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공문/2006/01701 2007년 1월 협회주관 2세축복후보자 교육건(2007.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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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협회주관 2세축복후보자 교육건(2007. 1. 5)
기본 정보
| 게시번호 | 1701 |
|---|---|
| 공문번호 | 세가업무 제201호 |
| 시행일 | 2006.12.31 |
| 정렬일 | 2006-12-31 |
| 구분 | (구)가정국 |
| 작성자 | (구)가정국 |
| 원본 식별번호 | 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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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 원본: 공문(061231)_세가업무 제201호.hwp
HWP 추출 본문
<표>
각급 공직자께서는 세가본 제369호(가-15)(2006.11. 7) 2세축복 4억쌍7차 행정지침을 참조하여 2세축복후보자들이 협회에서 정한 자격요건 및 제출서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주십시오. 특별히 축복준비교육중 7일 원리수련과 7일 금식을 실시한후 협회주관 2세축복후보자 교육에 보내주십시오.
이번 협회교육 준비자들은 사후과제물을 협회교육 참석 이전에 메일로 제출해야 하고, 협회교육수료후 협회면접에 참석해야 하니 공문 (세가업무 제200호(2006.12.29))을 참조하셔서 날짜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07년 1월 협회주관 2세축복후보자 교육안내(2007. 1. 5. 금요일) ===
1. 일 시 : 2007년 1월 5일(금) 오전10시-오후5시(접수 오전9시30분부터)
2. 장 소 : 협회본부 4층(서울 용산구 청파동 소재)
3. 접 수
가. 접수비 : 개인당 25,000원(우리은행 165-357809-02-103 황인춘), 현장접수 3만원
나. 접수 : inspring@tongil.or.kr / 018-212-2690->협회교육, 이름, 핸드폰번호 기입
4. 접수마감 : 2007년 1월 4일(목) 저녁6시 / 접수확인은 개인별로 문자발송
5. 신청자격
가. 연령 : 만17세 이상 2세축복을 준비하는 축복후보자
나. 2세축복 협회교육을 2004년 이전에 받은 경우
다. 축복준비교육중 7일 원리수련과 7일 금식을 수료한 경우
6. 프로그램 : ‘축복이상’의 모델 : 참가정, ‘축복이상’의 상속과 안착 : 2세축복, 후천시대와 천일국 축복, 원리시험, 축복준비 오리엔테이션, 질의응답, 식사
7. 협회본부 찾아오는 방법(서울 용산구 청파동)
가. 지하철 4호선 숙대역에서 10번출구
나. 갈월동 지하차도 지나서 우측(서부역 방향) 200M 전방에 9층 흰색 건물.
다. 기차 : 서울역(서부역방향)->소아아동병원->우리은행->청파동삼거리(약800M)
8. 문의
가. 서울 용산구 청파동 1가 161번지 6층 협회본부 2세축복담당자 (140-869)
나. 전화 02-3271-0545, 0520, 팩스 02-711-2770, 이메일 inspring@tongil.or.kr
9. 사후과제물
가. HJN말씀(상속과 발전)읽고, 축복2세로써 본인의 사명과 역할 작성
나. 분 량 : 200자 전후(형식은 자유)
다. 제출시 파일명 : 11차 협회교육 OOO 사후과제물
라. 제출처 : inspring@tongil.or.kr
마. 기 간 : 교육참석전 1월4일 저녁까지
바. 말씀은 통일홈페이지(www.tongil.or.kr) “축복을 위한 가정국 카페” 자료실 혹은
첨부화일 참조
10. 첨부화일
사후과제(HJN_상속과발전)(한글).hwp =끝=
가정국장 김 영 준
공문 원본 HWP 미리보기: 협회공문_1704_공문(061231)_세가업무 제201호_HWP미리보기.png
첨부: 사후과제(HJN_상속과 발전)(한글).hwp
HWP 추출 본문
2세축복후보자 협회교육 사후 과제물 과제 : HJN말씀(상속과 발전)읽고, 축복2세로써 본인의 사명과 역할 작성 ->분 량 : 200자 전후(형식은 자유) ->제출시 파일명 : O차 협회교육 OOO 사후과제물 ->제출처 : inspring@tongil.or.kr ->기 간 : 교육후 일주일 이내 ->말씀은 통일홈페이지(www.tongil.or.kr) “축복을 위한 가정국 카페” 자료실에서 다운 ->교육수료여부 : 위 카페에서 확인 ->통일홈페이지 등업요청 : inspring@tongil.or.kr 로 이름과 아이디 적어서 등업요청 ❏ 훈독말씀 2 ❏ (2000년 4월 상속과 발전을 주제로 서울강북지역 순회집회에서 축복가정과 축복2세를 대상으로 현진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을 편집함) 오늘 제가 어떤 말씀을 하면 좋을까요? 무엇이든지요? 정말 그래도 될까요? 상속과 발전. 이것이 바로 이번 순회집회의 주제인데, 잊어버릴 뻔 했군요.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제가 말씀을 드리게 될 분들의 나이를 알고 싶습니다. 잠시 알아볼까요? 고등학생들, 손들어 보세요. 중학생들 손 들어 보세요. 대학생들 손들어 보세요. 25세에서 30세까지 손들어 보세요. 30에서 35세 손들어 보세요. 35세 이상 손들어 보세요... 예, 오늘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셨군요. 혹시 여러분들 중 이 자리에 계실 만큼 젊지 않으신 분들은, 정신을 젊게 하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 저의 말씀은 젊은이들을 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왜 젊은이들을 위한 말씀을 하느냐, 그것은 젊은이들이야 말로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이 다음 질문과 연결됩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바랍니까?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바랍니까? (미래요) 미래는 곧 가능성 <그림> 그래요. 저는 오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미래라고 하는 것은 ‘가능성’과 ‘앞으로 되어질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또 그것의 실현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약속과 희망과 발전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여러분께 한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계속해서 과거 속에 생각이 머무는 가운데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까? (아니요) 예를 들어, 만일 여기 미래가 있다 하고, 제가 미래를 보고 있다고 합시다. 제가 등을 돌려 뒤를 돌아 본다면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제 앞에 미래가 있고, 뒤에는 과거가 있으며, 저는 그 사이의 0점에 서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제가 만일 미래를 향하려 한다면, 저는 기꺼이 과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제가 만일 과거에만 집착한다면, 저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을 잊게 됩니다. 이것은 새로운 기로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저의 말씀은 젊은이들을 위한 내용이고, 미래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맞기위해 준비하는 부모의 마음 희망과 가능성. 제가 왜 이 내용을 말하려는 걸까요? 무엇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한국에 온 것일까요? 