 내용(감성적 내용)은 외계(대상)에서 수용된 것이며, 형식 즉 직관형식 과 사유형식은 주체가 지닌 선험적先驗的이며 주관적主觀的인 요소이다. 따라서 내용은 대상에 속하고 형식은 주체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물자체를 불가지의 세계로 넘겨버렸기 때문에, 그의 감 557 성적 내용은 실체가 없는 내용, 즉 주체(주관)에만 속하는 내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국 칸트에 있어서는 내용도 형식도 모두 주체 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관념론자라고 자주 불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수수법적 방법에 있어서는 내용과 형식이 주체에도, 대상에도 속해 있다. 즉 주체도 내용과 형식을 구비하고 있고, 대상도 내용과 형식을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에 있어서는 내용과 형식이 모 두 객관적 실재客觀的 實在인 대상에만 속해 있고, 주체의 의식은 단지 그 것을 반영할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통일사상의 수수법적 방법은 선험 적 방법과 변증법적 방법을 함께 구비하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외적수수작용에 반영론적요소가 포함되어 있 고, 내적수수작용에 선험적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통일인식론 에 있어서 변증법적 방법(反映論)과 선험적 방법이 통일되어 있는 것 이다. 2. 인식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 일반적으로 내용과 형식을 말할 때, 사물 속에 있는 것을 내용이라 고 하고, 외부에 나타난 모양을 形式이라고 하지만, 인식론에서 다루 는 내용이란 사물의 속성을 말하고, 형식이란 그 속성이 규제되어서 나타나는 일정한 틀을 말한다(즉 속성이 일정한 틀을 통해서 나타날 때 그 틀을 형식이라고 한다). 558 (1) 대상의 내용과 주체의 내용 인식의 대상은 만물 또는 사물이므로, 대상의 내용이란, 만물(사물) 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속성 즉 형태, 중량, 길이, 운동, 빛깔, 소 리, 냄새, 맛 등을 말한다. 따라서 대상의 내용은 물질적 내용 즉 형상 적인 내용이다. 한편 인식의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주체의 내용이 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속성을 말하는데, 그 속성도 만물(사물) 의 속성과 같이 형태, 중량, 길이, 운동, 빛깔, 소리, 냄새, 맛 등의 물 질적 내용인 것이다. 보통 인간의 속성이라고 하면 이성, 자유, 영성 등을 말하는 경우가 많으나 인식론에서는 내용의 상사성相似性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상 (만물)과 동일한 속성을 다룬다. 인간은 우주의 축소체(소우주)이며 만 물의 총합실체상이므로, 인간은 만물이 가지고 있는 구조, 요소, 소성 등을 모두 통일적(축소적)으로 구비하고 있다. 즉 인간은 만물이 가지 고 있는 속성과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인간)와 대상(만물)이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으로는 인식에 있어서의 수수작용은 성립되지 않는다. 인식은 일종의 사유현상이기 때문에, 내용은 주체의 마음에도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주체의 마음속에 있는 이 내용이 원형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것은 원형속의 내용 부분으로서, 원의식原意識(생명체가 가지는 잠재의 식……후술) 속에 나타나는 원영상原映像을 말한다. 이 원영상은 인간의 몸의 속성에 대응하는 심적영상心的映像으로서, 이것은 외계의 만물의 속 성(물질적 내용)에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심적영상 즉 원영상은 물 질적 내용에 대응하는 심적내용 즉 성상적性相的 내용이 되는 것이다. 559 이와 같이 인간의 몸의 속성은 만물의 속성(물질적 내용)에 대응하고 인간의 심적영상(원영상)은 인간의 몸의 속성에 대응한다. 따라서 결국 인간의 심적영상은 만물의 속성에 대응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므로 인식에 있어서 주체(인간)의 심적내용 즉 원영상과, 대상(만물)의 물질 적 내용(감성적 내용)이 서로 대응하게 되어, 주체와 대상사이에 수수 작용이 벌어져서 이때 인식이 이루어진다. (2) 대상의 형식과 주체의 형식 인식의 대상인 만물(사물)의 속성은 반드시 일정한 틀(framework) 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 일정한 틀이 존재형식이다. 존재형식은 사물 의 속성의 관계형식이기도 하다. 이 존재형식 또는 관계형식이 인식에 있어서의 대상의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우주의 축소체(소우주)이며 만물의 총합실체상이므로, 인간의 몸은 만물이 지니고 있는 존재형식과 같은 존재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식에 있어서의 형식은 마음속의 형식, 즉 사유형식이 아니면 안 된다. 이것은 몸의 존재형식이 원의식原意識속에 반영된 것, 즉 형식상形式像(또는 관계상)이며, 원형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3) 원형의 구성요소 인식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尺度이 되는 주체속의 심적영상心的映像을 원 형原型이라고 하며, 원형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첫 560 째로, 원영상原映像이다. 