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제8장 역사론
통일사상요강 제8장 역사론 원문이다.
-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
- 상위 문서: 통일사상요강 구조 색인
원문
제8장 역 사 론
Theory of History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역사론은, 사실史實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류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어 어떠한 법칙에 의해서흘러 왔으며, 어떠한 方向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 등 역사 해석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일종의 역사철학으로서 통일사상에 근거한 역사 해석을 말한다. 그리하여 이 역사론을 ‘통일역사론’또는 ‘통일사관’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역사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미래상을확립함으로써 역사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함으로써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의 복잡한 세계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명확한 비전을가진 확고한 역사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날까지 많은 역사관이 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되었으나 공산주의의 역사관, 즉 유물사관처럼 영향력이 있는 사관은 없었다. 유물사관은 인류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계급투쟁, 즉 혁명에 의해서무너지고 공산주의사회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그 나름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유물사관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신념의원동력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와의 대결은 역사관과 역사관의 대결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자유주의세계에는 유물사관에 대처할 수 있는 기존의 역사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자유주의세계는 그동안 끊임없이 공산주의의 공세와 위협에 시달리지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유물사관도 결국은 쓰러지고 말았으니, 이것은 바로‘문 총재님’의 ‘통일역사론’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통일역사론’은 새로운 신관神觀에 근거한 사상인 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공산주의와의 이론적 대결에 있어서 유물사관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폭로해 왔다. ‘통일역사론’은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통일된창조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흘러왔음을 역사적 사실로써 실증적으로 해석하는 역사이론인 것이다.
一. 통일사관의 기본입장
통일사관의 기본입장은 통일원리중의 복귀원리를 근거로 한 입장이다. 그런데 복귀원리에 근거해서 통일사관은 역사를 세 가지 관점에서설명한다. 첫째는 죄악사罪惡史로서, 둘째는 재창조역사再創造歷史로서, 셋째는 복귀역사復歸歷史로서 역사를 해석한다. 그리고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역사에 법칙이 작용했는가 하는 문제와, 역사의 시원始元이나 방향의 문제도 제기되곤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제문제도 본 항本項에서 함께다루고자 한다.
(1) 죄악사
먼저 통일사관이 보는 죄악사에 관해서 살펴보자. 역사는 인간 조상의 타락에 의해서 출발한 죄악사이다. 그 때문에 인류역사는 원리적이고도 정상적인 역사로 출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역사는 대립과 갈등,전쟁과 고통, 슬픔과 참상 등으로 얽혀진 혼란의 역사로서 이어져 왔다. 이것이 역사가 죄악사란 말의 뜻이다. 따라서 역사상에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이러한 타락문제의 해결없이는 불가능하다.
(2) 재창조역사
다음은 인류역사가 재창조역사라고 하는데 대해서 살펴보자. 인류시조의 타락으로 인류는 본연의 인간과 본연의 세계를 상실했다. 즉본연의 인간은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떨어지게 되었고, 본연의 세계는파괴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재창조하고 세계를 재건설하는 섭리를 하시게 되었다. 이러한 섭리의 역사가 재창조역사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적용되었던 법칙(창조의 법칙)과 말씀이 그대로 역사의 섭리에도 적용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말씀(로고스)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재창조도 말씀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재창조라 하여 우주를 다시 만든다는뜻은 아니다. 타락은 인간만이 하였기 때문에 재창조는 인간만의 재창조이다. 즉 인간만을 말씀으로 재창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
나님은 성인, 의인, 예언자 등 정신적 지도자를 세운 후 그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진리(말씀)를 전해서 그들을 영적으로 인도해 오셨다.
(3) 복귀역사
다음은 복귀역사復歸歷史에 관하여 살펴보자. 인간 시조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본연의 세계(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본연의 인간상을 잃었으며, 비본연非本然의 모습 또는 비원리적非原理的인 모습이 되어서 비원리적非原理的인 세계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연의 세계와 본연의인간상은 다시 회복해야 할 이상으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창조가 실패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비원리적인 세계와 인간을 본연의 상태로 복귀시키지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시작과 동시에 죄악의 인간과 죄악의 세계를 본연의 상태로 복귀하는 섭리(복귀섭리)를하시게 된 것이다. 인류역사가 복귀섭리역사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리의 하나님이고,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일정한 조건을 지키지 않은데 있었으므로, 복귀섭리에는 일정한 법칙이 작용되게 된다. 이것이 복귀의 법칙이다.
(4) 역사의 법칙성
역사관을 세움에 있어서 역사 속에서 법칙을 발견한다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역사의 법칙을 제시한
종교가나 학자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기독교의 섭리사관을 두고 볼때, 설득력이 있는 법칙은 제시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기독교의 사관은 오늘날 과학(사회과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학문분야에서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근세에 이르러 헤겔은 역사의 설명에 변증법(관념변증법)을 적용하여, 인류역사는 절대정신(이성)이 변증법적으로 자기 자신을 외부세계에 전개해 나온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으로서, 최후에는 자유가 완전히실현된 이성국가理性國家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헤겔이 이상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러시아는 자유가 실현되지 않은 채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렸다. 헤겔이 말한 역사법칙은 현실에서 유리된것이었다. 또 20세기에 들어와 토인비가 방대한 문명사관을 수립하여문명의 발생, 성장, 붕괴, 해체의 과정을 상세히 분석했지만 거기에서도 명확한 역사의 법칙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역사의 법칙을 명시했으며, 그것을 과학적인 역사관이라고까지자칭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통일사관은 역사에 법칙이 작용해 왔음을 인정함은 물론, 그법칙에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의 두 가지 법칙이 있음을 밝히고있다. 이 법칙이야말로 실제로 역사에 작용한 참된 법칙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법칙이 제시됨으로써 유물사관의 허구성이 여실히 폭로되었던 것이다. 유물사관이 주장하는 법칙이란 실은 사이비 법칙이며, 독단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통일사관은 신학적 입장이면서도 훌륭히 역사법칙을 정립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비과학적이라고 간주해 왔던 신학적 역사관도 이를 사회과학으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5) 역사의 시원과 방향과 목표
역사가 언제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시원에 관해서,통일사관은 인간의 창조와 타락을 그 시원으로 본다. 이것은 기독교의섭리사관과 같은 입장이다. 또 인류의 시조에 관하여 일원론(monogenism)이냐 다원론(polygenism)이냐 하는 문제가 있으나, 통일사관은 인류의 시조가 아담․해와 뿐이라고 하는 일원론을 주장한다.
‘창조는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창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의 목표는 높은 차원에서의 창조이상세계로의 복귀이며,역사의 방향은 이 복귀의 방향이다. 따라서 역사의 목표와 방향은 결정적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 목표에 도달하는가는 결정되어 있지않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인간이 -특히 섭리적인 중심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 하게 될 때, 그때그때의 섭리의 뜻은 성공적으로 달성되게 된다. 따라서 역사가 흘러가는 과정이 직행이냐 우회냐, 단축이냐연장이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즉 역사의 과정은 비결정적이어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섭리적 인물들이 주어진 사명을 훌륭히 다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을 책임분담수행責任分擔遂行 또는 그냥 책임분담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역사의 목표는 결정적이지만 그 과정이 비결정적이라고보는 입장, 즉 역사의 진행과정이 인간의 책임분담 혹은 자유의지에달려 있다고 보는 견해를 책임분담론責任分擔論(theory of responsibility,responsibilism)이라고 부른다.
二. 창조의 법칙
위에서 말한 역사의 법칙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미말한 바와 같이 인류역사는 재창조역사인 동시에 복귀섭리역사이다.
따라서 역사의 변천에는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이 작용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창조의 법칙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창조의법칙에는 (1)상대성의 법칙 (2)수수작용의 법칙 (3)상극의 법칙 (4)중심의 주관의 법칙 (5)3단계완성의 법칙 (6)6수기간의 법칙 (7)책임분담의 법칙 등이 있다.
(1) 상대성의 법칙
피조물 하나하나는 모두 내적으로 서로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는 두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체적 요소와 대상적 요소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개체는 외적으로도 다른 개체와의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고서 존재하고 운동한다. 이러한 관계 하에서 생물들은생존하고 번식하고 발전한다. 여기서 주체와 대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는다는 말은 양자가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체와 대상이 마주 대함에 있어서,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대할 때와 공동목적없이 대할 때가 있다. 여기의 주체와 대상이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서로 마주 대하는 것, 즉 상대적 관계를 맺는 것을 특히 ‘상대기준을 조성한다’ 라고 말한다.
여하간에 이와 같이 한 개체가 반드시 타자他者와 더불어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상대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회(역사)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등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상대물)가 상대관계를맺는 일이다. 이러한 상대적관계가 형성되지 않고는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란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 주요소와 종요소(주개체와 종개체)를 말한다.