여기 계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섭리의 방향이 전환되었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에 들어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귀시대는 끝이 나고, 새시대가 밝아 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드리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내용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아버님의 생애 노정이, 참부모님의 생애 노정이 고통과 시련과 어려움들 만을 위한 노정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이상과 기대가 실현되어야 할 노정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중 부모이신 분들은, 자녀가 태어나기에 앞서 자녀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해 두고 싶어 하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그렇습니다) 자녀를 맞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해 4000년 동안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준비시키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한 준비된 기반위에 그 아들이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시켜드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에서 시작하여 국가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이 오실 모든 기반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예비되었던 사람들의 실패로 말미암아 4000년의 모든 기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과연 기독교의 출현이 필요하였을까요? 기독교의 출현은 아마도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은 내적 종교권과 세속권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므로 말미암아 지상에 모든 기반을 잃어 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출현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재림주님이 오시게 된 것도 예수님, 곧 하나님의 첫 아들이 이 땅에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모두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이는 바로 전세계에 걸쳐 그의 우주적 사명을 시작할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림> 예수님의 3년 남짓한 공생애 노정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게 바쳐졌습니다. 그의 제자 사도 바울이 그 사명을 팔레스타인 지역 너머로 전파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의 일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공생애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과만 더불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담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할 선택된 사람들이요, 선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함께 개인에서 시작하여 국가의 최고 수준까지 올라가셔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의 사명이라 할 때, 그것은 세 위치의 완성, 곧 장자권, 부모권, 왕권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그가 국가적 기반 위에 서셔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그 나라가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님은 팔레스타인의 국경을 넘어서 그의 천주적 사명을 완수하는데 있어 그러한 국가적 기반을 잘 활용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이스라엘 나라 역사 및 지리적 특징을 보면 매우 흥미롭니다. 이스라엘은 서구와 동양을 이어주는 길목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팔레스타인 연안지방 뿐 아니라 서구 로마제국에서 페르시아, 중국, 인도제국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교역이 일어나는 중심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크게 4개의 제국이 있었는데, 로마는 서구에 나머지 셋은 동양에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은 이러한 아시아의 3개 문화권으로의 관문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기독교의 본래 목적은 예수 사후에 기독교가 동양으로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값진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제자들은 동양에서부터 왔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독교는 동양으로 바로 전파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대신 기독교는 서쪽과 북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서쪽으로 계속 전파되어 마침내 19세기 미국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상륙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에서의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서구인들이 흔히 간과하고 있는 사실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이 아시아 국가중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의 인구를 살펴보면, 3분의 1 이상이 기독교인입니다. 아시아 국가중, 어느 곳도 기독교가 이 만큼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나라는 드뭅니다. 일본, 중국, 인도를 보더라도 한국 만큼 기독교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전파방법을 보면 한국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전파되었습니다. 한국 땅과 기독교의 첫 접촉은 다른 나라들처럼 선교사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7세기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의 저작들이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양반 계급들 중에 그 내용에 매우 감명을 받은 무리들이 있어, 기독교를 한국에 들여 오고자 중국에 대표를 파송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교는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들어 온 것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층 양반계층에 전파되어 졌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미국 선교사들과 함께 본격적인 틀을 갖추기 까지는 3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말입니다. 한국은 준비된 나라 저는 현재 UTS를 다니고 있습니다. 전 아직 학생입니다. 제가 몇살인지 아십니까? 저는 한국 나이로 32살입니다. 