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제1장 원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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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상요강 제1장 원상론 원문이다.

원문

제1장 원 상 론

Theory of the Original Image

이미 앞에서 말한대로 통일사상은 인류의 모든 난문제難問題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인류를 영원히 구원하기 위해서 출현한 사상이다.

그런데 그러한 난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은 하나님의 속성屬性에 관하여 정확히 또 충분히 이해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이론이 원상론原相論이다. 여기서 원상原相이란 원인적 존재인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속성에는‘꼴’의 측면과 성질, 성품, 능력 등의 기능적 측면이 있다. 전자를신상神相이라 하고 후자를 신성神性이라고 한다.

종래의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도 하나님의 속성을 여러가지로 표현해 왔다. 즉 전지全知, 전능全能, 편재성遍在性, 지선至善, 지미至美, 지진至眞,정의, 사랑, 창조주創造主, 심판주審判主 등으로 하나님을 표현해 왔다. 통일사상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성품은 하나님의 속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이렇게만 파악해서는 현실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다.

통일사상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신성神性’이라고 한다. 하나님에게는 이러한 신성 외에 보다 더 중요한 속성이 있으니 그것이 ‘신상神相’이다. 통일원리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이 바로이것이다. 하나님의 이 신상과 신성을 함께, 그리고 정확히 이해함으

로써만 현실문제(인생문제, 사회문제, 역사문제, 세계문제 등)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게 된다.

통일사상에서 다루는 하나님의 신상이란 두 종류의 이성성상(‘성상․형상’과 ‘양성․음성’)과 개별상個別相을 말하며 하나님의 신성이란 심정心情

, 로고스, 창조성創造性을 말하는 바, 본 원상론에서는 ‘원상의 내용’이라는 제목 하에 신상과 신성의 하나하나의 내용을 설명하고, ‘원상의구조構造라는 제목 하에 신상 중 특히 성상과 형상의 상호관계를 다루고자 한다.

一. 원상의 내용

원상의 내용이란 하나님의 속성 하나 하나의 내용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제목 하에 신상인 성상․형상, 양성․음성, 개별상 등과 신성인 심정, 로고스, 창조성 등의 각각의 내용을 상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신상을 다루고 다음에 신성을 다룬다.

1. 신상神相

신상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꼴’의 측면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정한 꼴 또는 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소재),규정성規定性을 갖고 있다. 이것이 곧 신상이다. 이 신상에 성상과 형상,양성과 음성의 두 종류의 이성성상과 개별상이 있는 바, 먼저 성상과형상을 다루고자 한다.

(1) 성상과 형상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은 본성상本性相, 본형상本形狀이라고도 하며 이양자를 합하여 이성성상이라고 한다. 하나님과 만물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지만, 이 관계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본성상은 피조물의 무형적, 기능적 측면의근본원인이며 본형상은 피조물의 유형적, 질료적 측면의 근본원인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부자父子의 관계로서 서로 닮고 있기 때문에 본성상은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며 본형상은 인간의 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양자는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속성이 아니며, 서로상대적 및 상보적相補的인 관계에서 중화中和(조화調和)를 이루어서1)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원리강론原理講論에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신다(원리강론, 1987, p. 35)고 한 것은이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확히 말해서 신상은 본성상과 본형상이 중화를 이룬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본체론本體論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신상관은 유심론도 유물론도 아니며, 유일론唯一論 또는 통일론統一論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유심론은 본성상만이 우주의 근본이라고 보는 입장에 해당하며, 유물론은 본형상만이 우주의 실체라고 보는 입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성상과 형상의 각각의 내용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1) 성상(본성상)

① 본성상과 피조물

하나님의 성상(본성상)을 인간에 비유하면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며(따라서 성상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의 무형적, 기능적측면의 궁극적 원인이 된다. 즉 인간의 마음, 동물의 본능,식물의 생명, 광물의 물리화학적 작용성의 근본원인인 것이다. 이것을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본)성상이 차원을 달리하면서 시간, 공간의세계에 전개된 것이 광물의 물리화학적 작용성이며, 식물의 생명, 동물의 본능, 인간의 마음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성상(마음)이 광물과 같은 무기물에도 비록극히 낮은 차원에 있어서나마 깃들어 있음을 뜻하며, 식물에 있어서도하나님의 마음이 생명의 형태를 취한, 보다 더 높은 심적기능心的機能으로서 나타나며(최근 인간의 마음에 반응하는 심적 작용이, 식물에도있음이 실험을 통해서 알려지고 있다), 동물의 단계에 있어서는 육심肉心

(본능)의 형태를 취한 한층 더 높은 심적기능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동물에도 인간에서와 똑같은 지정의知情意의 기능 즉 의식이 있음이 밝혀졌다(다만 동물이 인간과 다른 점은 동물에는 인간에서와 같은 자아의식自我意識이 없다는 점이다).

② 본성상의 내부구조

그런데 하나님의 성상(본성상)은 다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바, 내적성상 및 내적형상이 그것이다. 내적성상은 기능적부분機能的部分(따라서주체적부분)을 말하며 내적형상은 대상적부분對象的部分을 말한다. 하나님

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자 한다(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I) 내적성상

기능적부분이라 함은 지․정․의의 기능을 말하는 바, 이 중에서 지적기능은 인식의 능력으로서 감성感性, 오성悟性, 이성理性 등의 능력을 말하며 정적기능情的機能은 정감성情感性 즉 희로애락 등의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며, 의적기능意的機能은 의욕성 즉 욕구하거나 결심, 결단하는 능력을말한다. 이러한 기능은 내적형상에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내적성상은 내적형상에 대하여 주체적 부분이 되고 있다. 지적기능에있어서 감성이란 오관五官에 비치는 대로 아는 능력, 즉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뜻하며, 오성이란 논리적으로 원인이나 이유를 따져서아는 능력이다. 이성이란 보편적 진리를 구하는 능력 또는 개념화槪念化의 능력을 말한다.

이 세 기능을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함에 있어서 먼저 사과가 낙하落下하는 것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였으며, 다음에 사과가 낙하하는 원인을 생각하여 대지와 사과가 서로 인력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으며,다시 그 후에 여러 가지 실험 관찰 등의 연구를 통해서, 지구나 사과뿐 아니라 우주내의 질량을 갖고 있는 모든 물체가 인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경우 처음 단계의 인식이 감성적 인식感性的認識이며,두번째 단계의 인식이 오성적 인식悟性的認識이며, 세번째 단계의 인식이이성적 인식理性的認識 즉 보편적 인식인 것이다.

ii) 내적형상

이것은 본성상 내의 대상적부분을 말하며, 몇 개의 꼴의 요소로써 이루어져 있다. 그 꼴의 요소중 주요한 것은 관념觀念, 개념槪念, 원칙原則

, 수리數理 등이다.

ㄱ)관념…… 관념은 마음(성상)속에 있는 피조물 하나 하나의 구체

적인 표상表象, 즉 영상映像을 말한다. 인간들은 경험을 통해서 객관세계의 사물 하나 하나의 구체적인 모습을 영상으로서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바, 이 영상이 바로 관념이다. 인간의 경우는 경험을 통해서 관념을 얻지만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본래부터 무수한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ㄴ)개념…… 개념은 추상적인 영상을 말하며, 일군一群의 관념에 공통

적으로 포함된 요소가 영상화한 것을 말한다. 예컨대 개, 닭, 소, 말,돼지 등의 관념에 있어서 공통적인 요소는 ‘감각을 가지고 운동하는성질’인 바, 이것을 영상화시키면 ‘동물’이라는 추상적인 꼴을 얻게 된다. 이것이 개념이다. 이 개념에는 종개념種槪念, 유개념類槪念이 있다.

ㄷ)원칙…… 원칙은 피조세계의 자연법칙(예:물리학적 법칙, 화학적

법칙 등) 및 규범법칙(당위의 법칙) 또는 가치법칙의 근본원인이 되는법칙으로서, 수많은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은 이 원칙이 각각 자연현상(물리적 및 화학적현상)과 인간생활을 통해서 나타나는 표현형태인 것이다. 마치 식물(예:나무)에 있어서 한 알의 씨앗이 발아하여 줄기가되고 수많은 잎(葉)들이 무성하게 되듯이, 하나의 원칙에서 수많은 法則(자연법칙, 규범법칙)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ㄹ)수리…… 수리는 수적원리라는 뜻으로 자연계의 수적 현상의 궁

극적 원인을 말한다. 즉 내적형상 속에는 수적현상의 근원이 되는 무수한 수, 수치, 계산법이 관념으로서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수리이다.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만물의 근본은 수이다’라고 말할 때의 ‘수’의 개념, 또 양자역학의 대성에 공헌한 영국의 물리학자 디락(P.

Dirac, 1902- )이 ‘하나님은 고도의 수학자이며, 우주를 구성할 때극히 고급한 수학을 사용했다’2)라고 했을 때의 ‘수’의 개념은 모두 통일사상의 ‘수리’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ⅲ)‘내적형상’의 원리적 및 성서적 근거

다음은 이상의 내적형상에 관한 이론이 통일원리 및 성서의 어디에그 근거가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ㄱ)내적형상…… ‘따라서 내성(성상)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반드시

그 어떠한 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닮아난 그 외형이 눈에 보이는 그 어떠한 꼴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전자를 성상이라 하고후자를 형상이라 한다’(원리강론,1987.p. 33). 이것은 눈에 보이는 ‘꼴’이전에 성상 속에 이미 ‘꼴’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 성상 속의꼴이 바로 ‘내적형상’이다.

ㄴ)관념․개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하나님이 6일간에 걸쳐 만물을 창조함에 있어서 매일 매일의 창조를 마치시고는 ‘그대로 된지라’(창세기 1:7, 9, 11절),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4,10, 12, 18, 21, 25절)고 하셨는데 이것은 마음속에 지녔던 관념,개념대로 피조물이 닮아 났음을 뜻한다.

ㄷ)원칙(원리)…… 하나님은 ‘원리에 의해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원칙에 따라서 섭리를 하심’(원리강론, 1987, p. 108), ‘하나님은원리의 주관자로 계시다’(앞의 책, p. 64), ‘원리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앞의 책, p. 103),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하므로’(앞의 책, p. 92)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원칙(원리)을 세운 후,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셨던 것이다.

ㄹ)수리……‘피조세계는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이 수리적인 원칙

에 의해서 실체적으로 전개된 것이다’(앞의 책, p. 62). ‘하나님은 수리성을 갖고 계시다’(동상), ‘하나님은 수리적으로도 존재하시는 분이시다’(앞의 책, p. 376)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적형상’을 이루고 있는 ‘꼴’의 요소들은 모두 통일원리(원리강론)와 성서에 그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하나님의 본성상 내의 기능적부분(내적성상)과 대상적부분(내적형상)을 인간의 마음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다. 본성상을 이와같이 상세히 다루는 것은 현실문제의 해결을 위해서이다. 예컨대 내적성상인 지․정․의의 기능은 그것이 심정(후술後述)을 터로 하고 작용할때, 사랑을 터로 하는 진․미․선의 가치관이 성립되는데 이러한 가치관은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내적형상은 지․정․의의 대상적부분인 동시에 본형상(후술)과 더불어 피조물의 유형적부분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과, 지․정․의(주체부분)에 대응하는가치가 진․미․선이라는 사실에서, 현실생활에 있어서 의식주의 물질적생활보다도 진 미 선의 가치생활을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이것도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된다.

2) 형상(본형상)

다음은 하나님의 형상(본형상)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①본형상과 피조물

하나님의 형상(본형상)을 인간에 비유하면 인간의 몸에 해당하며, 이것은 모든 피조물의 유형적인 요소(측면)의 근본원인이 된다. 즉 인간의 몸(육체), 동물의 육肉, 식물의 조직세포, 광물의 분자․원자 등의 궁극적 원인인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본형상이 차원을달리하면서 시간․공간의 세계에 전개된 것이 광물의 분자․원자이며, 식물의 조직세포이며, 동물의 육이며, 인간의 몸인 것이다.

이와 같이 피조물의 유형적요소의 근본원인이 하나님의 형상인데 이피조물의 유형적요소의 근본원인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하나는소재(질료)적 요소요, 또 하나는 무한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무한응형성無限應形性)이다(만물의 형태 자체의 근본원인은 내적형상이다).

여기서 ‘무한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무한응형성)’을 비유적으로 예를 든다면 물(水)과 같다 하겠다. 물 자체는 다른 만물과 달라서 일정한 형태가 없다. 그러나 용기容器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를 나타낸다. 삼각형 용기에서는 삼각형으로, 사각형 용기에서는 사각형으로, 원형의 용기에서는 원형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물이 무형인 것은 실은 어떠한 용기의 형태에도 응변應變하는 무한한 응형성應形性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물이 무형인 것은 실은 무한형無限形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형상도 그것 자체는 일정한 형태가 없지만, 어떠한 형태의 영상에도 응변할 수 있는 응형성 즉 무한응형성을

소재적 요소 외에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조물의 유형적요소의 근본원인에는 소재적요소와 무한응형성의 두 가지가 있는데,이 두 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본형상)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경우, 창작(창조)이란 마음이 구상한 ‘무형의 꼴’의 틀에 일치하도록 가시적인 소재(조각의 경우: 석고 또는 대리석)를 변형시키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창작이란, 구상한 꼴의 틀(형식)에다가 소재(내용)를 맞추어 내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경우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본성상내의 내적형상(각종 관념)이 틀(용기) 또는 주형이 되어서, 이 틀에 무한응형성을 지닌 소재적요소를 부어 넣은 후 일정하고도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하는 작업을 창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② 본형상과 과학

본형상에 있어서, 피조물의 유형적 측면의 두 근본원인중의 하나인소재적 요소는 요컨대 과학의 대상인 만물(물질)의 근본원인이기 때문에, 소재적요소와 과학자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오늘의 과학은 물질의 근본원인을 소립자의 전단계인 에너지(물리적에너지)라고 보고 있으며, 그 에너지는 파동성波動性과 입자성粒子性을 띠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결과의 세계, 현상의 세계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 원인이 에너지라 하더라도 궁극적인 제일원인에는 과학이 도달할 수 없다. 본 원상론은 그 궁극적 원인을 바로 본형상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본형상을 과학적 용어로표현하면 에너지의 전단계 즉 ‘전단계 에너지’(Prior-stage Energy)

또는 간단하게 ‘전 에너지’(Pre-Energy)3)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③본형상과 힘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는 본형상(Pre-Energy)에서 수수작용(후술)에 의하여 먼저 두 가지의 힘(에너지)이 발생한다고 본다. 그 하나는‘형성 에너지’(Forming-Energy)요, 다른 하나는 ‘작용에너지’(Acting-Energy)이다.

전자(형성 에너지)는 곧바로 입자로 화化하여 현실적인 물질적 소재가 되어서 만물(피조물)을 형성하고, 후자(작용 에너지)는 만물에 작용하여 만물 상호간에 주고받는 힘(예: 구심력, 원심력 등)을 일으킨다.

이것을 통일사상에서는 원력原力(Prime-Force)이라고 부르며, 이 원력이 만물을 통해서 작용력으로 나타날 때 이 작용력을 만유원력萬有原力(Universal Prime-Forc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본형상에서 수수작용에 의하여 형성에너지 및 작용에너지가발생함에 있어서, 사랑의 근원인 심정(후술)이 수수작용의 터전이 되기때문에 발생한 두 에너지는, 단순한 물리적인 에너지만이 아니며, 물리적에너지와 사랑의 힘과의 복합물인 것이다. 따라서 원력에도, 만유원력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문선명 선생은1975년 5월의 ‘희망의 날 만찬 대강연회’ 이후, 자주 ‘만유원력에도사랑의 힘이 작용한다’고 말씀하고 계심).

3) 성상과 형상의 이동성異同性

다음에는 성상과 형상이 본질적으로 동질적同質的인가 이질적異質的인

가, 즉 성상과 형상의 이동성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론이, 일반 철학상의 본체론으로 볼 때 어떠한 입장이 될 것인가, 즉 ‘성상․형상의 이성성상’논이 일원론一元論인가이원론二元論인가, 또는 유물론인가 유심론(관념론)인가. 여기의 일원론이란 우주의 시원始元이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일원론적 유물론이거나,우주의 시원이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일원론적 유심론(관념론)을 말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전자에 속하고 헤겔의 관념론은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이원론은 물질과 정신이 각각 별개이면서 우주생성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사유思惟(정신)와 연장延長(물질)의 두 실체를 인정하는 데카르트(R. Descartes)의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이 그 예이다.

그러면 통일사상의 ‘성상․형상의 이성성상’론은 일원론인가, 이원론인가, 즉 원상의 성상과 형상이 본래 동질적인 것인가 이질적인 것인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만일 성상과 형상이 이질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이원적二元的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성상(마음)과 형상(전에너지)이 이질적인 두 요소인가, 동질적인 요소의 두 표현태表現態인가를 알아보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성상과본형상은 동질적인 요소의 두 표현태이다. 이것은 마치 수증기와 얼음(氷)이 물(水:H₂O)의 두 가지의 표현태인 것과 같다. 물은 물 분자(H₂O)의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 균형을 이룰 때이며, 열을 가하여 척력이우세해지면 기화氣化하여 수증기水蒸氣가 되고, 기온이 하강下降하여 빙점이하로 떨어져서 인력이 우세해지면 얼음이 된다. 수증기나 얼음은 모두 물의 표현태, 즉 물분자의 인력과 척력의 상호관계의 표현양식에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양자는 전혀 이질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상․형상의 이성성상’도 하나님의 절대속성의,즉 동질적요소의 두 가지 표현태인 것이다. 절대속성이란 에너지적 심이요, 심적 에너지이다. 에너지와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본래 하나이다. 이 절대속성이 창조과정에서 분화된 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서의성상과 하나님의 몸으로서의 형상이다.4)

성상과 형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상은 심적 요소로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에너지적 요소도 갖고 있으며, 단지 심적 요소가 에너지적요소보다 많을 뿐이다. 또 형상은 에너지적 요소로 되어있지만, 거기에는 심적요소도 갖춰져 있으며 에너지적 요소가 심적 요소보다 많을 뿐이다. 그와 같이 성상과 형상은 전혀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양자 모두 공통적으로 심적요소와 에너지적요소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피조세계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정신(마음)과 물질로서 서로 이질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역시 거기에도 공통된 점이 있다. 그것을 표시하는 예로서 마음에도 에너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개구리 등에서 채취한, 신경이 달린 골격근骨格筋(신경근표본)에 대하여 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주면 근육은 수축한다. 한편 우리들은 마음으로써 손이나발의 근육을 움직인다. 이것은 마음이 신경을 자극하여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다. 즉 마음에도 물질적인 에너지(전기에너지)와 같은 에너지가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면술로 타인의 몸, 예컨대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마음에 에너지가 있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에너지에도 성상적요소가 깃들어 있다. 최근의 과학에 의하면, 물리적 진공상태에서 에너지가 진동하여 소립자가 형성되는데, 이때의 에너지의 진동은 연속적이 아니고 단계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마치 음악에 음계音階가 있듯이 동 에너지가 단계적으로 진동해서 그결과 그 단계에 따라서 규격이 다른 소립자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마치 음악에 있어서 음계의 차가 마음에 의해서 나타나듯이 에너지의 배후에도 마음(성상)이 있어서 진동단계를 나타낸다고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이 성상 속에도 형상적요소가있고 형상 속에도 성상적요소가 있지만 원상에 있어서의 성상과 형상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절대속성에서 성상과 형상의 차이가 생기고, 창조를 통하여 그 속성이 피조물이 되어서 피조세계에 나타날 때 이질의 두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적으로표현하면 하나의 점에서 두 방향으로 두 개의 직선이 그어지는 것과같다. 그 때 하나의 직선은 성상(정신)에 대응하고, 다른 직선은 형상(물질)에 대응하는 것이다(그림 1-1).

그림 1-1. 유일론으로 본 성상과 형상의 이동성

성서에는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질을 알 수 있다고 기록되어있다(로마서 1:20). 피조물을 보면 마음(정신)과 육신, 본능과 육肉, 생명과 세포․조직 등의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귀납적으로 볼 때, 절대원인자인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의 이성성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에 있어서 이성성상은 실은 하나로 통일되어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원리강론’에서는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을 본체론에서 볼 때는 ‘통일론’5)이 되게 된다. 그리고 창조를 구상하

기 전의, 절대속성 그 자체만을 표현할 때의 본체론은 ‘유일론’6)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 C.)에 의하면 실체는 형상形相

(eidos)과 질료質料(hyle)로 되어 있다. 형상이란 실체로 하여금 바로그것이 되게 하는 본질을 말하며, 질료는 실체를 이루고 있는 소재를말한다. 서양철학의 기본적인 개념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는 통일사상에서 말하는 성상과 형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거기에는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형상과 질료를 구극究極에까지 소급해 올라가면 순수형상(제일형상)과 제일질료에 도달한다. 여기의 순수형상이곧 하나님이지만 그것은 질료가 없는 순수한 활동이며, 사유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순수한 사유 또는 사유의 사유(노에시스․노에세오스)였던 것이다. 그런데제일질료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체론은 이원론이다. 또 제일질료를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본체론은 하나님을 모든 존재의 창조주로 보고 있는 기독교의 신관과도 다르다.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 1225~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를 근거로 하여, 그와 마찬가지로 순수형상 또는 사유의 사유를 하나님으로 보았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 354~430)와마찬가지로 그는 하나님이 무에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질료를 포함한 일체의 창조주시며 게다가 하나님에게는 질료적요소가 없으므로 그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주장하지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에서 물질이 생긴다는 교의는, 우주

가 에너지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는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하나님과 정신과 물체(물질)를 세 가지의 실체라고 하였다. 구극적으로는 신이 유일한 실체이나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정신과 물체는 각각 하나님에 의존하면서도상호간에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실체라고 하여 이원론을 주장했다.

그 결과, 정신과 물체는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그 설명이 곤란하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이원논을 이어받은 게엘링크스(A. Geulincx,1624~1669)는, 서로 독립한 이질적인 정신과 신체 사이에 어떻게 해서 상호작용이 가능한가 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양자사이를 매개한다고 설명했다. 즉 정신이나 신체의 한편에서 일어나는운동을 계기로 하여 그에 대응하는 운동을 신이 다른 한편에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회원인론(occasionalism)7)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방편적인 설명에 불과할 뿐 오늘날에는 아무도 이것을 거들떠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즉 정신과 물질을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라고 본 데카르트의 관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서양사상이 포착한 형상과 질료 혹은 정신과 물질의 개념에는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난점을 해결한 것이 통일사상의 성상과 형상의 개념, 즉 ‘본성상과 본형상은 동일한 본질적 요소의 두 가지의 표현태이다’라는 이론이다. 이상으로 신상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친다. 다음은 또 하나의 신상인 ‘양성과 음성’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 양성과 음성

1) 양성과 음성도 이성성상이다.

‘양성과 음성’도 하나님의 이성성상이다. 그러나 같은 이성성상인 성상과 형상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성상과 형상은 하나님의 직접적인속성이지만 ‘양성과 음성’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속성이며, 직접적으로는 성상과 형상의 속성이다. 즉 양성과 음성은 모두 성상의 속성인 동시에 형상의 속성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성상(본성상)도 양성과음성을 그 속성으로서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형상(본형상)도 양성과음성을 그 속성으로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양성과 음성도 이성성상과 마찬가지로 중화를 이루고 있다.

원리강론에 ‘하나님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주체로 계시다’(1987, p. 35)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사실을 뜻한다. 이 중화의 개념도 성상과 형상의 중화와 마찬가지로 조화, 통일을 의미하며창조가 구상되기 이전에는 ‘하나’의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이 ‘하나’가창조에 있어서 양적속성, 음적속성으로 분화되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철학인 역학易學의 ‘태극생양의太極生兩儀’(태극에서 음양이 생겨났다)는 맞는 말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양성․음성의 개념은 역학의 ‘양’ ‘음’의 개념과 비슷하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동양적인 개념으로는 ‘양’은 빛(光), 밝음(明)을뜻하며 ‘음’은 그늘(蔭), 어두움(暗)을 뜻한다. 이 기본적인 개념이 확대 적용되어서 여러 가지 의미로 씌어지고 있다. 즉 양은 ‘태양’, ‘산’,‘하늘’, ‘낮’, ‘단단함’, ‘뜨거움’, ‘높음’ 등의 뜻으로, 그리고 음은 이에대응하여 ‘달’, ‘계곡’, ‘땅’, ‘밤’, ‘부드러움’, ‘차가움’, ‘낮음’ 등의 뜻으

로 씌어지고 있다.

그러나 통일사상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은 모두 성상․형상의 속성이기 때문에 피조세계에 있어서 성상․형상은 ‘개체’ 또는 ‘실체’를 이루고있으며, 양성․음성은 이 실체(피조물)의 속성으로 나타나 있다. 예컨대태양과 밝음(明)에 있어서 태양(개체)은 성상․형상의 통일체(실체)이며태양빛의 ‘밝음’만이 양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달(月) 그 자체는 개체(실체)이며 달의 반사광의 ‘밝음의 희미함’만이 음인 것이다.

