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010
원리원본 원문 010/012이다. 이 페이지는 DOCX의 윗글자 한자를 <ruby> 형식으로 보존한다.
-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
- 시작 부분: 엘리야는 사탄 전멸시키기 위한 대표적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알신 800여를 멸하고는 40주야로 호렙산까지 가는 것도 무
- 이전/다음: 이전 · 다음
원문
엘리야는 사탄 전멸시키기 위한 대표적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알신 800여를 멸하고는 40주야로 호렙산까지 가는 것도 무엇이냐하면 모세 40일에 대한 승리점을 완결짓는 한 표시로서 엘리야 호랩산까지 40일 기간이 있음이었다. 이리하여 엘리야로부터 노아 심판 40일을 완성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기본출발할수 있는 터를 조성하기 위한 총결전자가 엘리야였다. 그것도 백성이 불신, 불순, 불시로 인하여서 사탄을 침입연장을 보아서 메시아 전까지 당도하겠으니 하나님은 40수 10진배수 년수로써 4백년 기간인 40수 연장으로 인한 메시아 재림시까지 침입하여 역사하겠으니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서 목적성사를 예고함이었다. 이 엘리야라는 존재는 세례요한으로 시작하여 사탄 전멸목적 완성하여야 할 엘리야적 목적달성 못한 셈으로 되니 예수 앞에까지 40일에 대한 역사적 탕감과업이 연장을 본 바이다. 그런고로 이것을 탕감하기 위한 총결산기가 예수 40일 금식기간인 광야생활이다. 이리하여 승리함으로 심판목적은 완성할 기대는 잘 있으나 사람이 합하여야만(누가복음 4/13 참조) 성사란 결과로 인하니 40일에 대한 미성사를 본 바와 한가지로 되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사탄 대한 승리를 목적케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패한 듯 하나 40일간을 찾을 수 있다는 목적을 완성할 수 있다는 바는 십자가후로 인하여 예수 앞에 복귀되면서 기본완성의 터를 시작하여서 출발의 영광을 본 바다. 이 성립을 보아서 하나님의 기본 40일 노아 근본 사탄 추방목적을 성립하여 놓은바가 근본목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40일 기간이 문제로 되어왔든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역사적 모든 완성자로 뜻 출발 중심존재로 되는 바이다.(51. 10. 26 기)
제 5 편 이상섭리
제1 장 창조성 복귀로 된 이상론
본래 하나님이 천지창조할때 어느 존재물이라든지 전부는 상대할수 있는 존재를 대하게 하여 지으심이었다. 피조물중에 상대할 수 없는 격없이 지은 것은 없다. 직접으로 대하는 상대격이라든가 간접적이라는 상대라든가 전부 어떠한 상대위치를 잡고 있는 동시에 그 상대들로 인하여 자아의 한 완전조성을 보충하는 작용인 연관성으로 천주의 존재물들은 서로 상대를 필요케 되었다. 그 상대를 잡으면 그로 인하여 자아를 중심하고 전요구의 한 목적성사를 시작하여서 자아아닌 타자아격으로 대상 존재격으로 조성하고자 그 목적의 작용을 시작케 된다. 그런고로 상대가 나타나면 그 상대는 나의 한 대상될 수 있는 한 자격을 추궁하게 된다. 상대는 시작이고 대상은 자아를 중심하고 한 목적과정을 경과한 성사격이 즉 대상이다.
어떤 존재든가 전부는 자아의 행복을 표준하고 대상격을 요구하게 된다. 상대없는 자는 존재의 가치가 없게 된다. 상대로부터 대상을 완성하면 할수록 그 가치와 행복세계를 전개하는 바다. 그런고로 천주만상은 전부가 대상격 체계내에서 완전대상의 한 시작을 보아야만 이상이란 세계를 보는바가 사실이다.
어느 사회나 국가라든가 그 목적달성할 수 있는 대상경을 떠나서는 발달도 없고 이상도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존재하는 그 자체는 이상경의 한 영체적 한 본이상체에서 보는 위치를 요하는 바는 필연적요구이다. 그런고로 나我와 이상과는 하나면서 한 동작형선을 떠날 수 없는 동격 응할 수 있는 한 요구적 입장에 처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 요구를 충당하여야 하는 우리의 사명이 매일 생의 한 과업이다.
이런 과업을 하게하며 달성케 하려니 나로 하여금 그 이상에 대하는 향심인 자극과 충동심이라는 유지가 제일중요문제이다. 이 마음 없다면 이상과 나와는 벌써 성사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바와 한가지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한 대상격위에 있어 그 이상을 성사하려는 충동심이 작용을 갖게하는 것이 있어서만 그 이상과 나我와는 응선상격으로 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에는 언제나 향상을 표준하고 이상을 마음으로 자기도 알지 못하게 더 요구되는 존재격에 있다는 바를 부인못한다. 그런 그 작용심요소의 시작과 자극과 충동의 시작을 지금나와 관계상에 있어 한 부합응선을 취하여지는 한 불가피한 입장을 체득하게 될 때 나는 벌써 더 높을 수 있는 한 요구에 응하는 제2 존재격에 처함은 사실이다. 그러니 요구에 응할수 있는 길을 잡고 나간다면 그는 벌써 행복과 함께한
이상의 흥미를 체득할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여기에는 벌써 인간은 창조적 원리로 완전을 표준하고 지었던 그 원리적 힘이 나와 연하여 있기에 이 힘의 요구에 대상가치추궁이 인간이 이상을 생각케하는 원인인 바다. 이런 관련된 자아라는 존재를 시정하는 곳에는 한 대상격 완성을 요케하는 위치와 입장을 떠나서는 그 근본원리와 배치로 된다. 그런 조화로 지음받은 인간이니 이 대상이상을 충당할 목적과 배치되는 입장에 처하면 자연적 원리 성품되는 양심적 추궁은 필연적으로 나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원리탈선이니 이를 보장하기 위하려는 작용이 양심작용이다.
