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통일사상요강/제5장 교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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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상요강 제5장 교육론 원문이다.

원문

제5장 교 육 론

Theory of Education

오늘날 청소년의 탈선, 성도덕性道德의 퇴폐, 폭력사건의 빈발頻發 등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혼란을 구할 수 있는 교육이념은 발견되지 않은 채 오늘의 교육은 방향감각을 잃고 있으며, 사제師弟의 도道마저 붕괴되고 있다. 즉 학생은 스승을 존경하지 않으며, 스승은 권위와 정열을 상실하고 있다. 그 결과 일부의 스승은 지식을 팔고 학생은 지식을 사는 것같은 관계가 되어 학교는 지식의 매매장賣買場으로 전락되어 버린 경향마저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대학가大學街에 침투하여 학내學內를 광란狂亂의 장場으로 삼았으며, 교육이념 부재의 상황속에서 공산주의의 공세를 강화시키곤 하였다.

민주주의의 교육이념이란, 주권재민主權在民, 다수결주의多數決主義, 권리평등權利平等 등의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자기의 책임을 다한 터 위에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 즉 민주적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교육이념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공격하곤 했다. 계급사회에서 지배층이 노동자, 농민들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는가. 계급사회에서 의무와 사명을 다 한다는 것은 권력층의충실한 종이 되는 것 아닌가. 이것은 참다운 민주주의가 아니다. 참다

운 민주주의란 인민대중인 노동자나 농민들을 위한 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여야 한다. 따라서 참된 민주주의교육은 인민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며, 참된 교육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사회를 타도하고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선전한다.

공산주의의 이와 같은 참소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착취, 억압, 부정,부패 등의 사회적 구조악構造惡이 남아있는 한, 설득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와 같은 사회악을 제거하지 않으면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가치관운동이 전개되어야 하며, 새로운 교육이념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육이념은 인간의 성장에 대하여 본래 하나님이 원했던 기준을 근거로 해서 세워져야 한다. 그것은 혼미한 오늘의 교육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미래사회에 대하여 교육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다가오는 미래의 이상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교육론이어야 한다. 본 교육론(통일교육론)은 바로 이와 같은 교육론으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이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교육의 이념, 목표, 방법 등에 관한 것으로서 소위 교육철학이 이에 해당하고, 다른하나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교육현상을 취급하는 측면으로서 교육과학敎育科學

이 이에 해당한다. 교육과학은 교육과정(커리큘럼), 교육평가, 학습지도, 학생지도, 교육행정, 교육경영 등을 연구하는 측면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이 두 가지 측면은 성상과 형상의 관계에 있다. 그리하여 교육철학은 성상적교육性相的敎育이고, 교육과학은 형상적교육形狀的敎育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적 교육학이 과학 존중의 조

류 속에서 크게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철학은 경시되어 쇠퇴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육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곧 교육철학의 부재不在를 뜻한다. 따라서 오늘날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교육철학의 확립이며, 통일교육론統一敎育論은 바로 그러한 교육철학에 해당하는 것이다.

一. 통일교육론의 원리적 근거

(1) 하나님에의 닮기(상사성)와 3대축복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으며(창세기1:27), 창조가끝난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 만물을 주관하라(창세기1:28)는 축복(3대축복)을 내리셨다. 이것이 교육의 근거가 된다. 즉 교육이란 하나님을 닮도록 자녀를 양육시키는 것이며,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도록 인도하는 노력인 것이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신상神相과 신성神性

을 닮는다는 뜻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신상(성상․형상, 양성․음성, 그리고 개별상)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극히 미숙한 상태에 있으며, 성장하면서 점차로 하나님의 신상神相을 닮아간다. 신성神性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성장하면서, 신상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성상·형상性相․形狀, 양성·음성陽性․陰性, 개별상個別相을, 그리고 신성에있어서는 하나님의 심정心情, 이법理法, 창조성創造性 등을 온전히 닮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만물을 다스리라는 3대축복을 주

셨다. 즉, “생육하라”(be fruitful)는 말은 개체의 인격을 완성하라는뜻이며,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말은 부부가 되어 자손을 번식하라는 의미이고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는말은 만물을 주관主管하라는 의미이다. 이 3대축복을 성취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신상神相과 함께 하나님의 신성神性, 즉 심정, 이법, 창조성을 계승하여 완전성完全性, 번식성繁殖性, 주관성主管性에 있어서 하나님을온전히 닮게 되는 것이다(그림 5-1). 다음에 완전성, 번식성, 주관성에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이 3대축복에서 교육의 이념이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림 5-1. 하나님에의 닮기와 삼대축복

1) 완전성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 5:48)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으라는 뜻이다. 완전성이란 성상과 형상의 통일을 말한다. 하나님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심정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원만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를 이루고 있다. 이 상태가 완전성完全性

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는다는 것은 인간에 있어서도 심정을중심으로 하여 성상과 형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성

상․형상에는 ‘본성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네 가지의 유형類型이 있지만여기서는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을 말한다. 그래서 생심과 육심이 하나가되기 위해서는 생심이 주체主體, 육심이 대상對象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생심이 육심을 주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심은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고, 육심은 의식주 및 성性을 추구한다. 따라서 생심과 육심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진선미의 생활을 제1차적으로, 의식주의 생활을 제2차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심과 육심의 수수작용의 중심은 심정이며 사랑이다. 결국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진선미의 생활을 중심으로 의식주의 생활이 영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렸을 때는진선미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점차 심정이 발달하여 사랑을 중심한 참된 생활, 선한 생활, 아름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점차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아가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의 이중적 존재이므로 인간의 성장에는영인체의 성장과 육신의 성장이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육하라”라는 제1축복은 육신의 성장의 의미도 있으나, 주로 영인체의 성장, 즉심령기준心靈基準의 향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영인체의 성장이라 하더라도, 육신을 터로 하고서만, 즉 성상(영인체)과 형상(육신)의 수수작용에 의해서만 영인체가 성장한다. 이렇게 해서 다 성장하여 하나님의 완전성을 상속받으라는 뜻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제1의 예약축복豫約祝福이다.

2) 번식성

인간은 하나님의 번식성繁殖性을 닮으라는 것, 즉 인간이 자녀번식의

단계에까지 성장하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이 양성, 음성의 조화체이듯이이 하나님의 양성․음성의 조화를 닮으라는 뜻이다. 인간에 있어서의 양성․음성의 조화란 부부의 조화를 말한다. 하나님의 속성인 성상․형상의수수작용(통일)과, 양성․음성의 조화에 의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번식성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도 마음과 몸의 통일과 양성․음성(남성과 여성)의 조화에 의하여 자녀를 번식하게 된다.

하나님의 번식성을 닮으라는 말은, 하나님과 같이 양성․음성이 원만한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이 결혼을 하여 자녀를 번식하는 자격을 구비하도록 성장하라는 의미이다. 즉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고 여성은여성으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남편으로서의 도리,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 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성장하라는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자격을 갖춘 후 결혼하여 자녀를 번식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제2의 예약축복豫約祝福이 된다.

3) 주관성

그리고 또 인간은 하나님의 주관성主管性을 닮지 않으면 안 된다. 주관성을 닮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는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성이란 심정(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대상(신생체)을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창조성을 가지고 인간 및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하고자 한다. 본래, 인간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성을부여받아서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인간이 완성하면 그와 같은 능력을 구비하게 되며, 이것이 제3의 예약축복이다.

예컨대, 모든 산업활동은 일종의 만물주관에 해당한다. 농민이 논밭을 경작하는 것은 토지에 대한 주관이요, 노동자가 공장에서 기계를사용하여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데, 이것은 기계나 원료에 대한 주관이다. 또 어업은 바다나 물고기에 대한 인간의 주관이요, 임업은 산이나 나무에 대한 인간의 주관이다.

