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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상요강 부록 원문이다.

원문

부록

문 선생님의 사상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서도 자주 새로운

가르침의 말씀을 하시곤 했기 때문에 그 중 중

요한 제목인 ‘三大主體思想’3대주체사상과 ‘四大心情圈4대심정권과

三大王權3대왕권’의 내용을 附錄부록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그리고

원리강론에 수록된 ‘共生․共榮․共義主義’공생공영공의주의에 대한

해설도 아울러 싣고자 한다. 독자 제현의

편견없는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공생․공영․공의주의

이 글은 本書본서의 저자가 1991년 11월 문선명 선생님이 회장으로 있는

모 신문사의 論說委員논설위원들에게 선생님의 사상의 일부인

‘공생․공영․공의주의’를 소개한 강의의 내용이다. <편집자 주>共生․共榮․共義主義공생공영공의주의는 문선명 선생님의 하나님주의를 경제,정치, 윤리의 측면에서 다룬 개념으로서 공생주의와 공영주의와 공의주의의 세 가지의 單純槪念단순개념으로 이루어진 複合槪念복합개념이며 공생 공영 공의주의의 뜻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하나하나의 단순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공생주의와 공영주의와 공의주의의 하나하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하겠습니다.

(1)공생주의

共生主義공생주의는 이상사회의 경제적 측면을 다룬 개념인 동시에 특히所有소유의 측면을 다룬 개념입니다. 소유의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경제나 사회주의(공산주의)경제의 특징에 있어서 전자는 사적(개인적)소유이며, 후자는 사회적(국가적) 소유입니다. 그런데 양편 모두 ‘사랑’이라는 요건은 전연 排除배제하고 있습니다. 즉 私的所有사적소유이건, 社會的所有사회적소유이건 간에 그 소유는 심리적요소가 배제된 단순한 물질적 소유에 불과하다는 것이 특징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공생주의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터로 한 공동소유라는뜻의 主義주의입니다. 여기서의 공동소유란 첫째로, 하나님과 나와의 공동소유이며, 둘째로 전체와 나, 이웃과 나와의 공동소유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공동소유는 단순한 물질적 소유만이 아니며 하나님의 참사랑을 터전으로 하는 공동소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그 한없는 참사랑에 의해서 그 참사랑이 담긴 선물인 일정한 하나님의 재산(소유)을,우리(나와 이웃)에게 공동관리 하도록 下賜하사하신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피조세계는 창조원리로 볼 때 전부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왜냐하면, 피조세계는 본래 하나님의 사랑의 主管下주관하에 있기 때문(원리강론, 1986, 90.)입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땅 위와 하늘의 궁창(창공)에 새가 날게 하시고(창 1:20), 물에는 물고기가 번성케 하시고,땅에는 길짐승들이 살게 하셨다(창 1:21~2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창공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새들의 공동소유를 뜻하는 것이요, 물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물고기들의 공동소유를 뜻하는 것이요, 땅(陸地)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길짐승들의 공동소유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독수리같은 猛禽맹금이라 하더라도 창공의 일부를 독점하지 않으며, 아무리 호랑이같은 猛獸맹수라 하더라도 땅의 일부를 독점하지 않으며, 아무리 凶暴흉포한 상어라 하더라도 바다의 일부를독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랑의 主管權주관권을 인간에게 부여했기 때문에창공과 바다와 육지는 물론 새와 어류와 짐승까지도 전체를 인간들이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동소유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즉 자연은 하나님과 인간들의 共同所有공동소유입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個人主義개인주의로 흘러가지고 땅이나 만물(재산)의 일부를 독점하기에 이르렀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合法的합법적으로 거대한 토지와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감사는커녕 양심의 苛責가책조차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웃사람이 굶어서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본가들이 뽐내고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사회인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天道천도위반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부모와 子女자녀와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의 가장 기본형은 가정입니다. 가정에 있어서 전재산은 부모의 재산인 동시에 자녀들의 재산입니다. 가옥, 정원, 전답, 가축 등은 그대로가 부모의 소유인 동시에 자녀들의 소유입니다. 즉 가정에 있어서 소유권이 비록 법적으로는 부모 名義명의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모와 자녀의 공동소유입니다. 그런데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 부모는 항상 자녀들에 대해서 참사랑을 베풀기 때문에 자녀들은 언제나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소유(재산)를 아끼면서 정중히 취급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정은 三代3대가 모여서 사는 것이 그 基本型기본형으로서 즉조부모, 부모, 자녀(형제자매)의 3대를 말합니다. 따라서 가정에 있어서의 공동소유는 엄격히 말해서 3대의 공동소유입니다.

즉 참사랑을 중심하고 조부모와 부모와 자녀와의 공동소유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조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입니다. 따라서 3대의 공동소유는 ‘참사랑의 本體본체인 하나님(조부모)과 부모와 자녀와의 공동소유’라고도 표현하게 됩니다. 이 3대에 걸친 가정에 있어서의 공동소유는 모든 공동소유의 原型원형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共生主義下공생주의하에서의 공동소유를 ‘하나님의 참사랑’을 터로한 하나님과 나, 전체와 나, 이웃과 나라는 三段階3단계의 ‘타자와 나’와의 공동소유이며, 따라서 ‘하나님과 전체와 우리의 공동소유이다’라고定式化정식화할 수 있습니다. 이 가정의 소유형태(공동소유)를 확대한 것이 단체(예:기업체)에 있어서의 공동소유입니다.

즉 참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부모와 같은 입장인 사장과, 자녀(형제)와 같은 입장인 종업원과의 3단계의 공동소유인 동시에 하나님과 나, 사장과 나, 동료 종업원과 나의 3단계의 ‘他者타자와 나’의 공동소유인 것입니다. 기업체는 아무리 기업가가 창립했다 하더라도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는 一旦일단 하나님 앞에 그것을 奉獻봉헌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봉헌한 뒤 일단 하나님의 소유로 歸屬귀속되었다가 다시그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해서 下賜하사받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공동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절차는 형식적인 단순한 要式行爲요식행위가 결코 아니며 그러한 절차를 밟음으로써 실제로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한加護가호와 협조가 내리게 됩니다. 이상은 기업체의 예에 불과하지만 그밖의 단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소유형태를 다시 더 확대시킨 것이 국가레벨에서의 공동소유인 것입니다. 예컨대, 국영기업체의 경우 그 기업체내의 모든 재산은예외없이 공동소유입니다. 즉 참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국가의 주권자인 대통령과 기업체의 전체 사원과의 3단계 공동소유인 동시에하나님과 나, 대통령과 나, 全社員전사원과 나라는 3단계의 ‘나와 他者’타자

와의 공동소유인 것입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참사랑의 가호와 협조가 항상 내리게 되고 또 대통령의 사랑에 의한 관심과 施策시책이 항상가해지기 때문에 사원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대통령께 감사하면서 공

동소유의 관념을 가지고, 모든 재산을 아끼면서 소중하게 다루게 될것입니다. 이것이 ‘국가레벨에서의 공동소유’의 개념입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즉 ‘이상세계에는 개인소유는없는가.’ 라는 의문이 그것입니다. 개인소유도 물론 있으며, 또 있지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普遍相보편상과 個別相개별상

을 다 함께 닮고 있기 때문입니다. 一個人일개인은 만인과의 공통적인속성(보편상)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한 개인에게만 특유한 속성(개별상)을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이라는 二重目的이중목적이 주어져 있고 욕망과 더불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자유가 또한 주어져 있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인간에게는 개인소유가 또한 허락되어 있습니다. 이사실을 공동소유의 原型원형인 가정적 소유형태를 가지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가정에 있어서 예컨대, 농가의 경우 가옥, 정원, 전답, 가축 등의 재산(공동소유)을 공동으로 정성껏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은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체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체목적 달성을 위해서 가족 전원은 공동으로 衣食住의식주의 생활을합니다. 즉 같은 집에서 동일한 가계 하에 입고(의), 먹고(식), 살아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 개인은 독특한 개성(개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식주에 있어서 자기의 독특한 사정과 趣向취향에 맞는 생활도하게 됩니다. 또한 부모나 자녀들은 각각 전용할 수 있는 거처와 의복과 기타 약간의 생필품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곤 합니다. 이것들은 개체목적을 수항하기 위한 소유로서 이것이 바로 個人所有物개인소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 소유물은 個體目的개체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필요하지만전체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즉 전체목적은 공동소유물을가지고 공동생활을 통해서 달성할 수도 있지만 개인 소유물을 가지고個別的개별적인 방식으로도 전체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자녀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전체목적 달성의하나입니다. 가령 형제와 누이가 있어서 효도한다고 할 때, 형은 자기의 개인 소유물인 서적을 많이 탐독하여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림으로써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렸다고 하고, 동생은 자기의 개인 소유물인 畵具화구를 가지고 훌륭한 그림을 그려서 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에 입상함으로써 부모를 기쁘게 해드렸다고 하고, 누나는 자기의 개인 소유물인 바이올린을 가지고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어서 청중의 絶讚절찬을 받음으로써 부모를 기쁘게 하여 드렸다고 합시다. 이때 형과동생과 누나가 각각 부모를 기쁘게 한 것은 모두가 개인 소유물을 가지고 전체목적을 달성한 좋은 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 소유물은 개체목적 달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전체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욕망과 더불어 사랑과 자유가 주어져 있으며. 이 욕망과 사랑과 자유는 개개인이 자기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면서, 그리고 자기의 개인 소유물을 활용해 가면서 자유의사(욕망)에 따라 타인에게 사랑을 계속해서 베풀도록 하기위해서, 즉 전체목적 달성을 위해서 인간(개성진리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소유는 개체목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전체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개인 소유는 어느 정도까지가 허락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분수에 맞는 정도면 됩니다. 즉

適正所有적정소유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수에 맞는 정도, 적정의 量양과 質질의 정도는 스스로의 양심에 맡기면 됩니다. 본연의 인간에 있어서는 양심이 곧 本心본심이어서 타락한 인간과는 다르게, 자기가필요로 하는 소유물의 분량이나 종류(질)에 대하여 자기의 양심이 곧알아차리게 됩니다. 良心양심이 맑은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마음에 있는 욕망의 정도나 감사의 정도, 또는 滿足만족의 정도(심리상의 분량)를 곧잘 물질량으로 표시하곤 합니다. 예컨대, 남에게 신세를졌을 때, 마음에 느껴지는 감사의 정도(감사량)를 선물의 종류와 분량으로 또는 일정한 금액으로 곧잘 표시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개인 소유도 자기의 분수에 맞는다고 느껴지는心理上심리상의 분량이나 종별을 物質量물질량이나 물질적 종류로써 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心理量심리량을 物質量물질량으로 표시하는것은 자기 이외에 다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에 분수에 맞는 심리량(심리상의 多寡다과의 정도)의 결정은 마치 음식을 먹을 때, 너무 적게 먹으면 체력이 약해지고, 너무 과식하면 체하기 쉽다는 것을 마음이 잘 알고 그 適正적정의 양과 질을 취하는 것처럼, 양심만 맑다면 하나님이 그 양심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분수에맞는 心理量심리량의 결정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밝혀둘 것은 아무리 양심에 의해서 각자의분수에 맞는 개인 소유의 적정한 양과 질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만인에있어서 그 양과 질이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몇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마다 독특한 個別相개별상을 지니고 있어서 성격과 취미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개인은 모두 개성진리체인 동시에 聯體연체이기 때문입니다. 연체란 일정한 격위

(연체격위)에 있으면서 상하, 전후, 좌우로 위함(사랑)의 대상을 상대하고 있는 존재를 말하며, 따라서 그 격위(연체)에는 일정한 최소한도의 양의 개인적인 施惠시혜를 위한 물질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러한 물질의 양과 량은 格位격위가 높을수록 증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분수에 맞는 양이라 하더라도 그 크기는 各樣各色각양각색

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참사랑의 投入투입에 반드시 필요한 개인소유라면 多少 過多다소 과다하더라도 그것은 適正所有적정소유

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공동소유에 관한 설명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공동소유를 터로 한 공동경제에 관한 이론이 바로 共生主義공생주의입니다.

