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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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부터 시작한 것이 영수로 다수로 단위를 합하여 기일점으로 기동작용하는 바가 창조근본목적이다. 이 목적을 반하는 자는 어떤 자라는바는 잘 알 바는 영생생활세계를 파하는 자라는 바는 물론이다. 이런 자는 개인으로도 물론 국가적 세계적으로 대 벌받아야 한다. 그러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사회발전원인과 발전역사를 두고 하늘 섭리적 사명으로 비판하여보자.
유물론자들은 사회발전 원인에 대하여 정, 반, 합 논리를 주로 하고 있다. 그러면 세계상에는 원리적으로 본다면 그 노정은 원리에는 변함없이 그 존재위치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를 보면 어느 것이 참 원리적 입장인지 확실하게 보여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것은 아직까지 세계상에 참 원리가 나와있지 않음을 증거하는 사실이다. 지금 유물사관은 현세계에 있어서 크나큰 전정에 대한 인생에게 큰 난관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유물사관의 목적하는 인류역사발전은 어떤 곳으로 향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 역시 원시시대형을 향하여 발전단계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는 물론 발전한다. 발전은 완성을 목표하는 동시에 이상을 소개하는 바는 사실일터인데 그 발전최고지는 원시시대형으로 귀결하는가. 여기에 큰 의심이 생기는 문제이다. 그들이 말하는 정, 반, 합 발전이론은 근본적으로 그 목적표준에 있어서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금 퇴보하는 원리를 찾는다는 결론을 보니 그것 발전목적은 미완성형으로 된다. 반드시 발전하려면 정을 대하여 반이란 존재위치에서 시작을 본다면 정에 대하여 왜 반은 생기는 가는 미지이다. 그러면 왜 합하여 나가는가 그 나가는데는 필연적 종적 목적을 향하여 나간다. 그런 종점 목적은 딴 것으로 나타나서 정, 반, 합 논리의 이상형을 완성하여야 하는바인데 최종점에는 다시금 시작한 기점으로 귀결하니 그 발전논리에는 발전이 아닌 파괴형로를 취하였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면 정과 반이란 명사를 세운바는 그 원리로 보면 과연 유한바다. 본래 천지창조부터 정이란 존재에게는 반이란 명사는 없는바이다. 정이라면은 그 정중에는 소생으로부터 장성으로 장성으로부터 완성으로 하는 진리노정을 갖고 이변형을 보여주나 근본적으로는 변함이 아닌 완성노중에 서 있음을 보여줌에 불과하다. 또 반이란 존재가 있有다면 그 반이란 존재는 본래부터 있을 수 없는 바도 된다. 이 반이란 명사가 제일중요점으로 되어서 인류는 지금까지 미지의 중심을 잡게 하는 기원이된바이다. 원리를 중심한 세계에 반이란 존재할 수 없음이다. 그런데 반이란 존재가 생기는 것은 비원리로부터 시작이다. 이것의 주인공이 즉 사탄인바다.
그러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정, 반, 합 논리는 정이 먼저 할바가 아니고 반이 먼저 시작한 것이기에 정으로 되기 위하여는 노정이 인류발전역사면서 발전원인인바다. 본래 세계상에는 정이먼저 시작본바가 아니고 반이 시작하였기에 정으로 하려니 역사는 원점지인 원시시대형으로 나가고자 하는 바는 기본 정으로 출발본바와 같이하여 찾아 맞추기 위하는바다. 그러니 유물론자들이 발전사를 말하려면 정을 먼저 세우지 말고 반을 먼저 시작으로
잡아야 한다. 본래부터 세계는 원리세계이니 반이란 존재는 완성노정을 취할 수 없는 것은 대상목적을 위한 세계의 근본인바다. 그러니 반은 미완성이다. 즉 파괴를 조성하여 준다. 그러니 발전하는 이상 존재한다면 정을 돕기 위한 중간시기에는 인정하나 목적시기에는 그 동향을 무로 하고마는 것이 원리세계의 현상인바다.
그런고로 반이 먼저 시작함을 대하여 정으로 회복하려는 결론으로 되니 역사발전은 반이 시작보기 전 원시시대로 돌아간다. 그런고로 정반합 논리는 근본적으로 보면 반, 정, 합 논리로서 되어야 하는바가 근본인바다. 반대되는 것이 나타났으니 이 원리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으나 정으로 향하는 노정이 인류발전사인 바이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적 편으로서 원리적 입장에서 시찰하니 반, 정, 합 논리가 하나님편 쪽으로는 그 근본적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여기에 반이란 존재는 사탄이요 이것은 파괴형 무를 조성하니 그 목적을 막고 완전계속하려니 정이란 위치로 넘겨받은 노정이 인류발전사인바이다. 그리하여 반은 정을 성사하는 한 본과 같이 보이나 본래부터 그 자체는 근본아니고 근본으로 표현화 하는 것이니 정의 위치를 정한다. 그러니 본래는 정되어야 할 것이 반이 되었으니 지금까지 큰 난사의 시작을 계속하였다.
그러면 반이란 존재가 계속할 수 있는 한계는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 완전 정 하나님 편쪽에서 만이 반은 정체를 중지할바이다. 그러니 이 반이란 존재를 처치하고자하여 근본정이 끝까지 찾아 올라온 것이 인류발전역사이다. 그런고로 반, 정, 합 논리의 결말은 본래부터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이상논리로 하지만 그 말점에 가서는 파괴라는 결론점을 봉착하는 것으로 된다. 그것은 발전하는 바는 향진인데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발전사라는 상충하는 논리인바이다. 그러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사회발전논리는 근본적으로 이런 근본중심점을 미해결이니 그것은 물론인바이다. 그런고로 여기에 그네들이 말하는 정, 반, 합 논리에 대하여서는 우리는 근본적 시찰로서 그 말로를 결정하는 바이다. 그러니 반에 대립한 정만이 남는 것이 천주천리인바다. 이 정이란 곳은 타락전이닌 즉 시작점으로 되는 바니 인류역사는 시작점을 찾아 올라가지 않으면 조물주가 계시지 않는 결론이 성립된다. 그러니 정이란 존재가 정으로써 출발하려고 하는 바의 목적이 조물주의 목적인바다. 그러니 역사의 끝을 정이라고 결론한다. 그러니 최고문명세계는 정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편쪽이란 완성을 결론한다. 그러니 지금 세계를 정이 주관하여야 하는 바가 원리적 목적이니 하나님 편 정과 사탄 편 반과 대하는 끝에는 정만이 남는다. 그러니 정이 주관하는 세계이니 이 세계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기독이상으로 귀결하여야 한다.
