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003: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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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부분: 그와같은 기본문제가 제기되니 사탄은 전발동하여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 등등으로 대격동을 시켜 예수를 대하게 하시었다.
* 시작 부분: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유에서 절대무의 기본존재이므로 어느 면에서도 단위적 노선에서만 서서 존재를 찾으면 그 존재는 자연적으로 체감된다. 그 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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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 원문 ==
<nowiki>
왜냐하면 하나님은 <ruby>절대유<rt>絶對有</rt></ruby>에서 <ruby>절대무<rt>絶對無</rt></ruby>의 <ruby>기본존재<rt>基本存在</rt></ruby>이므로 어느 <ruby>면<rt>面</rt></ruby>에서도 <ruby>단위적<rt>單位的</rt></ruby> <ruby>노선<rt>路線</rt></ruby>에서만 서서 <ruby>존재<rt>存在</rt></ruby>를 찾으면 그 <ruby>존재<rt>存在</rt></ruby>는 <ruby>자연적<rt>自然的</rt></ruby>으로 <ruby>체감<rt>遞減</rt></ruby>된다. 그 <ruby>체감<rt>體感</rt></ruby>으로써 하나님의 <ruby>존재<rt>存在</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확실<rt>確實</rt></ruby>한 <ruby>근본문제<rt>根本問題</rt></ruby>를 <ruby>해결<rt>解決</rt></ruby>수 있는 바이다. 왜냐하면 <ruby>무한대<rt>無限大</rt></ruby>에서 <ruby>무한소<rt>無限小</rt></ruby>에 <ruby>통<rt>通</rt></ruby><ruby>공통노선<rt>共通路線</rt></ruby>으로 흐르는 <ruby>무한대<rt>無限大</rt></ruby>에서 <ruby>무한소<rt>無限小</rt></ruby>의 힘을 보아 이 힘은 <ruby>공식<rt>公式</rt></ruby>과 같은 <ruby>원리<rt>原理</rt></ruby>를 <ruby>통<rt>通</rt></ruby>하여 <ruby>연결<rt>連結</rt></ruby>되고 있으며 <ruby>기<rt>其</rt></ruby> 어떤 <ruby>중간입장<rt>中間立場</rt></ruby>에서라도 <ruby>자기<rt>自己</rt></ruby>만이 그 힘과 <ruby>감응<rt>感應</rt></ruby>할 수 있는 <ruby>연체<rt>聯體</rt></ruby>로 <ruby>평형선상<rt>平衡線上</rt></ruby>에 서게 되면 <ruby>무한대<rt>無限大</rt></ruby>에서 <ruby>무한소<rt>無限小</rt></ruby>에 흐르는 그 <ruby>감지<rt>感智</rt></ruby>를 통하여서만 알 수 있는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ruby>무한대<rt>無限大</rt></ruby>에서부터 <ruby>무한소<rt>無限小</rt></ruby>에까지 <ruby>연관<rt>聯關</rt></ruby>하는 <ruby>중심<rt>中心</rt></ruby> <ruby>동력체<rt>動力體</rt></ruby>이다. 그러면서 <ruby>영원<rt>永遠</rt></ruby>을 <ruby>표준<rt>標準</rt></ruby>하고 <ruby>시작<rt>始作</rt></ruby>하며 나아간다. 그런고로 사람은 <ruby>기<rt>其</rt></ruby> <ruby>중간존재<rt>中間存在</rt></ruby>다. 이 <ruby>중심존재<rt>中心存在</rt></ruby>가 <ruby>완성<rt>完成</rt></ruby>하여야만이 <ruby>천주적<rt>天宙的</rt></ruby> <ruby>기본원리<rt>基本原理</rt></ruby>는 <ruby>원만화<rt>圓滿化</rt></ruby>를 가져오게 된다. <ruby>즉<rt>卽</rt></ruby> 하나님은 <ruby>무<rt>無</rt></ruby>에서 <ruby>유<rt>有</rt></ruby>에로
었었든 것이었는데 예수 한 자체가 나타나는 때時에 사탄 뜻에 빼앗겼던 근본 쪼개割지 않았든 비둘기鳩를 다시 찾아서 완성하는 그 자체가 나타났으니 예수는 소생표시제물 비둘기鳩적 구약시기는 완성하여서 기본 뜻 성사는 시작할 수 있는 기본의의의 표시로 비둘기鳩와 같은 성신강림이었다.
 
  이것은 잃어버렸던 구약성사완성을 터로하여 신약 장성기의 양의 시기의 시작과 함께 뜻 시작 확립을 알리는 뜻이 있었다. 그리하여 완성 암소牝牛적 해와 한 존재가 시작을 찾아나가게 되는 책임분담노정이 예수의 한 사명노정이었다. 그러니 예수는 아브라함 예약제물 완성기본존재였다는 것은 사실이니 이 모든 근본 완전성사가 필요하는 바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는 구약시기의 전부를 찾아 맞추고는 근본노정으로 제일보를 내어 놓으려 할 때에 시종자를 택하여 제자 택하는 것이었다. 광야생활 끝나고는 이스라엘 백성 대한 복음선포였다. 구약적 신앙의 중심인 율법을 통한 행의의 노정을 변하여 신의의 노정으로 전환시켜서 복음완성 즉 뜻 완성이 요구목적이었다.
<ruby>작용<rt>作用</rt></ruby>하고 사람은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무<rt>無</rt></ruby>에로 <ruby>수수작용<rt>授受作用</rt></ruby> <ruby>원만화<rt>圓滿化</rt></ruby>를 <ruby>취<rt>取</rt></ruby>하여만이 <ruby>원만존재<rt>圓滿存在</rt></ruby>으로 되는 것이 <ruby>천리<rt>天理</rt></ruby>이며 <ruby>창조원리<rt>創造原理</rt></ruby>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앞으로 올 수 있게 하기 위한 세례요한이 사명을 파하였으니 제자들을 택하는 제2차적 노정은 두려운 노정이었다. 그런고로 제자들 택한 후에는 믿게하기 위하여 이적기사로서 예수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예수가 나아가야할 노정은 하나님이 본으로 보여준 한 구약노정을 표로 바로와 싸운 사탄 대하여서 선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든 것과 한가지로 먼저 예수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의 결속이 선결문제였다.
 
그러하여 사탄 공격은 시작할터인데 본되는 뜻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가는 모세 앞에 여호아 나타現나서 모세를 죽이려 때에 모세 모자 합하여서 성사한 할례가 완성한 후에야 적극행동하여 3일기간되는 광야를 나아가는 결정적 대립의 점에 나간 것과 같이 예수도 모친과 합하여 예수 성혼할 기초를 보지 못하고 제2차적으로 다시금 어머니가 대상자를 모색하여 예수 성혼할 부분을 외부로 찾아서 시작함이 제자 택하여서 제2차 사탄 대하여 취한 노정이니 아직 이 뜻 근본을 세우지 못하면 사탄 대하여서 적극 대할 수 없는 것이니 이야말로 예수 앞에 중대한 과업이었다.
+ (無限有實體世界) +
그런고로 예수는 할례 완성자를 세워야만 3일기간 광야노정에 대한 출발과 같이 3일기간을 넘으려니 먼저 할례적 조건이 남아서 합의를 세울 수 없으니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나아가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근본 뜻을 세우려고 하시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제자중 사랑하는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가 있었다. 이 유다를 사랑하여 하늘뜻 성사를 협조할수 있는 상대존재로서 세워 하나님의 근본 뜻 근본적 조성을 목표하고 공작하셨다. 그때 예수는 유대 땅의 선한 부인을 한 대상자로 삼아 타락근본자체인 한 해와격 존재를 취하여 세우고자 하심이었다. 그런고로 유대 땅의 선한 부인을 한 해와의 존재로서 취하여서 뜻 본의를
사람
세우게 함이었다. 그 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뜻을 절대 순종자인 동시에 가룟유다의 한 협조자로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유대 땅의 선한 부인을 해와격으로 사탄이 해와를 안아주고 빼앗아 낸 모양으로 유대 땅의 선한 부인을 취하여서 원리를 채워서 뜻 성사를 공작하시었다. 그리하여 가룟유다와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 성혼의 사명을 주고자 하심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이 해와 한 자체로서 유대 땅의 선한 부인을 택하여서 섭리를 시작하려 하였다.
 
그와같은 기본문제가 제기되니 사탄은 전발동하여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 등등으로 대격동을 시켜 예수를 대하게 하시었다.
① ①
  그러나 유다만 전적으로 믿음信과 순종이나 시봉으로 이 뜻을 따랐더라면 성사의 기본을 세울 수 있는 바이었는데 가룟유다 역시 이와같은 원인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행동의 시작을 하니 역사상에 없는 자기선생 대하여서 은 30에 파는 근본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려하는 바를 중심하고 가룟유다는 하늘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에 반하는 행동이 시작이 되어 원수들과 결탁하여 파괴적 행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탄 원하는 행동을 하고나니 예수는 피치 못할 입장으로 나가며 십자가상에 달릴 것을 순종치 않는 사람들 향하여 호소하였든 바이었다. 모세가 뱀蛇을 든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겠다는 것은 불순, 불신, 불시으로 인함이라는 기인으로 시작하여 사탄 침입의 표시가 나타나니 뱀蛇이 물어 죽을자를 모세가 든 동뱀蛇보아서 주검을 면한바와 같은 원인으로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예고한바이었다. 이 모두가 믿信지 않고 순종치 않는 것으로 생겼生起으니 지금도 믿信지 않으므로 필경 십자가까지 달려서라도 뜻 성사하여야겠다는 예수님의 내심을 발표함이었다.
사람
이 모든 원인도 불순 불신으로 인한 행동이 유다로부터 외부 결탁하여 죽이려는 공작으로 전개를 본바를 지금알게 될 때 크나큰 두려운 사실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런고로 예수 앞에 십자가 노정은 기정적 노정이 아니고 불순 불신으로 인한 비원리적 노정이다. 그런고로 요한 복음 3장 12절부터 16절에 세상것 믿信지 않는 자가 어찌 하늘 것 믿겠느냐. 그러니 모세가 광야에서 뱀蛇든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하시었다. 다만 길 생긴生起 것은 믿信지 못하고 순종치 못하여서 시작한바이었다. 그런고로 예수도 유다더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뻔 하였노라 하셨음은 불신, 불순의 존재였다는 파괴존재가 가룟유다였다는 것을 표명한바다.
 
그 외 예수 자신이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할 수 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 지나被하게 하시옵소서 하신 기도 등을 보아도 결정한 노정이 아니었음을 말하는 말씀이다. 이리하여 십자가를 통하여서라도 예수 자신이
ⓞ ⓞ
성사하여야할 사명분담책임을 죽어서라도 성사하지 않으면 안될 책임이 있기에 육신으로 성사할 수 없는 입장이니 영적으로 성사하여서 사탄 대한 승리노정을 세우기 위하여서 십자가를 대하게 하는 기본원인이 있음有이다. 육신성사못하면 사탄 승리라. 그런고로 사탄 대한 승리적 조건으로써 영으로라도 성사하여서 해와의 한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세워 예수는 신랑이며 신자는 신부라는 명사로서 예수는 뜻 성사의 기본을 지어 놓고 십자가를 지셔서 3일기간을 출발코자함이었다.
 
그런고로 지금까지 역사를 통하여 전하나님의 섭리한바는 해와 찾아 세우기 위함의 목적이다. 그런고로 전세계적으로 예수는 신랑신부라는 뜻 최고목적한 곳으로 향하게 하시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성신을 보내심은 해와의 신을 보내신 바가 즉 예수 승천후 온 성신강림이었다. 그런고로 해와는 즉 남편이 예수라는 것을 잘 알므로 사람 마음에 들어가서 감동주어서 예수를 남편과같이 사모하면 영적으로 하늘天에는 예수 땅에는 성신으로 사모케 하여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 때만이 영적생명의 주입시작을 보는 바로 되었다. 그런고로 근본 죄짓게 한 것은 해와니 죄짓는 직접역할은 해와의 신 성신이 하여야할 해와적 책임분담사명이 있음으로 성신은 사람, 사람 마음을 통하여서 역사하여서 전부가 한몸이 될 때에 타락하기 전 아담 정도까지는 전세계인류를 끌어올리고자 함이 예수와 성신 기본역사의 원인이 있는 바이다.
하나님
그런고로 모세가 바로 대한 3일기간과 같은 길을 주검과 함께 출발키 시작하여 생명세계에로서 예수로 인한 무조건 생명요소를 받는 노정으로서 가나안 복지와 같은 천국 향하기 위하여 원수 대하여서 각자가 예수 힘을 받아 싸워서 각자 성전건설하여 최종목적점인 하나님 모侍실수 있는 과정으로 지금까지 나온바이다. 성경에는 성신을 훼방하면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고 한바는 약한 신이니 즉 해와의 신을 표징하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가룟 유다가 순종하였으면 예수의 뜻에 유대 땅의 선한 부인은 합의하여 예수 정도까지 절대순종과 함께 예수가 대할 수 있는 곳까지 올라오면 성신강림하여 예수와 합체 이상을 조성하여서 근본창조인 조상의 대신존재들로 서서 그를 중심하고 믿信고 모侍셔서 근본뜻을 볼 것이었다. 그런고로 사탄은 여기에 근본적으로 굴복을 볼 수 있는 기본조건의 성립을 보았을 터인데 그것이 영적으로만 지금까지 목표한 점으로 되었으니 예수님 미성사로 간것과 같은 이유니 재림하여서 뜻 완전 성사를 남겨두고 승천하시었다. 이런고로 재림은 반드시 육신 몸으로 와야하는 근본의의가 남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 (無限無 無形世界) -
지금 이천년 역사는 되풀이하는 기점에 다시금 옮겨온 바와 한가지다. 기간에 허비라는 것은 유다가 믿信고 순종치 않은 원인으로 시작이 바리새 교인들이 불신, 불순, 불시로 인하여서 이와같은 있어서는 아니될 한 실패를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바리새 교인 향하여서 말하기를 뱀蛇과 독사毒蛇의 종류들아 너희 자체들은 불순종의 피血을 받고 있는 자者로다. 또 너희는 사탄이 너희 아비父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성경에도 요한 복음 8장 44절에 사탄을 너희爾等의 아비父라고 하신 곳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ruby>표시도<rt>表示圖</rt></ruby>를 보면 사람은 <ruby>단위적<rt>單位的</rt></ruby> <ruby>위치<rt>位置</rt></ruby>에 <ruby>거<rt>居</rt></ruby>한다. 사람을 <ruby>통<rt>通</rt></ruby>하여만이 <ruby>우주<rt>宇宙</rt></ruby>와 <ruby>천주이상<rt>天宙理想</rt></ruby><ruby>완성<rt>完成</rt></ruby>하게끔 지으셨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몸으로 지은 <ruby>특유<rt>特有</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로 되어있다. <ruby>유<rt>有</rt></ruby>(+) <ruby>무<rt>無</rt></ruby>(-)라고 <ruby>표시<rt>表示</rt></ruby>하면 사람은 (+)(-)의 <ruby>중화체<rt>中和體</rt></ruby>로 되었다. (-)는 <ruby>영<rt>靈</rt></ruby>으로 (+)는 <ruby>육체<rt>肉體</rt></ruby>로서 <ruby>합체<rt>合體</rt></ruby>되어 있다. 사람은 <ruby>영<rt>靈</rt></ruby>과 <ruby>육<rt>肉</rt></ruby>의 <ruby>경계선<rt>境界線</rt></ruby>을 <ruby>정<rt>定</rt></ruby>치 못한다. 그런고로 사람은 <ruby>영<rt>靈</rt></ruby>과 <ruby>육신<rt>肉身</rt></ruby><ruby>합<rt>合</rt></ruby>하여야만이 <ruby>완전<rt>完全</rt></ruby>사람이다. 우리는 <ruby>영<rt>靈</rt></ruby>을 <ruby>장성<rt>長成</rt></ruby>시켜서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를 <ruby>완전<rt>完全</rt></ruby> <ruby>조성<rt>造成</rt></ruby>하면 <ruby>무<rt>無</rt></ruby>의 <ruby>세계<rt>世界</rt></ruby>까지 <ruby>통<rt>通</rt></ruby>할 수 있는 <ruby>중간존재체<rt>中間存在體</rt></ruby>다. 그런고로 <ruby>본래<rt>本來</rt></ruby> 사람은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를 <ruby>완성<rt>完成</rt></ruby>하여야 한다. 그러면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라면 어떠한 <ruby>구조<rt>構造</rt></ruby>로 되어 있는가 하면 <ruby>영체<rt>靈體</rt></ruby>, <ruby>생명체<rt>生命體</rt></ruby>, <ruby>생령체<rt>生靈體</rt></ruby>로 되어있다. <ruby>육신<rt>肉身</rt></ruby>에는 <ruby>육체<rt>肉體</rt></ruby>와 <ruby>육심<rt>肉心</rt></ruby>으로 되어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에는 <ruby>생심<rt>生心</rt></ruby>을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ruby>영체<rt>靈體</rt></ruby>를 <ruby>부식<rt>附殖</rt></ruby>할 수 있는 <ruby>기본<rt>基本</rt></ruby> 터를 이루며 <ruby>장성<rt>長成</rt></ruby>하여서 <ruby>생명체<rt>生命體</rt></ruby>로 나아가 그 <ruby>생명체<rt>生命體</rt></ruby>가 되어만이 하늘에 한 <ruby>장성체<rt>長成體</rt></ruby>를 가진 <ruby>자체<rt>自體</rt></ruby>로서 <ruby>생활<rt>生活</rt></ruby>할 있는 것이다. <ruby>기<rt>其</rt></ruby> <ruby>생명체<rt>生命體</rt></ruby>에다 <ruby>생령체<rt>生靈體</rt></ruby>를 이루어야 <ruby>본창조이상<rt>本創造理想</rt></ruby>인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로 된다.
이와 같이 불순으로 불신으로 불시로 다시금 너희는 뱀의 하는 행사를 다시금 성사코자 하는구나 하면서 예수는 7화의 말을 발표하여서 책망하심이었다. 책망 중에는 역사적으로 뱀蛇의 종류된 사실의 내막을 포함하고 책망한 바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뱀蛇의 피血을 계승할 수 있는 행동은 다만 불순, 불신, 불시 하였든 원인으로 인하여 시작되었는데 지금 너희들도 불신의 종류하심이었다. 이때 벌써 예수는 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 만나서 장래 예루살렘에서 별세할바를 듣게 되었다.(누가복음 9장 30절에서 31절)
 