만물을 주관한다는 말은, 만물에 대하여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창조성은 4위기대의 측면에서 보면, ‘내적4위기대’와 ‘외적4위기대’를 형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농업에 있어서 농민은 새로운 아이디어(창조성)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보다 많은 수확을 올리고자 노력하게 된다. 상업에 있어서도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요컨대 농업, 광업, 공업, 상업, 임업, 어업 등은 모두 인간의 창조성 발휘의 대상이며 만물의 주관이다. 과학이나 예술도 만물주관의범주에 들어가며, 사회를 주관하는 것 즉 정치하는 것도 만물주관 속에 속한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계승할 수 없게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성은 심정을 중심한 창조성인데 타락으로 인하여 심정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자기 즉 이기심을 중심한 창조성이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창조성을 가지고 사회나 자연에피해를 끼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전쟁무기의 생산이라든지 공해증대 등이 그 예이다. 따라서 학생을 지도함에 있어서 교사들은 새로운교육론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심정을 중심한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즉하나님의 주관성을 닮도록 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인간의 성장과정

인간은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나, 태어나면서 곧바로 하나님을닮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일정한 성장기간이 없어서는 안 된다. 피조세계는 시간․공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소생蘇生, 장성長成, 완성完成의 3단계에 걸쳐 성장함으로써 비로소하나님을 닮게 된다. 닮되 완전성完全性, 번식성繁殖性, 주관성主管性을 닮게된다. 따라서 성장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으로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측면과 하나님의 양음의 조화의 측면,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성을닮아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3대축복이란, 인간이 완성한 후, 하나님의 완전성, 번식성, 주관성을 상속받는다는 의미의 축복이다. 그러므로3대축복은 ‘3대 예약축복’이다. 그런데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간에게주어진 이 3대축복은 성취되지 않았다. 이 3대축복은 창세기에 있는대로 “…… 하라”는 따위의 명령형식命令形式의 축복이다. 비록 인간은타락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취소된 것이 아니며, 명령(축복) 그 자체는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이것은 천의天意가 인간의 잠재의식을 통하여3대명령, 즉 3대축복을 성취하도록 작용해 온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간은 무의식중에도 3대축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된다. 즉타락사회에 있으면서도 인간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그와 같은 천의天意에 따라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인격적으로 성장하여, 좋은 상대를 찾아서 가정을 만들고 자연을 지배하거나 사회를 개선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이다. 인간에게 성장욕成長欲, 결혼욕結婚欲, 지배욕支配欲, 개선욕改善欲등이 있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욕망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달성되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인간시조의 타락

때문이었다.

여하간에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 인간은 3대축복을 완성하기 위하여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이외의 만물도 성장한다. 그런데 만물은 원리자체의 자율성自律性과 주관성主管性에 의해 성장한다. 즉 생명이지향하는 대로 맡겨두면 자연히 성장하는 것이다. 원리자체의 자율성,주관성이란 바로 생명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육신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원리자체의 자율성과 주관성에 의해 성장하지만, 영인체의 성장은 그렇지 않다. 영인체는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할때에만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인간에게 책임분담이 부과된 것은 그 때문이다. 책임분담에 의한 성장이란 인간이 자신의 책임과 노력에 의해인격을 향상시켜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의사로써 규범(원리)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체험)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류시조인 아담․해와는 하나님의 계명戒命을 지키면서 성장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한 다음, 부부가 되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지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해와는 전인류를 대표하는 최초의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자기의 책임분담 뿐만아니라 후손의 대부분의 책임분담까지도 메워져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해와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절대로 干涉하시지 않는다.

아담․해와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와 같은 무거운 책임분담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완수하게 되면, 그 자손들은 지극히 적은 분량의책임분담만으로도, 즉 부모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완성할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아담․해와의 경우, 이 3대축복을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순전히 자신들의 책임만으로 완성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해와가 완성한 뒤, 자녀들이 그 부모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른다는 말은 부모의 가르침 즉 부모의 교육을 자식들이 받아야 함을 뜻한다.

여기에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생긴다. 바꾸어 말하면자녀가 해야할 책임분담을 위해서 부모의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에 교육의 이념이 세워진다. 즉 부모가 자녀들을 가르쳐서 3대축복을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근본이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본래의 장소는 부모가 상주하는 가정이어야 한다. 그러나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정보량이나, 교육내용이 증대하게 되어 현실적으로 부모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교육의 장소는 필연적으로 가정에서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로 옮겨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대신 학교에서 스승이 부모를 대신하여 교육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는 부모의심정으로 부모를 대신해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본래의 교육의 모습이다.

(3) 교육의 3대이념

이리하여 통일교육론에 있어서의 교육의 목표는 피교육자로 하여금하나님의 완전성, 번식성, 주관성을 닮게 하는데 있다. 이것이 통일교육론의 교육의 이념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는 것을 개체완성(개성완성)이라 한다. 개체완성은 제1축복의 완성으로서 인격의 완성을 의미한다. 또 번식성을 닮는 것을 가정완성이라 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장차 결혼하여 부부의 조화를 나타내면서 원만한 가정을이루는 것을 말한다. 즉 제2축복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

관성을 닮는 것을 주관성완성이라 한다. 이것은 만물의 주관을 위해서하나님의 창조성을 닮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곧 제3축복의 완성을 뜻한다. 이리하여 통일교육론에 있어서의 교육의 3대이념은 제1축복완성을 위한 개체완성(개성완성)과 제2축복완성을 위한 가정완성과 제3축복완성을 위한 주관성완성인 것이다.

二. 교육의 3형태

이와 같은 이념을 기반으로 할 때, 인간에게는 어떤 형태의 교육이필요할까. 개체완성을 위해서는 심정교육心情敎育이 필요하고, 가정완성을 위해서는 규범교육規範敎育이 필요하고, 주관성완성을 위해서는 기술교육, 지식교육, 체육 등의 주관교육主管敎育이 필요하다. 다음에 이 세가지 교육의 형태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심정교육

1) 개체완성을 위한 교육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게 하는 교육이 심정교육이다.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의 통일상統一性을 닮는다는것으로서, 그것은 생심과 육심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수수작용을하여 하나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심정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통일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생심과 육심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정과 같은 심정

이 생심과 육심의 수수작용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심정이생심과 육심의 중심이 되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서, 개인의 중심이 되는 그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야 한다. 개인의 심정이하나님의 심정과 일치하도록 하는 교육을 심정교육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심정교육은 개체완성을 위한 교육이 된다.

심정교육心情敎育이란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처럼, 피교육자로 하여금 만민과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기르는 교육이다. 그와 같은 인간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피교육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학생(피교육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2) 하나님의 심정의 표현 형태

하나님의 심정은 창조와 복귀섭리의 과정을 통하여 세 가지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즉 소망의 심정, 슬픔의 심정, 고통의 심정이 그것이다.

① 소망의 심정

소망所望의 심정이란, 우주 창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으로서, 무한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가장 사랑하는 최초의 자녀, 아담과 해와를얻는다는 기대와 소망에 찬 기쁨의 감정을 말한다. 이 소망의 심정이달성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만족에 찬 기쁨을 느낀다. 실제로 아담․해와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의 기쁨은 표현할 길이 없는 만족에 찬 기쁨

이었던 것이다.

최근 물리학에 의하면, 150~200억년이라는 오랜 기간 전에 우주가생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은 통일원리로 볼 때 150~200억년전에 우주가 창조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하나님이 이렇게 오랜 기간을 두고 우주를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자녀인 아담․해와를 창조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한 자녀를 얻기 위한 한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와 같은 오랜 기간을 걸쳐서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다. 희망에 찬 하나님은 우주 창조의 과정이 아무리 길고 어렵더라도 그것이 길다거나 괴롭다고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기쁜 결과를바라보면서 일을 준비할 때는, 그 일이 아무리 어려운 것같이 예견되더라도 실제로 부딪혀 보면 그렇게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그 시간은 속히 흘러간다. 그것은 머지않아 기쁨이 다가온다는 소망이있기 때문이다. 기쁨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우리 인간들이경험하는, 그와 같은 기쁨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큰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담과 해와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의 기쁨은 비할바 없이 크고 깊은 것이었다.