이것은 인체의 구성요소인 세포나 조직의 속성 이 원의식에 반영된 영상이다. 즉 원의식原意識이라는 거울에 비춰진 세 포나 조직의 속성의 영상이 원영상인 것이다. 원형을 구성하는 둘째 요소는 관계상 즉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원의식 에는 인체의 세포나 조직의 속성뿐만 아니라 속성의 존재형식存在形式(관 계형식)도 원의식에 반영되어서 영상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관계상關係 像 으로서, 이 관계상이 현재의식의 사고작용에 일정한 제약을 주는 사 유형식이 되고 있다. 이상의 원영상과 관계상(사유형식)은 경험과는 관 계가 없는 관념 즉 선천적先天的인 관념으로서, 원형에는 그 외에 과거 및 인식의 직전까지 경험에 의해 부가되는 후천적後天的인 관념도 있다. 즉 인식에 앞서서 그때까지의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 관념(경험적 관 념)은 그 후의 인식에 있어서 원형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 리들은 한번 경험한 사물과 동일한 사물을 대하였을 때, 쉽게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형은 원영상, 관계상(사유형식), 경험적 관념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형은 경험에 앞서는 선천적인 요소와 경 험을 통하여 얻어진 요소, 즉 경험적요소로 되어 있다. 선천적요소란 본래의 의미의 원형原型을 말하며, 원의식에 나타난 원영상과 관계상을 말한다. 이것은 경험과는 관계없는 ‘선천적인 원형’이다. 이것을 ‘원초 적 원형’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경험적요소란 일상생활의 체험에 있 어서 마음속에 영상으로 나타나는 ‘경험적 관념’을 말하며, 일단 나타 나면 그 이후 원형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경험적 원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선천적 원형先天的 原型과 경험적 원형經驗的 原型이 결합된 원형을 ‘복합원형複合原型’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원형은 모두 561 복합원형인 것이다. (4) 원형의 선재성과 그 발달 상술上述한 바와 같이 원형에는 선천적인 요소와 경험적인 요소가 있 기 때문에 어떤 순간의 판단은 그 이전에 형성된 원형(복합원형)이 그 판단의 기준(척도)이 된다. 이와 같이 인식에 있어서 그 인식의 판단기 준(원형)은 반드시 미리 갖춰져 있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원형의 선 재성先在性’(priority)이라고 한다. 칸트는 인식의 주체가 가지는 형식을 선천적(a priori)이라고 주장했는데, 통일인식론에서는 주체가 지니는 원형의 선재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이 출생하면서 가지고 있던 원형(원영상, 관계상)은 출생 직후의 유아의 경우 세포, 조직, 기관, 신경, 감각기관, 뇌 등의 미발달 때문에 아직 불완전하다. 따라서 인식은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 나 유아幼兒가 성장함에 따라 신체의 발달과 더불어 원영상이나 관계상 은 점차로 명료해진다. 여기에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 새로운 관념이 계속 첨가된다. 이리하여 원형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발달한다. 이것 은 곧 기억량의 증대 또는 새로운 지식의 증대를 의미하는 동시에 경 험적 원형의 발달, 더 나아가서 복합원형의 발달을 의미한다. 3. 원의식, 원의식상 및 범주 (1) 원의식 562 ‘원리강론’에는 ‘피조물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해 성장한다’29)라고 되어 있다. 여기의 주관성이나 자율성은 생명력의 특 징을 말한다. 생명이란, 생물체의 세포나 조직에 들어있는 잠재의식을 말하며, 잠재하고 있는 감지력感知力, 각지력覺知力, 합목적合目的적인 능력 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이란, 감지성, 각지성, 합목적성을 지닌 잠재의 식이다. 여기서 감지성이란 사물에 관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 는 능력을 말하며, 각지성은 알고 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능력을 말하 며, 합목적성은 일정한 목적을 지니면서 그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력意志力을 말한다. ‘원의식’이란, 근본이 되는 의식이라는 뜻으로서, 그것은 세포나 조직 속에 들어 있는 생명(우주의식)을 말한다. 마음의 기능이라는 점에서 볼 때 원의식은 저차원의 마음이다.30) 따라서 그것 은 세포 속에 들어간 저차원低次元의 우주심 또는 저차원의 하나님의 마 음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의식原意識은 동시에 또 생명이다. 우주의식이 세포나 조직에 들어 가서 개별화된 것이 원의식이며, 생명이다. 즉 세포나 조직 속에 들어 온 우주의식이다. 마치 전파가 라디오에 들어가 음성을 내고 있는 것 처럼, 우주의식이 세포나 조직 속에 들어가서 그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31) 결국 원의식이란 생명이며, 그것은 감지성感知性, 각지성覺知性, 합목적성合目的性을 가진 잠재의식이다. 통일사상에 의하면, 하나님은 로 고스로써 우주를 창조하실 때, 생물의 각 개체의 계대를 위해서, 즉 번식에 의한 종족보존을 위해서 그 개체에 고유한 모든 정보(즉 로고 스)를 물질적 형태의 기록(암호)으로 세포 속에 봉입封入해 두었다고 본 다. 