그러니 현신앙자들은 동원하여 반에 대한 정에 설 주관세계를 조성할바가 지금 세계의 기독교의 사명인바이다. 그러니 그 방책은 자연히 하늘뜻을 합하여야 하는 바이다. 이 근본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사탄 대하여서 총돌격하여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바이다.
소위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인류역사발전을 단계로써 기록하여서 하나님적 복귀역사로 된 인류발전역사와 비교하여 보자. 하나님이 계시니 이런 발전을 본다.
유물론적 발전사 단계 즉 1. 원시공산주의시대 2. 씨족사회주의시대 3. 노예주의시대 4. 봉건주의시대 5. 자본주의시대 6. 제국주의시대 7. 사회주의시대 8. 공산주의시대
이와 같이 역사발전을 잡고 있다. 과연 그들이 이런 인류발전역사를 잡고 있지만 왜 이런 발전을 하는가는 근본문제는 미지이다.
왜 원시공산주의시대에서 씨족사회주의시대로 떨어지는가 하는 기본원인은 미지인바다. 이런 발전진상을 보여주는 바는 내가 논하는 반이 먼저 시작함으로 논한데서 시작이란바를 다들 알 줄 안다. 다시 그 단계를 잡아 밝혀보면 원시공산주의시대에서 씨족사회주의시대로 되는 바는 사탄 대한 하나님 편쪽 대책으로 인한바이다. 즉 분립하려니 씨족주의로서 전부가 통할수 없는 분기를 정하니 자연적 세계상에는 이런 형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내려온다. 또 씨족사회가 변하여서 노예주의시대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과 사탄은 사람 중심하고 빼앗는 역사를 하니 하늘편쪽 사람과 사탄 편쪽 사람과는 원수니 반을 대하여 정이 반을 지배하여 그 재물을 취하여지게되니 이런 시대로 들어간다. 이리하여 하늘은 사람과 재물을 취하려니 자연적 선물로서 긴 역사로서 풍습화한 시대로 되니 이런 시대가 보여짐이다.
그러면서 노예주의로부터 봉건주의시대로 나타나는바는 서로 사람을 자기편으로 보수하여 분립을 보려니 서로 서로 통하는 길을 막으려니 이런 경향이 표현화 하여지니 이런 봉건주의시대로서 사탄은 자기의 존재유지를 도모한바이다. 그리하여서 이 봉건시대를 넘어서는 자본주의시대로 나타나는 바는 이도 역시 하늘편과 사탄편이 서로 세계를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하니 자본을 먼저 취하게 되는 바이다. 이 자본의 시작은 노예시대로부터 봉건시대로서 또 이 이상시대로 중심은 자본을 중심하고 모든 방향은 시작된다. 그러면 자본을 중심하고 왕성하여 그 세력은 자연히 제국주의라는 목적으로 향하는 바이다. 그러니 자본을 가지고 나라까지 주관하여 세계까지 좌우하는 시대로 나타난다. 그 다음은 무슨 시대냐 하면 사회주의시대가 온다. 그 다음은 공산주의
시대가 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과연 하나님의 뜻이 성사할 미래에 대한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역사도 이런 방향으로 나오는 바다. 그러니 지금까지 보면 현세계는 소위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시대라고 하여 공산주의시대를 향하려는 시작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정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은 역사발전을 지배하여오니 자연적으로 그 역사상에는 반이 먼저 시작하였으니 먼저 사탄이 흉내 내어 나타나서 정으로 인계하여 주는바가 원리인데 그러면 금후세계는 자연히 이런 노정으로 방향을 행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중에 완성하려니 기독사회주의세계를 목적으로 하여 악 대하고 다음은 전세계전부를 합하여 기독공산주의시대로 목적하는 바이다. 그러니 세계는 과연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는 바가 사실인바는 하나님의 기본출발 기점으로 향하게 하니 필연적 노정으로 보여주어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는 양으로 보여준바다.
그러면 현기독교를 중심한 국가는 언제나 그 목적에 있어서는 안 될 시대를 보는바다. 그런고로 나는 여기에 이런 원리적 시찰을 보아서 이 기독사회주의시대와 기독공산주의시대를 중심한 곳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지향을 밝혀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세계를 기독이상화를 본하여서 발표한바가 즉 원리적공생공의주의로 하여 원화세계로서 발표한바다. 하나님이 계시는 이상에는 반드시 이런 발전노정은 필연적 노정이니 사탄도 결국 하나님의 길 돕는 격으로 원리목적하여서 하나님 편에 굴복을 요하여서 나오는 바이다. 그러니 지금 3차전을 말하는 비시여 세계기독교신앙계는 통일전선을 취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본으로 하여 재림주를 대하기 위한 준비를 완성하였는가 하는 입장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이런 목적을 원리적으로 실행하는 시대가 재림이상시대이다. 이 이상시대가 가까워 오니 그 반면 사탄은 강제로써 하늘 흉내를 먼저 내는 것이 그 기본진상이니 전기독교주의 중심한 “UN"은 단호한 대책을 취하여야 한다. 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발전사도 한 일리있는 거짓 흉내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편적 복귀역사발전단계를 중심하고 그 한계를 비교하여 보면 이러하다.