  그리하여 모세의 목적과 엘리야의 목적을 완성할바를 알고난 후였다. 벌써 십자가를 각오하고 하늘편적 노정을 성사하여야 할 것을 알았다. 그런고로 예수는 책망하는 말씀 중에 그 조상들이 원수 사탄과 합할수 있는 터를 잡아서 지금까지 나와서 예수 대하여서까지 원수의 실체행동을 하는구나. 너희 중에는 하나님의 슬퍼하는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역사적 열매라는 것을 발표하시었든 바가 즉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 대한 7화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런데 <ruby>지금<rt>至今</rt></ruby>까지 <ruby>타락<rt>墮落</rt></ruby>되니 <ruby>인간<rt>人間</rt></ruby>들은 <ruby>영체<rt>靈體</rt></ruby>의 <ruby>근본<rt>根本</rt></ruby>되는 <ruby>생심<rt>生心</rt></ruby>까지 <ruby>보유<rt>保有</rt></ruby>하는 <ruby>존재<rt>存在</rt></ruby>가 없다하리만큼 <ruby>타락<rt>墮落</rt></ruby>되었다. 이 <ruby>인간<rt>人間</rt></ruby>들에게 <ruby>영체<rt>靈體</rt></ruby>를 <ruby>구성<rt>構成</rt></ruby>시켜서 <ruby>장성<rt>長成</rt></ruby>하여 <ruby>생명체<rt>生命體</rt></ruby>까지로 <ruby>목적<rt>目的</rt></ruby>하고 <ruby>역사<rt>歷史</rt></ruby>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信, <ruby>신앙생활<rt>信仰生活</rt></ruby>을 <ruby>배양<rt>培養</rt></ruby>하는 <ruby>목적<rt>目的</rt></ruby>으로 되었다.
이 말씀은 전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적 혈계를 계승된 순서적 지적으로 그의 전죄와 지금 너희의 죄의 행동이라는 한 열매의 행동임에 틀림없다고 단언하시면서 책망하신바가 7화의 책망이었다. 이 책망이야 예수의 마지막이란 행로인 십자가 노정은 멀지 않아 앞으로 바라보면서 하신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 대한 마지막 책망이었다. 그러면서 필경 너희 조상들의 피血의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구나 하시면서 너희爾等은 너희爾等의 조상의 악한 양을 충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죽殺임을 당하여 근본 죄의 목적량을 채우充려 하심의 목적이었다. 죄는 다 결정하였으니 죄로써 예수를 죽死게 하는 그 값의 전부는 이루며 죄의 목적물은 다 주어서 취하게 하고 죄의 행로의 결실을 기하기 위한 결정적 노정이 십자가이었다.
 
역사를 통하여서 예수를 보내여서 뜻 성사코자 함이 목적
그러므로 예수 오셔서 <ruby>생령체<rt>生靈體</rt></ruby>까지 <ruby>완성<rt>完成</rt></ruby>코저 하였으나 <ruby>불신<rt>不信</rt></ruby>하고보니 <ruby>미완성<rt>未完成</rt></ruby>하여 <ruby>생명체급<rt>生命體級</rt></ruby>까지 <ruby>전인간<rt>全人間</rt></ruby>을 <ruby>장성<rt>長成</rt></ruby>시켜야 할 <ruby>책임사명<rt>責任使命</rt></ruby> <ruby>부경<rt>部境</rt></ruby>이다. 그 후 <ruby>생령체<rt>生靈體</rt></ruby>는 <ruby>완성체<rt>完成體</rt></ruby>인데 <ruby>재림시<rt>再臨時</rt></ruby>부터 <ruby>시작<rt>始作</rt></ruby>코저 함이 <ruby>목적<rt>目的</rt></ruby>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ruby>타락<rt>墮落</rt></ruby>치 아니하였으면 <ruby>육신<rt>肉身</rt></ruby>의 <ruby>완성<rt>完成</rt></ruby>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ruby>생심<rt>生心</rt></ruby>은 그 <ruby>본노정<rt>本路程</rt></ruby>으로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 <ruby>구성<rt>構成</rt></ruby>을 <ruby>동일시<rt>同一時</rt></ruby>에 <ruby>연합<rt>聯合</rt></ruby>하여 <ruby>완성<rt>完成</rt></ruby>에로 나아갈 <ruby>인간<rt>人間</rt></ruby>들이 <ruby>타락<rt>墮落</rt></ruby>으로 <ruby>인<rt>因</rt></ruby>하여 <ruby>전인간<rt>全人間</rt></ruby>에게(하늘<ruby>인<rt>人</rt></ruby>도) <ruby>구분<rt>區分</rt></ruby>하여 <ruby>장성<rt>長成</rt></ruby>시켜서 <ruby>완성<rt>完成</rt></ruby>의 <ruby>모양<rt>模樣</rt></ruby>으로
이었는데 예수를 보내고자하는 뜻의 길을 막기 위한 것이 사탄의 길이었으니 이 원하던 목적 자체인 예수의 육신에 대한 살해는 허락하여서 사탄 요구전부는 완성할 수 있는 한 단계를 보았으니 예수를 십자가의 노정까지 내놓게 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이다. 그런고로 사탄은 자기가 취할 수 있는 근본적 전부는 취한 결과를 완성하였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취하고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노정이 즉 예수 십자가 이후의 노정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의 도리를 세우셔서 성신과 합하여서 하나님이 취할수 있는 선의 것으로 전세계를 맑히기 위한 섭리는 시작하심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십자가를 예수 앞에 허락하여서 사탄 뜻 완성에 한 양을 채우充라 하심은 근본의의가 있음이었다. 예수는 악의 종국을 위한 한 대신 탕감자로서 희생함이 십자가의 노정인 것이다. 그런고로 죄의 뿌리는 끊어지는 한 단계으로 넘어서게 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순종자와 불순종자를 분립을 세우기 위하여서 예수는 전세계적으로 믿음信의 신앙을 세워 하늘편이고 불순, 불신, 불시자는 사탄으로 자기들 소유권 판결을 지어 나오심이 역사적 예수의 복음사명이다. 그런고로 예수께 속하면 사탄은 떠러지는 원리로 되어 있기에 승리하는 한 기본원리가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죄의 종국을 짓는 동시에 선의 한 시작을 보았다. 그런고로 지금까지는 사탄이 예수한테 공격하여 나왔지만 예수 십자가 후부터는 사탄은 보수적이고 예수는 공격에 제일보의 단계로 넘어가는 원리적 조건성사와 한가지라 즉 모세가 3일노정을 시작하는 원리적 기점은 시작하는 행로출발과 같은 것의 시작이 예수 십자가상에서 세운 승리의 한 중심이었다. 그런고로 사탄은 굴복하는 단계로 예수의 편과 사탄 편으로 분기는 확립하게 하심이었다. 그 사탄은 하나님한테 무엇갖고 취할 수 있는 조건을 다 취한 양이니 지금부터는 예수의 취할수 있는 것을 보수적으로 방비적 태세으로 나아가는 한 허락적 승리노정과 같은 광야생활과 같은 신앙생활 시작이 완성하였다.
되었다. <ruby>제<rt>第</rt></ruby>2<ruby>차<rt>次</rt></ruby> 예수는 <ruby>장성<rt>長成</rt></ruby> <ruby>생명체<rt>生命體</rt></ruby>까지 <ruby>제<rt>第</rt></ruby>3<ruby>차<rt>次</rt></ruby> <ruby>재림<rt>再臨</rt></ruby>하여서 <ruby>완성체<rt>完成體</rt></ruby> <ruby>생령체<rt>生靈體</rt></ruby>를 <ruby>주입<rt>注入</rt></ruby>시켜서 <ruby>이상<rt>理想</rt></ruby>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를 <ruby>조성<rt>造成</rt></ruby>하고자 함이 <ruby>근본<rt>根本</rt></ruby>으로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ruby>기<rt>其</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 할터를 닦고자 하니 <ruby>구약역사<rt>舊約役事</rt></ruby>가 있고 <ruby>신약<rt>新約</rt></ruby>은 그 터위에 <ruby>장성<rt>長成</rt></ruby>하여 <ruby>전세계<rt>全世界</rt></ruby>에 터를 닦고 그 위에다 다시금 <ruby>완성<rt>完成</rt></ruby>의 <ruby>이상<rt>理想</rt></ruby> <ruby>생령체<rt>生靈體</rt></ruby>를 땅과 함께 하늘까지 <ruby>연식<rt>聯殖</rt></ruby>시켜 <ruby>이상천주<rt>理想天宙</rt></ruby> <ruby>완성<rt>完成</rt></ruby> <ruby>목적<rt>目的</rt></ruby>으로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구약시기부터 <ruby>절대<rt>絶對</rt></ruby> 뜻을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ruby>인간<rt>人間</rt></ruby>들이 <ruby>시봉<rt>侍奉</rt></ruby>하였으면 <ruby>직접<rt>直接</rt></ruby> 뜻을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터를 세우면서 <ruby>이상<rt>理想</rt></ruby> <ruby>전개<rt>展開</rt></ruby>코저 함이었으나 <ruby>불신<rt>不信</rt></ruby>으로 <ruby>인<rt>因</rt></ruby>하여 그 <ruby>목적<rt>目的</rt></ruby> <ruby>미달성<rt>未達成</rt></ruby>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판결적 분기를 지으려니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까지 내 놓은바의 원리가 있음이다. 이것은 여러 조건으로 미련갖고 있으니 즉 예수 몸까지 취할 수 있는 불순 불신의 열매였든 모세의 반석과 석판 타파한 기본원리가 있었기에 아주 사탄의 뜻에 미련을 남기지 않을 전부의 청산과 같은 근본의의를 완성하기 위하여서 십자가라는 허락함의 시작의 성립을 부여하심이었다. 그런고로 사탄은 전부 취할 것 취하였으니 뜻에 대한 미련을 남길 없게 되어 불순종이면 네것이고 순종하고 믿信으면 내我것으로서 세계를 향하여 자기것 취하기
 
위한 한 공세를 취하여서 예수와 성신은 본격적 출발을 시작하였었다. 그런고로 본래 예수(아담)는 전인류를 자기편에 속하게 하여야할 원리이니 예수는 전세계적으로 이 목적하고 본노정을 시작하심이었다. 사탄은 끝까지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서 적극으로 행동하여 역사적으로 대립을 보면서 내려오게 되었다. 전세계가 사탄 악속에서부터 예수 선속으로 분립하여 승리를 보고자 하니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에 내놓지 않으면 안될 원리적 사실의 기반을 볼 수 있음이다. 그러니 예수도 자기의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는 입장의 근본이 있음이다. 이 모든 것을 이와 같이 되니 유다로부터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이 믿信고 순종하고 시종하였으면 이런 것은 방지하면서 보수와 공세를 취하여 나오는 양으로 승리할 수 있는 노정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ruby>요구<rt>要求</rt></ruby>와 <ruby>기<rt>其</rt></ruby> <ruby>구원요구<rt>救援要求</rt></ruby>가 남아지는 뜻으로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ruby>구원섭리<rt>救援攝理</rt></ruby>는 사람을 찾아서 <ruby>원리상<rt>原理想</rt></ruby> <ruby>영인체<rt>靈人體</rt></ruby>를 <ruby>회귀<rt>恢歸</rt></ruby>하여 <ruby>본<rt>本</rt></ruby> <ruby>창조이상<rt>創造理想</rt></ruby>을 <ruby>성사<rt>成事</rt></ruby>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ruby>절대유<rt>絶對有</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이며 <ruby>절대무<rt>絶對無</rt></ruby>의 <ruby>주인공<rt>主人公</rt></ruby>이 <ruby>즉<rt>卽</rt></ruby>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여전하게 그 원수의 결과성은 표시하니 화근에 대한 양을 채우充려는구나 하시어서 2화로서 역사적 죄의 발전유래를 폭로하심이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탄의 침입노정은 불순으로 불신으로 인한 노정과 불시의 노정을 타서 침입이 시작하여 지금까지 그 결실점 현세까지 왔구나 하심을 밝힘이었다. 즉 죄의 유래의 침입 경로는 아담부터 시작이었으나 그의 취할 수 있는 분기존재는 자식부터임으로 가인 대한 하늘편 아벨 죽이는 불순과 불시와 불신의 열매果로 인하여 시작의 본노정은 시작하였으니 마태 복음 23장에 7화의 근본 책망의의를 살펴보자.
 
그런고로 죄의 결정적 시작은 가인부터다. 아담은 뿌리였다. 순종하는 자식이면 복귀가 시작할 수 있는 중성 존재였다. 그런고로 본격적 시작의 터는 가인이다. 가인으로 인하여 시작하여서 사탄은 인류역사를 통한 침입노정을 봄이다. 다시 말하면 그 순서는 가인과 함과 아브라함, 모세, 석판 부숨破, 모세 반석 침破, 요셉 가정과 마리아 다음 현 예수 대 원수 등등으로 사탄의 침입의 노정을 가졌다는 역사적으로 두고 화의 원인점되는 침입행위등의 근본인 불순 불신 불시등을 보니 그의 결실을 찾아서 가라고 하여서 언명한바가 7화의 내용 근본의의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ruby>인간<rt>人間</rt></ruby>은 어느 <ruby>방면<rt>方面</rt></ruby>으로든지 <ruby>극<rt>極</rt></ruby>을 찾아 가면 갈수록 하나님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각요성<rt>各要性</rt></ruby>을 <ruby>절실<rt>切實</rt></ruby>하게 <ruby>감각<rt>感覺</rt></ruby>되게 하는 것이 <ruby>현천주<rt>現天宙</rt></ruby> <ruby>만상<rt>萬相</rt></ruby>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ruby>전부<rt>全部</rt></ruby>가 <ruby>천주<rt>天宙</rt></ruby>의 <ruby>공로<rt>公路</rt></ruby>를 <ruby>정당<rt>正當</rt></ruby>하게 설수 있는 <ruby>자아<rt>自我</rt></ruby>를 찾으면 <ruby>전체<rt>全體</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중심문제<rt>中心問題</rt></ruby>까지 <ruby>해결<rt>解決</rt></ruby>을 가져오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은 <ruby>창조<rt>創造</rt></ruby>하신 <ruby>만상<rt>萬相</rt></ruby>을 <ruby>공동<rt>共同</rt></ruby>한 <ruby>중심<rt>中心</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하여 있기에 어느 곳으로 <ruby>통<rt>通</rt></ruby>하든지 <ruby>기<rt>其</rt></ruby> <ruby>중심<rt>中心</rt></ruby>은 <ruby>기<rt>其</rt></ruby> <ruby>결국<rt>結局</rt></ruby>의 <ruby>종점<rt>終點</rt></ruby>을 찾으면 <ruby>동일<rt>同一</rt></ruby>한 <ruby>기<rt>其</rt></ruby> <ruby>근본원리<rt>根本原理</rt></ruby>를 <ruby>통<rt>通</rt></ruby>하여서 <ruby>작용<rt>作用</rt></ruby>이 <ruby>시작<rt>始作</rt></ruby>되어 있기에 <ruby>자아<rt>自我</rt></ruby> <ruby>자신<rt>自身</rt></ruby>의 <ruby>근본원리<rt>根本原理</rt></ruby>로 설 수 있는 <ruby>기본<rt>基本</rt></ruby>을 찾으면 <ruby>전부<rt>全部</rt></ruby>의 <ruby>중심<rt>中心</rt></ruby>인 하나님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문제<rt>問題</rt></ruby>는 <ruby>자연적<rt>自然的</rt></ruby>으로 알게된다. 또한 하나님이 <ruby>근본존재<rt>根本存在</rt></ruby> 하심은 <ruby>실감적<rt>實感的</rt></ruby>으로 <ruby>자각<rt>自覺</rt></ruby>할수 있게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ruby>자기<rt>自己</rt></ruby>가 없다고 하면 <ruby>자기<rt>自己</rt></ruby> <ruby>자체<rt>自體</rt></ruby>로서 <ruby>자기<rt>自己</rt></ruby>도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ruby>자기<rt>自己</rt></ruby> <ruby>자체<rt>自體</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유<rt>有</rt></ruby>라하면 <ruby>자연적<rt>自然的</rt></ruby> <ruby>유<rt>有</rt></ruby>하신 그 <ruby>근본존재<rt>根本存在</rt></ruby> <ruby>유<rt>有</rt></ruby>를 <ruby>예정<rt>豫定</rt></ruby>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고로 <ruby>자기<rt>自己</rt></ruby>가 <ruby>유<rt>有</rt></ruby>하면 <ruby>자기<rt>自己</rt></ruby>가 <ruby>유<rt>有</rt></ruby>하기 <ruby>전<rt>前</rt></ruby>에 <ruby>부모<rt>父母</rt></ruby>의 <ruby>유<rt>有</rt></ruby>가 찾아지며 <ruby>부모<rt>父母</rt></ruby>가 <ruby>유<rt>有</rt></ruby>하면 <ruby>선조<rt>先祖</rt></ruby>의 <ruby>수<rt>數</rt></ruby> <ruby>십<rt>十</rt></ruby>, <ruby>수백대<rt>數百代</rt></ruby>에 <ruby>계속<rt>繼續</rt></ruby>하여서 <ruby>지금<rt>至今</rt></ruby> <ruby>자아<rt>自我</rt></ruby>가 <ruby>존재<rt>存在</rt></ruby>함을 알 수 있다. 이렇듯이 <ruby>유<rt>有</rt></ruby>에서만이 <ruby>유<rt>有</rt></ruby>가 시작된다. <ruby>무<rt>無</rt></ruby>에서 <ruby>무<rt>無</rt></ruby>이지 <ruby>유<rt>有</rt></ruby>할 수 없는 것이 <ruby>천리<rt>天理</rt></ruby>다. <ruby>현과학<rt>現科學</rt></ruby>은 이 <ruby>천리<rt>天理</rt></ruby>를 떠나서는 <ruby>시작<rt>始作</rt></ruby>과 <ruby>발전<rt>發展</rt></ruby>을 못한다. 그리고 <ruby>자아<rt>自我</rt></ruby> 이후에는 <ruby>유<rt>有</rt></ruby>할 수 있는 <ruby>후손<rt>後孫</rt></ruby>에 대한 <ruby>유<rt>有</rt></ruby>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ruby>지금<rt>至今</rt></ruby> 보이지 않는 <ruby>후손<rt>後孫</rt></ruby> <ruby>무<rt>無</rt></ruby>라고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다면 <ruby>기<rt>其</rt></ruby> <ruby>자체<rt>自體</rt></ruby>는 <ruby>원리<rt>原理</rt></ruby>의 <ruby>합격체<rt>合格體</rt></ruby>로 <ruby>완성격<rt>完成格</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 못됨을 말하는 것이다.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으로 보면 <ruby>기<rt>其</rt></ruby> <ruby>후손<rt>後孫</rt></ruby>은 있게끔 <ruby>유<rt>有</rt></ruby>에서부터 모두 <ruby>만상<rt>萬相</rt></ruby>이 지어졌기 때문에 <ruby>후손<rt>後孫</rt></ruby>은 <ruby>필요<rt>必要</rt></ruby>적 한 <ruby>공리노정<rt>公理路程</rt></ruby>으로 <ruby>유<rt>有</rt></ruby>함을 알 것이다. 보지 못하였다고 <ruby>기<rt>其</rt></ruby> 있어야 할 <ruby>기<rt>其</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들을 <ruby>부정<rt>否定</rt></ruby>하면 <ruby>기<rt>其</rt></ruby> <ruby>자체<rt>自體</rt></ruby>의 <ruby>부정<rt>否定</rt></ruby>함에 <ruby>근본원리적<rt>根本原理的</rt></ruby> <ruby>해결<rt>解決</rt></ruby>을 주는 <ruby>부정<rt>否定</rt></ruby>이 되는가? 그렇지 않음은 누구나 다 잘안다.
 