그런고로 우리 인생은 벌써 나 아닌 한 본체를 중심하고 한 대상격 달성이 남아진 한 과업으로 알아야 한다. 이 대상격 완성이 즉 이상의 길인 동시에 행복이 기본인 바다. 나는 하늘 대하여서 한 대상격존재로 기본하고 창조받았다. 그런고로 하늘 대한 완전대상격 가치자로서 되었기에 하늘의 요구하는 원리적 요구이다. 이 요구는 근본 힘의 작용과 공통하니 어느곳이나 통할수 있는 원리요소로 피조물세계는 공히 통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완전격 대상목적을 공통히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대상격을 하늘 대하여 나 자체가 완전하는 동시에 현실계에 있어서는 상대격을 취하여서 그 목적을 한 회로적 노선격인 한 딴 대상체를 성립하여야만 본 하늘의 대상가치와 합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나我는 하늘 대하여 대상완성하는 동시에 상대성의 한 대상을 완전성사하여야 만 근본과 합하는 삼위일체격 한 회로를 조성하고자함이 창조원성인 것이다.
그러니 양심적으로는 몸이 지향을 받고 다음에는 이와 함께 우리는 상대성을 취하여 완전하나되는 대상격성 존재를 합체하여야만 기본원리상선이 비로소 설 수 있는 바이다. 그러한 곳에는 근본 하나님은 거할수 있는 창조원리적 기대이다. 이런고로 이 기대조성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이상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흔히 말하는 이상의 곳은 어디냐 하면 양심이상요구본체와 합하는 곳이다. 즉 이 점은 모든 완성된 원리상점이니 행복이나 희락이나 전부가 시작하는 근거지다. 그런고로 기본이상은 즉 하나님과 동거하여 한 원리상에서 만사를 바라볼 그때가 인간에게는 최고 기쁨이다. 이곳에 처하면 지금까지 찾아올라온 한 절정상에서 처하여 지난날昔日의 하부분 향하여 볼 수 있는 그곳을 알게 될 때 모든 새 시작이 생활경지로 한 부여를 시작하니 즉 이상세계다. 그야말로 행복세계다. 문제는 이 근본시작을 하여야 할 사명적 존재에 처하니 양심은 나로 인하여 완성에로 재촉하는 것이다. 이것이 양심과 육신이 상충형체를 취케하는 원인
인바다. 나我 하나를 중심하고 보아도 행복하려면 먼저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그 기점을 이탈하면 벌써 불만이 시작한다. 이 각도가 심할수록 고통이 심하다. 이 각도 합하여 한 목적기점상에 뜻 성사를 볼 적에는 행복이란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본래인간은 내가 마음과 몸이 완전 하나 되어 양심요구를 육체가 완전히 채워줄 수 있다면 그곳은 벌써 원리성사이니 그곳은 즉 하나님이 지으신 근본형이니 이곳에는 하나님이 계실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장기간 유지할수 있는 생활형체가 이상생활이다. 그런 생활체를 취한곳이 즉 선한 곳이다. 선한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하면서 근본행복요소와 합할수 있는 시작이다. 이곳을 인생은 잃어버렸던 바다. 이곳을 다시금 찾아서 채워야할 존재이니 어찌 양심적으로 그 목적달성을 추궁받지 않으랴.
그러면 하늘의 요구성사가 시작하니 나도 또 하늘이 줄 바를 받을 수 있는바니 이곳이 즉 하늘 대한 대상격 완성위치이니 그야말로 원리적인 곳이니 행복이다. 사람은 본래 이와 같은 이상원리상점에서부터 시작함이 근본목적으로 되었던 바다. 그것이 타락으로 인하여 이 기본원리점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한 근본체에 대하여 한 대상격 존재의 본노선인 근본원리를 복귀하여야 할 중요한 책임이 누구로 인하여 생기었나 하면 그는 두말할 것 없이 비원리존재인 한 악의 주인공 사탄으로 인한 것이다. 이 사탄 대하여 지금 우리는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자체의 부족과 미흡함에 탄식을 하게되는 바도 사탄으로 인하여 너무 유린받은 자체가 되어 감각하지 못하는 바다. 이와 같이 근본대상적 위치를 잃어버린 인간이지만 그 근본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근본 위치에 대한 요구를 시작하여 주기를 요하는 바다.