정 반
원시공산주의시대---(분별시대) --- 원시공산시대, 씨족사회주의시대
씨족→민족→국가---(소생, 구약시대)--노예주의시대, 봉건주의시대
국가→동맹국→국제--(장성, 신약시대)--자본주의시대, 제국주의시대
국제→하늘세계→천주-(완성, 성약시대)-사회주의시대, 공산주의시대
이와 같이 정과 반의 발전사로 보면 한 목적으로 합하는 역사는 발전하여 나온 바이다. 그러니 지금 조류는 이 두 진영이 대상하여서 승패를 결하는 조류시대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있는 이상에는 이 승패하기 전에는 평화는 없는 바이다. 그러니 지금 기독이상을 중단하여 성사하여야 할 국제연합에 사명은 중대하면서 앞날 현기독이상을 중심으로 한 미, 영을 중심한 U.N 기구는 특히 사명이 큰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미영 유대 그 외 기독이상을 가진 국가들에게 축복한 바도 끝날 뜻 속진화를 위하여서 축복한바이다. 그러니 전부는 합하여 예수의 최고이상인 유물상통세계를 지구상에 건설하고자 하는바가 목적인바이다. 이것 위하여 예수는 재림하는 바다. 그러니 뜻 합하여서 재림주를 중심하고 뜻 시봉으로 근본복귀를 완성하는데 전부 합하여 동원하여야 하는 시대는 왔다. 무엇이나 뜻 못 받드는 자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은 전세계를 중심하고 그 존재위치를 달리하여서 대할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복귀노정을 받들어 지상천국의 건설로서 신출발하여 한 원리적 가정으로 하는 부모없는 자식의 입장을 변하여 부모를 세계적으로 복귀하여 잃어버렸던 전세계 인류는 한 형제로써 대가정인 원화적 이상을 건설하려니 하나님은 현금 기독교 대하여서 분립을 보게하여 자연적으로 현기독교계는 이런 경향선을 보게할 바가 하나님이 계시는 이상 나타나는 바이다. 그러니 이런 근본을 알고 기뻐서 하늘 자녀의 입장을 복귀하여 빨리 사탄 대하여서 집결하게 할 책임이 기독교의 사명과업인 바다. 그리하여 이 목적으로 전세계에 분립된 기독교는 통일로써 볼 것이며 세계통일을 중심한 기독교의 최고목적을 완수할 바가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인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사탄은 우리를 향하여 계속되는 대립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근본 뜻을 연장하는 두려운 결과를 초래하는 바이다.
그러니 현금 기독교는 전세계를 중심한 중심국가들을 주로하여 합하여야 할 책임이 중한바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하늘 중심하고 하나되어 국경을 넘고 민족을 초월하여서 합동한 통일전선으로 하여 사탄의 여명을 근절하여 전세계 각자가 한 목적으로 향하여야 할 바가 목적으로 된다. 그런고로 기독교는 현사회를 움직이는 중심동력으로 하여서 모든 미급적 부분을 완성에로 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여야 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영원한 영원주의를 건설하여서 지상천국을 달성하여 재림주와 합하여 하늘 전체와 합하는 직접동거시대로 향하여야 하는 바이다. 이것이 인류가 바라던 이상이요 역사적 목적이요 조물주와 예수의 목적이면서 사탄 근본추방성사를 완성
하는 바이다.
이런 중대한 입장을 알지 못하고 현사회를 포기하여 온 현기독교신자는 과연 하늘적으로 기뻐하는 입장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바는 사실이다. 이제는 알았으니 추상적 신앙관념의 잠을 깨뜨리고 신아침의 새新소식에 합하여 전세계를 하늘 주관으로 나가지 않으면 아니되는 바이다. 그러니 과거미지였든 입장의 부족을 용납하여 전세계 인류는 앎의 형제로서 국경을 넘어 하늘나라 국제를 목적하고 활동하여 전인류에 대한 평화건설을 국제적으로 하면서 국제통치목적으로 하나의 근본목적을 완수하여야 기본창조목적이 완성되는 바이다. 그러니 내가 이런 것을 발표함을 보고 의심되는 자는 진심으로 하늘 대하여 사실 여하를 문의하여 해결받음으로서 최고위신자는 한곳으로 합함을 바라는 사명을 받들어 전세계 신앙계에 대하여 전하는 바이다. 그러니 앞날은 국제통치시대가 반드시 온다. 그리하여 재림이상을 지구상 한 중심지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로부터 전체로서 국제와 연하는 목적을 완성하게 하고자 하는바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인바이다.
제8 장 40일 복귀하고자한 섭리노정의 근본의의
인간세계에 해와로 인하여 타락이 시작하여지니 그때부터 인간세계에는 비원리존재에 속하여 나오는 반면에 하나님은 원리적으로 복귀하고자 태세를 취하여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원리적으로 직계의 혈대는 지금까지 섭리의 한 소망으로 남아지고 그 직계적 혈계는 비원리적으로 시작한바는 사실이다. 이런 근본 뜻은 다시금 찾아 근본혈계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의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타락된 인간일망정 포기하지 못하고 원리적 복귀원칙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역사를 본바는 논한바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자녀 중 가인 아벨의 대한 제물받는 근본 뜻도 알 줄안다. 가인은 사탄의 초혈계 표시자요 아벨은 아담의 나중에 해와 대한 표시적 자임에 근본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자임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자 할 때에 첫 생산자보담 다음 자 아벨을 사랑으로 대한 원인은 알바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아벨 제물받게되는 이유는 미지로 나타나있다. 그것은 그 시대적으로 먼저 알 수 없는 원리복귀하고자하는 역사적 뜻의 성사를 볼바가 되지 못함으로 지금까지 미지로 되었다.