그런데 <ruby>무<rt>無</rt></ruby>라고 <ruby>부정<rt>否定</rt></ruby>한다면 그 <ruby>존재<rt>存在</rt></ruby>는 <ruby>천리근본<rt>天理根本</rt></ruby>을 <ruby>반역<rt>反逆</rt></ruby>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고로 <ruby>천주만물<rt>天宙萬物</rt></ruby>은 <ruby>전부<rt>全部</rt></ruby>가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시작<rt>始作</rt></ruby>함으로 <ruby>유<rt>有</rt></ruby>라고 하는 <ruby>기본점<rt>基本點</rt></ruby>에서만이 <ruby>만원리<rt>萬原理</rt></ruby>와 <ruby>이치<rt>理致</rt></ruby>의 <ruby>부합<rt>符合</rt></ruby>을 볼 수 있으나 <ruby>무<rt>無</rt></ruby>라고 하면 <ruby>기<rt>其</rt></ruby> <ruby>근본<rt>根本</rt></ruby>을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전개<rt>展開</rt></ruby>키 <ruby>난<rt>難</rt></ruby>한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결론<rt>結論</rt></ruby>으로 된다. 그런고로 <ruby>지금<rt>至今</rt></ruby> <ruby>자아<rt>自我</rt></ruby>라는 <ruby>자체<rt>自體</rt></ruby>는 <ruby>유무<rt>有無</rt></ruby>의 한 <ruby>중심<rt>中心</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면서 그의 <ruby>작용적<rt>作用的</rt></ruby> <ruby>목적<rt>目的</rt></ruby>으로 <ruby>유<rt>有</rt></ruby>를 <ruby>전적<rt>全的</rt></ruby>으로 <ruby>상대물<rt>相對物</rt></ruby>로 하기 위한 <ruby>행동<rt>行動</rt></ruby>으로 <ruby>생활<rt>生活</rt></ruby>하는 바는 잘 <ruby>체득<rt>體得</rt></ruby>하는바의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그러므로 나 <ruby>자신<rt>自身</rt></ruby>이 <ruby>유<rt>有</rt></ruby>라는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라는 것은 <ruby>근본적<rt>根本的</rt></ruby>으로 <ruby>시정<rt>是定</rt></ruby>하는 바이다. <ruby>무<rt>無</rt></ruby>라고 하는 <ruby>존재<rt>存在</rt></ruby>는 <ruby>사실체<rt>事實體</rt></ruby> <ruby>유<rt>有</rt></ruby>의 <ruby>세계<rt>世界</rt></ruby>에서는 <ruby>자아<rt>自我</rt></ruby>로부터 <ruby>표시<rt>表示</rt></ruby>로 되어 있다. 그 <ruby>자아<rt>自我</rt></ruby>가 <ruby>즉<rt>卽</rt></ruby> <ruby>유무<rt>有無</rt></ruby>의 <ruby>근거점<rt>根據點</rt></ruby>으로 하고야 <ruby>유무<rt>有無</rt></ruby>라는 말을 할 수 있는바이다. 그런고로 나는 <ruby>유<rt>有</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하는 <ruby>동시<rt>同時</rt></ruby>에 <ruby>무<rt>無</rt></ruby>에도 찾아가는 <ruby>중간존재<rt>中間存在</rt></ruby>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ruby>중간존재<rt>中間存在</rt></ruby>로서 되어 있는 나에게 <ruby>유무<rt>有無</rt></ruby>의 <ruby>근본<rt>根本</rt></ruby>되는 하나님의 <ruby>존재<rt>存在</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의심<rt>疑心</rt></ruby>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런고로 <ruby>자기<rt>自己</rt></ruby>가 <ruby>유무<rt>有無</rt></ruby>의 <ruby>근본<rt>根本</rt></ruby>의 <ruby>위치<rt>位置</rt></ruby>이니 <ruby>즉<rt>卽</rt></ruby> <ruby>창조적<rt>創造的</rt></ruby> <ruby>원리<rt>原理</rt></ruby>로 보아 하나님과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동일점선<rt>同一點線</rt></ruby>에 <ruby>유<rt>有</rt></ruby>한한 <ruby>존재<rt>存在</rt></ruby>임을 <ruby>체득<rt>體得</rt></ruby>하여야 된다. <ruby>자아<rt>自我</rt></ruby>는 <ruby>유무<rt>有無</rt></ruby>의 <ruby>중화체<rt>中和體</rt></ruby>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계실 <ruby>신성<rt>神性</rt></ruby>은 나와 <ruby>중화성적<rt>中和性的</rt></ruby> <ruby>관계<rt>關係</rt></ruby>로써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무<rt>無</rt></ruby>의 <ruby>세계<rt>世界</rt></ruby>에 <ruby>전개<rt>展開</rt></ruby>의 <ruby>노정<rt>路程</rt></ruby>을 <ruby>통<rt>通</rt></ruby>하게 되어있다.
 
우리가 <ruby>만일<rt>萬一</rt></ruby> <ruby>무<rt>無</rt></ruby>하다고 하는 곳에 <ruby>처<rt>處</rt></ruby>하여 있어서 <ruby>인식<rt>認識</rt></ruby>한다면 나에게 <ruby>유<rt>有</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인식<rt>認識</rt></ruby>은 <ruby>물론<rt>勿論</rt></ruby>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ruby>인식<rt>認識</rt></ruby>할 수 있는 <ruby>환경<rt>環境</rt></ruby>과 그 <ruby>위치<rt>位置</rt></ruby>를 갖고 있다는 그것 스스로가 벌써 인식시켜주는 <ruby>유<rt>有</rt></ruby>에서부터만이 <ruby>시작<rt>始作</rt></ruby>되는 바는 <ruby>지금<rt>至今</rt></ruby>, 누구나 잘 알 것이다. <ruby>즉<rt>卽</rt></ruby> <ruby>지금<rt>至今</rt></ruby> <ruby>과학세계<rt>科學世界</rt></ruby>에 있어서 모든 <ruby>원리<rt>原理</rt></ruby>와 <ruby>공식<rt>公式</rt></ruby>을 <ruby>이용<rt>利用</rt></ruby>하여 <ruby>응용<rt>應用</rt></ruby> <ruby>유<rt>有</rt></ruby>에로 <ruby>전개<rt>展開</rt></ruby>케 하는 것도 즉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유<rt>有</rt></ruby>가 있는 <ruby>원리<rt>原理</rt></ruby>가 <ruby>존재<rt>存在</rt></ruby>함이 <ruby>유<rt>有</rt></ruby>하다는 <ruby>원칙<rt>原則</rt></ruby>위에서 만이 <ruby>시작<rt>始作</rt></ruby>하여 <ruby>목적달성<rt>目的達成</rt></ruby>으로 <ruby>진급<rt>進級</rt></ruby>됨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ruby>과학<rt>科學</rt></ruby>이 <ruby>발전<rt>發展</rt></ruby>할 수 있는바도 <ruby>전<rt>前</rt></ruby> <ruby>유적<rt>有的</rt></ruby> 그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보유<rt>保有</rt></ruby>가 <ruby>기본<rt>基本</rt></ruby>되어 그 <ruby>기본<rt>基本</rt></ruby>
 
<ruby>상<rt>上</rt></ruby>에서만이 그 <ruby>목적<rt>目的</rt></ruby> <ruby>표시적<rt>表示的</rt></ruby>인 <ruby>발달<rt>發達</rt></ruby>된 <ruby>존재<rt>存在</rt></ruby>를 볼 수 있는 것은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그런고로 <ruby>무<rt>無</rt></ruby>에서 <ruby>유<rt>有</rt></ruby>라는 <ruby>원리<rt>原理</rt></ruby>는 <ruby>본래<rt>本來</rt></ruby>부터 우리가 세울 수 없다. <ruby>무<rt>無</rt></ruby>라면 <ruby>무<rt>無</rt></ruby>이지 <ruby>유<rt>有</rt></ruby>가 되겠는가? 그러니 <ruby>유물론적<rt>唯物論的</rt></ruby> <ruby>원리<rt>原理</rt></ruby>도 <ruby>자연<rt>自然</rt></ruby> 그 <ruby>말로<rt>末路</rt></ruby>는 <ruby>미해결<rt>未解決</rt></ruby>로 되는 것이 <ruby>원리<rt>原理</rt></ruby>다. <ruby>무<rt>無</rt></ruby>가 되는 까닭이다. <ruby>즉<rt>卽</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이 <ruby>무<rt>無</rt></ruby>니 <ruby>말<rt>末</rt></ruby>도 <ruby>무<rt>無</rt></ruby>로 <ruby>결과<rt>結果</rt></ruby>한다. <ruby>무<rt>無</rt></ruby>하고하는 <ruby>존재<rt>存在</rt></ruby>를 세우기 위하여는 <ruby>전유<rt>前有</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를 세워 놓고야인데 이 <ruby>선유존재<rt>先有存在</rt></ruby>는 <ruby>즉<rt>卽</rt></ruby> <ruby>주관적<rt>主觀的</rt></ruby>으로 보면 <ruby>자기<rt>自己</rt></ruby>, <ruby>혹<rt>或</rt></ruby> <ruby>객관적<rt>客觀的</rt></ruby>으로 보면 <ruby>타물<rt>他物</rt></ruby>이나가 벌써 <ruby>선유<rt>先有</rt></ruby>한 <ruby>사실<rt>事實</rt></ruby>을 <ruby>결정<rt>決定</rt></ruby>지어 놓고 말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ruby>근본<rt>根本</rt></ruby>은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시작<rt>始作</rt></ruby>하였다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사람은 <ruby>근본유<rt>根本有</rt></ruby>라는 <ruby>존재<rt>存在</rt></ruby>부터며 <ruby>만물<rt>萬物</rt></ruby>의 <ruby>유<rt>有</rt></ruby>도 <ruby>역시<rt>亦是</rt></ruby> <ruby>동일<rt>同一</rt></ruby>한 바이다. 어떤 <ruby>작용<rt>作用</rt></ruby>의 <ruby>시작<rt>始作</rt></ruby>은 <ruby>유<rt>有</rt></ruby>의 <ruby>시작<rt>始作</rt></ruby>으로만이 <ruby>시작<rt>始作</rt></ruby>된다. <ruby>인식<rt>認識</rt></ruby>할 수 있는 모든 <ruby>관계적<rt>關係的</rt></ruby> <ruby>감각성<rt>感覺性</rt></ruby>도 <ruby>존재<rt>存在</rt></ruby>하여 나에게 미치고 있다. <ruby>작용<rt>作用</rt></ruby>은 <ruby>근본적<rt>根本的</rt></ruby> <ruby>유<rt>有</rt></ruby>의 <ruby>작용<rt>作用</rt></ruby>이 <ruby>연장화<rt>延長化</rt></ruby>된 <ruby>존재<rt>存在</rt></ruby>임을 알 수 있다. <ruby>무<rt>無</rt></ruby>라는 <ruby>점유위치<rt>占有位置</rt></ruby>는 <ruby>시각<rt>視覺</rt></ruby>또는 <ruby>감각성<rt>感覺性</rt></ruby> <ruby>외<rt>外</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를 두고 말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우리 <ruby>자아<rt>自我</rt></ruby>인 <ruby>유<rt>有</rt></ruby>가 <ruby>감각<rt>感覺</rt></ruby>하는 그 <ruby>감각적<rt>感覺的</rt></ruby> <ruby>작용<rt>作用</rt></ruby>은 <ruby>즉<rt>卽</rt></ruby> <ruby>유<rt>有</rt></ruby>에서부터 <ruby>파급<rt>波及</rt></ruby>이 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ruby>시각<rt>視覺</rt></ruby>으로 볼수 있는 <ruby>권외<rt>圈外</rt></ruby>의 <ruby>유<rt>有</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하는 그 <ruby>자체<rt>自體</rt></ruby>와 <ruby>즉<rt>卽</rt></ruby>, 하나님과 우리는 <ruby>연관적<rt>聯關的</rt></ruby> 한 <ruby>위<rt>位</rt></ruby>에 속하여 있는 <ruby>양심<rt>良心</rt></ruby>의 <ruby>기존유<rt>旣存有</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로부터 우리에게 <ruby>작용<rt>作用</rt></ruby>되는 <ruby>감각<rt>感覺</rt></ruby>을 알 수있는바이다.
 