여기서 ‘경제’란 개념은 우선 종래의 그것처럼 ‘제1차 산업, 제2차 산업, 제3차 산업을 터로 하는 財貨재화의 생산, 교환, 분배, 소비 등에 관한 활동의 總和’총화를 뜻하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미래세계의 경제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共同所有공동소유가 그 기반을 이루고 있어서, 그 경제활동의 양상은 과거의 그것과 전연 달라집니다. 한마디로말해서 경제활동의 모든 과정이 물질적인 재화의 유통과정일 뿐 아니라 心情심정과 사랑, 감사와 조화가 함께 흐르는 物心一如물심일여의 통일적 과정인 것입니다. 재화 그 자체도 정성과 사랑이 함께 깃들어 있는物心一如的물심일여적 개체이며, 유통과정 그 자체도 관계자들의 정성과사랑이 함께 흐르는 物心一如的물심일여적 과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특징은, 미래의 세계는 국경이 없는 통일세계이기 때문에 전 세계가 여러 지역적 불록경제가 유기적, 조화적으로통일된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게 되고, 모든 산업은 하나님이 정한 대로의, 지역적 특수성에 알맞은 지역적 特殊産業특수산업과 지역성을 초월

해서 어디서든지 발달될 수 있는 汎域的 普遍産業범역적 보편산업이 조화를이루고, 통일을 이루는 統一産業통일산업이 형성되게 됩니다. 마치 모든개체가 보편상(보편성)과 개별상(특수성)의 통일체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산업은 기업가의 利潤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전체 인류의 福祉增進복지증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산업활동의직접적인 결과는 오직 재화의 增殖증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사회에있어서 경제정책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幾何級數的기하급수적

으로 팽창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는 문제입니다. 일찍이 맬더스(T.

Malthus)도 人口論인구론에서 이 문제를 우려했으며, ‘70년대 이래 로마클럽’도 이 문제에 대해서 경고해 왔습니다. 이 難問題난문제가 養殖法양식법

의 신개발에 의한 수산업의 진흥을 통해서 드디어 해결될 수 있게됩니다. 이것은 바다는 여성의 상징이며 여성은 생산이 그 主使命주사명이라는, 통일원리에서 도출되는 결론이기도 한 것입니다.

(2)공영주의

다음은 共榮主義공영주의에 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은 이상사회의정치적 측면을 다룬 개념으로서 특히 자본주의의 정치이념인 민주주의에 대한 代案대안이라는 측면에서 미래사회의 정치의 특성을 다룬 개념입니다. 周知주지하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사회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서 영국의 淸敎徒革命청교도혁명, 미국의 獨立戰爭독립전쟁, 프랑스의大革命대혁명 등의 결과에 의하여 ‘자유, 평등, 박애’ 라는 구호를 가지고 출현한 정치이념입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서 정치를 한다.’ 는 사상이요, 이념으로서 인민이 주인이 되어서 행하는 정치가 바로 민주주의정치인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 Lincoln)의 ‘人民인민에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라는, 유명한 게티스버그에서의 연설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정치는 본질적으로 인민의 자유와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민주주의정치가 다수결주의와 議會政治의회정치를 주장하는 것도 그 최종목적은 인민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있었던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은 表裏표리의 관계에 있으며, 자유 없이평등이 있을 수 없고, 평등 없이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인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市民革命當時시민혁명당시의 인민은 絶對王朝下절대왕조하에 지배받아 오던 被支配層피지배층

을 뜻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대체로 계급을 초월한 국민대중의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집권층이 가끔 독재에 흐르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인민’은 집권층이나 부유특권층이 아닌 ‘대다수의 국민’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실시된 지 벌써 200년이 지났는데, 과연 인민대중의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었을까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노-(No!)’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 왔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그 構造的구조적 모순에 의해서 富부의 격차, 富부의 偏在편재를 초래하여 대다수의 국민(인민)들에게 경제적인 不平等불평등과 不自由부자유를 안겨 주었습니다. 경제적인 불평등, 경제적인 부자유는 바로 정치적인 不平等불평등, 정치적인不自由부자유로 연결되어 왔음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하였습니다.

특히 대다수의 빈민층의 자유와 인권은 때때로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짓밟히는 예가 가끔 있음을 또한 봅니다. 게다가 ‘주권’은 이름만이 ‘인민의 주권’일 뿐, 실질적으로는 정당인들이 선거라는 이름 하에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取得취득한 ‘이권’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으며, 그 때문에 선거전이란, 요컨대 정치적 利權이권의 쟁탈전이나 다름없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성해야 할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인민의’ 정치가 되지 못하고 정당인을 위한, 정당인에 의한, 정당인의정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러한 缺陷결함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執權層집권층이나 부유층을 위한 부르주아민주주의일 뿐 인민대중의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고발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은 노동자, 농민을 위한 공산주의야말로 참된 인민민주주의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여하간에 참된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실현시켜 줄줄 알았던 민주주의가 2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것이 사실이니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시민혁명이 專制君主制전제군주제를 타도한 뒤에 출현한 당초의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권리, 자유, 평등을 주장하는 개인주의를 내용으로 하고 성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개성과 인격과 가치를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는 존중되어 마땅하지만, 政敎정교의 분리로 인하여 個人精神개인정신의 지도원리로서의 기독교가 그 기능을 제대로 다 할 수 없게 되면서 개인주의는 利己主義이기주의로 흐르게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서 민주주의는 이기주의적 개인주의를 터로하고 성립하는 결과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개인주의가 경제인의 정신을 지배하고, 정치인의정신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이윤의 極大化극대화를

추구했던 것이며, 정치가들은 정권을 利權視이권시하면서 자유선거, 공명선거라는 이름 하에 막대한 선거비용을 마치 利權取得이권취득을 위해 투자하는 기분으로 투입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자본가, 기업가들의 執拗집요

한 이윤 추구와 정치가들의 악착같은 정권욕이 터전이 된 가운데오늘날에는 갖가지의 부정, 부패와 각종 범죄가 氾濫범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민주주의는 그 출발부터 그 표어인 자유, 평등과 박애를 온전히 실현시킬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政敎分離정교분리라는 민주주의 하에서의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이기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성인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면에서 실패한 것은 아니었으며, 한 가지 점에서는 그 기능을 분명히 다 했던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신앙의 자유의 보장입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봄철에 백화가 만발하듯이 각종의 종교신앙의 꽃이 滿開만개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사적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출현의 의의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종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하나님의 섭리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민주주의의 출현은 메시아왕국의 前段階전단계로서 출현한 정치이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絶對君主政體절대군주정체를 타도한 시민혁명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당시의체제가 절대군주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메시아왕국이었다면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인류는 메시아왕국하에서 참된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滿喫만끽하면서 나날의 생활을 즐겼

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만일 절대군주제가 아닌 메시아왕국이었다면’이라는것은 단순한 仮想가상이 아니며,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서 실제로 당시에메시아왕국이 세워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이에 관해서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서양사를 보면 8세기 말엽에서9세기 초엽에 걸쳐서 프랑크왕국을 크게 발전시키고 서로마제국을 부활시킨 君王군왕이 찰스(Charles)大帝대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볼 때, 신약시대의 이 찰스대제는 구약시대의 유대왕국(통일왕국)의 사울왕에 해당하는 君王군왕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800년경에 사무엘 先知者선지자에 의해서 머리에 기름부음을받은 후 사울이 유대왕국의 첫 군왕이 된 것처럼, 찰스대제는 800년에 교황 레오3세(Leo III)에 의해서 戴冠대관을 받고 서로마제국의 皇帝황제

가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원리에서는 이 찰스대제의 治世치세를 구약시대의 유대왕국(통일왕국)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기독교왕국이라고부릅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의 유대왕국에 메시아(초림메시아)가 강림하셔서 세계를 통일한 후 하나님의 참사랑중심의 메시아왕국을 세우도록 하심이하늘의 섭리였던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기독교왕국에 再臨재림메시아가강림하셔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메시아왕국을 세우도록 하심이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유대왕국에있어서 君王군왕들은 3대에 걸치면서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섭리적 조건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대왕국을 남북조로 분립시켰던 것이며, 드디어는 사탄편 왕국인 신바빌로니아왕국에 점령되어서 포로로 잡혀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유대왕국을 통해서 메

시아왕국을 세우려던 하늘의 섭리는 失敗실패로 끝났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의 기독교왕국의 군왕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섭리적 조건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同王國동왕국을 東西王朝동서왕조로 분립시켰다가 십자군전쟁의 受難수난과 敎皇교황의 아비뇽幽囚유수라는 수난까지 당하게 했으며, 드디어는 사탄편의 왕국인 절대군주정체가 형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으로 위로 기독교군왕을 세워서 그를 통하여 메시아를 迎接영접케 하신 후 메시아왕국을 지상에세우시려던 하나님의 섭리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일단 挫折좌절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메시아왕국 실현의 섭리가 抛棄포기된 것은 결코 아니며, 새로운 방식에 의한 메시아영접의 섭리가 개시되었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아래로부터 民意민의에 의해서 메시아를 영접케 하는 섭리입니다. 이 섭리는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행해졌습니다.