어떤 사람이나 전부가 자기가 제일이라는 한 개성요구를 세우고자 한다. 그것은 누가 갖지 못한 개성진리체이기 때문에 그 요성성품을 어느 곳에서라도 한 상대되는 위치를 잡아 완전한 대상격 성사를 요케하고자 하는 제일원리본체와 합하려하는 제일기점을 잡고자 함에서 시작한다. 이와 같이 근본 한 개성을 중심하고 한 상대시작의 완성인 대상격 존재성으로 완성만 하면 그 기대상에는 한 대상격 완성으로 원리노선상을 성사하는 원리적목적을 조성하니 그곳은 벌써 근본 창조원리로 나타난 바이니 선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통성을 취할수 있는 행복의 한 기점위치인 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세계에는 누구나 자기중심 제일주의로 나아가는 바는 자기로 인하여서 근본기점상 원리위치를 취하는 데는 제일가까운 거리를 자기가 누구보다 더 가까운 바이므로 타중심하고 성사보담 자기중심하고 개성이상을 성사하고자 하여서 자기 제일주의로 취케 하는바는 사실이다. 이것이 소생 장성 완성하여 한 목
적달성하면 그 다음은 제2차적 대상위치를 널리하여 전체 기본목적으로 연장되는 바다. 그런고로 제일 자기부터 시작하여 전체에로 완성이상을 협조하게끔 본래 인간은 되어있다. 그런고로 사람이 본래 이러한 기본원리상에서 지었기에 타락은 되었을 망정 자아중심을 주로 하는 바는 사실이다. 순수한 양심적으로 선으로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그 한 자체들 합하여 나아가면 언제든지 그 기본점상 선을 합하게 되는 바이다. 이러니 우리가 상대를 요케될 때 상대된다든가 상대안된다든가 하는 곳은 벌써 선한 이상이 시작인가 아닌가의 결정적 해결의 표시로서 보여주는 사실을 증거하는 바다. 상대된다 하면 벌써 대상격위치인 한곳을 소망케 하여 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면 선과 이상성사니 나我에게 큰 기쁨의 시작이니 자기를 중심하고 이런 결단을 짓게 하는 바다. 이런고로 사람은 자기를 닮아라 하는 상대격 존재를 점유할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상성사를 잡을 수 있다. 전인간은 선한 자를 대상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의 한 목적달성을 속진시키려고 하는 바는 원리로 된 바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자기를 세워서 대중의 한 중심되고자 하는 그 본심 마음은 나我자신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한 근본체다하는 선언의 표시인 바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보아도 나 닮아라하는 요구를 세우고자 하는바는 나는 본래 한 선한 표준상 존재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와 합하면 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아도 벌써 자기는 제일존재선경의 한 표시적 역활을 주어서 상대를 잡아 대상을 세워서 그 선을 직접 자기와 연결 짓고자 하는 제2존재 선을 목표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자아란 존재는 제2존재며 그 목적은 제1존재의 한 대상격의 존재로 되어야 된다는 바도 원리적으로 감촉받는 바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에 대한 문제도 문제 외로 되게 된다.
제일존재 선 + 제2 존재선 = 하나님 + 나我 = 하나님 + 대상 = 하나님 +자기(나我+대상)라는 표시로 규정된다. 제일 먼저 문제는 자기다 내가 먼저 제일존재의 완전 대상자 성사할 것, 즉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 선하여지는 기본점상 자기를 조성할 것이다. 다음은 이런 자기를 중심하고 제2자아격 대상격자 완성할 것이다. 이것이 시작하면 창조성이 완성된다. 즉 이곳은 남자면 여자가 요구된다. 상대로부터 대상추궁을 요케 된다. 다음은 이것이 기본적 창조성 제2 대상존재다. 하나님과 사람은 한 몸이니까 이런 기본원리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독신생활이란 바는 비원리가 존재하는 악에 속한 세계니 그런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이상시대가 되면
기본원리배치행동이란 결론이 나온다. 다음은 대중 대하여서도 한 상대로부터 그 어떤 목적완성할수 있는 이와 같이 나의 한 상대로서 대상격적 태도로 대하여서 그 사업 목적인 바다. 이러한 목적으로 한 상대로 하나님은 인생 대하여 대상 번식을 요구하고 제일존재의 선을 사업체와 자기 대하는 어디나 선한 것으로 하늘과 합할수 있는 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전천주도 근본부터 사람과 하나 되면 사람은 만물세계상까지 하나 되게 하면 목적달성하여야만 하나님이 선히 계시는 발등상이 되는 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근본 선이상전개를 제일은 사람이 중요한 위치에서 위上로는 하늘 아래下로는 만물 우로는 가정 좌로는 사회 또 크게 보면 원화세계에로서 근본창조이상조성이 목적인바다. 그런고로 나我를 중심하고 자아 선으로부터 가정 선으로 사업 선으로 이것이 제일책임완성함의 하나님의 창조한 대상 선 목적인 바다. 이와 같이 전인류에게 요구하는 하늘 제일세계의 요구이다. 즉 하나님의 요구목적이다. 세계 떠난 하나님은 세계 위上에 쓸데 없는 바다.
하나님= 전천주= ①되는 세계가 선세계이다. 선은 하나님이시다. 선에는 성분별시작으로부터 개성완성으로 상대개성완성이 합하여서 한 회로의 조성으로 요구하는 근본존재다. 선은 대상위치확보가 요구조건이다. 이와 같이 천주는 상대성으로 대상으로 단위하고 전천주까지 선을 조성하고자 함이 사람을 창조면서 천주창조이다. 사람은 천주중심이다. 사람 중심하고 제일존재 하나님 사람 중심하고 제3존재 만물이다. 하나님은 사람 통하여 선의 번식을 시작하며 그 선을 사람은 개성선으로 만물선까지 조성하여 선의 주관노선을 세우는 바다. 그러니 사람이 없는 하늘이 없고 사람이 없는 만물은 없다. 사람이 천주의 중심이니 사람 타락하니 하늘 탄식이 생기고 사람 타락하니 만물의탄식도 생기였다.(롬8/18 참조) 이것 복귀사업의 목적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지금 이상과 같은 원리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상대 될수 있는 제일자격성사가 무엇보다도 귀한 바다. 내가 하늘 대하여 제2존재로써 제일 존재의 한 대상의 요구가 전목적됨은 사실이다. 그러니 상대할수 있는 위치를 취하여야 하겠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사람은 제일존재의 이용물인가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이 상대의 요구는 제일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은 물론이나 나로서는 완성하는 기
본 완성이란 목적으로 되어 결국은 나 때문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하늘의 요구하는 바의 목적은 주기 위한 목적이고 나는 받기 위한 목적이 즉 내가 하늘 대한 상대시작으로 대상완성을 위한 바다. 그런고로 하늘은 주고자 하나 줄 수 있는 상대없으니 그 얼마나 서러우랴 서러움이 생기는 것은 주고받고 할 존재가 없게 되는 것에서 시작이다. 이런고로 참주고 받고 하는 자의 요구로서 대상이 요구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제2 나에게 준다면 거기에 벌써 기쁨이다. 그런고로 자녀 대한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남편 대한 사람도 여기서부터고 사회(사업체)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하늘 대한 사람도 여기서부터다.