그 암호가 바로 DNA(디옥시리보 핵산)의 유전정보로서, 아데닌 563 (adenine), 구아닌(guanine), 티민(thymine), 사이토신(cytosine)이라 는 4종류의 염기鹽基의 일정한 배열인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 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되어 있다. 만 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흙으로 세포를 만들고 생명을 불 어넣으시니 세포는 산 세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포에 취입吹入된 우주의식이 원의식이며 생명이다. 우주의식이 세포, 조직에 취입됨으 로써 생물체는 살아있는 개체가 된 것이다. (2) 원의식의 기능 다음은 원의식原意識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원의식의 기 능은 다양하다. 즉 유전정보(암호)의 해독解讀과 정보의 지시사항指示事項 의 수행, 그리고 정보의 전달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주의식이 먼저 세포에 스며들어 가서 원의식 이 되면 먼저 거기에 들어 있는 DNA의 유전정보를 해독한다. 그리고 원의식은 그 정보의 지시에 따라 세포나 조직을 활동시킨다. 그리고 또 생체生體의 성장에 따라 세포․조직의 증대, 신기관新器官의 형성과 성 장, 각 세포간 및 조직 간의 상호관계의 형성 등을 실현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한편 필요에 따라서 각 세포나 조직에 새로이 발생하는 정보를 말초 신경(구심신경求心神經)을 통하여 중추신경에 전달하고, 중추는 다시 말 초신경(원심신경遠心神經)을 통하여 세포나 조직에 새로운 지령(정보)을 내리는데, 이 때 그 정보를 역시 원의식이 전달한다. 이와 같이 세포 564 나 조직과 중추와의 사이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전달자의 역할도 원의 식이 맡아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이 원의식의 기능機能이다. 이러한 기능 은 모두 원의식(잠재의식)의 감지성, 각지성, 합목적성에 기인한다. 원 의식이 이와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동안에 원영상이나 관계상이 발달 하게 된다. (3) 원의식상의 형성 생물체 속의 잠재의식 즉 원의식原意識은 감지성感知性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원의식은 직감적으로 세포나 조직의 구조, 성분, 특성 등을 감 지한다. 더욱이 세포나 조직의 상황변화까지도 원의식은 감지하게 된 다. 그 때 원의식이 감지한 내용, 즉 원의식에 반영된 영상이 ‘원영상原 映像 ’이다. 원의식에 원영상이 생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물체가 거울에 비치는 것, 또는 필름의 노출에 의해 물체가 그 필름에 비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의식은 또 각지성覺知性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감지感知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 즉 원영상을 파지把持하는 것이어서 파지성把持性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포, 조직, 기관 등 체내의 제요소는 각각 개성진리체 및 연체로서, 내적 또는 외적인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존재하고, 작용하며, 성장한다. 예컨대 어떤 하나의 세포의 경우, 그 세포내의 제요소(핵과 세포질)간 에 벌어지는 수수작용이 내적수수작용이며, 그 세포와 타他세포와의 사 이에 벌어지는 수수작용이 외적수수작용이다. 그 때의 수수의 관계가 565 성립하는데, 필요한 여러 조건을 ‘관계형식關係形式’이라고 하며, 만물은 예외 없이 그러한 조건을 갖춘 상황하狀況下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 에 이 관계형식은 ‘존재형식存在形式’이라고도 한다. 이 존재형식은 만물 이 존재하는데 있어서 짜여지게 되는 틀(framework)이기도 한 것이 다. 이 존재형식이 원의식에 반영되어서 이루어진 영상을 ‘관계상關係像’ 또는 ‘형식상形式像’이라고 한다. 원의식은 이와 같이 원영상原映像과 관계 상(형식상)을 지니고 있는데, 원영상과 관계상을 합친 것을 ‘원의식상原 意識像 ’이라고 한다. (4) 사유형식의 형성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인식주체(인간)가 갖고 있는 내용에는 물질 적 내용(형상적 내용)과 심적 내용(성상적 내용)이 있는데 물질적 내용 은 대상(사물)의 속성과 같은 것이며, 심적 내용은 원영상이다. 여기에 서 물질적 내용이 심적 내용의 대응원對應源이 되는 것이다. 여기의 대 응원이란 1 대 1의 대응관계에 있는 두 요소중 원인적 관계에 있는 요소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와 그림자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서, 물체 가 움직이면 그림자도 그에 따라 움직이고, 물체가 정지하면 그림자도 정지한다. 이 때 물체는 그림자의 대응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몸과 마 음의 관계에 있어서 몸이 건강할 때 마음이 건강해지고 몸이 약할 때 마음도 약해진다고 하면, 이때 몸은 마음의 대응원對應源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식의 주체가 지닌 ‘물질적 형식’(형상적 형식)과 ‘심적형 식’(성상적 형식)에 있어서 ‘물질적 형식’이 ‘심적형식’의 대응원이 되 566 는 것이다. 여기서 물질적 형식은 바로 대상(사물)의 존재형식이다. 이미 누차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몸은 만물의 총합실체상이기 때문 에, 만물의 속성 그대로가 몸의 속성이 되고, 몸의 속성이 원의식原意識 에 반영되어서 원영상原映像, 즉 심적내용心的內容이 되듯이, 만물의 존재형 식도 그대로가 몸의 존재형식이 되고, 그것이 그대로 원의식에 반영되 어서 심적형식心的形式, 즉 관계상關係像이 된다. 