民意민의에 의해서 메시아를 영접하게 하는 섭리의 要點요점은, 하나님의 섭리를 가로막는 사탄편 왕국이나 사탄편 君主制군주제를 붕괴시키고민의가 자유로이 표출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으며, 그러기 위해서 개인의 의사가 존중시되는 민주주의사상을 보편화시켰던것입니다. 즉 구약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백성을 捕虜포로로 잡아간 신바빌론왕국을 하나님은 아벨편 異邦民族이방민족인 페르샤를 세워서 타도하게 하신 후 이스라엘백성을 본국으로 歸還귀환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말라기先知선지 이후 메시아강림 준비기에 접어들게 하셨으며, 그 일환으로 이스라엘민족의 王位왕위를 空位공위로 남겨 두게 하신 이후 기원전4세기 말엽부터는 헬레니즘문화권에 所屬소속되게 하셨습니다.

헬레니즘문화권은 개인의 個性개성을 존중시하는 민주주의사상을 기

반으로 한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백성은 이 문화권내에서 개개인의 의사를 자유로이 표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민의에 의한 메시아영접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원리는 이러한 사회를 ‘민주주의형의 사회’(원리강론, 419,)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類似유사한 섭리를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행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를 가로막는 사탄편 세력을 붕괴시키는 섭리를 단행하셨던것이니, 먼저 16세기 초에 말틴 루터를 세워서 사탄에 의해서 세속화된 기독교(구교)를 개혁하는 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키는 한편, 16세기말에서 18세기 후반에 걸쳐서 인간의 理性이성을 존중하며 구시대의 권위와 특권 및 사회적 不自由부자유와 不平等불평등을 반대하는 啓蒙主義運動계몽주의운동

을 전 유럽에 걸쳐서 전개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을터전으로 하여 드디어 ‘자유 평등 박애’를 모토로 하는 시민혁명을 일으키게 하여(프랑스의 경우) 사탄편 군주제인 絶對君主政體절대군주정체를붕괴시키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근대민주주의가 성립되게 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민의에 의해서메시아(재림메시아)를 영접하기 위하여 세운 정치이념일 뿐, 참다운 자유 평등 박애를 실현하기 위한 이념은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시대의 종교가 인간의 개성과 자유와 권리를 무시하는 등너무도 過失과실이 많았기 때문에 민주주의정치는 출발과 함께 政敎分離정교분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주의는 인간의 정신이 따라야 할 가치관의 절대기준(신)이 상실되게 되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이기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락됨으로써 오늘과 같은대혼란을 惹起야기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민주주의의 출현의 의의는 民意민의로 하여금 자유의사에 의해서 재림메시

아를 영접하게 하는 데에 있었던 것일 뿐, 자유나 평등이나 인권이나박애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다만 신앙의 자유만은 민주주의가 보장하도록 하였던 것이며, 그점에서 민주주의는 책임을 다 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참 진리와 참사랑에 의해서만 근본적으로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참 진리와 참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재림메시아 중심의 왕국이 세워졌을 때에 비로소 그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것입니다. 이상으로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에서 본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의 限界性한계성과, 그리고 民意민의에 의해서 자유로이 재림메시아를영접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그 책임을 다 했다는 점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共榮主義공영주의의 참 내용을 설명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공영주의는 共同政治공동정치에 관한 이론입니다. 공동정치란 萬人만인이 다 함께 참가하는 정치를 말합니다. 이 ‘萬人共同參加만인공동참가

의 정치’야 말로 참된 의미의 민주주의 이념에 符合부합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만인의 공동참가란 물론 代議員選出대의원선출을 통한 정치참가를 뜻합니다. 여기서 ‘대의원선출에 의한 정치에의 참가’가 공영주의의 공동정치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와 다를 바 없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겠지만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다음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겠습니다.

共榮主義공영주의의 공동정치에 있어서 첫째로, 대의원선거에 있어서의입후보자의 상호관계는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사랑을 터로 하고 하나님을 대신한 메시아를 인류의 참부모로 모시고 사는 가족적 형제자매의 관계입니다. 둘째로, 대의원선거에의 입후보자들은 自

意자의에 의한 출마가 아니라 여러 이웃(형제)들(타의)의 薦擧천거에 의한출마입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형제자매의 관계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은 서로 양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선거는 막대한 비용과 부작용이 동반되는 투표방식이 아니라, 初段階초단계의 간략한 투표방식의 터 위에 행해지는, 엄숙한 祈禱기도

와 儀式의식이 수반되는 抽籤方式추첨방식에 의해서 치러집니다. 이 때당첨된 후보자나 당첨되지 않은 후보자나 모두 그 當落당락이 神意신의에의한 것으로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전체국민들도 그 神意신의에 감사하면서 그 결과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와 같이 공영주의에 있어서의 공동정치는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메시아왕국의 정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공동참가의정치’이며, 하나님대신 되시는 메시아를 부모로 모시고 만인은 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 서서 공동정치에 참가하기때문에 그 공동정치는 ‘人民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치’가아니라 ‘인류의 참부모를 중심하고 형제를 위한, 형제에 의한, 형제의정치’로서 그 정치는 엄격히 말해서 민주주의정치가 아니라 天父主義천부주의

를 중심한 兄弟主義政治형제주의정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이루려다가 오늘날까지도 이루지 못하고 남겨져있는 진정한 자유, 평등, 인권 존중, 박애 등은 이 천부주의 중심의 형제주의정치에서 비로소 완전히 실현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영주의의 共同政治공동정치를 형제주의적 민주주의정치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 ‘형제주의’ 그 자체는상식적인 의미의 同胞主義동포주의이긴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국경 속에갇혀 있는 지역적 국가 내의 국민이 서로 형제의 관계를 맺는 것과 같

은 同胞主義동포주의가 아니라 전세계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뒤에 전인류가 한 중심을 부모로 모시고 그 부모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자매의관계를 맺는 방식의 동포주의인 것으로서 참된 의미의 四海同胞主義4해동포주의

입니다.

오늘날까지 4해동포주의의 이념은 있었으나 실현을 보지 못한 것은첫째로, 세계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둘째로 인류의 참부모가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까지 민주주의이념이 100% 실현되지 못한 것은 上述상술

한 바와 같이 몇 가지 理由外이유외에 민주주의이념 자체가 초민족적,초국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민족적, 국가적 特殊性특수성

의 제약을 받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는 메시아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메시아왕국에 대해서 몇 차례 언급했습니다만, 그 왕국 또한 지역적인 국가가 결코 아닙니다.

메시아의 강림은 一地域的일지역적 국가인 選民國家선민국가에서 이루어지지만 메시아왕국의 형성은 세계통일이 이루어진 뒤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생 공영 공의주의는 세계통일 이전에라도 지도층이 노력만 한다면 하나님을 참부모로 모시고 어느 정도는 실시될 수 있다고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이 혼란은 一旦 상당정도 수습될수 있는 것입니다. 남한의 現資本主義현자본주의 다음에 반드시 공생 공영공의주의 사회가 올 수 밖에 없다고 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끝으로 공영주의에 있어서 공동정치와 三權分立3권분립의 관계에 관하여 잠깐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정치가 입헌정치요,立憲政治입헌정치는 입법, 사법, 행정의 三權分立3권분립을 骨幹골간으로 하

는 정치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영주의의 공동정치 역시 대의원이 政務정무에 참여하는 정치이기 때문에 삼권분립을 인정함은 두말 할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영주의 경우의 삼권분립은 몽테스키외(C. Montesquieu)의주장처럼 권력의 濫用남용을 막기 위해서 권력을 三分3분시킨다는 의미의 삼권분립이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 업무의 원만한 조화를 위해서‘三府3부의 업무분담’이라는 의미의 三權分立3권분립인 것입니다. 그리고권력의 개념도 종래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종래의 권력의 개념은, 백성을 강제로 복종케 하는 물리적인 힘을 뜻하지만, 공영주의에 있어서의 권력은 참사랑의 권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대상으로 하여금 주체의참사랑에 마음으로부터 고마움을 느끼고 그 주체의 의사에 자진해서복종케 하는 정적인 힘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신체의 여러 기관이 인체를 살린다는 공동목적 하에 여러 종류의 생리적 기능을 각각 분담해 가지고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듯이 三府3부도 국가존립의 3대 기능(입법기능, 사법기능, 행정기능)을각각 분담해서 공동이념 하에 유기적이고도 조화로운 협조체제를 이루는 데에 삼권분립의 참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원리에는 이와 같은 협조관계에 있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각각 인체의 肺臟폐장

과 心臟심장과 胃腸위장에 비유하고 있으며, 각 장기에 분포된 末梢神經말초신경이 두뇌의 명령을 이어받아서 이것을 각 장기에 전달하여서 추호의 차질도 없이 긴밀한 협조를 하게하여 인체의 생리작용을 원활하게 하듯이, 이상사회에 있어서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도 참사랑의주체이신 하나님의 뜻을 일정한 전달기관을 통하여 전달받아 가지고원활한 협조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특히 밝혀두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에 있어서 지상천국의 理想像이상상은 인체를 본따서 구상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상세계의국가의 구조는 인체구조를 닮고 있습니다. 위에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폐장, 심장, 위장에 각각 비유된다고 하였는데, 사실은 폐장,심장, 위장을 模倣모방해서 그 三機關3기관을 세우신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국가가 본연의 모습을 잃고 非原理的비원리적인 국가가 되기는 하였으나 이상국가의 구조의 골격은 그대로 닮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인체의 이들 장기(폐장, 심장, 위장)와 그 기능은 永遠不變영원불변인 것처럼 입법, 사법, 행정의 三府3부와 그 기능도 원리의 세계에서는 영원불변입니다.