여기서 통일사상의 ‘실체’의 개념을 잠깐 다루고자 한다. 통일사상의실체는 물론 통일원리의 ‘실체’의 뜻에서 유래한다. 통일원리에는 ‘실체기대’, ‘실체헌제’, ‘실체성전’, ‘실체세계’, ‘실체상’, ‘실체대상’, ‘실체노정’ 등 실체와 관련된 용어가 자주 씌어지고 있는데, 여기의 ‘실체’는 피조물, 개체, 육신을 쓴 인간, 물질적존재 등의 뜻을 지닌 용어이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성상․형상의 합성체(통일체)이기때문에,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피조물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각각개체의 구성부분이 되고 있어서, 성상이나 형상 그 자체도 또한 실체(피조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마치 자동차도 제작물(실체)이며, 자동차의 구성부분인 부품(예: 타이어, 트랜스미션 등)도 제작물(실체)인것과 같다. 따라서 인간의 성상과 형상도 통일사상에 있어서는 각각실체의 개념에 포함된다.

그런데 원상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을 각각 본양성․본음성이라고 한다(원리강론 1987, p. 35). 원상의 ‘본성상과 본형상’ 및 ‘본양성과 본음성’을 닮아난 것이 인간의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이다. 그런데 피조세계에서는 상술한 바와 같이 성상도 형상도 모두 실체의 성격을 지닌

다. 따라서 양성과 음성은 모두 실체로서의 성상․형상(또는 그 합성체合性體

인 개체)의 속성이 되고 있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2와같다.

따라서 원상에 있어서의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의 관계를 정확히 알려면, 인간에 있어서의 실체로서의 성상․형상과 그

그림 1-2. 원상에 있어서의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의 이성성상

속성으로서의 양성․음성의 관계를 알아보면 된다. 다음에 도표로써 인간의 경우의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의 관계를 밝히면 그림 1-3과 같다.

양성 음성성상 지정의 명석, 기억, 상기력, 판명, 재치

유쾌, 시끄러움, 기쁨, 흥분

적극적, 공격적, 창조적, 경솔성

모호, 망각, 기명력, 혼동, 고지식 함

불쾌, 정숙, 슬픔, 침착

소극적, 포용적, 보수적, 신중성

형상 융기부, 돌출부, 철凸부, 표면

함몰부, 공혈부, 요凹부, 이면

그림 1-3. 성상․형상의 속성으로서의 양성․음성(인간의 경우)

이 도표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성상(마음)의 지․정․의의 기능에도각각 그 속성으로서 양성과 음성이 있다. 예컨대 지적기능에는 명석,판명 등의 양적측면과 모호, 혼동 등의 음적측면이 있고, 의적기능에도 적극적, 창조적 등의 양적측면과 소극적, 보수적 등의 음적측면이있다. 그리고 형상(육신)에 양적측면(융기부, 돌출부 등)과 음적측면(함몰부, 공혈부 등)이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이 도표에서 예거例擧한 것은 인간의 경우일 뿐이며, 하나님의 경우는 이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심정 중심한 원인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창조 전의 하나님의 성상(지정의)과 형상의 속성인 양성․음성은 다만 조화로운 변화를 일으킬수 있는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하며, 일단 창조가 개시되면 그 가능성으로서의 양성․음성이 표면화되어서, 지정의의 기능에 조화있는 변화를일으키고 형상에도 조화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2) 양성․음성과 남자․여자와의 관계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양성․음성과 남자․여자의 관계이다.

동양에서는 고래古來로 남자를 양, 여자를 음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통일사상(통일원리)에서는, 남자를 양성실체, 여자를 음성실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동양의 남녀관과 통일사상의 남녀관이 같은 것 같으나 사실은 전연 다르다.

상기上記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남녀의 성상과 형상이 다 함께 양성․음성을 갖고 있으나, 성상에 한해서는 남자의 성상의 양음과 여자의성상의 양음이 질적으로 다르다(후술). 이를테면 남자의 양성․음성은‘남성적인 양음’, 여자의 양성․음성은 ‘여성적인 양음’이라고 할 수 있다(후술). 이러한 양성과 음성을 가진 남자를, 양성을 지닌 ‘성상․형상의 통일체’라고 하며, 이러한 양성과 음성을 지닌 여자를, 음성을 지닌‘성상․형상의 통일체’라고 한다. 이것을 간단히 말해서, 남자를 ‘양성의실체’, 여자를 ‘음성의 실체’라고 표현한다(원리강론 1987, p. 37).

여기서 특별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남자를 ‘양성의 실체’라고 할때의 양성과, 여자를 ‘음성의 실체’라고 할 때의 음성이 상기 도표에서밝혀진 양성․음성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성상에있어서 남녀간의 양성과 음성이 다르고, 형상에 있어서 남녀간의 양성․음성이 다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형상(육신)에 있어서의 남녀간의 양성․음성의 차이를 설명한다. 형상 즉 몸에 있어서는 양성인 융기부나 돌출부도, 또 음성인 함몰부나 공혈부도, 남녀가 똑같이 갖고 있으나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 남자는 돌출부(양성)가 하나 더 있고 여자는 공혈부(음성)가 하나 더 있다. 따라서형상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양성에도, 음성에도 모두 ‘양적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형상에 있어서 남녀간의 양성․음성의 차이는 양적차이이다.

그러면 성상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성상에 있어서의 남녀간의 양성․음성의 차이는 양적차이가 아니라 ‘질적차이’이다(양적으로는 도리어남녀간에 차이가 없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상 즉 마음에 있어서 양성인 명석의 경우, 남녀가 다 함께 명석(양)을 갖고 있으나 그 명석의 질이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 남자의 명석은 포괄적인 경우가 많고 여자의 명석은 축소지향적인 경우가 많다. 재치에 있어서도마찬가지이다.

또 성상(마음)의 감정상의 슬픔(음)이 과도할 경우, 남자의 슬픔은비통(억센 슬픔)으로 변하기 쉽고, 여자의 슬픔은 비애(가냘픈 슬픔)로변하기 쉽다. 성상의 의욕에 있어서 적극성(양)의 경우, 남자의 적극성은 상대방에게 경성감촉을 주기 쉽지만 여자의 적극성은 상대방에게연성감촉을 주기 쉽다. 남녀간의 이러한 차이가 질적차이이다. 이것을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1-4와 같다.

남자 여자

양성 지 명석 포괄성 축소지향적

재치 대범함 세밀함

의 적극성 경 성 연 성

음성 정 슬 픔 비 통 비 애

무표정 쉽게 눈물흘림

그림 1-4. 남녀간에 있어서 양성․음성의 질적차이

이와 같이 성상(마음)에 있어서는, 남녀간에 양성에도 질적차이가 있

고, 음성에도 질적차이가 있다. 이것을 성악에 비유하면 고음에 남자(tenor)와 여자(soprano)의 차이가 있고, 저음에도 남자(bass)와 여자(alto)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하겠다. 이와 같이 성상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이 남녀간에 질적차이가 보일 때, 남자의 양성․음성을 통틀어서 남성적이라 하고, 여자의 양성․음성을 통틀어서 여성적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여기에 ‘남성적인 양성․음성’과 ‘여성적인 양성․음성’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여기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는지 모른다. 즉 형상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차이가 양적차이이기 때문에, 즉 남자는 양성이 양적量的

으로 더 많고 여자는 음성이 양적으로 더 많기 때문에, 남자를 양성陽性

의 실체로 여자를 음성의 실체로 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성상에있어서는 남녀의 차이가 질적차이일 뿐, 남녀가 양적으로는 똑같이 양․음을 갖고 있는데 왜 남자를 양성의 실체, 여자를 음성의 실체라고 하느냐 하는 의문이다.

그것은 남녀간의 양적陽的 및 음적陰的 차이가 양적量的이건 질적質的이건간에, 양성과 음성의 관계는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관계(후술)이기 때문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적극성과 소극성의관계요, 능동성과 피동성의 관계요, 외향성과 내향성의 관계이다. 그런데 상술한 성상(지․정․의)의 속성인 양음의 남녀간의 질적차이를 살펴볼 때, 그 질적차이에 있어서도 남성의 양과 여성의 양의 관계 및 남성의 음과 여성의 음의 관계가 모두 주체와 대상의 관계임을 알게된다.

즉 상기한 예로 볼 때, ‘지적기능’인 양에 있어서 남성의 명석의 포괄성과 여성의 축소지향성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며, ‘정적기능’인 음

에 있어서 남성의 비통(억센 슬픔)과 여성의 비애(가냘픈 슬픔)의 관계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또 ‘의적기능’의 양에 있어서 남성의 적극성의 경성硬性과 여성의 적극성의 연성軟性의 관계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이같은 남녀간의 양과 음의 질적차이는 양적차이 때와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양과 음의 관계임을 뜻한다. 이상으로 남자를 양성실체, 여자를 음성실체라고 부르는 이유를 밝혔다.

3) 성상․형상의 속성으로서의 양성․음성과 현실문제의 해결

이상에서 양성․음성은 성상․형상의 속성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 사실이 왜 중요하냐 하면, 그것이 또한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의 현실문제란 남녀문제를 말한다.

남녀간의 성도덕의 퇴폐문제, 부부간의 불화문제, 가정파탄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양성․음성이 성상․형상의 속성이라는 말은,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의 관계가 실체와 속성과의 관계임을 뜻하는 것이다. 실체와 속성에있어서 선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실체이다. 속성이 의거하는 근거가 실체이기 때문이다. 실체없는 속성은 무의미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상․형상은 양성․음성이 ‘의거하는 근거’로서의 실체이며, 이 성상․형상이 없는 양성․음성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인간에 있어서의 성상․형상이란, 현실적으로는 성상․형상의 통일을 말하는것으로서 마음과 몸의 통일,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통일을 말하며, 인격의 완성을 뜻한다. 그리고 인간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볼 때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뜻한다. 여기서 ‘인격의 완성’과‘남녀간의 결합’과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즉 남녀의 결혼에 있어서,인격의 완성이라는 조건이 왜 필요한가 하는 문제이다. ‘양성․음성이성상․형상의 속성이다’라는 명제에 따른다면 남녀는 결혼하기 전에 먼저 인격을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통일원리의 3대축복(‘개성완성’, ‘가정완성’, ‘주관성완성’)에 있어서개성완성(인격완성)이 가정완성(부부의 결합)보다 앞에 놓인 것은, 그근거가 바로 이 ‘양성․음성은 성상․형상의 속성이다’라는 명제에 있었던것이며, ‘대학大學’의 8조목條目 중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에 있어서 수신을 제가보다 앞에 놓은 것도, ‘대학’의 저자가 무의식

중에 이 명제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남녀관계에 관련된 각종 사회문제(성도덕의 퇴폐, 가정불화,이혼, 가정파탄, 부녀자 가출, 부녀자 인신매매 등)가 속출하고 있는데,이것은 모두 ‘가정완성’ 전에 ‘개성완성’이 안 되었기 때문이요, ‘제가’전에 ‘수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그 해결이 가장 어려운 현실문제의하나인 남녀문제는 ‘가정완성’ 전에 즉 결혼 전에, 먼저 남녀가 함께인격을 완성(개체완성)함으로써, 또는 제가하기 전에 먼저 수신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양성․음성이 성상․형상의 속성이다’라는 명제도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원상 중의 양성․음성에 관한설명을 전부 마친다. 다음은 또 하나의 꼴로서의 속성인 개별상個別相에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3) 개별상

1) 개별상이란 무엇인가

상술한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으로서, 이 두종류의 상대적 속성은 모두 피조세계에 전개되어서 보편적으로 모든개체 속에 일일이 나타나고 있다. 성경에 “창세로부터 그 보이지 않는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신상’)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로마서 1:20)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사실을 두고 한 말인 것이다. 이와 같이 만물이 모두 보편적으로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을‘보편상’이라고 한다.

한편 만물은 개체마다 독특한 성질을 또한 지니고 있다. 광물, 식물,동물 등의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천체도 항성이거나 유성이거나 모두 특성을 갖고 있으며, 특히 인간은 매 개인마다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체격, 체질, 용모, 성격, 기질 등이 개인마다다르다.

만물과 인간의 개별적인, 이와 같은 특성의 원인의 소재는 하나님의본성상의 내부, 특히 내적형상의 내부인 것이다. 하나님의 내적형상의내부에 있는 이 같은 개별적 특성의 원인을 개별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속성 속에 있는 개별상이 피조물의 개체또는 종류마다에 나타난 것을 피조물의 개별상이라 한다. 그리고 인간은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개별상을 개인별 개별상이라 하고, 만물은 종류에 따라서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만물의 개별상을 종류별 개별상이라고 한다.

2) 개별상과 보편상

그런데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만물의 개별상과 인간의개별상이 그 범위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에 있어서의 개별상은 매 개인의 특성을 말하지만, 인간 이외의 만물(동물, 식물, 광물 등)의 개별상은 일정한 종류의 특성 즉 종차種差(특히 최하의종차)를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 및 하나님의자녀로 지음받았고, 만물은 인간의 기쁨의 대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

이다.

여기서 피조물의 보편상과 개별상과의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개별상이 아무리 개체의 특성이라 하더라도, 보편상과 별개의 특성이 아니며보편상 그 자체가 개별화된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얼굴(용모)이 각각다른 것은 얼굴이라고 하는 형상(보편상)이 개별화되고 특수화된 것이며, 인간의 개성이 각각 다른 것은 성격, 기질이라고 하는 성상(보편상)이 개별화되고 특수화된 것이다. 이리하여 인간에 있어서의 개별상이란 매 개인의 보편상이 개별화된 것이며, 이외의 피조물에 있어서는매 종류의 보편상이 개별화된 것이다.

피조물에 있어서 이와 같이 보편상의 개별화가 개별상인 것은, 하나님의 내적형상 속에 있는, 피조물에 대한 개별화의 요인(개별상)이 하나님의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을 개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보편상을 원보편상原普遍相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내적형상 속에 있는 개별상을 원개별상原個別相이라고도 부른다. 그리하여 피조물의 보편상과 개별상은 원보편상 및 원개별상에 각각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3) 개별상과 돌연변이

다음은 개별상과 유전인자와의 관계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즉일반 생물의 종차 및 인간의 개성과 유전인자와의 관계를 다루고자 한다. 진화론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생물의 종차로서의 개별상의 출현은 돌연변이에 의한 신형질新形質의 출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간의개성으로서의 개별상의 출현은 부父의 DNA(유전정보)와 모母의 DNA

의 단편들의 다양한 혼합, 또는 조합에 의한 유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볼 때, 진화론은 창조과정의 현상론적 파악에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생물에 있어서 돌연변이에 의한 신형질의 출현이 실은 돌연변이의 방식을 취한 신개별상의 창조인 것이며, 인간에있어서 부모의 DNA의 혼합(조합)에 의한 신형질의 출현도 실은 유전정보(DNA)의 혼합(조합)의 방식을 통한 인간의 신개별상의 창조인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물이나 인간의 신개별상의 창조란, 하나님의 내적형상에 있는 일정한 원개별상을 이에 대응하는 피조물(생물과 인간)에게 신개별상으로서 부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4) 개별상과 환경

다음으로 개별상과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개별상을 지닌 개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환경과의 사이에 부단한 수수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즉 개별상을 지닌 개체는 환경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변화하면서 성장, 발전한다. 이것은 수수작용의 결과로서반드시 합성체合性體 또는 신생체新生體(변화체)가 형성된다는 수수법의원칙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한 개체의 특성(개별상)은 원칙적으로 선천적인 것이지만, 그개별상의 일부는 환경요인에 의해 변화되어서 마치 후천적으로 형성된특성인 것처럼 느껴진다(예: 일란성 쌍생아의 경우). 그러나 동일한 환경요인에 의해서 나타나는 특성에도 개인별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수수작용의 방식)에도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개인차는 바로 개별상에 기인하는 개인차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개별상의 일부가 변형되어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특성처럼나타난 것을 개별변상個別變相(Individual Changed Image)이라고 한다.

5) 인간개성의 존귀성

끝으로 인간의 개성의 존귀성에 관해서 말하고자 한다. 무릇 피조물의 특성은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중의 개별상(원개별상)에서 유래하기때문에 모두 귀한 것이지만 특히 인간의 개성은 더욱 존엄하고 신성하고 귀중한 것이다. 인간은 만물에 대한 주관주인 동시에 영인체靈人體와육신肉身으로 구성된 이중체二重體이며 육신의 사후에도 영인체가 영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은 지상에서나 천상에서 그 개성을 통하여 사랑을 실천하면서 창조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연의 개성은 그만큼 존귀하고 신성한 것이다. 흔히 인도주의가 인간의인격이나 개성의 존귀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한 주장은 개인의 특성의 신래성神來性이 인정되지 않는 한, 인간을 동물시하는 유물론적 인간관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별상(원개별상)에관한 이론도 또 하나의 현실문제(인간의 개성이 왜 존중되어야 하느냐하는 문제)의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신상(성상․형상, 양성․음성, 개별상)에 관한 설명 전부를 마친다. 다음은 신성神性에 관해서설명하고자 한다.

2. 신 성

하나님의 속성(원상)에는 상술한 바와 같은 꼴의 측면뿐만 아니라

기능, 성질, 능력의 측면도 있다. 이것이 신성이다. 종래의 기독교나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전지, 전능, 편재성, 지선, 지진, 지미, 공의, 사랑, 창조주, 심판주, 로고스 등은 그대로가 신성에 관한 개념들이며 통일사상도 물론 이러한 개념들을 신성의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개념들은 꼴(신상)의 측면을 함께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개념들은 꼴(신상)의 측면을 함께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대부분이 창조와 직접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그대로는 현실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통일사상은 현실문제 해결에 직접 관련되는 신성으로서 심정, 로고스, 창조성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심정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은 이때까지 어느 종교도 다루지 않았던 신성이다. 다음에 이들의 신성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밝히고자한다.

(1) 심정

1) 심정이란 무엇인가?

심정은 하나님의 속성 특히 성상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서,‘사랑을 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인 충동’이다. 심정의 이와 같은 개념(뜻)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의 경우를 예로 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생래적生來的으로 기쁨을추구한다. 즉 기뻐하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이것은 인간이 언제나 기쁨을 얻고자 하는 충동, 또는 기쁘고자 하는 충동을 갖고 살고 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 대부분의 인간들은 참 기쁨, 영원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있음도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인간들이 대부분 기쁨을 금전이나 권력, 지위나 학식속에서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참된 기쁨, 영원한 기쁨은 사랑(참사랑)의 생활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사랑의 생활이란 남을 위해서 사는 생활, 애타적愛他的인 봉사생활, 즉 남에게 온정을 베풀어서 남을 기쁘게하고자 하는 생활을 말한다.

2) 심정은 정적충동이다.

여기서 ‘정적인 충동’에 대해서 설명한다. 정적인 충동이란,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억제하기 어려운 소원 또는 욕망을 뜻한다. 보통의소원이나 욕망은 의지로써 억제할 수 있으나, 정적인 충동은 인간의의지로써 억제할 수 없는 원망願望이요 욕망欲望이다.

우리들은 기쁘고자 하는 충동(욕망)이 이와 같이 억제하기 어려운것임을 일상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인간이 돈을 벌려 하고, 지위를 얻으려 하고, 학식을 넓히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도 기쁘고자하는 충동때문이요, 어린 아이들이 무엇이든지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것도 기쁘고자 하는 충동때문이요, 심지어 범죄행위마저도 다만 방향이 그릇되었을 뿐, 그 동기는 역시 기쁘고자 하는 충동인 것이다.

이와 같이 기쁘고자 하는 충동(욕망)은 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욕망은 달성되어야만 充足이 된다. 대부분의 인간들에 있어서 기쁘고자 하는 욕망이 충족되지 않고 있는 것은, 기쁨이 사랑을 통해서만얻어짐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쁨이 사랑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있는 것은, 그 기쁨의 근거가 하나님에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심정이시다.

하나님은 심정 즉 사랑을 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인 충동을 지니고 있는 바, 이 같은 하나님의 충동은 인간에 있어서의 충동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억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인간은 닮기의 법칙에 따라서 이같은 하나님의 심정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비록 타락하여사랑은 상실되었지만 기쁘고자 하는 충동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정적인 충동을 억제하기란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하나님에 있어서 이 기쁘고자 하는 정적인 충동은,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즉 참 기쁨은 참사랑을 통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에,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이 기쁘고자 하는 충동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충동은,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수 없는 욕망을 뜻하게 된다.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함은, 사랑의 대상을 갖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음을 또한 뜻한다.

이러한 사랑의 충동에 의해서 기쁘고자 하는 충동이 촉발된다. 따라서 사랑의 충동이 1차적인 것이요, 기쁨의 충동은 2차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기쁨을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며, 다만 무조건적인 충

동일 뿐이다. 그 사랑의 필연적인 결과가 기쁨이다. 따라서 사랑과 기쁨은 표리表裏관계에 있으며, 기쁘고자 하는 충동도 실은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이 표면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은 ‘한없이 사랑하고 싶은 정적인 충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에는 반드시 그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기 때문에, 그사랑의 대상이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창조는 필연적, 불가피적이었으며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4) 우주 창조와 심정

이와 같이 심정이 동기가 되어,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만물을창조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만물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만물이 간접적인대상이라 함은, 직접적으로는 만물이 인간의 사랑의 대상임을 뜻한다.

그리고 창조의 동기로 볼 때의 인간과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결과로 볼 때의 인간이나 만물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심정이 동기가 된 우주 창조의 이론 즉 창조의 ‘심정동기설’은 또 하나의 현실문제(창조설이 참이냐, 생성설이 참이냐의 문제)를 해결한 결과가 되었다. 즉 우주의 발생에 관한 종래의 창조설과 생성설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결과가 된 것이다. 그것은 생성설〔예:플로티노스의 유출설, 헤겔의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설, 가모브(Gamov)의 대폭발(Big Bang)설, 유교의 천생만물설天生萬物說 등〕로서는 현실의

죄악이나 혼란 등의 부정적 측면까지도 자연발생에 의한 것으로 다루어져서 해결할 길이 막혀 있었으나, 정확한 창조설로서는 그러한 부정적 측면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심정과 문화

다음은 ‘심정이 하나님의 성상의 핵심’(상술)이라는 명제가 의미하는또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은 심정과 문화의 관계에 관한 설명이다. 하나님의 성상(본성상)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으로 되어있는 바, 내적성상이 내적형상보다 더 내적이며 심정은 그 내적성상보다도 더 내적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창조 본연의 인간의성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5와같다.

그림 1-5. 심정을 중심으로 한 성상과 형상

이 사실은 심정이 인간의 지적활동, 정적활동, 의적활동의 원동력이됨을 뜻한다. 심정은 정적인 충동력으로서 이 충동력이 지적기능, 정적기능, 의적기능을 부단히 자극하여 나타나는 활동이 바로 지적활동,정적활동, 의적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적활동에 의해서 철학, 과학을 위시한 여러 학문분야가 발달하게 되고, 정적활동에 의해서 회화, 음악, 조각, 건축 등의 예술분야가 발달하게 되고, 의적활동에 의해서 종교, 윤리, 도덕, 교육 등의

규범분야(당위의 분야)가 발달하게 된다.

따라서 창조본연의 인간들로 구성되는 사회에 있어서는 지적, 정적,의적활동의 원동력이 심정이요, 사랑이기 때문에 학문도 예술도 규범도 모두 심정이 그 동기가 되고 사랑의 실현이 그 목표가 된다.8) 그런데 학문분야, 예술분야, 규범분야의 총화總和 즉 인간의 지적, 정적, 의적활동의 성과의 총화가 바로 문화(문명)인 것이다.

따라서 창조본연의 문화는 심정을 동기로 하여 사랑의 실현(실천)을목표로 하고 성립하며, 이러한 문화는 영원히 계속된다. 이러한 문화를 통일사상은 심정문화, 사랑의 문화 또는 중화문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류문화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측면을 지닌 비원리적인 문화로서, 흥망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성상의 핵심인 심정이 이기심에 의해서 가려져버렸기 때문이며, 따라서 심정의 충동력이 이기심을 위한 충동력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혼란이 거듭되는 문화를 바로잡는 길은, 이기심을 추방하고 성상의 핵심의 자리에 심정의 충동력을 다시 활성화시킴으로써, 전 문화분야를 심정을 동기로 하고 사랑의실현을 목표로 하는 문화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심정문화,사랑의 문화를 창건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심정은 하나님의 성상의핵심’이라는 명제가, 오늘날의 위기에서 문화를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하는 또 하나의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됨을 뜻하는 것이다.

6) 심정과 원력原力

끝으로 심정과 원력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주 만물은 일단

창조된 뒤에도 부단히 하나님으로부터 일정한 힘을 받고있다. 피조물은 이 힘을 받아 가지고 개체 간에도 힘을 주고 받는다. 따라서 전자는 종적인 힘이요, 후자는 횡적인 힘이다. 통일사상은 전자를 원력이라 하고 후자를 만유원력萬有原力이라고 한다.9)

그런데 이 원력도 실은 원상내의 수수작용, 즉 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형성된 신생체新生體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상내의 심정의 충동력과 형상내의 전 에너지(Pre-Energy)와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형성된 새로운 힘이 원력(Prime Force)이다. 이것이 만물에 작용하여 횡적인 만유원력(Universal Prime Force)으로 나타나면만물 상호간의 수수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만유원력은 하나님의 원력의 연장인 것이다.