심적형식이란 바로 사유형 식이다. 즉 사유형식의 뿌리는 존재형식이다. 따라서 존재형식은 사유 형식의 대응원이 되는 것이다. 세포나 조직에 있어서의 관계형식(존재형식)이 원의식에 반영되어서 관계상이 되는데, 이 원의식의 관계상은 일종의 정보가 되어서 대뇌의 중추에 전달되는 바, 먼저 수많은 관계상은 말초신경을 지나서 하위중 추를 거친 다음 대뇌의 상위중추(피질중추)에 모인다. 그 과정에서 여 러 관계상들이 정리되고 분류되면서 사유형식이 확정되어 피질중추에 도달된다고 본다. 즉 외계의 존재형식에 대응하는 심적 형식으로서의 사유형식이 심리 속에 형성되는 것이다. 이 사유형식이 인간이 사고할 때에 그 사고가 따라야 하는 틀이 된 다. 즉 인간의 사고는 사유형식에 따라서 행해진다. 이렇게 되는 것을 ‘사유형식이 사고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사유형식은 가장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기본개념을 의미하는 범주(카테고리)와 동일한 것이다. (5) 존재형식과 사유형식 사유형식의 대응원이 존재형식이므로 사유형식을 알기 위해서는 먼 저 존재형식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567 개체와 개체(또는 요소와 요소)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때 의 형식 즉 관계형식이 곧 존재형식인 것이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가장 기본적인 존재형식으로서 다음의 10가지가 있다. ①존재와 힘…… 모든 개체가 존재할 때, 반드시 거기에는 힘이 작용 한다. 존재를 떠난 힘은 없고, 힘을 떠난 존재도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의 원력이 만물에 작용하여 만물을 존재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성상과 형상…… 모든 개체는 내적인 무형의 기능적요소와 외적인 유형의 질량, 구조, 형태로 되어 있다. ③양성과 음성…… 모든 개체는 성상과 형상의 속성으로서 양성과 음 성을 지니고 있다. 양성과 음성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언제나 작 용하고 있기 때문에, 양음의 조화에 의해서 미가 나타난다. ④주체와 대상…… 모든 개체는 그 자체 내부의 상대적 요소 사이에, 또는 그 개체와 다른 개체와의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고 수 수작용을 하면서 존재한다. ⑤위치와 정착…… 모든 개체는 일정한 위치에 정착한 후 존재한다. 즉 각 위치에는 거기에 적합한 개체가 자리잡고 있다. ⑥불변과 변화…… 모든 개체는 반드시 변하는 면과 변하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다. 피조물은 모두 자동적사위기대(정적사위기대)와 발전적사 위기대(동적사위기대)의 통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⑦작용과 결과…… 모든 개체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면 반드시 거기에 결과가 나타난다. 즉 수수작용에 의해 합성체合性體를 이루거나 신생체新生體가 생긴다. ⑧시간과 공간…… 모든 개체는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시공적時空 的 존재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사위기대(공간적 기대)를 형성하면서 정 568 분합작용正分合作用(시간적 작용)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⑨수數와 원칙…… 모든 개체는 수적존재數的存在인 동시에 법칙적 존재 이다. 즉 수는 반드시 법칙 또는 원칙과 일체가 되고 있다.32) ⑩유한과 무한…… 모든 개체는 유한적(순간적)이면서 무한성(지속성) 을 지니고 있다. 이상은 통일원리의 4위기대四位基臺, 수수작용授受作用,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 을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가장 기본적인 존재형식이다. 이것은 인식의 대상인 만물의 존재형식인 동시에, 인식의 주체인 인간 육신의 구성요 소의 존재형식이다. 이들 존재형식에 대응하는 심적인 형태가 사유형식이다. 즉 ①존재 와 힘 ②성상과 형상 ③양성과 음성 ④주체와 대상 ⑤위치와 정착 ⑥ 불변과 변화 ⑦작용과 결과 ⑧시간과 공간 ⑨수와 원칙 ⑩유한과 무한 등이 그대로 사유형식이 된다. 존재형식은 물질적인 관계형식이며, 사 유형식은 관념의 관계형식으로서 기본적 개념이다. 물론 이 외에도 존재형식이나 사유형식은 더 있을 수 있지만, 여기 에 열거한 것은 통일사상에서 본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다. 칸트가 주 장한 것 같이 사유형식이 존재와 무관계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것같이 외계의 실재형식이 반영되어 사유 형식이 된 것은 더욱 아니다. 인간자신은 원래부터 외계의 존재형식에 대응하는 사유형식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인간자신은 원래부터 시간 성과 공간성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사유형식을 가 지고 있으며, 원래부터 주체성과 대상성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에 ‘주 체와 대상’의 사유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10개의 존재 569 형식에 정확히 대응하는 사유형식이 인간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 다. 4. 