그 예로서 정신과 육체, 마음과 몸, 이데올로기와 경제적조건(물질적조건), 정신문화와 물질문명, 정부와 국민, 경영자와 노동자, 노동자와생산용구, 기계의 주요부분과 종속부분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예는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이와 같은 상대적 요소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호간에 작용이 벌어져서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모든 영역에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2) 수수작용의 법칙
사물의 내부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두 요소가 상대적 관계를맺으면 이때에 일정한 요소 또는 힘을 주고받는 작용이 벌어진다. 주체와 대상간의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이 수수작용이 행해지는 곳에서 발전이 이루어진다. 역사의 발전도 이러한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즉 역사에 있어서 모든 사회분야에서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상대물)가 상대적 관계를 맺은 후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원만 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각 분야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예컨대 국가가 존재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이 국가의번영을 공동목적으로 하여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고 원만한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기업에 있어서도 기업의 번창을 위해서는 자본가, 경영자, 노동자, 기술자, 기계 등이 서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이루어 원만한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상대성의 법칙’과 ‘수수작용의 법칙’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으며, 이 두 법칙을 합쳐서 광의廣義의 ‘수수작용의 법칙’이라고 한다.
수수작용은 조화적이지, 결코 대립적이거나 상충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물사관은 대립물의 투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쟁은 발전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투쟁이 행해지는 동안 발전은 오히려 정지하거나 후퇴한다. 그러므로 발전에 관한 한 유물사관의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으로서 계급투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위장이론에 불과했던 것이다.
(3) 상극의 법칙
수수작용은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 또는 상대적 개체 사이에서이루어지며, 주체와 주체(혹은 대상과 대상)는 서로 배척한다. 이와 같은 배척현상을 상극작용이라고 한다. 상극작용은 본래 자연계에 있어서는 잠재적인 것일 뿐 표면화되지 않으며,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을강화 또는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자연계에서 양전기와 양전기(혹은 음전기와 음전기)는 서로배척한다. 이것은 주체(양전기)와 대상(음전기)의 수수작용을 강화․보강하기 위한 작용이며, 그 자체로서 표면화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
연계에서는 이와 같은 상극작용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교란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주체와 주체의 상극작용은 두 지도자간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혁명시에 새로운 지도자와 과거의 지도자와의 대립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은 상극작용에 있어서 두 주체(보수파의 주체와 개혁파의 주체)는 각각의 대상층(인민대중)과 수수작용을 하여 각각의 세력을 형성한다. 그 결과 두 세력이 대결하게 된다. 이 때, 두 주체(지도자)중의 한편은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에 보다 가까운 입장에 서게 되고 다른 한편은 보다 먼 입장에 서게 된다. 전자를 선편이라 하고 후자를악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회에 있어서 주체와 주체의 상극작용은 선악의 대결 또는 선악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이 투쟁에서 선편이 승리하면 역사의 진행방향은 조금씩 선의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타락한 사회라 할지라도 상극작용은 그 본래의 수수작용의 보완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국가와 국가 또는 민족과 민족간에 평화적으로 경쟁하면서 문화적․경제적으로발전되어 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4) 중심의 主管의 법칙
다음은 중심의 주관의 법칙에 대하여 설명한다.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주체는 중심이 되고, 대상은 주체의 주관을 받게 된다.
그 결과 대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원환운동을 하게 된다. 자연계에 있어서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전자가 핵을 중심으로 도는 것과같이, 물리적인 원환운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주
체와 대상의 관계는 주체의 마음과 대상의 마음과의 관계이므로, 대상의 마음이 주체의 명령, 지시, 부탁 등에 쾌히 따른다는 의미에서의원환운동이 벌어진다.
복귀역사에서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세운 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섭리에 적합한 방향, 즉 선의 방향으로 역사를 인도해 가지만, 그 경우 사회환경을 먼저 조성하여 놓은 다음, 중심인물로 하여금 그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에 맞는 방향으로 수습하게 한다. 따라서 중심인물에게는 항상 환경을 수습(주관)해야 하는 책임분담이 주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중심인물이 사회환경을 주관하는것을 중심의 주관의 법칙이라 한다. 이것은 선민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중심사로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사를,예수 이후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신약시대에는 서양사를 섭리해 나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중심사를 섭리함에 있어서 중심인물을 세워나오셨다. 구약시대의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열왕들, 예언자들그리고 신약시대의 어거스틴, 여러 교황들, 루터, 칼빈 등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프랑크왕국의 촬스대제, 영국의 헨리 8세, 미합중국의 워싱턴, 링컨 등의 정치적지도자들도 각 시대에 세워진 중심인물들이었다.
한편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해온 사탄도, 자기를 중심으로 한 지배권을 확립하고자 사탄편의 중심인물을 세운 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섭리를 방해하면서 사회환경을 주관해 나왔다.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하면서 세계를 제패하려고 한 카이젤(빌헬름2세)이나 히틀러, 공산주의사상을 확립한 마르크스, 공산주의혁명을 지도한 레닌, 스탈린, 모택동등이 그와 같은 인물들이다. 그들의 사상이나 지도력이 없는 전체주의
의 대두나 공산주의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토인비는 ‘문명의 성장은 창조적 개인 혹은 창조적 소수자에 의해서성취되는 사업이다.’1) 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수자인 대중은 창조적개인 또는 창조적 소수자의 지도를 받아서 그들을 따른다고 하였다.
토인비의 이러한 주장은 바로 역사에 중심의 주관의 법칙이 작용해 왔음을 말해 준다.
유물사관은 유물론의 입장에서 지도자보다도 환경(사회환경)을 더중시함으로써, 사회환경의 기층인 인민대중이 사회발전에서 결정적인역할을 다 해왔으며, 지도자는 다만 일정한 사회적 조건의 제약을 받으면서 활동을 해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신이 물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정신이 물질의 제약을 받는 것처럼, 지도자의 정신은물질적환경인 사회환경의 제약을 받는다는 유물론을 근거로 한 사고방식이 다. 이와 같이 공산주의는 사회환경(인민대중)을 물질적 개념으로, 중심인물(지도자)을 정신적인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지도자는 주체이며, 인민대중은 대상으로서 지도자는 그 종교적 혹은 사상적인 이념을 가지고 대중이나 사회를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
(5) 3단계 완성의 법칙
창조원리에 의하면, 모든 사물의 성장이나 발전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식물은 씨에서 싹이 나는단계, 줄기가 자라고 잎이 생겨나는 단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단계를 통하여 그 성장을 완성한다. 이 법칙이 역사에도 적용되어서 3
단계의 과정을 통하여 재창조의 섭리가 이루어져 왔다. 즉 어떤 하나의 섭리적인 행사가 실패로 끝나면 비슷한 섭리가 3차까지 되풀이되면서 3단계에서는 반드시 완성하곤 하였다.
예컨대 복귀섭리의 기대를 세우려던 섭리가, 가인․아벨의 헌제獻祭실수로 인하여 아담가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노아가정을 거쳐 아브라함가정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졌으며, 또 아브라함가정에 있어서도아브라함의 대에 이루려던 복귀기대조성의 섭리가 아브라함의 제물실수祭物失手로 이삭의 대를 거쳐서 3대째인 야곱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이루어지게 되었다. 메시아(후아담)의 강림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은 제2의 아담으로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나 십자가형十字架刑으로 인하여 예수님마저 창조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없게 되자, 제3의 아담으로서 재림주再臨主
를 강림케 하신 것이다.
재림주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인 근세에 있어서 헤브라이즘 복고운동復古運動
과 헬레니즘 복고운동도 각각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전개되었다. 헤브라이즘 복고운동이란 신본주의운동神本主義運動, 즉 종교개혁을 말하며, 루터, 칼빈을 중심으로 하는 제1차 종교개혁에 이어 웨슬레, 폭스 등에 의한 제2차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날 통일교회를중심하고 제3차 종교개혁(제3차 신본주의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 헬레니즘 복고운동이란 인본주의운동을 말한다. 제1차 인본주의운동인 르네상스에 이어 제2차 인본주의운동으로서 계몽사상운동이일어났고, 이어서 제3차 인본주의운동인 공산주의운동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개되어 왔다.
헤브라이즘 복고운동(신본주의운동)은 하나님편의 복고운동으로서 전
개되었으며, 헬레니즘 복고운동은 인본주의운동으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 인본주의운동은 인간을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사탄편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마침내 무신론(공산주의)으로 흐른 것은그 때문이다. 그런데 신본주의운동이 3단계를 통하여 성공하면, 사탄편의 사상운동인 인본주의운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하나님편의 3단계완성의 법칙은 사탄편에 있어서 3단계 필멸의 법칙이 되는 것이다. 즉 제3차 신본주의운동인 ‘통일교회 운동’의 성공과제3차 인본주의운동인 공산주의운동의 멸망은 모두 필연지사必然之事이다.