만유원력이란, 물리학에서 말하는 만유인력에 해당하는 개념인 바,만유원력이 심정의 충동력과 ‘전 에너지’에 의해서 형성된 원력의 연장이란 말은, 우주내의 만물 상호간에 물리학적인 힘 뿐 아니라, 사랑의 힘도 작용하고 있음을 뜻한다.10) 따라서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천도天道인 것이다.

이리하여 ‘심정과 원력과의 관계’에 관한 이론도 또 하나의 현실문제해결의 기준이 됨을 알게 된다. 즉 ‘인간은 남을 반드시 사랑해야 할필요가 있는가’, ‘때에 따라서는 투쟁(폭력)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은가’, ‘적을 사랑할 것인가, 타도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이 이론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상으로 심정에 관한 설명을전부 마친다. 다음은 로고스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 로고스

1) 로고스란 무엇인가

로고스(Logos)란, 통일원리에 의하면 ‘말씀’ 또는 ‘이법理法’을 뜻한다(원리강론, 1987, p. 222).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만물이창조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 1:1~3)

통일사상에서 보면, 로고스를 말씀이라고 할 때의 그 말씀은, 하나님의 사고, 구상, 계획을 뜻하며, 또 로고스를 이법이라고 할 때의 그이법은 이성과 법칙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의 이성은 본성상내의 내적성상의 지적기능에 속하는 이성을 뜻함은 물론이지만, 만물을 창조한로고스의 일부인 이성은 인간의 이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의 이성은 자유성을 지닌 지적능력인 동시에 개념화의 능력 또는 보편적 진리추구의 능력이지만, 로고스內의 이성은 단순한 자유성, 사고력, 지적능력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로고스의 또 하나의 측면인 법칙은 자유성이나 목적성이 배제된 순수한 기계성機械性, 필연성必然性만을 지닌 규칙을 뜻함은 물론이다. 즉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나타나는 규칙적인 현상이 법칙이다. 마치 기계장치인 시계의 시침이나 분침이, 언제어디서나 똑같이 일치하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것이 법칙의 규칙성, 기계성인 것이다.

2) 로고스는 이법이다.

이법理法이란, 이러한 이성과 법칙의 통일을 뜻한다. 이리하여 여기서는 이러한 이법으로서의 로고스를 주로 다루려고 한다. 그것은 그렇게함으로써, 이 로고스에서 또 하나의 현실문제의 해결의 기준을 찾아세우기 위해서이다. 그 현실문제란, 오늘날 사회의 대혼란의 원인이되고 있는 가치관의 붕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원리강론에는 로고스가 하나님의 대상인 동시에 이성성상을 지닌 것(‘로고스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원리강론’, 1966, p. 229. 동1987, p. 222). 이것은 로고스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일종의 피조물이며 신생체임을 뜻하는 것으로서, ‘성상과 형상의 합성체合性體’와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상構想’이기 때문에, 그리고이 말씀에 의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로고스 그 자체가 만물과 똑같은 피조물일 수는 없다. 실제의 피조물이 아니면서 하나님의이성성상을 닮은 하나님의 대상은, 사고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즉그것은 ‘완성된 구상’을 뜻하는 것이며, 마음(본성상)에 그려진 일종의설계도인 것이다. 건물을 세울 때 먼저 그 건물에 대한 상세한 설계도를 작성하듯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함에 있어서도 만물 하나 하나의창조에 관한 구체적인 청사진 또는 계획안이 먼저 세워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로고스이다.

그런데 설계도는 비록 건물은 아닐지라도, 설계도 그 자체는 제작물즉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로고스도 구상이요 설

계도인 이상 그것 역시 결과물이며, 따라서 신생체요 일종의 피조물인것이다. 피조물은 모두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서 존재한다. 그러면신생체로서의 로고스는 하나님의 무엇을 닮았을 것인가? 그것이 바로본성상내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다.11)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일정한 목적을 중심하고 통일되어 있는 상태가 바로 ‘로고스의 이성성상’인 것이다. 마치하나님에 있어서, 본성상과 본형상이 중화(통일)를 이룬 상태가 신상神相

인 것과 같다. 그런데 로고스는 말씀인 동시에 이법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로고스를 이법으로만 이해할 때 ‘로고스의 이성성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성과 법칙이다. 따라서 이성과 법칙의 관계는 바로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관계와 같다. 그런데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상호관계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성과 법칙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인 것이다.

3) 로고스는 이성과 법칙의 통일체

이와 같은 ‘이성과 법칙의 통일’로서의 로고스에 의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에는 모두 이성적요소와 법칙적요소가 통일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리하여 만물이 존재하거나 운동함에 있어서 반드시 이 양자가 통일적으로 작용한다. 단 저차원의 만물일수록 법칙적인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하고, 고차원의 만물일수록 이성적인 요소가더 많이 작용한다.

그리하여 가장 저차원인 광물에는 법칙적요소만이 작용하고 이성적요소는 전연 없는 것 같고, 가장 고차원인 인간에는 이성적요소만이

작용하고 법칙적 요소는 전연 없는 것 같지만, 양자의 모두에 이성적요소 및 법칙적요소가 함께 통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만물의존재와 운동은 자유성과 필연성의 통일이며, 목적성과 기계성의 통일인 것이다. 즉 필연성속에 자유성이 작용하고, 기계성속에 목적성이작용한다. ‘필연’과 ‘자유’의 관계가 종래에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의 관계인것처럼 이해되어 왔다. 그것은 마치 ‘구속’과 ‘해방’이 정반대의 개념인것처럼, 필연과 자유도 정반대의 개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사상은 로고스의 개념(이법)에 관한 한, 이성과 법칙을 이율배반의 관계로 보지 않고 도리어 통일의 관계로 본다. 이것은 비유컨대 기차가 레일(rail) 위를 달리는 현상과 같다할 것이다.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법칙)이며, 만일 그 레일을 벗어나면 기차 자체의 파괴뿐 아니라 인근隣近의 인명이나 건물에피해를 준다. 기차는 반드시 레일 위만을 달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기차의 운행은 준법적인 것이며, 따라서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레일 위를 달린다 하더라도, 빨리 달리고 천천히 달리는 것은 기관차(기관사)의 자유이다. 따라서 기차의 운항은 전적으로 필연적인 것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자유성과 필연성의 통일인 것이다.

또 하나의 비유를 들어 보자. 교통신호를 지키는 자동차 운전자의 예가 그것이다. 운전자는 청신호 때에는 전진하고, 적신호 때에는 정지한다. 이것은 교통법규로서 누구나 지켜야 할 필연성이다. 그러나 일단 청신호가 켜진 뒤에는 교통안전에 지장이 되지 않는 한 속도는 자유로이 조정할 수가 있다. 따라서 자동차 운전도 자유성과 필연성의통일이다.12)

이상으로 기차의 운행이나 자동차의 운전에 있어서 필연성과 자유성

의 관계가 통일의 관계임을 밝혔는데, 로고스에 있어서의 이성과 법칙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통일의 관계이다. 이로써 ‘로고스의 이성성상’으로서의 이성(자유성)과 법칙(필연성)은 이율배반이 아니라 통일임을 알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로고스가 이성(자유성)과 법칙(필연성)의 통일이기 때문에로고스에 의해서 창조된 만물은 크게는 천체로부터 작게는 원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예외없이 이성(자유성)과 법칙(필연성)의 통일적 존재이다. 즉 만물은 반드시 그 내부에 이성과 법칙, 자유성과 필연성,목적성과 기계성의 통일에 의해서 존재하고 운동하고 발전한다.

이 사실은 오늘날의 일부 과학자의 이론과도 일치한다. 예컨대 검류계檢流計(폴리그라프)의 부착실험에 의한 식물심리의 확인(Backster 효과)13)과 샤론(Geun E. Charon)박사의 복소상대론複素相對論(Complex Relativity)에 있어서의 전자, 광자 내의 ‘기억’과 ‘사고’의 메카니즘의확인14)등이 그것이다. 즉 식물에 마음이 있고, 전자에 사고의 메카니즘이 있다는 사실은 모든 피조물 속에 ‘이성과 법칙’, ‘자유성과 필연성’이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4) 로고스 및 자유와 방종

다음은 로고스와 관련해서 자유와 방종의 참 뜻을 밝히고자 한다.

자유와 방종에 관한 바른 인식에 의해서 또 하나의 현실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유의 이름 밑에 자행되는 갖가지의 질서파괴행위와, 이에 따르는 사회혼란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이 무엇인가 하는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와 방종

의 참 뜻이 밝혀져야 한다.

원리(원리강론)에는 ‘원리를 벗어난 자유는 없으며’(1987, p. 103),‘책임없는 자유는 없으며’(같은 책), ‘실적없는 자유는 없다’(같은 책)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자유의 조건은 ‘원리 안에 있을 것’, ‘책임을 질 것’, ‘실적을 올릴 것’의 세 가지가 된다. 여기서‘원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원칙 즉 법칙을 벗어난다’는 뜻이며, ‘책임’이란 각자의 책임분담 완수를 뜻하는 동시에 창조목적의 완성을 의미하며, ‘실적’이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같은 책), ‘선의 결과를 가져옴’을 뜻한다(같은 책). 그런데 책임분담의 완수나, 창조목적의 완성이나,선의 결과를 가져옴은 모두 넓은 의미의 원리요, 인간이 따라야 하는천도이며, 법칙(가치법칙, 규범법칙)이다.

따라서 자유에 관한 세 가지 요건 즉 ‘원리 안에 있을 것’, ‘책임을질 것’, ‘실적을 올릴 것’등은 한마디로 ‘자유는 원리 안에서의 자유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참 자유는 결국 법칙성, 필연성과의통일에 있어서만 성립한다는 결론이 된다. 여기서 법칙이란, 자연에있어서는 자연법칙이요, 인간생활에 있어서는 가치법칙(규범법칙)이다.

가치니 규범이니 하는 것은 질서 하에서만 성립된다. 규범을 무시하거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는, 본연의 세계에서는 결코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엄격한 의미에서 선택의 자유이며, 이 선택은 이성에 의한선택이다. 따라서 자유는 이성에서 출발하여 실천으로 옮겨진다. 이때자유를 실천하려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것이 자유의지이며, 이 의지에의해서 자유가 일단 실천되면 그 실천행위가 자유행동이 된다. 이것이원리강론에 보이는 자유의지, 자유행동(같은 책, p.103) 등의 개념의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의 자유에 의한 선택이나, 자유의지나, 자유행동은 모두 자의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원리 안에서 즉 법칙(가치법칙)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필연성과 통일 하에서 이루어져야한다. 본래 자유는 이성의 자유이며, 이성은 법칙과의 통일 하에서만작용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연의 자유는 ‘이법’ 즉 ‘로고스’안에서만 성립할 수 있으며, 로고스를 떠난 자유는 존립할 수 없다.

흔히 법칙은 자유를 구속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법칙과자유의 원리적인 의미를 모르는 데서 오는 착각인 것이다. 본연의 법칙이나 자유는 모두 사랑의 실현을 위한 것이며, 사랑 안에서의 법칙이며 자유이다. 참사랑은 생명과 기쁨의 원천이다. 따라서 본연의 세계에서는 기쁨 속에서 법칙을 따라서 자유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로고스가 심정을 터로 하고 형성되기 때문이다.

로고스를 떠난 자의적 사고나 자의적 행동은 사이비 자유로서 이것이 바로 방종이다. 따라서 자유와 방종은 그 뜻이 전연 다르다. 자유는 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건설적인 개념이지만, 방종은 악의 결과를가져오는 파괴적인 개념이다. 이와 같이 자유와 방종은 엄격히 구별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혼동되거나 착각되고 있다. 이것은 자유의참 근거로서의 로고스에 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로고스의 뜻을바르게만 이해한다면 자유의 참 뜻을 알게 되고, 따라서 자유라는 이름하의 온갖 방종이 방지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사회혼란의 수습도가능해 질 것이다. 이것으로 로고스에 관한 이론도 현실문제 해결의또 하나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밝혔다.

5) 로고스 및 심정과 사랑

마지막으로 로고스와 심정 및 사랑과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고자한다.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로고스는 말씀, 구상인 동시에 이법이었다. 그런데 말씀(구상)과 이법이 별개의 것이 아니며, 말씀 속에그 말씀의 일부로서 이법이 포함되어 있다. 마치 생물을 다루는 생물학 속에 그 한 분과로서, 생물의 생리학(생리작용의 학)이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다. 생물학에는 해부학, 생화학, 생태학, 발생학, 분석학, 생리학 등 여러 분과로 분류되지만 그 중의 한 분과가 생리학인 것처럼,창조에 관한 하나님의 무한대한 양과 종류를 내용으로 하는 말씀(구상) 중의, 적은 일부분이 이법(로고스)으로서, 말씀중의 만물의 상호작용 또는 상호관계의 기준에 관한 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말씀과 이법은 별개의 것이 결코 아닐 뿐 아니라, 말씀의 터전이 되고 있는 심정은 동시에 이법, 로고스의 터전도 되는 것이다. 마치 유기체의 생활현상의 연구가 생물학의 모든 분과의 공통항목인 것처럼, 창조에 있어서하나님의 심정이 구상과 이법의 공통기반이 되고 있다.

심정은 사랑을 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인 충동이었다. 이와 같은심정이 창조에 있어서 구상과 이법의 터전이 되고 있다는 것은, 피조물 전체의 구조, 존재, 변화, 발전 등 모든 우주현상이 사랑의 충동에의해서 지탱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법도 자연법칙이건가치법칙이건 간에, 그 배후에 사랑이 반드시 작용하고 있고, 또 작용해야 한다. 자연법칙은 일반적으로 물리화학적 법칙으로만 이해되고있는데 이것은 불완전한 이해이며, 비록 차원은 다를망정 거기에 반드시 사랑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상호간의 가치법칙, 규범법칙에는 이 사랑이 더욱 더 현저하게 작용해야 할 것임은 재언再言할 필요

가 없다.

앞에서 로고스 즉 이법의 해설에 있어서 이성과 법칙, 따라서 자유성과 필연성에 관해서만 주로 다루었지만, 이법의 작용에 있어서는 이법 그 자체 못지않게 사랑이 중요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도에 있어서 사랑은 이법을 능가하기조차 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이법만의 생활은 규율 속에서만 사는 병영처럼 냉랭해지기 쉽고, 알맹이 없는 쭉정이처럼 시들기 쉬운 것이다. 따뜻한 사랑속에 지켜지는 이법의 생활에서만 비로소 백화가 만발하고, 봉첩蜂蝶이군무群舞하는 봄동산의 평화가 찾아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가정에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는 참된 방안이 무엇인가 하는, 또 하나의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된다. 즉 심정을 터전으로 하는 로고스(이법)의 이론은 가정에의 참된 평화 수립의 방안도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로고스에 관한 설명을 모두 마치고 다음은 창조성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3) 창조성

1)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창조성은 일반적으로 ‘새 것을 만드는 성질’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통일원리에서도 창조성을 일반적인 뜻으로도 해석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창조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원리강론에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하나님의 창조성’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음(1987,p. 65)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와 같이 창조의 성질이나 창조의 능력으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정확한 이해라 할 수 없다. 이미 여러 번밝힌 바와 같이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는 목적은 현실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모든 이해가 정확하고 구체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창조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창조에 관한 상식적인 이해만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창조성을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특성 또는요건이 밝혀질 필요가 있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자연발생적인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억제불능의 필연적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명백한 합목적적인 의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창조가 이른바 ‘심정을 동기로 한 창조’(심정동기설)로서 이 창조에는 창조목적을 중심한, 내적 및 외적인 4위기대 또는 수수작용(후술)이 반드시 형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구체적으로는 ‘목적을 중심한 내적 및 외적인 사위기대 형성의 능력’으로 정의하게 된다. 이것을 인간의 창조(신품목의 제조)의 경우를비유해서 설명한다면, 내적사위기대의 형성은 구상하는 것,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개발(따라서 청사진의 작성)을 뜻하며, 외적사위기대의형성은 그 청사진에 따라서 인간(주체)이 기계와 원료(대상)를 적절히사용(수수작용)해서, 청사진대로의 신제품(신생체新生體)을 만들어 냄을뜻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속성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후술)은 각각 성상과형상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있어서 내적사위기대의 형성은 상기한 목적중심의 ‘로고스’를 형성하는 것이며, 외적사위기대의 형성은 목적중심한 성상(주체)과 형상(대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신생체(만물)를 만드

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성은 이와 같은 내용을 갖춘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 형성의 능력으로서,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로고스 형성에 이어서 신생체를 형성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창조성이다. 하나님의 창조성의 개념을 이처럼 상세히 다루는 것은, 창조와 관련된 여러 가지의현실적 문제(예컨대 공해문제, 군비제한 내지 철폐문제, 과학과 예술의방향성 문제 등) 해결의 근본적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2) 인간의 창조성

다음은 인간의 창조성에 관하여 설명코자 한다. 인간에게도 새것을만드는 능력, 즉 창조성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창조성이 닮기의 법칙에 따라서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다. 그런데 원래인간은 닮기의 법칙에 의해서 지은 바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창조성도 하나님의 창조성을 완전히 닮기로, 또는 이어받기로 되어 있었으나(‘원리강론’ 1987, pp. 65, 93, 208),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불완전하게밖에 닮지 못하였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사실상 인간의 창조성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완전히 닮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창조성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성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같은 책, pp.

108, 218)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자신의 창조성을 부여하시고자 하였을까?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세계에 대한 창조주의 입장에 서게하여서’(같은 책, p. 107.), ‘만물에 대한 주관 자격을 얻도록 하기 위

해서’(같은 책, pp. 94, 108.)였던 것이다. 여기서 만물주관이란 만물을 아끼고 소중히 하면서, 그 만물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사랑의 마음을 갖고 여러 가지의 사물을 다루는것을 만물주관이라 하며, 여기에는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이 포함된다. 예컨대 경제, 산업, 과학, 예술 등이 모두 만물주관의 개념에포함된다. 지상의 인간은 육신을 쓰고 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물질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인간생활 전체가 만물주관의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본연의 만물주관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어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본연의 주관이란 사랑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사물을 다루는것, 즉 사랑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행하는 행위, 예컨대 경작, 제작, 생산, 개조, 건설, 발명, 보관, 운송, 저장, 예술창작 등의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경제, 산업, 과학, 예술 등의 활동 뿐 아니라 심지어 종교생활,정치생활도 그것이 사랑을 가지고 물건을 다루는 한에 있어서 본연의만물주관에 포함된다. 이와 같은 본연의 인간에 있어서 사물을 다루는데는, 사랑과 함께 새로운 창안(구상)이 부단히 요구되기 때문에, 본연의 주관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창조성을 인간은 타락하지 않았다면 완전히 닮을 수 있었을것이며, 따라서 본연의 만물주관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으며, 따라서이러한 인간이 이어받은 창조성은 불완전한 것이 되어버렸으며, 만물주관도 불완전하고 비원리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는지 모른다. 즉 ‘하나님이 닮기의법칙에 의해서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날 때부터 본연의 창조성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타락과는 관계없이 그 창조성은 지속되었을 것 아닌가? 실지로 오늘날 과학기술자들은 훌륭한 창조의 능력(창조성)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의문이다.

3) 닮기의 창조

여기서 잠깐 ‘닮기의 창조’가 시공의 세계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나타나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창조란 요컨대 피조물 즉 하나 하나의 만물이, 시공의 세계(시간을 포함한 4차원의 세계)에 출현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창조가 하나님의 구상의 단계에서는 초시간, 초공간적으로 이루어졌더라도, 그 피조물이 시공세계에 출현하는데 있어서는 소형, 미숙 또는 유소幼少의 단계에서부터 출발하여, 일정한 시간적 경과를 거쳐서 일정한 크기까지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일정한 크기의 단계에까지 완성한 후에야 하나님의 구상 또는 속성을 완전히 닮게 된다. 그 때까지의 기간은 미완성단계이며,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나아가는 과정적 기간으로서, 통일원리는 이 기간을성장기간이라고 하여 소생기, 장성기, 완성기의 3단계(‘질서적 3단계’)의 기간으로 구분하고 있다(‘원리강론’ 1987, p. 62). 인간은 이러한성장과정인 장성기의 완성급 단계에서 타락했던 것이다(같은 책, p.

64).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어받음에 있어서도 본연의 창조성의

2/3정도만을 이어받았던 것이니, 과학자들이 아무리 천재적天才的인 창조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고자 했던창조성에 비하면 크게 못 미쳐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피조물중에서 타락한 것은 인간뿐이다. 만물은 타락하지 않

고 모두 완성하여 하나님의 속성을 각자의 차원에서 닮고 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또 생길 것이다. 즉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이 왜 영장답지 않게 타락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것은 만물이 원리 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해서만 성장하게 되어 있는데 대하여, 인간은 성장에 있어서 이 원리의 자율성, 주관성 외에 자신의 책임분담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4) 창조성과 책임분담

여기서 원리 자체의 자율성이란 유기체의 생명력을 말하며, 주관성은 동 생명력의 환경에 대한 영향성을 말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하는 것은 그 내부의 생명력 때문이며, 주관성은 그 나무(생명력)가 주위에 미치는 영향력을 말한다. 그런데 인간의 성장의 경우에도 이 원리 자체의 자율성과 주관성이 작용한다. 그러나 인간에 있어서는 육신만이 자율성과 주관성에 의해서 성장하며, 인간의 영인체는 그렇지 않다. 영인체의 성장에는 다른 차원의 조건이 요구된다. 그것이 책임분담 즉 분담책임의 완수인 것이다.

여기서 밝혀둘 것은 영인체의 성장이란 육신처럼 영인체의 신장이 커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인체는 육신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육신의 성장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커지게 되어 있다. 여기의 영인체의성장이란 영인체의 영성의 성숙과 인격의 향상을 뜻한다. 또한 심정수준의 향상을 뜻한다. 요컨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자세의 성장이 바로 영인체의 성장인 것이다.

이러한 영인체의 성장은 다만 책임분담의 완수를 통해서만 이루어진

다. 여기의 책임분담이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고 계명을 준수하는 가운데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아니하고 내적 외적으로 가해지는 수많은 시련을,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 하에 극복해 나아가면서, 사랑의 실천을 계속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육신의 부모마저 없는 여건 하에 이 같은 책임분담을 다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아담은 그 責任을 다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이와 같은 책임분담을 다 하지 못하고 결국,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타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실패할 수도 있는 책임분담을 아담에게 메웠을까? 만물처럼 쉽게 성장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그것은 인간을 만물의 주관위主管位에 세우기 위해서였으며(창 1:28,‘원리강론’ 1987, p. 108) 만물에 대한 주관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같은 책). 주관은 자기의 소유물이나 자기가 창조한 것(제작물)만을주관하는 것이 원칙이며, 타인의 소유나 타인의 창조물은 주관할 수없게 되어 있다. 또한 아담은 만물보다 뒤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만물의 소유자도 창조자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들에게 자신의 창조주의 자격을 물려주어서 주관주로 세우고 싶었기 때문에(창 1:28), 일정한 조건을 세우게 하여 그것으로 아담도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동참했다는것으로 인정해 주려(쳐 주려) 했던 것이다.

5) 인간의 완성과 책임분담

그 조건은 아담이 자기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즉 아무의 도움도 받

지 아니하고 자기를 완성시키면, 그것으로써 우주를 창조한 것과 같은자격으로 쳐주려 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가치로 볼 때, 인간 하나의가치는 전체 우주의 가치와 같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우주(천주天宙)를총합한 실체상이며(‘원리강론’ 1966, pp. 48~49, p. 54), 소우주小宇宙(같은 책, p. 54)이기 때문이요, 또 인간의 완성으로써만 우주 창조도완성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태 16:26)고 하신 것도 그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스스로 자신을 완성시키면, 가치로 보아서 아담이 우주를 창조한 것과동등한 입장에 서는 셈이 된다.

그런데 창조는 창조자 자신의 자기책임 하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이우주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 자신의 책임 하에서였다. 마찬가지로 아담이 자신을 완성시키는 일(창조)도 아담 자신의 책임분담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해와에게 책임분담을 메웠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100% 책임을 아담에게메운 것은 아니다. 인간 성장의 대부분의 책임은 하나님이 지시고, 아담․해와에게는 극히 적은 부분의 책임(5% 책임)분담을 메워, 그 5%의책임분담을 다하기만 하면 100% 책임 전체를 아담이 다 해낸 것으로쳐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특혜에도 불구하고 아담․해와는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하고 말았으며, 그 때문에 결국하나님의 창조성을 온전히 이어받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즉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온전히 이어받았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되었을 것인가. 인간이 타락하지않고 완성했더라면 먼저 하나님의 심정 즉 사랑을 통해서 기쁨을 얻으

려는 정적인 충동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인 것처럼 인간은 사랑의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 주관활동이 심정을 터전으로 하는 사랑 중심의 활동이되게 됨을 뜻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정치, 경제,산업, 과학, 예술, 종교 등이 물질을 다루는 한에 있어서 모두 주관활동인데, 이러한 활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창조성(온전한 창조성)을 터로 한 사랑의 주관활동으로 변모하게 된다.15)

6) 본연의 창조성과 문화활동

상기의 ‘심정’의 항목에서, 심정의 충동력을 동기로 하는 지적, 정적,의적 활동의 총화가 문화(심정문화)라고 했는데, 여기의 지적활동, 정적활동, 의적활동이 모두 물질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이기 때문에 이문화활동도 따지고 보면 본연의 창조성에 의한 주관활동이라고 볼 수있다.