아무튼 저는 학생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의 간증담을 읽어보면, 그들은 이 나라가 기독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얼마나 많은 준비가 이미 되어있었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깜짝 놀랐었다고 합니다. 이들 선교사들은 중국, 일본, 한국에서 모두 선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전 아시아 국가들 중 한국이 메시아를 맞기에 가장 잘 예비된 나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빌리그레함 목사가 기독 신앙의 결정은 바로 한국에 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길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오늘은 간결하고 요점만을 듣기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간결히 요점만 전하겠습니다. 한국은 준비된 나라였습니다. 기독교는 준비된 나라 한국에 찾아와 재림주님, 곧 참부모님을 맞기 위한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40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그의 사명을 위해 준비해 오신 것처럼, 2000년동안 하나님은 한국의 기독교를 위한 준비를 해 오셨습니다. 재림주님이 오셔서 그 기반을 상속받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의 마음은 바로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해 놓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그러한 심정으로 참아버님을 위한 기반을 준비해 오셨던 것입니다. 기독교 전파역사에서도 짧게 설명했듯이 한국인의 잠재의식, 종교적 잠재의식 가운데 가장 깊숙히 씨를 심었던 것이 바로 미국의 기독교라는 것을 생각해 볼때, 한국의 기독교와 미국의 기독교는 매우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대략적인 한국의 역사를 알고 계시죠? 일제 강점기에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이었습니다. 한국과 미국 선교사들 간에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습니다. 다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더 자세히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만,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지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가 매우 친밀한 관계였음을 기억해 두십시오. 지금은 앞을 바라봐야 할 때 <그림> 1945년 한국의 기독교는 아버님을 맞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버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아버님은 국가적 차원 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 앞에 우뚝 서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세계적 기반 위에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사명을 시작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와 미국의 기독교는 놀랄만큼 서로 가까웠습니다. 미국 기독교인들은 한국 기독교인을 기독 신앙의 이상적 모델로 바라보았습니다. 아버님께서 미국을 처음 방문하셔서, ‘One Hope’ 순회강연을 시작하셨을 때,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아버님께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한국의 지도자들이 미국에 와서 아버님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여, 그들이 태도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아버님과 하나만 되었더라면, 아버님은 국가적 기반위에 서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준비된 한국의 기반 위에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례요한의 위치에 있던 예비된 이들이 아버님과 하나되지 못하였고, 따라서 예수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준비된 기반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아버님은 홀로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사명을 완수하실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셨던 것입니다. 6000년 성서 역사의 모든 준비된 기반을 잃어버리신 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은 광야노정을 시작하시고, 통일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결국 아버님의 본래 사명은 통일교회를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준비된 기반 위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반을 잃어 버리셨기 때문에, 아버님은 광야노정을 걸으시고 다시금 맨 손으로 그 기반을 이루셔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 노정이 다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개인 수준에서부터 다시 그 기반을 회복해 나아가야 하셨던 것입니다. 긴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것이 바로 우리교회가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했었던 이유입니다. 통일교회는 6000년의 성서 역사를 복귀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통일교회를 통한 세계적 기반이 건설되었기 때문에, 탕감노정은 종결되어졌습니다. 복귀노정, 탕감노정은 종결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새로운 시대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비록 기독교 기반을 잃어버렸었지만, 아버님은 지상천국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1945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통일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반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승리적 기반 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체적인 나라를 건설할 미래를 간직한 승리적 기반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이 때에, 여러분은 우리가 과거를 향해 뒤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앞을 내다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미래요) 맞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젊은이들은 복귀시대의 어려움에 노출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아주 순수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상 변화를 가져오는 주체는 젊은이 여러분이 저를 볼 때, 저는 아저씨입니다. 저는 30이 넘었으니 아저씨입니다.