(6) 6수기간의 법칙
성서에는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이어서 아담의 창조까지 6일이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아담의 창조는 6수기간을 앞에 두고 개시되었는데, 이 기간은 아담을 만들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마찬가지로재창조역사에 있어서도 제2아담인 메시아(예수) 강림의 6수기간전 즉6세기 전부터 하나님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신 것이다.
기원전 6세기경에 유대민족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여 그들의 불신앙을 회개토록 하신 것은 6세기 후에 강림할 메시아를 맞기위한 준비였다. 기원전 6세기경 중국에서는 공자(551?~479 B.C.)가나와서 유교를 세웠으며, 공자이후 6세기에 걸쳐서 제자백가로 알려진여러 사상가들이 나타나 중국사상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인도에도B.C. 6세기경 석가(565~485. B.C.)가 나타나 불교를 세웠으며, 또 비슷한 시기를 전후하여 우파니샤드(오의서奧義書)라고 불리는 고대 인도
철학서가 출현하였다. 같은 시기에 중동지방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일어났으며, 그리스에서는 철학, 예술, 과학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전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였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각 지역의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善한 방향으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기원전 5백년 경을 전후하여 중국, 인도, 이란, 팔레스타인, 그리스 등에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이 정신적지도자들(종교의 개조開祖나 철인哲人)이 나타난 것에 주목하고 그 시대를 ‘추축시대樞軸時代’라고 불렀다.2) 거의 같은 시대에 그와 같은 정신적지도자들이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세계의 각지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것을 역사적인 비밀이요, 풀 수 없는 수수께끼3)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6수기간의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풀려지게된다.
재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제3아담인 재림메시아를 맞이할 때에도메시아재림의 6수기간 전부터 하나님은 재림맞이 준비를 시작하셨다.
그것이 14세기경부터 태동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문예부흥) 운동이다.4) 18세기말에 일어난 산업혁명, 그리고 그 후의 과학과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도 역시 이 재림을 위한 준비였다. 복귀섭리역사에 의하여 하나님은 20세기에 재림메시아를 지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이와 같은 준비를 해오신 것이다.
예수를 맞이하기 위하여 6세기 전에 나타난 종교가나 철학자들은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진 천사장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한 사랑과 진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이었다. 하
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만이 참사랑을 실천하며 참진리를 밝힐 수 있으며, 그 사랑과 진리를 통하여 비로소 그때까지의 종교나 사상의 모든미해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의 교리나 철학의 내용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가르친 불완전한 사랑이요, 불완전한 진리이기 때문에 메시아강림 때가 되면 어차피 미해결의 문제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그때까지의 종교는 무력화하게 된다. 이 때 메시아가 강림해서 종래의 무력화한 종교나 사상을 절대적인 참사랑과 참진리로써 보완하여 소생시킨 후 종교통일, 사상통일을 이루면서 통일세계를 실현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통일세계는 실현되지못한 채 그 사명은 재림주에게로 인계되었으며, 따라서 유교, 불교, 동양철학, 그리스철학 등도 통일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재림 때까지 남아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림 때에 이루어야 했던 종교통일, 사상통일의 과업을 재림 때에 비로소 완성하게 된다. 즉 재림주는 이때까지의종교나 사상의 미해결의 문제를 하나님의 참사랑과 참진리로써 해결한후, 종교통일․사상통일을 이루어서 통일세계를 실현하게 된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재림주를 맞기 위한 6세기 전부터의 준비기간은 메시아 초림시의 6세기 전과 같이 굳이 새로운 종교나 철학을 세울 필요가 없으며, 기존의 종교나 철학을 잔존시키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불교 등이 남아져 왔던 것은 그 때문이다. 단, 중동에있어서의 조로아스터교는 선악의 2신의 종교였기 때문에 7세기경에유일신교唯一神敎인 이슬람교에 의해서 대치代置되었던 것이다.
(7) 책임분담의 법칙
인간시조 아담․해와에게는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책임분담이 주어져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우주의 주관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기위해서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책임분담의 터 위에서 아담․해와가 자신들에게 부여된 인간으로서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만물에 대한주관주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타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재창조의 섭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특히 섭리적인중심인물)의 책임분담이 완전히 합쳐짐으로써 이러한 재창조의 섭리가완성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책임분담이란, 인간(섭리적 인물)에게주어진 사명을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책임을 지고 완수하는 것을의미한다.
따라서 섭리적 인물들이 자신의 지혜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책임분담을 다 하면 복귀섭리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지만, 만일그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 하지 못하면 그를 중심으로 한 섭리는 실패하게 된다. 그리하여 섭리는 연장되고 일정한 수리적 기간을 경과한후에 하나님은 새로운 인물을 召命하여 동일한 섭리를 다시 반복하시는 것이다.
인류역사가 죄악역사로서 오늘날까지 연장되어온 것은, 섭리적 인물들이 계속해서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통일세계를 실현하지 못한 것은 세례요한이나 제사장, 율법학자 등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공산주의가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이유도 산업혁명 이후 기독교국가의 지도자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
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시점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국가의 지도자들은대오각성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하나님의 참말씀과 참사랑으로 공산주의국가 사람들까지 인도하여, 하나님편에 서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세계평화와 함께 지상천국의 실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三. 복귀의 법칙
인류역사는 재창조역사인 동시에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창조이상세계를 회복하기 위한 복귀역사이다. 여기에 창조의 법칙과는 다른 별개別個의 법칙들이 역사에 작용해 왔다. 이것이 일련의 복귀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는 (1)탕감의 법칙 (2)분립의 법칙 (3)4수복귀의 법칙 (4)조건적 섭리의 법칙 (5)거짓과 참의 선후의 법칙 (6)종의 횡적전개의 법칙 (7)동시성섭리의 법칙 등이 있다.
(1) 탕감의 법칙
타락이란 인간이 본래의 위치와 상태를 잃어버린 것을 말한다. 그리고 복귀란 그 잃어버린 본래의 위치와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래의 위치와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복귀를 위한 그 조건을 탕감조건이라고 한다.
인간이 세워야 할 이 탕감조건은 첫째로 믿음의 기대요, 둘째로 실
체기대實體基臺이다. 믿음의 기대를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중심인물)를 만나서 그를 중심하고 일정한 수리적 탕감기간을 거쳐서일정한 조건물을 세우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실체기대를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에게 죄의 인간들이 순순히 따르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죄악사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신지도자에게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박해했다. 따라서 의인이나성현들이 걷는 길은 항상 고난의 노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의인들의 고난을 제물적인 탕감조건으로 삼아서 죄악세계의 사람들을 굴복시켜 하나님편으로 복귀해 오시곤 하셨다. 즉 의인들의 고난을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은 죄인들을 회개시키곤 하셨다.
이것이 탕감의 법칙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예수의 십자가였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많은 죄악세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자각하고 회개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공산주의자는 많은 종교인, 의인, 선량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살해해 왔다. 하나님은 마침내 그들의 수난을 조건으로 하여 공산 독재정권을 굴복시킴으로써 공산세계의 인민들을 해방으로 인도해오셨다. 따라서 ‘탕감의 법칙’으로 보아 공산주의의 멸망은 필연적인것이었다.
(2) 분립의 법칙
창조주는 하나님뿐이기 때문에 창조본연의 인간은 항상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러나 타락에 의해 아담은 사탄과도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담은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중간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을 상대하면, 사탄도아담을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비원리적인 입장에 놓인 아담을 통하여 원리적인 섭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담으로 하여 금 두 아들을 낳게 하여 각각 하나님편과 사탄편으로 분립하였는데, 하나님편에는 아우인 아벨을, 사탄편에는 형인 가인을 세웠던것이다.5)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 굴복함으로써 가인과 아벨을 함께하나님편으로 복귀하고자 하셨다. 하나님편에 있던 인간(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여 타락했으므로, 탕감복귀를 위해서는 사탄편 입장의 가인이 하나님편 입장의 아벨에게 순종굴복해야 하는 것이 원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사탄편입장인 가인은 제물을 직접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었으며, 아벨을 통하여바쳐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제물을 하늘 앞에 직접 드렸을 뿐아니라 끝내는 아벨을 살해하였다. 그 결과 역사는 죄악역사로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6) 그러나 하나님편 입장으로 분립된 아벨이 끝까지 하나님에 대하여 충성을 다 한 심정의 터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사탄세계에서 선편의 인간을 분립할 수 있게 되었다.7)
하나님은 선편의 개인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선편의 가정,씨족, 민족, 국가, 세계를 분립하면서 점차 선편의 판도를 확대해 오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항하던 사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앞서 악편의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악편의 가정, 씨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 나오면서 악의 판도를 확대해 왔으며, 그렇게 함으로써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해 왔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선편의 인간들(성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악편의 인간들에게 전하곤 하였으나, 악편 인간들이 듣지 않고 도리어 물리적으로박해 또는 공격을 가하곤 했다. 그래서 하나님편은 그에 응전하는 입장에서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역사상에는 선편의 개인과악편의 개인, 선편의 가정과 악편의 가정, 선편의 씨족과 악편의 씨족,선편의 민족과 악편의 민족, 선편의 국가와 악편의 국가, 선편의 세계와 악편의 세계 사이에 싸움이 전개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따라서 역사는 선악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 편이 선이고 다른 한 편이 악이라 하더라도, 복귀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완전한 선이나 완전한 악은 있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보다 가까운 측이 선편으로, 보다 먼 측이 악편으로 분립되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 세계는 선편과 악편의 2대 진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자유세계와 공산세계로서 종교(특히 기독교)를 인정하는 국가군과 종교를 부정하는 국가군이었다.