그리고 이상세계의 입법, 사법, 행정의 내용은 비원리적인 現行현행의그것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컨대 비원리적인 권력이 물리적인 강제력인데 대해서 원리적인 권력은 참사랑의 정적인 힘이라는점에서 兩者양자가 서로 다른 것과 같습니다(단, 여기서는 원리적인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기능에 대해서는 약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공영주의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共義主義공의주의

에 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3) 공의주의

共義主義공의주의는 공동윤리의 사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도덕, 윤리를 遵守준수하고 실천함으로써 건전한道義社會도의사회, 즉 공동윤리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사회나 전 및 현 공산주의사회(소련, 동구 등의 전 공산주

의사회와 중국, 북한 등 현 공산주의사회)나를 막론하고 인민대중의정신이 지녀야 할 價値觀가치관 즉 도덕관념이나 윤리관념이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갖가지 不正腐敗부정부패의 현상과 사회적범죄가 氾濫범람하고 있으며, 세계는 지금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오늘의 이 가치관의 붕괴를 바라보고 慨嘆개탄은 하면서도 그收拾수습의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공의주의는 바로 이 같은 가치관의 붕괴를 근본적으로 收拾수습하여서인간은 누구나,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도덕과 윤리를 지킴으로써 지상에 건전한 道義社會도의사회를 이루어 놓고자 하는 주장인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자본주의사회와 공산주의사회의 다음 단계로서 到來도래하게 되어 있는 이상사회는, 상술한 바의 공생 공영의 사회인 동시에 萬人만인이 지위의 高下고하를 막론하고 공동으로 동일한 윤리관을지니고 사는 공동윤리의 사회로서 이러한 공동윤리사회의 실현에 관한이론이 바로 共義主義공의주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의주의는 미래사회 즉 공생 공영 공의주의사회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공의주의사회의 구체적인 내용은 三大主體思想3대주체사상이 실시되는 사회인 것입니다(후술). 미래의 이상사회에는 종교가 필요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목적이 이미 달성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의 목적은 재림메시아를 迎接영접할 때까지 신앙을堅持견지하라는 가르침이며, 유교의 목적은 최종적으로 지상에 大同世界대동세계

를 이룰 때까지, 유교의 덕목을 실천하자는데 있으며, 불교의 목적은 이상세계인 연화장세계가 지상에 출현할 때까지 佛道불도를 닦으면서 불법을 지키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재림메시아를 영접하면 그것으로써 기독교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요, 지상에 대동세계

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써 유교의 목적도 달성되는 것이며, 지상에 연화장세계가 출현되면 그로써 불교의 목적도 달성되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의 목적이 달성된 그 세계가 바로 공생 공영 공의주의사회인 것으로, 바로 재림메시아를 중심한 사회입니다. 따라서 재림메시아의 가르침이 바로 기독교의 중심진리가 담겨진 가르침이요,유교의 眞髓진수가 함축된 가르침이요, 불교의 핵심이 담겨진 가르침임이 밝혀져서 구태여 一敎派일교파의 간판을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동시에 공생 공영 공의주의사회는 이때까지의 종교에서처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가르침의 사회가 아니라, 메시아와 더불어 현실 속에서참사랑의 생활 즉 천국생활을 營爲영위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그 사회는만인이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신앙 위주의 종교교리는 실천 위주의 생활윤리로 화하게 됩니다. 미래사회의그러한 측면을 가리켜서 공동윤리의 사회, 즉 공의주의사회라고 부릅니다.

다음에 이 공동윤리사회의 특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사회생활은 三大主體思想3대주체사상에 의한 3대주체의 참사랑운동에 의해서뒷받침되게 됩니다. 3대주체사상에 의해서 3개의 중심 즉 가정의 중심인 부모와, 학교의 중심인 스승과, 주관의 중심인 관리책임자(사장, 단체장, 국가원수 등)의 삼대주체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각자의 대상인자녀, 학생, 종업원(및 국민)에 대해서 끊임없이 또 無限무한히 베풀어줌으로써 2차적으로 그 대상들(자녀, 학생, 종업원, 국민)의 상호간의사랑을 誘發유발시켜 전사회가 사랑의 동산, 윤리의 사회로 화하게 됩니다.

이 때 모든 格差격차는 이 참사랑에 의해서 사라지게 됩니다. 貧困빈곤

은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의 참사랑에 의해서 곧 사라지는 것이요, 疎外소외된 자는 관리 책임자의 참사랑에 의해서 곧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요, 지식의 枯渴고갈을 느끼는 자는 有識者유식자의 참사랑에 의해서 곧그 고갈이 충족하게 됩니다. 이것이 全社會전사회가 사랑의 동산, 윤리의사회로 화한다는 말의 내용인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싶어서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스승의 참사랑을 중심한 학교와 관리책임자의 참사랑을 중심한직장이나 국가는 모두 가정윤리의 擴大型확대형으로서의 倫理體系윤리체계가 되는 것입니다. 즉 스승을 중심한 학교는 부모의 참사랑을 중심한가정이 교육의 側面측면에서 확대된 확대가정이며, 관리책임자의 참사랑을 중심한 직장이나 국가는 가정이 관리나 治理치리의 측면에서 확대된확대가정인 것입니다. 이리하여 사회 전체가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공영주의의 실체이며 眞面目진면목입니다. 따라서공생 공영 공의주의는 바로 3대주체사상을 터로 하는 사회체제인 것입니다.

둘째로 이러한 공생 공영 공의주의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삼대주체의 사랑이 施行시행되는장소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물론 부모가 중심(주체)이 되고는 있지만, 사실은 가정에는 四大格位4대격위가 있습니다. 祖父母조부모, 부모(부부), 형제자매, 子女자녀의 위치가 그것입니다. 이 네 格位격위사이에 하나님의 참사랑이 授受수수되는 것입니다. 즉조부모의 사랑, 부모(부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그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授受수수되는 사이에 자동적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家法가법이 세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동적인 질서와 가법을 터

로 하고 참사랑이 차 넘치는 가정이 바로 이상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에 비로소 영원한 평화와 환희와 福樂복락이 깃들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을 터로 한 정치, 경제, 사회가 바로 공생 공영 공의주의사회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의 인간의 念願염원이 드디어이루어지게 되고 6000년간 하나님이 그렇게도 소망하셨던 창조이상의세계가 실현되게 됩니다. 수많은 思想家사상가와 宗敎家종교가들이 꿈꾸었던 이상이 비로소 실현되게 됩니다.

맺는말이상으로 공생․공영․공의주의에 대해서 그 단순개념인 공생주의, 공영주의, 공의주의의 하나하나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칩니다. 그런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생주의, 공영주의, 공의주의의 三者3자는 각각따로 떨어질 수 없는 渾然一體혼연일체를 이룬 가운데에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상하셨던 창조이상의 세계를 실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명칭으로 공생 공영 공의주의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공의주의는 理想家庭이상가정의 이념을 터로 하는 3대주체사상이 그 내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공생 공영 공의주의에 대한 말씀을 전부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부록 II

3대 주체사상

이 글도 本書본서의 저자가 1991년, 문선명 선생님이 회장으로

있는 모 신문사 논설위원들에게 행한 강의 내용이다.<편집자 주>

三大主體思想3대주체사상은 문 회장님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서 여기의 三大主體3대주체는 부모와 스승과 主人주인을 말합니다. 바꾸어말하면 三大中心3대중심을 말합니다. 부모는 가정의 중심입니다. 스승은학교의 중심이요, 주인은 主管주관의 중심입니다. 여기서 주관의 중심이란 단체, 기업체, 회사, 국가 등의 중심을 말하는 것으로서, 管理관리,治理치리의 책임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단체장(예:組合長조합장, 政黨 黨首정당당수, 聯合會長연합회장 등),기업체나 회사의 사장, 도의 도지사, 국가의 대통령 등이 모두 총괄적으로 ‘主人’주인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그리하여 부모, 스승, 주인의 세중심을 三大主體3대주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체에 관한 이론이 3대주체사상이며 이 3대주체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이론인것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절대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絶對者절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사랑입니다. 여기서 말한 절대란 世俗的세속적 의미의 절대와는 다릅니다. 여기의 절대는 永遠不變性영원불변성과 無限性무한성, 普遍性보편성을 말합니다. 우리가보통 하나님을 영원한 존재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을 無所不在무소부재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계시며 또 어디에도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도 영원하며 또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러한내용을 지닌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비유하면 太陽光線태양광선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태양광선은 지구상의어디든지 안 비치는 곳이 없으며, 항상 쉬지 않고 계속해서 영원히 비추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참사랑이란 包括的포괄적으로 전인류뿐만 아니라 전체 만물에 대해서까지도 베풀어지는 사랑인 것입니다.

被造物피조물 전체가 참사랑의 대상입니다. 참사랑에서 빠지는 대상이라고는 이 우주에는 없습니다.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인간끼리 주고받는 사랑을 말하는데 문 회장님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참사랑이란 인간끼리는 물론이고 원수까지도, 더 나아가서 만물까지도 사랑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인간은 上下상하, 前後전후, 左右좌우로 여러 계층의 사람을 대하지요.

上상으로는 상관, 부모, 어른을, 下하로는 자식, 부하, 年下者연하자를, 앞으로는 스승, 선배, 지도자를, 뒤로는 제자, 후배, 추종자를, 右우로는형제자매, 친우, 동료를, 左좌로는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자 혹은 자기를 반대하는 자까지도 대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階層계층의사람들을 빠짐없이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만물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에 옮기자는 것이 3대주체사상입니다.

여기서 사랑에 대한 定義정의를 내려 보겠습니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인간이나 만물에게 온정을 베풀어서 그 대상을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대상을 위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아닙니다. 世俗的세속적인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남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지요.

문 회장님이 가르치는 사랑은 ‘사랑에 있어서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않고 오로지 남을 위해 주는 것’ 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란 온정을다른 사람에게 한없이 베푸는 것인데, 어떤 방식으로 베푸느냐? 거기에는 ‘부드러운 말을 건넨다,’든지, ‘상대방을 이해해준다,’든지, ‘물질,금전 등을 준다,’든지 혹은 ‘협조한다,’ ‘봉사한다,’ ‘도와준다,’ 혹은 ‘어려운 상황에서 구해 준다,’ ‘포용한다,’ ‘원수를 용서한다,’ ‘친절히 가르친다,’는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온정을 베풀어서남을 위해 주자는 것입니다. 위해 주고 또 위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신을 利他主義이타주의 혹은 爲他主義위타주의라고 말합니다.

(2) 3대주체의 참사랑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참사랑이란 위해 주고 또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위해 주되 한없이 주고 또 주는 것입니다. 마치 온천의 샘물이 한없이 솟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없이 또 끊임없이 남에게 온정의 샘물을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3대주체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라는 사상이 三大主體思想3대주체사상인 것입니다. 즉 부모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자녀에 대해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또 스승이 이러한 하나님의 참사랑을 제자에 대해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또 주인이, 즉 대통

령이라든가 도지사, 기업체장, 회사사장, 단체장과 같은 주인의 입장에있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소속된 부하나 구성원들에 대해서 하나님의참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실천하느냐? 주체의 역할을 통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역할은 자식을 養育양육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養’양

은 자식을 기르는 것입니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거처를마련해 주는 것이 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을 통해서 사랑을베푸는 것입니다. 잘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거처를 편안케 해 주면서부모의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먹이되 온정을 가지고 먹여 주고입히되 온정을 가지고 입혀주고 재워 주되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재워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 ‘育’육은 교육하는 것입니다.

家法가법을 세워서 禮儀凡節예의범절과 윤리, 도덕을 친절하게 가르치는것입니다. 물론 지식도 가르칩니다. 여기에도 부모의 따뜻한 온정이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부모가 자식의 양육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 자란 뒤에 부모가그 자식으로부터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을 기르고 공부시켜서 나중에 그 자식을 통해서 돈을 벌고 권세를 얻겠다는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선하고 훌륭한 사람, 인격을 갖춘 지식인, 봉사할 줄 아는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 마음만 가지고 온정에 넘치는 養育양육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양육을 통한 사랑이 부모의 참사랑입니다.