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저 역시 탕감복귀 시대를 경험했기에 많은 한을 가졌었습니다. 참 힘든 시절 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복귀시대로부터 많은 한을 갖고 계실 겁니다. 아주 많은 한의 내용들을... 어떤 분들은 한의 무게가 너무도 큰 나머지 더 이상 뜻길을 걷지 못하시고, 힘없이 주저 앉으시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행사를 할 때 마다, 모든 게 문제없다고 훈련받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6000년의 기간을 당신의 생애 가운데 전부 복귀하셔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6000년의 탕감역사를 부모님의 40년 노정을 통해 복귀하시려 하니 해마다 얼마나 많은 탕감조건이 세워져야 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어지러울 정도이실 겁니다. 한 조건을 넘어 또 한 조건이 기다리고 있고, 그 조건을 넘으면 또 다른 조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복귀시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승리적 기반 위해 서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이 세워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과거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한들을 그대로 가지고 가야할 때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것을 놔두고 가야 하겠습니까? 그 한들을 떨쳐버리지 않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고,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교회의 노정은 애급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던 유대인들의 노정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모세를 따라갈 때, 단지 목숨을 연명해 가는 것조차 괴롭고 힘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광야에서의 생존을 위한 40년간의 몸부림 끝에 종족을 유지하면서 겨우 가나안에 도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1세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가나안은 메시아가 오실 새로운 하나님 나라 건설의 희망과 약속을 담고 있는 땅이기에, 광야시대의 구습과 한을 가지고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나라를 이룰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과거의 짐을 갖지 않은 젊은이들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1세들은 뒤에 남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까? 아니라면, 왜 제가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상징적으로나 조건적으로 탕감복귀 시대에 여러분이 지녔던 한들을 떨쳐버리고, 여러분의 마음과 심정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 순수하고 무결한 마음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그 과거의 한의 내용들을 떨쳐버려야만 여러분은 미래의 가능성을 볼 수 있고, 또 다시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이상을 이루려는 여러분의 노력과 열망이 모아질 때, 하나님 나라 건설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오늘 저의 말씀은 젊은이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제가 젊은이라고 할 때, 그것은 나이가 젊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지향하고 꿈을 가지는 심정이 젊은 사람, 정신이 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1세분들은 과거의 한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보다 제 말씀을 소화하시는데 더 어려우실 수도 있으실 줄 압니다. 그러나 지금의 때는 새 시대가 밝아오고 있는 때이기에 과거의 한을 버리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상징적으로, 새로운 시대는 젊은이들에 의해 열어진다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여년간에 걸쳐 한국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그러한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그들은 정치 지도자들이었습니까? 아니면 경제 지도자들이었습니까? 그들은 기성세대들이었습니까? 젊은이들이었습니까? 누가 그러한 변화를 일으켜 왔습니까? 그러한 변화들 중에는 좋지 않은 것도 있지만, 과연 누가 그러한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이 논의를 좀 더 확장해 본다면 역사상에서 변화를 가져오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젊은이들입니까? 기성세대들입니까? 일반적으로 어떤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갑니까? (젊은세대요) 그것이 좋던 나쁘던 간에 일반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젊은이들입니다. 종적인 기대 없이는 발전 이룰 수 없어 <그림> 이제 우리는 비로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앞을 바라보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때 우리는 발전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이러한 변화의 패러다임 전환은 바로 젊은이들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기성세대 혹은 1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까? (아니오) 대답해 보세요. 제가 설명을 더 하기를 바래요? 아니면 여기서 그만 할까요. 제가 만일 여기서 그만 한다면, 1세분들은 ‘그래, 그래, 젊은이들이나 새 시대를 열어가겠지 뭐!’ 라고 하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실 겁니다. 변화는 우리 모두가 가져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취임 순회강연의 주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속과 발전입니다. 젊은이들이 가지는 문제이면서 또한 청년운동이 인류역사 가운데 지속적으로 펼쳐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횡적인 차원만 가지고는 완전한 통일성을 이루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대 차이라는 것을 예로 들어 봅시다. 제가 만일 종적인 기대 없이 저와 같은 세대들간의 국가와 인종을 넘어서는 화합과 형제애라고 하는 공통분모를 마련하였다고 합시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 새로운 세대가 생겨났다고 합시다. 그들은 우리들이 내렸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60년대에 사셨던 많은 분들은 이러한 청년문화, 청년운동, 청년혁명을 이루려 노력하셨겠지만, 그들의 자녀는 부모의 이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종적인 축 없이 횡적인 차원에 기반한 형제애에만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의 참된 화합이 왜 중요합니까? 