이와 같이 귀한 근본상 자아가 되면 참 받을수 있는 자이다. 위上으로는 참주는 자를 갖고 아래下으로는 참 줄 자를 가졌다. 이 얼마나 행복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을 곳을 소유한 자는 언제나 기쁨의 동력이 약동하는 바다. 그 표시가 자녀 대하여 주고 싶고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근본원리인 표시다. 이 모두가 완성은 하늘과 합하여야 되는 바다. 하늘은 발전소고 우리는 배전소와 충전소와 같고 만물은 수급소와 같은 것이다. 발전소 있는 배전소 수급지는 원리이나 이 중간 우리되는 배전소, 변전소가 없으면 모두가 생명사명이 중단인 바다. 이와 같이 주고 받은 변전소 배전소의 위치가 즉 우리 인생이며 나이다. 이런 원인으로 받고 주는데 원리소모없는 것을 바란다. 전기로 말하면 손실없는 것을 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실이 많으면 기본 전기가 소모된다. 손실은 그 도선물질로 인하여 우좌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물질의 에너지力되는 전기를 잡아먹는 작용이 생기게 하는 적 작용의 시작은 전기요소를 반하는 작용을 갖고 있는 존재니 그런 손실을 가져오는 것과 동일하게 우리는 전선과 같은 육신을 갖고 있는 그 자체와 양심과 합하여서 완전히 하나가 되면 양도체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그렇지 못하면 불량도체와 같은 부작용 손실을 생기게 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주고받는 대상을 연속적으로 어떤 방면으로 한다면 그는 다시금 주인에게 돌리는데도 손실없는 원리복귀가 성립하는 바와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워 돌리수 있다는 것이 제일요구목적인 동시에 선계속이다.
전기가 잘되게 하는 것이 전선류에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성사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나 잘받으려니 잘 접촉하여 완전도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생명의 중심지이며 희락의 중심지이다. 생명의 중심과 희락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하늘 희락도 행복도 모두가 하늘 사랑 받을 때에 시작이니 제일 요구가 하늘 사랑 받는 것이 목적이다. 하늘 사랑 받으면 행복도 희락도 시작이다. 완전한 하늘 사랑
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성립이 요구되는데 사랑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미가 있어야만 완전 사랑을 줄 수 있는 바다. 하늘은 주고자 하니 사랑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미이다. 이와 같은 상대요구성사조건이 시작은 사랑愛이었다면 미가 있어야 한다. 사랑愛을 +라고 한다면 미는 -라는 상대존재다. 이것이 완전히 주고받는 것이 선이다.
선=사랑愛+미+(의)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자 하는 바는 미의 한 존재이다. 예수는 사람 중심인 동시에 하늘 사람 대신자이다. 예수 보내심은 완전 하늘 사람을 인간들한테 줄 수 있는 기초작업을 시작키 위하여서다.
예수 사랑愛+ 나我 = 선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늘 대한 대상격완성 내我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나我는 하늘 사랑 대하여 받을 수 있는 미가 요구조건이다. 완전 사랑 대하여서 완전 미를 상대하여 시작을 보아 완전히 주고받는 하나一로 되는 대상존재가 손이다. 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상대를 결정하여 대상시작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노정적 요소가 의라한다. 예수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하심은 자기자신이 의를 세울 수 있는 한 상대자의 시작을 보지 못함을 표시한 바다. 그런고로 지금 천주는 선을 완성하려니 사랑과 미가 생기여 의의 한 노정을 지어야만이 하나님이 이상시작이다. 우리가 하늘 대하여서 아름다美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저 원리로 돌아서는 것이 기본목적이다.