그 다음은 스승의 사랑입니다. 스승의 역할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知識敎育지식교육, 技術敎育기술교육, 體育체육, 藝育예육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친절하게 정성껏 제자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질

문이 있으면 성의를 가지고 답변해 주고 제자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가능한 한 그 해결도 도와주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보았는데 요즈음 선생님들 중에 오로지 收入수입만을 위해서 가르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을 賣買매매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바른 교육이 절대로 안 됩니다. 거기에 사랑이 깃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것은 제2차의 문제로 해야 합니다. 학생을 정성껏 가르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그 학생이 성장한 후 사회에봉사할 줄 아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스승 자신이 먼저 인격적 자세, 봉사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하고 온정을 베풀어 가면서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스승의 참사랑입니다. 즉 스승의 사랑이란이러한 역할을 통해서 실현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인의 역할을 통한 주인의 사랑입니다. 주인의 役割역할이란 무엇입니까? 대통령의 역할은 백성을 잘 다스려서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도지사의 역할은 道民도민을 위한 것이고 기업체장의 역할은 종업원이나 여러 직원들을 잘 위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업체의 경우를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기업체장은 部下부하나 종업원들에게 일만 시키고 돈만 많이 벌어서 蓄財축재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기업체이기 때문에 먼저 돈을 벌어야 하겠지만 번 다음에는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기 위해서 번다는 정신이 기업정신이어야 합니다. 기업체의 주인은 爲他主義위타주의의 봉사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각급 직원과 종업원들을 위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며 衣食住의식주의 문제로 곤란을 당하고

있지 않나하고 온정을 가지고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사랑의 주관입니다. 주관에는 부하에게 명령하는 주관도 있습니다. 명령그 자체는 차가운 것이지만 따뜻한 온정의 마음을 가지고 명령한다면명령 그 자체는 비록 차갑다 하더라도 명령을 받은 부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따뜻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主管주관에는 건물이나 시설의 관리도 포함됩니다. 성경에는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三大祝福3대축복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 중의第三祝福제3축복은 사랑으로 만물을 주관하라는 명령입니다. 1차산업, 2차산업, 3차산업 등과 물질을 다루는 활동은 모두 만물주관의 개념에포함됩니다. 주관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물이나 시설도 내 것이기 전에 公的공적인 것, 하나님의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이나 시설을 정성껏 관리하고 維持유지, 保存보존하는 정신도 또한 ‘사랑으로 만물을 주관하는’ 주관정신, 관리정신입니다. 요즈음에 와서 심각하게 거론되는 公害問題공해문제는 모두 이 같은 본연의주관정신, 관리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만물에 대한 사랑의정신 즉 주관정신, 관리정신도 또한 주인의 참사랑입니다. 이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3대주체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해야 한다는 이론이 3대주체사상인 것입니다.

(3) 한 중심의 3주체성과 3대주체사상

다음은 하나의 중심의 三主體性3주체성과 三大主體思想3대주체사상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여기의 3주체성이란 하나의 중심이 부모, 스승, 주

인이라는 三主體3주체의 역할과 사랑을 동시에 시행하는 일을 말합니다.

부모와 스승과 주인은 각각 다릅니다. 그런데 부모는 동시에 스승이고, 주인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3주체의 역할과 사랑을 부모단독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주로 하면서도 스승의 역할, 주인의 역할도 다 하면서 대상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3주체성을 부모도실천하는 것이고, 스승도 주인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학교의 스승은스승의 일을 주로 하면서 부모로서 학생을 자녀처럼 길러 줄 줄 알아야 하고 또 主人주인으로서 부하를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주인은 주관하고 관리하는 일, 다스리는 일을 주로 하면서도부모로서의 역할도 또 스승의 역할도 다하면서 부하나 종업원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관리자(주인)는 관리의 일 외에 자식을양육하는 마음으로 종업원을 먹이고 입히고 住居주거를 제공하는 문제에 항상 관심을 보이면서 온정을 베푸는 것입니다.

또 스승의 입장에서 부하나 종업원을 規範규범이나 知識지식에 관해서가르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한 주체, 즉 한 중심이 3주체성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이 문 회장님의 3대주체사상입니다. 부모의三主體性3주체성, 스승의 3주체성, 주인의 3주체성의 실천에 관한 사상이 3대주체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 스승, 주인의사랑은 각각 자녀, 학생, 부하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에 ‘내리 사랑’(下向愛하향애)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주체가 세 가지 역할을 통해서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상이 3대주체사상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기중심의 어떤 이익을 얻자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한없이 주고자하는 것이 참사랑인데, 여기의 특기할 것은

그 참사랑은 ‘완전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고또 주되 주고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에 관한 문 회장님의 가르침의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아무리 많이 사랑하더라도 그것을잊어버리고 내가 사랑해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잊어버려야만 내 마음이 비워지고 謙虛겸허해 집니다. 내가 저 사람을 많이사랑했는데 왜 반응이 없느냐? 괘씸하다 하는 마음을 먹으면 내가 교만해진다는 말입니다. 한번 驕慢교만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참사랑을 주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베풀고는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솟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이 그 빈 마음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언제나 새로운 기분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문 회장님의 사랑의 思想사상입니다. 부모도 스승도 주인도 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참사랑입니다.

(4) 사랑의 확산

다음은 사랑의 擴散확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모가 그런 참사랑을 자식에게 베푼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식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랑은 誘發效果유발효과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식은 부모의 사랑에 감명받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게 됩니다. 부모가정성껏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에게 정성껏 효도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리 사랑’(上向愛상향애)입니다.

또 부모의 참사랑을 받게 되면 부모에 대한 孝心효심은 물론이고 자식들 상호간, 즉 형제자매끼리도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橫的횡

사랑(가로사랑, 水平愛수평애)입니다. 뿐만 아니라 子息자식과 子婦자부,즉 부부끼리도 참사랑(부부애)을 주고받게 됩니다. 이것도 ‘횡적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상향애(올리사랑), 수평애(가로사랑) 등이 유발되어서 가정이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에서는 부모의 사랑(내리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스승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참사랑(내리 사랑)을 받는 제자는 자동적으로 자기의 스승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 선생님은 위대하고 휼륭하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선생 앞에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知的渴求지적갈구가 채워지고가르침의 정성에 감화되어서 자연히 머리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선생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또한‘올리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저희들끼리 서로 사랑하게됩니다. 스승의 참사랑에 감명받아서 저희끼리 사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횡적사랑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誘發效果유발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또한 스승의 사랑(내리 사랑)입니다.

지난번 모 대학에서 학생이 스승을 두들겨 팼습니다. 그 때 신문마다 학생을 非難비난했습니다. 이것은 틀린 비난은 아니지만 문제의 接近方式접근방식을 모르는 꾸짖음인 것입니다. 학생의 잘못은 제2차 문제입니다. 1차적인 책임은 스승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스승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스승들이 평소에 三主體性3주체성

을 실천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맞은 선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스승들이 평소에 삼주체성을 실천하면서 師道사도를 다 하였다면 학생들이 선생을 때릴 리가 있겠습니까? 이번의 학생의 폭행은 ‘선생이 왜 우리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았습니까?’라는 불평의 표현형태

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 학생의 부모가 자식에게 부모로서의 내리사랑을 평소에 베풀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와 같은 스승을 존경할 생각이 날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학생 폭행과 같은 문제에의 접근은 이 三大主體思想3대주체사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결의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3대주체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주인이 부하에게 주는사랑, 즉 ‘내리 사랑’(하향애)인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이 내리사랑이먼저입니다. 이 내리사랑에 유발되어서 2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上向愛, 水平愛상향애, 수평애 등입니다.

사랑은 유발효과, 상호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上向愛상향애가 먼저행해지더라도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나중에 上位者상위자의 下向愛하향애가 유발되는 수가 있음은 물론입니다. 자식이 먼저 부모에 효도하고제자가 스승을 먼저 존경하고, 부하가 주인(상관)을 먼저 사랑함으로써각각 父母愛부모애, 스승애, 主人愛주인애가 2차적으로 유발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내리사랑’이 먼저인 것입니다. 그 다음이 ‘올리사랑’, ‘橫的횡적 사랑’(水平수평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내리 사랑이 먼저일 경우에는 上向愛상향애, 水平愛수평애는 100% 유발되지만 上向愛상향애

가 먼저일 경우에는 下向愛하향애가 100% 유발된다는 보장이 없으며,水平愛수평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참사랑의 출발은 내리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는 모든 것이 먼저 내려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컨대, 한 기업체의 장이 그 부하들, 종업원들을 정말로사랑한다면 종업원들은 받기만 하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 것입니다. 반

드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즉 기업주(사장)가 많이 번만큼 온정을 가지고 많이 주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 부하들은 그 사장을 높이 우러러보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한 기업주가 만일 어려움을 당하면 종업원들은 ‘우리의 봉급을 올려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비용으로 공장을더 발전시키십시오.’라고 하기에까지도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기업주가 참사랑을 베풀면 종업원들도 서로가 사랑하게 되고 직원이나 종업원 상호간에도 사랑이 오가게 됩니다(횡적사랑). 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은 공장의 시설, 또는 器物기물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주체의 사랑(내리 사랑)이 언제나 선차적인 것입니다. 부모의사랑, 스승의 사랑, 주인의 사랑이 先次的선차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참사랑이 가정에 확산되고, 학교에 확산되고, 기업체에확산되면 결국은 이러한 사랑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드디어는 전세계적으로까지 확산되게 되어서 결국 이 地球星지구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비로소 지상의 모든 범죄는 자취도 없이사라지게 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참된 평화, 영원한 평화가 실현되게 됩니다. 이런 운동을 지금 문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전개하고 계십니다.

(5) 3대주체의 근원은 하나님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三大主體’3대주체의 근원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주체의 뿌리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체 중에서 가장 대표되는 주체가 이 3대주체입니다. 따라서 3대주체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즉 먼저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만 하나님은 陽 陰양음의 원리를 다 갖고 계시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은 인간을 아들딸로서 지으신 것입니다. 타락때문에 罪人이 되었지만, 본래 인간은 결코 죄인이 아니며 하나님이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인 동시에 참사랑의 본체입니다.

또 하나님은 로고스로써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의 기록대로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진리로써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로고스는 眞理진리요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진리의 주체입니다. 진리의 주체란 무엇입니까? 스승입니다. 하나님 自身자신이 스승인것입니다.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또 진리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또 主人주인이십니다.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동시에 주관의 주인입니다. 따라서 창조주는 동시에 주인이십니다. 가장 근원되는 부모, 스승, 주인을 우리나라의 古來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君師父’군사부입니다. 君군은 나라의 주인입니다. 師사는 스승이고 父부는 부모입니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 이러한 君師父思想군사부사상을 가졌는데 그 군사부의 뿌리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체가부모요 주인이요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君師父’군사부는 글자의 순위가 다를 뿐, 바로 三大主體3대주체와 같은 뜻의 용어입니다.