그런데 문화라는 관점에서 오늘의 세계를 바라볼 때, 세계문화는 급속히 몰락되어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교육, 언론, 윤리, 도덕, 종교 등이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혼란의 와중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획기적인 어떠한 방안이 세워지지 않는 한, 이몰락해 가는 문화를 다시 구출한다는 것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아니할수 없다.

혹자는 다년간 철의 장막으로 가린 채 강력한 기반을 유지해 온 공산독재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와 대결하다가 오늘날 개방을 계기로 하여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 방식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현실

을 바라보고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와 과학기술의 우월성을 자랑할는지모르나, 그것은 근시안적 인식착오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의한 노사분규 및 빈부의 격차의 심화와 이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가치관의 붕괴현상과 사회적 범죄의 범람, 그리고 과학기술의 첨단화에 따르는 범죄기술의 첨단화, 산업의 발달에 따르는 공해의 증대 등은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병폐로서 미구에 반드시 자본주의를 쇠망시키는 요인이 될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주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문화적 위기의 근본원인은멀리 인류역사의 시발에까지 소급하여 거기서 찾아야 하며, 그것이 바로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뿐만 아니라,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온전히 이어받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되고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된 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문화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를 청산하고 모든 창조활동, 주관활동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전개하는 것이다. 즉 세계의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모두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행동하게 될 때, 오늘날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과학, 종교, 사상, 예술, 언론 등 여러 문화영역의 얽히고 설킨 난문제들이 근본적으로 그리고 통일적으로 해결되어, 여기에 새로운 참된 평화의 문화가 꽃피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문화도 아니요, 자본주의문화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문화이니 그것이 바로 심정문화, 사랑의 문화라고도 불리우는 중화문화인 것이다.

이상으로 하나님의 창조성에 관한 이론도 또한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창조성에 관한 설명을마친다. 동시에 하나님의 신성, 더 나아가서 원상의 내용에 관한 설명

도 이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二. 원상의 구조

다음은 원상原相의 구조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본 원상론의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본 ‘원상의 구조’에서는 신상神相의, 특히성상과 형상의 상호관계를 다루려는 것이다. 앞의 ‘원상의 내용’의 제목 하에서는 신상과 신성의, 하나하나의 속성의 내용을 다루었는데,여기의 ‘원상의 구조’에서는 신상인 성상과 형상의 상호관계 및 양성과 음성의 상호관계(주로 성상과 형상의 상호관계)를 다루려 한다. 이와 같은 속성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이유는 하나님의 속성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관계’를 중심한 여러 현실문제를 근본적으로해결하는 기준을 발견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1. 성상과 형상의 상대적 관계

원리강론의 창조원리에는, 만물은 ‘성상과 형상에 의한 이성성상의상대적 관계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으며’(1987, p.34), 또 ‘(만물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존재하게 된다.’(같은 책, p. 32)고 적혀 있으며, 이것은 만물의 제1원인인 하나님이 성상(본성상)과 형상(본형상)의 중화적주체로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같은 책, p. 35).

여기서 우리는, 성상과 형상은 만물에 있어서나 하나님에 있어서나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맺고서만 존재하고, 개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의 상대적 관계란 두 요소나 두 개체가서로 마주 대하는 관계를 말한다. 예컨대 두 사람이 대화할 때, 또는상품을 매매할 때, 그 대화나 매매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대하는 관계가 먼저 성립한다. 이것이 상대적 관계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대적 관계는 반드시 상호 긍정적인 관계여야 하며, 상호부정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16)이러한 상대적 관계가 맺어지면 대개의 경우, 무엇인가를 주고받는현상이 벌어진다. 인간은 자주 말(대화), 금전, 힘(협력), 영향, 사랑 등등을 주고받는다. 자연계에서는 천체간의 만유인력, 동물과 식물간의가스(CO₂, O₂) 교환 등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이 양자가 무엇인가를주고받는 현상을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적 관계가 성립됐다고 해서 수수작용이 벌어지는것은 아니다. 반드시 거기에 상대기준이 함께 조성되어야 한다. 상대기준이란 공통기준 즉 공통요소 또는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맺어진 상대적 관계를 뜻한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상대적 관계가 성립하여상대기준이 조성되면 이때에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하나님의 성상(본성상)과 형상(본형상) 사이에도 이 원칙에 의해서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즉 성상과 형상은 공통요소(심정 또는 창조목적)를 중심하고 상대적 관계를 맺어서, 즉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작용 즉 수수작용을 지속한다. 성상이 형상에게 주는 것은 관념적인 것과 심정적인 것이며, 형상이 성상에게 주는 것은 ‘전에너지적 요소’이다. 이와 같은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하나님

의 속성이 중화(합성체)를 이루거나 피조물(신생체)을 산출한다. 그러면 ‘수수작용과 사위기대’라는 제목을 가지고, 성상과 형상의 상대적관계 또는 수수작용에 대해서 좀더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2. 수수작용과 사위기대

(1) 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

1) 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이란 무엇인가

원상 중의 성상(본성상)과 형상(본형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 수수작용이 벌어지는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때에는 반드시 일정한공통요소가 중심이 되어서 상대기준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에 있어서 이 공통요소로서의 중심은 심정 또는 그 심정을 터로 한창조목적이다. 이러한 수수작용, 즉 일정한 공통요소를 중심한 수수작용은 반드시 일정한 결말을 짓게 마련이다.

바꾸어 말하면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에는 반드시 일정한 중심과 일정한 결과가 수반된다. 심정이 중심일 때에 그 결과는 합성체合性體 또는 통일체統一體가, 목적(창조목적)이 중심일 때에 그 결과는 신생체新生體또는 번식체繁殖體가 나타난다. 즉 중심에 따라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난다. 여기서 합성체란 하나로 통일된 형태를 말하며 신생체는 창조된만물(인간 포함)을 말한다. 따라서 원상에 있어서 신생체의 출현은 만물창조를 뜻한다.

2) 합성체와 신생체의 개념

여기서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합성체合性體와 신생체新生體의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합성체는 만물의 존재, 생존, 존속, 통일, 공간운동, 현상유지 등을 뜻하며, 신생체는 새로이 출현 또는 산출되는 새로운 결과물을 뜻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성질 혹은 특성이거나 그러한 성질 혹은 특성을 지닌 신요소, 신개체, 신현상을 뜻하며, 이러한 신생체의 출현은 피조세계에 있어서 곧 발전을 의미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피조세계에서 만물이 존재․생존․존속하고 운동․발전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크게는 천체로부터 작게는 원자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개체들 상호간에, 원상내의 성상․형상간의 수수작용과동일한 수수작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의 닮기의 법칙에 따라서 하나하나의 만물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고 있고, 만물의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은 원상의 구조 즉 성상․형상의 상대적 관계 및수수작용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시 바꾸어 말하면 모든 피조물이 존재․생존하고, 운동․발전하기 위해서는 원상내의 수수작용을 반드시 닮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원상 내에서의 수수작용은 심정 중심 때이건 目的중심 때이건, 작용 그 자체는 원만성, 원화성, 조화성, 원활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중심에서 사랑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심정은 사랑을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인 충동이기 때문에, 심정은 사랑의 원천이된다. 따라서 심정이 중심인 곳에서는 사랑이 우러나오게 된다. 목적

이 중심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창조목적은 심정을 터로 하고 세워지기 때문이다.

3) 수수작용의 특징은 원만성, 조화성, 원활성이다.

이와 같이 원상내의 수수작용은 원만성, 조화성, 원활성을 그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 모순, 대립, 상충같은 현상은 존재할 수가없다. 왜냐하면 상호작용에 모순, 대립이 나타나는 것은 거기에 심정,목적과 같은 공통요소로서의 중심이 없기 때문이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외형상으로는 아무리 수수작용이 벌어지더라도 거기에 사랑이나 공통요소가 중심이 되지 않는 한, 그 작용은조화성․원화성을 나타낼 수 없으며 도리어 대립․상충이 나타나기 쉬운것이다.

따라서 이 원상에서의 수수작용의 원화성, 조화성의 이론은 수많은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세계의대혼란은 무수한 종류의 이해관계의 상충이 그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수많은 유형의 상대적 관계가 상충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관계,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관계, 민족과 민족의 관계, 종교와 종교의 관계, 정당과 정당의 관계, 노사관계, 사제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부부관계, 대인관계등 무수한 ‘상대적 관계’가 상충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무수한 상충적 관계의 누적이, 오늘날 세계의 대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적 혼란을 수습하는 길은, 매개每個의 상충적인 ‘상대적 관계’를 원화의 관계, 조화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며, 그러기 위해서는 각 단위의 상대적 관계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수수작용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원상내의 수수작용의 원만성, 조화성, 원활성의 이론은 또 하나의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는것이다.

(2) 사위기대의 형성 및 주체와 대상

1) 사위기대란 무엇인가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에는 상술한 바와 같이 반드시 중심(심정 또는목적)과 결과(합성체 또는 신생체)가 동반되기 때문에 수수작용에는반드시 중심-성상-형상-결과의 4요소가 관련되게 된다.17) 그런데 이4가지 요소의 상호간의 관계는 위치의 관계가 된다. 즉 수수작용에 있어서 중심, 성상, 형상, 결과는 모두 일정한 위치를 차지한 후, 서로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고, 수수작용이 벌어지는 네 위치의 터전을 사위기대라고 한다. 그리하여 수수작용은 원상에 있어서나 피조세계에있어서 또 어떤 유형의 수수작용이거나 예외없이 이 사위기대四位基臺를터전으로 하고 이루어진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6과 같다.

그림 1-6. 수수작용과 사위기대

그런데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하는데 있어서, 이 양자는 동격이 아니다. 즉 격위格位가 다르다. 격위란 자격상의 위치를 말한다. 통일원리

(따라서 통일사상)에서의 자격이란 주관에 관한 자격을 뜻한다(‘원리강론’ 1987, p. 108).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의 격위란 능동성에 관한 입장(또는 위치)을 말하는 것으로서, 성상과 형상이 격위가 다르다는 것은, 성상은 형상에 대하여 능동적인 위치에 있고, 형상은 성상에 대하여 피동적인 위치에 있음을 뜻한다. 이때 능동적 위치에 있는 요소나개체를 주체라 하고 피동적인 위치에 있는 요소 또는 개체를 대상이라고 한다. 따라서 성상(본성상)과 형상(본형상)과의 수수작용에 있어서,성상이 주체의 입장이 되고 형상이 대상의 입장이 된다.

따라서 사위기대란 중심-주체-대상-결과의 네 위치로 이루어지는기대로서 어떠한 수수작용도 반드시 네 위치 즉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이루어진다. 네 위치를 터로 하고 수수작용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매번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중심, 주체, 대상, 결과라는 이 네 위치는 고정불변이지만, 그 위치에 세워지는 실제의 요소는 각양각색임을 뜻한다.

예컨대 가정적 사위기대에 있어서 중심의 위치에는 가훈이나 가법 또는 조부모가 세워지고, 주체의 위치에는 부父가, 대상의 위치에는 모母가, 결과의 위치에는 가정평화 또는 자녀번성 등이 세워진다. 또 주관적 사위기대(예: 기업활동)에 있어서는, 중심의 위치에 기업의 목표 또는 이념이 세워지고, 주체의 위치에는 여러 인적요소(관리직과 종업원)가, 대상의 위치에는 물적요소(기계, 원자재)가, 그리고 결과의 위치에는 생산물(상품)이 세워지게 된다. 또 태양계에 있어서 중심은 창조목적, 주체는 태양, 대상은 혹성, 결과는 태양계이며, 인체에 있어서 중심은 창조목적, 주체는 마음, 대상은 몸, 결과는 인체(혹은 심신일체)이다. 이와 같이 사위기대에 실제로 세워지는 요소(이것을 정착물이라

함)는 각양각색이지만 네 개의 위치만은 항상 중심-주체-대상-결과로서 고정불변이다.18)

2) 주체와 대상의 개념

다음은 앞에서 언급한 주체와 대상의 개념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수작용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파악되기때문이다. 앞에서 주체는 ‘능동적’ 위치에 있고, 대상은 ‘피동적’ 위치에 있다고 했는데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주체가 ‘중심적’일 때 대상은 이에 대하여 ‘의존적’이고, 주체가 ‘동적動的’ 일 때 대상은 이에 대하여 ‘정적靜的’이고, 주체가 ‘적극적’일 때 대상은 이에 대하여 ‘소극적’이며, 주체가 ‘창조적’일 때 대상은 이에 대하여 ‘보수적保守的

’이다. 그리고 주체가 ‘와향적外向的’일 때 대상은 ‘내향적內向的’이 된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피조세계에 있어서, 크게는 천체로부터 작게는 원자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다. 예컨대 태양계의 태양과혹성과의 관계, 원자의 양자와 전자와의 관계는 중심적인 것과 의존적인 것의 관계이며, 어미동물과 새끼동물,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는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의 관계이며, 지도자와 추종자, 주는 자와 받는자와의 관계는 적극성과 소극성의 관계 또는 능동성과 피동성의 관계이다.

또 가정생활에 있어서 부단히 가정의 번영을 꾀하는 남편은 창조적또는 외향적이요, 가정을 내적으로 알뜰히 꾸려나가는 아내는 이에 비해서 보수적 또는 내향적이다. 그런데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

상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예컨대 아무리 한 개체가 주체일지라도 상위자에 대해서는 대상인 것이요, 아무리 한 개체가 대상일지라도 하위자에 대해서는 주체가 된다.

3) 주체와 대상의 격위는 다르다.

이와 같이 주체는 대상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중심적, 동적, 적극적,창조적, 능동적, 외향적이며, 대상은 주체의 각각의 입장에 대응해서의존적, 정적, 소극적, 보수적, 피동적, 내향적이다.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위치상의 주체와 대상의 차이성은, 그 근원이 원상내의사위기대의 주체와 대상의 격위의 차이差異 때문이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을 포함한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서만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간단히말해서 주체와 대상사이에만, 즉 격위의 차差가 있는 곳에서만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두 요소나 개체가 동격일 경우에는 수수작용이 벌어질 수 없으며, 도리어 반발이 벌어지기 쉽다. 양전기와 양전기 사이에 벌어지는 반발이 그 예이다.

그런데 주체와 대상의 격위의 차差는 바로 질서를 뜻한다. 따라서 질서있는 곳에서만 수수작용이 벌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의 이론은 또 하나의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세계는 걷잡을수 없는 대혼란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거의 모든 유형의 상대적 관계가 원만한 수수관계가 되지 못하고, 상충적관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모든 상대적 관계는 주체와대상의 관계가 되지 아니하고, 주체와 주체의 반발의 관계가 되어 버

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혼란을 수습하는 길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요,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주체와 주체의 상충적 관계를 주체와 대상의조화적 관계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와대상의 관계 설정의 필연성 또는 그 당위성이 밝혀져야 하는데, 여기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의 기준 또는 근거가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원상내의 사위기대이론 또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의 이론이다.

이리하여 원상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상에 관한 이론도 또한 현실문제해결의 기준임을 알게 된다.

4) 상대물과 대립물

끝으로 주체와 대상에 관련하여 상대물과 대립물의 개념에 대해서한마디 하고자 한다. 주체와 대상의 원리적인 관계는, 목적중심의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조화적이요, 상충적이 아니다. 두 요소 또는 두개체의 관계가 조화적일 때, 이 두 요소(개체)를 통일사상에서는 상대물이라 하고, 그 관계가 상충적일 때는 이 두 요소(개체)를 대립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상대물 사이에는 조화가 벌어져서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대립물 사이에는 상충과 투쟁이 벌어져서발전이 정지되거나 파탄이 온다. 공산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은 모순의 이론, 대립물의 이론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론으로써 정치, 경제,사회, 문화 등을 변혁하려 했기 때문에, 예상과는 달리 오늘날 걷잡을수 없는 파탄이 초래되고 말았던 것이다.

발전은 목적 중심의 주체와 대상, 즉 상대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목적(중심)이 없는 대립물의 상충작용에 의해서는 결코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리하여 상대물(주체와 대상)의 이론은, 오늘날의 공산주의의 혼란(뿐 아니라 자유세계의 혼란까지도)을 근본적으로 수습하는 방안도 된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상대물의 이론도또 하나의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사위기대형성 및 주체와 대상’에 대한 설명을 모두 마친다. 다음은 사위기대의종류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3) 사위기대의 종류

1) 사위기대의 구성요소

이미 앞의 ‘(1)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의 항목에서 지적한 것처럼,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은 중심에 따라서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그하나는 합성체이며, 또 하나는 신생체이다. 즉 심정이 중심일 때는 합성체合性體를 나타내고, 목적(창조목적)이 중심일 때는 신생체新生體를 낳는다. 이러한 두 가지의 결과는 피조물 상호간의 수수작용에 있어서도마찬가지이다. 피조물의 수수작용이 원상내의 수수작용을 닮고 있기때문이다.

이것은 수수작용에 두 가지의 종류가 있음을 뜻한다. 즉 성상․형상의수수작용은 중심의 종류(심정, 목적)와 결과의 종류(합성체, 신생체)에따라서 두 가지 종류로 나뉘게 된다. 즉 심정이 중심이 되고 결과가합성체인 경우의 수수작용과, 목적이 중심이 되고 결과가 신생체인 경우의 수수작용이 그것이다. 전자는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중

화체(‘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 원리강론, 1987, p. 35)를 이루는 경우이며, 후자는 성상․형상(이성성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하나님의 실체대상을 번식하는 경우(같은 책, p. 42), 즉 만물을 창조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7과 같다.

그림 1-7. 원상에 있어서의 심정중심의 수수작용과 목적중심의

수수작용

이 같은 수수작용은 피조물 특히 인간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우리는인체가 마음과 몸의 통일체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원리(창조원리)로 보면, 목적(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성상(마음)과 형상(몸)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합성체를 이루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가끔 마음으로 구상(성상)하고, 이에 따라서 손 또는 도구(형상)를 움직여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한다. 이것을 원리로 표현하면, 목적(신작품을 만들려는 목적)을 중심하고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신생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합성체를 이루는 경우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인간의 예에서와 같이 수수작용을 하기 전이나 한 이후, 성상과 형상의 결과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성상도 형상도 수수작용을 하기전이나 후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양자가 결합해서 하나로 통일되어있을 뿐이다. 이를 비유하면 남녀의 결혼과 마찬가지이다. 남자는 결혼 전이나 후나 내내 그 남자요, 그 여자도 결혼 전이나 후나 내내 그여자이다. 다만 다른 것은 결혼 후의 부부는 일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결과가 합성체인 경우의 성상과 형상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신생체를 이루는 경우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수수작용을 하기전의 성상․형상과 수수작용을 한 후에 나타난 결과와는 본질적으로 전연 다르다. 즉 수수작용의 결과, 새로운 신생체(작품)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전자 즉 합성체를 이루는 경우의 수수작용을, 자기동일적自己同一的

수수작용, 또는 간단히 자동적自同的수수작용이라 하고, 후자 즉 신생체를 산출하는 경우를 발전적發展的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이 양자를변화,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자는 수수작용의 전과 후에 있어서 성상․형상이 무변화이기 때문에 이것을 정적수수작용靜的授受作用이라고하고, 후자는 수수작용에 의해서 변화된 결과로서 신생체가 출현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동적수수작용動的授受作用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은 위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실은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이며, 중심과 결과의 위치를 포함하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결국 사위기대의 형성인 것이다. 따라서 위치로 볼때, 자동적수수작용은 자동적(자기동일적)사위기대임을 뜻하며, 발전적수수작용은 발전적사위기대임을 뜻한다. 이리하여 사위기대에는 우선합성체를 이루는 자동적사위기대와, 신생체를 이루는 발전적사위기대의 두 가지의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된다.

2) 내적사위기대와 외적사위기대

그런데 사위기대에는 이 외에 또 다른 두 종류의 사위기대가 있다.

그것이 내적사위시대內的四位基臺와 외적사위기대外的四位基臺이다. 이에 관해

서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의 사위기대를 알아보려면 위에서 처럼 먼저 수수작용에 내적수수작용과 외적수수작용이 있음을 이해하면 된다. 우리는 위에서 성상과 형상이 상대적관계를 맺어서 상대기준을 조성하면 반드시 수수작용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원상의 내용’ 중의 신상의 항목에서, 하나님의 성상(본성상)은 기능적부분과 대상적부분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것과, 기능적부분을 내적성상, 대상적부분을 내적형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즉 본성상 내부에 다시 성상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 본성상을 중심하고 볼 때 내부에도 성상(내적성상)과 형상(내적형상)이 있고, 외부에도성상(본성상)과 형상(본형상)이 있다. 내부이거나 외부이거나 성상․형상이 공통요소를 중심하고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 반드시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즉 외부의 본성상과 본형상 사이뿐 아니라, 내부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 사이에도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전자를 외적수수작용이라하고, 후자를 내적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이 내적수수작용에도 중심(심정 또는 목적)과 결과(합성체 또는 신생체)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8과 같다.

그림 1-8. 내적사위기대와 외적사위기대

이것은 본성상만을 중심하고 볼 때, 안팎(내와 외)으로 수수작용이벌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을 인간에 비유하면 인간이 내적생활과외적생활을 동시에 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내적생활이란 내면생활 즉

정신생활을 뜻하며, 외적생활이란 타인과 접촉하면서 하는 생활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의 이 내적생활도 수수작용이며, 외적생활도수수작용으로서, 내적생활은 마음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내적수수작용)이요, 외적생활은 타인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외적수수작용)인데, 그 기원이 바로 원상의 본성상의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본성상으로부터 유래된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은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모든 개체에도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상술한 바와 같이 성상과 형상의 관계는 위치로 볼 때 주체와대상의 관계이며, 따라서 중심과 결과를 포함한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바로 사위기대의 형성인 것이다. 따라서 위치로 볼 때, 내적수수작용은 내적사위기대를 뜻하며 외적수수작용은 외적사위기대를 뜻한다. 즉 본성상은 안팎으로 사위기대를 형성하고 있다. 원상내의 본성상을 중심한 이같은 내적사위기대와 외적사위기대를 특히 ‘원상의 이단구조二段構造’라고 부른다. 그리고 피조물도 원상의 구조를 본따서 개체마다 안팎으로 사위기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이것을 ‘존재의 이단구조’라고 한다.

3) 원상의 이단구조와 존재의 이단구조

그러면 다음에 ‘원상의 이단구조’와 ‘존재의 이단구조’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피조물이 예외없이 본성상으로부터 유래된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 전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외없이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를 형

성하고 있음을 뜻한다. 수수작용이란 심정 또는 창조목적을 중심한 원만하고 조화로운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만물은 예외없이 이같은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내적 및 외적인 수수작용 즉 내적 및 외적인 사위기대를 형성하고 있다.19) 그런데 인간만이 타락으로 내적생활(정신생활)즉 내적사위기대와, 외적생활(사회생활) 즉 외적사위기대가, 심정(사랑)이나 창조목적을 중심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이 되어버려서 상충, 갈등, 대립, 투쟁, 분규 등의 사회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성격의 사회적 혼란(현실문제)을 근본적으로 수습하는 길은, 인간이 내적 및 외적으로 본연의 사위기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본성상 중심의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의 이론도또한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상내의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는 피조만물의 존재방식의 기준이 되고 있다. 원상의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가 바로 상술한 바의 ‘원상의 이단구조’이다. 그리고 이것을 닮은 피조물의 내외의 사위기대를 ‘존재의 이단구조’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이단구조’는 창조의 닮기의 법칙에 의해서 원상의 이단구조를 닮아난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1-9 및 그림 1-10과 같다.

그림 1-9. 원상의 이단구조

4) 사위기대의 종류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위기대의 종류를 다루고자 한다.

그림 1-10. 존재의 이단구조

이상의 설명에서 사위기대에는 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 및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 외에, 내적사위기대內的四位基臺 및 외적사위기대外的四位基臺의 또 다른 두 종류의 사위기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사위기대에는 원리적으로 네 종류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들이 서로 조합되어서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사위기대가 형성된다. 즉 내적자동적사위기대內的自同的四位基臺, 외적자동적사위기대外的自同的四位基臺

,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외적발전적사위기대外的發展的四位基臺

가 그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11과 같다. 다음에이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그림 1-11. 사위기대의 종류

① 내적자동적사위기대

이것은 내적사위기대와 자동적사위기대가 조합組合된 것이다. 즉 본성상 내부의 내적사위기대(내적수수작용)가 자기동일성 즉 불변성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한다. 자동적사위기대란 성상(주체)과 형상(대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그 결과로서 합성체 또는 통일체를 이루는 사위기대

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위기대가 실제에 있어서는 안팎에서 동시에 형성된다. 예컨대 인간의 경우, 인간은 누구나 생각(사고)하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생각한다는 것은 내적으로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을 하는 것, 즉 내적사위기대(의 형성)를 의미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외적으로 타인과 수수작용하는 것, 즉 외적사위기대(의형성)를 의미한다.