② 슬픔의 심정

슬픔의 심정이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사망권내(사탄의 지배하)에 떨어졌을 때의 하나님의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의 감정과 같은 하나님의 감정을 뜻한다. 초창기때 선생님의설교 말씀이 아담․해와의 타락에 미치게 되면, 그 때의 하나님의 그 슬

픈 심정을 소개하면서 슬피 통곡하시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다. 그리고 아담․해와의 타락 직후부터 복귀섭리를 시작한 후에도 장차 뜻이이루어질 미래의 기쁨과 소망의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은 섭리를 진행시키셨지만,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그 섭리를 아랑곳 하지않고퇴폐와 난폭만을 일삼고 있었으니, 이 광경을 바라보시면서 그때마다또 다시 탄식하시고 슬퍼하시곤 하셨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역사를 섭리해 오신 하나님은 슬픔의 하나님인 동시에 恨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즉 창조할 때의 기대와 소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타락에 의해 초래된 하나님의 실망의 슬픔은 그 만큼 더 컸던 것이다.

속세俗世에서도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을 때 부모 특히 그 어미母는 심히도 애통해 한다. 비록 자식의 병이 위중해서 불치의 병이라고 선고되었더라도, 실제로 숨이 끊어지면 슬퍼서 어쩔 줄 모르는 모정이 적지 않다. 아담․해와가 타락했을 때의 하나님의 슬픈 심정과, 감옥과 같은 사탄세계에서 고생하는 아담․해와와 그 후손들의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의 심정은, 자식을 잃은 세속적인 부모의 슬픔과 비교도되지 않는 엄청난 것이었다. 역사이래 하나님처럼 슬픈 인간은 일찍이이 세上에 없었다는 것이 문 선생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심정의 모습의 하나였다.

③ 고통의 심정

고통의 심정이란 복귀섭리復歸攝理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섭리역사의중심인물들이 사탄과 그 앞잡이들로부터 박해를 당하면서 고통당하는것을 보실 때의 하나님의 아픈 감정을 말한다. 즉 타락한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되살리기 위해서 선지선열先知先烈과 성현聖賢들을 보냈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기는 커녕 도리어 그들을 박해하고 때로는 학살까지 하는 광경을 바라보실 때마다 하나님의 가슴은 못이 박히고 창에 찔리는듯이 아프셨던 것이다. 타락세계의 인간들을 기어이 살리시기 위해서 보내신 성현들이나 의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당하는 멸시蔑視와 조소嘲笑, 박해迫害와 천대賤待는 바로 하나님 자신에 대한 멸시와 조소로 느끼셨으며, 하나님 자신에 대한 박해와 천대로 느끼신 것이다. 이리하여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또 하나의심정은 고통의 심정이었다.

3) 하나님의 심정의 이해

심정교육을 위해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세 가지 심정을 피교육자(학생)들에게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복귀노정에서의 하나님의심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로 아담가정, 노아가정, 아브라함가정, 모세노정, 예수님노정 등의 복귀노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정을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문 선생께서 소개하신 하나님의 심정에 관한내용이다.

① 아담가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

소망 가운데 아담․해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한없는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으나, 아담․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한없이 비통해하셨다. 그래서 아담가정을 구하기 위하여 아담․해와의 자식인 가인과아벨에게 헌제獻祭를 시켰으며, 그 때 하나님은 그들의 헌제가 성공할것이라는 큰 소망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임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므로 아담․해와나 가인․아벨이 실패한다는 것을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탄하고 슬퍼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비록 인간이 타락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심정의 하나님이요, 따라서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타락의 가능성에 대한 예지豫知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헌제獻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헌제에 걸었던하나님의 기대는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헌제에 건 하나님의 소망이이처럼 강했기 때문에 헌제의 실수의 가능성에 대한 예지豫知는 완전히잊어버리고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심정(사랑)과 이성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심정의 충동력 그 자체는 이성을 압도하리만큼 강력한 것이다.

이리하여 아담․해와 때도 가인․아벨 때도 하나님의 심정은 성공만을원하신 소망의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아담․해와도, 가인․아벨도 실패하고 말았으므로 그 슬픔이 비길 데 없이 컸음은 상술한 바와 같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그 슬픔을 외부로 표현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런 장면마다 항상 사탄이 함께있어서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슬픔을 외부에 나타내면 슬픔에젖은 그 하나님의 모습이 사탄에게는 위신도 권위도 없는, 하나님답지않은 초라한 모습으로만 비쳐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누르면서 비장悲壯한 얼굴로그곳을 떠나가신 것이다. 이것이 초창기에 문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아담가정에서의 하나님의 심정이었다.

② 노아가정에서의 하나님의 심정

아담가정을 떠난 하나님은 160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광야曠野의길을 걸으시면서 지상의 협력자를 찾아 헤매셨다. 그동안 인간들은 모두 하나님에게 등을 돌릴 뿐, 누구도 하나님을 맞이하는 자가 없었다.

이리하여 세상에는 하나님이 머물 수 있는 한 채의 집도, 설 수 있는한 치의 땅도, 상대할 수 있는 사람 하나도 없었다. 문자 그대로 천애天涯

의 고독단신孤獨單身의 처량한 신세가 되어서 쓸쓸한 길을 걸으신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하나님은 한 사람의 협력자인 노아를 만나셨다. 하나님의 기쁨은 비할 데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섭리적 사정때문에 사랑하는 노아에게 엄한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이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노아는사람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모든 정성을 다 바쳐서120년간 방주를 지었다.

노아는 단지 하나님 앞에 세워진 종이요, 의인이었을 뿐, 하나님의아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종일지라도 그와 같은 노아를만난 것이 그렇게도 기뻐서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종의 입장으로 내려와 노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으신 것이다. 그런데 홍수심판을 거친뒤에 노아의 아들 함이 책임분담을 다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가정이었던 노아가정에 다시 사탄이 침범한결과가 되어 버렸다. 그 때 하나님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은 아픔과슬픔을 느끼면서 또 다시 쓸쓸한 모습으로 노아가정을 떠나신 것이다.

③ 아브라함가정에서의 하나님의 심정

그 후, 4백년만에 아브라함을 찾아 세웠다. 아브라함노정에 있어서아브라함에게 가장 괴로웠던 것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제물祭物로 바칠 때였다. 비둘기와 양과 암소를 바치는 상징헌제象徵獻祭

에 실패한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그 때 아들을 살릴 것인가, 천명天命에 따라 자식을 바칠 것인가, 즉 인륜人倫을 따를 것인가 천륜天倫을 따를 것인가를두고 아브라함은 고민했다. 자기의 아들을 바치는 대신 자신을 제물로바치고 싶을 정도로, 이삭을 살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그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인륜을 끊고 천륜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모리아 산을 향해 가는 3일간의 기간은, 아브라함에 있어서 천륜이냐, 인륜이냐를 택일해야 하는고뇌의 시간이었다. 그 때 하나님은 멀리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를 바쳐라”라는 엄한 명령을 내리시고는, 아브라함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아니 그 이상으로 괴로워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자식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을 들고 죽이려 했을 때, 하나님은 드디어 그를 죽이지 말라고 황급히 말리시면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내가 아노라”(창세기 22:12)고 말씀하셨다. 그 때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심정과,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과 충성은이미 그로 하여금 이삭을 죽였다는 입장에 서게 한 것이다. 따라서 이삭을 죽이지 않아도 죽인 것과 같은 조건條件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 죽이는 것을 중지시키고, 대신에 숫양을 번제로 드리게 했다. 여기에 “이제야 …… ”라고 하신 말씀 속에

는 그동안 아브라함에 대해 느끼셨던 하나님의 섭섭함과, 이삭헌제獻祭에서 보인 아브라함의 충성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이 함께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④ 모세노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

애급의 왕자로서 성장하던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민족이 받고 있는고통의 현장을 목격한 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복귀시키기로 작정하고 천신만고 끝에 그들을 광야로 인도했으나,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지도자인 모세에 대해 반역을하곤 했다. 한 번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의 금식을 마친 후, 두개의 석판을 받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보니 이스라엘백성들은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빌고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 불신의 행위를 보고 크게 화를 내면서 석판을 던져버렸다.