애국가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의 ‘하느님’은 바로 ‘하나님’과 동일한 뜻의 창조주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으로 우리나라를 보우하셨겠습니까? 부모의 참사랑, 스승의 참사랑, 주인의 참 사랑으로써 보우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父),스승(師), 주인(君) 즉 君師父군사부의 뿌리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3대

주체의 사랑은 天道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대주체사상은 절대적인것이며, 따라서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천도를 어긴 자, 이 사상을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가 도리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오늘날 사회가 이토록 혼란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三主體3주체의 사랑 즉 천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연법칙을 거역하면 육신적으로 피해를 보기 때문에 자연법칙을 지키면서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은 천도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뿌리를 둔 天道천도이기 때문에 안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지켜야만 평화가 오고 안 지키면 혼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래의 종교가 사랑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불교는 慈悲자비를행하라고 가르쳤고, 유교는 仁인을 행하라고 가르쳤으며, 기독교는 사랑을 행하라고 가르쳤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가 오늘날까지 밝혀지지않았습니다.

그것은 자비나, 인이나, 사랑의 뿌리가 하나님의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이면서 동시에 삼대주체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관계를 규정한 유교의 三綱五倫삼강오륜도 삼대주체사상속에 다 포함됩니다. 불교의 修道수도에 관한 덕목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의 德目덕목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에 관한 성현들의 주장이나 가르침은 예외없이 모두 삼대주체의 사랑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포함됩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종래의 가치관이 쇠퇴하게 된 것은 慈悲자비나 仁인이나, 사랑의 뿌리가 하나님의 참사랑인 줄을 몰랐기 때문이며 그것이3주체의 사랑의 형태로 구현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을바꾸어 말하면 종래의 모든 종교의 덕목의 뿌리가 하나님의 참사랑,

따라서 삼대주체의 사랑임이 밝혀질 때 종래의 모든 덕목이 活性化활성화

되게 됩니다. 종래의 덕목들이 현대의 인간들의 마음을 지도해 줄 수있는 능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6) 공생․공영․공의주의 및 이상가정의 이념과의 관계

다음은 三大主體思想삼대주체사상과 공생․공영․공의주의와의 관계 및 삼대주체사상과 이상가정의 理念이념과의 관계에 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공생․공영․공의주의는 미래사회(이상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체제의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공의주의(공동윤리)에 의해서 운영되는 경제체제요, 정치체제라는 점이 미래사회체제의 特性특성이 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공의주의의 실질적인 내용은 삼대주체사상의 實踐실천인 것이며삼대주체사상의 가장 핵심부분은 理想家庭이상가정의 이념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을 요약하면 미래사회는 이상가정의 이념을 터로 하고 삼대주체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共義主義공의주의에 의해서 운영되는 경제및 정치체제의 사회인 것입니다.

(7) 새 가치관의 정립

마지막으로 이러한 삼대주체사상을 터로 하고서 새 가치가 세워진다는 점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삼대주체의 참사랑의 행위와 이 사랑에 의해서 유발되는 모든 대상들의 사랑의 행위, 즉 ‘내리 사랑’의 행위와 ‘올리 사랑’의 행위 및 ‘가로사랑’의 행위 등을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참 善선이 되는 것이요, 知的지적,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그 행동은 참 眞진이 되는 것이요, 예술적 관점에서 볼 때 그 행동은참 美미가 되는 것입니다. 행위에 관한 한, 진 선 미란 따로 있는 것이아닙니다. 참사랑의 행위를 평가하는 각도에 따라서 진도, 선도, 미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 회장님의 입장입니다. 종래의 모든 가치관의 뿌리가 바로 문 회장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문회장님의 삼대주체사상에 의한 가치관이 바로 ‘새 價値觀’가치관인 것입니다. 종래의 모든 덕목에 이 새 가치관 즉 삼대주체사상을 代入대입하면 그 뿌리가 소생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삼대주체사상에 관한 설명을전부 마칩니다.*

부록 III

4대심정권과 3대왕권의 의의

이 글은 1993년 1월 17일(日)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본부교회

새벽 집회에서 本書본서의 저자가 행한 설교의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편집자 주>

四大 心情圈4대심정권과 三大 王權3대왕권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난해 8월 25일에 있었던 3만쌍의 국제합동결혼식전에서 성혼문답이 있었는데, 4가지 성혼문답중의 마지막 문답에서 ‘4대심정권과 3대 왕권을 확립하여 理想家庭이상가정을 실현할 것을 약속하느뇨? 라는 물음에 대하여, 3만쌍 전원 ‘ 하고 대답하 습니다. 이것

’ 은 예’ 였

은 이상가정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 조건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의 한 은

확립 을 하는 것입니다.

임 뜻

이상가정 이상사회 실현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는 단위입니다.

은 되

따라서 이상가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에 대 한

정확 이해가 요하 니다. 이것 3만쌍 아니라

한 필 게 됩 의 은 뿐 그 외 축

복가정 전체에 해 니다. 리하여 이 에는 4대 심정권과 3대

당됩 그 시간

왕권에 대하여 아 서 동 여 기회에 말씀하신 바

버님께 그 안 러 를 근거로

하여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바 하 고 합니다. 를 4대 심정권

설명 려 먼저

에 대해서 하겠습니다.설명

1. 4대 심정권

(1) 심정의 개념

‘4대 심정권’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심정의 뜻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심정이란 사랑을 통해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情的정적인 충동을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정적인 욕망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정적인 충동 때문에, 즉 대상을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그 대상으로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다시 인간의 기쁨의 대상으로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2) 심정권

여기서 심정권이란 심정의 대상의 범위를 말합니다. 圈권은 범위를뜻하지요. 예컨대 문화권하면 한 문화의 범위를 말하는 것이요, 세력권하면 세력이 미치는 범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심정권이란 심정의 대상의 범위, 즉 사랑의 대상의 범위를 말합니다. 심정은 사랑하고 싶은情的정적인 충동이기 때문에 그 충동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때의 행동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심정과 사랑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심정의 대상의 범위란 사랑의 대상의범위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4대 심정이란 부모의 심정, 부부의 심정, 형제자매의 심정, 자녀의 심정 등 4가지 심정을 말합니다. 심정은사랑과 表裏一體표리일체이기 때문에 4대 심정은 바로 4대사랑을 뜻합니

다. 즉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자녀의 사랑의 네가지 사랑을 말합니다.

(3) 종적사랑과 횡적사랑 및 가정적 사랑

4대 심정 또는 4대 사랑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방향성 즉 종적사랑과 횡적사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종적사랑이란내리사랑, 즉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사랑을 말하며,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횡적사랑 즉가로사랑은 옆으로의 사랑을 말하며, 형제자매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을 말합니다. 여기서 형제자매의 사랑은 형제끼리의 사랑과 자매끼리의 사랑 및 형제와 자매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부모의 사랑,부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그리고 자녀의 사랑은 모두 가정에서행해지는 사랑이기 때문에 가정적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의 세 가지 사랑은원리에서는 3對象대상 사랑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체로볼 때 부모나 부부나 자녀는 모두 하나님의 대상이기 때문에, 즉 부모, 부부, 자녀는 하나님의 3대상이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원리에서는 ‘3대상 사랑’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4대심정을 터로 하는 4대 사랑은, 3대상 사랑에 형제자매의 사랑을 더 첨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 사랑의 방향 및 4대 사랑(4대 심정권)과 3대상 사랑과의 관계를 설명하였습니다.

(4) 4대 심정권과 사랑의 성장

이번의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사랑도 성장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인간이 아기 때부터 성장해 감에 따라서 사랑도 함께 성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전연 모르는상태에 있지만, 부모의 사랑 하에서 성장하면서 점점 부모에 대한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이것이 자녀의 사랑입니다. 이때 자녀란 아들과딸이라는 말이 아니라, 두 아기 또는 쌍태아라는 뜻입니다. 아들과 딸또는 男兒남아, 女兒여아라는 性的성적인 개념을 지니지 않은 순전히 어린아기, 어린이 혹은 아동과 같은 뜻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한자녀의 개념은 성을 초월한 中性중성과 같은 뜻입니다.

다음은 형제자매간에도 사랑이 싹터서 성장하게 되는데, 역시 부모의 사랑을 터로 하고 형제간의 사랑, 자매간의 사랑, 또 형제와 자매간의 사랑이 성장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내리사랑을 받으면서 자녀애와 마찬가지로 형제간의 사랑이 생기고, 자매간의 사랑이 생기고, 또 형제와 자매간의 사랑이 생겨서 몸의 성장과 더불어 그 사랑도 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의 誘發效果유발효과입니다. 이렇게 해서 형제와 자매가 다 성숙하면 형제는 다른 가정의 자매와, 그리고 자매는 다른 가정의 형제와 약혼하고 결혼하여 부부가 되는데(近親結婚근친결혼

은 하지 않기 때문), 이 때의 부부간의 사랑이 바로 夫婦愛부부애인것입니다. 이 부부애도 각자의 부모의 사랑 속에서 행해지게 됨은 물론입니다.

다음에 자녀, 즉 아동들이 다 성숙하면 부모, 즉 어버이가 됩니다.

그 때 부모의 개념도 성별의 개념, 즉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개념이 아

니라, 자녀에 대한 어버이(親)라는 뜻의 단순개념인 것으로서 자녀 즉아기가 성장을 완료하면 어버이가 되어서 그 자식들에 대하여 부모애를 실천하게 됩니다.

이상 자녀애, 형제자매애의 성장과 부부애 및 부모애(어버이애)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예컨대 부부애의 경우, 형제자매가 완성한 뒤에 결혼하고 나서 갑자기 부부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가운데서 무의식적으로 형제와 자매간에,부부애의 전단계에 해당하는 異性的이성적인 사랑이 조금씩 싹터 왔던것입니다. 그 이유는 형제와 자매가 성장한다는 것은 부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조금씩 갖추어 가면서 성장해 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문에 육신이 성장하면서 무의식중에 희미하게나마 異性愛이성애(부부애의 전단계의 사랑)가 싹터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부모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성장해서 어버이가 된 뒤에 갑자기 부모애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성장하면서 무의식중에 부모애를 마음속에 느끼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자기를 키워 주시는 부모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느끼면서(배우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녀애와형제자매애에서 뿐 아니라 부부애, 부모애에서도 사랑의 성장이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5) 사랑의 내포성

內包내포란 개념 속에 들어 있는 속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랑의 내포란 한 사랑이 다른 사랑을 그 내부에 포함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

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랑을 그 속에 포함하는 사랑이란 주로 형제자매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을 말합니다. 즉 형제자매의 사랑은 자녀의 사랑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자매는 자식으로서 성장하는 사이에 형제자매의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부부의 사랑은 자녀의 사랑 외에 형제자매의 사랑도 내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형제와 자매가 성장하여 부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가정 내의 형제와 자매가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정의 형제는 다른 가정의 자매와 부부가 되고, 한 가정의 자매는 다른가정의 형제와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여하 간에 형제와 자매가 성장을 완료하면 부부가 되기 때문에 부부의 사랑 속에는 자녀의 사랑 외에 형제자매의 사랑도 內包내포하게 됩니다. 다음은 부모의 사랑인데,이 부모의 사랑은 이상에서 말한 사랑을 전부 포함하게 됩니다. 즉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그리고 부부의 사랑까지를 내포하게 됩니다.