그런고로 사람 한 나는 <ruby>유무<rt>有無</rt></ruby>의 <ruby>중화물<rt>重貨物</rt></ruby>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우리가 즉, <ruby>무아<rt>無我</rt></ruby>라는 <ruby>위치<rt>位置</rt></ruby>를 찾아 들어가면 <ruby>중화체<rt>中和體</rt></ruby>에서 <ruby>음양분<rt>陰陽分</rt></ruby>도 같은 <ruby>작용<rt>作用</rt></ruby>을 이르키는 것과 한가지로 <ruby>무인식<rt>無認識</rt></ruby>에로 나가면 <ruby>상대적<rt>相對的</rt></ruby> <ruby>절대유<rt>絶對有</rt></ruby>에 <ruby>비례<rt>比例</rt></ruby>되는 <ruby>절대유<rt>絶對有</rt></ruby>의 힘과 <ruby>작용<rt>作用</rt></ruby>의 <ruby>상봉<rt>相逢</rt></ruby>을 본다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 <ruby>무아<rt>無我</rt></ruby>에게 찾아들어 가면( 즉 <ruby>감각무<rt>感覺無</rt></ruby>와 <ruby>인식무<rt>認識無</rt></ruby>에로) <ruby>상거적<rt>相距的</rt></ruby> <ruby>무<rt>無</rt></ruby>의 <ruby>위치<rt>位置</rt></ruby>에 <ruby>대비<rt>對比</rt></ruby>되는 <ruby>유<rt>有</rt></ruby>의 <ruby>감각<rt>感覺</rt></ruby>과 <ruby>인식<rt>認識</rt></ruby>의 <ruby>경지<rt>境地</rt></ruby>는 나타난다. 이것은 <ruby>수양탐중<rt>修養探中</rt></ruby>에서도 많이 <ruby>체험<rt>體驗</rt></ruby>하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고요하다는 그곳을 찾으면 <ruby>본심<rt>本心</rt></ruby>의 <ruby>작용무대<rt>作用舞臺</rt></ruby>를 딴 <ruby>무경<rt>無境</rt></ruby>에로 <ruby>존재<rt>存在</rt></ruby>하는 <ruby>절대유<rt>絶對有</rt></ruby>의 <ruby>감각<rt>感覺</rt></ruby>을 <ruby>체험<rt>體驗</rt></ruby>하여 새로운 <ruby>신기<rt>神奇</rt></ruby>한 <ruby>인식권<rt>認識權</rt></ruby>을 찾는 것이 <ruby>자연적<rt>自然的</rt></ruby>으로 <ruby>표시<rt>表示</rt></ruby>되는 듯이 되나 그 <ruby>원리<rt>原理</rt></ruby>는 내 <ruby>자신<rt>自身</rt></ruby>들의 <ruby>이상각성<rt>理想覺性</rt></ruby>을 <ruby>취<rt>取</rt></ruby>할 수 있으며 그 <ruby>만족감<rt>滿足感</rt></ruby>을 <ruby>취<rt>取</rt></ruby>할 수 있는 <ruby>근본이상<rt>根本理想</rt></ruby>이 <ruby>유<rt>有</rt></ruby>할 수 있는 <ruby>근본<rt>根本</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하여 있는
 
<ruby>존재<rt>存在</rt></ruby>이기 때문에 새로운 <ruby>쾌감<rt>快感</rt></ruby>이 나와 기쁨의 <ruby>표시<rt>表示</rt></ruby>로 <ruby>전개<rt>展開</rt></ruby>시킨 것 밖에 지나지 않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볼 적에 우리는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처<rt>處</rt></ruby>하여 있으니 <ruby>유<rt>有</rt></ruby>의 <ruby>대<rt>對</rt></ruby>한 <ruby>감성<rt>感性</rt></ruby>이 <ruby>각면<rt>各面</rt></ruby>에 <ruby>감화<rt>感化</rt></ruby>되어 있는 것과 같은 <ruby>이유<rt>理由</rt></ruby>로 되어 있기에 <ruby>대<rt>對</rt></ruby> <ruby>유<rt>有</rt></ruby>에서부터 <ruby>접<rt>接</rt></ruby>하여 주는 <ruby>감력<rt>減力</rt></ruby>에 대하여 <ruby>진동감<rt>振動感</rt></ruby>을 느낄 수 없고 또 <ruby>외력<rt>外力</rt></ruby> <ruby>감력<rt>減力</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예민<rt>銳敏</rt></ruby>하게 <ruby>사용<rt>使用</rt></ruby>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ruby>수양<rt>修養</rt></ruby>이니 <ruby>기도<rt>祈禱</rt></ruby>니 하는 것이 미쳐지는 <ruby>외력<rt>外力</rt></ruby> <ruby>감력<rt>減力</rt></ruby>에 대비하여 <ruby>진동<rt>振動</rt></ruby>할 수 있는 <ruby>대<rt>對</rt></ruby> <ruby>감력<rt>減力</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의 <ruby>위치<rt>位置</rt></ruby>를 <ruby>취<rt>取</rt></ruby>코저 하는바가 <ruby>원리<rt>原理</rt></ruby>로 되어있다. 그러기에 <ruby>무<rt>無</rt></ruby>의 <ruby>경<rt>境</rt></ruby>, 고요한 곳을 <ruby>요구<rt>要求</rt></ruby>한다. 그런고로 누구나 하나님이 <ruby>유<rt>有</rt></ruby>하다면 <ruby>무아<rt>無我</rt></ruby>의 <ruby>경지<rt>境地</rt></ruby>에 찾아 들어가면 <ruby>초자연<rt>超自然</rt></ruby> <ruby>감력<rt>減力</rt></ruby> <ruby>절대유<rt>絶對有</rt></ruby>의 <ruby>경지<rt>境地</rt></ruby>가 있다는 것을 <ruby>체증<rt>體証</rt></ruby>한다. 그것은 <ruby>즉<rt>卽</rt></ruby> 하나님이 <ruby>유<rt>有</rt></ruby>하다는 것을 아는 <ruby>동시<rt>同時</rt></ruby>에 그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유<rt>有</rt></ruby>의 <ruby>작용<rt>作用</rt></ruby>과 <ruby>합치<rt>合致</rt></ruby>한 <ruby>점<rt>點</rt></ruby>에 내가 서면 내 <ruby>자체<rt>自體</rt></ruby>에는 <ruby>초자연<rt>超自然</rt></ruby> <ruby>작용<rt>作用</rt></ruby>의 <ruby>감력<rt>減力</rt></ruby>과 <ruby>실감<rt>實感</rt></ruby>이 내 <ruby>현자아<rt>現自我</rt></ruby>와 <ruby>연결<rt>連結</rt></ruby>됨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ruby>불교<rt>佛敎</rt></ruby>의 <ruby>무아경<rt>無我境</rt></ruby>이라고 하여 찾는 <ruby>일리<rt>一理</rt></ruby>도 여기에 있는 바이다. <ruby>예<rt>例</rt></ruby>를들면 <ruby>과학세계<rt>科學世界</rt></ruby>에도 <ruby>공리<rt>公理</rt></ruby>나 <ruby>공식<rt>公式</rt></ruby>같은 것도 <ruby>간접적<rt>間接的</rt></ruby>으로 그 <ruby>자체<rt>自體</rt></ruby>를 <ruby>접<rt>接</rt></ruby>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바로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이와 같이 된 것은 <ruby>타락성<rt>墮落性</rt></ruby> 받은 <ruby>인간<rt>人間</rt></ruby>임으로 이것이 <ruby>요구<rt>要求</rt></ruby>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ruby>양심<rt>良心</rt></ruby>과 <ruby>생심<rt>生心</rt></ruby>의 <ruby>기본<rt>基本</rt></ruby>은 하나님이니 하나님은 <ruby>만물<rt>萬物</rt></ruby>의 <ruby>절대단위<rt>絶對單位</rt></ruby>의 <ruby>근본<rt>根本</rt></ruby>이면서 <ruby>원리<rt>原理</rt></ruby>의 <ruby>중심<rt>中心</rt></ruby>이며 <ruby>근본<rt>根本</rt></ruby>이며 모든 <ruby>만상<rt>萬相</rt></ruby>의 <ruby>단위체<rt>單位體</rt></ruby> <ruby>중심<rt>中心</rt></ruby>이니 이 <ruby>중심점<rt>中心點</rt></ruby>인 하나님과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통<rt>通</rt></ruby>하게 되면 <ruby>절대단위력<rt>絶對單位力</rt></ruby>에서 <ruby>지배<rt>支配</rt></ruby>받고 <ruby>존재<rt>存在</rt></ruby>함으로 <ruby>생심<rt>生心</rt></ruby>의 <ruby>장성체<rt>長成體</rt></ruby>인 <ruby>영체<rt>靈體</rt></ruby>를 가지면 <ruby>기<rt>其</rt></ruby> <ruby>단위<rt>單位</rt></ruby>를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소유<rt>所有</rt></ruby>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 <ruby>단위<rt>單位</rt></ruby>야 <ruby>절대단위<rt>絶對單位</rt></ruby> 하나님의 <ruby>단위<rt>單位</rt></ruby>에 한 <ruby>부분적<rt>部分的</rt></ruby> <ruby>기본<rt>基本</rt></ruby>으로 있기 때문에 <ruby>만물<rt>萬物</rt></ruby>의 모든 <ruby>근본<rt>根本</rt></ruby>을 알 수 있는 곳으로 <ruby>전개<rt>展開</rt></ruby>시킬 수 있는 <ruby>존재<rt>存在</rt></ruby>가 즉 사람이다. 그런고로 <ruby>도통<rt>道通</rt></ruby>이라고 하는 것이 이러한 <ruby>근본<rt>根本</rt></ruby>사람의 <ruby>창조본경<rt>創造本境</rt></ruby>을 <ruby>체득<rt>體得</rt></ruby>할때에 느끼는 <ruby>체험<rt>體驗</rt></ruby>이다. 이 <ruby>창조본경<rt>創造本境</rt></ruby>을 <ruby>체득<rt>體得</rt></ruby>하는 <ruby>동시<rt>同時</rt></ruby>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ruby>미래<rt>未來</rt></ruby>의 모든 <ruby>사실<rt>事實</rt></ruby>도 알아야 할 사람이었는데 <ruby>타락<rt>墮落</rt></ruby>으로 <ruby>인<rt>因</rt></ruby>하여 <ruby>미지<rt>未知</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로 <ruby>처<rt>處</rt></ruby>하게 되었으나 그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본성심<rt>本性心</rt></ruby>은 <ruby>타락성<rt>墮落性</rt></ruby>을 받은 <ruby>육신<rt>肉身</rt></ruby>을 넘어서 <ruby>창조본경<rt>創造本境</rt></ruby>을 <ruby>수시<rt>隨時</rt></ruby>로 <ruby>체득<rt>體得</rt></ruby>하려함이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요구<rt>要求</rt></ruby>로 되어있다. 사람이 이 <ruby>목적<rt>目的</rt></ruby>을 <ruby>가능<rt>可能</rt></ruby>하게 못된 <ruby>타락<rt>墮落</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임으로 <ruby>육신<rt>肉身</rt></ruby>의 <ruby>활동<rt>活動</rt></ruby>의 <ruby>감력<rt>減力</rt></ruby>이 <ruby>정지상태<rt>停止狀態</rt></ruby>에 <ruby>처<rt>處</rt></ruby>하는 때를 타서 <ruby>본성심<rt>本性心</rt></ruby>은 <ruby>무한대<rt>無限大</rt></ruby>의 <ruby>창조본경<rt>創造本境</rt></ruby>을 찾아 <ruby>활동<rt>活動</rt></ruby>하려고 한다. 이 <ruby>사실<rt>事實</rt></ruby>에의 <ruby>표현<rt>表現</rt></ruby>이 사람에게 <ruby>몽시<rt>夢示</rt></ruby>로
 
나타나 <ruby>미래<rt>未來</rt></ruby>의 <ruby>사실<rt>事實</rt></ruby>을 <ruby>예고<rt>豫告</rt></ruby>하는 것이 <ruby>즉<rt>卽</rt></ruby> <ruby>몽시<rt>夢示</rt></ruby>라 한다. 그러기에 <ruby>본래<rt>本來</rt></ruby>, 사람은 <ruby>자기<rt>自己</rt></ruby>들이 <ruby>생<rt>生</rt></ruby>함의 <ruby>목적<rt>目的</rt></ruby>과 해야 할 <ruby>목적<rt>目的</rt></ruby>과 살아야 할 <ruby>목적<rt>目的</rt></ruby>을 알아야 할 것이었는데 <ruby>미지<rt>未知</rt></ruby>에 <ruby>처<rt>處</rt></ruby>하여 있기에 <ruby>본성심<rt>本性心</rt></ruby>은 이 어느 <ruby>부분<rt>部分</rt></ruby>을 <ruby>몽시<rt>夢示</rt></ruby>를 <ruby>통<rt>通</rt></ruby>하여 알게하여 주는 것이다. <ruby>타락<rt>墮落</rt></ruby>이 없었더라면 우리 <ruby>인간<rt>人間</rt></ruby>은 <ruby>근본적<rt>根本的</rt></ruby>으로 알고 살 수 있는 <ruby>존재<rt>存在</rt></ruby>들이었다. 그 <ruby>육신감력<rt>肉身減力</rt></ruby>이 활동할 때에는 <ruby>예<rt>例</rt></ruby>를 들면 흙물을 그릇에 담았는데 그것을 휘저어 놓을 때와 한가지 <ruby>이유<rt>理由</rt></ruby>다. 그러기에 <ruby>육신활동<rt>肉身活動</rt></ruby>의 <ruby>감력<rt>減力</rt></ruby>이 <ruby>침중<rt>寢中</rt></ruby>에는 흙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이 우리의 <ruby>본성심<rt>本性心</rt></ruby>도 <ruby>육신감력<rt>肉身減力</rt></ruby>을 넘어서 <ruby>본성노정<rt>本性路程</rt></ruby>에 <ruby>활동<rt>活動</rt></ruby>이 <ruby>시작<rt>始作</rt></ruby>됨으로 <ruby>몽시<rt>夢示</rt></ruby>가 보여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ruby>본심<rt>本心</rt></ruby>은 <ruby>창조본경<rt>創造本境</rt></ruby> <ruby>세계<rt>世界</rt></ruby>를 <ruby>통<rt>通</rt></ruby>하고자 하는 것이 <ruby>본<rt>本</rt></ruby> <ruby>창조성품<rt>創造性品</rt></ruby>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ruby>실체<rt>實體</rt></ruby> <ruby>유<rt>有</rt></ruby>의 <ruby>세계<rt>世界</rt></ruby>에서 <ruby>무형<rt>無形</rt></ruby>의 <ruby>세계<rt>世界</rt></ruby>로 <ruby>연결<rt>連結</rt></ruby>을 가져야만 되게 지음받았다. 그러기에 나를 <ruby>유<rt>有</rt></ruby>로하면 <ruby>유<rt>有</rt></ruby>의 끝은 하나님이며 <ruby>무<rt>無</rt></ruby>의 끝도 하나님이다. 다시말하면 <ruby>무<rt>無</rt></ruby>의 끝은 <ruby>유<rt>有</rt></ruby>요, <ruby>유<rt>有</rt></ruby>의 끝은 <ruby>무<rt>無</rt></ruby>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ruby>중심<rt>中心</rt></ruby>삼고 지음받은 <ruby>천주<rt>天宙</rt></ruby>는 한 <ruby>동로<rt>同路</rt></ruby>를 갖고 있다. <ruby>예<rt>例</rt></ruby>를들면 우리 <ruby>혈관<rt>血管</rt></ruby>을 보면 <ruby>동맥<rt>動脈</rt></ruby>이 <ruby>심장<rt>心臟</rt></ruby>에서부터 <ruby>점점<rt>漸漸</rt></ruby> 작아져 <ruby>세관<rt>細管</rt></ruby>까지 <ruby>속<rt>屬</rt></ruby>한다. 끝은 없어지는 <ruby>정도<rt>程度</rt></ruby>를 <ruby>향<rt>向</rt></ruby>하여 <ruby>세분<rt>世紛</rt></ruby>된다. 그러면 <ruby>세관<rt>細管</rt></ruby>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끝은 딴 <ruby>동로<rt>同路</rt></ruby>인 <ruby>반대작용<rt>反對作用</rt></ruby> <ruby>노정<rt>路程</rt></ruby>으로 <ruby>통<rt>通</rt></ruby>하여 <ruby>근본<rt>根本</rt></ruby>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한 <ruby>작용체<rt>作用體</rt></ruby>를 <ruby>구성<rt>構成</rt></ruby>하여 한 <ruby>회로<rt>回路</rt></ruby>를 <ruby>조성<rt>造成</rt></ruby>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ruby>역시<rt>亦是</rt></ruby>, 이 <ruby>표시<rt>表示</rt></ruby>와 같은 것이다. <ruby>혈관<rt>血管</rt></ruby>이 작아진다고 하여서 <ruby>무<rt>無</rt></ruby>하여진다고 <ruby>결론<rt>結論</rt></ruby>하는 것과 같은 <ruby>행동<rt>行動</rt></ruby>의 사람들이 <ruby>유무<rt>有無</rt></ruby>의 <ruby>결론<rt>結論</rt></ruby>을 말하는 것과 <ruby>동일<rt>同一</rt></ruby>하다. 그런고로 끝 <ruby>부분<rt>部分</rt></ruby> 그 <ruby>자체<rt>自體</rt></ruby>는 <ruby>중화<rt>中和</rt></ruby>의 <ruby>점<rt>點</rt></ruby>이다. <ruby>혈관<rt>血管</rt></ruby>도 <ruby>모세관<rt>毛細管</rt></ruby>에서 돌아오는 <ruby>정맥부분<rt>靜脈部分</rt></ruby>이 <ruby>유<rt>有</rt></ruby>하여서만 <ruby>원만<rt>圓滿</rt></ruby>하지 않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ruby>동맥<rt>動脈</rt></ruby>을 <ruby>유<rt>有</rt></ruby>라 하는 것과 <ruby>정맥<rt>靜脈</rt></ruby>을 <ruby>무<rt>無</rt></ruby>라하는 <ruby>결론적<rt>結論的</rt></ruby> <ruby>사실<rt>事實</rt></ruby>을 <ruby>체득<rt>體得</rt></ruby>할 수 있다. 그런고로 <ruby>유무<rt>有無</rt></ruby>는 하나의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시작<rt>始作</rt></ruby>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ruby>유무<rt>有無</rt></ruby>의 <ruby>근본체<rt>根本體</rt></ruby>이다. <ruby>영<rt>靈</rt></ruby>은 <ruby>유<rt>有</rt></ruby>에서 <ruby>무<rt>無</rt></ruby>에로 <ruby>통<rt>通</rt></ruby>할 수 있는 <ruby>자체<rt>自體</rt></ruby>다. 그런고로 <ruby>영<rt>靈</rt></ruby>은 <ruby>유<rt>有</rt></ruby>라고 하는 <ruby>감각범위<rt>感覺範圍</rt></ruby> <ruby>내<rt>內</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하지 않고 <ruby>감각<rt>感覺</rt></ruby> <ruby>외<rt>外</rt></ruby> <ruby>범위<rt>範圍</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하여 <ruby>유<rt>有</rt></ruby>의 <ruby>권위<rt>權位</rt></ruby>까지 <ruby>자유<rt>自由</rt></ruby>로 <ruby>통<rt>通</rt></ruby>할 수 있는 <ruby>특유존재<rt>特有存在</rt></ruby>다. 이 <ruby>성품<rt>性品</rt></ruby>이 <ruby>즉<rt>卽</rt></ruby>, 하나님이 <ruby>부여<rt>賦與</rt></ruby>하여 준 <ruby>일체<rt>一體</rt></ruby>가 될 수 있는 <ruby>특유성품<rt>特有性品</rt></ruby>이다. <ruby>즉<rt>卽</rt></ruby> 하나님의 <ruby>성품<rt>性品</rt></ruby>이다. 그러니 우리 <ruby>이상세계<rt>理想世界</rt></ruby>는 참 <ruby>자유세계<rt>自由世界</rt></ruby>이다. <ruby>즉<rt>卽</rt></ruby> <ruby>거리지배<rt>距離支配</rt></ruby>를 받지 않는 <ruby>세계<rt>世界</rt></ruby>며 <ruby>공간<rt>空間</rt></ruby>의 <ruby>지배<rt>支配</rt></ruby>도 받지 않으며 <ruby>시간<rt>時間</rt></ruby>의 <ruby>지배<rt>支配</rt></ruby>도 받지 않는 <ruby>세계<rt>世界</rt></ruby>이다. 그저 <ruby>생각<rt>生覺</rt></ruby>과 <ruby>동시<rt>同時</rt></ruby>에 <ruby>결과<rt>結果</rt></ruby>가 <ruby>현립<rt>現立</rt></ruby>되는 <ruby>자유이상세계<rt>自由理想世界</rt></ruby>다. 이 <ruby>세계<rt>世界</rt></ruby>가 하나님을 <ruby>중심<rt>中心</rt></ruby>한 <ruby>세계<rt>世界</rt></ruby>다.
 