그런고로 양심이상존재 위치위까지 필요하다. 그러니 양심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나我는 하늘을 대하여 미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전기의 한 원리와 같은 것이다. 완전 (-)가 되면 자연적으로 (+)는 생기는 것과 한가지다. 원리적으로 미가 완전히 조성되면 하늘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작용을 시작한다. 이 작용이 시작하여 계속하는 것이 한 의다. 이 작용이 계속하여 완전 합하는 것이 선이다. 작용을 계속하는데는 부작용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의의 사명위치이다. 의는 선한 노정을 결실하게 하는 요소이다. 예로 표시하면 선하려고 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미로 의로가 경과 합하여 하나一 되는 바다. 하늘 대한 사랑을 받으려니 아름다워야하는데는 여기에 양심 대하여서 몸을 그 양심에 중심하게 한 유지계속하게 하는 것이 즉 의다. 그러니 하늘은 제일존재 양심을 제2존재 몸을 제3 존재로 하면 의는 제일존재 사랑에 대하여 제2존재 양심과 합하게 하는 제3존재 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양심요구대로
계속유지하여 완전 미를 갖게 되어 완전 사랑을 받아 합하게 하는 그其 제3 존재를 제1 존재까지 합하게 하는 요구가 의다. 이와 같이 하늘 사랑 받으려면 양심만으로는 아니 되고 몸이 합하여야만 시작되는 바다. 이렇게 우리 사람에게는 삼위요소 위를 세워서 하나一로 되는 원리 창조성이 있다. 의라는 것은 제3 존재 위치를 제1존재 위를 속하게 하는 기본작업의 실과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의는 몸에서 양심이 합하게 하는 요소가 의다. 나를 중심하면 한 대상을 대하여서 의하면 그其 대상이 나와 같이 설 수 있는 위치를 조성하여야 의다. 사업을 대하여서 역시 나를 제2존재 위치에 두면 제3 위치는 사업이니 이 제3 존재위치가 나와 하나의 위치를 계속 취하게하는 바가 의다. 의없는 곳에는 하늘의 미를 조성하지 못한다. 그러니 하늘이 나를 대하여서는 대상본체니 사랑이고 나는 미적이고 나를 중심하고 대상격자에 대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대상위치가 미이다. 의는 대상미를 조성하게 하는 평형요소다. 그러니 의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유지하는 생활이 요구되는 중요생활이다. 의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제3존재가 완성조성이 되어야 되는 한 분립성 대상 조성을 목적으로 인하여 필요한 바다.
인간사회에서 의가 제일 나와 직접적 관계의 위치에 있는 바다. 나도 먼저 마음 중심하고는 몸 자신 중심하고는 대상으로 대상중심하고는 만물세계로 이와 같이 관계적 인연을 중매하여 주는 그 자신은 의라는 존재다. 의는 완전미를 조성하는 한 기본에 향하여 이동하는 장성요소이다. 그런고로 완전 사랑과 완전미가 조성되면 완전의는 조성되는 바면서 선은 완성된다. 예를 들면 10 사랑을 줄려고 할 적에 10 미를 보여 주어야 한다. 10만큼의 사랑 받고 10만큼의 미를 돌리는 완전 하나一되는 한 회로를 조성하여야만 선인 것이다. 의는 완전 사랑에 대하여 완전미를 유지하게 하는 과정이 의의 분담과정이다. 그런고로 미의 위치는 가감적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의와 불의와는 한 경계선상에 서 있다. 그러므로 대상격 우좌여하로 사랑과 합하여 선성사를 우좌하는 중요위치가 미적 위치이다.
그러니 의는 한 기본선중심체 모양과 같은 것으로 나에게서는 작용한다. 줄래도 대비되는 미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늘 존재는 불의인 행동으로 된다. 그러므로 하늘의 사랑을 받는 자라면 주는 것도 하늘화하는 기대선상에 서야만 된다. 그런고로 우리 인생앞에 구약시대는 행의로 신약시대는 신의로 성약시대는 시의로서 한 인류생심중심으로 되었다.
예도를 보면 사랑 선과 미선과는 대상되어 한 회로를 조성한다. 의는 한 중심 B 점이 되어 A, C를 연결한다. 이와 같이 한 선상에서 설때에 선이
A ㄱ 사랑愛
B ㄴ 의
C ㄷ ㄹ 미
성립된다. 한 목적 대상 취하면 의를 중심하여야 시작된다. 한가지 목적을 이루면 그其목적 종결을 짓는다. 즉 도면 A, B, C 선을 중심한 한 회로는 조성되어 선성사한다. 다음은 딴 목적물 대할때도 전번 의를 기대로 하여 미를 찾게 된다. 그러므로 전번 의와는 계속하여야만 따른 뜻 성사미로 이룰 수 있는 연결선을 조성한다. 도시 ㄱ, ㄴ, ㄷ 선 선 회로완성하고는 ㄱ, ㄴ, ㄷ 선으로 타에로 시작하여 언제나 영원 표준 선 완성 목적을 요구하는 회로를 영원히 계속하고자 하는 바가 인생 생애의 목적이다. 이와 같이 하늘 대하여 미로 시작성사가 시작되어야 다른 상대를 취하여 사랑격으로 대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하늘 사랑과 합하는 미를 찾았던 자격자니 선 소유자라는 입장을 복귀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대상격자를 나로 인하여 세우면 이상시작이다. 그곳에서 하늘 사람 대신 사랑으로 부부 사랑 자녀사랑을 취할 수 있는 자격자다. 그리해야만 하늘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대상자 기뻐하는 제1 제2 제3 존재 전부가 기뻐할 수 있는 한 목적 회로선상을 완성하게 될 때에 선한 가정이라 하는 바다.
선한 나我 중심한 선한 가정으로부터 선한 사회의 시작이니 여기에는 의의 사업이 요구케된다. 그런고로 나我중심하고 그 사업을 한 미로서 보면서 한 대상격적 선을 조성하여야 하는 한 몸 대신적 마음으로 대하여 한 미의 대상격 사업 시작이 조성하여야 만 의의 사업이다. 그런고로 한 대신 나의 사업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 사업은 그 사람이 대신이니 한 연결된 의를 중심한 한 목적상에서 있기에 의와 선을 표준하고는 하나라고 표시하여지는 것이므로 사업은 그 본인대신이라는 바다. 그러면 온 천주는 한 몸과 같은 구조로써 되어 있다. 물질세계도 한 하늘의 표시체이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사업을 통하여 생활을 시작하여 사랑 성사목적과 이상합합은 그 이상을 세우는 것이 우리 생활상 중심이다.