그 때 하나님은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나라가 되게 하리라”(출애급 32:9~10)고 하셨다.

그 때의 모세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이스라엘백성들의 불신이 괘씸했으나 “이 백성을 내가 진멸하겠다”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할 때,순간적으로 그의 애족愛族, 애국愛國의 심정이 솟구쳤다. 그리하여 그는어떠한 어려움이 있다해도 이 민족을 살리고 싶었으며, 할 수만 있으면 함께 가나안땅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매달려“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세기 32:12)라고 하면서 민족을 살려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은 모세의 그 애족심愛族心어린 호소의 기도를 용납하셔

서 드디어 이스라엘민족을 진멸코자 했던 뜻을 철회하신 것이다.

그런데 40년간 광야를 유랑流浪한 후,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마실 물조차 없다면서 모세를 또 원망하였다. 그 때 모세는 불신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 대한 노여움 때문에 한번 쳐야할 바위를 두 번 쳐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짓이었다. 그 후 하나님은 비스가 산상에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백성이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을 보여 주면서 “너는 ……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신명기 32:52)라고 하신 것이었다. 80 노구를 이끌고 40일금식을 두 번씩이나 했던 모세, 불신하는 민족을 붙들고 40년간이나신광야에서 고생했던 모세였다. 사실상 출애급의 주역인 모세를 가나안 땅에 인도하고 싶은 하나님이었지만 사탄의 참소 때문에 할 수 없이 눈앞에 있는 그 곳을 환상으로만 보여 주시고는 그를 버릴 수밖에없었던 하나님이었다.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슬픔과 아픔과 안타까움이 있었던 것이다.

⑤ 예수노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

구약성서에 기록된 대로(이사야 9:6) 예수님은 지상에 메시아로 오셨다. 온 땅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으면 안 될 구세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릴 때부터 배척排斥당하였다. 가족들이 예수를 몰랐고 유대교가 예수를 불신했으며, 결국 이스라엘백성들이 예수님을 쫓아낸것이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던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노정을 포함해서 33년간 쓸쓸하고 고독한생애를 보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人子는머리둘 곳이 없도다”(누가 9:58) 라고 하면서 그 고독한 심정을 토로吐

했으며,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눈물지으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은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누가 19:41~44)고 하면서 저주하기도 했다. 때로는 갈릴리 해변을 거닐면서 또는 선민選民이 아닌 사마리아 여인과 말을 나누면서(요한 4:7~26) 외로움을 달랬으며, 유대인의 지도자들보다 세리稅吏들과창기娼妓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마태 21:31)고 하면서 구세주이신자신을 몰라주는 교단들에 대한 섭섭함을 고백하기도 하셨다. 이 때하나님도 고독한 예수님과 더불어 고독한 길을 걸으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독생자獨生子 예수님의 그 처참한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는가. 너무나 참혹한모습을 하나님은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독생자를내려놓을 수 없는 사정을 한탄하시면서 얼굴을 돌리셨다. 그 장면이세 시간의 어둠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형十字架刑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고통은 예수님의 고통 이상의 것이었다.

4) 하나님의 심정의 소개

이상은 모두 초창기에 선생님께서 설교때마다 흐느껴 우시면서 소개하신 내용들이다. 곧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의 노정을 통하여 보여준 하나님의 심정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나 이민족異民族

에 있어서의 성현, 의인들의 수난의 노정 배후에도 그들을 인도하신하나님의 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심정교육에 있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정을 부모 혹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직접말씀으로써 들려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비디오 등의

매스컴이나 소설, 연극, 회화 등의 작품을 통해서 가르칠 수 있어야한다.

5) 실천을 통한 심정교육

하나님의 심정을 말로 알릴뿐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직접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에게진실로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안 된다. 먹이고 입히고 거처를 제공하고, 잠을 재우고 하는 일, 예절을 가르치는 일 등 가정에서 자식(자녀)들을 보살핌에 있어서 항상 지성어린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참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부모가계속해서 자식들에게 보인다면, 자식들은 그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면서 효도하게 되는 것은 물론 자식들 상호간에도 사랑을 실천하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이 부모의 참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자식들에게전달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사는 말과 행동의 실천을 통하여 하나님의 참사랑을 보여야 한다. 매 학과마다 정성을 다해서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아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내 자식처럼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주어야 한다. 학교교육은 가정교육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언어와 행동에 하나님의사랑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공사간公私間의 생활에 있어서의 선생의 말한마디, 행동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이 피교육자에게는 모두 배움의 교재가 되고 인격 형성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에 넘친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 아동들은 깊은 감동을 받게 되며, 그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게 될 뿐 아니라, 드디어 그 스승을 닮게 됨으로써 참사랑의 실천자가 되는 것이다. 이상이 가정과 학교에 있어서의 실천을통한 심정교육이다.

(2) 규범교육

1) 가정완성을 위한 교육

가정완성을 위한 교육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되었을 때하나님의 양․음의 조화를 닮을 수 있게 하는 교육으로서 본연의 부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이다. 인간타락이 규범(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데 있었으므로, 이 교육은 우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는 규범교육인 것이다. 남성은 남편으로서의 도리가,녀성은 아내로서의 도리가 몸에 배도록 배워 익히게 한다. 또 가정에서의 부모와 자녀의 본연적 자세나 형제자매의 자세도 규범교육에 포함된다.

규범교육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성性의 신성성神聖性, 신비성神秘性에 대하여 가르치는 일이다. 성은 결혼을 통하여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므로 그 때까지는 결코 범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일깨우는 일이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아담․해와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열매는 따 먹어서는 안 된다”(창세기 2:17)고 하셨다. 선악과는 해와의 성적性的사랑(‘원리강론’ 1987, p. 85)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악과善惡果

를 따먹지 말라’는 것은, 성(성적기관)은 신성한 것이므로 성적영역性的領域

을 범함으로써 성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명은 아담과 해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하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영원히 유효한 하늘의 지상명령인 것이다. 이것은 또 남녀가 결혼한 뒤에도, 다른 이성異性과의 탈선행위가 결코 허락되지 않는 지상명령이기도 하다. 따라서 규범교육이란 첫째로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양음의 조화를 닮도록 하는 교육,즉 부부의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부부 자격교육인 것이다.

2) 이법적 존재가 되게 하는 교육

인간은 logos(이법)로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규범교육은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로고스적 존재, 이법적理法的 존재가 되도록, 즉 천도를 따를수 있게 하는 교육으로서 이법교육이라고도 한다. 천도란 우주를 꿰뚫고 작용하고 있는 법칙으로서 수수작용의 법칙을 말한다. 그런데 이천도에서 두 종류의 법칙, 즉 자연법칙自然法則과 가치법칙價値法則이 도출되는데 이 중의 가치법칙이 바로 규범이다. 우주에 종적질서와 횡적질서가 있는 것처럼 가정에도 종적질서와 횡적질서가 있다. 그리하여 가정에는 이 두 질서에 대응하는 가치관이 성립한다. 즉 종적가치관과횡적가치관이 그것이다. 그 밖에 개인적 가치관이 있는 바, 그것들에대해서는 이미 ‘가치론’에서 언급한 대로이다.