아담 해와 중심하고 찾고자 하나님은 하지 못한바도 비원리 존재가 먼저 한 주인격 상대으로서 있기에 한 주인 상대로 원리로된 창조적 원리가 있기에 아담 해와로 인한 복귀 못하고 가인과 아벨로서 이성분립을 보아 순종과 불순종을 작정케 하는 표시물이 즉 아담 두 아들의 제물인바다. 왜 가인 제물 안 받는 바는 사탄적 생산혈계의 결실존재였으므로 가인 제물보담 아벨의 제물을 받음이었다. 아벨이 성심 다하였다는 바는 성경에도 없는 바이다. 이 근본적 원리가 이런 원리로 되어있는 원리라는 바를 알게 될 때에 근본 타락에 대한 내 발표가 정론임을 알바다. 가인도 아벨 대한 반격이 없었으면 다시금 기쁜 복귀로 될 바이었으나 하늘의 뜻 알지 못하고 하늘 대하는 반격의 시작이 있으니 하늘 뜻 파괴를 시작하게하는 기원점을 시작한바이다. 만일 가인이 아벨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품으로 찾아드렸으면은 사탄 소유물이란 분립을 방지하였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가인 한 자체의 행동이야 인간의 제일 슬픔의 시작의 기점을 짓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아벨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세워서 섭리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였다. 셋을 주어서 역사를 경과하는 도중에 셋 자손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가인 자손이 좋아하는 사탄
편 짝으로 전인류는 사탄 소유란 비원리 세계를 조성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청산하고 뜻의 사람 택함이 노아였다. 노아는 그 시대적으로 하나님의 소망의 존재이면서 그 시대 세계인류보담 귀한 소망존재였다.
노아를 중심하고 하나님은 뜻의 인간을 조성하고자 하니 전세계에 전부를 분립하는 하늘편쪽으로 분별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니 사탄 소유물 불순자 합하여 전멸하게 하는 바이었다. 그 목적은 불순자 소유물을 세계상에서 추방하고자 함이 시작이었으니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물만 세계상에 시작보고자 함에서 대책 취함이 노아 심판이다. 이 심판은 무슨 의미냐 하면 창조하였던 근본원리적 입장을 복귀하고자 함에서 시작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먼저 사탄 침입받은 아담 해와로 인한 만물은 사탄 피血로 인하여 하나님과 떠난 것이므로 전부를 청산한바이다.
노아를 택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아세우는 모양으로 노아의 방주에 모든 생물을 노아에게 준바이다. 이것은 제2 창조이상 시작이 목적이었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 성사하여야 할 의무적 입장이란 바는 말할 바 없는 바이었다. 그런 노아도 인간 제2 조상으로 계대를 잡고자 하는 기반공작은 어찌되었느냐하면 함의 행동으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혈계적 증거격으로 서니 하나님 앞에 자기의 혈족이 있음을 세워서 다시금 침입하여 취케 되니 함이 가나안의 아비父로 되는 바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나체로 인한 행동으로 시작함이다. 이것이 지금 본다면 좋은 행동 같은데 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행동이 되며 하나님과 원수된다는 행동인가는 두말할바 없이 해와의 타락 근본을 표징한 사실인 근본과 합하는 혈연적 관계로 표시하였기에 사탄 침입을 또다시 가나안 아비父격으로 함을 통하여 시작본바가 근본이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이 심판한 목적은 제2차적으로는 근본시작을 보아 출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찾고자 하는 전목적을 잃어버린 반대목적이 결과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심판은 하였으나 심판하기 전과 같은 시작점을 본 것으로 되니 하나님은 근본목적의 요구를 다시금 찾아야 하게 되었다. 즉 심판할적에 하나님은 40주야를 두고 심판하였다. 이 40일은 하나님의 뜻 성사의 시작잡은 기본을 작정하는 기간임은 사실이다. 이 40일에 대한 목적은 사탄 전부를 추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사탄 추방목적은 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침입기대를 잡고 하나님의 근
본 뜻을 미성사로 시작을 본셈이다. 하나님의 40일 심판은 무효과로 되어졌다. 40일을 뜻맞게 찾으면 근본목적 성사를 볼 바이었는데 40일을 미성사한양으로 나아가니 40일의 목적의 전부가 잃어버린 목적으로 시작을 본바이다. 하나님께 있어서 40일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 되었으니 다시금 뜻 세우는 길에는 40일이라는 근본목적성사가 최고목적이면서 이것 찾아 세워야만 뜻 성사란 목적완성이니 이 40일을 중심하고 사탄 분립을 작정하기 위한바이다.
이 40일을 사탄 대하여 찾아 세워야하는 한 분기점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40일을 중심하고 섭리의 시작은 언제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의 40일 기간이 즉 심판의 전목적이니 40일 끝났을때의 행사로 하나님이 창조하든 완성을 표준한 때와 한가지로 출발하고자 하시었다. 노아는 40일 지난 후에는 까마귀鴉를 내보냄이었다. 이것은 창조 받은 세계에 사탄이 먼저 시작하였든 바를 다시금 찾아 성사할 표시의 상징이었다. 즉 까마귀鴉를 내보내었으나 돌아 들어오지 않았다. 창세기 8장 7절에 보면 까마귀鴉는 세상의 물水이 마르기까지 왕래하는지라하시었다. 먼저 내보낸 까마귀鴉는 왜 노아한테 돌아 들어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가行하는가 하면 먼저 사탄이 이와 같이 되어서 간行다 하는 표시로서 까마귀鴉를 내보내심이었다. 사탄이 물로 심판받은 물위水上를 다니면서 쉴 곳을 찾고 있다는 한 표시로 됨이 까마귀鴉 내보내심의 상징이었다.