하나님이 세계를 선편과 악편으로 분립하신 목적은, 악편이 선편에굴복함으로써 악편도 구원하여 하나님편으로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 양 진영의 투쟁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마지막에는 선편이승리하게 되어 있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제 최종적으로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통일이 메시아를 맞이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다. 아담의 불신으로 가인과 아벨이 분립되었으므로 후아담인 메시아에 의해서 가인편과 아벨편의 통일이 성취되는 것이다.
(3) 4수복귀의 법칙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가정적 사위기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실현하는 데에 있다. 즉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장하고 완성했더라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부부가 된 후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
하여 子女를 번식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아담夫․해와妻․자녀로 구성된 ‘가정적 사위기대’가 이루어져서,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종적인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적사위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탄을 중심한 가정적사위기대가 형성됨으로써 전피조세계가 사탄주관권내에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을 중심한 가정적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이 복귀역사의 중심적인 목적이었던 것이다.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4수의 기간을 가지고상징적, 조건적인 섭리를 해오셨다. 이것을 4수복귀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때의 4수기간은 가정적사위기대를 수리적으로 회복하는 탕감조건이다. 4수기간이란 40일, 40년, 400년 등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 기간은 사탄에 의해서 혼란이 벌어지는 기간이며, 그 기간동안 하나님편의 인간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그 예가 노아의 40일 홍수, 모세의 광야노정 40년, 기독교도에 대한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 등이다. 이 탕감기간이 지나면 조건적으로사위기대를 복귀했다는 의미에서 혼란은 수습되고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곤 하였다. 4수복귀의 법칙은 이스라엘민족의역사뿐만 아니라 타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에 적용되기도 했다.
토인비는 4백년간의 혼란기(동란시대)를 거친 후에 통일이 달성된세계국가의 예를 들고 있다. 예컨대 그리스․로마 문명시대에 있어서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부터 로마의 통일까지의 4백년(B. C. 431~31),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진·한제국奏․漢帝國에 의한 통일까지의 약 4백년(B. C. 634~221), 일본의 역사에서 가마꾸라·아시까가시대鎌倉․足利時代의 봉건적 무정부상태에서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전국을 통일하고 도꾸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성립에 이르기까지의 약 4백년(1185~1597) 등의 예가 그것이다. 그러나 토인비는 왜 이와 같은4백년기간이 나타나는가를 밝히지 못하였다.8)
그 외에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기간 40년(1905년의 을사보호조약에서 1945년의 한국 해방까지)도 그 한 예이다.
(4) 조건적 섭리의 법칙
조건적 섭리의 법칙이란, 섭리적인 어떤 사건에 있어서 중심인물이하나님의 뜻에 적합하도록 그 책임분담을 다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그 이후의 섭리시대의 성격이 결정됨을 말한다. 섭리적인 사건은 그자체만으로 복귀섭리의 과정에서 그때그때의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후에 일어나는 섭리적인 사건의 성격을 결정하는데조건을 짓기도 한다.
예컨대 구약시대의 섭리에 있어서, 모세가 광야에서 반석을 두 번쳐서 물을 낸 사건이 있었다(민수기 20장). 모세의 행위 그 자체는 그때의 현실적인 사정상, 즉 광야에서 목이 마른 백성에게 물을 먹여야한다는 상황에서 필요한 행위였다. 그러나 동시에, 장차 예수님의 강
림시 하나님의 섭리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조건짓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에 관하여 ‘원리강론’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글을 적고 있다.9)
반석이란 아담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모세가 치기 전에 물을 내지 않는
반석은 첫째 아담을, 그리고 모세가 한 번 쳐서 물이 나오게 된 반석은
제2아담인 예수를 상징한다. 왜냐 하면 물은 생명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타락에 의해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제1아담은 물을 내지 않는 반
석에 비유되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오시는 제2아담인 예수님
은 물을 내는 반석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세는 불신하는 이
스라엘민족에 대한 노여움에서 한 번 더 쳐버렸다. 그 결과 장차 예수님
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하게 되면, 사탄은 반석의 실체되신
예수를 칠 수가 있다고 하는 조건이 成立(底線.…… 筆者)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의 불신 때문에 십자가에 달렸는데, 이것은 모세의 반석 2타가 메시아강림 후의 섭리를 조건 지웠기때문이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사실의 한 예에 불과하지만, 그밖에 섭리적으로 의의있는 역사적 사건에도 마찬가지로 이 법칙이 적용되어 왔다. 즉 섭리적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그 이전의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어느 정도 조건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한 시대의 섭리적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따라서 그 후에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의 성격이 조건 지워진다. 이러한 내용을 조건적섭리의 법칙이라 한다.
(5) 거짓과 참의 선후의 법칙
이것은 참된 것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된 것이 먼저 나타난다는 법칙이다. 사탄은 인간 시조를 타락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占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탄이 하나님에 앞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를 흉내내면서 원리형의 비원리세계를 만들어 나왔던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아담이 책임분담을 다 하지 않고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의 이 비원리적인 세계의 조성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신 하나님은 사탄의 뒤를 좇아오면서 사탄이 만든 비원리세계를 원리의 세계로 돌려놓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이다. 사탄에 의한비원리세계는 비록 번영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된 것이기때문에 번영은 일시적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진전함에 따라 반드시 붕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구극究極의 목적은 지상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창조이상이 실현된 세계, 즉 전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국가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신한 인류의 참부모)을 최고의 주권자로모시는 하나님의 나라요, 지상천국으로서 그것은 메시아가 강림함으로써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먼저 훔쳐다가 메시아강림(또는 재강림) 이전에 사탄편의 메시아적인 인물을 세워서 사탄편의 이상세계를 만들려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거짓 메시아에의한 거짓 통일세계가 먼저 나타나곤 하였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나타난 로마제국이 그 좋은 예이다. 로마에카이사르(율리우스 시저)가 나타나서 全갈리아를 정복하여 속국으로만듦으로써 로마의 통일을 성취하였다(B. C. 45년). 그런데 그가 암살
되자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내란을 수습하고(B. C. 21년), 전지중해를 통일하여 문자 그대로의 세계제국을 건설했다. 로마제국의 번영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고 하여 약 2세기동안 계속되었다. 카이사르나 옥타비아누스는 사탄편의 메시아적 인물이었다.
그들은 참된 메시아(예수)가 강림하여 영원한 사랑과 평화와 번영의통일세계를 이루기에 앞서, 거짓된 평화와 번영의 통일세계를 만들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으므로 참된 통일세계,참된 이상세계는 실제로 출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재림 때에도 이 법칙에 따라서 거짓 재림주와 거짓 통일세계가 재림의 섭리에 앞서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스탈린과 공산주의 세계였다. 사실상 스탈린은 당시 인류의 태양으로 자처하고 메시아와 같이숭배되었으며 공산주의에 의한 세계통일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스탈린은 1953년에 죽었으나 섭리적으로 보면, 그 때가 재림섭리의 공식노정이 출발한 때였다. 국제공산주의의 그 후의 분열은, 거짓된 통일세계의 붕괴와 메시아에 의한 참된 세계통일의 실현의 진척을 보이는 증거였다.
(6) 종의 횡적 전개의 법칙
이것은 종적縱的인 역사적 사건들을 복귀역사의 종말기에 횡적橫的으로다시 전개시킨다는 법칙이다. 종縱이란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횡橫이란공간적 넓이를 말한다. 즉 종은 역사이고 횡은 현실세계를 뜻한다. 따라서 종의 횡적전개란 역사상의 모든 섭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종말시대에 세계적으로 재현시켜서 섭리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섭리역사에 있어서 섭리적인 인물들의 실패로 말미암아 제때제때에 미해결로 끝난 여러 가지 섭리적 사건들을 끝날에 한꺼번에 뜻맞게 마무리해서 복귀섭리역사를 완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간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사탄의 침범으로 잃어버린 종적인 탕감조건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3대로써 탕감복귀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건적이었다. 즉 아담가정의섭리와 노아가정의 섭리가 모두 미해결로, 즉 실패로 끝났지만 아브라함 가정에서는 일단 조건적으로나마 섭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또 예수 때에 하나님은 아담에서 예수까지의 4천년의 역사에 있어서, 사탄의 침입으로 실패로 끝난 여러 섭리적 사건들을 횡적으로 전개하여 그것들을 한꺼번에 탕감복귀하고자 하였으나, 십자가형으로 이루어지지못하였다.