인식의 방법 (1) 수수작용 ‘원리강론’에는 주체와 대상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 면 ‘생존과 번식과 작용 등을 위한 힘을 발생한다’33)고 되어 있다. 여 기서 ‘번식繁殖’이란, 넓은 의미에서 출현, 발생, 증대, 발전을 의미한다. 또 ‘작용作用’은 운동, 변화, 반응 등을 의미한다. 인식은 지식의 획득이 나 증대를 의미하므로, 수수작용에 의한 ‘번식’의 개념에 포함된다. 따 라서 인식은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라는 명제 가 세워진다. 인식에 있어서의 주체는 일정한 조건 즉 대상에 대한 관심과 원형을 갖춘 인간을 말하고, 대상은 내용(속성)과 형식(존재형식)을 갖춘 만물 (사물)을 말한다. 이 양자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 이다. (2) 사위기대의 형성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반드시 목적을 중심하고 이루어지게 되는 데, 그 수수작용의 결과로서 인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인식은 4위기대 570 형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그림 9-1) 그림 9-1. 인식에 있어서의 4위기대 형성 사위기대는 중심, 주체, 대상, 결과라는 4개의 위치에 의하여 성립된 다. 다음에 그 각각의 위치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中心 수수작용의 중심이 되는 것은 ‘목적’이며, 목적에는 원리적인 목적과 일상적․현실적인 목적이 있다. 원리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피조물을 지 으신 창조목적으로서, 피조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 피조물의 존재목적 즉 피조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심정(사랑)이 그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도 사랑을 동기로 하여 만물을 인식하는 것이 본래 의 인식의 자세이다. 창조목적(피조목적)에는 ‘성상적 목적’과 ‘형상적 목적’이 있으며 이 각각의 목적에는 다시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이 있 다. 인식에 있어서 인간의 전체목적이란 이웃, 사회, 국가, 세계에 봉 사하기 위하여 지식을 얻는 것이고, 개체목적이란 개인의 衣食住의 생 활과 문화생활을 위하여 지식을 얻는 것이다. 한편 대상인 만물의 전 체목적은 인간에게 지식과 미를 주거나 인간에게 주관되어서 인간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개체목적은 인간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 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 때문에 만물은 그와 같은 창조목적(피 조목적)을 완수할 수가 없어서 만물은 탄식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롬 571 8:22). 일상적인 목적(또는 현실적인 목적)이란, 원리적인 목적을 토대로 한 개별적인 목적, 즉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각 개인의 목적을 말한다. 예 컨대 식물학자가 자연을 볼 때는, 식물학도의 입장에서 자연계의 식물 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할 것이다. 화가가 같은 자연을 대할 때는 美 의 추구를 위한 지식을 얻고자 할 것이다. 또 경제인이 자연을 대할 때는 그 자연을 개발하여 사업을 일으킨다는 입장에서 자연에 대한 지 식을 얻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함은 모두 기쁨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 다. 이와 같이 기쁨을 얻고자 하는 원리적인 목적은 같지만, 각 개인 의 일상적인 목적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할 수 있다. 2) 주체 인식에 있어서 주체가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주체가 지녀야 할 요건의 하나이다. 관심이 없다면 주체와 대상 사이에 상대 기준이 성립되지 않게 되어서 수수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기 때문 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친구와 마주쳤다고 하자. 그가 무 슨 일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면, 관심이 그 일에만 쏠 려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것이 다. 또 등대지기의 부인夫人이 잠을 자고 있을 때, 파도소리 때문에 잠 을 깨지는 않으나, 파도소리보다도 작은 자신의 어린아이 울음소리에 는 잠을 깰 수가 있다. 이것은 파도소리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에는 항상 관심이 있으므로 작 572 은 소리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연히 사물을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 예상치도 않 았는데 갑자기 번갯불을 보고 천둥소리를 듣는 경우가 그 뚜렷한 예이 다. 그와 같은 경우는 주체에 관심이 없어도 인식이 가능한 것같이 생 각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무의식적(잠재의식적)으로나마 반드시 관심 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렸을 때 모든 것에 대하여 놀라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대했던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놀라움과 호기심이 바로 관심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인간은 외국땅에 처음 갔 을 때에도 모든 사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그러나 성 장함에 따라, 또는 여러 번 외국여행을 해봄에 따라서 관심은 습관화 되고 잠재의식화하게 된다. 