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제 1 편 총론/제1 장 하나에서부터 전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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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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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장 하나에서부터 전존재로
태초는 하나이시다. 이 하나가 즉 태초의 근본이다. 이 근본이 즉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의 존재야말로 무한소에서 무한대의 존재에 근본이다. 이 하나의 근본이 전체의 근본이요 또 전체의 중심의 근본이요 또 전작용의 외력에 대한 평형의 기본지점이다. 우리가 현과학 시대에 처하는 생활과정에서 수학을 떠나서는 그 기본발전의 궤도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현실사회의 구성의 기초로 수의 단위인 하나를 중심하고 그 중심을 주로삼고 전개시켜 대수의 실체를 자아내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그러므로 무슨 존재의 기본을 세우기 위하여는 하나의 존재의 확정적 존립이 중대한 것이다. 이 존재가 결정되면 다시금 하나로부터 증수의 중대요소를 가감조합하여서 나가는데 발전이 있는 바이며 발달이 있는 바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물의 근본을 추측하려 할적에 하나되는 단위적 근본이 절대 중요 요구요소이다. 이 요소의 결정은 우리가 중대 중대관계를 시작케하는 외부적 동작을 결정하는 기인이 되는 것이다. 이 근본이 즉 외부의 동작을 자유궤도로 옮겨주는 중심점이다. 이 중심점이 공식의 기본단위며 타사물체에 미쳐지는 제일존재다. 이 존재가 제이존재까지 도달케하는 결정적 중심점으로 되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제이존재의 중심요구는 무엇인가 하면 제일존재의 결정적인 단위로부터 끊을 수 없는 관련된 증수단위라 할 수 있는 바이다. 이와 같이되어 기본적 단위수로부터 무한수까지에 도달하는 진급과정의 표시가 공식이라 한다. 그렇다면 현사회의 모든 존재의 자체는 단위를 떠나 또 공식원리를 떠나서는 존재의 결정적 존립을 보장할 수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현실체사회의 제사물은 단위를 중심한 공식발달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현세기 문명도 단위를 중심한 공식발달이다. 그러나, 결정적 논리를 내린다면 현과학세계도 단위를 토대로 한 공식발전세계이다. 그런고로 사물의 존재를 인정할진대 근본 하나의 단위로부터 증수적 단위까지가 일평선 노정을 이탈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 일평선 노정이야말로 타아닌 각단위의 공통노정됨은 사실인 것이다. 그런고로 이 노정의 어느 부분에 서서 좌우를 혹은 상하를 잡아서 자기존재를 결정짓고자 할 때는 자기는 독립적 존재와 같은 것이다. 실상은 우가 있고 좌가 있고 상이 있고 하가 있음을 누구나 부인 못한다.
그렇다면 좌우의 존재와 또는 상하의 존재에 대하여서는 지금 자아의 결정적 해결을 짓고자 할 적에 좌도 우도 상도 하도 모두다 결정적 해결의 간접으로 성립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아와 즉 하나를 중심하고 고찰하려 할 적에 나아닌 타의 존재의 확정을 요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고보니 큰 문제는 자기 하나를 공식의 근본되는 단위의 실격존재로 되어지는 것이 필연적 요구조건인데 이 조건을 우리 인생은 즉 나는 어디서부터 잡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중대 과업이며 의무이다. 이 과업과 의무를 다하는 근본단위라는 실체를 알고나게 될 때 타에 대한 근본실체단위로 역시 관련적으로 해결됨이 사실이다. 그러니 만유에 있는 존재물은 한 공통노정(창조기준)을 넘어 존재할 수 없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 공통노정은 즉 평형적 노정인 동시에 결정적 어떤 존재에도 기본되는 안정점이다. 이 점에 도달하여서만이 단수 하나 즉 나로부터 대수 즉 타에 영향되는 근본원리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 해결을 완전히 받았다 할진대 그 자체는 무한한 타자체까지 직결되어 있는 자기 사명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이 사명을 감당치 못하였다고 하면 자기는 타자체의 존재할 수 있는 필요적 요소를 파하는 존재이니 어찌 그 범죄적 추궁을 받지 않으랴.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자아에 대하여서 천주(실체세계우주+하늘무형세계)와 여하한 관계적 입장에 있는가가 해결의 문제인 동시에 일대고심되는 사실의 과업이다.