다음에는 비둘기鴿를 내보내었으나 비둘기鴿는 지면의 물水로 인하여 발붙이지 못하고 다시금 노아 방주로 돌아오니 노아가 손手을 내밀어 받아들이受入고(창8/8~12) 7일을 기다려서 비둘기鴿를 내놓으니 저녘때夕時에 비둘기鴿가 감람나무잎橄欖樹葉을 입口에 물고 들어오는지라. 그 후 또 7일을 지내서 비둘기鴿를 놓아주니 다시금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비둘기鴿로 인하여 3차나 보내서만 비로소 완전히 지상을 찾아서 번식할 수 있는 배船없이 직접 살 수 있다는 한 표시로 되어있다. 이 표시도 무엇이냐 하면 타락 때時부터 진리전부에 대한 복귀의 한 표시로 되어있다. 첫 번 비둘기鴿는 제일차 아담의 시작을 보려고 하였으나 비둘기鴿가 물水로 인하여 돌아온 것과 같이 그 영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바와 마찬 가지고 즉 노아가 손을 내밀어 비둘기鴿를 받아들이심과 같이 아담 영을 받아드리심이었다. 비둘기鴿를 방주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그 방주는 하늘 전부의 표시였다. 즉 삼층천 표시로 된 바였다. 방주도 상, 중, 하로 된 바도 하늘 삼층천 표시로서 기인한 바다. 다음 비둘기鴿는 2차 아담, 예수를 표시함인데 예수는 아담 영이 보내심을 받아 땅을 찾아 번식 살生 땅地을 찾고자
하였으나 감람나무잎橄欖樹葉만 물고 왔다 하는바는 예수와서 뜻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는 땅이 못됨으로 찾을 수 있는 약속을 세워서 기대성사한 표시로 된 바며 3차 비둘기鴿는 완전히 뜻 성사 시작을 완성하신다는 한 표시적 내용을 보여주심이다. 고로 진리복귀에는 소생부터 장생으로 완성으로 한 목적달성한다는 만우주 창조원리를 표준하였기에 이렇게 표시된바이다. 하나님이 7일간격 둔 바는 첫 번도 완성하려고 한 것이 연장되니 즉 7일 이상연장되니 이런 간격을 두어 역사함이다. 제1차는 한 기간을 두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뜻을 제1차 비둘기鴿적으로 성사하고자 하였으나 땅을 사지권에 잠기었기에 돌아왔고 제2차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받지 못하여서 돌아오고 제3차 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성사한다는 한 한계를 표시함이다. 그런고로 성사치 못한바는 하나님이 미성사케 한바가 아니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연장된다는 한 표시로서 제1차 제2차 제3차로 연장된다는 바를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 타락으로 인하여 비둘기鴿가 돌아온 바와 한가지로 제2차 아담 완성자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성사하고 돌아오고 완성 제3 아담 와서 완성된다는 뜻이므로 비둘기鴿 3차는 돌아오지 않음은 뜻 완성할 바를 보여주심이다. 이리하여 노아는 비둘기鴿 돌아오지 않음으로 자신의 몸이 지상에서 생활할수 있는 것과 한가지로 하나님도 3차 아담 재림주로 인하여 지상에서 창조이상생활을 시작하여 직계적 세계를 조성할 바를 표시되는 바가 목적으로 되었다. 그런 목적이 근본인데 노아 아들 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목적파괴를 시작하는 비원리존재를 유인하니 하나님은 근본40일 심판목적은 불성사로 되어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섭리하는 피血계대에 사탄 침입 불성사로 되어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섭리하는 피血계대에 사탄 침입의 종적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400년 연장을 보는 바다.
그 근본 뜻은 40일을 중심하고 사탄 대립의 성사를 시작하였으니 기본 40수가 기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40일수를 기본복귀하여 다시금 성사하려고 하니 40일 가지고는 아니되고 40년 가지고서도 안되겠으니 400년으로 연장시켜서 400년 후에야 근본적으로 제2 인간조상의 성사할 믿음信 기본성사인 노아의 믿음信완성기대를 아브라함을 택함으로 시작하였다. 이 믿음信을 세우
심은 아담의 불신으로 인한 것이므로 다시금 기대를 찾아세워야 사탄 대할 수 있는 기본이니 믿음信조상 아브라함은 노아의 근본뜻 신계승완성자로 택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믿음信조상되는 근본의의가 있는 바다. 왜 아브라함을 택하였나 하면 노아 가정으로 택함에서 실수하였으니 아브라함 한 자체로서 시작하고자함이 목적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믿음信의 기본을 세울 수 있는데까지는 어떤 경로를 밟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흉년을 당하여 아브라함이 애급으로 내려가는지라. 그 당시에 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아름다움에 염려하여 남매로 하자는 약속과 동시에 애급에 감이었다. 이 사라는 아브라함의 처로 매의 입장에 서게 됨도 아담 해와 입장인 원리적 사실을 찾아 세우고자 함에서다. 그것은 애급은 사탄 대신국인데 그 국왕 바로는 아브라함의 처를 자기가 취하여 처로 삼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바로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찾아주니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소유물을 주어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인한 연고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뜻을 성사하는 노중에 제일문제는 애급가서 처를 소유한 바와같이 하나님은 근본 한 해와가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앗으려 한 바를 다시 찾는다는 한 표시를 보여 그 후 가나안에 돌아와서 시작한 바와 같이 원수의 모략중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아 복귀함으로써 땅에서부터 뜻을 성사함의 기대를 조성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하신다는 근본 뜻이 있음이었다.