규범교육은 심정교육과 병행하여 실시되어야 한다. 규범교육 그 자체는 의무만을 강요하기 쉽기 때문이다. 규범이란, “ …… 해서는 안된다”라든가, “ ……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행위를 규제하는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그 규범은 형식화되거나 율법적인 것이 되기 쉽다. 따라서 규범교육은 사랑의 분위기속에서 실시되어

야 한다. 심정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규범없이 무턱대고 하는 사랑을 일반적으로 익애溺愛라고 한다. 그와같은 사랑으로 자식을 대하면 자식은 마침내 분별력이 없어지고 부모나 교사를 경시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이나 교사의 사랑에는 어딘지모르게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랑은 로고스를 터로 한 사랑이아니면 안 되며, 또 사랑은 적게 베풀고 규범만을 강조하면, 아동들은구속감을 느껴서 부모나 교사를 싫어하게 된다. 사랑은 규범 아래에있지 아니하고 그 위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자식이나 아동이 비록 규범을 한 두번 지키지 않았더라도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용서해 주어야한다.

사랑과 규범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은 원만하고(둥글고)규범은 직선적이기 때문에 사랑과 규범이 통일된 인간은 원과 직선을통일적으로 지닌 인격자가 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려 하지만, 규범은 엄하게 규제하고자 하기 때문에 규범교육은 심정교육과 통일되어야 한다. 즉 가정과 학교내에 사랑의 분위기가충만된 가운데서 아동의 규범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규범 때문에 사랑이 냉각되면 그 규범은 형식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자란 가장원만하면서도 엄격한 면을 갖춘 사람, 즉 양면성을 통일적으로 구비한사람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인격을 가진 인간은 어떤 때는 대단히 엄하고, 또 어느 때는 매우 온화하며, 때와 장소에 따라 언제든지 어울리는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다.

(3) 주관교육(지식교육, 기술교육, 체육)

1) 주관성완성을 위한 교육

마지막으로 주관교육은 주관성완성을 위한 교육이다. 주관성완성을위해서는, 먼저 주관의 대상에 대한 정보, 즉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바, 이것을 위해서 첫째로 지식교육(지육知育)이 필요하다. 다음은 대상을 주관하는데 필요한 창조성을 개발하기 위해서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이 기술교육(기육技育)이다. 그리고 주관主管을 잘 하려면 주관의 주체인 인간은 체력을 증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위한 교육이 체육이다. 이상의 지육, 기육, 체육을 합해서주관교육이라고 한다. 한편 지육知育에 있어서 주관에 필요한 지식과 학문은 주관의 대상의 영역에 따라서 자연과학을 위시하여 정치, 경제,사회,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분야 등의 활동도 모두 만물주관의 개념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기육技育에있어서의 기술은 만물주관의 직접적인 手法으로서 주관교육의 중심이되며, 체육體育에 있어서의 체위體位의 향상과 체력의 증진도 만물주관에긴요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기술교육이나 체육에도 다시 세분된 전문분야가 있다. 그리고 예술에 관한 교육, 즉 예능교육도 일종의 기술교육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주관교육은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한 수단을 배우는 것이다. 창조성은 천부적인 것으로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천적인 가능성으로서 구비하고 있지만 이것을 현실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관교육이 필요하다.

2) 창조성의 개발과 2단구조의 형성

창조성의 개발이란, 요컨대 하나님의 창조의 2단구조를 본받아 ‘내적사위기대’ 형성의 능력을 증진시키고 ‘외적사위기대’ 형성의 숙련도를 높인다는 뜻이다. 내적사위기대 형성의 능력이란 로고스의 형성 능력, 즉 구상의 능력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교육을 통하여 지식을 많이 획득하여 내적형상內的形狀(관념, 개념 등)의 내용을 질적, 양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얻은 지식(정보)이 많을수록 구상이 풍부해진다. 로고스를 형성(구상)한다는 것은 소위 아이디어의 개발을 뜻하며, 산업에 있어서의 기술혁신(innovation)도 부단한 로고스형성(구상)의 반복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다음에 외적사위기대 형성의 능력을 양성한다는 것은 일정한 구상에따라 도구나 재료를 사용하여 구상을 실체화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즉 외적수수작용(수기手技)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교육이 필요하다. 또 신체적 조건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체육에 의한 체력의 증진도 필요하다.

3) 보편교육을 기반으로 한 주관교육

주관교육은 심정교육 및 규범교육을 기반으로 하되 그것들과 병행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교육이나 기술교육이나 체육은 심정(사랑)과 규범에 근거해야 비로소 건전한 것이 되고 창조성이 충분히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은 전인류가 모두 공통적으로 받아야 할 교육이므로 보편교육普遍敎育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주관교육은 개인의 자질에 따라 배우는 영역으로서 어떤 사람은 자연과학, 어떤 사람은 문학,

또 어떤 사람은 경제학을 전공하는 등 원칙적으로 개별교육個別敎育이 된다.

여기에서 보편교육과 개별교육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관계에 있다고할 수 있다.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은 정신적 교육, 즉 마음을 대상으로하는 교육이며, 주관교육은 만물을 주관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교육(심정교육, 규범교육)과 개별교육(주관교육)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병행하여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균형교육均衡敎育

(balanced education)이다(그림 5-2).

그리스시대나 중세, 근세에도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사랑의 교육이 있었고, 윤리․도덕교육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것들이 거의 무시되기에 이르렀으며, 교육은 거의 전부가 지식편중,기술편중의 소위 불균형교육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인간성의 건전한성장이 지장을 받기에 이르렀으며 따라서 여기에 새로운 교육론이 나타나서 새로운 차원에서 참된 사랑의 교육 특히 윤리․도덕교육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지식교육과 기술교육이행해져야 하며 이러한 균형교육均衡敎育이 시행될 때 비로소 과학기술이보다 선한 방향으로 지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해문제나자연의 파괴 등의 문제도 자연히 해결되어 갈 것이며 교사들도 이와같은 교육을 통하여 교사로서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 5-2. 교육의 보편성과 개별성

여기서 다시 부언附言하거니와 교육의 원점原點은 가정교육에 있다. 가정교육이 연장, 확대, 발전한 것이 학교교육이다. 따라서 가정교육과학교교육이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보편교육으로서의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이 제대로 시항되기 어렵게 되며, 따라서 교육의 통일성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三. 피교육자의 이상상

역사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여러 교육론이 발표되었으며, 또한 각자의 교육이념에 의해서 양육하려는 나름대로의인간상이 있었다. 통일교육론에 있어서도 역시 교육에 의해서 양성해내려는 이상적理想的 인간상이 있다. 통일사상의 교육론에서 규정하는피교육자의 이상상理想像은, 첫째 인격자人格者, 둘째 선민善民, 셋째 천재天才

이다. 이것은 각각 심정교육, 규범교육, 주관교육에 대응하는 이상상이다. 따라서 교육을 이상적 인간상이라는 면에서 볼 때, 심정교육은인격자교육, 규범교육은 선민교육善民敎育, 주관교육은 천재교육天才敎育이라고 할 수 있다.

(1) 인격자 교육

인격자란, 심정교육에 의해서 형성되는 인간상이다. 따라서 인격자교육은 피교육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하도록 지도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인격자가 되게

하는 교육이다. 심정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랑의 원천이며, 인격의 핵심이다. 심정(사랑)이 결여되면 아무리 지식을 많이 가진 자라 해도 또 아무리 체력이 좋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라 해도 인격자가 될수는 없다. 세속적인 개념으로서의 인격이란 일정한 덕성과 지식과 건강을 갖춘 인간을 말하지만, 통일사상에 있어서의 인격자란, 하나님의심정을 체휼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면 이상적인 인격자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심정(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지․정․의의 기능이 균형적으로 발달한 전인적품격全人的 品格을 지닌 완성한 인간을 말한다. 인격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살기 때문에 만인萬人과 만물萬物에 대하여 언제나 참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충효의 정성으로 그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 드리며, 하나님의 원수에 대해서는 공적인 적개심, 즉 공분심을 지니면서도 원수까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그참사랑을 이어받아서 눈물을 머금고 그 원수를 용서한다.