왜 부모의 위치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각양 각색의 모든 형제 자매가 하나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종적인 기반 혹은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4위기대가 확립되어질 때 비로소 형제애도 확립되어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횡적 형제애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종적인 기대 곧 참부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착 시대의 초점은 가정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화합을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종적인 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염두해 두시길 바라면서, 2세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새 시대를 열어감에 있어 더 이상 1세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왜요? 그들은 바로 우리들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횡적인 기반이 생겨나기에 앞서 종적인 기반이 먼저 존재해야 합니다. 복귀시대에 있어서의 초점은 개인이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형태의 차원이었을까요? 정답은 개인입니다. 복귀시대의 초점은 개인에게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 부분 하나만 가지고 설명한다면, 그것만으로도 4시간짜리 말씀이 될 겁니다. 4시간 동안 설명하기를 바라십니까? (예) ‘예’ 라고 대답하고 있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웃음) 복귀시대의 초점은 개인에게 맞추어 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개인 차원에서 타락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개성 완성조차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모든 종교들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를 보십시오. 복귀시대의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고, 개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복귀시대에는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지어 있지 않았습니까? 36가정, 72가정, 124가정, 430가정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들은 축복을 받기 전에 여러 가지 탕감조건을 세워야 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과거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우리는 축복을 아주 자유롭게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때는 바로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졌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개인 차원에서 타락하였기 때문에,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완성한 남자와 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섭리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가정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본래 가지고 계셨던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기꺼이 과거의 한과 습성들을 모두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면, 여러분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개인이 강조되어지는 복귀시대의 관점에서 2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1세들의 소외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복귀의 시각을 갖느냐 아니면 정착시대의 시각을 갖느냐 하는 문제가 이 때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에 있어 과거의 앙금을 모두 뒤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말씀을 계속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여기서 빨리 결론짓기를 바랍니까? (계속이요) 재미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젊은이들이라 생각했는데, 여러분은 젊은이들에 대한 저의 예상을 깨뜨렸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간결하고 재미있는 것만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었거든요. 아마도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이라 다르긴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얼마든지 길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훌륭한 선생님 소질이 있습니다. 그걸 증명하길 원해요? 아니면 여기서 제 말을 그냥 받아들이겠어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제야 진실이 나오는군요. (웃음) 여러분은 제가 어떤 자격으로 이 곳에 와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생각하십니까? 아버님의 아들로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부회장으로서? 세계카프 회장으로서? 유나이티드 비전그룹의 회장으로서? 아니면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떤 직함과 지위를 가지고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큰형의 입장으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큰형이요) 오늘 저는 여러분의 형제로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형식은 무시합시다.(예) 누가 말했지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만,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미국식에 익숙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땀이 많이 나서 자켓을 벗고 싶습니다. 만일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만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에, 눈치를 좀 봐야돼요.(웃음) 여기서 여러분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재미있는 사실이 서양에 가면 조금 달라집니다. 서양에서는 개성이 잘 존중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개인은 언제나 전체 다음에 존재합니다. 여러분들 중 훈독대회에 대해 들어 보신 분 있습니까? 그런 분은 손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많지는 않군요. 