이상을 심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형제자매의 심정은 자녀의 심정을 내포하고 있으며, 부부의 심정은 자녀의 심정과 형제자매의 심정을내포하고 있고, 부모의 심정은 이상의 心情심정 전부를 내포하고 있음을알게 됩니다. 따라서 심정권, 즉 心情심정의 대상의 범위라는 관점에서볼 때, 자녀의 심정권은 가장 협소하고 형제자매의 심정권은 그 다음으로 넓으며, 부부의 심정권은 더 범위가 넓으며, 부모의 심정권은 그범위가 가장 넓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녀의 사랑(심정)의 대상은 어버이(親)뿐입니다. 즉 대상이 하나뿐입니다. 형제자매의 사랑(심정)의 대상은 최소한 둘 이상이 되게 됩니다.

부부의 대상은 몇이나 될까요. 부부의 사랑(심정)의 대상은 하나뿐인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統一原理통일원리의 부부관은 남편은 한 가정에서 남자 전체를 대표하고, 아내는 한 가정에서 여성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남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오빠를 대표하는 입장입니다. 또 아내는 할머니와 어머니와 누나를 대표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부부 각각의 사랑(심정)의 대상은 셋 이상이 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부부의 사랑의 대상은 서로 하나일 것 같지만, 사실은 셋 이상입니다. 다음은부모의 사랑의 대상은 더욱 범위가 넓어서 이상에서 말한 여러 대상을전부 포함하게 됩니다. 즉 자녀, 형제자매, 부부 등이 모두 부모의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첨가할 것은 네 가지 사랑, 즉자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은 각각 하나님의 사랑 하에서 행하여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동시에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리하여 사랑의 대상의 범위의 크기라는 면에서 볼때, 자녀의 사랑과 형제자매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은이것들을 네 개의 同心圓동심원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그림 1과 같습니다.

그림 1. 사랑의 동심원

(6) 대표애로서의 부부애

이상의 네 종류의 사랑, 즉 자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의 4대사랑 중에서 대표되는 사랑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가정내의 전체 남성을 대표하고, 아내는 가정내의 전체 여성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각각 하나님의 一性일성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남자는 인류의 반인 全男子전남자를 대표하는 입장이고, 여성 즉 아내는 인류의 반인 全女性전여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 남편은 전우주의 개성진리체의 陽的양적인 면을 대표하고, 아내는 전 우주의 陰的음적인 면을 대표하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가정에 있어서 남자편과 여자편의 사랑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양과 음의 사랑을 대표하고, 인류의 남성과 여성의 사랑을 대표하고, 전 우주의 半반인 양적 측면과 음적 측면의 사랑(결합력)을 각각 대표하기 때문에 부부애가 가장 대표적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즉 부부애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피조세계의 모든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애가 가정적 사랑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7) 천주의 중심과 사랑의 결실체

이상의 설명에 의해서, 부부의 사랑은 단순한 남자 한 사람과 여자한 사람만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가정적 사랑과 被造世界피조세계

의 사랑을 총합한 總合愛총합애임을 밝혔습니다. 사랑이 총합하면相乘作用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억제키 어려운 激發力격발력, 發動力발동력으로나타납니다. 그러한 부부의 결합의 자리는 天宙천주를 대표한 자리, 즉천주의 중심의 자리인 동시에 創造理想창조이상을 완성한 자리요, 第二創造主제2창조주의 자리인 것입니다. 메시아(인류의 참부모)는 바로 이러한

제2창조주의 標準型표준형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만큼 그 자리는 가장귀하고 성스러운 자리요, 하나님을 닮은 자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동시에 家庭外的가정외적인 모든 사랑(예, 민족애, 인류애, 만물애, 동포애,조국애 등)도, 그 뿌리는 이 夫婦愛부부애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부부애는 단순한 양성과 음성간의 사랑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주체와대상간의 사랑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상(마음)과 형상(몸)간의 사랑도, 또 주요소(주개체)와 종요소(종개체) 간의 사랑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남(夫부)은 하늘(天천)이요, 여(婦부)는 땅입니다. 즉 주체인 하나님과 대상인 피조세계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부부의 사랑은 하나님과 피조물(인간)과의 사랑을 대표합니다. 또 男남은 마음(성상)으로 아내에 指示지시하고 女여(아내)는 몸(형상)으로 행동하니, 남녀(부부)관계는 성상과 형상으로서의 주체 대상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사랑은 우주의 모든 무형적 존재와 유형적 존재와의 사이의사랑을 대표합니다. 또 남은 주인이요 여는 추종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관계는 主從주종의 관계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그런 점에서 부부의 사랑은 모든 類型유형의 중심(주인)과 추종자간의 사랑을 대표합니다(예 : 師弟間사제간, 정부와 백성간, 태양과 지구간, 핵과 세포질 간 등).

또 男남은 인류의 반인 남자의 대신이요, 女여도 또한 인류의 반인 여자의 대신입니다. 따라서 남녀의 결합은 인류의 통일을 나타내며, 부부애는 인류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男남은 전우주와 영계의陽的側面양적측면을 대표하고, 女여는 전우주와 영계의 陰的側面음적측면을대표합니다. 따라서 부부의 결합은 全宇宙전우주의 대표요 중심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부애는 전피조세계의 모든 類型유형의 사랑을 대표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분화인 것입니다. 따라서 代表愛대표애, 총합애로서의 부부애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總合愛총합애를 나타내는 부부의 자리는 천주의 중심의 자리요, 제2창조주의 자리요, 창조이상이 완성된 자리입니다.

이와 같이 본연의 부부애는 실로 한없이 넓고 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애에 의해서 태어나는 자녀는 이러한 성스러운 총합애의 열매요 결실체인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全被造世界전피조세계의 사랑을 총합한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에 의해서 새로 태어난 자녀, 즉 新生體신생체(신생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우주를 총합한 實體相실체상이요, 小宇宙소우주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첨가하고자 하는 것은 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사실은 2차적인 현상이며, 1차적으로는 먼저 천상세계,즉 靈界영계에서 먼저 벌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지상세계에 자녀가 출생하여 성장하여 부부가 되고 부모가되는 것도 먼저 똑같은 현상이, 즉 인간(아담 해와)이 출생하여서 자녀로서 또 형제자매로서 사랑을 조금씩 느끼면서 성장하는 현상이 천상에서(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먼저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에서 말한 자녀의 성장, 형제자매의 성장, 부부가 되는일, 부모가 되는 일들이 지상에 나타나기 전에 천상의 하나님의 마음속에 理想的이상적인 모습들로서 먼저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아담 해와를 창조하기 전에마음속에 이 모든 내용을 이상적인 것으로 構想구상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 구상대로 아담 해와가 자녀로서 창조되었고, 그 구상

대로 자녀로서 형제자매로서 성장하여 부부가 되고 그 구상대로 부모가 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構想中구상중에서의 아담 해와와 자녀, 형제자매, 부부, 부모를 각각 靈的영적 아담 해와 및靈的子女영적자녀, 靈的兄弟姉妹영적형제자매, 靈的夫婦영적부부, 靈的父母영적부모등으로 표현합니다. 이상 설명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림 2와같습니다.

그림 2. 4대심정(4대사랑)을 터로 한 부부애

(8) 4대 심정권의 확대형으로서의 세계적 심정권

1) 4대 심정권의 기본형은 가정적 4대 심정권임

4대 사랑이 가정적 사랑이니 4대 심정도 가정적심정입니다. 자녀의심정권은 가정 내에서의 자녀의 심정권이요, 형제자매의 심정권도 가정 내에서의 형제자매의 심정권이요, 부부심정권도 마찬가지로 가정내에서의 부부 상호간의 심정권이요, 부모의 심정권도 가정 내에서의부모의 심정권입니다. 그러므로 4대 심정권의 기본형은 가정적 4대 심정권인 것입니다.

2) 가정적 4대 심정권의 확대형으로서의 세계적 4대 심정권

그런데 원리에 의하면, 전인류는 인류의 참부모를 최고의 정상에 모시고 대가족사회를 이루는 것이 본연의 인류사회의 모습입니다. 즉,세계 인류는 참부모를 중심한 一大일대 가정을 이루는 것이 본연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창조이상의 세계에 있어서 인류사회는 가정을 확대한 확대형으로서의 대가족 사회인 것이요, 개개의 가정은 인류의 대가족 사회를 축소한 小家族社會소가족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적 자녀의 심정권은 세계적 자녀의 심정권으로 확대될수 있으며, 형제자매의 심정권도 세계적인 형제자매의 심정권으로 확대될 수 있으며, 부부의 심정권도 세계적 부부의 심정권으로 확대되게되며, 부모의 심정권도 마찬가지로 세계적 부모의 심정권으로 확대되게 됩니다. 따라서 인류대가족사회는 세계적인 4대 심정권이 되게 됩니다.

3) 세계적 4대 심정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心情圈심정권이란 심정의 대상의 범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랑의 대상의 범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4대심정권이란 전인류를 4대 사랑의 대상으로 보고, 그 대상의 범위를 말합니다. 가정에서의 자녀의 심정권은 자녀 사랑권을 말하며, 따라서자녀가 사랑을 바치는 대상, 즉 부모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자녀의 심정(사랑)의 대상 즉 심정권은 부모입니다. 그러면 세계적4대 심정권중의 자녀의 심정권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부모와 같

은 연령층에 있는 어른들입니다. 즉 자녀의 입장에서 볼 때 세계적인어른들은 자녀가 부모처럼 받들고 모셔야 할 어른층인 것입니다.

형제자매의 심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내에서의 형제심정권, 자매심정권은 그대로 가정내의 형제와 자매들이지만, 세계적인 형제자매의 심정권(대상)은 자기의 형제나 자매와 비슷한 연령층의 남녀 전부를 포함합니다. 즉 이들의 연령층이 모두 형제자매의 심정권, 사랑권에 포함되게 됩니다. 따라서 세계의 어디를 가든지 형제나 자매와 같은 연령층의 남녀를 대하면 자신의 친 형제 자매와 같이 사랑을 주고받게 됩니다.