평소에는 항상 온유겸손의 덕과 온정이 넘치는 자세를 갖추고 종적횡적 가치관을 실천한다. 법도와 사랑의 실천자이므로 타인他人에 대해서는 가장 부드러우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가장 엄격하다. 대인관계에있어서는 사랑과 법도의 통일을 생활화한다. 법도없는 사랑은 아동들을 나역懦弱하게 하며, 사랑없는 법도는 구속감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심정교육에 의해서 형성되는 인격자의 모습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격자란 만인과 만물에 대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실천하는 사람이다.

(2) 선민교육

선민善民이란 성품이 선한 국민이라는 뜻으로서 규범교육에 의해서형성되는 인간의 이상상理想像이다. 규범교육은 보통 학교에서 행해지지만 그 기반은 가정에 있다. 가정은 우주질서의 축소체로서 사회, 국가,세계는 가정의 질서체계를 확대한 것이다. 따라서 가정에서 규범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사회, 국가, 세계에서의 규범생활을 잘 지킬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은 선한 가정인이면서 선한 사회인이고, 선한 국가인이면서, 선한 세계인이 되는 것이다. 즉 규범교육을 통해서 선한 가정인이 되면 사회, 국가, 세계 등 어느 장소에 처하더라도 그때그때의규범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

또한 지상에서 선민으로서 생활하면 영계靈界에 가서도 마찬가지로선한 영계인이 된다. 지상에서나 영계에서나 동일한 선한 생활을 하게되므로 이러한 선민은 바로 선의 천주인天宙人인 것이다.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에서의 선민의 생활이 바로 천국생활이다.

(3) 천재교육

주관교육主管敎育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의 이상상은 천재天才이다. 천재란 창조성이 풍부한 사람을 말하는데, 인간은 본래 모두 천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거의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여받은 창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재’라는 말 자체가 “하늘이 준 재능才能”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어받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능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선천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주어진

창조성을 100% 발휘하면 그대로 천재가 된다. 그러나 창조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이 바로 주관교육이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주관교육은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을 기반으로하고 병행된다. 즉 주관교육은 균형교육均衡敎育의 일환으로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창조성이 나타난다. 심정교육이나 규범교육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전혀 행하여지지 않는다면 창조성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 예컨대 음악적인 창조성을 가진 아동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부모가 항상 불화하고 그아동을 냉대하거나 학대하는 일이 잦을 경우, 그 아이는 심정적으로상처를 받으면서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며, 피아노를 쳐도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감정이 불안한 상태에서 피아노를 치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동은 아무리 훌륭한 음악가적 창조성을 가능성으로서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창조성의 발로發露는 불화不和한 가정환경에의해서 지장을 받게 된다.

인간에게는 개성이 주어져 있으므로 창조성에는 특성이 있다. 어떤사람에게는 음악적音樂的인 창조성이, 어떤 사람에게는 수학적數學的인 창조성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치적政治的인 창조성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사업적事業的인 창조성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인各人이 자기에게 주어진 창조성을 충분히 발휘하면, 음악의 천재가 되고, 수학의 천재가 되고, 정치의 천재가 되고, 기업경영의 천재가 될 것이다. 즉 각사람은 개성에 맞는 특유한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받은 창조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으며, 천재가 되기 어려운 여건속

에 머물게 되었다. 현실은 수만명중 한 사람이 천재가 될 수 있을 정도일 뿐, 대부분의 인간은 거의 범재凡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것이타락한 사회에서의 주관교육의 한 단면이다.

천재교육에 있어서는 영계의 협조를 얻을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균형교육均衡敎育을 실시하게 되면, 선령善靈들이 영적으로 협조하기 때문에 아이의 천재적 소질은 빠르게 발휘되는 것이다.

四. 종래의 교육관

다음에는 종래의 대표적인 교육관의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종래의 교육관과 통일교육론을 비교함으로써 통일교육론의 역사적인 의의가 보다 더 뚜렷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1) 그리스의 교육관(플라톤의 교육관)

플라톤(Platon, 427~347 B.C.)에 의하면, 인간의 혼은 정욕적부분情慾的部分

, 기개적부분氣槪的部分, 이성적부분理性的部分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정욕적부분의 덕을 절제, 기개적부분의 덕을 용기, 이성적부분의덕을 지혜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덕을 조화시킬 때 나타나는덕을 정의라고 하였다. 국가에는 이 혼의 세 부분에 대응하는 세 가지계급이 있다. 농·공·상農․工․商의 서민은 정욕적부분에 대응하는 하층계급下層階級

이며, 군·관료軍․官僚는 기개적부분에 대응하는 중간계급이며, 철학

자는 이성적부분에 대응하는 상층계급上層階級이다.

그리고 선의 이데아를 인식한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할 때, 비로소이상국가가 실현된다고 하였다. 플라톤에 있어서의 교육의 당면 목적은 사람들을 이데아의 세계에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것은 소수의 지배계급인 철학자를 양성하는 교육이었으며, 이상적 인간상은 ‘애지자愛智者(철학자)’이며, 동시에 심신이 조화하고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4덕을 겸비한 ‘조화적 인간’이었다. 그리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의이데아가 실현된 이상국가를 이룩하는 것이다.

(2) 중세의 기독교적 교육관

그리스시대의 교육이 사회에 봉사하는 선한 인간을 목표로 한데 대하여 중세의 기독교사회에 있어서는 기독교를 이상으로 하는 인간의육성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존중하고이웃을 사랑하는 “종교적 인간”이 이상적 인간상이었다. 특히 수도원에서 이러한 인간상을 위한 엄격한 교육이 행해졌으며, 그것은 순결純潔

, 청빈淸貧, 복종服從을 덕으로 삼고 완전한 영적생활을 영위하게 하는교육이었다. 즉 교육의 목적은 기독교적 인간의 육성인 동시에 내세의생활에 대한 준비였다.

(3) 르네상스시대의 교육관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오면서 복종이나 금욕禁慾을 덕으로 하는 신본주

의神本主義의 세계관을 타파하고 인간성의 존중을 중시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의 세계관이 출현했다. 인본주의의 교육관을 대표하는 사람은 에라스무스(D. Erasmus, 1466~1515)로서 그의 교육의 목적은 본성적으로자유인인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인간성의 완전한 발달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개성적인 풍부한 교양을 몸에 지니게 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문학, 미술, 과학 등의 인문적 교양人文的 敎養을 강조했으며 중세시대에 무시되었던 체육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르네상스시대의이상적 인간상은 심신이 조화적으로 발달한 “만능의 교양인”이었다.

에라스무스의, 인간 본성에의 복귀 사상은 코메니우스와 루소에로 계승된다.

(4) 코메니우스의 교육관

코메니우스(J. A. Comenius, 1592~1670)에 있어서 인생의 구극究極의 이상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내세에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며,현세의 생활은 그 준비였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첫째, 모든 사물을알고 둘째, 사물 및 자기를 통제할 줄 아는 자가 되며 셋째, 하나님을닮은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지적교육知的敎育, 도덕적교육道德的敎育, 종교적교육宗敎的敎育의 3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모든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 코메니우스의 교육론의 주제였기때문에 그의 교육사상을 범지주의汎知主義(pansophism)1)라고 불리운다.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교육이 달성되는 소질이 본래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으며, 이 내재하는 소질, 즉 “자연”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의역할이라고 생각하였다. 코메니우스는 또 교육은 본래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렇게 안 될 경우에 부모를 대신해서 학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코메니우스에 의하면, 이상적 인간상은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에 관한 참된 지식의 모든 것을 아는 “범지인汎知人”이며, 교육의 목적은 모든 것을 아는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을 육성하여 기독교에 의한 세계의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5) 루소의 교육관

계몽시대의 인물인 루소(J. J. Rousseau, 1712~1778)는 “에밀”이라는 교육소설을 저술하고, “(인간은) 만물을 만드는 자(창조주)의 손을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에 넘어오면서 모든 것이 악하게 된다.”2)고 하면서 자식을 자연 그대로 교육할 것을 주장하였다.