그 후 아브라함이 애급서 가지고 온 소유를 기본으로 하여서 뜻 기본을 삼아서 하나님의 뜻이 성사할 기본을 잡았다. 이것은 만물전부를 취하여 뜻 기대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다음은 롯이 잡아간 원수를 대하여 승리한 후에야 아브라함은 뜻 성사의 시작이 결정받게 되는 바다. 이것은 택한 자 전부를 복귀한다는 바이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은 사탄 소유의 귀한 자와 같은 데라의 아들子을 빼앗아 내었음으로 사탄은 아브라함이 뜻하는 하나님 대하여서 아브라함의 무엇이나 불순된 무엇이 소유만 되면 소유하고자하여 아브라함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아브라함과 하나님과는 중대 약속 성립을 시작하게 되니 사탄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될 터를 시작함으로 이때 하나님 대하여 사탄은 대립하여 서게 되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제물을 드렸으면 아브라함부터 기본기대를 잡아 400년 역사상 연장생활인 애급 생활은 없고 직접 하나님 책임분담 사명으로 볼 바이었다. 이 목적은 무슨 목적이냐 하면 아브라함만 완전히 뜻 성사하면 사탄 대한 근본
추방을 시작하여 40일에 대한 그의 심판하였던 기본목적은 완성되어서 출발을 볼 바이었다. 아브라함이 실수하고 나니 40일에 대한 뜻은 아직 완성적 기대를 잡지 못하고 그의 연장적 400년이 탕감시대이므로 시작 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 400년이란 년대는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연장보아 사탄이 침입한 것이니 이 400년대 탕감하여야만 노아적 시대입장에 입각함으로 아브라함에게 400년 연장을 보았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에 남아지는 바는 40수가 남아있는 양으로 되니 40수가 만사를 해결하는 뜻 성사의 완성점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섰든 아브라함은 뜻의 미성사로 인하여 자손이 400년 고역생활을 봄이 크나큰 화근으로 되는 기간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를 청산하여서 사탄 침입을 방지하고자하니 제물표시는 되었던 실체자로 인하여서 제물대신 찾아 세우고자하니 이삭을 모리아산의 제물로서 헌제를 명령하심이었다. 이 뜻을 아브라함이 3일기간을 두고 헌제함에 합의를 봄으로 하나님이 섭리하는 노정에 사탄을 방지하였으나 사탄 역시 이삭에 대하여 선유 소유물 될 수 있는 제물소유로 인하여 미련을 가지고 대하게 되니 이삭 자식중 두二성품적 표시적 자식으로 분립하여서 하나님은 뜻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야곱이 모친과 합하여 에서의 기업을 빼앗아 넘기는 뜻이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복중에서부터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하나님께 아뢰니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言하여 왈 두나라二國가 네 복중에 있음이여 두二민족이 너爾복중으로부터 나뉘分리라. 이此민족이 저被민족보다 강함이며 큰大자가 작은小자를 섬기리라. 하시었다.(창25/23-24) 이것을 보아도 아브라함이 실수한 근본을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시어서 분립케하는 야곱은 다음번임으로 하나님의 뜻 중에서 사탄이 뜻하였던 소유물 전부를 빼앗음을 표시하기에 이와 같은 대립을 보게한 바이다. 이것이 즉 후일의 예수의 한 역사의 본되는 사실들로 되는것도 알 줄 안다.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탄이 아브라함 자식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뜻 성사를 보려고 하든 것이 이삭으로 통하여서 비로소 성사하게되니 아브라함을 대하였던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으로서 야곱까지와서 첫아브라함 대한 하나님 뜻 성사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3인을 상대하여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연장을 본바의 근본원리를 가지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 3인의 하나님으로 인한 명사가 지금까지 좋은 명사로 된듯하고 현 신앙자는 알고 있지만 크나큰 오해로 알아야 한다.
그런 역사적 하나님편적으로 원리를 중심하고 있다는 바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런 원리로 전부는 사탄 침입방지키 위한 목적인 동시에 근본 타락시작의 복귀를 위하여라는 바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야곱부터 애급 출발은 야곱이 아브라함의 본 뜻 4백년 탕감노정 출발이 시작함이다. 왜 이삭부터 안되었는가 하면 이삭은 아담과 같이 두二주인 상대존재였기에 이삭부터 애급 4백년 시작은 못한바는 논한바다. 야곱이 시작하였다는 바는 야곱은 근본 뜻 성사를 잡은 자니 야곱이 애급 출발하는 바의 근본원인이 있음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뜻 성사한 완성존재가 못됨으로 애급을 향할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삭 자식에 에서라는 존재는 사탄 상대자라는 서러움이 시작된바이다. 어찌 실수없었으면 아브라함 자식에는 에서라는 존재는 없이 근본 뜻 시작이 볼 바이었다. 그러기에 이삭 자체로서도 40을 중심하고 리브가를 취하여 처를 택함이었다.(창 23/20) 이리하여서 하나님의 뜻의 시작을 봄이었다. 야곱도 40를 중심하고 에서의 에서의 기업을 빼앗는 기본역사를 시작할 바가 원리로서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기에 야곱이 40수는 없으나 짐작키는 에서가 40세에 햇 족속의 딸을 처로 취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근심하더라 하는 것 보면(창26/34) 야곱 년대도 40세를 중심하고 섭리하여야할 바가 원리로 되어있다. 이런 40년대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본을 잡으심은 기본노아 심판 40일수 복귀할 기본 수로 인하여서 이와 같이 시작한 역사적 기원으로 인한바다. 야곱이 사후에 그 몸에 방부제를 40일 바르심은 야곱의 몸은 하나님의 뜻 완성자이므로 이 한 존재는 사망하여서도 40일 기간과 같은 사탄 대한 40일 심판을 받아 사망한 자와 같은 사망이 아니고 40일을 완성한 성사자로서 하늘 뜻 40일 기간 위에 처하여 죽死은 자라는 표시로 40일 방부제를 바르게한 뜻이 있음이다. 이리하여 40일되는 사망기를 방지한 중심 존재가 된 바라는 근본의의로서 40일을 바르게 한 것이다. 40일은 즉 사탄 추방기간이면서 생명소생기간이다. 여기에 지금 야곱까지 연장보아서 애급 출발하게 되어 한 하나님의 기대를 잡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란 연장은 우리는 생각하면 원통한 기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기간을 두고 하나님은 약속제물에 실수한 전부를 청산하여서 사탄 분립을 성사할 때까지는 어느