=== <ruby>제<rt>第</rt></ruby> 3 <ruby>장<rt>章</rt></ruby> <ruby>원리<rt>原理</rt></ruby>로 찾으려니 <ruby>성경<rt>聖經</rt></ruby>은 <ruby>직접교시<rt>直接敎示</rt></ruby>치 못함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ruby>창세기<rt>創世記</rt></ruby>를 <ruby>교시<rt>敎示</rt></ruby>할 때에 왜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를 <ruby>전부<rt>全部</rt></ruby> 밝혀서 <ruby>교시<rt>敎示</rt></ruby>치 아니 하였는가 하면 여기에는 <ruby>교시<rt>敎示</rt></ruby>할 수 없는 <ruby>중심의의<rt>中心意義</rt></ruby>가 있음이다. <ruby>본래<rt>本來</rt></ruby> 사람의 <ruby>조상<rt>祖上</rt></ruby>인 아담 해와도 하나님의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를 알지 못하고 있는 <ruby>도중<rt>途中</rt></ruby>에 처한 <ruby>존재<rt>存在</rt></ruby>로써 <ruby>타락<rt>墮落</rt></ruby>을 <ruby>시작<rt>始作</rt></ruby>하고 보니 <ruby>근본<rt>根本</rt></ruby> 하나님의 <ruby>본의<rt>本意</rt></ruby>의 뜻을 알지 못하고 <ruby>중도<rt>中途</rt></ruby>에서 <ruby>타락<rt>墮落</rt></ruby>한 셈이다. 모세를 세워서 <ruby>역사<rt>役事</rt></ruby>하는 그 뜻은 <ruby>타락<rt>墮落</rt></ruby>없는 그 <ruby>세계<rt>世界</rt></ruby>에서 <ruby>이상<rt>理想</rt></ruby>의 <ruby>회귀<rt>恢歸</rt></ruby>을 보고자 함이었다. 그 때 모세 <ruby>자체<rt>自體</rt></ruby>로서는 사람 <ruby>조상<rt>祖上</rt></ruby> 아담 해와가 <ruby>미완성<rt>未完成</rt></ruby>하고만 <ruby>부분<rt>部分</rt></ruby>은 <ruby>조상자신<rt>祖上自身</rt></ruby> <ruby>역시<rt>亦是</rt></ruby> 알지 못하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었다.
 
그것은 모세와는 아주 <ruby>거리<rt>距離</rt></ruby>가 먼 <ruby>위치<rt>位置</rt></ruby>에 <ruby>처<rt>處</rt></ruby>한 뜻이므로 그 뜻은 <ruby>인간<rt>人間</rt></ruby> <ruby>조상<rt>祖上</rt></ruby>될 수 있는 그 <ruby>자체<rt>自體</rt></ruby>들이 <ruby>문제<rt>問題</rt></ruby>로 <ruby>해결<rt>解決</rt></ruby>할 <ruby>문제<rt>問題</rt></ruby>였기에 모세에는 <ruby>근본<rt>根本</rt></ruby> 뜻되는 <ruby>타락원리<rt>墮落原理</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전부<rt>全部</rt></ruby>에 <ruby>관련<rt>關聯</rt></ruby>되어 있는 것을 밝힐 수 없었다. 아담 해와가 더 하나님 앞에서 <ruby>완성<rt>完成</rt></ruby>하여야만이 될 <ruby>분담<rt>分擔</rt></ruby> <ruby>책임부분<rt>責任部分</rt></ruby>이다. 그런고로 <ruby>타락<rt>墮落</rt></ruby>함으로 그 <ruby>분담<rt>分擔</rt></ruby> <ruby>책임<rt>責任</rt></ruby>은 <ruby>미급<rt>未及</rt></ruby>의 <ruby>사실<rt>事實</rt></ruby>로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고 사람 <ruby>조상<rt>祖上</rt></ruby>도 사탄도 <ruby>확실<rt>確實</rt></ruby>히 알지 못하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인 <ruby>동시<rt>同時</rt></ruby>에 <ruby>미완성<rt>未完成</rt></ruby>에 <ruby>처<rt>處</rt></ruby>하는 사람을 <ruby>대<rt>對</rt></ruby>한 하나님이 한 뜻의 <ruby>과업<rt>課業</rt></ruby>이었다. 이 뜻의 <ruby>성사<rt>成事</rt></ruby>를 보려면 사람 <ruby>자체<rt>自體</rt></ruby>들이 이까지(<ruby>타락전<rt>墮落前</rt></ruby>) 처할 수 있는 한 <ruby>세계<rt>世界</rt></ruby>가 <ruby>회귀<rt>恢歸</rt></ruby>되야만 이 뜻은 <ruby>실제<rt>實際</rt></ruby>로 하나님 <ruby>자신<rt>自身</rt></ruby>을 통하여 <ruby>실천<rt>實踐</rt></ruby>될 <ruby>근본문제<rt>根本問題</rt></ruby>였기에 하나님이 이 뜻 <ruby>성사<rt>成事</rt></ruby>할 수 있는 <ruby>무타락시대<rt>無墮落時代</rt></ruby>에 아담 해와 보다는 하늘<ruby>적<rt>的</rt></ruby> <ruby>완성존재<rt>完成存在</rt></ruby>가 나타나서만이 <ruby>시작<rt>始作</rt></ruby>할 <ruby>부분<rt>部分</rt></ruby>의 뜻이니 그 <ruby>자체<rt>自體</rt></ruby>를 모세에게 <ruby>직접적<rt>直接的</rt></ruby>으로 <ruby>교훈<rt>敎訓</rt></ruby>하지 않았다.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으로 볼 적에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인간조상<rt>人間祖上</rt></ruby> 되어야 할 <ruby>존재<rt>存在</rt></ruby>들이 <ruby>미지<rt>未知</rt></ruby>로서 되었던 <ruby>사실<rt>事實</rt></ruby>을 모세로서 아는 것은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순서<rt>順序</rt></ruby>로 <ruby>허여<rt>許與</rt></ruby>되지 않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될 수 있는 한 <ruby>자체<rt>自體</rt></ruby>를 세워야 되는 것은 <ruby>타락<rt>墮落</rt></ruby>됨으로 <ruby>시작<rt>始作</rt></ruby>되었다. 그래서 지금 <ruby>성경<rt>聖經</rt></ruby>중에 우리 사람을 사랑하기 <ruby>위<rt>爲</rt></ruby>한 하나님은 <ruby>미분명<rt>未分明</rt></ruby>한 <ruby>성경<rt>聖經</rt></ruby>으로 우리를 <ruby>구원<rt>救援</rt></ruby>코자 하는가. <ruby>지금<rt>至今</rt></ruby> 그 <ruby>원리<rt>原理</rt></ruby>되는 <ruby>근본자체<rt>根本自體</rt></ruby> <ruby>즉<rt>卽</rt></ruby> <ruby>선<rt>善</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하는 <ruby>인간조상<rt>人間祖上</rt></ruby>이 나타날 때까지는 <ruby>근본<rt>根本</rt></ruby>을 밝히지 않고 <ruby>지금<rt>至今</rt></ruby>까지 나온 바를 알아야한다. 여기에 하나님은 <ruby>원리근본<rt>原理根本</rt></ruby>으로 사람을 찾고자 하는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순서<rt>順序</rt></ruby>를 세움에서이다. 그래야만 <ruby>창조이상<rt>創造理想</rt></ruby>을 <ruby>완성<rt>完成</rt></ruby>하게 되는 바이다. 예수 <ruby>당시<rt>當時</rt></ruby>에도 <ruby>비유<rt>譬喩</rt></ruby>로 <ruby>교시<rt>敎示</rt></ruby>한 바도 <ruby>역시<rt>亦是</rt></ruby> <ruby>원리<rt>原理</rt></ruby> <ruby>성사적<rt>成事的</rt></ruby> <ruby>시기<rt>時期</rt></ruby>를 찾지 못하였기에 많이 <ruby>비유<rt>譬喩</rt></ruby>로 말하였다가 때가 이르면 다시는 <ruby>비유<rt>譬喩</rt></ruby>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를 밝히 가르켜 말하리라.(요16장25절) 하심은 <ruby>근본<rt>根本</rt></ruby> 이러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ruby>지금<rt>至今</rt></ruby>은 때가 아니었기에 <ruby>세상<rt>世上</rt></ruby>이 <ruby>감당<rt>勘當</rt></ruby>치 못하여 말하지 못하는 <ruby>미교시부분<rt>未敎示部分</rt></ruby>을 발표하게 하는 <ruby>의의<rt>意義</rt></ruby>가 있는 바이다.
 
또 요한복음 16장 12-14절에 "내가 아직도 많은 것으로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 있으나 너희들이 <ruby>감당<rt>勘當</rt></ruby>치 못하리라. 그러나 <ruby>진리<rt>眞理</rt></ruby>의 <ruby>성신<rt>聖神</rt></ruby>이 이르면 모든 <ruby>진리<rt>眞理</rt></ruby> <ruby>중<rt>中</rt></ruby>으로 너희들을 <ruby>인도<rt>引導</rt></ruby>하리니 그 마음에로 할 것이 아니라 듣는것으로 말할 것이요, 또 <ruby>장래<rt>將來</rt></ruby>일로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ruby>성신<rt>聖神</rt></ruby>께서 나를 <ruby>영화<rt>榮華</rt></ruby>롭게 하셨으니 나의 것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나타나리라" 하심은 <ruby>비유<rt>譬喩</rt></ruby>로도 말할 수 없는 <ruby>미래<rt>未來</rt></ruby>에 남아 있는 뜻이 있다 하는 것을 밝혀서 하는 말하는 바이다.
 
그러나 <ruby>성신<rt>聖神</rt></ruby>이 이르러 <ruby>장차<rt>將次</rt></ruby> 예수가 밝히지 못한 것을 밝혀준다고 하신 바는 <ruby>시기적<rt>時期的</rt></ruby> <ruby>경과<rt>經過</rt></ruby>를 두고 <ruby>성사<rt>成事</rt></ruby>할 뜻의 <ruby>부분<rt>部分</rt></ruby>이었기에 밝혀 말하지 못한 바이다. 이 <ruby>부분<rt>部分</rt></ruby>은 예수에게 있어서 <ruby>시기<rt>時期</rt></ruby>를 두고 더 이루어야 할 <ruby>부분<rt>部分</rt></ruby>이었기에 이렇게 말한 바다. 이런 <ruby>부분<rt>部分</rt></ruby>을 <ruby>간접적<rt>間接的</rt></ruby>으로 <ruby>교시<rt>敎示</rt></ruby>하기 위하여서 많이 <ruby>비유<rt>譬喩</rt></ruby>로 말하는 <ruby>이유<rt>理由</rt></ruby>다. 이 밝히지 못한 <ruby>미분명<rt>未分明</rt></ruby>의 <ruby>사실<rt>事實</rt></ruby>이 때가 이르면 <ruby>성신<rt>聖神</rt></ruby>을 <ruby>통<rt>通</rt></ruby>하여 가르쳐 준다는 <ruby>약속<rt>約束</rt></ruby>이 <ruby>성사<rt>成事</rt></ruby>를 보았기에 끝날에는 <ruby>성경상<rt>聖經上</rt></ruby>에 밝히지 못한 것 즉 너희들이 <ruby>감당<rt>勘當</rt></ruby>치 못하리라 한 부분이 밝히셔야 뜻 <ruby>성사<rt>成事</rt></ruby>할 바이니 <ruby>성경<rt>聖經</rt></ruby> <ruby>외<rt>外</rt></ruby> <ruby>부분<rt>部分</rt></ruby>이 <ruby>성신교시<rt>聖神敎示</rt></ruby> 받는 <ruby>자<rt>者</rt></ruby>로 하여금 <ruby>발표<rt>發表</rt></ruby>를 보아야 할 바이므로 <ruby>보통신자<rt>普通信者</rt></ruby>로다 하는 자는 <ruby>감당<rt>勘當</rt></ruby>치 못할 <ruby>부분<rt>部分</rt></ruby>으로 되나 <ruby>성신교시<rt>聖神敎示</rt></ruby> 받는 자만이 <ruby>감당<rt>勘當</rt></ruby>할 수 있는 <ruby>부분<rt>部分</rt></ruby>이 나타난다는 바를 지적하여 말한 바이다.
 
예수 <ruby>당시<rt>當時</rt></ruby>에 <ruby>제자<rt>弟子</rt></ruby>들까지 <ruby>감당<rt>勘當</rt></ruby>치 못한 <ruby>부분<rt>部分</rt></ruby>이 예수의 뜻 <ruby>노정<rt>路程</rt></ruby>에는 있다 함을 밝힌 말씀이었다. 그런고로 가르킴 받는 자만이 예수의 참 <ruby>신부<rt>新婦</rt></ruby> 될 수 있는 뜻 <ruby>시봉자<rt>侍奉者</rt></ruby>가 되는 것을 끝날 믿는다 하는 <ruby>자<rt>者</rt></ruby>들이 알아야 할 바다.
 
=== <ruby>제<rt>第</rt></ruby> 4 <ruby>장<rt>章</rt></ruby> 그러면 왜 모세부터 <ruby>직접<rt>直接</rt></ruby> 뜻 <ruby>공작<rt>工作</rt></ruby>못하였는가 ===
 
아담 해와의 <ruby>타락<rt>墮落</rt></ruby>으로 인하여 <ruby>악<rt>惡</rt></ruby>의 <ruby>혈<rt>血</rt></ruby>을 받고 나니 <ruby>자손<rt>子孫</rt></ruby>들에게 <ruby>악<rt>惡</rt></ruby>의 피血가 흘러 들게 되었다. 이 더럽힌 피血를 받지 않을 사람이 더러운 피血를 받아 사탄의 <ruby>자손<rt>子孫</rt></ruby>으로 사람들은 <ruby>순종<rt>順從</rt></ruby>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즉 사탄 하나부터 <ruby>번식<rt>繁殖</rt></ruby>되어진 사람을 다시금 하나님이 <ruby>취<rt>取</rt></ruby>하여 뜻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더럽힌 바의 피血를 맑혀야 할 것이었다. 이것을 맑히기 <ruby>위<rt>爲</rt></ruby>하려니 하나님을 <ruby>절대<rt>絶對</rt></ruby>로 <ruby>순종<rt>順從</rt></ruby>하는 사람을 세워서 사탄으로 받은바 피를 맑히기 위한 <ruby>섭리<rt>攝理</rt></ruby>를 세우셨다. 그런고로 사탄은 뜻을 <ruby>반대<rt>反對</rt></ruby>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ruby>반<rt>反</rt></ruby>하여 <ruby>대립적<rt>對立的</rt></ruby> <ruby>원수<rt>怨讐</rt></ruby>로 되어 나왔다. <ruby>역사적<rt>歷史的</rt></ruby>으로 <ruby>시작<rt>始作</rt></ruby>되는 <ruby>악<rt>惡</rt></ruby>의 피血로 <ruby>세상<rt>世上</rt></ruby>은 더럽혀졌으니 <ruby>선<rt>善</rt></ruby>의 <ruby>혈<rt>血</rt></ruby>로서 맑히고자 해야 <ruby>선<rt>善</rt></ruby>이 <ruby>악<rt>惡</rt></ruby>에 <ruby>반대<rt>反對</rt></ruby>하게하시는 <ruby>공작<rt>工作</rt></ruby>을 <ruby>섭리<rt>攝理</rt></ruby> 하시었다. 더럽힌 피血를 <ruby>세상<rt>世上</rt></ruby>에서 끊으려니 <ruby>전인간<rt>前人間</rt></ruby>이 하나님께 <ruby>속<rt>屬</rt></ruby>하여지는 바가 <ruby>문제<rt>問題</rt></ruby>였는데 이 <ruby>공작<rt>工作</rt></ruby>을 돕고 나오는 <ruby>절대<rt>絶對</rt></ruby> <ruby>순종<rt>順從</rt></ruby>하는 사람이 <ruby>희귀<rt>稀貴</rt></ruby>하였다. 그런고로 <ruby>선<rt>善</rt></ruby>한 피를 흘리게 하여서라도 <ruby>선<rt>善</rt></ruby>의 한 <ruby>기본적<rt>基本的</rt></ruby> <ruby>중심<rt>中心</rt></ruby> <ruby>토대<rt>土臺</rt></ruby>를 잡고자 하여 하나님은 <ruby>노력<rt>努力</rt></ruby>하였다. 그 <ruby>노력<rt>努力</rt></ruby>의 <ruby>성과<rt>成果</rt></ruby>를 보아서 <ruby>전세계<rt>全世界</rt></ruby>에 <ruby>악<rt>惡</rt></ruby>의 피血가 다 <ruby>선<rt>善</rt></ruby>의 피血로 인하여 맑힘 받고 난 후에야 하나님은 뜻을 <ruby>시작<rt>始作</rt></ruby>할 수 있는 것이 <ruby>원리<rt>原理</rt></ruby>이었다.
 