그것은 관심이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고 잠 재의식 속에서 관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체가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요건은 원형原型을 지니는 것이다. 아무 리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다 해도 원형이 없다면 인식은 이루어지 지 않는다. 예컨대, 처음으로 외국어를 듣는 경우 그 말이 무엇을 뜻 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 람은 ‘낯선 얼굴’로 비치지만, 과거에 만난 적이 있다면 비록 잊어버렸 더라도 왠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체 속에 판단의 기준이 되는 원형이 반드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3) 대상 인식의 대상에는 자연의 만물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의 사물이나 573 사건, 인물 등도 있다. 통일원리에 의하면, 만물은 인간의 대상으로서, 인간은 만물의 주체(주관주)로서 지어졌기 때문에 주체인 인간은 대상 인 만물을 사랑으로 주관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 때 인간은 만물을 감 상하거나 인식하면서 주관하게 된다. 따라서 만물은 미의 대상, 인식 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용으로서 의 만물의 속성과 형식으로서의 존재형식(관계형식)이다. 이와 같은 내 용과 형식은 만물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긴 하지만, 실은 만물 자체가 스스로 구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 만물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총합실체상總合實體相이요 우주의 축소체縮小體이므로, 만 물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형식에 대응하여 축소된 형태로서 역시 내용 과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4) 結果 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 타난다. 여기서 결과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위기대의 성격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상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위기 대에는 ‘내적자동적4위기대’, ‘외적자동적4위기대’, ‘내적발전적4위기 대’, ‘외적발전적4위기대’의 4종류가 있다. 인식은 기본적으로 주체의 ‘내용․형식’과 대상의 ‘내용․형식’이 수수작 용을 통하여 조합照合함으로써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해 가는 과정이다. 따 라서 이 때에는 자동적4위기대가 형성된다. 한편 창조나 주관의 경우 에는 발전적4위기대가 형성된다. 그런데 인식은 주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식없는 주관도, 주관없는 인식도 모두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한 574 다. 그런데 인식과 주관은 인간과 만물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상대적인 회로回路를 이룬다. 즉 인식의 과정은 수수작용에 있어서 대상에서 주체 에로 향하는 회로이며, 주관의 과정은 주체에서 대상으로 향하는 회로 이다. 여기에서 주관에 있어서의 발전적4위기대와 인식에 있어서의 자 동적4위기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주관이란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 므로 주관의 사위기대는 창조의 4위기대와 같은 것이다. 원상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창조의 2단구조 즉 ‘내적발 전적4위기대’(로고스의 형성)와 ‘외적발전적4위기대’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들 ‘발전적4위기대’에 있어서 먼저 ‘내적발전적4 위기대’가 형성되고, 다음에 ‘외적발전적4위기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즉 ‘내적인 4위기대에서 외적인 4위기대로’라는 순서에 따라서 만물이 창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식을 위한 ‘자동적4위기대’는 먼저 ‘외적 자동적4위기대’가 형성되고, 다음에 ‘내적자동적4위기대’가 형성된다. 즉 ‘외적인 4위기대에서 내적인 4위기대로’라는 순서에 따라서 인식이 이루어진다. 인식은 이 ‘내적자동적4위기대’가 형성됨으로써 그 결과로 서 나타나는 바, 직접적으로는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의 조합照合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러면 그 인식의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일 까. 그것은 다음의 ‘인식의 과정’에서 명백해질 것이다. 5. 인식의 과정 인간이 인식을 통해서 충분한 지식을 얻는 데는 일정한 과정을 거치 게 된다. 