이상 예를 보면 과학은 유형체를 공식으로 찾는 반면에 그 단위가 실체적인 유형이니 문제는 그리 난하지 않으나 우리 인생은 그 외에 무형의 활동작용을 무시하거나 포기하거나 할 수 없는 타력의 힘의 작용과 충동을 부인 할 수 없는 순수한 양심적 작용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아를 중심하고 어떤 단위를 근본하고 공식적 원리로 나에게 추궁시켜주는 근본 단위체 되는 제일존재를 인식치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식을 보아 자아의 존재를 표징케 될 때 자아라는 존재는 벌써 제이존재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양심이 있나니 이 양심이 자아에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 못한다.
그렇다면 양심이 바라는 바는 자체 개성존재와 타성적 존재간에 절대적인 단위가 평형선 노정을 통하여 공동한 이상체를 향하여 어떤 사명적 책임감을 추궁시켜주는 큰 힘이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본체를 인간의 근본단위본체라고 할 수 있는 세밀하고 고상한 존재의 근본이라는 것을 논할 수 있다. 이 존재를 말하기를 양심 본체이라고 하거나 또는 절대선이라고 하거나 또는 하나님이라고 하거나 명칭의 문제가 아니고 존재의 결정적 사실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내 양심이 어떤 최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절대적 공통단위와 같은 공식원리를 향하여 움직여지는 사실이 즉 절대중심의 역이요 이상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중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절대적 역을 제일존재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라 할 수 있다. 이 절대적인 역은 이상본체까지 도달케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일존재로부터 제이존재 제삼존재등을 통하여 공통되는 절대단위체까지 즉 개성적 절대단위가 완성할 때까지 역은 작용하는 바이다. 이 양심에 작용하는 힘을 중심하고 나아가는 무형실체로부터 유형실체에로 평형상형이 없는 노정을 요구하며 나아감은 우리는 감촉을 보아서라도 알 수 있는 바이다. 이렇게 실행하면 자아를 완성하는 길인 동시에 좌의 제일존재, 우의 제삼존재를 완전존재시키는 사명적 책임을 다하게 된다는 것이 전례로 잘 알 줄 안다.
이 관련적 노정은 과학세계의 공식과 한가지 원리원칙으로 질서정연한 천주체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형체인 제일존재(원리)로부터 자아와 제삼존재등을 살펴보면 근본 하나의 하나님으로부터 단수로부터 복수에로까지 공통적 노정은 무형세계로부터 유형세계로까지 유형으로부터 무형으로한 회로의 통성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실체세계는 사람과 만물의 전개를 말한다. 이 유형계는 무형세계의 표시적 영체로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즉 창조적 의의이다. 간단히 표시하면
신(하나님)=사람+만물세계이라고 표시한다.
그렇다면 창조한 의의는 하나님 자체 하나이나 성에서는 양성이었다. 이 하나님의 자체인 자아(하나님)를 복수체계로서 벌려 놓은 것이 창조적 근본의의이다. 실체세계+사람과 무형세계+하나님과는 상대로 되 전부를 공통하게 하나님의 본의궤도로서 무에서 유에로 완전 수수하는 노정에 완전대상존재의 목적을 달성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창조란 것은 하나님의 성품 이성 즉 남성 여성 즉 양성 음성의 자체를 무한소에서 무한대까지 벌려 놓은 것이 천주의 진상이다. 그런고로 무슨 사물체에서라도 이 성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천리니 그것은 근본의 뜻에서부터 시작됨의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에서 시작하여 복수로서 되었고 이 복수존재는 다시금 완전한 본성인 완전단수로 귀인케하여 제일단수로부터 단위복수로서 번식증대케 함이 근본 하나님의 이상으로 되었다. 그 이상의 중심점이 사람을 중심하고 천주창조 하였음을 알게 될 때와 우리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큰 중대문제다. 그래야만 우리 인간문제 근본 해결 문제책으로 결단짓는 바이다.