다음은 부부의 심정권입니다. 부부의 심정권도 마찬가지일까요? 아닙니다. 부부의 심정권은 좀 다릅니다. 세계의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남편과 비슷한 연령의 남자, 혹은 자신의 아내와 비슷한 연령층의 여자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남편에게 또는 아내에게 주는 사랑과 똑같은사랑을 그들에게 주게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부란一夫一妻制일부일처제 위에 성립되는 異性이성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즉부부애는 반드시 부부생활 즉 性生活성생활이 수반되는 사랑이기 때문에부부애는 부부간 이외에는 결단코 허락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비슷한 연령층의 남녀를 대하면 자신의 친형제 자매를 대하듯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이 다른 세계적 심정권과 다른 점입니다.

다음, 부모의 심정권은 자녀의 심정권이나, 형제자매의 심정권과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아들 딸과 같은 연령층의아이들을 대하게 되면,부모의 입장에서 자기의 자녀를 대하는 것과 똑같은 부모의 심정,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게 됩니다. 이상4대 심정권의 확대형으로서 세계적 심정권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동시에 4대심정권의 설명을 전부 마칩니다.

2. 대 왕권

다음은 3대 왕권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3대 왕권의 뜻을설명하겠습니다.

(1) 삼대 왕권의 뜻

그런데 3대 王權왕권이라고 할 때, 먼저 이 3대 왕권이 三大主體3대주체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3대 주체사상’에 있어서 3대 주체는 가정, 학교, 직장의 중심으로서 이 중심이주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국의 왕은 그 나라의 중심이기 때문에 역시 주체입니다. 따라서 3대 왕은 왕이 셋이기 때문에 3대주체라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3대 왕권의 王은세속적인 왕처럼 일국의 왕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3대 왕권의 왕은 가정의 중심, 즉 家長가장을 뜻합니다. 가정의 중심은 家長가장, 즉 부모입니다. 따라서 3대 왕권의 3대 왕은 三代3대에 걸친 부모를 뜻합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부모, 부모, 자녀의三代3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조부모, 부모, 자녀의 3대의 ‘대’는큰 ‘大’대자가 아니라 ‘世代’세대의 代대를 말합니다. 그러나 3대 왕권의3대의 ‘대’는 큰 ‘大’대자로서 세 개의 큰 왕권이라는 뜻입니다. 같은‘대’이지만 뜻은 각각 다릅니다.

그런데 王權왕권은 바로 왕의 권한을 말합니다. 왕의 主權주권을 말하

는 것입니다. 세속에 있어서 왕이란 모든 국민을 사랑으로 다스려야하는 頂上的정상적 존재, 즉 최고의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이미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왕이란 가정의 중심인 가장,즉 부모를 말합니다. 집에 있어서는 부모가 왕입니다. 나라의 왕은 나라의 부모입니다. 기업체도 하늘나라에서는 확대된 가정이기 때문에기업체의 장도 그 기업체의 부모의 입장이어서 역시 왕입니다.

그러면 가정에 있어서 왜 왕이 셋이나 있게 되는가? 가정의 부모는하나뿐인데 따라서 왕도 하나뿐일 터인데 왜 왕이 셋이나 되는가 하는의심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놓고 볼때 왕이 셋이 됨을 알게 됩니다. 즉 과거의 부모, 현재의 부모, 미래의부모가 그것입니다. 즉 3대 왕이란 조부모, 부모, 자녀를 말합니다. 조부모는 과거의 왕이요, 부모는 현재의 왕이요, 자녀는 미래의 왕이기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조부모도 왕이요, 부모도 왕이요, 자녀도 왕이기 때문에 조부모에게도 왕의 권한이 부여되어 있고, 부모에게도 왕의권한이 부여되어 있고, 자녀에게도 왕의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대 왕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격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2) 3대 왕권의 성격

조부모는 過去과거에 속한 분이기 때문에 과거의 왕입니다. 과거의 왕이란 과거에 地上지상을 대표한 왕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냐 하면 지금도 왕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상을 대표한왕이 아니라 靈界영계를 대표한 왕인 것입니다. 과거에는 부모의 입장에서 지상에 왕이었지만 지금은 조부모로서 영계를 대표한 왕이 되고 있

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대표한 입장이 조부모입니다.

즉, 조부모는 가정에서 영계를 대표하고 하나님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리에서 말하는 하나님 중심한 四位基臺4위기대는, 본연의세계에서는 조부모를 중심한 사위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가정의 4위기대의 중심은 하나님 또는 인류의 참부모이지만,조부모가 그 대신의 입장에서 4위기대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조부모의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가정에서 조부모가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최고이지요, 그래서 자식도 부모도 모두 조부모를 최고로 섬기게 됩니다.

그 다음, 부모는 무엇이냐 하면 現在현재의 지상을 대표하는 왕인 것입니다. 조부모는 영계의 왕이요, 부모는 땅의 왕입니다. 그리고 또 가정을 대표하기 때문에 부모는 가정에서의 왕인 것입니다. 그 다음 자녀는 未來미래의 가장인 것입니다. 현재는 왕이 아니고 王子왕자나 王女왕녀와 같은 입장이지만 왕자나 왕녀는 장래의 왕이나 왕후입니다. 이와같이 자녀는 모두 미래의 지상의 왕이며 가정의 왕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모든 후손을 대표하는 입장입니다. 자녀 다음에 계속 손자,증손자 등이 태어나는데 모두 미래의 왕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미래를대표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내용을 이번에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 ‘3대 왕권’의 표현이 필요한 이유

그런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그냥 조부

모, 부모, 자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을 왜 왕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왕이란 최고로 尊貴존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 우리가 조부모니 부모니 자녀니 하는 개념을 마음속에 지녀왔지만 그것이 創造本然창조본연의 개념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원리를 배우면서 가정의 귀중함과 부모, 부부,자녀의 소중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부모, 부부, 자녀는 우리가 원리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아직도 크나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아버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창조본연의 조부모, 부모, 자녀의眞面目진면목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왕이니 왕자니 하는 용어는 최고로 귀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왕과 같이 최고로 존귀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원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인간이 어느 정도귀한지 실감있게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귀함을, 남루한 옷을 입고 賤民천민속에 묻혀있는 왕자나 태자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逆臣역신의 謀反모반으로 왕위를 잃은 부왕을 떠나서 남루한 옷을 입고멀리 산간벽지에 피신하여 숨어서 사는 한 불운한 왕자가 있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마을의 村老촌로들이 그 사실을 알고 ‘만승의 귀하신 분께서 이 어인 일이옵니까. 저희들이 미처 알아 모시지 못하여 대죄를지었습니다. 불충을 용서하옵소서!’하고 그 다음부터는 최고의 정성을다하여 최고의 높은 자리에 최고로 편하게 모시게 되었다고 할 때, 그왕자가 받는 최고의 정성, 최고 높은 자리, 최고의 모심이 그 왕자의존귀함을 나타내는 것과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인간의 가치가 귀한것입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까지 알고 있

던 그런 개념의 조부모나 부모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아주 굉장히귀한 개념의 조부모요 부모요 자녀인 것입니다. 그렇게 귀하고 존엄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왕’이라는 개념을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왕은 지위나 신분에 있어서 최고가 아닙니까? 그러니까이상세계에 있어서 인간이 모두 이렇게 귀한데 거기에 조부모, 부모,자녀가 있으니까 3대 왕권이란 개념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부모가 그들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세자를 대하듯 자기의 자식을 대하여야 하는것입니다. 세상의 임금도 자기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했다면, 세자가아무리 어리더라도 그 말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지요. 비록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청하게 되지요. 이와 같이 미래세계에 있어서는자녀들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부모를 왕으로 모시고, 조부모를 대왕으로, 대비로 모셔야 함은 물론입니다.

(4) 왕권과 그 개념

그런데 왕에게는 왕이 지니는 權勢권세, 즉 王權왕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조부모, 부모, 자녀의 이 왕권을 3대 왕권이라고 말합니다. 3대왕에게 부여된 왕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자기의 가족, 타인의 가족을 재인식해야 합니다. 가족은 왕과 같이 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바로 王宮왕궁인 것입니다.

왕궁에 있어서 왕은 지상의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조부모가 되어서 大王대왕으로서 영계와 하나님을 대표해서 가정의 중심의 자리에 머

물러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 가정은 왕궁과 같이 존귀한 處所처소인것입니다. 따라서 家法가법은 王宮法왕궁법이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님의가정이 바로 그 표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상세계가 되면모든 세계의 가정이 참부모님의 가정을 닮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왕권의, 그 權力권력의 개념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權力권력이란 주관의 대상에게 일종의 두려움을 주어서 대상으로 하여금 主管주관의 주체에 복종케 하는 힘을 말합니다. 그런데 世俗的세속적인 권력(주권)은 물리적인 拘束力구속력을 말하며, 경찰력, 군사력 등을가지고 국민을 강제로 주권에 복종시키는 權威권위를 말합니다. 그러나하늘나라의 권력은 대상이 자진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체를 따르게하는 힘으로서 그러한 힘은 바로 하나님의 참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권력, 즉 참사랑도 대상에게 두려움을 주는 권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배반하거나 거역했을 때의 생명의 죽음에 대한 豫感예감에서 오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며, 따라서 사랑의 상실은 생명의 상실 즉 생명의죽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주체의 사랑을 무시하거나 배반했을 때, 그결과(생명의 死사)를 잠재의식이 감지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한없이 기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때문입니다.

여기서 共産世界공산세계에서의 주체(독재자)에 대한 人民인민의 복종과하늘나라에서의 주체에 대한 백성의 복종과의 差異차이를 알게 됩니다.

공산세계에서의 독재자는 공포수단을 가지고 개개인의 生命생명을 위협하면서 人民인민을 강제로 복종시키곤 하였으나, 하늘나라에서는 참사랑을 가지고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진해서 주체에게 복종하고 있어

서, 이것이 兩世界양세계의 근본적인 차이이지만, 그러나 不服從불복종했을때 생명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습니다. 공산세계에서는 독재자에 불복종했을 때 당장 지상에서 생명의 위협 또는 말살을당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상관(주체)의 사랑의 명령에 不服불복했을 때그 정도만큼, 死後사후에까지 연결되는 영원한 생명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이상으로 사랑에도 權威권위가 있음이 확실히 밝혀졌으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성서의 句節구절을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실수한 탕감으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할 때, 하나님이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라고 하신 성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위엄(두려움)이 따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성구인 것입니다.

이리하여 세속적인 권력은 강제성을 띤 구속력이지만, 하늘나라의 권력은 자발적인 순종을 誘發유발하는 참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왕권은 行使행사하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3대 왕권의 행사는 조부모와 부모와자녀가 각각 이러한 참사랑의 힘을 언제나 그 대상에게 베푸는 것을뜻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에 대한 설명을 전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