그리고 재림의 섭리가 시작될 때에는 아담이후 재림주님 때까지 6천년 기간동안 사탄에게 침범당했다가 조건적으로만 마무리되었던 모든 사건들을 횡적으로 다시 전개하여, 그것들을 재림주를 중심하고 총체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탕감복귀하여 죄악역사의 섭리를 완결짓는다.
이와 같이 역사상의 사건들이 미해결인 채 남아져 있는 한 지상의 참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역사상의 이 모든 사건들을 끝날에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만, 현실적인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게 되어서 여기에 비로소 참된 평화의 세계가 실현되게 된다.
예컨대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제국의 대립은 그것이 비록 오늘의문제이긴 하지만 근원을 따져보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민족과 주변민족과의 싸움이 오늘날 재현된 성격의 싸움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대립을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로만 파악해서
는 그 해결이 불가능하다. 즉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그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하여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과아랍과의 대립은 종식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종말시대가 오면 종적인 역사상의 여러 사건들이 재현再現하게 되므로 여러 가지의 예상하지 않았던 사태가 빈발하게 되며, 그때문에 세계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종의 횡적전개의 법칙에 의하여끝날에 이와 같이 세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므로 성경에는 이런 상황을‘큰 환난’으로 표시하면서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태 24:21)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오로지 인류가 재림주를 맞이하여 그분의 참말씀과 참사랑의 가르침을 따를 때에만 근본적으로 해결되게 된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역사의 모든 사건을 종말시에 재현시켜서, 그것들을 재림주님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섭리하시는 것은 첫째로, 6천년의 죄악역사를 인간이 실수하지 않고 꾸려 나왔다고 하는 승리의 조건을 세움으로써, 역사상의 수많은 비참한 사건의 기억을 하나님과 인류의 마음에서 영원히 불식하기 위함이요, 둘째로 사탄의 참소조건을 일소하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서 사탄까지도 영원히 구원하기 위함인 것이다.
(7) 동시성섭리의 법칙
과거의 역사에 있었던 일정한 섭리적 사건들이 시대마다 반복되어나타나는 것을 동시성섭리의 법칙이라 한다. 동시성의 관계에 있는 섭
리적 시대는 중심인물, 사건, 수리적 기간 등에 있어서 흡사한 양상을나타낸다. 이것은 섭리역사에서 어떤 섭리적 중심인물이 그 책임분담을 다 하지 못했을 때, 그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나게 되고, 일정한 기간을 경과한 후에 유사한 다른 인물이 세워져서,전시대의 섭리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같은 섭리역사攝理役事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복귀섭리의 연장과 더불어 탕감조건이 점차로 가중되어 나타나므로, 완전히 전시대와 똑 같이 반복하는 것은아니다. 다만 차원을 높인 형태로 반복한다. 그 결과, 역사는 나선형을그리면서 발전하게 된다.
그러면 동시성섭리의 법칙은 어떻게 역사에 적용되었는가. 아담에서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복귀기대섭리시대)의 가정을 중심으로 한복귀섭리가 실패함으로써 메시아가 강림할 수 없었으므로, 거기에 대한 동시성섭리로서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2천년동안 이스라엘민족을 중심으로 한 복귀섭리(복귀섭리시대)가 동시성섭리로서 전개되었던것이다. 또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2천년간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예수의 십자가형으로 또 실패했으므로, 예수님이후 오늘날까지 2천년간의 기독교를 중심한 복귀섭리(복귀섭리연장시대)가 다시 이에 대한 동시성섭리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이후 예수까지의 2천년과 예수이후 오늘날까지의 2천년의, 두 시대에 있어서의 동시성의 내용을 정리하면 그림 8-1과 같이 된다.
복귀섭리시대 복귀섭리연장시대
애급 고역시대(400년) 로마제국 박해시대(400년)
士師
사사 시대(400년)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400년)
통일왕국시대(120년) 기독 왕국시대(120년)
남북왕조 분립시대(400년) 동서왕조 분립시대(400년)
유대민족 포로시대(70년) 교황 포로시대(70년)
유대민족 귀환시대(140년) 교황 귀환시대(140년)
메시아강림 준비시대(400년) 메시아재강림 준비시대(400년)
신앙의 쇄신, 그리스문명 종교개혁, 문예부흥(르네상스)
그림 8-1. 복귀섭리 시대와 복귀섭리 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섭리적동시성
역사 속에서 동시성을 발견한 사람은 슈펭글러였다. 그는 모든 문화는 동일한 형식에 의하여 발전하게 되며, 따라서 두 문화 사이에는 대응하는 유사한 사상事象이 나타나며, 대응하는 사상事象을 ‘동시성’이라고하였다.10)
슈펭글러와 거의 같은 때에 역사의 동시성을 발견한 사람이 토인비였다. 토인비는 투키디데스를 강의하면서, 고대 그리스 역사와 근대서양사가 동시대적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14년이라는 해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 그리스사를 가르치고 있던
나를 붙들었다. 1914년 8월,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지금
내가 붙들린 것과 같은 경험을 그는 이미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내 마
음 가운데 떠오르게 되었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속해 있는 세
계가 정치적으로 분할됨으로써 모든 국가간에 발생한 골육상쟁의 대 전
쟁으로 지쳐 있었다. 투키디데스는 당시의 대 전쟁이 당시의 세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의 경과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나는 지금 고대 그리스사와 근대 서양사
가 경험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동시대적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 두 개의
코스는 평행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비교 연구할 수 있다.11)
이와 같이 토인비는 고대 그리스역사와 근대 서양사를 동시성으로 다루었는데, 통일사관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는 메시아강림준비시대이며, 근대 서양사는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여서 다 함께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시대라는 점에 있어서 동시성의 본질적인 의의가 있다는것이다.
四. 역사의 변천
이상 열거한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은 모두가 역사의 변천에 작용된 법칙들이지만,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수수작용의 법칙, 상극의 법칙, 탕감의 법칙, 분립의 법칙이다. 그 중 수수작용의 법칙은역사의 변천에서의 ‘발전의 법칙’이 되고, 다른 셋은 합쳐서 ‘전환의법칙’이 된다(‘전환의 법칙’은 ‘선악의 투쟁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역사가 수수작용에 의하여 발전해 온 것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즉 정신과 물질, 인간과 환경(자연, 사회), 정부와 국민, 단체와 단체,개인과 개인, 인간과 기계 등의 여러 가지 주체와 대상 간에 수수작용이 원만히 행해짐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발전이 이루어져 온 것이다.
발전이란 성장, 발육, 향상 등을 말한다. 또한 새로운 질의 출현을뜻하며, 이것들은 모두 불가역적인 전진운동이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요소가 공동목적을 중심으로 조화로운 수수작용을 할 때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에 반하여 투쟁은 서로 목적이 다르고 이해가다른 주체와 주체 간에 생기는 것이다. 투쟁이 일어날 때 발전은 정지되거나 또는 오히려 후퇴한다. 따라서 역사상에 나타난 어떠한 종류의발전도 예외없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주체와 주체는 상극의 법칙에 따라 대립하고 투쟁하는데, 역사상에있어서의 주체와 주체의 상극이란 지도자와 지도자의 대립을 말한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에 있어서 중산시민층(부르주아지)의 지도자와 루이16세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귀족들, 즉 새로운 지도자와 낡은 지도자와의 투쟁이 그 예이다. 양자兩者는 분립의 법칙에 따라 상대적으로 선편의 입장(하나님의 섭리에 적합한 입장)과 악편의 입장(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입장)으로 분리된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체가 대상인대중을 서로 자신편에 끌어들임으로써(따라서 이때 대중은 둘로 나뉨)선편의 진영과 악편의 진영을 형성하여 싸우게 된다. 지도자 중 어느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의 입장인가 하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대체로 낡은 사회의 지도자들은 자기중심으로 기울어짐으로써 전제적 지배를 일삼게 된다. 따라
서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악편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이 때에하나님은 섭리의 진행에 보탬이 되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편의 입장에세워서 그를 통하여 섭리하시곤 했다.