하나님은 뿌리고 사람은 줄기와 가지고 만물은 엽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을 닮기 위하여 마음으로 살고 만물들은 사람을 돕기 위하여 사람에 취게 되어 근본체 하나님의 뿌리를 돕기 위하여 사람한테 취케 될 때 하나의 관련작용은 반복되어 근본완성을 돕는 것이 창조적 중심 의의다. 이런 창조원리로 되어진 개성진리체 인간이 찾아 나아가는 진리라는 것까지와 그 진리와 하나님과의 이상까지에 대한 근본 섭리노정을 찾아서 대수가 총결된 단수로 귀결하는 전부를 알아 볼 수 있다. 즉 천주도 합하면 동성체로 하나되고 헤치면 무수하게 된다. 이것에 가감함의 묘미가 천주의 원리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천주라고 하는 그 속에는 극소로부터 극대까지가 무단히 질서정연한 창조적 상대성 원칙과 대상원리 완성으로써 배열됨이 즉 하나님의 존재의 근본부터 만물존재의 근본과 일실통지하여 가감하여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찾아볼 때에 그 심대 심광 심고한 묘리를 어느 방향으로 보든지 금지무수이니 그러므로 천주 전체는 신묘한 묘리로 전개되나 그 묘리에 대하여 내 자신이 단위로 되어 동형체로 설 수 있으며 대할수 있을적에 무한한 신진리가 출현됨을 체험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러나 과금을 통하여 이런 신진리가 다시금 요구되는 바이다.
그 진리본체에 대한 진상에 대하여는 체증의 중대성을 요구하는 세계이니 즉 과학적이 요구됨으로 다시 말하면 공식적 요구가 추구된다. 그 진리본체야말로 현실적 입장과 미래에 대한 현실과의 여일한 활미를 부단히 체득케함이 충분하여야 하며 발전할 수 있는 진미와 충동이 현실적 자아생활을 통하여 생애로 생존의 이상을 연지함이 없다 할진대 생존의 요소임을 자극못하나니 그러므로 이 진리본체야말로 직접인 동시에 이상인 동시에 영원할 수 있는 이상의 실아를 파악하는 공식됨의 중요한 요구의 본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과학적인 원리를 통하여 보여지는 창조주의 섭리와 인간의 중심으로 되어 만 천주의 창조적
의의 등등에 대한 근본문제며 또 그에 대한 중요 해결이 되나니 그 중요함이 철학의 근본이면서 종교이념의 궁극의 점이면서 만 인간이 찾고자하는 천주의 근본이 되나니 이 근본이 대중인간의 바라는 바의 이상인 터이며 또 생존의 근본이 됨이니 누가 피할수 없는 공리니 그 공리가 바로 우리 전부의 해결을 초래하여 주는 근본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나는 뭇 인생에게 대하여서 인간이 찾아야 할 중대요소를 세상에 전하려는 바이니 전함을 받은 자는 영을 통하여서 알려지는 사실을 육을 통하여 능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니 그야말로 누가 반박할 수 없는 천리원칙이다. 선과 양심을 사랑하는 사람일진대 본 중요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적으로 노력이 조금만 있으면 기필코 지명함이 유함으로 누구든지(특히 신앙이상을 바라는 자는 빠름) 해결됨으로 결정적인 실체증거로서 천주이상의 본로를 찾게 될 터이니 어찌 이 근본을 찾지 않으랴. 그러면 지금부터 근본진리를 알고 찾는 데까지의 경로를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