그래서 <ruby>석일<rt>昔日</rt></ruby>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ruby>악<rt>惡</rt></ruby>한 <ruby>자<rt>者</rt></ruby>에게 죽게 하신것은 그들로 인하여 <ruby>세상<rt>世上</rt></ruby>의 <ruby>악<rt>惡</rt></ruby>의 피血를 맑히기 위하여 <ruby>탕감적<rt>蕩減的</rt></ruby> <ruby>입장<rt>立場</rt></ruby>으로 죽게 하신 것이었다. 그런고로 모세를 세워서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역사<rt>役事</rt></ruby>하신 것은 다시금 뜻을 <ruby>성사<rt>成事</rt></ruby>할 수 있는 <ruby>기초<rt>基礎</rt></ruby>를 닦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 뜻이었다. 이 터가 <ruby>성립<rt>成立</rt></ruby>되고 난 후에만 하나님의 뜻을 <ruby>시작<rt>始作</rt></ruby>할 수 있는 바였다. 그래서 모세는 하늘 <ruby>성사<rt>成事</rt></ruby>를 <ruby>준비<rt>準備</rt></ruby>한 <ruby>입장<rt>立場</rt></ruby>에 처한 <ruby>존재<rt>存在</rt></ruby>이므로 하나님은 <ruby>근본<rt>根本</rt></ruby> 뜻 <ruby>공작<rt>工作</rt></ruby>을 밝혀 시작하지 못한 것이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 떨어지고 하나님의 뜻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살면 <ruby>악<rt>惡</rt></ruby>의 피血를 <ruby>제<rt>除</rt></ruby>하여 <ruby>의<rt>義</rt></ruby>로 세워 하늘에 <ruby>속<rt>屬</rt></ruby>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ruby>공작<rt>工作</rt></ruby>을 사람들이 <ruby>절대<rt>絶對</rt></ruby>로 받들지 못하여 하나님은 <ruby>지금<rt>至今</rt></ruby>까지 뜻 <ruby>성사<rt>成事</rt></ruby>를 보지 못하고 <ruby>지금<rt>至今</rt></ruby>까지 <ruby>세상<rt>世上</rt></ruby>을 대하여 <ruby>섭리<rt>攝理</rt></ruby>하시는 바이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한테 따르면 떠러지는 것은 <ruby>근본원리<rt>根本原理</rt></ruby>에 서니 사탄 <ruby>역시<rt>亦是</rt></ruby> 할 수 없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탄도 <ruby>원리<rt>原理</rt></ruby>에는 <ruby>굴복<rt>屈伏</rt></ruby>한다.
 
=== <ruby>제<rt>第</rt></ruby> 5 <ruby>장<rt>章</rt></ruby> <ruby>생명수<rt>生命樹</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근본<rt>根本</rt></ruby> 뜻 ===
 
아담 해와를 <ruby>중심<rt>中心</rt></ruby>한 에덴 동산은 <ruby>자유<rt>自由</rt></ruby> <ruby>이상세계<rt>理想世界</rt></ruby>인 <ruby>동시<rt>同時</rt></ruby>에 <ruby>희망<rt>希望</rt></ruby>의 <ruby>세계<rt>世界</rt></ruby>이었다. <ruby>자유근본<rt>自由根本</rt></ruby>과 사랑 <ruby>근본<rt>根本</rt></ruby>을 잃고 보니 사람에게 있어서는 <ruby>타락<rt>墮落</rt></ruby>의 <ruby>고통<rt>苦痛</rt></ruby>이라는 것이 <ruby>전부분<rt>全部分</rt></ruby>에서 <ruby>시작<rt>始作</rt></ruby>되었다. <ruby>성경<rt>聖經</rt></ruby>에 사람은 <ruby>영원<rt>永遠</rt></ruby>할 수 있는 <ruby>생명수<rt>生命樹</rt></ruby>를먹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 뜻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따 먹어야 할 <ruby>생명과<rt>生命果</rt></ruby>는 먹지 못하게 되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이 <ruby>타락<rt>墮落</rt></ruby> <ruby>지각<rt>知覺</rt></ruby>을 받고나니 다시금 <ruby>이상세계<rt>理想世界</rt></ruby>인 하늘 <ruby>세계<rt>世界</rt></ruby>까지가 우리와는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관계<rt>關係</rt></ruby>는 끊어지게 되었다. 그것이 즉 (창세기 3장24절) 그룹들이 돌며 빛나는 화염검을 두어 <ruby>생명과<rt>生命果</rt></ruby>의 길道를 지키게 하심이었다. 이 <ruby>생명수<rt>生命樹</rt></ruby>라는 것은 하나님께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속<rt>屬</rt></ruby>할 수 있는 자체를 막아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이 하늘을 대하여 한 <ruby>간격<rt>間隔</rt></ruby>이었었다. 이 <ruby>간격<rt>間隔</rt></ruby>을 열려면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가 나타나야 <ruby>시작<rt>始作</rt></ruby>된다. 그 <ruby>존재<rt>存在</rt></ruby>는 즉 제2 아담인 예수와 해와 <ruby>성신<rt>聖神</rt></ruby>이 <ruby>출현<rt>出現</rt></ruby>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예수가 땅에 와서 <ruby>자기<rt>自己</rt></ruby>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사명적<rt>使命的</rt></ruby> <ruby>역할<rt>役割</rt></ruby>을 택하고 <ruby>승천<rt>昇天</rt></ruby>하고 난 후에 <ruby>성신강림<rt>聖神降臨</rt></ruby>에서 부터가 다시금 (사도행전2장 1~4절) 화염검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ruby>사실적<rt>事實的</rt></ruby> <ruby>원리<rt>原理</rt></ruby>이므로 <ruby>성신<rt>聖神</rt></ruby>은 오순절에 불(火)같은 설(舌)을 가르면서 <ruby>각인<rt>各人</rt></ruby>에게 임하심은 이 <ruby>생명수<rt>生命樹</rt></ruby>인 길을 하늘적으로부터 열리기였기에 우리는 다시금 <ruby>영생<rt>永生</rt></ruby>할 수 있는 <ruby>생명수<rt>生命樹</rt></ruby>의 길道를 찾게 되어 <ruby>생명과<rt>生命果</rt></ruby>까지 <ruby>취<rt>取</rt></ruby>하여 <ruby>영원이상<rt>永遠理想</rt></ruby> <ruby>영생<rt>永生</rt></ruby>을 <ruby>취<rt>取</rt></ruby>하여야 할 <ruby>노정<rt>路程</rt></ruby>이 <ruby>허여<rt>許與</rt></ruby>되었다.
 
그런고로 <ruby>생명수<rt>生命樹</rt></ruby>는 예수님이고 <ruby>생명과<rt>生命果</rt></ruby>는 예수가 완전 <ruby>신부격<rt>新婦格</rt></ruby> <ruby>성사<rt>成事</rt></ruby> 하여만이 우리에게 <ruby>허여<rt>許與</rt></ruby>받을 수 있는 <ruby>영생요소<rt>永生要素</rt></ruby>다.
 
== <ruby>제<rt>第</rt></ruby> 3 <ruby>편<rt>編</rt></ruby> <ruby>복귀섭리<rt>復歸攝理</rt></ruby> ==
 
=== <ruby>제<rt>第</rt></ruby>1 <ruby>장<rt>章</rt></ruby> 하나님은 아담부터 찾는 <ruby>공작<rt>工作</rt></ruby>못하고 아벨로부터 노아까지 사탄 <ruby>대<rt>對</rt></ruby>한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 ===
 
하나님이 사람을 <ruby>창조<rt>創造</rt></ruby>할때 하나인 <ruby>자기<rt>自己</rt></ruby>를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아담, 해와를 <ruby>통<rt>通</rt></ruby>하여 <ruby>자녀번식<rt>子女繁殖</rt></ruby>을 하기 <ruby>위<rt>爲</rt></ruby>하여 <ruby>창조<rt>創造</rt></ruby>하시였다. 그런고로 사람의 <ruby>자손<rt>子孫</rt></ruby>은 하나님의 <ruby>자손<rt>子孫</rt></ruby>으로 될 것이였는데 사탄 <ruby>유인<rt>誘引</rt></ruby>받고나니 아담 해와는 <ruby>중심<rt>中心</rt></ruby>에서 <ruby>탈선<rt>脫線</rt></ruby>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탄은 <ruby>비공식적<rt>非公式的</rt></ruby>으로 사람을 <ruby>대<rt>對</rt></ruby>하여 나타난 <ruby>존재<rt>存在</rt></ruby>로 되었다. <ruby>본래<rt>本來</rt></ruby> 사람은 하나님 한분을 <ruby>상대<rt>相對</rt></ruby>하여야 할 <ruby>존재<rt>存在</rt></ruby>였든 것이 <ruby>근본<rt>根本</rt></ruby>인데 <ruby>지금<rt>至今</rt></ruby> <ruby>비공식존재<rt>非公式存在</rt></ruby> 사탄이 한 <ruby>존재<rt>存在</rt></ruby>로서 <ruby>생기<rt>生起</rt></ruby>게 되어 하나님을 <ruby>대립<rt>對立</rt></ruby>하여 나타났다. 여기에 하나님은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자기<rt>自己</rt></ruby>에게 <ruby>속<rt>屬</rt></ruby>하여야 하게끔 <ruby>원리<rt>原理</rt></ruby>를 세워 <ruby>창조<rt>創造</rt></ruby>하였는데 다른 <ruby>존재<rt>存在</rt></ruby> 사탄이 <ruby>생기<rt>生起</rt></ruby>게 되니 사람하나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그 <ruby>상대존재<rt>相對存在</rt></ruby>가 있게되니 <ruby>근본원리<rt>根本原理</rt></ruby>와는 <ruby>배치<rt>背馳</rt></ruby>되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ruby>소유<rt>所有</rt></ruby>하려고 하나 벌써 사탄이 먼저 <ruby>원리존재<rt>原理存在</rt></ruby>로 <ruby>대<rt>對</rt></ruby>하여야 할 하나님의 <ruby>존재<rt>存在</rt></ruby>모양으로 사람을 <ruby>소유<rt>所有</rt></ruby>하고 말게 되니 하나님은 사람 <ruby>대<rt>對</rt></ruby>하여 두 <ruby>주인<rt>主人</rt></ruby>을 <ruby>공작<rt>工作</rt></ruby>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이 사람 아담, 해와를 다시금 <ruby>자기소유<rt>自己所有</rt></ruby>로 하여 보려고 하니 여기에 <ruby>원리순서<rt>原理順序</rt></ruby>를 <ruby>배치<rt>背馳</rt></ruby>되는 두 <ruby>주인격<rt>主人格</rt></ruby>을 <ruby>성립<rt>成立</rt></ruby>시키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니 하나님은 다시금 이 <ruby>실패성<rt>失敗性</rt></ruby>을 <ruby>취소<rt>取消</rt></ruby>시키는 <ruby>공작<rt>工作</rt></ruby>을 하려고 할 때에 <ruby>즉<rt>卽</rt></ruby> <ruby>원리<rt>原理</rt></ruby>대로 사람을 찾으려 할 때에 아담, 해와의 그 <ruby>자체<rt>自體</rt></ruby>에는 벌써 <ruby>실패<rt>失敗</rt></ruby>하였으니 그 <ruby>자체<rt>自體</rt></ruby>에는 <ruby>비공식적<rt>非公式的</rt></ruby> 사탄 <ruby>소유<rt>所有</rt></ruby>인 <ruby>동시<rt>同時</rt></ruby>에 또 <ruby>창조원리적<rt>創造原理的</rt></ruby>으로는 <ruby>타락<rt>墮落</rt></ruby>이 없었으면 <ruby>물론<rt>勿論</rt></ruby> 하나님의 <ruby>소유자<rt>所有者</rt></ruby>는 <ruby>정<rt>定</rt></ruby>한바이나 <ruby>타락<rt>墮落</rt></ruby>되어서 그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입장<rt>立場</rt></ruby>은 벌써 하나님<ruby>편<rt>便</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하지 않는 <ruby>근본원리<rt>根本原理</rt></ruby> 모양樣으로 사탄이 사람을 <ruby>취<rt>取</rt></ruby>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로 <ruby>자기<rt>自己</rt></ruby> 몸으로 지은 사람을 <ruby>포기<rt>抛棄</rt></ruby> 할 수 없는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결탁<rt>結託</rt></ruby>이 있으니 하나님 <ruby>역시<rt>亦是</rt></ruby> 아담, 해와를 포기 할 수 없는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책임<rt>責任</rt></ruby>이 있는바였다. 이런 <ruby>책임적<rt>責任的</rt></ruby> <ruby>근본<rt>根本</rt></ruby>을 가진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는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대<rt>對</rt></ruby>하여 찾으려고 <ruby>공작<rt>工作</rt></ruby>하려고 하니 먼저 <ruby>비원리적<rt>非原理的</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의 <ruby>주인공<rt>主人公</rt></ruby>이 <ruby>소유<rt>所有</rt></ruby>함이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담, 해와를 두고 그의 <ruby>자손중<rt>子孫中</rt></ruby>을 <ruby>통<rt>通</rt></ruby>하여 이 두 <ruby>주인격<rt>主人格</rt></ruby>으로 <ruby>분립<rt>分立</rt></ruby>시켜서 아담, 해와의 <ruby>실패<rt>失敗</rt></ruby>를 찾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ruby>자손중<rt>子孫中</rt></ruby>에는 두 <ruby>성품적<rt>性品的</rt></ruby> <ruby>결과<rt>結果</rt></ruby>의 <ruby>자손번식<rt>子孫繁殖</rt></ruby>이라는 <ruby>타락세계<rt>墮落世界</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를 보게 되었다. <ruby>즉<rt>卽</rt></ruby> <ruby>비공식적<rt>非公式的</rt></ruby> <ruby>주인성품<rt>主人性品</rt></ruby>에 <ruby>속<rt>屬</rt></ruby>한 <ruby>자손<rt>子孫</rt></ruby>의 <ruby>분립<rt>分立</rt></ruby>을 <ruby>요<rt>要</rt></ruby>하게 되었다.
 
아담, 해와는 <ruby>실패<rt>失敗</rt></ruby>함으로 이성품격의 <ruby>모체<rt>母體</rt></ruby>의 <ruby>주인공<rt>主人公</rt></ruby>으로 <ruby>출발<rt>出發</rt></ruby>하니 <ruby>창조원리적<rt>創造原理的</rt></ruby>이 아닌 <ruby>결과<rt>結果</rt></ruby>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ruby>대<rt>對</rt></ruby>하여서 <ruby>직접<rt>直接</rt></ruby>찾는 <ruby>공작<rt>工作</rt></ruby>은 <ruby>시작<rt>始作</rt></ruby>못하고서 그 <ruby>자<rt>子</rt></ruby>를 두고 <ruby>복귀공작<rt>復歸工作</rt></ruby>을 <ruby>시작<rt>始作</rt></ruby>하니 <ruby>즉<rt>卽</rt></ruby> 아담, 해와의 <ruby>자<rt>子</rt></ruby>인 “가인”, “아벨”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섭리<rt>攝理</rt></ruby>의 <ruby>노정<rt>路程</rt></ruby>을 시작하였다. 그런고로 아담, 해와 사탄
 