선악의 투쟁에서 선편이 이기면 역사의 진행방향은 보다 선한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 후 역사가 일정한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이때까지의 지도자는 다시 악편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보다 선한 지도자가 또 다시 나타난다. 여기에 다시 선악의 투쟁이 벌어진다. 여기에서 선편이 이기면 역사의 방향은 더욱 선한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며, 드디어는 완전한 선의 단계, 즉 창조이상세계가 실현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 비로소 선악의 투쟁은 종말을 고한다. 이와 같이 투쟁은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다만 역사발전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구실을 다할 뿐이다.
선편의 주체와 악편의 주체와의 투쟁에 있어서 악편이 강력할 경우,하나님은 탕감의 법칙을 통하여 악편을 굴복시키곤 하셨다. 즉 선편의지도자로 하여금 악편 세력의 박해 또는 공격을 받으면서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걷게 함으로써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악편의 지도자를 자연굴복시켰던 것이다. 만일 그래도 악편의 지도자가 굴복하지 않을 때는선편의 지도자의 수난을 조건으로 전체대중을 감화시켜서 악의 지도자를 고립시킨다. 이렇게 되면 악편의 지도자는 결국 굴복하지 않을 수없게 된다. 이것이 선악투쟁의 법칙의 내용이다. 따라서 이 법칙을 ‘맞고 빼앗는 법칙’ 또는 ‘맞고 빼앗는 전술’이라고도 부른다. 오늘날까지종교가 박해를 받으면서 전 세계에 전파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맞고 빼앗는 법칙에 의한 것이었다.
선악의 투쟁에 있어서 선편 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악
편이 승리할 경우, 역사는 물론 선한 방향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그대로 연장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하나님은 보다 선한 지도자를 다시 세워서 악편을 굴복시킨다. 그리하여 결국은역사가 선편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하나님은 배후에서 부단히 섭리해나오신 것이다.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에 의해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선악의 투쟁에 의해서 변천되어 왔다.
이와 같이 역사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발전해 왔으며,선악의 투쟁에 의해서 방향이 전환되어 왔다. 즉 역사는 발전과 전환이 반복되는 가운데에서 변천되어 왔던 것이다. 역사변천의 과정을 도형으로 표시하면 그림 8-2와 같다.
그림 8-2. 수수작용 및 선악의 투쟁에 의한 역사의 변천
이상으로 역사는 두 가지의 방향을 향하여 변천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는 발전(진전)의 방향이며, 다른 하나는 복귀(전환)의 방향이다.
발전이란 과학이나 경제, 문화가 발달하는 것을 의미하고 복귀란 잃어버린 창조이상세계 -사랑과 평화의 세계- 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역사에 두 방향이 생긴 것은, 인류역사가 재창조역사임과동시에 복귀섭리역사이기 때문이다. 미래세계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의 세계임과 동시에 고도의 윤리사회로서 과학문명의 세계는 발전에의해서 도달되고 윤리사회는 복귀에 의해서 도달하게 된다.
복귀는 선악의 투쟁에 의해서 이뤄지기는 하지만 반드시 물리적인
투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악편이 선편에 순순히 굴복하면 평화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선악의 투쟁을 종결짓는 최후의 투쟁, 즉 메시아가 직접 사탄을 굴복시키는 투쟁은 이름이투쟁일 뿐, 사실은 참사랑을 가지고 평화적으로 사탄을 자연굴복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는 발전과 복귀라는 두 방향을 향하여 나선형을 그리면서 변천해 왔다. 그런데 발전은 영원히 계속하는데 대하여복귀는 창조이상세계(선의 세계)가 회복되면 그것으로 끝나고, 그 이후에는 평화와 참사랑의 이상세계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이상으로역사의 법칙과 변천의 내용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친다.
五. 종래의 역사관
다음은 종래의 대표적인 역사관의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종래의역사관과 통일사관과의 비교에 참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순환사관(운명사관)
그리스人들은 춘하추동이 해마다 반복․순환되는 것처럼 역사도 순환적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하였다. 역사적인 사건의 발생과 소멸은 운명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는 의미도 목표도 없다고 보는 입장이 순환사관 또는 운명사관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역사가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면서‘역사’(Historiai)를 쓴 헤로도토스(Herodotos, B. C. 484~425)와 ‘펠
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Thukydides, B. C. 460~400)이다. 운명론자인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전쟁의 줄거리를 이야기 식으로서술했으며,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충실히 사실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양자에 다같이 공통적인 것은,역사는 반복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12)
순환사관은 역사의 경과를 필연적(운명적)인 것으로만 이해하였으며,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역사의 동향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또 역사에는 목표가 없으므로 미래상도 제시될 수가 없었다.
(2) 섭리사관
역사는 처음도 끝도 목표도 없으며, 순환운동을 반복할 뿐이라고 보는 그리스의 역사관에 대하여, 기독교는 역사에는 처음이 있으며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직선적으로 진행한다는 등 순환사관과는 근본적으로다른 역사관을 제시했다. 즉 역사는 인간의 창조와 타락으로부터 시작하여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이며,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것은 신의 섭리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섭리사관 또는 기독교사관이라고 한다.
기독교사관을 체계화한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354~430)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쓴 ‘신국론(The City of God)’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신국(Civitas Dei)과 악마에유혹된 사람들이 사는 지상국(Civitas terrena)과의 투쟁의 역사로 보았으며, 끝 날에 가서는 신국이 승리하여 영원한 평안을 얻는다고 하
였다. 이와 같은 역사의 진행은 하나님이 미리 정한 계획에 따른다는것이다.
그는 타락에서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역사를 다음의 여섯 단계로구분했다. (1)아담에서 노아홍수까지 (2)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3)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4)다윗에서 바빌론포로까지 (5)바빌론포로에서그리스도의 탄생까지 (6)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섯번째의 최후의 기간이 얼마나 계속되는가는 밝히지 않고있다.
이와 같은 기독교사관에 의하여 역사는 목표를 지향하는 의미있는역사로 비춰지고 있으나,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는 도구적 존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역사관의 내용은 신비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고, 논리성이나 법칙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오늘날에 이르러 사회과학으로서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3) 정신사관(진보사관)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오면서 신학적인 역사관은 점차 모습을 감추게되었으며, 18세기의 계몽주의시대에 이르러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신의 섭리가 아니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역사관이 출현하였다.
이것은 역사가 인간의 정신의 진보에 따라 거의 일직선으로, 그리고필연적으로 진보해 간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관을 정신사관 또는 진보사관이라고 한다.
비코(G. Vico, 1668~1744)는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했으나 세속의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역사는 하나님의 의지를 가지고서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역사의 파악에 있어서 하나님은 역사의 배후에 숨게 되고 인간이 전면에 나오게 되었다.13)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역사에 작용한 신의 힘을 배제했다. 즉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신이 아니고 높은 교육을 받은 자들로서 과학을 받아들인 사람들 즉, 계몽사상가들이라고 하였다.
콩도르세(Condorcet, 1743~1794)는, 인간의 이성이 각성하면 역사는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진보한다고 주장했다.
칸트(I. Kant, 1724~1804)는, 역사의 목적은 인간의 모든 고귀한재능의, 제민족諸民族의 결합체結合體에서의 실현이라고 하면서, ‘세계시민적 의도에 있어서의 인류의 역사’를 제언하였다.
낭만주의 철학자 헤르더(J. G. Herder, 1744~1803)는 인간성의 발전이 역사의 목표라고 하였다.
헤겔(Hegel, 1770~1831)은 역사를 ‘정신의 자기실현’ 혹은 ‘이념의자기실현’으로 보았다.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사는 이성적으로진행한다는 견해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을 그는 세계정신이라고 불렀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은 인간을 조종하면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 이것을 이성의 간계奸計라고 하였다. 헤겔의 역사관은특히 정신사관 또는 관념사관이라고도 불린다.
헤겔은 프러시아에서 자유의 이념이 실현된 이성국가가 도래한다고보고 있었으나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고 도리어 착취나 인간소외 등의 반이성적인 사회문제가 심화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역사
철학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었다.
(4) 유물사관
헤겔은 이념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는 정신사관을 주장한데 대하여마르크스는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은 물질적인 힘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물사관(혁명사관이라고도 함)을 제시하였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념이나 정신의 발전이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이다. 생산력의 발전에 상응하여 일정한 생산관계가 성립되며, 생산관계가 일단 성립되면 그것은 곧 고정화됨으로써 드디어는 생산력의 발전에 대해서 질곡화桎梏化한다. 여기에서 낡은 생산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계급(지배계급)과 새로운 생산관계를희구하는 계급(피지배계급)과의 사이에 계급투쟁이 전개된다. 따라서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계급투쟁이 그 극에 달하여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를 타도함으로써 드디어 계급이 없는 ‘자유의 왕국’ 곧공산주의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유물사관이 잘못이었다는 것은 오늘의 공산주의의 종언(끝났음)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론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유물사관의법칙이라는 것은 전부 독단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예컨대 유물사관은 생산력의 발전을 물질적인 발전으로 보았는데, 생산력이 어떻게 해서 발전하는가에 대해서는 유물변증법적인 해명이 되어 있지 않다. 또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에 의한 사회변혁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말 뿐이며, 실제로 계급투쟁에 의해서 사회가 변혁된 예는
한번도 없었다. 이와 같이 유물사관의 이론은 전부가 허구의 이론이었던 것이다.