그러니 의의 사업이 미를 조성하는 것이며 선을 조성하는 중심도 된다. 내가 중심도 되고 사업이 중심도 되고 하늘이 중심도 된다. 이것은 한 회로잡고 되어있기에 시작하면 선이나 의로만 시작하니 그 선상에서 어디나 동성요소를 감각하니 그 중심도 각위치 한 대로 표시도 된다.
① ② ③ 이와 같이 자유기대선상을 어디를 탈선하여도 우리 양심가책이 시작된다. 가정이나 사회나 나혼자나 전부가 한 회로
선상에 있다는 결론적 존재니 그 자연법리와 같다. 그런고로 이상가정을 생각하기 전에 이상 사랑 받으라. 다음에는 이상사업하여라. 그러면 이상가정도 필연적으로 유지하는바다.
인간세상에는 먼저는 이상같은 것이 점점가다가 중단되나 하면 기본원리를 탈선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기본이상 향상 요소가 그 양심 가책으로 인하여 장성하지 못하고 중단됨으로 시작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이 근본원리상에서면 시작과 동시에 영원표준이상하고 나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영원이고 의면 영원 표준한 의로서 계속하고자 함이 근본이다. 그런고로 하늘뜻 합한 사랑부터 이상가정의 복귀로 이상사업복귀로 제1단계를 천주지간에 시작을 보고자 함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목적이다. 이곳이 자유이상세계다.
사람은 하늘 대하여서 사랑愛으로 대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중심으로 온 천주가 화동하는 작용 시작이 이상론의 결실목적지다. 그리하여 온 천주는 하나의 뜻으로 시작하여 끝끝내乃終 또 시작으로 하여 알파와 오메가적 원리성립을 보는 동시에 만세전 이상실현인 바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인간들 향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성사하여야 한다. 이 크나큰 이상의 근본을 사람 대하여 부여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늘로 연장으로 영원생활을 시작하는 자가 되어지는 행복의 창조섭리를 누가 감사치 않으랴. 이와 같은 생활하는 자라면 하늘은 나我를 중심하고 교시하면서 모든 것을 지도하는 한 목적이 시작한다. 그런고로 이 원리 상 이상은 하늘의 중심존재인 한 존재 재림주 중심하고 시작을 보는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재림주와 합하여 뜻 성사하는 세계자녀가 되어지는 것이 하늘의 한 소망인 것이다. (51. 6. 30)
제2 장 재림주는 이상론 완성의 기본존재
인간이 바라든 재림주라는 한 존재는 천지창조로부터 하나님도 또한 바라든 한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 한 존재가 다시금 지상에서 찾아져야만 창조적 본뜻 성사의 제일보를 볼 것이므로 이 한 존재가 전 중심적 목표로 되어왔다. 그는 즉 자기의 몸인 동시에 천주의 한 중심이겠으니 이 자체를 사랑하는 이유로 되어왔다. 재림주는 타락하지 않았을 때無墮落時의 한 존재야 되는 바는 사실이다. 이 존재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전부가 완성을 시작하는 동시에 지상에 대하여서는 하나님이 사랑하되 재림주를 중심하고야만 사랑할 수 있는 세계로 전개하게 된다. 그는 즉 재림주는 세상사랑하던 중심목적인 존재며 기본존재이므로 이 존재가 하나님이 지상 사랑하든 한 총결실존재니 그 존재가 오면 하나님의 전사랑은 천주 어디에 무엇보담 재림주이므로 이곳으로 시작하여 근본 창조적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바이다. 즉 그其존재가 출현하면 하나님이 세계 사랑하든 전부를 합하여서 재림주와 하나되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그러니 재림주 떠난 곳에는 하늘 사랑이 없음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 떠난 곳이 고통의 곳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 권내인 지상이 되면 그곳은 재림주를 중심하고 되는 곳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곳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받는 곳은 생명은 물론이면서 행복과 희락과 만족이 시작되는 세계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완성적 원리본채이므로 그 세계는 원리복귀의 세계이니 지상천국의 한 기본을 시작하는 세계이다. 재림주 전까지는 사랑하여 온바는 전부가 소생시켜서 재림주에게 합하게하는 본의였다. 그러니 재림주가 현현하면 천주는 하나님이 바라든 사랑 중심체인 재림주와 합하여야 할 터인데 합하지 못하면 그는 한 심판하여오던 대상의 모양으로 되니 그곳 향하여서는 단호한 무자비한 심판처럼樣 대할 시기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예수로 인하여 사랑을 주어서 무조건 사랑을 주었음은 재림주로 인하여 전부 합한 천주사랑 복귀코저 함에서다. 그런고로 주었으니 그 가치추궁과 거두기 위한 존재가 재림주다. 재림주는 사랑을 거두시는 존재이므로 재림주 오신 후부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는 자는 재림주 품에 와야만 다시금 창조 근본성인 사랑 이상의 자격을 받을 수 있는 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재림주를 통하여 돌려 드려야 할 책임이 있음으로 재림주를 사랑하며 한
회로적 대상을 성립시키지 않으면 안될 바가 끝날에 처한 사람들의 의무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보수적 사랑이라고 하여서도 아니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성적사랑이다. 즉 나我를 中心하고 받고 주어야 창조원리를 완성하는 바이므로 재림주를 통하여 사랑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는 바이다. 재림주를 다시금 사랑하면 근본적 창조이상전부가 시작을 보아서 자기로 인하여 완성을 지어 근본이상 생을 보장하는 터가 되는 원리를 세우려고 하니 재림 외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시기이다.