이때의 생각은 막연하고도 비생산적인 생각으로서, 그 생각의 결과는 다만 마음의 한 상태일 뿐이다. 즉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합성체일 뿐이다. 이러한 합성체를 이루는 사위기대가 자동적사위기대이다. 그런데 그것이 내적으로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적자동적사위기대가 된다. 내적자동적사위기대도 그 중심은 심정 또는 창조목적20)이며,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도 역시 원만하고 조화롭게 이루어지며, 그 결과 역시 합성체(통일체)이다. 모든 피조물은 예외없이 타자와 더불어 수수작용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때 반드시 그 내부에서도수수작용 즉 사위기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내적사위기대의 원형이 바로 본성상내의 내적사위기대이다.

② 외적자동적사위기대

이것은 외적사위기대와 자동적사위기대가 하나로 조합된 것이다. 즉본성상 외부(즉 본성상과 본형상간)의 외적사위기대가 자기동일성(불변성)을 띠게 된 것을 말하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기 직전의 속성의 상태 즉 성상과 형상이 중화를 이룬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은 후,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수가 많다. 이때의 사위기대(수수작용)가 바로 외적자

동적사위기대이다. 단 이때에는 내적자동적사위기대가 동반되게 된다.

그 좋은 예가 부부생활이다. 남편이나 아내는 각각 내적생활(정신생활), 즉 내적자동적사위기대를 조성해 가면서, 그 터 위에서 서로 협조하고 화합하여 부부일체(합성체)를 이룬다. 이것이 외적자동적사위기대의 형성인 것이다.

이와 같이 외적자동적사위기대는 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내적인 자동적사위기대의 터 위에서 외적자동적사위기대가 성립된다. 원상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의 불가분리성不可分離性은, 피조물 및 인간상호 간의 사위기대(외적자동적사위기대) 형성의 기준이 된다.

다음에 만물 상호간의 실례로서 태양과 지구를 예로 들어보자. 태양과 지구는 만유원력을 주고받으며 수수작용을 한다. 이때 태양은 주체이고 지구는 대상이다. 태양이 주체이기 때문에 지구에 대해서 중심적이며, 이에 대하여 지구는 대상이기 때문에 태양에 대하여 의존적이다. 그런데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수수작용은 원칙적으로 대상이 주체의 주위를 반드시 도는 원환운동으로서 나타난다. 그것은 원상내의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의 원화성, 원만성의 상징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피조세계에 있어서 일정한 원환운동이 벌어지면, 그것은 거기에 반드시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볼 때, 지구가 태양을돌면서(공전) 지구 자체도 돈다(자전). 이것은 지구와 태양계의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즉 지구는 자전을 통해서 자체의 존립(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공전을 통해서 태양과 더불어 태양계 전체의존립(자기동일성)을 유지한다. 지구의 이 같은 자전과 공전은, 지구 내

부에도 자동성 유지를 위한 수수작용(내적수수작용)이 벌어지고, 지구외부에도(태양과의 사이에) 자동성 유지를 위한 수수작용이 벌어지고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태양은 태양대로 자전하면서 자체의자동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구에 대해서는 주체로서 지구의의존의 중심이 되어 지구를 주관한다. 즉 지구에 만유원력과 빛을 준후 지구의 공전을 도우면서 지구의 생물을 살린다. 뿐만 아니라 은하계의 중심에 대하여 대상이 되어서 은하계의 주변을 공전한다.

이와 같이 태양과 지구의 예로 볼 때, 거기에 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외적자동적사위기대가 동시에 조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양기대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적자동성 유지와 외적자동성 유지를 나타내는 원환운동(자전, 공전)은, 본연의 인간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단 인간생활은 정신과 정신의 관계를 터로 한 생활이기 때문에, 원환운동은 물리적인 원환운동이 아니라 원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중심한 원만성, 조화성, 원활성을 띤 수수작용을 뜻한다. 따라서 내적자동성(내적자동적사위기대)의 유지는 사랑을 중심하고 타인과 화해하면서, 보다더 효과적으로 타他에 봉사하려는 심적자세의 유지로 나타나며, 외적자동성(외적자동적사위기대)유지는 특히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상하간일때는, 대상의 주체에 대한 공전운동이 상위자(주체)에 대한 감사에 찬순종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주체의 대상에 대한 주관은 진리의 힘과사랑의 빛의 시여施輿로서 나타난다. 즉 주체(상위자)는 대상을 잘 가르치면서 계속해서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이상이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조성하게 되는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 외적자동적사위기대로서, 오늘의 타락한 사회에

서는 그 모범적 실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가치관의 총체적인 붕괴와 사회적 범죄의 증대의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원상의 ‘내적 외적인 자동적사위기대이론’은 단순한 신관이 아니라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21)

③ 내적발전적사위기대

다음은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내적사위기대와 발전적사위기대가 조합된 것이다. 즉 본성상내의 내적사위기대가 발전성, 운동성을 띠게 된 것을 말한다.22) 발전적사위기대란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신생체를 산출할때의 사위기대를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위기대도 실제에 있어서는안팎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자동적사위기대 때와는 달리, 동시적同時的이아니고 계시적繼時的이다. 즉 내적인 발전적사위기대가 먼저 형성되고,이어서 나중에 외적인 사위기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내적인 사위기대는 창조에 있어서 제일 먼저 형성되는 사위기대이다. 예컨대 인간이 제품을 만들거나 작품을 창작할 때에, 먼저마음으로 구상해서 계획(청사진)을 세우고 나중에 그 구상, 계획에 의해 도구 또는 기계를 사용하여 물품을 제작(창작)한다. 즉 구상의 단계가 먼저이고 제작의 단계가 나중이다. 그리고 구상은 마음으로 하기때문에 내적이요, 제작은 외부의 도구나 기계를 사용하면서 하기 때문에 외적이다. 그리고 구상도 수수작용 즉 사위기대 조성이요, 제작도사위기대 조성이다. 그리고 구상한 결과도 신생체요, 제작한 물품도신생체이다. 그리고 또 구상은 막연한 구상이 아니라, 일정한 물품을

제작하겠다고 하는 뚜렷한 목표를 세워놓고 한 구상이며, 제작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구상단계의 사위기대나 제작단계의 사위기대는 모두목적을 중심한 사위기대인 것이다. 목적과 신생체를 포함한 사위기대는 발전적사위기대이다. 이것이 안팎의 두 단계에 걸쳐서 형성되었으니 처음 구상단계의 것이 내적발전적사위기대요, 다음의 제작단계가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단계이다.

인간의 제작의 경우, 이처럼 구상(내적발전적사위기대)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어서 제작(외적발전적사위기대)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원형原型

이 ‘하나님의 원상의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본성상내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간의 목적 중심한 수수작용으로서, 신생체인 구상(로고스, 말씀)이 형성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이다. 이것이 피조물의 모든 유형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원형이다.23)

그러면 피조세계에서 나타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원형으로서의,본성상내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관하여 좀 더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심=목적’, ‘주체=내적성상’, ‘대상=내적형상’, ‘내적수수작용’, ‘결과=구상’ 등의 소항목을 가지고 설명키로 한다.

i) 중심=목적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중심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목적 즉 창조목적이다. 그런데 이 목적은 사랑하고자 하는 정적 충동인 심정을 터전으로 한 창조목적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심정을 동기로 한 창조이기 때문에 창조목적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사랑의 대상을 세워서, 그를 통하여 피조세계에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기쁨과 위로를 받고자 하심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았고, 만물은 인간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았다. 따라서 인간의 피조목적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 기쁨과 위로를 돌려드리는 것이요, 만물의 피조목적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에게 미美와 기쁨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 때문에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되고, 만물을 사랑할수 없게 되고, 만물로부터의 아름다움마저 전면적으로는 수용할 줄을모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만물을 괴롭게 하는(로마서 8:22) 결과를 낳고만 것이다.

인간은 창조의 닮기의 법칙에 따라서 하나님을 닮아나도록 지음받았다. 창조목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인간은 모든 창조활동(제작, 생산, 창작 등의 활동)에 있어서, 그 목적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으로 인하여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로 흘러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할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천도를 어긴 결과가 되어서 인간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세계적 대혼란을 수습하는 방안의 하나는, 모든 창조활동에 있어서 각양의 창조목적을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일치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중심인 목적에 관한 이론까지도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기준이된다.

ii) 주체=내적성상
ㄱ) 내적성상이란 무엇인가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있어서 주체의 입장에 있는 요소는 물론 내적

성상이다. 내적성상이란 지․정․의의 세 가지의 심적기능心的機能이다. 그런데 이 3기능은 각각 별개의 독립된 기능이 아니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지적기능知的機能에도 정과 의가 포함되어 있으며, 정적기능情的機能에도 지, 의가 포함되어 있고, 의적기능意的機能에도 지, 정이 포함되어 있다. 즉 3기능은 서로 통일되어 있어서 그 통일체가 때로는 지적기능을더 많이 발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적기능을 더 많이 발휘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적기능을 더 많이 발휘하기도 한다.

지정의의 기능이란 이러한 성격의 세 기능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 형성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성격의 3기능을 발휘했다고 본다. 지정의의 3기능의 성격을 이렇게 이해하게 될때, 현실세계에 있어서 이에 대응하는 본연의 가치, 즉 진․미․선도 공통요소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 이 세 가치에 대응하는 3대문화 영역(과학․철학 등의 학문분야, 예술분야, 종교․도덕분야)도 상호 공통요소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간 영역도 있게 됨을또한 알게 된다.

이 사실은 창조와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먼저 심정을 동기로 하여 창조목적을세우고, 그 목적을 중심하고 지정의의 3기능을 총동원시켜서, 즉 ‘전력투입’하여 (‘하나님은 천지 창조에 있어서 자신을 전력투입하셨다’: 선생님 말씀) 창조를 개시하고 추진하였음을 뜻하며, 뿐만 아니라 재창조에 있어서도 지정의의 기능을 총집중시켜 왔음을 뜻한다. 그리고 다시 이 사실은 복귀역사에 있어서, 특히 말세적인 혼란이 계속되는 오늘에 있어서, 이 지․정․의에 대응하는 과학, 철학 등의 학문분야와 음악, 무용, 회화, 조각, 문학, 시 등의 예술분야와 종교, 도덕윤리 등의

규범분야 등의 3대 문화분야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의 실현에, 즉통일문화세계, 심정문화세계의 창건에 총동원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실을 바라볼 때, 모든 문화분야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저속한방향으로 타락해 가고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와 김일성주체사상과 같은 사이비 개혁사상이 침투하여, 모든 문화영역 특히 예술분야를 프롤레타리아예술이니, 민중예술이니 하면서 더욱 저속화시키고 있고 더욱불모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탄이 그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문화영역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지성인, 학자들의 사명은 자명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창조목적 실현과 창조이상세계의 건설을 위하여, 그리고 통일문화(심정문화)세계의 창건을 향하여, 총궐기하며 총진군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창조시에 원상의 본성상내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형성됨에 있어서, 내적성상인 지정의의 세 기능이 목적 중심으로 총동원되었다는 사실까지도, 현실문제 해결에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음을 알게된다.

ㄴ) 내적성상은 육심肉心과 생심生心의 통일체이다.

끝으로 여기에 한 가지 첨부할 것은, 인간의 지정의에는 영인체의지정의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육신과 영인체의 이중체二重體(통일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본심)도 육심과 생심의 통일체이다. 따라서 내적성상도 육신의 지정의의 기능과 영인체의 지정의

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육심의 지적기능은 감각과 지각정도이며, 기껏해야 약간의 오성적기능悟性的機能을 나타내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생심의 지적기능은 감성感性,오성悟性, 이성理性을 전부 갖고 있어서 보편적 진리를 체득할 수도 있다. 생심은 또 자아를 인식하고 반성反省하는 능력 즉 자아의식自我意識(self-consciousness)도 갖고 있다. 과학자들(예: 대뇌생리학자 존 엑클스, 생물학자 앙드레 구도페로 등)이 인간에게만 자아의식이 있고,동물에게는 그것이 없다고 한 것은, 인간에게는 생심이 있기 때문이다.

육심의 정적기능은 생심의 그것에 비하여 저차원이다. 생심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을 느끼며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애타심愛他心도 발휘한다. 그러나 생심의 정적기능은 고차원적이어서 인간이 예술생활을 할수 있고,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민족이나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인간이 생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육심의 의적기능도 생심의 그것에 비하여 역시 저차원이다. 통일사상에 있어서의 의적기능은 의욕성意欲性으로서, 창조목적(개체목적, 전체목적)을 달성하려는 실천심實踐心(실천력) 또는 결단심決斷心(결단력)을 말한다. 동물의 창조목적은 주로 물질생활(육체 중심의 먹기, 살기, 새끼낳기 등)을 통해서 달성되지만, 인간의 창조목적은 육신생활을 터로한 정신생활(진․미․선의 가치의 생활)을 통해서 달성되기 때문에, 의적기능에도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게 된다. 즉 동물의의적기능은 의․식․주․성性에 관한 것이지만, 인간의 의적기능은 육심의의적기능과 생심의 의적기능이 복합되어 있으며, 본연의 인간에게는생심의 기능(가치의 실현 및 추구의 기능)이 육심의 기능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적기능이 선차적으로는 가치(정신적가치)를 추구하며, 후차적으로는 물질생활을 추구한다.

이상으로 인간의 지․정․의의 기능은 육심의 지정의와, 생심의 지정의와의 통일임을 밝혔다. 즉 지적기능도 두 마음(육심, 생심)의 지적기능의 통일이요, 정적기능도 의적기능도 각각 두 마음의 기능의 통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통일된 지적기능, 정적기능, 의적기능 등 3기능 마저도,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술한 바와 같이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통일사상의 인식론에는 이 내적성상의 통일된 측면을특히 부각시켜서 이것을 ‘영적통각靈的統覺’이라고 부른다. ‘생심 중심의통일된 인식능력’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내적성상을 지․정․의의통일체로 보는 관점은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 전통적인 미해결문제를해결해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24)

iii) 대상=내적형상
ㄱ) 내적형상이란 무엇인가

다음은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있어서의 대상의 입장인 내적형상에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내적형상은 본성상 내에 있는 꼴의 부분으로서 관념, 개념, 원칙, 수리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관념은 이미 창조되었거나 또는 장차 창조되어질 피조물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표상 즉 영상이며, 개념은 일군一群의 관념에 공통적으로포함된 요소를 마음속에 영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원칙은 피조세계의자연법칙과 규범법칙 등의 근본원인이 되는 법칙이며, 수리는 수적 원리로서 자연계의 수적현상의 궁극적원인이다.

그러면 내적형상을 이루고 있는 유형의 요소를 창조와 관련시켜서 보자. 이 내적형상은 하나님의 우주창조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을까. 그것은 비유컨대 주형鑄型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주형이란 쇠붙이를 녹인(융해融解한) 액체를 부어서, 물건을 만드는 거푸집을 뜻한다.

창조에 있어서 이 융해액融解液에 해당한 것이, 본형상 즉 ‘전 에너지’(Pre-Energy)이다. 마치 인간이 주형에 철의 융해액을 부어서 철물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이 내적형상이라는 영적靈的 주형에 본형상이라는 영적 액체를 부어 넣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물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25)

ㄴ) 내적형상은 일종의 주형(영적주형)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내적형상내의 주형은 인공주형人工鑄型과 달라서 겉모양만의 주형이 아니라, 내용 즉 세밀한 내부 구조까지를 갖춘 주형(영적주형)이다. 인간의 경우,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위시한 각종의 기관, 조직, 세포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구조를 갖춘 주형이며, 창조에 있어서이러한 주형의 역할을 다한 것이 내적형상내의 여러 관념(단순관념,복합관념)이라고 본다. 우리가 만물을 바라볼 때, 대소를 막론하고, 또종류별을 막론하고 만물은 반드시 일정한 꼴을 갖고 있고, 일정한 종류에 걸쳐 공통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면서 일정한 수적내용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철물의 모양이 그 주형의 꼴을 닮아난 것처럼, 모두 주형(영적주형)인 내적형상(복합관념)을 닮아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또 하나 분명히 해둘 것은, 이상에서 설명한 내적형상이 모두 창조에 직접 관련된 것, 즉 피조물의 직접적인 모형이 된 것 뿐이

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창조의 모형과는 무관한 관념, 개념, 원칙, 수리 등이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하나님’, ‘나’, ‘부모’, ‘미’, ‘이상’, ‘목적’ 등의 관념이나 개념은, 시공의 세계에 만물로서 지음받을 수는 없는 것들이다. 이들은 창조와 간접적인 관련은 있어도, 직접적으로 피조물이 되지는 못한다. 이상으로 내적형상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iv) 내적수수작용
ㄱ) 내적수수작용이란 무엇인가

다음은 내적수수작용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본성상 내부에서 신생체의 형성을 위한 수수작용에 의해 벌어지는 사위기대이기 때문에 이 수수작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수수작용 역시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인데 이것은 바로 내적성상인 지․정․의의 통일적 기능과 내적형상간의 수수작용을 뜻한다. 물론위에서 밝힌 창조목적을 중심한 수수작용이다. 그런데 이 내적수수작용은 요컨대 ‘생각’, ‘사고’, ‘구상’을 뜻한다. 왜냐하면 본성상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그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을 왜 수수작용으로 보느냐 하는데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생각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생각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다한 마음의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즉 기억, 회상, 판단, 관심, 계획, 의견, 이해, 상상, 추측, 추리, 희망, 사색, 명상, 해석 등을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심지어 망상妄想

까지도 생각의 개념에 포함된다. 이것들은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의 현상(생각)은 과거에 경험한 것에 대한 생각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의 세 종류로나눌 수 있다. 여기서 과거에 경험한 것에 대한 생각이란 기억에 관한것이며, 현재의 상황에 대한 생각이란 의견, 추측, 이해 등에 관한 것이며, 미래의 일에 대한 생각은 계획, 희망, 이상 등에 대한 것을 말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생각도 미리 마음속에 일정량의 관념(일종의 마음의 영상)이 들어있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텔레비전의 시청은 형광판에 영상이 비쳐질 때에만 가능하며, 영상이 형광판에 비쳐지지 않으면 시청이 불가능한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의 관념(영상)은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우리가 눈을 감고도 마음속에서 새를 생각하고 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실지로 과거에 새나 꽃을 본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ㄴ) 관념의 조작

생각하는데 일정량의 관념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의 일을 되새기는 생각뿐만 아니라 현재의 일을 살피고, 앞날의 일을 내다보는 생각까지도 모두, 과거에 일단 경험한 관념을 가지고서만 가능함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즉 경험한 관념이 많을수록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저축을 많이 해두면 필요할 때에 찾아내서 언제든지 살림을 늘릴수 있는 것과 같다. 또 우리가 가재도구를 창고에 많이 저장해 두면,언제든지 필요할 때에 꺼내어 쓸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인간이 지식을배우고 견문을 넓히는 것도, 결국은 기억의 창고에 여러 가지 관념을

많이 저장하기 위한 것이며, 실제로 많이 저장된다. 즉 생각이란, 창고에서 저장물을 끄집어내어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사용하듯이, 기억의창고에서 관념을 끄집어내어 여러 가지로 다루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통일사상에서는 ‘관념의 조작’(Operation of Ideas)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관념의 조작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관념이란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표상 또는 영상을 말하며,사물 하나하나의 영상과 같이 간단한 것을 단순관념이라 하고, 이 단순관념이 2개 이상 복합된 것을 복합관념이라 한다(단 이것은 비교상의 상대적 개념이다). 그리고 조작이란, 기계같은 것을 이리 저리 다루는 것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의 조작의 뜻은 예컨대 필요한 여러 부품이나 기계를 저장소에서 끌어내는 것(인출), 또는 필요한 기계와 기계를 연결시키는 것, 또 필요에 따라서 기계를 구성부분으로 분해하는것, 혹은 부품을 모아서 새로운 기계를 조립하는 것, 기계의 몸체는그냥 두고 두 개의 부품의 위치를 교환하는 것, 또는 여러 기계를 연결시켜서 하나로 통일하는 것 따위의 작업을 의미한다.

ㄷ) 관념의 조작은 수수작용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관념을 다루는 것이 ‘관념의 조작’이다. 즉 첫째로,기계의 인출에 해당하는 관념의 조작이 ‘상기想起(기억)’이며, 기계의 연결의 조작에 해당하는 것이 관념과 관념의 ‘연합聯合’ 또는 ‘복합複合’이요, 기계의 분해에 해당하는 것이 관념의 ‘분석’이요, 새 기계의 조립에 해당하는 것이 신관념의 ‘구성’이요, 부품의 위치 교환에 해당하는관념조작이 ‘환위換位’요, 여러 기계의 연결, 통일에 해당하는 것이 관념의 ‘종합’이다. 그 외에 또 중요한 관념조작의 하나로, 일정한 관념을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일도 있는데, 이것을 ‘환질換質’이라고 한다. 이상을 요약하면 관념의 조작이란, 과거에 경험한 여러 관념들 중에서 필요한 것을 가지고 ‘상기’, ‘연합’, ‘분석’, ‘구성’, ‘종합’, ‘환위’, ‘환질’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상기想起는 과거의 경험 중에서 필요한 관념을 이끌어내는 것이요, 연합聯合은 한 관념을 생각할 때, 그로 말미암아 다른 관념이 연상되는 것이며(예: 아버지를 생각할 때에 어머니가 연상됨과 같은), 여러 작은관념들이 모여서 큰 관념을 이루는 것이 구성構成이요(예: 토대, 주춧돌,기둥, 도리, 들보, 대들보, 서까래, 지붕, 방 등의 관념이 모여서 ‘집’이라는 큰 관념이 구성되는 것), 어떤 관념을 작은 관념으로 나누는 것이 분석이며(예: 인체는 신경계통, 소화기계통, 감각기관, 순환기계통,호흡기계통, 근육조직, 비뇨기, 내분비선, 임파계통으로 되어 있다고할 때의 세분하는 방식), 분석한 여러 관념을 다시 하나의 큰 관념으로 총합總合하는 방식이 종합이다(예: 신경계통, 순환기계통, 호흡기, 소화기, 감각기관, 비뇨기 등이 합해서 된 것이 인체라고 할 때의 사고방식).

그리고 하나의 판단의 뜻을 변치않게 하면서 주어와 술어를 바꾸는조작을 환위換位라 하고(예: ‘모든 A는 B이다’를 ‘어떤 B는 A이다’라고하는 따위), 하나의 긍정판단을 부정판단否定判斷으로 하되 그 술어를 모순관념矛盾觀念으로 바꿔서 의미를 변하지 않게 하는 조작을 환질換質이라고 한다(예: ‘A는 B이다’를 ‘A는 비非 B가 아니다’라는 따위의 사고방식). 설명이 조금 장황했지만, 생각이 내적수수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ㄹ) 수수작용의 유형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종류의 생각(사고: 예컨대 회상, 판단, 의견,상상, 이해, 추리 등)이 여러 가지 방식의 관념조작觀念操作에 불과함을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관념조작이 바로 수수작용이다(그림1-12 참조).

그림 1-12. 관념의 조작

이제부터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관념의 조작이수수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수수작용의 유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유형이란 양측의식형兩側意識型(제1형), 편측의식형片側意識型(제2형), 무의식형無意識型(제3형), 타율형他律型(제4형), 대비형對比型(조합형組合型

제5형)의 5형의 수수작용을 말한다.

양측의식형은 주체와 대상이 모두 의식을 지니고 수수작용을 하는경우를 말하며, 편측의식형은 주체만이 의식을 갖고 있고 대상은 무기물이거나 무기물과 같은 무생명의 입장에 있는 존재사이에서 벌어지는수수작용을 말한다. 또 무자각형은 주체와 대상이 전연 알지 못하는사이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예: 동물과 식물사이에 CO₂와 O₂의 교환)을 말하며, 타율형은 양측이 모두 무생명인 채 제3자로부터 주어진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수수작용의 경우(예: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의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대비형은 인식 또는 판단하는 경우에 형성되는 것으로서, 편측의식형과 같으면서도 대상이 한몫에 두 개 또는 두 개 이상일 때,

혹은 대상의 속성이 두 개 또는 그 이상일 때, 이들의 요소를 비교해서 인식(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길을 걸어가는 한 쌍의 男女를멀리서 바라보고 두 사람의 연령, 태도 등을 비교 혹은 대조해서 그들이 부부라는 것을 판단하는 따위, 또는 가게에서 상품을 바라보고 비교한 후 좋은 것을 택하는 것, 혹은 푸른 숲 속에 붉은 기와집의 지붕이 있음을 보고 그 녹색과 적색을 대조해서 조화의 미를 느끼는 따위가 모두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이때 이 대비에 의한 판단은 비록 그것이 수수작용이라 하더라도 주체가 일방적으로 행한다. 주체가 일방적으로 대비 및 판단하는 것이수수작용이 되는 이유는, 주체는 대상에게 관심을 주고 대상은 주체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주고받는 작용의 형식이 되기때문이다.