피血를 받고 난 맏 가인이니 첫 <ruby>생산자<rt>生産者</rt></ruby>는 사탄에게 <ruby>속<rt>屬</rt></ruby>하는 <ruby>비원리적<rt>非原理的</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의 <ruby>입장<rt>立場</rt></ruby>이다. 그 다음 <ruby>존재<rt>存在</rt></ruby>는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ruby>입장<rt>立場</rt></ruby> <ruby>속<rt>屬</rt></ruby>하는 <ruby>존재<rt>存在</rt></ruby>로 되었다. 그것은 사탄의 피血를 받은 사람을 찾으려 할 때에 첫번 해와는 사탄한테 <ruby>속<rt>屬</rt></ruby>하였지만, 다음은 아담한테 <ruby>속<rt>屬</rt></ruby>하는 <ruby>양<rt>樣</rt></ruby>으로 해와는 <ruby>행동<rt>行動</rt></ruby>하였으니 비록 <ruby>타락<rt>墮落</rt></ruby>된 <ruby>자체<rt>自體</rt></ruby>들이었지만 아담<ruby>적<rt>的</rt></ruby> 사랑은 나중이나 그 <ruby>자손<rt>子孫</rt></ruby>에는 두 <ruby>성품적<rt>性品的</rt></ruby>으로 흐름이 있는바는 <ruby>사실적<rt>事實的</rt></ruby>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ruby>타락<rt>墮落</rt></ruby>된 <ruby>자체<rt>自體</rt></ruby>들의 <ruby>입장<rt>立場</rt></ruby>으로 보아도 사탄이에게서는 첫것 사랑이었으니 첫것보다 나중사랑 즉 아담사랑이 <ruby>비원리<rt>非原理</rt></ruby> <ruby>입장<rt>立場</rt></ruby>에는 <ruby>속<rt>屬</rt></ruby>한 사랑이었으나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미움이 아닌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또 이런 <ruby>원인<rt>原因</rt></ruby>으로 보아도 첫 <ruby>자손<rt>子孫</rt></ruby>은 보다 미움의 <ruby>자손<rt>子孫</rt></ruby>이며 미움의 <ruby>대상<rt>對像</rt></ruby>이었다. 그런고로 아담 <ruby>자손중심<rt>子孫中心</rt></ruby>하고 이런 <ruby>이유<rt>理由</rt></ruby>에 <ruby>대비<rt>對比</rt></ruby>되는 입장은 사람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취<rt>取</rt></ruby>케 되었다. 그래서 사탄도 <ruby>역시<rt>亦是</rt></ruby> 하나님 <ruby>대<rt>對</rt></ruby>하여서 <ruby>비원리<rt>非原理</rt></ruby>나마 <ruby>자기<rt>自己</rt></ruby>가 <ruby>소유<rt>所有</rt></ruby>할수 있는 한 <ruby>상대<rt>相對</rt></ruby>의 <ruby>혈적<rt>血積</rt></ruby>의 <ruby>자손<rt>子孫</rt></ruby>이 사람한테 <ruby>소유<rt>所有</rt></ruby>되어 지는 것을 <ruby>자연적<rt>自然的</rt></ruby>으로 바라게 되어 사람을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하나님과 사탄은 <ruby>대립<rt>對立</rt></ruby>되어 <ruby>자기<rt>自己</rt></ruby> <ruby>소유물<rt>所有物</rt></ruby> <ruby>확립<rt>確立</rt></ruby>을 보게 됨이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그래서 사탄도 <ruby>역시<rt>亦是</rt></ruby> 처음에 <ruby>비원리<rt>非原理</rt></ruby>라고는 알고 있으므로 <ruby>적극적<rt>積極的</rt></ruby>으로 사람이 <ruby>자기소유<rt>自己所有</rt></ruby>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앎으로 <ruby>자기편<rt>自己便</rt></ruby>에 <ruby>순종<rt>順從</rt></ruby> 할 수 있는 <ruby>조건<rt>條件</rt></ruby>이 <ruby>성립<rt>成立</rt></ruby>되어야만이 <ruby>자기<rt>自己</rt></ruby>것으로 <ruby>취<rt>取</rt></ruby>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아담 <ruby>자손<rt>子孫</rt></ruby> 가인과 아벨에 <ruby>대<rt>對</rt></ruby>하여서는 <ruby>비공식존재<rt>非公式存在</rt></ruby>와 <ruby>공식존재<rt>公式存在</rt></ruby>와의 <ruby>대립<rt>對立</rt></ruby>헤서 보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ruby>본래<rt>本來</rt></ruby> 하나님의 것으로 되었기에 하나님이 먼저 <ruby>취<rt>取</rt></ruby>할 수 있는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권리<rt>權利</rt></ruby>는 <ruby>유<rt>有</rt></ruby>한바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을 <ruby>유인<rt>誘引</rt></ruby>하였으니 <ruby>간접적<rt>間接的</rt></ruby> <ruby>태도<rt>態度</rt></ruby>로 나아가는 <ruby>입장<rt>立場</rt></ruby>에 <ruby>처<rt>處</rt></ruby>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은 여기서 <ruby>복귀공작<rt>復歸工作</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을 보려니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으로 <ruby>타락<rt>墮落</rt></ruby>한 <ruby>인간<rt>人間</rt></ruby>이니 <ruby>순종<rt>順從</rt></ruby>으로서야만이 하나님의 <ruby>편<rt>便</rt></ruby>에 서서 <ruby>원리<rt>原理</rt></ruby>를 찾을 수 있는 바이고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이면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의 <ruby>주인공<rt>主人公</rt></ruby>이 사탄 <ruby>소유<rt>所有</rt></ruby>라는 두갈랫길이 지어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사람 <ruby>자손<rt>子孫</rt></ruby> 가인과 아벨이 드리는 <ruby>제물<rt>祭物</rt></ruby>은 <ruby>근본적<rt>根本的</rt></ruby>으로 <ruby>순종<rt>順從</rt></ruby>이나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에 의하여 <ruby>취<rt>取</rt></ruby>하고자 하는 <ruby>이성품적<rt>二性品的</rt></ruby>으로 <ruby>소유물<rt>所有物</rt></ruby>, <ruby>결정적<rt>決定的</rt></ruby> <ruby>표정물<rt>表定物</rt></ruby>이었다. 두 <ruby>형제<rt>兄弟</rt></ruby>가 <ruby>각기<rt>各己</rt></ruby> <ruby>제물<rt>祭物</rt></ruby>을 드렸으나 왜 아벨의 <ruby>제물<rt>祭物</rt></ruby>은 <ruby>축복<rt>祝福</rt></ruby>하고 가인 <ruby>제물<rt>祭物</rt></ruby>은 <ruby>불축복<rt>不祝福</rt></ruby>이었든가 하는 것은 첫 <ruby>자손<rt>子孫</rt></ruby> 가인은 사탄의 피血를 <ruby>계승<rt>繼承</rt></ruby>할 수 있는 <ruby>표시<rt>表示</rt></ruby>로 된 <ruby>자<rt>者</rt></ruby>요, 다음 <ruby>자손<rt>子孫</rt></ruby> 아벨은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ruby>자<rt>者</rt></ruby>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은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으로 가인보담 아벨이니 아벨의 <ruby>제물<rt>祭物</rt></ruby>을 받고싶음이었다. 그 <ruby>외<rt>外</rt></ruby> 가인 <ruby>제물<rt>祭物</rt></ruby>은 받지
 
않은바이었다. 그래서 이때에 가인 제물은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편에 서기 <ruby>위<rt>爲</rt></ruby>하여 살려고 <ruby>자기<rt>自己</rt></ruby>의 <ruby>자체<rt>自體</rt></ruby>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벨을 사랑하면서 자기의 사랑받지 못하는 <ruby>자체<rt>自體</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후회<rt>後悔</rt></ruby>하면서 하나님이 다시금 사랑받을 걸을 찾았으면 <ruby>즉<rt>卽</rt></ruby> 하나님이 하시는데 기뻐 <ruby>감사<rt>感謝</rt></ruby>하는 <ruby>태도<rt>態度</rt></ruby>었다면 가인 <ruby>역시<rt>亦是</rt></ruby> 하나님<ruby>편<rt>便</rt></ruby>으로 <ruby>취<rt>取</rt></ruby>케되는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인 사탄 <ruby>소유<rt>所有</rt></ruby>하는 <ruby>불순종권내<rt>不順從圈內</rt></ruby>에서 순종권내에로 옮겨지면 하나님은 <ruby>순종<rt>順從</rt></ruby>하는 <ruby>자손<rt>子孫</rt></ruby>을 취하는 곳에 <ruby>대비<rt>對比</rt></ruby>니 가인도 <ruby>역시<rt>亦是</rt></ruby> 하나님이 <ruby>취<rt>取</rt></ruby>하게 될것이었다.
 
여기에 가인은 그와 <ruby>반대<rt>反對</rt></ruby>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벨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원망시<rt>怨望視</rt></ruby>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 <ruby>즉<rt>卽</rt></ruby> 사탄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의 <ruby>근본<rt>根本</rt></ruby>되는 사탄의 <ruby>행동<rt>行動</rt></ruby>과 같은 <ruby>방향<rt>方向</rt></ruby>으로 나아가 아벨을 죽이고 나니 하나님이 뜻하였든 첫 <ruby>복귀원리<rt>復歸原理</rt></ruby>는 가인 <ruby>행동<rt>行動</rt></ruby>으로 <ruby>전인간<rt>前人間</rt></ruby>에 <ruby>사망<rt>死亡</rt></ruby>의 터를 자아내게 되었다. <ruby>즉<rt>卽</rt></ruby> 사탄은 그때까지 가인을 <ruby>자기소유<rt>自己所有</rt></ruby>로 할 수 없고, <ruby>자기소유물<rt>自己所有物</rt></ruby>되기를 <ruby>고대<rt>苦待</rt></ruby>하는 <ruby>입장<rt>立場</rt></ruby>으로 하나님 <ruby>대<rt>對</rt></ruby>하여 서게 되었다. <ruby>성경<rt>聖經</rt></ruby>(창세기 4/7)에 하나님이 가인보고 말하기를 <ruby>죄<rt>罪</rt></ruby>가 <ruby>문<rt>門</rt></ruby>에 엎드려伏 틈을 엿보나니 저彼를 <ruby>방비<rt>防備</rt></ruby>하려는 것은 사탄이 가인 너를 삼키고자 한다는 이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를 밝히는 바의 말씀이다. 이런 가인의 <ruby>행동<rt>行動</rt></ruby>이 있었으니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 사탄은 <ruby>자기편<rt>自己便</rt></ruby> 가인 <ruby>소유<rt>所有</rt></ruby>를 갖고 아벨을 죽이는 바는 여기에 하늘을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반역<rt>反逆</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의 <ruby>예고<rt>豫告</rt></ruby>를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 <ruby>행동<rt>行動</rt></ruby>은 <ruby>즉<rt>卽</rt></ruby>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의 <ruby>조상급<rt>祖上級</rt></ruby>에서 되어지는 이런 <ruby>행동<rt>行動</rt></ruby>들은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를 <ruby>좌우<rt>左右</rt></ruby>하는 <ruby>간접적<rt>間接的</rt></ruby> <ruby>행동<rt>行動</rt></ruby>의 <ruby>시작<rt>始作</rt></ruby>이라 할 수 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은 사탄은 내 <ruby>소유<rt>所有</rt></ruby>만 만들겠다는 <ruby>악의<rt>惡意</rt></ruby>의 <ruby>발로<rt>發露</rt></ruby>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ruby>대신<rt>代身</rt></ruby> 셋을 준 것(창 4/25)은 아벨의 <ruby>계승<rt>繼承</rt></ruby> 뜻을 세워서 다시금 하나님<ruby>편적<rt>便的</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로 세우셨다.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하는 가인, <ruby>즉<rt>卽</rt></ruby> 사탄은 셋을 <ruby>대<rt>對</rt></ruby>하여서 <ruby>공작<rt>工作</rt></ruby>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은 <ruby>본래<rt>本來</rt></ruby> 어두움의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 피血를 받고 났으니 <ruby>선혈적<rt>先血的</rt></ruby> <ruby>관계<rt>關係</rt></ruby>로써 하나님을 따르는 것보다도 사탄을 따르는 <ruby>방향<rt>方向</rt></ruby>으로 흘러나려 오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ruby>근본목적<rt>根本目的</rt></ruby>을 <ruby>달성<rt>達成</rt></ruby>하기 <ruby>위<rt>爲</rt></ruby>하려니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 <ruby>순종자<rt>順從者</rt></ruby>를 찾아서 <ruby>공작계승<rt>工作繼承</rt></ruby>하여 왔든 바인데 사람들은 즉 셋 <ruby>자손<rt>子孫</rt></ruby>까지 가인의 <ruby>자손<rt>子孫</rt></ruby>들이 좋아하는 <ruby>생활체<rt>生活體</rt></ruby>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는 하나님의 뜻을 세운 <ruby>자<rt>者</rt></ruby>는 <ruby>점점<rt>漸漸</rt></ruby> 적어지고 사탄 뜻세워 따르게 되는 <ruby>양<rt>樣</rt></ruby>으로 <ruby>타락성<rt>墮落性</rt></ruby> <ruby>근본체<rt>根本體</rt></ruby>인 <ruby>음행<rt>淫行</rt></ruby>은 <ruby>팽창<rt>膨脹</rt></ruby>되었고 사탄 <ruby>대<rt>對</rt></ruby>하여 섬기는 것은 <ruby>전부<rt>全部</rt></ruby>가 즐겨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었다. 여기에 하나님이 참을 수 없이 <ruby>전<rt>全</rt></ruby> <ruby>인류<rt>人類</rt></ruby>를 처서 없애고 이 뜻에 맞는 <ruby>자<rt>者</rt></ruby>의 <ruby>자손<rt>子孫</rt></ruby>으로 뜻 <ruby>공작<rt>工作</rt></ruby>을 <ruby>계획<rt>計劃</rt></ruby>하시기 <ruby>위<rt>爲</rt></ruby>하여 노아를 세우심이었다. <ruby>즉<rt>卽</rt></ruby> 노아는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을 <ruby>반<rt>反</rt></ruby>하여 하나님의 뜻을 <ruby>순종<rt>順從</rt></ruby>하는 <ruby>대표자<rt>代表者</rt></ruby>이었다. 그런고로 노아를 두고 하나님이 <ruby>근본복귀<rt>根本復歸</rt></ruby> <ruby>계승<rt>繼承</rt></ruby>
 
하여서 뜻 <ruby>성사<rt>成事</rt></ruby>를 볼려고 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은 <ruby>제일<rt>第一</rt></ruby>은 사탄 <ruby>숭배<rt>崇拜</rt></ruby>하는 것이고 <ruby>제이<rt>第二</rt></ruby>는 <ruby>음행<rt>淫行</rt></ruby> 하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ruby>타락<rt>墮落</rt></ruby>의 씨가 되었으며 이것으로 <ruby>통<rt>通</rt></ruby>하여 사탄의 뜻 <ruby>번식<rt>繁殖</rt></ruby>함과 같은 <ruby>협조행동<rt>協助行動</rt></ruby>이니 하나님께서는 <ruby>지극<rt>至極</rt></ruby>히 눈꼴사나운 <ruby>상대<rt>相對</rt></ruby> 이었기에 <ruby>제일<rt>第一</rt></ruby> 미워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ruby>인간세상<rt>人間世上</rt></ruby>에서는 <ruby>남녀<rt>男女</rt></ruby>가 사랑하는 것과 <ruby>남녀<rt>男女</rt></ruby>의 <ruby>음양부<rt>陰陽部</rt></ruby>가 부끄러운 <ruby>실체<rt>實體</rt></ruby>며, 죄의 <ruby>실체<rt>實體</rt></ruby>며 <ruby>악<rt>惡</rt></ruby>의 <ruby>실체<rt>實體</rt></ruby>며, 또한 천한 욕이 되는 바이다.


(1) 화가 있을有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人들 앞前에서 닫閉고 너희爾等도 들어가入지 않고 들어가入려는 자도 들어가入지 못하게 하는도다. 과연 너희들이 행동은 외식의 행동으로 인하여서 본 하나님의 뜻에서 나와야 할 존재가 딴 입장에 나오면서 하나님의 뜻에 선 듯이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틀림없구나 너희 근본조상 되어서 범행한 자의 가인과 같은 혈통을 받고 있다함을 말하면서
그런고로 <ruby>세상<rt>世上</rt></ruby>에서는 <ruby>남녀<rt>男女</rt></ruby>의 <ruby>제일<rt>第一</rt></ruby> <ruby>귀<rt>貴</rt></ruby>한 사랑이 <ruby>실체<rt>實體</rt></ruby>들을 천한 것으로 <ruby>인정<rt>認定</rt></ruby>하는 바는 이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타락성<rt>墮落性</rt></ruby> <ruby>근거<rt>根據</rt></ruby>이므로 말도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람이 <ruby>타락<rt>墮落</rt></ruby>한바를 <ruby>양심직고<rt>良心直告</rt></ruby>하는 바의 <ruby>사실<rt>事實</rt></ruby>을 <ruby>증거<rt>證據</rt></ruby>하는 바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욕이 왜 생식기에 관한 것인가 욕이면 왜 좋아하는가? <ruby>세상<rt>世上</rt></ruby>의 <ruby>제일<rt>第一</rt></ruby> <ruby>귀<rt>貴</rt></ruby>한 것이 사랑인데 사랑에 <ruby>속<rt>屬</rt></ruby>하는 <ruby>실체<rt>實體</rt></ruby> <ruby><rt>卽</rt></ruby> <ruby>제일<rt>第一</rt></ruby> <ruby>귀<rt>貴</rt></ruby>한데 <ruby>속<rt>屬</rt></ruby>하는 <ruby>실체<rt>實體</rt></ruby>가 왜 욕이 되는 것인가. 이 <ruby>근본<rt>根本</rt></ruby>만 찾으면 <ruby>인생문제<rt>人生問題</rt></ruby>는 <ruby>해결<rt>解決</rt></ruby>이다. 이 <ruby>사실<rt>事實</rt></ruby>은 생식기에 관한 욕이 아닌 <ruby>제일<rt>第一</rt></ruby> 좋은 것이 생식기로 되었으니 <ruby>즉<rt>卽</rt></ruby> <ruby>비원리적<rt>非原理的</rt></ruby> <ruby>출발<rt>出發</rt></ruby>을 가져오는 <ruby>근본<rt>根本</rt></ruby>이 되었다. <ruby>즉<rt>卽</rt></ruby> <ruby>사망<rt>死亡</rt></ruby>이 <ruby>시작<rt>始作</rt></ruby>되는 것의 <ruby>시작<rt>始作</rt></ruby>의 <ruby>근본<rt>根本</rt></ruby>되었으니 이런 <ruby>고백<rt>告白</rt></ruby>으로 <ruby>표시<rt>表示</rt></ruby>됨이라. 그런고로 <ruby>세상<rt>世上</rt></ruby>은 <ruby>비원리중<rt>非原理中</rt></ruby>에 있다는 <ruby>사실적<rt>事實的</rt></ruby> <ruby>양심<rt>良心</rt></ruby> <ruby>고백<rt>告白</rt></ruby>의 말이 많이 쓰여지고 있다.
그 가인은 하나님 뜻 외에서 있으면서 뜻 안에 선 자같은 양으로 하고자 하여 그 뜻 불성사로 인하여서 아벨을 죽인바와 같이 너희도 그의 피를 받은 자와 같이 뜻 외에 서 있으면서 뜻안에 선 듯이 하여 아벨과 같은 예수 나를 대하는구나. 그의 행동의 결과로 인하여서 가인은 전인간에게 천국문을 닫고 전인류의 들어가려고하는 문을 닫는것과 같은 행동을 하려는구나. 이 뜻 외로 행하려는 행동이 전인류의 사망의 시작을 보았는데 지금 바리새 교인들과 서기관들은 그 가인과 같은 결과의 입장에 서서 예수의 피血를 노리는구나. 너희는 과연 가인 피血를 받은 자니 그의 결실까지 채充우라 하시는 근본적으로 타락의 뿌리根인 가인이 불합의한 입장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바면서 지금 나는 천국문을 열開하고자 하는 자인데 너희들은 닫閉고 다른 사람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사탄과 같은 뜻 파괴자라고 책망한바이었다.