그 과정이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로서 감성적 단계․오성적 단 575 계․이성적 단계가 그것이다. 만물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소생․장성․완성 의 3단계를 거치는 것과 같다. (1) 감성적 단계의 인식 이것은 인식과정의 소생적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먼저 외적자동 적4위기대가 형성된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인간)와 대상(만물)간의 수수작용이 행해지고, 대상의 내용과 형 식이 주체의 감각중추에 반영되어서 영상 또는 표상을 형성한다. 이것 이 감성적내용과 감성적형식인데, 이것을 ‘감성적인식상感性的認識像’이라 고 한다(그림 9-2). 그림 9-2. 외적자동적4위기대의 형성 이 단계가 인식의 감성적 단계이다. 이 때 주체는 관심과 원형을 갖 추고 있지만 이 감성적 단계에서의 원형은 아직 인식작용에 적극적으 로 관여하지 않는다. 감성적 단계에서 형성되는 감성적내용이나 감성 적형식은 단편적인 영상映像들의 집합集合일 뿐, 대상을 닮은 통일적인 영상을 이루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대상이 구체적으로 무 엇인지 알지 못한다. (2) 오성적 단계의 인식 576 이 단계는 인식의 장성적 단계이다. 이 오성적 단계에 있어서는 내 적인 자동적수수작용에 의해서 내적인 자동적4위기대가 형성되며, 이 때 감성적 단계에서 전달된 단편적인 영상들이 통일된다. 이 내적수수작용의 중심이 되는 ‘목적’은 감성적 단계의 외적4위기 대 때의 목적과 동일하며, 원리적 및 현실적 목적이 그 중심이 된다. 이 때 주체의 위치에 오는 것이 내적성상 즉 마음의 기능적 부분으로 서, 인식에 있어서 그것은 지․정․의의 통일체인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생심과 육심의 합성체로서 인간의 본심이며, 이것은 동물의 본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식에 있어서 생심의 기능은 가치판단을 주관하고, 육심의 기능은 감각을 주관하며, 양자가 합해서 기억을 주관한다. 따 라서 생심과 육심의 합성체인 본심은 인식에 있어서 가치(진․선․미)를 지향하면서 감각을 통괄하고 기억을 주관한다. 그리하여 인식에 있어 서 마음(본심)의 이러한 기능적 부분을 특히 ‘영적통각靈的統覺’이라고 부 르고자 한다.34) 이리하여 인식에 있어서 내적성상은 통각력統覺力 및 대 비력對比力과 가치판단력 및 기억력으로써 작용하며, 실천에 있어서는 주체성으로서의 가치실천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내적4위기대의 대상의 위치 즉 내적형상에는, 먼저 감성적 단계의 외적4위기대에서 형성된 감성적인식상 즉 감성적내용과 감성적형식이 이 단계로 옮겨져 온다. 그러면 이 감성적내용과 감성적형식에 對應하 는 원영상原映像과 사유형식, 즉 원형이 영적통각靈的統覺에 의해 기억 속 에서 인출된다. 이 두 가지 요소 즉 감성적인식상과 원형이 함께 내적 형상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수수작용이 행해지게 되는데, 이 때의 수수 577 작용은 대비형對比型의 수수작용이다. 주체인 영적통각이 원형과 감성적 인식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대비(대조)하여 그 일치 또는 불일치를 판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9-3과 같다. 이 대비에 의해서 인식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대비를 통일인식론에 그림 9-3. 내적자동적4위기대의 형성 서는 조합照合(collation)이라고 한다. 여기서 인식은 조합에 의해 이루 어진다는 결론이 성립한다. 따라서 통일인식론을 방법에서 보면 조합 론照合論이 된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은 반영론反映論이고, 칸트의 인식론은 구성론構成論이었다. 그러나 오성적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한 번의 인식(내적수수작용)으 로는 인식이 불충분하거나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35) 그 때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까지 실천(실험, 관찰, 경험 등)과 병행하면서 내적수수작용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3) 이성적 단계의 인식 이 단계는 인식의 과정에 있어서 완성적 단계이다. 여기의 이성이 란, 개념(관념)에 의한 사유의 능력을 말한다. 이성은 오성적 단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판단력, 개념화의 능력으로서 작용하였으나, 이성적 단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오성적 단계에서 얻어진 지식을 자료로 하여 사유작용思惟作用에 의해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다. 578 결국 이성적 단계에 있어서의 인식이란 사고思考이다. 이것은 원상에 있어서의 내적발전적4위기대에 의한 구상(로고스)의 형성에 해당된다. 마음속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사고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대비형 의 수수작용이다. 즉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내적형상內的形狀중의 여러 요소(관념, 개념, 수리, 원칙 등)들 가운데 필요한 것을 골라서 내적성 상內的性相이 그것들을 연합, 분리, 분석, 종합함으로써 여러 관념(개념) 들을 이렇게 저렇게 조작한다. 