ㅁ) 생각(사고)도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앞에서 생각(사고)이 수수작용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실은 이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즉 인간의 경우 마음(성상) 내부의 영적통각靈的統覺(내적성상), 즉 지․정․의의 통일체가 주체가 되어서 내적형상 속에 있는,그리고 경험에서 얻어진 여러 관념(영상)들을 먼저 대비(또는 대조)한다. 이 대비작용 자체도 좁은 의미의 대비형수수작용이다. 대상의 두요소 중의 하나를 주체로, 다른 하나를 대상으로 삼고 양자를 대비하는 것으로서, 대비는 비록 영적통각이 하는 것이지만, 영적통각의 관심이 양자사이를 왕래하기 때문에 내적형상 내에서 대비되는 임의의두 요소 사이의 작용도 일종의 수수작용이다. 좁은 의미의 대비형수수작용인 것이다. 결국 영적통각과 내적형상과의 수수작용도 대비형수수

작용이요, 내적형상내의 대비되는 임의의 두 요소 사이의 작용도 대비형수수작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수작용(대비)의 결과이다. 그 결과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양자가 완전히 일치할 때도 있고, 비슷할 때도 있지만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일 경우도 있다. 또 양자가대응관계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수수작용은 목적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목적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진다. 이러한다양한 결과를 예상하면서 영적통각은 가급적 일정한 방향으로 이 수수작용을 조정해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내용이다. 생각에 회상, 이해, 판단, 추리, 희망 등 여러 가지가 있게 된 것은 이 수수작용의 목표(목적)와 대비방식의 차이에서 연유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리하여 다양한 생각이 계속되면서 물 흐르듯 이어져 나아간다.

그런데 물건을 창조할 때에는 이 생각의 흐름에 일단 매듭이 지어진다. 즉 창조코자 하는 주형(모형)이 될 관념(단순관념, 복합관념 등)이정해진다(이것을 ‘주형성관념’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것은 대비형의수수작용에 의해서 신생체가 형성됨을 뜻한다. 즉 창조에 관한한 그주형은 신생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로고스’(말씀, 구상)로서의 신생체가 아니며, 그 전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전로고

前構想스’(Pre-Logos), 또는 전구상 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新生觀念이때의 신생체인 신생관념 (주형성관념)은 그 속에 그 관념에 필요한 개념, 원칙, 수리 등의 요소를 다 갖춘, 그리고 치밀한 내부구조까지를 갖춘, 보다 더 구체화된 관념이다. 창조에 있어서 이와 같이내적수수작용을 통해서 신생관념이 형성되는 단계가 내적수수작용의초기단계이며, 실제의 피조물에 대한 구상(로고스)은 후기단계에서 이

루어진다.

ㅂ) 목적이 중심이다.

이상으로 생각이란 마음(성상)속에서 벌어지는 내적수수작용임을 밝혔는데, 이것이 수수작용이기 때문에, 목적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인간이 체험하는 생각에는 목적이 없는 막연한 생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때문에 하나님의 생각(구상)은 처음부터 목적 중심이었다. 그것이 바로심정을 터전으로 한 창조목적이었다.

하나님이 창조를 생각하기 전단계前段階, 즉 심정 중심의 사위기대(자동적사위기대)만의 단계도 있었다고 보지만, 그 심정도 억제하기 어려운 정적인 충동이기 때문에 자동적사위기대의 터 위에서 필연적으로창조목적이 세워져서 발전적사위기대가 세워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그것은 창조 후에도 이 자동적사위기대가 발전적사위기대의 터전이 되고 있다는 사실(하나님의 불변성, 절대성)이 이것을 더욱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구상이 목적(심정을 터로 한 창조목적)없이는 세워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 또한중요한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무렇게나 생각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본연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사랑(심정)을 동기로 하고 피조목적(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만 생각하게 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오늘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인, 자의적인 생각 패턴을 버리고 본연의 사고 패턴으로 돌아와서 사랑을 동기로 한

창조목적 실현(지상천국실현)을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26) 이상으로 내적수수작용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v) 결과=구상
ㄱ) 결과란 무엇인가

다음은 결과 즉 구상構想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즉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의 위치에 세워지는 구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설명하려는 것이다. 앞의 항목(‘내적수수작용’)에서 다룬 구상은 ‘생각한다’는 뜻의 구상, 즉 내적수수작용과 같은 뜻의 구상이었지만 여기서의 구상은 생각한 결과로서의 구상으로서, 요한복음(1:1)에 있는 말씀 즉 로고스를 뜻하며, 바로 본 원상론의 신성神性(심정, 로고스, 창조성)중의 하나인 로고스이다. 따라서 ‘신성’의 항목에서 ‘로고스’라는 소제목하에 구상(말씀)과 이법理法에 관한 설명을 이미 마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재론하는 것은, 신성의 항목에서 다룬 로고스는 구상 즉 말씀으로서의 로고스라기보다는, 이법으로서의 로고스여서, 여기에 더 보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설명했던 로고스에 관한 요점을 다시 간단히 소개하고 이어서 약간의 보충을가하려고 한다.

로고스는 원리강론原理講論의 해석에 따라서 말씀 또는 이법理法이라고보는데, 말씀이 바로 구상, 사고, 계획 등이고 이법은 이성과 법칙의통일이다. 그리고 이성은 자유성과 목적성이기도 하고, 법칙성法則性은필연성과 기계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성과 법칙의 통일인 이법은 동시에 자유성과 필연성의 통일, 목적성과 기계성의 통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법에 의해서 우주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만물 속에 이법(이성과 법칙)이 들어있고, 만물 상호간에도 이 이법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계에 작용하고 있는 이법이 바로 자연법칙이요, 인간생활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이 가치법칙價値法則(규범법칙)이다.

그리고 자유성自由性과 필연성必然性의 통일이 이법이라는 말은, 자유는필연 즉 법칙 속에서의 자유이며, 원리 속에서의 자유 즉 원리 안에서의 이성의 선택의 자유임을 뜻하며, 따라서 원리나 법칙을 무시한 자유는 사실은 방종放縱이다. 그리고 이법은 말씀과 별개의 것이 아니고모두 로고스이며, 도리어 말씀의 일부가 이법이라는 것과, 말씀과 함께 이법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하나님의 대상(1987, p. 220)이기 때문에 일종의 신생체요, 일종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는 심정을 동기로 하였기 때문에 로고스(이법)도 사랑이그 터전이 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자연법칙, 가치법칙의 배후에도 사랑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밝혔던 것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이법(가치법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 생활은 따뜻한 사랑속에서 지켜지는 생활이어야만 거기에 비로소 백화가 만발하는 봄동산과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도 아울러 밝혔던 것이다.

ㄴ) 구상으로서의 로고스

이상이 앞의 신성神性의 항목에서 다룬 로고스의 내용의 요점이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앞에서는 주로 이법으로서의 로고스만을 다루었으며, 말씀 즉 구상으로서의 로고스는 상세히 다루지 않았다. 이제부터 그 구상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앞의 내적수수작용의 설명에서도 구상을 다루기는 했지만, 그것은 신생체 즉

결과물로서의 구상이 아니고 주로 ‘생각한다’는 뜻의 구상, 즉 수수작용으로서의 구상, 관념의 조작으로서의 구상이었다. 그런데 내적수수작용의 단계에서도 ‘관념觀念의 조작’의 의미를 갖는 ‘구상’ 외에, 신생체의 뜻을 갖는 ‘전구상前構想’이라는 개념이 쓰여진 바가 있었다. 즉 창조를 목적目的으로한 대비형의 수수작용의 결과 형성된 신생체로서 개념, 원칙, 수리 등을 갖춘, 그리고 치밀한 내부구조를 지닌 보다 더 구체화된 주형鑄型(영적주형靈的鑄型) 곧 모형模型으로서의 신생관념, 즉 주형성관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말씀으로서의 구상이아니며 다만 그 전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영상으로 말하면 사진과 같은 정적영상에 불과하며, 영화에서와 같은 생동력있는 영상 즉동적영상이 되지는 못한다. 문자 그대로의 설계도인 것이다. 그러나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말씀’인 ‘로고스’는 생명이 들어있는 산 신생체新生體이며, 산 구상構想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은 이 사실을 다음과같이 적고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 그 안에 생명이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1-4).

ㄷ) 로고스는 구상체이다.

이와 같이 만물을 창조한 말씀(로고스)은 생명을 지닌 생동하는 구상체構想體였다. 이것은 전단계인 관념의 조작단계에서 형성된 신생체로서, 치밀한 내부 구조를 갖춘 신생관념(주형성관념)에 생명이 부여되어그것이 동적 성격을 띠게된 것을 뜻한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서 정적

인 성격을 지닌 신생관념이 동적 성격을 띠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내적수수작용의 초기와 후기의 2단계 과정에 의해서인 것이다. 즉 영적통각靈的統覺(지․정․의의 통일체)과 내적형상과의 수수작용에는 초기단계와 후기단계의 두 단계가 있는데, 그 초기단계에서는 관념의 조작에의해서 신생관념(전구상前構想)이 형성되고, 그것이 후기단계에서는 심정(사랑)의 힘에 의해서 지정의의 기능이 주입된 후 활력을 얻게 됨으로써, 즉 생명을 얻게 됨으로써 완성된 구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밝혀둘 것은 지정의 속에 가능성으로서만 포함되어 있던 양성, 음성이 이후기단계에서 표면화되기 시작하여, 지정의의 기능의 발현에 조화로운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구상이 바로 하나님의 대상인 로고스이며, 이성성상을 통일적으로 지닌 로고스 즉 ‘로고스의 이성성상’(원리강론, 1987, p. 222)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를 창조한 말씀으로서의 로고스이며,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인 구상이다.

로고스의 이성성상이란 로고스 속에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두 요소가, 로고스의 차원과 종류에 따라서 필요한 만큼 내포되어 있음을 뜻한다. 즉 내적성상內的性相인 지적기능, 정적기능, 의적기능과 내적형상인관념, 개념, 원칙(법칙), 수리 등이 창조될 만물의 차원(광물, 식물, 동물, 인간 등)과 종류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그 로고스에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내적수수작용의 후기의 단계에서 이미 ‘관념조작觀念操作에의하여 형성된 초구상’(신생관념新生觀念)속에 지적, 정적, 의적기능이 심정(사랑)의 충동력에 의해서 차원을 달리하면서 주입된 후, 전구상前構想을 활성화시킨 것이다.27)

vi) 내적발전적사위기대 설명의 요약

이상으로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 관한 설명을 일단 마치고자 한다. 그러나 설명의 어떤 부분은 장황하고 부드럽지 못한 점이없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상의 설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ㄱ)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중심

내적발전적사위기대는 창조에 있어서 외적발전적사위기대보다 먼저조성되는 사위기대로서, 이 사위기대의 중심인 목적은 심정을 터전으로 하고 세워졌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세워놓고 그를 통해서 사랑을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인간의 피조목적은 서로 사랑함은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인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의 대혼란이 야기되었으니, 이 혼란을 수습하는 길의 하나는 만인간의 모든 목적을 인간 본연의 피조목적으로 일치화시키는데 있다.

ㄴ)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의 입장은 내적성상인 지․정․의의 3기능으로서, 이 세 기능은 서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 이3기능에 대응해서 진․미․선의 세 가치가 세워지고 이 3가치에 대응해서3대문화영역三大文化領域이 세워진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주창조에 있어서창조목적을 실현하고자 전력(지․정․의의 총기능)을 투입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는 문화를 구제함과 아울러 신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도 3대 문화영역의 지성인, 학자들은 통일된 이념(목적)을

중심하고 총궐기해야 된다. 한편 인간의 지․정․의는 육심肉心의 그것과생심生心의 그것이 통일된 통일심統一心인 동시에 지․정․의도 통일되어 있어서, 이 통일의 면을 특히 부각시킨 지정의의 통일체를 영적통각이라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영적존재가 되게 하였으며, 아울러 ‘자아의식自我意識’을 갖게 하고 있다.

그리고 육심肉心(지․정․의)의 기능은 의식주衣食住 및 성性의 생활 즉 물질생활을 추구하는 것이고, 생심의 기능은 진․선․미의 가치생활을 추구한다. 여기에서 생심에 의한 가치생활의 추구를 선차적으로 하고, 육심에 의한 물질생활의 추구를 후차적으로 하는 것이 본연의 인간의 생활자세인 것이다.

ㄷ)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대상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대상의 위치는 내적형상이다. 즉 관념, 개념,원칙, 수리 등의 꼴의 요소들이다. 그 중 개념, 원칙, 수리 등은 창조에 있어서는 모두 관념 속에 통일되어 있고, 그 관념은 주형과 같은역할을 한다. 이때 단순관념이 주형(영적주형)이 되기도 하고 복합관념이 주형이 되기도 한다. 창조에 있어서 이 주형(영적주형)은 치밀한 내부구조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의 융액融液(영적융액)에 해당하는 것이‘전에너지’인 본형상이다. 그리고 창조에 관련되는 주형의 수는 무수히많으며 각각 그 꼴이 다르다. 그 하나하나가 개별상인 것이다. 이 개별상이 인간에 있어서는 개인별의 개별상個別相이기 때문에 주형의 역할은 일회한一回限으로 끝난다. 그러나 만물의 개별상은 종류별이기 때문에 하나의 주형은 한 종류 전체의 창조를 망라한다.

ㄹ) 내적수수작용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내적수수작용內的授受作用은 상기上記의 목적 중심한 내적성상(영적통각)과 내적형상과의 수수작용인데, 이것은 생각, 구상을 뜻한다. 즉 내적수수작용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 구상하는것을 뜻한다. 생각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크게 나누어서 과거에 관한 생각(기억, 회상 등)과 현재에 관련된 생각(의견, 판단, 추리등)과 미래에 관한 생각(계획, 희망, 이상 등)으로 유별類別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의 가장 기본요소는 관념 즉 마음속에 간직된 영상으로서,생각이란 이 관념을 여러 가지로 조작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관념의조작에는 ‘상기想起’, ‘연합聯合(복합)’, ‘분석分析’, ‘종합綜合’, ‘구성構成’, ‘환위換位’

, ‘환질換質’ 등의 여러 방식이 있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내적수수작용이란 요컨대 이러한 관념의 조작이다. 그런데 그 수수작용은 물론주체인 영적통각(내적성상)과 대상인 내적형상과의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실제의 내용은 대상내의 여러 관념들을 여러 방식으로 조작한 것에 불과하다. 이 조작은 관념과 관념의 대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수수작용은 대상내의 관념과 관념의 대비가 병행되는, 주체(영적통각)와 대상(내적형상)간의 수수작용이기 때문에 대비적 성격을띤 편측의식형片側意識型의 수수작용으로서, 일종의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ㅁ)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

끝으로 결과의 위치에 세워지는 구상에 관한 설명을 요약한다. 결과로서의 구상은 내적수수작용에서 다룬 구상과 다르다. 후자는 ‘생각한다’는 것 즉 작용을 뜻하며, 전자는 수수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신생체

를 뜻한다. 신생체로서의 이 구상은 바로 로고스이며 만물을 창조하신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내적수수작용에는 초기, 후기의 2단계가 있는데 초기의 단계에서는 내적형상 내의 관념조작觀念操作

에 의해서 신관념新觀念이 형성된다. 이것도 일종의 신생체이며 구상(전구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으로서의 구상의 전단계에 불과하며,생동성이 없는 정적영상에 불과하다.

우주를 창조한 말씀인 구상(로고스)은 생명이 들어 있는 산 신생체로서, 이것은 내적수수작용의 후기단계에서 영적통각인 지․정․의의 기능이 심정의 충동력에 의하여 신생관념에 주입된 후 동관념同觀念이 활성화됨으로써, 즉 생명을 얻게됨으로써 완성된 구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때의 구상이 바로 이성성상을 지닌 로고스이다. 그리고 이 구상중에는 이법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이법은 이성과 법칙의 통일이며 자유성과 필연성의 통일인 것으로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신성’의 항목에서 ‘로고스’라는 소제목하에 비교적 상세히 다뤘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④ 외적발전적사위기대
i) 외적발전적사위기대란 무엇인가

네 종류의 4위기대 중에서, 끝으로 외적발전적사위기대外的發展的四位基臺에 관해서 설명코자 한다. 이것은 외적사위기대와 발전적사위기대가조합된 것으로서 본성상本性相의 외부에서의 수수작용, 즉 본성상과 본형상의 수수작용의 터전이 되고 있는 외적사위기대가 발전성, 운동성을 띠게 된 것을 말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통일사상에서 볼 때,

발전이란 새로운 성질의 개체 즉 신생체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창조를 결과의 면에서 파악한 개념이다. 따라서 발전적사위기대란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신생체를낳을 때의 사위기대를 뜻한다.

그리하여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본성상의 외부에 형성된 외적사위기대가 발전성을 갖추게 되어서, 발전적사위기대가 된 것이다. 이미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설명에서 언급했듯이,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형성된 뒤를 이어서, 그 다음 단계의 사위기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본성상을 중심하고 볼 때, 자동적사위기대 때와 마찬가지로 발전적사위기대도 본성상의 안팎에서 형성되는데, 자동적사위기대 때처럼 동시적同時的이 아니고 계속적繼續的이어서 내적인 기대가먼저 형성된 후 그 다음에 외적인 기대가 형성된다.

ii)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기반 위에 형성된다.

이 외적발전적사위기대에 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누차 말한 바와 같이 사위기대란 요컨대 심정 또는 목적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한 후, 그 결과를 맺는 현상을 공간적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내적 및 외적발전적사위기대도 수수작용으로써 설명하면이해하기가 쉽다. 발전이란 창조를 결과의 면에서 파악한 개념이기 때문에, 발전적사위기대를 바로 이해하려면 창조나 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이것을 인간의 경우를 비유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은 무엇을 만들려 할 때, 먼저 마음으로 반드시 구상을 한다.

가령 집을 지으려면 일정한 목적을 세우고, 깊이 구상을 하여 계획서

나 청사진을 만든다. 계획서나 청사진은 그 구상을 잊지 않기 위해서지면에 나타냈을 뿐, 그대로가 마음의 구상인 것이다. 이 구상이 위에서 말한 내적수수작용이며 곧 창조의 제1단계이다. 이어서 창조의 제2단계가 시작된다. 이것은 여러가지 건축재료를 가지고 인간들이 그 구상(청사진)에 따라서 창조작업 즉 건축공사를 진행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일정한 시간 후에 목적했던 대로의 건물을 완성한다. 여기서 마음의 구상은 성상내의 수수작용 즉 내적수수작용이다.

그리고 사람이 건축자재를 가지고 그 구상대로 집을 짓는 것도 수수작용이다. 이것은 마음(성상)의 밖에서 벌어진 수수작용이기 때문에 외적수수작용이라 한다. 그런데 구상(청사진)도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요,건물도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모두 신생체新生體이다. 따라서이 신생체의 출현은 동기로 보면 창조요, 결과로 보면 발전이다. 이수수작용에서 주체는 구상(현실적으로는 구상을 지닌 인간, 또는 그인간을 대리한 다른 인간들)이요, 대상은 건축자재 등이다. 그리고 이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이 바로 건축공사의 진행인 것이다. 그리고 이수수작용의 결과인 신생체가 바로 완성된 건물인 것이다.

또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때에도 화가는일정한 목적을 먼저 세워놓고 구상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구상을소묘素描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것이 제1단계이다. 구상이 끝나면 제2단계의 작업이 개시된다. 즉 화폭, 붓, 채료彩料(물감), 화가畵架 따위의 화구畵具를 써가면서 화가는 구상한 대로의 그림을 그린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림이 완성된다. 이때 제1단계의 구상도 수수작용이요, 제2단계의그림 그리기도 수수작용이다. 그리고 제1단계의 구상도, 제2단계의 완성한 그림도, 모두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결과이므로 신생체들이다. 따

라서 이 그림 그리기도 또한 창조요, 발전인 것이다.

iii) 모든 창조는 2단계의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에 의해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 진다. 첫째로, 창조에는 반드시두 단계의 과정이 있으며 둘째는, 첫단계는 내적인 구상의 단계요 다음 단계는 외적인 작업의 단계라는 것이며, 셋째는 두 단계의 수수작용이 모두 동일한 목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반드시 그 결과로서 신생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의 첫단계가 바로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의단계요, 둘째 단계가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의 단계이다. 이 일련의 원칙은 모든 창조활동에 적용된다. 생산, 제작, 발명, 예술 등 어떠한 유형의 창조활동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그 이유는 이 원칙의 기준이 하나님의 원상原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본성상의 안팎의 수수작용 즉 내적발전적수수작용과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인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먼저 일정한 목적을 세워 놓고 만물 창조를 구상한 다음, 재료에 해당하는 형상(전에너지)을 사용해서 구상한 대로의만물을 실제로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구상하는 단계가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의 단계요, 실제로 만물을 만드는 단계가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의 단계이다.

이상의 설명으로 인간의 창조나 제작에는 반드시 그 전에 구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외적발전적수수작용에는 반드시 그 전에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이 인간의 구상때의 수수작용의 원형은 하나님의 원상내의 수수작용이었다. 즉 원상내의 수수작용은 반드시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서만 행해진다. 사위기대의 별명이 수수작용이요, 수수작용의 별명이 사위기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이 반드시 외적발전적수수작용에 선행한다는 것은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반드시 외적발전적사위기대에 선행해서 형성됨을 뜻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창조에 있어서는 반드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와 외적발전적사위기대가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원상의 창조의 2단구조’라고 한다.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1-13과 같다. 인간의 경우의 현실적인 창조활동 때에도 내적 및 외적인 사위기대가 연속적으로 형성된다. 이와같이 현실적인 창조활동에 있어서 연속적으로 형성되는 2단계의 사위기대를 ‘현실적인 창조의 2단구조’라고 한다.

그림 1-13. 창조의 2단구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심이 생길는지 모른다. 즉 ‘실제의 창조에는반드시 구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기 쉽게 표현하면 될 것을,왜 내적발전적사위기대니 외적발전적사위기대니 이단구조니 하는 어려운 표현을 쓰느냐, 통일사상은 왜 쉬운 말도 어렵게만 표현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해서 답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일사상은 천주天宙의 근본원리根本原理를 다루기 때문이다. 근본원리란 영계靈界와 지상세계를 막론하고 존재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공통으로 적용되는 근본이치根本理致이다. 이 근본이치(원리)는 깊고 넓은 내용을 함축하면서도 그 이치를 나타내는 용어는 될 수 있는 대로간단한 용어여야 한다. 그 예의 하나가 통일원리의 ‘이성성상’ 또는‘성상과 형상’이다. 이 용어는 인간의 마음과 몸을 나타내는 용어일 뿐

아니라, 동물, 식물, 광물 더 나아가서 영인체와 영계의 모든 존재가가지고 있는 상대적 속성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즉 이성성상의 뜻의내용은 대단히 깊고 넓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이성성상’의 용어 그대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쉽고도 상세한 설명이있어야 한다. 이러한 설명에는 때때로 예화나 비유도 필요하다. 통일사상에서 다루는 근본원리는 오관五官으로 느낄 수 없는, 하나님과 영적세계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예례화나 비유를 들면서 행하는 설명은, 다만 그 근본원리를밝히는 수단에 불과하며, 근본원리 그 자체는 아니다. 근본원리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이성성상’ 또는 ‘성상과 형상’이다. 마찬가지로 ‘수수작용’, ‘사위기대’, ‘이단구조’ 등도 근본원리에 관한 개념 즉기본개념들이어서 이 용어들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 ‘외적발전적사위기대’, ‘창조의 이단구조’도 그러한 근본원리를함축한 개념들이다. 여기서 다시 ‘분초를 다투면서 살아야 하는 이 바쁜 시기에, 그런 어려운 기본개념을 우리가 꼭 배워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 기본개념들을 바르게파악함으로써만 현실의 여러 가지 난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있는 기준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통일사상에 있어서의 기본개념의 중요성에 관해서 설명하였다.

iv)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구성요소

다시 본론에 돌아와서 본 소제목인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설명을계속코자 한다. 앞에서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반드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다음 단계로서 형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2단계 과정을 ‘현실적

창조의 이단구조’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원상 내에서도동일한 창조의 2단구조가 형성된다. 위에서 본성상의 안팎에서 형성된다고 한 사위기대 즉 내적발전적사위기대 및 외적발전적사위기대가 그것이다. 이것은 원상 내에서 창조 때에 형성되는 사위기대이기 때문에이것을 ‘원상의 창조의 이단구조’(전술)라고 한다.

원상 내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는 이미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소항목에서 상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설명을 약하기로 하고,다만 그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4위치 중 중심의 위치에는 목적이 세워지며, 주체의 위치에는 내적성상(영적통각: 지․정․의의 통일체)이 세워지고, 대상의 위치에는 내적형상이, 그리고 결과의 위치에는 구상이신생체로서 세워진다는 것과, 그리고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생각하는 과정 즉 관념조작의 과정이라는 것만을 상기시켜 둔다.