즉, 인간은 본래 내재하는 “자연의 선성善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그대로의 모습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인간의 자연능력의개발에 방해가 되는 요인 -기성旣成의 체계적 문화나 도덕적․종교적 관념의 주입注入- 을 제거하면서 인간을 자연 그대로 성장시켜 간다는 것이 루소가 주장하는 교육이다. 그런데 현실의 타락한 사회에서 자연그대로의 인간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공화제사회共和制社會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과 사회속의 시민이 양립한다고생각하고, 사회인 교육社會人 敎育의 필연성도 주장했다.

루소의 교육관에서의 이상적 인간상은, “자연인自然人”이며, 교육의 목적은 자연인을 육성하고, 자연인이 시민이 되는 이상적인 공화제사회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루소의 교육관은 칸트, 페스탈로치, 헤르바르

트, 듀이 등으로 계승되어 갔다.

(6) 칸트의 교육관

칸트(I. Kant, 1724~1804)는 “인간은 교육받지 않으면 안 되는 유일한 피조물이다”3)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4) 라고 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교육의 사명은 인간의 자연적소질을 조화적으로 발달시켜 도덕률에 따르면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있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루소의 영향이 있었다. 또칸트는, 교육은 특정한 사회에 순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일반적으로 인간 그 자체의 완성을 목표로 삼으며, 세계주의적이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칸트는 인간의 본성에 근본악根本惡이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악이란 도덕률을 자기애自己愛에 종속從屬시킴으로 해서 성립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적인 전환(회심)에 의해서 도덕률을 상위에 두지 않으면안 된다고 했으며, 의무가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덕의 존중과 과학에의 신뢰 그리고 하나님에의 경외敬畏가 칸트의 교육관․인간관의 특징이다. 칸트에 있어서 이상적 인간상은 “선인善人”이며, 교육의 목적은 세계주의적인 인간성의 완성이며, 구극적으로는 국제적인 영구평화永久平和의 확립이었다.

(7) 페스탈로치의 교육관

페스탈로치(J. H. Pestalozzi, 1741~1827)는 루소의 영향을 받아

“자연自然”에 입각한 교육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에 내재內在하고 있는 고귀한 소질인 인간성을 해방하려고 하였다. 단순한 것, 순수한 것을 기초로 하면서 근본원리를 직감함으로써 인간은 선한 행위를 하게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교육은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시작한다고 하면서 가정교육이 교육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페스탈로치는 인간성을 구성하는 데는 세 가지의 근본된 힘, 즉 정신력精神力, 심정력心情力, 기술력技術力에 있다고 보고, 이것은 각각 머리,심장, 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정신력의 교육이 지식의교육이며, 심정력의 교육이 도덕․종교교육이며, 기술력의 교육이 기술교육(체육을 포함)이라고 하였다. 이것들을 통일하는 내적인 힘이 사랑이다. 사랑은 심정력의 기본이며, 도덕․종교교육의 추진력이다. 따라서도덕․종교교육을 중심으로 이 세 가지 교육은 조화롭게 통일된다고 주장하였다.5)

페스탈로치가 생각한 이상적 인간상은 세 가지의 근본된 힘이 조화롭게 발달한 인간, 즉 “전인全人”이었다. 그는 사랑과 신앙을 중심으로한 전인격적 교육全人格的敎育을 주장한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성을도야陶冶하여 도덕적․종교적인 국가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8) 프뢰벨의 교육관

페스탈로치를 신봉하며 페스탈로치의 인간교육을 체계적으로 구성한사람이 프뢰벨(F. Frobel, 1782~1852)이다. 프뢰벨에 의하면, 자연과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통일되고,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신성神性이 만물의 본성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본성을 표현하고, 계시하

고, 발전시키는 것이 만물의 사명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에 내재하는 신성을 생활속에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며, 교육은 그런 방향으로인도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적인것의 표현이야말로 바로 모든 교육, 모든 생명의 목적인 동시에 노력의 목표이며 인간의 유일한 사명이다.”6)

프뢰벨은 특히 유아교육과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아를자연 그대로 성장시키는 장소는 가정이며, 교사는 부모이다’라는 것이프뢰벨이 주장하는 교육의 기본이다. 그리고 페스탈로치와 마찬가지로그도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 가정교육을 보충하기 위하여 유치원(Kindergarten)이 필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유치원의 창립자가 되었다.

루소가 주장한 선성을 가진 “자연인”은 페스탈로치에 이르러 고귀한인간성을 가진 “전인全人”이 되었는데, 프뢰벨에 있어서의 이상적 인간상은 “신성을 가진 인간”이 되었다.

(9) 헤르바르트의 교육관

헤르바르트(J. F. Herbart, 1776~1841)는 교육학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자 하였으며, 이 때 윤리학과 심리학을 기초과학으로 채택하고자 시도하였다. 즉 윤리학을 기초로 하여 교육의 목적을 세우고, 심리학을 기초로 하여 교육의 방법을 수립코자 했던 것이다.

먼저, 헤르바르트는 칸트의 주장대로 이상적 인간상을 “선인善人”이라고 규정하고, 교육의 목적은 도덕적 품성의 도야陶冶에 있다고 하였다.

그 다음 심리학의 입장에서 교육의 방법을 추구하였다. 헤르바르트는

인간의 정신생활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표상表象”이며, 표상의 집합인사상권思想圈(Gedankenkreis)을 도야陶冶함으로써 도덕적 품성이 도야된다고 생각하였다. 즉 지식을 교수敎授하고 그것으로 도덕적 품성을 형성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헤르바르트는 표상의 형성에 있어서 가르침 즉 교수敎授(Unterricht)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교수의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헤르바르트의 이론을 나중에 수정한 헤르바르트학파에 의하면, 교수의 과정은 예비豫備, 제시提示, 비교比較, 총괄總括, 응용應用의 5단계였다.

(10) 듀이의 교육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행동을 인생의 중심에 두는 프래그머티즘의 인생관이 생겨났다. 듀이(J. Dewey, 1859~1952)는 지성知性

은 행동에 유용한 도구道具이며, 사고思考는 인간이 환경을 통어統御하는노력의 과정에서 발전한다고 주장하면서 도구주의(instrumentalism)를주창하였다.

듀이는 “교육은 성장하는 것과 전적으로 일체이며, 그것은 그 자체를 초월하는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는다”7)라고 말하고, 미리 제시할수 있는 교육의 목적을 부정하고, 성장成長으로서의 교육을 주장하였다.

교육이란 생활상生活上의 통신(communication)에 의한 전달

再組織(transmission)이며,8) “체험을 부단히 재조직 (reorganization) 혹

改造은 개조 (reconstruction)하는 것”9)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달은 직접, 성인成人(교사)으로부터 아이들에게 행하는 것이 아니며 환경이라는매개물을 통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교육에

의하여 사회는 발전해 가는 것이다. 듀이가 의도한 것은 사회의 개조를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기술교육技術敎育이었다. 그의 교육관에 있어서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행동적 인간行動的 人間”이었다.

(11) 공산주의의 교육관

르크스나 레닌은 자본주의사회의 교육을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부르주아지 사회의 교육정책은 우민화정책愚民化政策10)이며, 교사들은 기업가의 치부致富를 위해서 아동의 두뇌頭腦를 가공하는 생산노동자이다.”11) 레닌에 의하면, 자본주의 교육은“부르주아지의 계급적인 지배의 도구道具”12)이며, “부르주아지를 위해서 순종적이며 약삭빠른 종복從僕, 자본의 의지의 집행자, 자본의 노예奴隷 13)

” 를 기르는 일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교육에 대하여 레닌은, 사회주의사회에 있어서 “학교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도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14)고 주장하고, “교사는 노동자 대중에게 공산주의의 정신을 심는 군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15)고 하였다.