곳까지나 하면 야곱의 식구가 밧담, 아람, 라반에게서 얻은 소유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돌아온 후에 뜻 성사의 시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이삭부터 야곱이란 삼대란 것도 하나님이 뜻하는 약속제물 중에 3제물 표시로 된바는 소생부터 장성으로 장성부터 완성으로라도 진리단계를 보여주는 바이었으니 아브라함이 뜻 합의에 성사하였으면 3대 없었던 바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하여 3대후에 완성한 것도 전하나님의 뜻을 이 3대 즉 단계로서 찾고자 하는 역사적 진리노정 전부로 표시함이 시작하였다. 그는 실수로 인하여 분립보아서 아브라함으부터 이삭으로 이삭으로부터 야곱으로 하여 뜻 성사하려는 진리노정에 대한 기본적 표시로 전개를 보게 되었다. 즉 아브라함은 아담 상징으로 이삭은 예수의 한 상징으로 야곱은 완성상징으로 됨이었다. 예수는 이삭과 같은 입장임에 사람들人만 믿었으면 주검없이 야곱의 뜻 합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삭도 주검 면함은 뜻을 세우심으로 면한바와 같이 될 바이었다. 그러나 그 뜻 잡지 못하니 미성사 할 수 있는 표시적 일대 복귀 역사와 모세로 인하여 민족복귀노정 실수로 인하여 십자가까지 관련을 가진 것이다. 그런고로 뜻 완성자는 야곱이었다. 야곱이 뜻 성사하기 위하여서는 제1 차 가나안을 떠나는 생활이 야곱 앞에 있었다. 즉 장자 기업을 취하고는 야곱은 기업성사할 자로 라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여기에 야곱 앞에 전개된 전부가 후일에 예수가 할 사명적 표시로 되는 바는 한 뜻 기대성사는 야곱이므로 야곱은 뜻 기대완성이 있어야겠으니 야곱은 하란 생활의 시작을 보는 바이다. 여기서 가나안 복지까지는 전부가 이스라엘이 나아가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기대가 되어야 하겠으니 1대에서 하나님의 뜻의 전부를 표시한 역사로 전개할 의의로 보는 바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3대제물은 아브라함을 소생으로하고 사탄 대하여 장성적 이삭의 시작을 보고 야곱의 시작으로 노정 완성이니 이 역사적 3대조상은 인류 대한 하나님의 역사적 전부를 표시하는 바로 전개를 보여주심이다. 그것은 제물의 전부는 전인류 대한 하나님의 섭리임으로 실수복귀는 전인류 대한 한 표징적 사실로 전개를 보아야 되는 바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1대 가나안 복귀까지의 전부는 가나안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 4백년 생활과 상대되는 기본일대복귀역사다. 이 야곱의 가나안 복귀노정은 이스라엘 전민족이 가나안 복귀노
정의 본되는 노정이다. 이리하여 야곱은 복귀노정에 야곱의 뜻을 성사케 하는 에서가 있었다는 바는 아담 자 가인과는 반대로 야곱 대함의 시작보니 기본 가인과 아벨적 근본뜻을 합의 본 셈임으로 근본 아담 두 아들 가인 아벨이 뜻에 속한 것과 같은 완성을 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이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찾아들게 되는 바이었다. 그 때 에서가 야곱을 대하여 반대하여 원수 시 하였다면 하나님의 뜻 성사에 큰 문제가 될 바이었으나 에서가 야곱을 환영하며 에서도 후일에 하나님 대하여 순종의 한 간접적 기본을 찾아 세우심이었다. 그런고로 에서의 후손은 가나안 땅에서 원수 대립이 안되고 가나안 땅에서 기업지를 소유 계속한 원인을 세우심의 기대가 에서가 야곱 대하여 환영한 결과로 가져온 바이다. 그러니 야곱 가나안 복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생활로부터 가나안 복지로 오는 한 본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야곱이 하란 생활노정에서 대하는 라반이란 존재는 사탄의 대상존재로서 야곱의 전부를 탐하여 자기의 욕망충당을 세우려고 하는 자이었다. 라반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우상숭배자였다.(창 21/19) 이리하여 하란 생활에서 재물을 취하여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하려고 할 때에 라반이 대하여 야곱이 취할 수 있는 자유 3일이 있었던 바라. 이 3일간을 중심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전소유를 분립케 하여 소유권으로 세우신바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3일 후에야 길느앗산에 대하였으나 하나님의 허하지 않음으로 자기 뜻을 성사 못하고 자기의 우상을 가져간 것을 찾다가 라헬이 그 아비父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우상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낙타駱駄안장밑鞍下에 두고는 지금 딸은 경수가 적출하야 일어나 환영치 못한다 하여서 우상을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야곱한테 공격을 본바이었다. 야곱에게는 레아, 라헬 두二처가 있었다. 그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대하고자 하는 뜻 중에는 하나님의 두二여성이 있다함을 보여줌이었다. 야곱의 뜻 아닌 레아적 여성과 야곱의 뜻의 중심인 라헬적 여성이 있다는 표시로서 보여줌이었다. 여기에는 근본해와의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할 근본적 여성이 있다는 바라는 것의 표시였다. 그것은 라반의 뜻 이룬 레아의 존재와 한가지 표시였다. 이것은 먼저 잃어버린 전인류 대한 타락 시작 본 모 해와로 표시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7일 기간을 채운후에 라헬을 처로 삼게 하시었다. 이 7일 기간(창세기 29장 28절 참조) 일수는 즉 노아가 비둘기鴿을 내보내듯 한 섭리완성적 일수로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 성사하고야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는 바이었다. 그리하여 라헬 찾는 바는 하나님이 후일에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
근본 뜻 성사할 목적을 표시한바이었다. 그런고로 레아 아들子과 라헬 아들子 합하여 뜻 성사를 표준한다는 전세계 인간을 찾아야할 근본목적을 표시한바이었다. 또 여기에 라반이 행한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탄 세계의 불신으로 인하면 이와 같이 야곱의 목적이 두 번만에 성사한 것과같이 예수는 이와같은 한 완성을 성사할바의 뜻을 표시한 바이었다. 그리하여 야곱과 합하여서 아비父 라반을 대하여선 처 라헬의 태도와 같이 하여야만 후일에 하나님의 뜻이 완성 본다는 한 표시로 되었다. 라헬이 만일 우상을 아비父한테 보였으면 야곱과 전부는 큰 미성사를 가져오는 문제로 되는 바이니 라헬의 한 승리를 가져온 중심은 경수로 인하여서 우상을 없게 한 바와 같이 후일 하나님 뜻 노정에 이와 같은 여자의 경수로서 사탄 전부를 승리하는 기대가 시작한다하는 내용을 표시한 바이다. 이것은 라헬의 태도와 같이 제2차 해와로 인하여 사탄을 굴복시켜 뜻 완성한다는 한 승리적 표시였다.