(5) ‘생의 철학’의 사관
딜타이(W. Dilthey, 1833~1911)와 짐멜(T. Simmel, 1858~1918)은 ‘생의 성장’과 더불어 역사는 성장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생의 철학’의 사관이라고 한다.
딜타이에 의하면, 생이란 인간적인 체험이며, 체험은 반드시 표현되어서 외부 세계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나타난 것이 역사의 세계요 문화의 세계이다. 따라서 종교, 철학, 예술, 과학, 정치, 법률 등의 인간의 문화체계는 생이 객관화된 것이다.
짐멜도 마찬가지로 역사란 생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생이란 무한히 계속되는 유동이다. 그리고 ‘생(정신적인 생)’의 생성의 흐름이 역사가 된다.14) 그런데 ‘생의 철학’의 사관은, 역사상에 나타나는 인간의고통이나 불행은 ‘생의 성장’에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인간이 어떻게 해야 고통이나 불행에서 해방되는가 하는 문제는, 이 철학으로써는 해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6) 문화사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에 있어서 역사의 진보나 발전에 대한신뢰는 기본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있었으며, 역사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와 같은 직선적이며유럽 중심적인 역사상歷史像을 깨뜨린 사람이 슈펭글러(O. Spengler,1880~1936)였다.
슈펭글러는 역사의 기초를 문화라고 하면서 문화사관을 주창하였다.
그는 문화를 유기체로 보았으며, 유기체인 이상 탄생과 함께 성장하고는 멸망하게 되어 있어서 문화의 사멸은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로마의 몰락에 대응하는 몰락의 징후를 서양문명에서 발견하여 서양의 몰락을 예언했다. 이러한 서양의 몰락을 예지豫知하면서도 페시미즘에 빠지거나 불가피한 운명에 움추리지 말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것을 역설했다. 거기에는 니체와의 강한 연결이 있었다. 슈펭글러의 역사관은 결정론적이다.
슈펭글러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문화사관을 수립한 사람이 토인비(A. J. Toynbee, 1889~1975)이다. 토인비에 의하면, 세계사를구성하는 구극적인 단위는 지역도 민족도 국가도 아니며 개개의 문명이었다. 그리고 문명은 출생(genesis), 성장(growth), 좌절(breakdown), 해체(disintegration), 소멸(dissolution)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였다.
문명발생의 원인은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으로부터의 도전
應戰(challenge)에 대한 인간의 응전 (response)에 있다. 창조적 소수자가 대중을 인도하면서 문명을 성장시켜 가지만, 머지않아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성을 상실하게 되어서 문명은 좌절한다. 이때 창조적 소수자는 지배적 소수자로 전화轉化하며, 문명의 내부에서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변에는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생겨서 지배적 소수자에게서 이반한다. 그리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혼란기를 맞게 되지만,
머지않아 지배적 소수자 중의 최강자에 의해 ‘세계국가’가 수립되면서혼란기는 끝난다. 세계국가에 의한 압정 하에서 내적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등종교’를 키우고, 외적 프롤레타리아트(주변의 만족蠻族)는 ‘전투집단’(침략세력)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세계국가, 고등종교, 전투집단의3자가 정립鼎立한다. 얼마 안가서 고등종교는 지배층을 개종시킴으로써‘세계종교’가 되지만, 세계국가는 곧 붕괴되고 그와 더불어 문명은 죽음을 맞게 된다.
이리하여 하나의 문명이 소멸한 후,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침입하는데, 이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고등종교로 개종됨으로써 다음 대의문명을 탄생시킨다. 이 문명의 계승을 ‘친자관계’라고 한다. 세계사 속에서 발생하여 충분히 성장한 문명은 21개인데, 현존하는 문명은 모두그 3대째에 속하며 기독교문명(서양과 그리스 정교권), 회교문명, 힌두교문명, 극동문명의 4가지 계보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토인비가 주장한 3대에 걸친 문명의 계승은 통일사관에서의 복귀기대섭리시대, 복귀섭리시대, 복귀섭리연장시대라는 3대의 섭리적동시성에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토인비의 역사관의 특징은 결정론을 배제하고, 비결정론, 자유의지론을 주장한데 있다. 즉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응전하는가 하는 것은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 나아갈 길은 결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인간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것이다.
토인비는 인류역사의 미래상으로서 명백히 신국(Civitas Dei)을 그리고 있으나, 비결정론의 입장에서 ‘신의 나라’냐 ‘어둠의 나라’냐 하는미래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 자신의 ‘존재’의 법인 사랑의 법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기희생은
인간 앞에 영적완성이라고 하는 이상을 목표로 세워 놓고 인간에게 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에 있어서 이 도전을 수용할 것인가, 혹은 거
부할 것인가는 완전히 자유인 것이다. 사랑의 법은 인간이 죄인이 될 것
인가, 성인이 될 것인가를 인류의 자유에 맡기고 있다. 즉 사랑의 법은
인간의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을 ‘하나님의 나라’로의 전진 방안으로 삼
든지 어둠의 나라로의 전진 방안으로 삼든지, 그 선택은 인류의 자유에
일임하고 있는 것이다.15)
토인비 역사관의 또 하나 특징은 근대사회가 망각한 것처럼 보였던하나님을 역사관속에 다시 도입했다는 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역사란,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섭리에 의해서 자신
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모습의, 희미하고도 불완전한 영상에 불과하다
고 본다.16)
(7) 역사관의 변천과 통일사관
이상으로 종래 역사관의 개요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여기서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비교하여, 통일사관이 종래의 역사관을 통일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첫째로,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보는가 직선운동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
가 있다. 그리스의 순환사관, 슈펭글러의 문화사관은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파악했으며, 기독교사관이나 진보사관, 유물사관은 역사를 직선운동으로 파악했다. 한편 생의 철학사관은 유동하는 생의 성장과 더불어 역사는 발전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진보사관의 변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직선운동으로 파악하면 역사의 발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으나, 인류역사에 있어서의 좌절과 부흥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편,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파악할 때, 국가나 문화의 멸망은 운명적인것이 되어 희망을 발견할 수가 없다.
통일사관은 재창조와 복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를 전진운동과 원환운동이라는 양면을 가진 나선형운동으로서 파악한다. 즉 역사는 목표 -창조이상세계의 실현- 를 향하여 발전해 간다는 전진적 성격과 더불어, 섭리적 인물을 세워서 탕감법칙에 따라 잃어버린 창조이상세계를 복귀한다는 원환운동의 성격을 함께 지닌 나선형운동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로, 결정론이냐 비결정론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역사는 운명에따라 필연적으로 운동한다는 그리스의 운명사관과 슈펭글러의 문화사관은 결정론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진행한다는 섭리사관도 결정론이다. 이성 또는 세계정신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헤겔의 정신사관이나, 역사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공산주의사회에 도달한다고 하는 유물사관도 결정론이다. 이것들은 모두인간을 초월한 어떤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하는 견해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언제나 역사의 힘이나 법칙에 끌려다니는 피동적 존재에 불과하며,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한 노력
에 의해서 역사를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한편 토인비는 자유의지론의 입장에서 비결정론을 주장했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역사가 가는 길이 선택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토인비의 비결정론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의 미래상은 불분명하며,따라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이에 대해서 통일사관은, 역사의 목표는 결정적이지만 섭리적인 사건의 성취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 외에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역사의 과정은 비결정론이라고 본다. 즉 통일사관은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양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론을책임분담론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비교해 볼 때 종래의 역사관은 각각 통일사관의 한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통일사관이 총합적, 통일적인 역사관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토인비의 역사관에는 통일사관을 닮은 내용이 많이 있다. 섭리적으로볼 때, 토인비의 역사관은 통일사관이 출현하기 위한 전단계를 준비한사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토인비의 사관은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연결하는 교량의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六. 섭리사관과 유물사관과 통일사관의
비교
끝으로 종래의 사관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섭리사관(기독교사관)과 유물사관, 그리고 통일사관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
해 보고자 한다(그림 8-1 참조). 즉 역사의 시작, 성격, 발전의 원동력, 변천의 법칙, 투쟁, 종말의 현상․사건, 종말을 고하는 역사, 이상세계 등의 項目을 가지고 비교해 보려는 것이다. 서로 비교해 봄으로써각각의 사관의 특징을 보다 단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1) 역사의 시작
섭리사관은 창조된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역사가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죄악사로서 출발하였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대하여 유물사관은 인간이 동물계에서 분리된 후 인류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사회는 원시공동체사회라고 하였다. 통일사관은 섭리사관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인간의 타락에서 역사가 시작됨으로써 인류역사는 죄악사로서 출발했다고 본다.