관념(개념)의 조작操作이란 내적성상이 내적형상의 여러 관념이나 개념들을 여러 가지로 대비對比함으로써, 즉 대비형對比型의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새로운 관념(개념)을 얻는 것을 의 미한다. 예컨대, 여러 관념 중에서 ‘아버지’라는 관념과 ‘아들’이라는 관념을 대비해서 합당하다고 느껴지면, 이 두 관념을 결합해서 ‘부자’ 라는 새로운 관념을 얻는다. 또 하나의 예로서, 여러 개념 중에서 ‘사회’라는 개념과 ‘제도’라는 개념을 대비해서 합당하다고 느껴지면 이 두 개념을 합해서 ‘사회제 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 이와 같이 여러 관념이나 개념들 중에 서, 대비를 통하여 필요한 것을 가려낸 후 결합시켜서 새로운 관념이 나 개념을 만드는 것을 관념(개념)의 조작操作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관념(개념)의 조작을 반복하면서 지식은 증대해 간다. 이 내적인 수수 작용에 있어서 내적성상은 역시 영적통각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된 다. 이성적 단계의 인식은 내적발전적4위기대의 형성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그림 9-4). 579 그림 9-4. 내적발전적4위기대의 형성 이성적 단계의 인식에 있어서 새로운 지식의 획득은 매번마다의 판 단의 완결을 동반하면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일단 얻어진 새로 운 지식(완결한 판단)은 사고의 자료로 내적형상 속에 옮겨져서 다음 단계의 새로운 지식의 형성에 이용된다. 이리하여 지식(사고)은 발전해 간다. 즉 내적발전적4위기대 형성을 반복하면서 지식은 발전해 간다 (그림 9-5). 그림 9-5. 내적발전적4위기대 형성(추리)의 반복 이와 같은 내적4위기대의 발전은 실천을 병행하면서 행해지게 되는 데, 실천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신생체新生體)가 내적4위기대의 내적형상 에 옮겨져서 새로운 지식의 획득에 이용된다. 새로운 지식이 얻어지면 다시 새로운 실천을 통하여 그 진위가 검증된다. 이와 같이 하여 반복 적인 실천 즉, 반복적인 외적발전적4위기대의 형성이 인식을 위한 내 적발전적4위기대의 형성과 병행하여 이루어지게 된다(그림 9-6). 그림 9-6. 외적발전적4위기대 형성(실천)의 반복 580 6. 인식과정과 신체적 조건 통일인식론은 통일원리 또는 통일사상을 근거로 한 인식론이므로, 종래의 인식론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통일인식론 의 주장이 과학적 견해에 반한다든지 그것과 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통일인식론도 과거의 인식론과 마찬가지로 주창자主唱者의 단순한 주장 으로 끝나서, 보편타당성이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종래의 인식론 즉 경험론이나 이성론, 칸트의 선험적인식론先驗的認識論 이나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은 모두 과학적인 견해와 무관계한 이론이었 거나, 또는 오늘날의 과학적 견해와 일치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과학 이 발달한 오늘날에 있어서 그것들은 거의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 다. 그런데 통일인식론은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타당한 이론이 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이제부터 논술論述하고자 한다. (1) 심리작용과 생리작용의 병행성 통일사상은 이성성상二性性相인 원상原相을 닮아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모든 존재는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한다 는 것을 주장한다. 인간은 마음과 몸의 ‘이중적존재’이며, 인체를 구성 하고 있는 세포, 조직, 기관 등도 모두 ‘심적요소’와 ‘물질적요소’의 통 일체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이나 작용도 이중적이 어서, 거기에는 반드시 심리작용과 생리작용이 통일적으로 병행하게 된다. 따라서 통일사상에서 보면 인식작용도 반드시 심리적과정과 생 581 리적과정이 병행하고 있다. 예컨대 마음과 뇌의 수수작용에 의해 정신 작용(의식작용)이 나타난다(그림9-7). 여기의 마음이란 생심(영인체의 마음)과 육심(육신의 마음)의 합성체인 것이다. 그림 9-7. 마음과 뇌의 수수작용에 의한 정신작용 뇌腦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펜필드(W. Penfield, 1891~1976)는 ‘뇌는 일종의 컴퓨터이며 마음은 그 컴퓨터를 조작하는 프로그래머 (programmer)와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였다.36) 마찬가지로 저명한 뇌 연구학자인 엑클스(J. C. Eccles, 1903~)도 마음과 뇌는 별개의 것 이며, 마음과 뇌의 상호작용으로서 심신문제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 다고 하였다.37) 그들의 주장은 마음과 뇌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정신작 용이 영위된다는 통일사상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것은 통일인식론이 주장하는 바가 과학적 견해와 일치한다는 실례實例의 하나가 되는 것이 다(그림 9-7). (2) 원의식, 원영상의 대응원 다음은 통일인식론에 있어서의 독특한 개념인 원의식原意識과 원영상原 映像 에 대하여, 그것을 입증할 만한 과학자들의 견해를 살펴 보자.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원의식은 세포나 조직에 스며든 우주의식 또는 생명 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