그런고로 사랑을 예수로 인하여 온 천주에 뿌려서 천주를 소생케 하여서 재림주로 인하여서 거두심이 목적이니 이 목적 외에 처하는 자도 하나님의 미움의 자라는 바는 두말할 바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귀한 사랑을 주어 온 바는 더 높은 사랑을 목표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이 사랑한 바는 예수로 인하여 사랑을 번식코저 함이 목적이었다. 예수 하나로 인하여 많은 사랑이 완성하여서 사랑을 시작케 하였다. 시작하였으니 그 결말은 있지 않겠는가? 이 사랑을 거두는 때時가 즉 재림주를 중심점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사랑하였으니 사랑받아야 하는 시대가 된다. 즉 재림시대부터 시작한다. 그러면 원리복귀가 시작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다시금 사람으로 통하여서 재림주에로 회로를 지어 한 일체적 사랑 이상을 완성한다. 즉 창조이상적 한 주고받고하는 회로를 조성하여 근본원리복귀 세계로 전개를 보는 바다. 다시 말하면 재창조 이상이 시작되는 바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두고 지금까지 사람을 사랑하여 왔지만 재림주이후는 사랑치 않는 자를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는 바이다. 하나님이 사랑치 않는 자를 위하여 사랑하면 사탄 짝하는 두려운 한 행동의 출현을 보는 바이다. 그런고로 사랑을 주기 위한 예수 이후에는 적까지 사랑하여 왔던 바도 적에 속한 사람을 대하여 사랑을 줌으로써 사랑의 소생을 보아 번식하게 하려니 적을 대하여 사랑하라고 한 것이 예수의 근본목적이었다. 그러기에 예수는 왼뺨을 치면 오른뺨까지 돌리는 근본목적이 있었던 바이다. 그것은 사탄보다 더 높은 사랑을 주어 사탄 대한 사랑 받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하여서고 또 사람은 사랑을 근본생명으로 하고 있기에 사탄의 사랑 이후의 사랑을 주어 소생시켜 전인류를 빼앗아 넘기려니 또 악 번식을 방지하여 속히 결실하게 하려니 이런 사랑을 취하였던 바이다. 그러니 재림주 옮으로 사탄은 패하고 사람은 재림주를 중심하고 근본원리가 완성하여지겠으니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서 받은 사랑에 대신 사랑을 주어야만 하늘과 나와는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한 선을 조성하여지는 근본이 됨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사랑하여 돌리는 회로를 조성하여 영원 삶生을 유지하여야만 타락전 세계를 조성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재림주를 중심하고 사랑을 주는 길을 돌려서 찾는 회로를 잡고자 하는 바는 선하게 하고자 하는 바가 근본이니 그래야 전부가 살 수 있겠으니 이런 목적으로 되는 것이기에 이상론을 완성하게 하는 바이다.
재림주가 오면은 그곳 시봉자는 지난날昔日에 사랑 줄 시대와 반대 방향으로 우리는 태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줄때는 뿌리일 때요 재림주 나타난 후에는 사랑의 결실을 거두는 때니 재림주 품 외에 있는 자를 사랑하면 거두는 때에 뿌리는 것과 한가지니 하늘의 사랑이 무효과됨을 정하는 시대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 존재들이 하늘 존재아닌 자한테 왼뺨 맞으면 사랑愛으로 대하지 않고 오른뺨까지 쳐서라도 하늘의 의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시대이다. 다시 말하면 아벨적 하늘 존재가 가인적 하늘 존재 아닌 자를 대하여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순종자로 하여 근본 복귀해 세워야 하는 시대이다. 그런고로 시대적으로도 자연히 이러한 경향으로 역사는 흐르고 있는 바는 이 근본 뜻이 완성하려는 시기가 가까워 오는 것을 보여주는 바이다. 그러나 재림주를 시봉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각자 각자가 하늘의 아버지 어머니의 분체로서 완성하여야 할 존재들이므로 함부로 손을 들어 칠 수 없는 바이다. 뜻 안에 있는 자를 치면 하늘의 아버지 어머님의 몸을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바이므로 사랑을 중심하고 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즉 한 형제면서 한 몸임으로 예수가 전하는 사랑을 갖고 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만일 뜻에 반하는 자가 있어 뜻을 세우려하기 위하여 충고를 받게 될 때에는 순응하여 뜻을 세워야 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자신으로 하여금 대신 감사의 표시로서 뜻 번식에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될 책임이 있는 바이다.
지금까지 역사를 두고 악 지배하에 속하여 있던 성도들은 가진 수모와 압제와 업신여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 소생시켜 장성시키기 위하여서 사랑 중심으로 양보하여 왔던 바이다. 재림주 이후에는 선 지배를 세우는 동시에 사랑을 찾아 건설하기 위한 역사적 수확의 시기이다. 재림주 모시는 자들은 수확과 동시에 건설을 추진시켜 나가야 할 의무를 각자가 갖고 있음으로 재림주의 뜻을 중심하여야만 상대를 대해서 사랑을 주며 또 받아야 하는 바다. 제삼자를 대하여 서로 함부로 줄 수 없고 함부로 받을 수 없다. 오직 뜻의 보장을 중심하고야 주고받고 할 수 있는 바는 사실이다. 이것은 선을 성사하려니 이런 창조원리를 요구케되는 바이다. 이리하여야 하늘의 선의 곳이니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을 침범하는 행동으로 되는 바이다.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입장을 정하고 뜻밖에 속하는 악 대하여서 무자비한 분별시대가 재림주를 중심하고 즉 이상시대이다. 그러니 양심적 선을 중심하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자아로서 선을 완성하여서 상대를 잡아 대상 선으로 시작하여 하늘 선을 중심하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자아로서 선을 완성하여서 상대를 잡아 대상 선으로 시작하여 하늘 선에 합하여야만 비로소 창조원리를 성사한 선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하늘과 합한 이상 선으로 사회와 연결지어 온 천주에 이상 선과 합하는 기본원리점이 시작하게 될 때에 천주는 기쁨이 나로 인하여 시작하게 되니 창조로부터 부여받았던 원리적 중대과업은 완성을 보게 되는 바이다.