(2) 역사의 성격
섭리사관은 역사를 하나님에 의한 구원의 역사로 보며, 유물사관은계급투쟁사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재창조역사와 복귀역사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를 파악한다.
(3)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
섭리사관에 의하면,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섭리사관에 있어서는,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유물사관에 있어서는, 물질적인 힘인 생산력의 발전이 역사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역사를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분담이라고 본다. 기독교의 섭리사관에 의하면, 하나님이 역사 전체를 섭리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상의 모든 비참한 사건도 하나님이 이러한 사건을 용인하였다는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그러나 통일사관에서 보면, 인간이 책임분담을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역사상의 모든 비참한 사건의 책임도 인간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4) 역사변천의 법칙
섭리사관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신국神國’과 악마를 따르는 자들의 ‘지상국’이 싸워서 마지막으로 신국이 승리한다는 것 이외에는아무런 역사의 법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유물사관은 유물변증법을 역사에 적용하여 ‘인간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로부터 독립한 일정한 생산관계를 맺는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일정한발전단계에 대응한다’, ‘생산관계가 토대이고 의식의 제형태는 상부구조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에 대하여 질곡화桎梏化할 때 혁명이 일어난다’ 등을 유물사관의법칙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역사에 작용한 법칙으로서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5) 종말에 나타나는 투쟁
섭리사관에 있어서는, 섭리역사가 종말에 이르게 되면 ‘신국’과 ‘지상국’ 사이에 최후의 투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성서에 의하면,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천사(미가엘)와 악마가 싸운다고 되어 있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역사의 최후의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진다고 되어 있다. 통일사관에 있어서 역사는 선악의 투쟁사이며, 종말기에서의 선악의 투쟁은 세계적인 규모로 전개되는 바, 민주주의세계와 공산주의세계의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 투쟁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하고 자유세계가 승리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메시아에 의하여 양편의 화해가 이루어져서 통일되게 된다.
(6) 종말의 현상
성서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태24:29)고 한 기록에 근거하여 섭리사관은 종말에 이르러 천변지이天變地異
가 일어난다고 한다. 유물사관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빈곤,억압, 예속, 타락, 착취가 더욱 더 증대하고 경제파탄經濟破綻과 사회혼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사관은, 역사가 종말에 이르게 되면기존의 모든 가치관이 무시되고 붕괴되어서, 특히 성도덕의 퇴폐가 극에 달하여서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진다고 본다.
(7) 종말의 사건
섭리사관에 의하면, 종말에 ‘최후의 심판’이 벌어진다. 즉 성서에 의하면, 끝날의 심판 때에 양羊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마태
25:32) 양羊편에 속한 자, 즉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며(마태 25:34), 염소 편에 속한 자, 즉 악마를 따르는 자는 영원한불속에 던져진다고 기록되어 있다(마태 25:41). 유물사관에 의하면, 폭력혁명으로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를타도함으로써 인류의 전사前史는 끝난다고 되어 있다. 통일사관은 종말에 있어서 세계적인 규모로 선편과 악편이 분립된 후 선편이 악편에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전함으로써 악편을 자연굴복시킨다고 보고 있다.
(8) 종말을 고하는 역사
이 항목에서는 ‘끝날에 무엇이 끝나는가’ 즉 ‘종말의 때에 어떠한 역사가 끝나는가?’를 다루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종말 때에 죄악사가 끝난다고 한다. 즉 섭리사관에 의하면, 신국이 지상국에 승리함으로써 죄악사가 종말을 고한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트가부르주아지를 타도함으로써 계급투쟁의 역사가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통일사관에 있어서는, 선편이 참사랑으로 악편을 자연굴복시켜서 장자권을 복귀함으로써 죄악사와 선악투쟁사가 종말을 고하게 된다.
(9) 도래하는 이상세계
역사가 종말을 고한 뒤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일 것인가? 섭리사관에의하면, 역사의 종말의 심판이 끝난 뒤에는 새 하늘 새 땅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되어 있다(계 21:1~2). 그러나 그 새 하늘, 새 땅의 시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대인가는 전연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혁명 후에는 계급이 없는 자유의 왕국인 공산주의사회가실현된다고 한다. 통일사관에서는, 전인류가 참부모되시는 메시아를맞이하여 ‘한 가족세계’를 이루는 창조이상세계, 즉 지상천국이 실현된다고 본다.
이상의 세 가지의 사관에 관한 9가지의 항목의 요점을 일괄하여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8-3과 같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독교사관은 신비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서 오늘날에 이르러 설득력을 가질 수없음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로 보고는 있으나, 법칙이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섭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왼편의 염소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또 끝날의 새 하늘과 새 땅이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물사관은 기독교사관에 비하여 도리어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니고있고 설득력도 있어서 최근까지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리고 한 때는 세계의 거의 절반을 적화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공산주의사회가 자유의 왕국도, 부가 넘치는 사회도 아닐 뿐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나서, 이제 그 사회는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본래 공산주의는 토인비의 말과 같이 기독교가 그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세속화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사탄편으로부터의 참소장, 고발장으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물사관은 마치 기독교사관을 뒤집어 놓은 것같은외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관련하여 칼 뢰비트는 다음과 같이 말
했다.
사적유물론이 이상적 토대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유대인의
낡은 메시아사상과 예언자주의, 그리고 유대적인 끈질기고도 절대적인
정의의 고집이다.
‘공산당선언’은 과학적 예언이라는 전도된 형식으로 ‘희망을 거는 자
에 대한 확신'이라는 신앙의 특징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적대
하는 두 진영 즉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최종적인 적대가,
역사 최후의 시기에 있어서의 기독교와 반기독교와의 최후의 싸움에 대
한 신앙과 일치하고 있으며,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가 선민의 세
계사적 사명과 유사한 것은 하등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피억압 계급의 세계적 구원의 역할은 십자가 부활과의 종교적 변증법
에 일치하며, 필연의 왕국이 자유의 왕국으로 변하는 것은 옛 에이온
(old aion)이 새로운 에이온(new aion)으로 변하는 것과 일치한다.
‘공산당선언’에 서술되어 있는 것같은 역사의 전과정은, 역사가 뜻있는
최종목표를 향하는 섭리에 의하여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유대교=기
독교적인 해석의 일반적 도식을 반영하고 있다. 사적유물론은 정치, 경
제학의 용어를 사용한 救援史인 것이다.17)
역 사 의 역 사 의 원동력 변 천 의 종 말 의 종 말 의 종 말 의 종 말 을 도 래 하
시작 성격 법칙 투쟁 현상 사건 고하는 는 이
역사 상세계섭리사 인간의 구원섭 신 의 (무) 신 국 과 천 변 지 최 후 의 죄악사 새 하 늘관 창 조 와 리사 섭리 지상국 이 심판 새땅
타 락 의 투
( 죄 악 쟁 ( 천
사) 사 와
악마의
투쟁)유물사 원시공 계급투 생산력 유물변 부르주 경제파 폭력혁 계급투 공산주관 동체 쟁사 의 발 증법 아지와 탄 명 쟁사 의세계
전 프롤레 사회의
타 리 아 혼란
트의투
쟁통 일 사 인 간 의 재 창 조 신의 창조의 선악의 가치관 신 의 죄악사 창조이관 창조와 사 섭리 법칙 투쟁 붕괴 진리와 선악투 상세계
타 락 복귀섭 인간의 복귀의 사 회 대 사 랑 의 쟁사 ( 지 상
( 죄 악리 사 책 임 분 법칙 혼란 전 파 천국)
사) ( 선 악담 ( 선 악
투 쟁 의 분
사) 립)
그림 8-3. 섭리사관, 유물사관, 통일사관의 비교
통일사관은 기독교사관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것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사관의 신비성․비합리성을 극복하고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역사관으로 제시된 것으로서, 공산주의의 기독교사관에 대한 참소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관이다. 기독교사관은 악마를 따르는 지상국 사람들이 영원히 벌을 받는다고 했으며, 유물사관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들을 폭력적으로 타도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통일사관은선편이 악편을 참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 악편도 선편으로 복귀시킴으로써 전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참된 이상세계에서는 전인류가 모두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사관이야 말로 그것을보장하는 것이다.
또 유물사관은 기독교사관을 미신 또는 신화라고 공격하면서, 유물사관 자체는 법칙성을 가진 과학적인 역사관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나,유물사관이 제시한 법칙은 사실상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허구의 법칙에 불과하며, 혁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의적인 가짜 법칙에 불과하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의 법칙은 예외없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문자 그대로의 법칙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