그런데 원상내의 외적발전적사위기대도, 4개의 위치 즉 중심, 주체,대상, 결과로서 이루어짐은 물론인데 이때의 중심은 내적인 사위기대때와 마찬가지로 심정을 터로 하는 창조목적이요, 주체는 여기서는 본성상이며 대상은 본형상이다. 그리고 수수작용에 의해서 형성되는 결과는 신생체로서의 피조물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4위치 즉 중심, 주체,대상, 결과의 위치에 각각 세워지는 목적, 본성상, 본형상 및 피조물에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런데 목적은 내적발전적수수작용때의목적, 즉 창조목적과 동일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약하기로 하고 주체=본성상, 대상=본형상, 외적수수작용, 결과=피조물 등의 소항목을 가지고 설명하고자 한다.

ㄱ) 주체=본성상

원상내의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본성상과 본형상과의 수수작용의 기대이기 때문에 주체의 입장이 본성상임은 재언再言할 필요조차 없지만,그 본성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의 입장인 구상이다. 즉 목적을 중심하고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신생체로서 나타난 말씀이요, 로고스요, 구상이다. 그런데 이 내적수수작용이란 생각하는 것, 즉 사고의 과정이다.

이러한 내적수수작용의 과정에는 전단계前段階와 후단계後段階의 두 단계가 있는데(전술), 전단계는 관념조작이 진행되는 과정이어서, 이 단계에서 신관념 즉 전구상이 형성된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영적통각에서 지․정․의의 기능이, 그 속성인 양성․음성의 영향을 받으면서 전구상前構想

에 주입된 후, 그 전구상이 생명을 지닌 완성된 구상, 즉 로고스로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완성된 로고스가 바로 이성성상을 지닌 로고스이다. 그런데 구상으로서의 로고스는 비록 신생체이기는 하지만,본성상의 내부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주체(본성상)와 대상(본형상)의수수작용에 있어서는 영적통각에 파지把持되어 주체로서 작용한다. 여기서 밝혀둘 것은, 내적수수작용에 의해서 내적성상인 영적통각에서 지․정․의가 내적형상내에 형성된 신생관념新生觀念에 주입되었다 하더라도,영적통각 자체는 본래 무한성을 띤 기능이기 때문에, 그것의 일부가신생관념 속에 주입된 뒤에도 여전히 내적성상으로서의, 지․정․의의 통일적 기능은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성상과 본형상간의수수작용에 있어서 주체로서의 본성상은 영적통각에 파지된 상태에 있는 로고스이다. 이상으로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본성상에 관한설명을 마친다.

ㄴ) 대상=본형상

이미 ‘원상의 내용’의 부분 중 ‘신상神相’의 제목 하에, ‘형상(본형상)’의 소항목에서 설명한 것처럼, 본형상은 무한응형성無限應形性의 궁극적․질료적 요소이다. 질료적 요소란 피조물의 유형적요소(물질)의 근본원인을 뜻하며, 무한응형성은 마치 물水과 같이 어떠한 형태라도 취할 수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그런데 질료적요소는 물질의 근본원인이면서도 과학의 대상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 궁극적 원인으로서 통일사상은 이것을 ‘전단계前段階에너지’ 또는 간단히 ‘전에너지’(Pre-Energy)라고 부른다. 이 본형상에서 후술하는 바와 같이, 마치 물이 용기에 부어 넣어져서 용기의 형태를 취하듯이, 본성상의 구상(로고스)의 주형(영적주형)속에 부어 넣어져서 현실적인 만물로서 지음받게 된다.

ㄷ) 외적수수작용

다음은 외적수수작용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만물이 하나님의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창조되었다28)는 통일원리나 통일사상의 주장이 참된 내용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외적수수작용도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 행해지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주체와 대상이 떨어져있다가 다시 합해져서 하나의 신생체 즉 만물이 되는 것으로 설명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의 세계에는 내와외, 상과 하, 원근遠近, 광협廣狹이 없다. 대․중․소가 없으니 무한대와 무한소가 같다. 또 선후先後가 없으니 과거․현재․미래가 없으며 영원과 순간

이 동일하다.

따라서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이러한 수수작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설명의 편의상(또는 이해의 편의상), 주체와 대상이 동일 공간을 중첩적重疊的으로 차지하면서 수수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비유컨대 인간의 영인체(주체)와 육신(대상)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가합해져서 하나가 된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동일한 공간을 중첩적으로차지하면서 수수작용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원상내의 외적수수작용을, 동일공간을 중첩적으로 차지한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으로 보고, 또 수수작용에 의해서 산출된신생체인 피조물도 역시 동일 공간을 중첩적으로 차지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논리를 전개해 보자.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인 본성상은영적통각에 파지된 상태에 있는, 신생체인 로고스이며, 대상인 본형상은 무한응형성을 지닌 ‘전前에너지’였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이 중첩되어서 동일공간을 차지한 채 수수작용하여 신생체인 피조물(예컨대 말과 같은 동물)을 산출(창조)하게 되는데, 이때 산출된 피조물도 동일한공간을 중첩적으로 차지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으로 수수작용이 행해지는 기대의 4위치는 문자 그대로 떨어져 있는 4위가 아니라 4개의정착물이 함께 겹쳐 있는 하나의 위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하나의 위치에서 서로 겹쳐진 채로 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그 결과물로서 피조물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수수작용의 구체적인 내용이란 무엇인가. 중첩된 상황 속에서의 수수작용이란, 본형상인 전에너지가 본성상내에 형성된 구상(로고스)의 주형(영적주형)속에 스며드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

이 본성상내의 내적수수작용의 첫단계에서 형성된, 치밀한 내부구조를갖춘 신생관념 즉 주형성관념이 다음 단계에서 심정의 충동에 의하여생명이 부여된 후 나타난 것이 ‘완성된 구상’이다. 따라서 이 완성된구상은 바로 생명을 얻은 주형성관념이요 살아있는 주형이다.29) 이미말한 바와 같이 이 주형은 초기단계에서 형성된 신생관념으로서, 치밀한 내부구조를 갖춘 주형성관념이 후기단계에서 활력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활력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리고 또 아무리 내부 구조가 치밀하다 하더라도 주형(영적주형)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거푸집에 쇠鐵의 융액을 부어 넣어 철물을 만들 때와 같이, 이주형성관념 속에도 반드시 융액에 해당하는 본형상의 질료 즉 전에너지가 부어 넣어질 수 있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주형의 공간은 반드시 융액이 넣어져서 채워지기 마련이다. 본성상과 본형상 사이에 이러한 현상이 벌어질 때 그것이 바로 수수작용이다. 즉 본성상의 주형성관념내의 치밀한 공간에본형상의 질료적 요소가 삼투滲透하여 채워지는 것이 바로 수수작용이다(이때 본형상 속에 가능성으로만 잠재하고 있던 속성인 양성․음성이표면화되기 시작하여 질료적 요소의 삼투의 흐름에 조화로운 변화를일으킨다). 왜 이 현상이 수수작용이 되느냐 하면, 본성상(주체)은 주형의 공간을 가지고 본형상(대상)에게 질료의 삼투의 기회를 제공하고,본형상은 질료로 공간을 채움으로써 그 공간의 존재목적을 이루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약간 모형적으로 표현했지만, 이러한 작용이 동일 위치의 주체와 대상이 중첩된 상황 하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주창조에 있어서 원상내부에서 이루어진 외적발전적

수수작용의 참 내용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첨가할 것은, 이 수수작용은 형型으로 봐서 편측의식형片側意識型의 수수작용이다. 왜냐하면 이 수수작용때의 주체는 지․정․의의 통일체인 영적통각(주형성관념을 포함)이고, 대상은 본형상 즉 질료이기 때문이다.

ㄹ) 결과=피조물

a) 결과란 무엇인가다음은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의 위치에 세워지는 피조물에 관해서 살펴보자. 우선 이 결과로서의 피조물은 상술한 바와 같이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본성상과 본형상이 수수작용함으로써 형성된 신생체이다. 이것이 ‘원리해설原理解說’(1957년판)에 적힌 ‘피조세계는 이성성상의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이 창조원리에 의해서 형상적또는 상징적인 실체로 전개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다’(앞의 책,p. 25)라는 문장중의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며, ‘하나님의 이성성상을닮은 개성진리체’(앞의 책, p. 25)이며, ‘주체와 대상의 이성성상의 실체적 전개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앞의 책, p. 24)이다.

그리고 또 원리강론原理講論(1966년판)에 적힌 ‘피조물은 모두 무형의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실체로 분립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라는 것을 알았다’(앞의 책, p. 26) 라는 문장의 ‘실체대상’이며, ‘이러한 실체대상을 우리는 개성진리체라고 한다’(앞의 책)의 ‘개성진리체’이다. 이와 같이 통일원리(‘원리해설’, ‘원리강론’)에서 말하고있는 ‘실체대상’이니 ‘개성진리체’이니 하는 개념은 모두 피조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표현을 달리한 개념들이다. ‘실체대상’은 객관적, 물

질적 측면을 부각시킨 개념으로서 ‘로고스’에서와 같이 마음에만 그려진 관념적인 대상이 아니라, 3차원의 공간적 요소를 갖춘 물질적 대상이라는 뜻이며, ‘개성진리체’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는 개념으로서 피조물은 모두 닮기의 법칙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예외없이 개성진리체인 것이다.

b) 닮음과 외적수수작용

여기서 특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았다고 할 때의 그 ‘닮음’의 내용이,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의 관점에서볼 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위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피조물은 본성상과 본형상이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한결과로서 나타난 신생체였다. 그런데 이때의 본성상은 살아 있는 주형성관념을 파지한 영적통각, 또는 영적통각에 파지된 ‘살아 있는 주형성관념’이며, 본형상은 질료적요소였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주형성관념이 바로 ‘로고스’ 즉 이성성상을 지닌 로고스이다.

이 ‘이성성상’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두 요소를 말하는 것으로서이때의 내적성상은 지․정․의의 기능이며, 내적형상은 관념조작에 의해서 형성된 신생관념(주형성관념)을 뜻한다. 즉 로고스는 지정의의 기능과 신생관념(주형성관념)이 복합된 신생체였던 것이다. 따라서 최종의신생체인 피조물속에 포함된 본성상의 부분은 내적성상에 해당하는 영적통각의 일부로서의 지정의의 기능과, 내적형상에 해당하는 신생관념(주형성관념)이었다.

그리고 본형상인 질료적요소는 그대로 몽땅 신생체(피조물)에 포함되어 있다. ‘주형성관념의 치밀한 공간속에 본형상의 질료적요소가 삼

투하였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을 뜻한다. 이리하여 외적수수작용에 의해서 본성상의 요소와 본형상의 요소 전체가 피조물을 구성하였음을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밝혀 두고자 하는 것은 본성상과본형상이 각각 그 속성인 양성(본양성)과 음성(본음성)을 함께 지닌채로 피조물을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은 모두 하나님의본성상과 본형상의 요소 및 본양성과 본음성의 요소를 모두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본성상속에 포함된 신생관념 즉 주형성관념은그대로가 개별상이기도 하다. 결국 피조물은 하나님의 속성(본성상․본형상, 본양성․본음성, 그리고 개별상)을 모두 이어 받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피조물(개체)을 개성진리체라고 한다. 이것이 통일원리에 피조물을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개성진리체’라고 한 말의 내용인 것이다.

c) 로고스와 피조물의 관계

다음은 로고스와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함에 있어서 ‘말씀’으로써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한 1:1~3) 이 말씀이 바로 ‘로고스’였다(‘원리강론’ 1988,p. 222). 그런데 통일원리에는 ‘로고스는 하나님의 대상’이며 ‘주체이신 하나님이 이성성상이시므로 그 대상인 로고스도 역시 이성성상이아닐 수 없다’(앞의 책). ‘만일 로고스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지 않다면 로고스로 창조된 피조물이 또한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을 수가 없다’(앞의 책)는 기록도 있다. 이것은 피조물의 이성성상은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은 것이요, 로고스의 이성성상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서 로고스의 이성성상과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완전히 동일한 것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통일사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이성성상은 물론 본성상과 본형상이지만 로고스의 이성성상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다. 즉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로고스의 이성성상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조물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닮았다는 뜻이요,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것은 로고스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을 닮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만물이 닮은 로고스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로고스는 내적수수작용의 후기단계에서 영적통각(지․정․의의 통일체)의일부가 전단계에서 형성된 신생관념(주형성관념)에 주입됨으로써 생겨난 ‘완성된 구상’, 산 구상이었다. 따라서 로고스의 내적성상은 주형성관념鑄型性觀念속에 주입된 일부의 지정의의 기능이며 내적형상은 주형성관념 바로 그것이다.30) 이러한 내용을 지닌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바로 ‘로고스의 이성성상’이었다.

통일원리에서 ‘피조물의 이성성상이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고할 때의 ‘로고스의 이성성상’이란 바로 이러한 내용의 이성성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공간적․3차원적 실체인 피조물의 모습 그대로가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로고스는 산 구상이며 활력을띤 관념(주형성관념)에 불과했다.

비유컨대 움직이는 영상과 같은 것이며 꿈속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것은, 이같은 살아 있는 영상을 닮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꿈속의 사람은다른 모든 면에서 현실의 인간과 같지만 물질적인 체體(육체)를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만은 다른 것이다. 다른 만물도 마찬가지이다. 이 물질적 체體까지를 갖춘 만물이 되려면, 만물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게 될 것인가?

그것은 창조 때의 외적수수작용에 의하여 본성상인 완성된 구상 즉 살아 있는 주형(관념)의 그 치밀한 공간 속으로 본형상인 질료적요소(전에너지)가 삼투함으로써(즉 스며들므로써) 닮게 된다. 이러한 수수작용을 통하여 움직이는 영상이 물질적인 체體를 갖추게 되어서 현실적인실체가 되는 것이다. 이때의 만물이 바로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피조물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로고스의 이성성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가 밝혀졌을 것이며, 아울러 피조물이 하나님의이성성상을 닮았다고 할 때의 닮음과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고할 때의 닮음이 다르다는 것도 명백해졌으리라 믿는다. 다음은 수수작용과 관련된 정분합작용에 관하여 살펴보자.

3. 정분합작용

1) 정분합작용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수수작용은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 행해진다는 것을 밝혔다.

즉 수수작용이 벌어지려면 반드시 중심과 주체와 대상 및 결과의 4위치가 세워져야 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수수작용의 현상을 공간적측면에서 파악한 개념이 사위기대이다. 모든 현상은 공간성과 시간성

을 동시에 지닌다. 수수작용의 현상도 시간적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수수작용의 과정을 시간적으로 파악한 개념이 정분합正分合작용이다.

즉 수수작용에 있어서 사위기대가 정해지는 시간적 차서次序에 따라서다룬 개념이 동 작용이다. 즉 먼저 중심이 정해지고 그 다음에 주체와대상이 정해지고 맨 나중에 결과의 위치가 정해진다는 관점에서 본 수수작용이 바로 정분합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수수작용을 3단계 과정에서 파악한 개념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그림 1-14와 같다.

그림 1-14. 정분합작용

통일원리(‘원리강론’)에 ‘사위기대는 정분합작용에 의한 하나님, 부부, 자녀의 3단계로써 완성되므로 3단계 원칙의 근본이 된다’(1987,p. 43)고 한 것도 사위기대는 수수작용의 공간적 파악이요, 정분합작용은 그것의 시간적 파악임을 보여 주고 있다.31) 따라서 이 작용의 내용은 수수작용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즉 심정을 터로 한 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원만하고 조화로운 상호작용에 의해서 합성체또는 신생체를 이룬다고 하는 내용은 수수작용에 완전히 일치한다. 따라서 정분합작용의 종류도 수수작용의 종류와 일치한다. 즉 내적자동적정분합작용, 외적자동적정분합작용, 내적발전적정분합작용, 외적발전적정분합작용 등이 그것이다.

2) 정분합과 정반합

그런데 시간성을 띤 이 정분합작용의 개념은 특히 공산주의의 유물변증법과 비교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공산주의의 철학은유물변증법으로서 이것은 자연의 발전법칙에 관한 이론이다. 그 내용은 모순의 법칙, 양量의 질質에의 전화轉化의 법칙, 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의법칙 등의 3법칙으로서 이것은 헤겔의 관념변증법에서 변증법을 따다가 유물론과 결부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헤겔은 그밖에 이같은 변증법이 진행하는 형식도 아울러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정-반-합, 또는 정립-반정립-종합, 또는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의 3단계형식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헤겔의 변증법의 형식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자연, 역사 등의 발전을 설명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즉 사물이 발전하려면, 그 사물(긍정 또는 정)은 반드시 그 내부에자체를 부정하는 요소(반)를 지니게 되어서 양자가 대립하게 되는데(이 상태를 모순이라 함), 이 대립(모순)은 다시 부정되어서(부정의 부정) 한층 높은 단계로 지양止揚(Aufheben)한다(합)고 설명한다. 이것이정-반-합 또는 긍정-부정-부정의 부정(혹은 정립-반정립-종합)의, 3단계의 변증법적 진행형식이다. 여기서 ‘지양’은 사물이 부정되었다가재차 부정될 때, 그 사물의 긍정적 요소는 보존되어서 새로운 단계로높여지는 것을 말한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는 과정이 그 적례適例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계란(수정란)이 병아리가 되려면 ‘정’ 또는 ‘긍정’으로서의 계란은 그 내부에 그 자체를 부정하는 요소(반 또는 부정)인 배자를 지니게 되며, 이 배자가 커감에 따라서 양자의 대립(모순)이커가다가, 드디어 이 모순이 지양되어서 계란 껍질은 다시 부정되고(부정의 부정), 긍정적 요소인 난황卵黃, 난백卵白 등은 양분으로 배자에

흡수된 후(보존, 지양) 병아리가 되어서 부화한다(합).

이 정-반-합의 형식을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발전의 설명에도 적용한다. 예컨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로 발전하는 과정의 설명에 정-반-합의 형식을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자본주의(정)는 반드시 그 내부에 그 자체를 부정하는 요소인 프롤레타리아계급(반)을 지니게 된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성장에 따라서 계급대립(모순)이 격화되며, 드디어 자본주의체제의 외피는 터지고(부정의 부정), 자본주의의긍정적 성과(경제성장, 기술발전 등)는 그대로 보존되면서 한층 더 높은 단계인 사회주의에로 이행한다(합)는 것이다.

3) 정반합 이론의 비판

그러면 이제부터 정-반-합의 3단계 형식을 비판하여 그 옳고 그름을 밝히고자 한다.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자연의 발전이나 사회발전의 실제의 사실이 이 3단계의 형식과 일치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는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물변증법을 오래도록 과학이라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변증법의 진행형식도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는 과학적 형식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또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현실문제(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병폐의 제거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출현한 철학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유물변증법도 그리고 변증법의 진행형식의 이론도 모두 객관적(과학적)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또 사회의 현실문제 해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은 유물변증법도, 변증법의 진행형식의 이론도 모두 잘못된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먼저 계란이 부화되는 실제의 경우를 분석하면서 이 3단계 형식을비판하고자 한다. 첫째로, 계란내의 배자는 계란의 발전을 위하여 나중에 부정적 요소로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계란 껍질이나 난백卵白, 난황卵黃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계란의 일부였다. 따라서 배자는, 자신도그 일부인 계란을 부정할 수가 없다. 만일 배자가 계란을 부정하려면,처음부터가 아니고 중간에 계란 속에서 대립물로 생겨난 것이어야 한다. 이래야만 정-반-합의 본뜻에 부합된다. 그러나 배자는 실제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계란의 일부였던 것이다.

둘째는 난백, 난황 등이 배자의 양분으로서 보존되는 것은 분명히 긍정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으로 다룬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이며, 셋째로, 계란 껍질이 부화되는 순간(터진 뒤에) 즉 부정된 뒤에 배자가 새로운 단계인 병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다 된병아리가(즉 새로운 단계의 병아리가) 그 자신의 부리로 쪼아서 껍질을 부수고 나오는 것이다. 이것으로 계란의 부화의 실제의 경우가 변증법적 발전의 3단계형식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사회발전에 적용한 3단계발전이론을 비판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정)가 프롤레타리아계급(반)의 대립․모순(혁명)에 의해서 한층 더높은 단계인 사회주의로 이행되며(합), 이때 자본주의의 성과가 그대로보존된다고 한 것도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이 발전형식이 옳은 형식이라면 첫째로,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이 벌써 사회주의사회로 이행되었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공식이 적용될 수 없는 후진국에 사회주의가 세워졌으며 둘째로, 그 후진국에 사회주의가 세워짐에 있어서 그에 앞서 약간이나마 싹트고 있던 자본주의의 성과가 보존은커녕

도리어 회상毁傷을 입게 되어 경제가 후퇴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레닌이 혁명후 신경제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으며,등샤오핑鄧小平이 문화혁명후 중국경제의 파탄破綻을 자인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변증법적 진행의 3단계형식을 사회발전에 적용한 이론도 실제의 역사적사실과 상치相馳됨을 알게 된다. 특히 최근에이르러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는 물론, 자본주의국가들보다 한 단계더 앞서 있어야 했던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마저도, 경제적 파탄이계속되다가 드디어 붕괴되고 말았다. 이 사실은 유물변증법의 3단계발전형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연현상과도 맞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 유물변증법의 정․반․합의 발전형식 이론은 현실문제 해결에 완전히 실패하고 만것이다.

4) 정반합 이론과 현실문제 해결의 실패

그러면 그 정-반-합의 이론이 왜 현실문제의 해결에 실패하였는가?

그 원인을 분석해 보자. 그 첫째의 원인은 3단계형식에 목적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적 없는 발전은 예정된 방향이 없기 때문에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계란의 경우 이미 병아리라고 하는 목표(목적)가 확정되어 있으며, 적당한 온도와 습도만 가해지면 그 목표의 방향대로 발전운동이 벌어져서 드디어 그 목표에 도달한다. 목표(목적)가세워지지 않은 곳에는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발전에 있어서도목적없이 정과 반의 대립뿐이라면 거기에 설사 발전운동이 벌어진다하더라도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자본가의 목적은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것이고 노동자의 목적은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등을 실현하는 것이며, 극히 적은 일부 직업혁명가들만이 사회주의사회를 목표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전체를 볼 때, 그리고사회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양계급의 대립은 무목적의 대립이 되어 버려서 3단계형식에 따르는 새로운 단계에의 도달은 처음부터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패의 둘째 원인은 정-반-합에 있어서 ‘정’과 ‘반’ 관계가 대립, 모순, 투쟁의 관계가 됨으로써 협조, 화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기때문이다. 사회의 발전은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과 인간과의 원만한 협조관계에서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발전의 법칙(변증법)과 형식(정반합)의 내용을 철학적으로 대립, 모순, 투쟁의 관계로 규정해 버렸기때문에 모든 인간관계는 으레 모순의 관계 및 적대의 관계인 것처럼상식화되어 버려서, 화합이나 협조는 도리어 비정상적인 것처럼, 또는이례적인 것처럼 느껴지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사회환경 속에서 어떻게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사회내에 협조에의해서만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상적 이질감 때문에 그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그 사회에 항거할 것이다.

발전이 반드시 조화로운 협조관계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대로 자연의 발전에도 적용되는 명제이다. 예컨대 위에 예거例擧한 계란의부화의 경우, 배자․흰자․노른자, 껍질 등이 모두 병아리를 산출시킨다는공동목적 하에 서로 협조적으로 상호작용한 터 위에서 비로소 병아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계의 발전이나 사회의 발전은 반드시 공동의 목적 또는 목표를 중심하고 여러 요소들 또는 개체들간에 원만한 협조와 협력

의 관계가 성립된 뒤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마르크스주의의 정-반-합의 이론에서는 이러한 목적이나 협조관계가 도출될 수 없으며, 그 때문에 그러한 이론은 거짓이 되었고 현실문제 해결은 실패하고 말았던것이다. 여기서 독자는 이 정-반-합의 대안이 바로 정-분-합작용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을 것이다. 정-분-합작용의 이론은 바로 수수작용의이론이요, 사위기대의 이론이기 때문에 이 정-분-합작용의 3단계과정에 의해서만 목적 중심의 원만한 상호협조관계가 성립되며 그 결과로서 ‘합’인 신생체가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발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정-반-합의 3단계와 정-분-합의 3단계가 결코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3단계라는 점만같을 뿐 ‘정’의 개념도 양자가 다르고, ‘반’과 ‘분’도 다르고, ‘합’의 개념도 양자가 다르다. 정반합의 ‘정’은 사물을 뜻하나, 정분합의 ‘정’은목적․심정을 뜻한다. 또 정반합의 ‘반’은 정인 사물에 대립하는 부정적요소를 뜻하지만, 정분합의 ‘분’은 분립물 또는 상대물이라는 뜻으로서상대적 관계에 있는 주체와 대상을 말한다. 그리고 정반합의 ‘합’은 대립물이 대립을 지양한 후 하나로 종합되는 것을 뜻하나, 정분합의 ‘합’은 분의 단계의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개체 즉 신생체가 나타남을 뜻한다. 이리하여 수수작용(발전적수수작용)을 시간적으로 파악한 개념인 정-분-합작용이 발전에 관한 현실문제 해결에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의 ‘정-반-합’의 유일한 대안임을깨닫게 된다.