완전히 주고받고 하려니 우리는 재림주를 중심하고 하늘 대한 사랑으로 하늘 부모를 모셔야 된다. 이것이 창조이상 선 완성의 근본 뿌리이다. 이 하늘 부모와 하나되어야 창조이상 선을 시작한다. 그러니 하나님과 합하려니 하늘 부모 품으로 합의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창조이상 원리완성이니 이상 선이다. 또 그 외에 우리 사람은 육신이 있나니 하늘 부모를 제일위로 하는 영상인 육신의 부모가 있는 바이다. 이 육신의 부모가 하늘 부모를 모侍시는 뜻에 서서 완전히 시봉하는 부모면 그 부모로 인하여서 육신받은 자식은 한 몸과 같이 되어야 할 바가 근본창조원리상점이다. 그러니 하늘 부모를 시봉하는 대신 존봉하여야하는 창조원리가 있기에 효도하지 않으면 아니될 원리를 갖고 있는 것이기에 효도하라는 유교의 기원이 있는 바이다.
또 나라적으로 대할적에는 재림주를 왕으로 시봉하여야 하며 또 지금까지 의 미지의 근본을 교시한 것으로는 스승師으로 시봉하여야 하는 바가 창조적 원리상점임으로 공자를 통하여 삼강이란 원칙을 세워서 역사를 시작하게 한바다. 그 목적은 지금 창조원리점 완성을 돕게 하기 위하여서 역사상에 남아지게 한바이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늘 사랑을 계대로 받아 번식하여야 하겠는데 먼저 하늘 부모의 뜻에 하나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며 세상의 부모를 위하여 뜻에 합당하게 노력할 것이며 그 다음은 내 대상 존재로 하나 되어서 전체가 하나로 완성하여야 할 바가 인생의 제일책임인 바다.
즉 하늘 부모 + 육신부모 + 부부(자녀) 합하여서 하나 되어 분립 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창조성상대로 대상이상형을 전개케 한 바가 근본창조원리이었다. 이것이 하나로 하늘의 뜻을 성사한
자라면 재림주를 시봉하는데 완전 자격인 제일책임은 완성하는 바이다. 그러니 효자 충신이 되어서 하늘 부모를 시봉하여야 자기를 완성하고 하늘 대하여 완전중개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바다.
특히 세상에 부모된 입장은 어떤 입장인가. 이상론으로 보아 살펴 볼 때에 즉 나我를 예로써 잡는다 하면 나我는 육신적 위치이고 부모는 마음적 위치이므로 하늘 대해서 완전한 영상으로 되어 자식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상대위치를 갖고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식 대하여서 마음이 몸을 지배하듯이 부모는 자식에게 하늘의 한 모형의 본이 되어 나타나서 뜻 성사에 노력하여야 하는 책임적 의무가 있는 바이다. 그렇지 못하면 하늘 뜻 성사하기 위하여서 몸이 마음을 지배하여서라도 완전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즉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서 뜻을 잘못 행함이 있다하면 시정할 책임이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재림주를 모시는 자는 나를 중심하고 먼저 가정을 완성하여 이상론 삼위격 영상을 완전히 조성하는 것이 제일책임인 것이다.
그리하여 제2책임부분인 사업과 사회를 뜻 합의자로서 대할 수 있는 자격이 성립하는 바이다. 제일책임부분을 완성한 자라면 제2책임 대상인 사업으로 사회를 대하여 나가는데 자격이 있는 동시에 그 뜻 미추진자 대하여서 무엇이나 충고할수 있는 바이며 지도할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곳에 작금 문제 보다도 뜻 중심하고 완성자는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 어느 곳에든지 있는 바이다. 이것이 원리적 책임이면서 선 번식의중심이 되는 바이다. 그러니 재림주를 시봉하는 세계는 이 이상을 표준한 세계이므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국가에서나 세계 어느곳에서나 원리아닌 곳을 책망하여 정의로 배양할 사명적 연결이 각자에게 부담되어 있는 바이다. 만일 만의를 그냥 두면 그 존재 역시 뜻 미성사의 한 상대 결정자 입장이 되니 불의라는 타락 상대 근본을 보는 바이다. 이러니 누구나 다 하늘 뜻 성사를 표준하고 지상에서 불의에 대한 방위태세를 취하는 것이 재림주 이후에 처하는 우리 인생 생애의 맡겨진 한 사명이다. 이 완성된 시대에 속하게 되면 사람들은 하늘 자녀의 시작을 보는 바는 물론이며 또 그 시대의 부부도 영원한 부부로서 하늘 부모의 한 대신분체로서 영원한 이상부부로 시작하는 동시에 하늘에 가 있는 영인들이 땅에서 완성하여야할 미완성부분까지 충당하여 채우는 역할을 하여야한다. 즉 각자는 지상의 자아를 완성하는
동시에 하늘에 가 있는 식구 있으니 그 어찌 중대한 책임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지상에 있는 나 자체로 인하여 지상완성이면서 대신천국완성이라는 뜻 완성하여 근본 해방시작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천국영인들은 우리 지상 사람과 합하여야 자기들이 지상에서 완성하여야 할 미완성 부분을 완성하겠으니 이 시대(재림주)를 하늘 영인까지 고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