공산주의교육의 목적은, 소련의 “국민교육기본법”(1973년)의 전문前文

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소연방蘇聯邦의 국민교육의 목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상으로 길리움을 받고 소비에트법과 사회주의 질서의 존중, 노동에 대한 공산주의적 태도의 정신으로 양육된 높은 교양을 가지고, 전면적으로 발달한 공산주의사회의 적극적인 건설자의육성에 있다.”16) 즉, 교육의 목적은 공산주의사회의 건설에 헌신적인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 인간상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17)이다.

그러면 공산주의교육은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개별적인 기술교육에 반대하고 총합기술교육總合技術敎育(polytechnism)을 중시한다. 그리고 총합기술교육은 노동과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주의사회에 있어서 개인과 집단에는 이해의 대립이 없으며, 또 집단을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집단주의교육集團主義敎育

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총합기술교육을 체계화한 사람이 크루프스카야(N. K. Krupskaya, 1869~1939)이며, 집단주의교육을 체계화한사람이 마카렌코(A. S. Makarenko, 1888~1939)였다.

(12) 민주주의의 교육관

민주주의의 교육이념이란, 민주주의사상에 기초를 둔 교육관으로서민주주의교육관의 형성에는 듀이의 교육관이 20세기의 전반을 통하여큰 역할을 다 하였다. 여기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민주주의의 교육이념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미국 교육사절단보고서”18) 에서 인용코자한다. 이 보고서는 먼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종지宗旨가 아니며, 인간의 해방된 힘을 모든 다양성속에 발

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다. 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

기 위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빛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멀리 있는 저 편

의 목표로서가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자유의 침투적浸透的인 정신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은 이러한 자유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의무는 권리가 서로 상쇄相殺하는 것을 방지한다. 나눠진 권리에 대해서

든지 메워진 의무에 대해서든지 평등한 취급의 음미는 민주주의의 근본

이다.”19)

그리고, 민주주의교육에 대하여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 생활에 적응하게 하는 교육제도는 개인의 가치와 존엄과의

인식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교과내용과 방법을 통하여

그것은 학문의 자유, 비판적인 능력의 훈련을 중요시할 것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발달단계에 있는 생애生涯의 능력의 범위 내에서 사실적 지식

에 관한 광범廣範한 토론을 장려할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학교의 일이

미리 규정된 교과 과정이나, 각 교과에 관하여 하나만이 인정된 교과서

에 한정되어서는(이들의 목적은) 수행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있

어서의 교육의 성공은 획일성이나 표준화에 의해서 측정될 수 없다. 교

육은 개인을, 사회의 책임 있는, 협력적인 일원一員이 되도록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20)

민주주의의 교육이념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준수하면서, 그리고 자아自我의 인격완성을 지향하면서 타인他人의 인격을 존중하며,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다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 즉 민주적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의 목적은 인격을 완성시키고 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으로 육성하는데 있으며, 민주주의 교육의 이상적 인간상은 ‘민주주의적 인격자’인 것이다.

五. 통일사상에서 본 종래의 교육관

그러면 종래의 교육론을 통일사상의 입장에서 평가해 보자.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인식한 철학자를 이상적 인간상이라 하고, 그와 같은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하면 이상국가가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시대에 있어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철학자는 출현하지않았고, 또 선의 이데아는 국가(폴리스)에서 실현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헬레니즘시대에 이르러, 폴리스의 붕괴와 더불어 이데아의 사상도붕괴되어 버렸다. 선의 이데아 사상이 막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는 한, 선의 기준은 정해질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이상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중세의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인간이 되도록교육한다고 했으나 그러한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서 십자가상十字架上

의 예수님의 희생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왜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같은 희생의 사랑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도대체 인간은 왜 사랑해야하는가가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기독교의 교육관으로는 인간성에 눈뜬 근대인들을, 확신을 가지고 인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르네상스시대의 교육은 억압抑壓되어 왔던 인간성을 해방한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될 만하지만, 16세기 중엽부터는 고전을 학습하는 일에국한되면서 교육은 형식화되어 갔다. 또 인간중심에 치우쳤기 때문에피교육자는 종교적인 도덕성을 점차 잃게 되었던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소질(자연)을 이끌어내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하였지만, 그 내재한다는 소질이 어떤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았다. 또 참된 지식을 얻으면 그것이 그대로 덕과 신앙으로연결된다고 하는 범지주의汎知主義에 문제가 있다. 통일사상에서 보면,참된 지식교육은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을 기반으로 할 때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코메니우스가 주장한 세 가지 교육은 통일교육론의 심정교육, 규범교육, 주관교육에 통하는 바 있다고 볼 수 있다.

루소도 인간을 자연 그대로 성장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그가 말하는 인간의 ‘자연’도 애매하였다. 인간의 성질을 무조건 선으로 규정한데도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심정(사랑)을 중심으로 한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을 행하지 않는 한, 아무리 자연 그대로 기른다 하더라도 본래의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칸트는 도덕교육에 중점을 두었으나 그의 도덕교육에는 확고한 기반이 없었다. 도덕의 기반이 되어야 할 하나님은 요청될 뿐인 존재에 불과해서 실존하고 있는지 없는지 애매했다. 또 칸트에 있어서는 개인적규범으로서의 도덕만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인간 상호간의 규범으로서의 윤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페스탈로치는 지식교육, 도덕․종교교육, 기술교육의 세 가지가 사랑에 의해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통일사상에서 말하는 심정교육을 기반으로 한 규범교육, 주관교육의 사고방식을닮고 있다(페스탈로치의 지식교육과 기술교육은 통일사상의 주관교육에 해당하고, 도덕․종교교육은 규범교육에 해당한다 하겠다). 또 전인격적 교육이라는 생각과, 가정이 교육의 기반이라는 생각도 통일교육론과 일치한다. 그러나 교육의 목적이 3대축복의 완성에 있다는 것을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 도덕․종교교육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

에 관한 이해가 不充分하였다. 그 때문에 페스탈로치의 교육이념도 확고한 것이 되지는 못하였다.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을 계승한 프뢰벨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있다. 그런데 프뢰벨은 이상적 인간상을 “신성神性을 가진 인간”이라고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닮도록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하는 통일교육론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헤르바르트는 관념(표상)과 그 상호관계가 감정이나 의지 등의 모든정신활동을 일으키는 근원이라고 생각하여 사상권思想圈을 도야함으로써도덕적품성道德的品性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볼때, 사상의 도야로 도덕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심정(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선의 가치를 추구하고 규범을 지킴으로써 도덕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듀이는 교육의 목적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성장과 진보를 강조했다.

그런데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지 않은 채 성장이나 진보를 주장한다고해서 인간 본성의 소외나 사회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오늘날 듀이의 교육방법을 실시해 온 바로 그 미국사회에서, 많은 사회적인 병폐가 나타나고 있다. 듀이가 목표로 한실천적인 기술교육은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 한,건전한 인간과 사회를 형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말하는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의 도구”로서의 자본주의교육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도구”로서의 사회주의교육은, 계급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사회를 본 교육관에 불과하다. 유물변증법이나 유물사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론의 터 위에 세워진 공산주의 교육관도 잘못된 것이다. 또,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전면

적全面的으로 발달한 인간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지․정․의의 기능이 균형적으로 발달한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노동도 할 수 있도록 노동자의 노동의 능력을 전면적으로 발달시킨다는 의미이다. 또 노동과 결부된 총합기술교육總合技術敎育을 주장했지만노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 교육이기 때문에 총합기술교육은 단순한 노동기능의 교육이 되어버렸다. 또 집단주의교육은 개성의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끝으로 민주주의의 교육은 개인의 가치나 존엄성을 기본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존중한 나머지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풍조를 낳았다. 또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인간성을 주장함으로써 가치관이 상대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의 혼란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터로 한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이 확고한 것이 되며, 사회의 조화와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