그 대회에서 세계의 지도자들, 현재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ALC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분이 집에서 훈독회를 하듯이 아버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있습니다. 그 반응은 실로 놀랍습니다. 과거 그들의 생애에 걸쳐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박해와 반대를 받아왔던 원로 식구들은 그런 지도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와 같은 대회를 하라고 하는 아버님의 지시를 처음 접하고 다소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가셨던 한 대회를 제외하고 모든 훈독대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사실 전 그 대회를 준비하는 식구들의 보고를 믿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마터면 ‘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사실을 말해주시지요’ 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 대회에 대한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훈독대회에 참석해 왔었고, 그 자리에서 아버님을 대신해서 연설을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오늘날의 세계 환경에 대해 여러 정황들을 설명하며 다음의 이야기를 역설한 바 있습니다. 세계는 현재 공산주의의 붕괴이후 놀라운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위기를 직면하고 있는데, 그 위기는 다름 아닌 가정의 해체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의 해체가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을 보면, 과거 다른 어느때 보다 청소년들이 많은 방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 어느때 보다도 더 오늘날 청소년들이 자기 파괴적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현실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을 중심한 제도적 가정을 회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만 할 것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하나님 나라 각 시대에는 지도자들이 있어왔습니다. 직접 그런 어려움을 목격하고 미래를 위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런 지도자 말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이상가정의 문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 혹은 스승이 있다 한다면 그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누가 50년 동안 이상가정에 대해 설파하고 교육해 온 이가 있습니까? 누가 이상가정에 대한 말씀을 300권이상 저술한 이가 있습니까? 누가 수백명 이상의 젊은이와 부부와 가정을 모아 놓고, 축복 서약을 하도록 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을 여러분에게 하고 싶습니다. (참부모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아버지 밖에는 없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고칠 수 있는 공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가능성과 꿈이 있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바라십니까? 미래, 미래는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제가 한마당 대회에서 말씀드렸듯이, 미래는 하나의 커다란 빈 캔버스입니다. 다른 비유를 빌리자면, 미래는 추수기이며 소망찬 봄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빈 캔버스에 여러분이 그려야 할 것은 다름아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반드시 이루겠노라고 결의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추수기에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기꺼이 밭으로 뛰어 나가 일년 전에 심었던 작물을 추수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먼저 젊은이들에게 묻겠습니다. 누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요) 우리,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부모님들, 기성세대분들, 여러분은 그러한 일을 할 사람이 젊은이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우리 모두라 느끼십니까? 만일 1세와 2세 모두가 한 가족으로서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바란다면, 그 시대는 진정 오고야 말 것입니다. 아멘(박수) 벌써 10시군요. 시간이 참 빨리 흘렀네요. 아직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오늘은 이 만큼이 여러분이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믿습니다. 통일가의 2세권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키지 못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움직이지 않고는 그 어떠한 혁명도 성공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CARP가 먼저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CARP는 우리 교회 내에서도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서도 최일선에 서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활동이 실체적으로 보여질 때 CARP 자체는 물론 통일교회, 더 나아가 세계의 미래가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조건과 노력 없이 희망적 미래가 창출된다고 생각합니까? 어떤 조건과 노력을 강구하는 CARP, 통일가의 2세권이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이기주의를 버리고 공의(公義)를 위해 희생과 봉사의 정신과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적 미래의 주인이 되어야겠다는 의지입니다. CARP와 통일가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 주체성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금번 수련회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상속과 발전」입니다. CARP가 성장과 발전을 하려면 반드시 상속을 받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무엇을 상속받아야 합니까? 참부모님과 통일가 1세들의 삶의 정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사랑에 기초한 희생적 봉사와 위하는 삶입니다. 위타주의(為他主義)의 정신입니다. 고생과 고난으로 점철된 희생적 삶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것을 전수받기 위해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곧 참가정의 전통이요, 통일의 참된 힘이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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