이것으로 원상구조原相構造의 주요내용을 전부 마친다. 그러나 여기서마지막으로 원상구조에 관련된 사항 한 두가지를 더 첨가하고자 한다.

그것은 ‘원상구조의 통일성’과 ‘창조이상’이다. 먼저 ‘원상구조의 통일

성’에 관하여 살펴보자.

4. 원상구조의 통일성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원상구조란 신상神相의, 특히 성상과형상의 상호관계였으며, 이 관계가 밝혀짐으로써 많은 현실문제들의근본적 해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현실적인 난문제難問題

들은 관계상의 문제들이기 때문이며, 관계의 바른 기준을 일탈함으로써 야기된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원상구조가 밝혀짐으로써 그 관계의 본연의 기준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또 항구적으로 해결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원상구조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첨가하고 싶은 것은, 신상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왜 ‘구조’라는 개념이 필요한가 하는 것과, 구조라는 면에서본 원상의 참모습은 어떠한가에 관한 설명이다.

본래 ‘구조構造’라는 용어는 일정한 재료로써 만들어진 구성물, 예컨대 건축이나 기계 등에 대하여 그 재료의 상호관계를 나타낼 때에 흔히 사용된다. 특히 구조는 유형물의 구성을 분석․연구할 때 자주 쓰인다. 즉 인체구조, 사회구조, 경제구조, 분자구조, 원자구조 등이 그 예로서, 사물을 분석․연구하는데 있어서 ‘구조’의 개념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러한 측면을 확대적용하면 의식이나 정신 등 무형적 존재를 분석하는 데에도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의식구조’니 ‘정신구조’니 하는 용어가 쓰여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형인 하나님의 하나하나의 속성의 관계를 알아보는데 구조의 개념

을 사용한 것이 바로 그러한 동기에서였던 것이다. 즉 구조의 개념을활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속성, 특히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의 상세한 내용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성상과 형상의 상대적 관계가 상술한 바와 같이 종류가 여럿이 있다 하더라도, 원상의 세계는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므로 구조개념 또는 시공관념으로 유추할 때의 원상의 참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통일성’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공간이 없기 때문에 위치가 없으며, 따라서 전후․좌우가 없고, 상하가 없으며, 내와 외가 없고, 넓고 좁음이 없으며, 원근이 없고, 삼각형, 사각형 등의공간도 없다. 무한대와 무한소가 같은 세계이며, 모든 공간이 한 점에모두 중첩되어 있는 다중첩多重疊의 세계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하, 전후, 좌우, 내외가 한없이 넓혀지고 있는 세계이다.

또 원상의 세계는 시간이 없는 세계이다. 따라서 시간관념으로 유추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지금’, ‘현순간’에 합쳐져 있다. 마치 영화 필름의 두루마리(필름말이)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 있는 것과같다. 즉 시간도 현순간 속에 합쳐져 있다. 즉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 그러면서 순간 시간이 영원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순간’과 ‘영원’이 같다. 이것은 원상의 세계가 하나의 상태(성상․형상, 양성․음성이통일된 상태)의 순수지속임을 뜻한다. 즉 ‘상태의 순수지속’이 원상세계의 시간이다.

이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원상의 세계는 순수한 ‘통일체’이다. 공간과 시간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현상(타락과 관련된 비원리적인 현상을 제외하고)의 원인이 중첩적으로 한 점에 통일되어 있는 세계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시간, 공간을 위시한 우주 내의 모든 현상은 이

통일된 한 점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마치 한 점에서 상하 전후 좌우로 무한히 긴 직선을 무수히 그을 수 있는 것처럼 이 통일성에서부터시공의 세계가 상하 전후 좌우로 무한히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가 아무리 광대무변하고, 우주의 현상과 우주의 운동이아무리 복잡한 것 같다 하더라도, 그 시공과 그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기본원리는 이 한점 즉 통일성에 있으니 그것이 곧 ‘통일의 원리’ 즉수수작용의 원리, 또는 사랑의 원리이다. 예컨대 수수작용의 터전인 4위기대라는 한 점(원점)에서 공간이 전개되어 나왔고, 정분합작용이라는 한 점에서 시간이 전개되어 나왔던 것이다.

5. 창조이상

1) 창조이상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원상구조와 관련된 사항으로서 ‘창조이상創造理想’에 관하여설명하고자 한다. ‘창조이상’이 원상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사위기대의 중심인 창조목적과 직접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상이란 인간이 희망하는 바, 또는 소원하는 바가 완전히 실현된 상태를 말한다. 인간이 왜 희망하고 소원하는가? 기쁘기 위해서이다. 영원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이다. 기쁨은 어떤 때에 오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었을 때에 온다. 왜냐하면 참 기쁨의 터전은 심정의 충동성, 사랑의 충동성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쁨에 관한 통일원리의 기록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통일원리에는 하나님의 기쁨이 어떤 때에 오는가 하는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즉 ‘이처럼 피조물이 선의 대상이 되기를원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었다’(‘원리강론’, 1987, p. 51), ‘창조목적은 기쁨에 있으며, 기쁨은 욕망을 채울 때느껴지는(것이다)’(앞의 책 p. 97), ‘자기의 성상과 형상대로 전개된 대상이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성상․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때 비로소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앞의 책, pp.

52~53),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은…… 3대축복의 말씀을 이루어 천국을 이룩함으로써 선의 목적을 완성한 것을 보시고 기쁨을 누리시려는데 있었던 것이다’(앞의 책, p. 52) 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뜻을 요약하면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은 기쁨을얻는데 있는데, 그 기쁨은 피조물이 선의 대상이 될 때, 욕망이 채워질 때, 대상이 자신을 닮았을 때, 그리고 선의 목적을 완성했을 때에느껴진다. 이것을 다시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기쁨은 첫째로 피조물이 선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님을 닮음으로써 하나님의 욕망이 충족될 때, 둘째로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사이에 서로 상보적相補的인 관계가 성립될 때 온다는 말이 된다. 여기의 욕망이 충족된다는 말은, 희망이 이뤄지고 소원이 성취됨을 뜻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됨을 뜻한다.

그리고 선의 대상이 된다는 말은 사랑의 대상이 됨을 뜻한다. 선의터전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는다는 말은 심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성상․형상의 조화로운 수수작용의 모습을 닮는다는 말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자가 됨을 뜻한다. 원리강론의 ‘하나님의창조목적은 사랑으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1987,

p. 83)는 기록도 이것을 뜻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무엇인가가 명백해진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창조할 때에 뜻(희망)하였던 바가 완전히 실현된 상태’,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미래에하나님을 닮아난 인간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인 것이다.

2) 창조목적과 창조이상의 차이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과 창조이상創造理想의 차이를 밝히고자 한다. 창조목적은 통일원리에 적힌 대로 기쁨을 얻는데 있었다. 그런데 기쁨은 욕망이 충족될 때에 온다고 되어 있다. 욕망의 충족은 요컨대 희망이 이루어짐이요, 소원이 성취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소원의성취는 바로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실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욕망의 충족이나 하나님의 기쁨도 창조이상이 실현되었을 때에 이루어진다는 결론이 된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창조이상의 실현에 있었다. 즉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창조목적이었으며 다음과 같은통일원리의 기록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이와 같이 하나님의창조목적이 이루어졌더라면 죄의 그림자 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이상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니’(‘원리강론’ 1987, p. 56)의 문장이그것이다.

여기서 참고로 인간의 창조목적과 만물의 창조목적의 차이에 관하여생각해 보자. 인간을 포함해서 만물전체를 창조한 목적은 이미 위에서말한대로 그 피조물을 보시고 기뻐하시려는데 있었음은 물론이지만,그러나 직접적인 기쁨으로는 그리고 자극적이고 아기자기한 기쁨은 인

간에게서만 느끼게 되어 있었으며, 만물에서도 큰 기쁨을 느끼시지만그 기쁨은 인간에서처럼 자극적인 것은 못되며 그것마저도 인간이 창조되어 완성한 뒤에야 인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끼시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대상이며,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실체대상이기 때문이다(‘원리강론’ 1987, p. 55). 이 말은 만물은인간의 직접적인 기쁨의 대상으로 지으셨음을 뜻한다. 통일원리에도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즉 ‘만물세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성상과형상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그 대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만물세계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게 된다’(‘원리강론’ 1987, p.

55)가 그것이다.

그런데 통일원리에서는 만물이 창조목적을 가졌다고 할 때, 그 창조목적은 마치 개별상이 만물(개체)에 따라서 다르듯이 개체마다 다른것으로 느껴지는데 통일원리는 여기에 관한 언급이 없다. 예컨대 꽃의창조목적과 새의 창조목적은 똑같지는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에관한 설명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러한 개별적인 창조목적도 분명히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일일히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즉꽃의 개별적인 창조목적은 꽃의 色의 아름다움으로 시각을 통해서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며, 새의 창조목적은 새의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청각을 통해서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지만, 인간에게 기쁨을준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 같기 때문에, 그 공통점만을 만물의 창조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3) 창조목적과 창조이상의 개념은 다르다.

지금까지 창조목적에 관해서 잠깐 알아보았는데, 여기서 원리강론에서는 이 ‘창조목적’의 용어가 본래의 뜻대로 쓰여진 것 외에 ‘피조목적’, ‘창조이상’의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창조목적’의 본래의 뜻은 위에서 밝힌대로 ‘하나님이 피조물을 보시고 기뻐하시려고 한 것’이었다. 즉 창조목적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세운 목적’인 동시에 ‘창조할 때에 세운 목적’이었다. 그런데 원리강론에는 이창조목적이 ‘피조목적’의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창조목적을완성한 인간’(1987, p. 146, p. 215)이 그것인데 이것은 ‘피조목적을완성한 인간’의 뜻이다. 왜냐하면 ‘창조목적’은 창조자(하나님)의 목적으로서 하나님이 ‘기쁨을 느끼시는 것’이고, ‘피조목적’은 인간이 ‘기쁨을 돌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인간이 시계를 제작한 목적은 ‘시간을 알고자 함’에 있다.

이때 제조된 시계는 인간에게 시간을 알려주게 되어있다. 이것은 시계의 입장에서 보면 피조목적이다. 제조목적과 피조목적은 전연 다르다.

마찬가지로 창조목적과 피조목적이 다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기쁨을 느끼는 것’(창조목적)이 아니라 ‘기쁨을 돌려드리는 것’(피조목적)이다. 이 사실은 다음의 기록 즉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1987, p. 201)의 창조목적과 비교하면더욱 확실해진다. 여기의 창조목적은 분명히 ‘하나님이 기쁨을 느끼는일’을 뜻하는 것으로 앞서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에서의 창조목적과는 그 의미가 다름을 알게된다.

다음은 창조목적이 창조이상의 뜻으로도 사용된 예를 들어 보자.

‘타락 인간으로 하여금 믿음의 기대를 세우게 하고, 그 기대 위에서메시아를 맞게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완성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는,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1987, pp. 235~236). 이인용문 중의 ‘창조목적’은 ‘기쁨을 느끼시려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조금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창조이상’의 뜻으로 즉 ‘하나님의 사랑이완전히 실현된 상태’로 해석하는 것이 도리어 무난하다. 다음의 문장과 비교해보면 그 사실이 더욱 분명해 진다. 즉 ‘예수님이 재림하실때에는 반드시 지상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되어, 다시는 그 이상이 지상에서 거두어 지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1987, p. 260)라는 문장에 있는 ‘창조이상’이나 전문前文 중의 ‘창조목적의 완성’이나, 그 뜻하는 바의 내용은 같은 것으로 보아도좋을 것이다. 그런데 후자인 창조이상을 창조목적의 뜻으로 해석해서는 어색하며, 차라리 전자의 창조목적을 창조이상으로 해석하는 것이무난함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이런 예는 이 외에도 있다.

이와 같이 원리강론에는 창조목적이라는 용어가 때때로 피조목적의뜻으로나 창조이상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통일사상에서는 이들의개념을 명확히 한 후 구별해서 쓰고 있다. 단 구별이 필요없을 때에는, 예컨대 창조목적으로 해도 좋고 피조목적으로 해도 좋을 때, 또는때에 따라서 인위적인 목적을 써야 할 때에는 그냥 ‘목적’으로만 표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창조이상과 창조목적의 개념의 차이를 밝혔는데 요컨대 창조이상은 ‘이미 설정된 목표가 달성되어 있을 때의 상태’를 말하며 창조목적은 그 ‘설정된 목표’만을 말한다. 창조이상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미래에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난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이며, 창조목적은 ‘대상을 보고 기뻐하려는 것’으로서, 앞으로 ‘도달코자 하는 목표’이다. 문법상의 시제로 표현하면 창조목적은 미래형이요, 창조이상은 미래완료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창조이상은 ‘창조목적이 달성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창조목적은 창조이상의 실현을 통해서 달성된다.

4) 창조이상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이다.

그러면 창조이상의 내용인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가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그것은 이상인간,이상가정, 이상사회, 이상세계가 실현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이상인간이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상․형상의 중화체를 닮은 이상적 남자와 이상적 여자를 말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만인과 만물에게 베풀 줄 아는 남자와 여자, 하나님을 참부모로 모실 줄 아는남자와 여자를 말한다.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이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게 된’(마태 5:48) 인간이며,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전피조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의 존재인 것이다.’(‘원리강론’ 1987,p. 215).

이러한 남녀가 결합해서 하나님의 양성과 음성의 중화체를 닮은 부부를 이룬 것이 이상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은 그 내부에 사랑이 넘칠뿐 아니라 이웃, 사회, 국가 더 나아가서 세계를 사랑하고, 만물까지도사랑하고, 하나님을 참 부모로 모시는 가정이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이상가정이 모여서 사회를 이룰 때 그 사회 또한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사회가 되어서, 내부가 사랑에 넘칠 뿐 아니라 외적으로 다른 사회

와 사랑으로써 화합하고, 하나님을 그 사회의 구심점으로 참부모로 모시게 된다. 이것이 이상사회이다. 다음에 이상인간이 모여서 세계를이룰 때 그 세계 또한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세계가 되어서 온 인류가하나님을 인류의 참부모로 모시고, 서로 서로가 한 부모의 자녀로서형제자매의 관계를 맺고 사랑이 넘치는 영원한 평화와 번영과 복된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상세계로서 역사 개시 이래 수많은 성현들, 의인들철인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이다. 그런데 사랑은 진․선․미의 가치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따라서 이상사회, 이상세계는 가치의 사회요,가치의 세계로서 진실생활, 윤리생활, 예술생활의 3대 생활영역을 기반으로 한 통일세계인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경제, 정치, 종교(윤리)에서 실천되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이다. 즉 한마디로 말해서 지상천국이다. 그리하여 ‘창조이상’이란 이와 같은 이상인간, 이상가정, 이상사회, 이상세계가 미래에 실현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상태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즉 창조이상이 실제로 실현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32)의 창조목적이, 다시 말해서 영원한 기쁨을 얻고자 하셨던당초의 소원이 달성되게 된다.

이것으로 창조이상에 관한 설명을 마친다. 아울러 원상구조의 항목전부를 마친다. 끝으로 ‘종래의 본체론과 통일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종래의 몇 가지 본체론(통일사상의 원상론에 해당)의 요점을 간단히 소개하여 그것이 현실문제 해결에 어떻게 실패하였는가를 촌평식寸評式으로 예시例示하고자 한다. 통일사상이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된다고 주장한 이유가 보다 더 명확히 이해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三. 종래의 본체론과 통일사상

본체론은 하나님 또는 우주의 근원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관한 이론으로서 일반적으로 사상체계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현실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도 대개 본체론에서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몇 가지 종래의 본체론의요점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그것이 현실문제에 어떻게 연관되었는가를밝히고자 한다.

1) 아우구스티누스 및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정신으로 보고, 그 하나님이 무無에서 질료를 만들어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形相과 질료質料의 원리를 이어받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질료를 가지지 않는순수형상 중에서 최고의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와마찬가지로 그도 하나님은 세계를 무에서 창조하였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현실문제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이 신관은 정신을 근원적인 것으로, 물질을 2차적인 것으로 보기때문에 이 신관에서 물질적인 현실세계를 2차적인 것으로 경시하고정신의 세계, 영적인 세계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나타나서 오랫동안지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사후의 세계에서의 구원만을 중요시하는 구원관이 오래도록 기독교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현실 생활에 있어서

물질을 무시하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성도들의 생활은 신앙 상으로는 물질생활을 경시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물질생활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호모순의 생활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것이다. 즉 기독교의 신관을 가지고서는, 지상의 현실문제의 해결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지상의 문제는 대부분이 물질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관이 현실문제의 해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은, 첫째가 하나님을 정신으로만 보고 물질의 근원을 무라고 본 데 있었고, 둘째로 창조의 동기와 목적이 불분명한데 있었던 것이다.

2) 이기설

송대宋代의 신유학新儒學에 있어서 주염계周濂溪(1017~1073)는 우주의근원을 태극이라 했고 장횡거張橫渠(1020~1077)는 태허太虛라고 했다.

이것들은 모두 음양의 통일체로서의 기氣를 말한 것이다. 기란 질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유물론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정이천程伊川(1033~1107)에 의해서 만물은 모두 이理와 기氣로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이기설이 주창되었으며 나중에 주자朱子(1130~1200)에 의하여 대성大成되었다. 이란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무형의 본체를 뜻하고 기는 질료를 뜻하였다. 주자는 이와 기 중에서 이를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는 천지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인간 내에 있는 법칙이기도 하다고 설파하였다. 즉 천지가 따르고 있는 법칙과 인간사회의 윤리법칙은 동일한 이의 표현이라고 본 것이다.

이같은 사상에 근거하여 현실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생활의 방향

은 천지의 법칙을 맞추기 위한 조화의 유지에 치중하게 되었고 사회적인 윤리에 입각한 질서 유지에 편중하게 되었다. 또 모든 것을 법칙에맡긴 나머지 자연이나 사회의 변화나 혼란에 대해서는 방관적태도를취하는 경향이 생겨났으며 자연을 지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창조적, 주관적인 생활방식 즉 능동적인 개혁의 방식은 경시되는 경향이생겨났다. 이기설도 현실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이 실패의 근본원인은 태극, 이기 등에서 왜 만물이 생기게 되었는가 하는 그 동기와목적이 밝혀지지 않은 데 있는 것이다.

3) 헤겔의 절대정신

헤겔(G.W.F. Hegel, 1770~1831)에 의하면, 우주의 근원은 절대정신으로서의 신이다. 신은 절대정신이면서 동시에 로고스이며 개념이었다. 이 개념(로고스)이 모순을 매개로 하면서 정-반-합의 3단계의 변증법적 발전형식에 따라서 자기발전해 간다고 헤겔은 생각했다. 개념은 자기발전하여 이념의 단계에까지 발전한 후 자기를 외부로 소외시켜서(부정) 자연으로 나타난다. 그 자연 속에서 이념은 변증법적 발전을 통하여 드디어 인간으로 나타나는데, 이 인간을 통하여 이념이 자신을 회복하고, 그 후 여러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절대정신으로서 자기를 실현한다. 즉 처음 출발했던 자기자신(절대정신)으로 복귀한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개념(로고스)의 자기실현의 과정이다.

그리고 역사가 이성국가의 단계에 이르렀을때 자유가 최고도로 실현되며 인간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모습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헤겔 철학에 따르면 세계와 역사는 로고스의 자기실현의 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이 변증법적 발전형식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합리적인 모습이 되게 되어있었다. 그는 이같은 방식에 따라서 프러시아에이성국가가 실현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는 비합리적인 현실을 필연의 법칙에 맡기고 방관만 해도 좋다고 하는 입장이되고 말았다.

또 자연을 이념의 타재형식他在形式으로 본 그의 자연관은 일종의 범신론33)이 되어서, 현실문제의 해결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그것은 쉽게 무신론적인 휴머니즘이나 유물론으로 전환할 수 있는 소지를 갖고 있었으며, 모순을 발전의 계기로 봄으로써 마르크스주의와같은 투쟁이론을 발생시키는 소지도 지니고 있었다. 즉 헤겔 철학은프러시아사회의 현실문제 해결에 실패하였으며, 도리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무신론철학을 출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것은 그가 신을 로고스로 보고, 창조를 변증법에 의한 자기 발전으로 잘못 본때문이었다.

4) 쇼펜하우어의 맹목적의지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는 헤겔의 합리주의․이성주의에 반대하여, 세계의 본질은 비합리적인 것으로서 아무 목적도 없이 맹목적盲目的으로 작용하는 의지라 하고, 이것을 ‘맹목적인 생에의 의지’(Blinder Wille zum Laben)라고 불렀다. 인간은 이 맹목적인 의지에 의해서 좌우되면서 오로지 외곬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그때문에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살

고 있다는 것이다. 만족과 행복은 한 순간의 경험에 불과할 뿐 실제로존재하는 것은 불만과 고통뿐이며,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고통의 세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사상이 염세주의(pessimism)였다. 그 대신 그는 예술적 관조나 종교적 금욕생활에의해서 고뇌의 세계로부터의 구원을 시도해 보았으나, 그것은 현실문제의 해결은 커녕 오히려 현실로부터의 도피의 이론이 되고 말았다.

쇼펜하우어가 현실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창조와구원섭리의 참 내용을 몰랐기 때문이요, 둘째로 이 지상세계가 惡(사탄)이 지배하는 세계인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5) 니체의 권력의지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을 맹목적인 생에의 의지라고 하여, 생에대하여 비관적태도를 취한 데 대하여 니체(F. Nietzsche,

權力意志1848~1900)는 세계의 본질을 ‘권력의지 ’(Wille zur Macht)라고하여 철저한 현실 긍정의 태도를 취했다. 니체에 의하면 세계의 본질은 맹목적인 의지가 아니라 도리어 강자强者가 되고 싶고, 지배력을 갖고 싶어하는 강력한 의지라고 했다. 이것이 그의 권력의지인데, 그는권력의지를 체현體現한 이상상으로서 ‘초인超人’을 세워서, 인간은 초인을목표로 삼고 生의 고통을 참으면서 어떠한 운명에도 견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신神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였다. 기독교의 도덕을 강자를 동경하는 노예도덕으로 보고 생의 본질에 적대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니체의 권력의지의 사상은 힘에 의한 현실문제의 해결과 결부되었다.

그래서 히틀러나 뭇솔리니 등이 니체의 사상을 권력유지를 위하여 이용하였다. 즉 니체도 현실문제의 해결에 실패한 것이다. 니체의 실패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참된 신까지를 부정한 데에 있다. 그가 부정해야 했던 신은 참 신이 아니라 거짓 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던신은 거짓 신이었을 뿐, 참 신이 아니었는데 그는 참 신까지를 부정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 唯物論의 입장에서 세계의 본질은 물질이고, 사물 속에 있는 모순(대립물)의 투쟁에 의해서 세계는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사회의 변혁은 종교나 정의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물질적인 생산관계(경제)를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의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계급혁명론도 현실문제 해결의 하나의 방안이었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지배계급이나 피지배계급 중 어느 편에 속하는계급적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은 피지배계급(프롤레타리아트)측에 서서혁명에 가담할 때만 그 인격적 가치가 인정된다. 그의 인간관에는 인격을 절대적인 것으로 존중하는 가치관이 없으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지도자들은 혁명에 있어서 이용가치가 없는 인간, 혹은 혁명에 반대하는 인간에 대하여 하등에 양심의 가책 없이 학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공산주의체제는 동유럽과 소

련에서 드디어 무너지고 말았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계급혁명론도 현실문제 해결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그 원인은 첫째로 참 하나님을 몰라보고 무조건 신을 부정한 때문이요, 둘째로 폭력은 반드시 폭력을 낳는다는 천리天理를 무시하고 폭력에 의한 개혁을주장했기 때문이다.

7) 통일사상의 본체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주의 근원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혹은 하나님의 속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인간관, 사회관, 역사관이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현실문제 해결의 방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올바른 신관神觀, 올바른 본체론本體論을 세움으로써 현실의 인생문제, 사회문제, 역사문제를 올바르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나오는 것이다.

통일사상의 본체론 즉 원상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심정이다. 심정을 중심하고 성상의 내부에서 내적성상(지정의)과내적형상(관념, 개념 등)이 수수작용을 하며, 또한 성상과 형상(질료)이 수수작용을 한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심정에 의해 목적이 세워지면 수수작용은 발전적으로 진행되어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종래의 본체론은 이성이나 의지, 혹은 개념이나 물질이 중심이었다. 그리하여 정신만이 또는 물질 만이 실체라고 하는 일원론이나오게 되었고, 정신과 물질 모두가 우주의 실체라고 하는 이원론도나타나게 되었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종래의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의 실상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였고, 또 속성 상호간의 관계를

바르게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통일사상의 본체론(원상론)에 의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와 목적,하나님의 속성의 하나하나의 내용이 상세히 밝혀지게 되었고, 그 속성의 구조까지 정확히 또 구체적으로 소개됨으로써 현실문제의 근본적해결의 기준이 확립되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세계의 지도자들이그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