이 야곱의 1대의 전개가 예수의 노정으로 시작된다는 것도 한 표시로 된 바이다. 이 야곱의 전목적 성사는 애급 노정상에 다시금 시작의 본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 대하게 하는 근본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전하나님의 표시적 존재들로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아담 실수한 것을 이삭으로 복귀와 같은 예수 제물표시로 불신하니 십자가로 시작하고 야곱과 같은 재림주격 성사로 완성되는 한 표시로 된 자들이기에 하나님 대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대상자의 뜻의 섭리를 표시한 존재들이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연장된 후일의 전부를 표시한 기본들이니 믿음信이 기본되는 바가 성립되니 믿음信의 조상이라는 기본의의가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 노정은 구약역사에 전부 표시하여 맞추고자 함이 근본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성사부터 할 바가 모세부터 시작한바다. 모세는 야곱의 근본목적 완성하여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서 후일 예수의 제2 책임노정을 표시로 하면서 하나님의 직접 책임 기대 잡는 노정의 시작을 보는 바다. 그러므로 모세 역시 야곱 계승적 성사로서 출발하심이 출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브라함 + 자손 = 제물찾음 = 하나님 취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의 본되는 노정을 하나님과 합하여 성사하여 놓았다. 그런고로 야곱 나간 것이 모세의 완성의 본으로 모세는 출발하게 되었다. 이 본될수 있는 노정이 완성을 시작하였기에 믿음信의 조상들로 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예수 앞에도 이와 같은 완성목적 가지고 나가야할 표시의
노정으로 모세도 출발을 보는 바이다.
이와 같이 섭리하는 바의 근본의의는 사탄 대한 40일 완전 복귀 문제로 기인하는 바이다. 이 모든 어려운 역사시작의 연장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모세도 애급 바로 궁중에서 자라게 하는 것도 택한 백성을 제2차로 노아 이후에 사탄한테 빼앗겼으니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 대하여 반대노정을 세우려니 모세 역시 40년 때時를 바로 궁중에 있다가 40세재가 되매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케 함도 이 근본 40수가 시작의 여하가 근본 뜻 성사목적이었기에 모세 역시 40세재에 애급 대하여 반대하는 바이다. 모세가 40세재를 바로 궁중에서 전부를 잘 보낸 후에(사도행전 7장 23절 참조) 하나님은 택하여 또 40년간을 두었다가 역사하게 되는 바이다. 모세가 바로 대한 출발시는 40세재이었다.(출애급기 7장 7절 참조) 이와 같이 40수를 두고 역사한 것은 40일수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었든 것을 찾아서 탕감을 정하려니 40세재에 택하는 섭리를 시작케하여서 40세재에 성사로서 모세를 세워서 역사시킨바이다.
이리하여 재출발하는 모세는 승리노정을 잡고 나아간 바는 40일 복귀의 목적완성이니 40년후 40년 하늘뜻 준비기간으로 대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 이 모세 40년 애급의 바로한테 준 것은 전이스라엘 백성을 바로가 지배하니 기본 40일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하여 4백년이란 연수로 보았으니 모세는 이 40일을 사탄으로부터 하늘 40으로 찾아 세워야겠으니 애급 40을 주었다가 하늘 40으로 탕감하여 하늘의 기본 40일수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서는 양이니 애급 출발이라는 시작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40일을 전체적 완성을 하여야 하는 바는 이스라엘 전부가 40일 완성 하여야만 노아 심판 근본 목적달성한 하늘 백성으로 보는 바겠으니 즉 근본 하나님이 창조본의인 말씀을 복귀하겠으니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하여 놓고 근본 뜻 성사의 기본 말씀言 성사의 약속을 받게 되는 바이다. 즉 40일 주야로 통하여 금식하여서라도 성사할 목적으로되니 모세는 40일을 완성하려니 금식하여 40일 심판 근본목적 복귀가 목적이니 40일로 인하여 말씀言에 대한 두二석판 받음이다. 이것은 무엇이나 40일의 완성이 다시금 성사한 기반되는 아담 해와의 성사를 완성한 본이라는 것이 시작을 보는 바이었다. 그리하여 전백성은 말씀言과 하나 되어야만 뜻 완성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가 근본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됨에 40일에 대한 제2차 완성도 다시금 미완성을 본 바와 같이 되니 이스라엘 백성에는 다시금 고통수 40수로 남아지게 되었다.
40수 미완성은 재창조 복귀 미완성수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정탐군이 가서 정탐한 날 40일이 최후의 이스라엘 백성이 전 뜻 성사냐 미성사냐 하는 간격을 둔 대상일수가 40일이었다. 이 40일을 두고 한 전부를 믿고 나아가면 근본 40일은 승리의 기대 될 날이 있는데 이 정탐기 40일을 잘 믿고 넘지 못함과 같은 결과로 나타나니 광야 40년의 고난의
시작을 본 것이었다. (민수기 14장 30절에서 34절) 이리하여 40일 기본은 완성 못하고 40일 완성으로 바라보는 전백성 대표자는 다시금 사탄 소유물이 되어 광야에서 40년간에 사망하는바가 시작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노정에서 40일의 승리적 목적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 세워야 하는 중대한 기간으로서 남아지게 되었다.
40일 세우는 날이면 사탄 추방의 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40일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앞에 찾아세워야 하는 날이다. 이것을 탕감과 동시에 완성할 것이 섭리노정의 한 뜻으로 되었다. 모세 40일 목적 미완성하여서 사탄은 여전하게 침입하여 전목적 파괴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리야를 세우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