(2) 화가 있有할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너희들爾等이 바다海와 육지로 다니行며 교우를 얻得어서 그가 교회에 들어오入면 이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하심이다.
<ruby>예<rt>例</rt></ruby>를 들면 <ruby>음양<rt>陰陽</rt></ruby>, <ruby>좌우<rt>左右</rt></ruby>라는말, <ruby>흑백<rt>黑白</rt></ruby>, <ruby>지금<rt>至今</rt></ruby> 많이 쓰는 <ruby>적백<rt>赤白</rt></ruby> <ruby>등등<rt>等等</rt></ruby>은 <ruby>전부<rt>全部</rt></ruby>가 <ruby>선후<rt>先后</rt></ruby>가 <ruby>반대<rt>反對</rt></ruby>로서 쓰는바는 <ruby>인류역사<rt>人類歷史</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ruby>반대<rt>反對</rt></ruby>로 되었다는 바를 <ruby>증거<rt>證據</rt></ruby>하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ruby><rt>卽</rt></ruby> <ruby>좌<rt>左</rt></ruby>니 <ruby>음<rt>陰</rt></ruby>이니 <ruby>흑<rt>黑</rt></ruby>이니 <ruby>적<rt>赤</rt></ruby>이니 하는 말은 <ruby>비원리세계<rt>非原理世界</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이 먼저 되었다는 것을 <ruby>상증<rt>想證</rt></ruby>시켜 주는바이다. <ruby>즉<rt>卽</rt></ruby> <ruby>직고<rt>直告</rt></ruby>대로 <ruby>우좌<rt>右左</rt></ruby>, <ruby>양<rt>陽</rt></ruby> 陰, <ruby>백흑<rt>白黑</rt></ruby>으로 <ruby>백적<rt>白赤</rt></ruby>으로 되는 <ruby>세상<rt>世上</rt></ruby>이 와야 만 우리 <ruby>원리<rt>原理</rt></ruby> 찾은 <ruby>세상<rt>世上</rt></ruby>이요 <ruby>이상<rt>理想</rt></ruby> <ruby>세계<rt>世界</rt></ruby>의 <ruby>요소<rt>要素</rt></ruby>이다.
근본 뜻은 노아 심판후에 사탄이 바다海와  육지를 두루 돌면서 자기의 뜻 맞는 자를 찾아서 그로 인하여 자기소유로 삼아 다시금 지옥의 자식을 불린 것과 같이 너희도 지금 함의 행한 행동의 결실의 한 자식됨이 틀림없는 사탄과 같은 행동으로 뜻의 시작을 하고자 하는 행동이 나에게 대하여 함에게 취하든 사탄이 즐기는 행동을 하듯이 자기로부터 사탄이 터를 잡고 다른 형제들까지 그 뜻에 협조를 하게하는구나. 그래서 지옥자식을 많게하기 위하여서 행동하는 함의 한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서 너희는 그의 결과인 종류이라함을 지적하면서 너희 하고자 하는대로 행하여 사탄의 요구하는 죄의 양을 채우充려하는구나 하시는 뜻을 중심하고 책망하신 것이다. 즉 나에게 오면 지옥을 피하는데 나에게 여러 사람까지 올려는 것을 막는구나 하시어서 책망한 내용이었다. 다음.


(3) 화가 있을有진저 소경瞽者이 되어 타인을 지도하는 자여 너희들爾等이 말言하대 누구誰던지 성전을 가리指켜 맹세盟誓는 부족虛疎하거니와 성전의 금을 가리指켜 맹세한즉 지킬守수 있지라 하니 너희爾等는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요 소경瞽者로다. 어떤 자何者가 크大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聖하게 하는 성전이냐. 하면서 다음은 같은 뜻의 내용으로 중복하여서 말씀하신 것이었다. 이것은 무슨 뜻을 표시함인가 하면 아브라함이 믿음信의 조상이나 그의 행함에서 대신제물은 맹서로 들인 것이나 그것은 헛것으로 할 수 있었으나 이삭 실체제물은 하나님의 맹서를 세우시었다는 것을 지적하시어서 말한 것이었다. 그와 같은 성전과 같은 허락적 규례로 되는 뜻은 헛될 수 있으되 성전 금과 같은 예수 한 자체는 헛될수 없다는 것을 말함이었다.
이렇게 사탄의 <ruby>창성<rt>昌盛</rt></ruby>을 보니 <ruby>선<rt>善</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적극적<rt>積極的</rt></ruby>으로 <ruby>대<rt>對</rt></ruby> <ruby>원수<rt>怨讐</rt></ruby>로 나아가니 <ruby>석일<rt>昔日</rt></ruby>부터 <ruby>의인<rt>義人</rt></ruby>들의 <ruby>참사<rt>慘死</rt></ruby>가 많은 바는 <ruby>원리<rt>原理</rt></ruby>로 보아 <ruby>응당<rt>應當</rt></ruby>하다. 이와 같이 노아의 <ruby>시대<rt>時代</rt></ruby>까지도 <ruby>전부<rt>全部</rt></ruby>가 <ruby>불순<rt>不順</rt></ruby>의 <ruby>자식<rt>子息</rt></ruby>들로 <ruby>전세계<rt>全世界</rt></ruby>가 되고 보니 하나님은 <ruby>전멸<rt>全滅</rt></ruby>시켜서 다시금 뜻을 <ruby>공작<rt>工作</rt></ruby>하는 <ruby>결과<rt>結果</rt></ruby>로 노아 <ruby>심판<rt>審判</rt></ruby>이 되게 되었다. 그 때에 노아는 <ruby>순종자<rt>順從者</rt></ruby>를 찾았으나 사람도 보지 못하고 전부가 <ruby>사망<rt>死亡</rt></ruby>으로 들어갔다.
구약적 행례 전부는 폐할수 있으나 예수의 “言”은 폐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시어 말씀하신바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소경瞽者과 우민의 입장을 떠나서 하늘과 땅을 갈렸으면 이삭까지 범하지 아니 하였을 터인데 때時 소경瞽者과 같은 모양으로 행한 것이 사탄 침입을 본 것과 같이 되어 나중에는 전자손에게까지 침입하는 사탄의 길을 잡은 바와 같이 되어 반석까지 치打는 결과結果의 시작도 애급 생활이 있었기에 때문이다라는 것을 말하면서 너희도 아브라함의 종손이지만 분별하여야 할 시기에 서 있는 아브라함의 입장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대하다가 예수까지 범하는 행동이 되리라 사실을 들어서 하늘 뜻을 분별하여서 대하여야 될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은 아브라함의 태도와 같은 결과의 시작을 보리라 하시어서 지적하시어 말씀하신 바이었다.


(4) 화가 있有할진져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너희들爾等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納되 율법의 더 중한 의와 인과 믿음信은 행치 아니하니 이此를 행할것이요 아무被도 버리棄지 말것이니라. 소경瞽者이 되어 타인을 인도하는 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하시었다.
심판하고 나니 하나님은 <ruby>통분<rt>痛憤</rt></ruby>!
  이 내용은 모세가 바라는 바는 십계명과 같은 율법 전부를 요구하여 나오는 중인데 지금 그것 버린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반하였으니 이제는 십계명도 쓸데없다하는 생각으로써 두二 석판을 깨시었다 그리함과 같이 너희도 그와 한가지로 십계명 중심 본체와 같은 예수를 알아보지 않고 그저 지엽부분과 같은 십일조 등이 한 쉬운 것으로 하나님의 뜻의 전부를 성사하는 표시례로 하는 자들아 결과에 가서는 하나님의 뜻 배반하는 결과를 이루어 예수까지 파하게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리라 하시어서 그의 중심뜻을 몰라서 받들지 못함의 실패의 기인과 같이 너희 행동이 여전히 모세 십계명 앞에 나타난 자들아 한가지로 뜻을 떠나 사탄과 짝하는구나. 그러니 결국에는 모세의 두二석판을 깨破는 것과 같이 되리라 함을 지적하여 말함이었다. 다음은


  (5) 화가 있有할진져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배과 반의 표면은 정결히 하되 그 내에는 토색함과 불의함으로 충만케 하는도다. 소경瞽者가 된 바리새 교인아 잔盃과 밑받침盤의 안內을 정결히 하여야 표면이 또한 정결하리라 하시었다.
<ruby>근본<rt>根本</rt></ruby>에서 <ruby>시작<rt>始作</rt></ruby>되었으면 <ruby>자기<rt>自己</rt></ruby><ruby>자손<rt>子孫</rt></ruby>들이었는데 사람의 <ruby>행동<rt>行動</rt></ruby>이 <ruby>전인간<rt>前人間</rt></ruby>을 <ruby>사망<rt>死亡</rt></ruby>으로 몰아넣는 <ruby>결과<rt>結果</rt></ruby>를 가져와서 <ruby>심판<rt>審判</rt></ruby>은 하였으나, <ruby>통분<rt>痛憤</rt></ruby><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왜냐하면 사탄 때문이지 사람에게 무슨 <ruby>죄<rt>罪</rt></ruby>가 있는가 하는 <ruby>생각<rt>生覺</rt></ruby>은 하나님 <ruby>역시<rt>亦是</rt></ruby> <ruby>생각<rt>生覺</rt></ruby>치 않을 수 없었다.
  그 내용은 모세가 반석수를 내어 먹일적에 그 외면상으로는 좋은 듯 한 것이었으나 내면적으로는 토색함과 불의가 충만하였다하심이었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외면상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된것과 같은 것이나 내면에 들어서는 원수가 불의의 기본 터를 잡는 행동의 결과를 완성하였구나. 즉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 되었구나. 그런고로 먼저 배(이스라엘 백성)과 반(하나님의 몸)안內를 깨끗이 하여야
만이 그 표면은 자연 깨끗한 것이라 하시면서 먼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뜻 하나를 완성한 깨끗한 후에야 그 모든 표면의 전부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도다 하시어서 지적하신바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자체들의 하나님의 뜻 중심 떠난 행동의 기인으로 인하여 불의의 터를 자아내며 백성의 더럽힘이 하나님 더럽힘으로, 땅 더럽힘이 하늘 더럽힘으로 되게 되었다는 것과 한가지로 모세 반석 두 번 침도 너희들이 뜻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에 친것과 같이 너희도(바리새 교인) 뜻을 그와 같이 대하니 지금 예수 나 자신을 다시 쳐打서 잔盃과 받침대盤을 더럽히는 자로 되려는구나 하시어 너희가 땅과 하늘을 다시금 범하려고 하는 결실이 되려라 하시어서 책망하심이었다. 결과로 십자가까지 져야되리라 하는 내용을 표명함이었다.


(6) 화가 있有할진져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회칠한 무덤墓와 같으如니 밖으外로 보이見기는 아름다우美나 그 안內에는 죽은사람사인의 뼈骨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滿하도다. 이此와 같이 너희爾等도 밖으外로는 사람人에게 의義를 보이示되 안內로는 간사와 악독이 충만하도다 하시었다.
그런고로 다시는 이와 같은 <ruby>심판<rt>審判</rt></ruby>은 하지 않을 것을 세웠다.
이것은 요셉 가정과 마리아가 세상의 한 의를 세우고자 하는 행동으로 기인되어 사망의 터가 시작되어 그의 전부가 그 상로서 한 시작이 되어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 앞에 제일 원수의 행동으로 사탄의 즐기는 터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여 말함이다. 이런 결과로 나왔으니 나는 과연 세상에서 용납받지 못할 입장에 선 것이니 너희들이 원수와 합한 행동은 과연 당연하다. 너희들이 요구하는 대로 행하려무나 하여서 책망하심이었다.


(7) 화가 있有할진져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너희들爾等이 선지자의 묘를 조성하고 의인의 비를 꾸미飾며 왈 만일 우리들我等이 조상때時에 살았在다면 우리들我等은 선지자의 피血를 뿌리流기를 도모치 아니하였으리라 하나 그러然함으로 너희들爾等이 선지자를 살해한 자의 자손됨을 자증함이니 너희들爾等이 조상의 악한 양을 채우充리라. 너희爾等 뱀蛇과 독사毒蛇의 종류들아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然함으로 내我가 너희들爾等에게 선지자와 지혜가 있有는 자와 서기관들을 유하며 너희들爾等이 그중其中에서 살해하기도하고 이성此城에서 저성被城으로 핍박하기도 하리니 지상에 의인의 피血을 흐르게流한 죄가 다 너희爾等에게 돌아오歸되 의인 아벨의 피血로부터 성전과 제단간에서 살해한 바라갸의 아들子 사가랴의 피血까지니라. 내我가 진실로 너희爾等에게 이르論노니 이일此事이 다 차세대에 돌아가歸리라 하시었다.
<ruby>심판<rt>審判</rt></ruby><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는
  이 말씀은 전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을 지금까지가 역사적 혈통을 계승받아온 자라는 것이 틀림없는 자들이니 또 다시금 선지자와 의인의 묘를 꾸며飾 나서는구나. 즉 다시금 예수 대하여서 이와같은 행동을 하는구나. 그러면서 자기들의 행동은 가장 선행인 듯이 외식하면서 사탄의 혈통을 받아온 그 목적
충당케 하고자 하는구나. 그러니 너희들의 행동의 결과는 사탄이 끝까지 자기의 요구되는 것의 분량을 전부 이루어주고자 하는 행동이로다. 그러니 나는 너희들의 요구에 응하여 죄의 양을 다 채充워 주마하시면서 앞으로도 너희는 의인과 선지자의 피血을 흐르流게 할것이나 이 모든 벌은 너희가 받으리라 하시면서 현실의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에 대하여서 최후적 태도를 선언하면서 책망하신 말이었다. 그런고로 이리하여서 사탄 대한 합의 최고목적을 달성하려면 하려무나 하는 결의를 표시하심이었다. 이와 같이 하여 역사적으로 침입한 사탄의 전결실은 단계를 채워주기 위하여서 십자가까지 각오하면서 7화의 근본 역사적 근거로되니 너희들도 인하여 혈통된 역사적 의인의 피血값은 누구보다도 너희가 받으리라 하시어 누구보다도 큰 화중에 서 있는 것을 표명하여 그 목적 달성하려면 하여라 하심이었다.


제6 절 예수 십자가의 승리적 근본의의와 승리적 신앙자
① 사탄을 사람한데 떼기 <ruby>위<rt>爲</rt></ruby>한 것


십자가로서 사탄의 구약시기에 더럽힌 요구열매를 청산하기 위하여다. 왜 청산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면 출애급 노정은 예수의 표시적 근본노정의 본으로 되었기에 그其 중에 사탄한테 침입받은 두二석판과 반석으로 인하여 예수 몸까지 침범할 수 있는 한 실수를 청산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짐이다.
② <ruby>순종자<rt>順從者</rt></ruby>로 되니 사탄을 <ruby>원수시<rt>怨讐視</rt></ruby>하게하기 <ruby>위<rt>爲</rt></ruby>하여
예수 하나 모 하나가 사탄 전목적 결실의 존재였다. 그런고로 예수 십자가는 사탄 전부와 죄전부의 목적물이었다. 예수 살生아 있는 한, 사탄 전부와 죄전부는 살生아 있는  과 같으니 예수 주검= 전사탄+ 죄전부 주검과 같은 탕감을 완성하기 위하려니 십자가를 지심이다. 예수 죽음으로 역사적 죄를 탕감하며 사탄으로 하여금 뜻 성사흐는 곳에 터를 없게하기 위함이다. 다시금 부활로써 다시금 하늘 뜻 계승성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최고권한으로 인한 사탄이 침입 못하는 생명권위를 시작하게 하심이다. 즉 이곳에서 사탄과 하나님과 종국적 합할 수 없는 분기점을 보여주었다. 사탄은 그 목적달성 최고부분은 죽일 수 있는 부분까지나 살릴 수 있는 곳까지는 하나님 밖에 없는 부분이니 이곳은 근본적으로 사탄이 할 수 없는 부분이니 사탄이 비로소 분기를 시작하게 하시는 근본 뜻이 있음이다.
그런고로 십자가 죽음死은 사탄의 최고 실력의 결과를 표함이고 부활은 하나님의 특유권내의 부분이니 이곳 머물處면 사탄은 살處 수 없는 것이니 너는 지금부터 나와 떨어진다는 한 分點의 始作이 十字架로 因함이다.
사탄은 살리는 권한이없으니 하나님은 사탄이 갖지 못한 권한으로서 십자가 이후에 부활의 섭리이다. 십자가
의 도는 믿음信을 세우심은 불신을 대하여 기본 반대되는 하늘쪽의 시작을 다시찾는 시작이니 믿음信을 세우심이다. 즉 근본 아담 해와가 믿信지 못하였기에 타락되었는데 근본에서 믿음信을 두고 불신했든 것이 사탄이었으니 믿으信면 하나님의 편이었다는 근본의의로서 믿음信을 세우심이 목적이다. 믿信는 곳은 타락전까지 향상할 수 있는 터이다.
예수는 제2 아담이니 처음 아담 완성자니 근본 타락단계는 예수부터 향상할 수 있는 원리로된다. 타락은 불신으로 인하여 아담 이하로 내려왔든 것이나 믿음信으로 아담 이상 위로 향진하는 기본점이니 믿음信을 세우심이다.
예수는 죄 짓기전 아담이니 예수 붙잡는 것은 즉 믿信는 일이니 아담 이상에서 부여되는 천국생명의 주입은 원리적 복귀로서 인함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믿음信으로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생명성사의 기초이다. 이 터가 확고하여야만 모든 뜻 성사의 시작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의 전부의 사랑愛를 세우심은 믿음신 성사한 터위에서만 시작을 볼 수 있는 바이다. 사랑은 생명주입의 근본이다. 이것은 예수를 사모하는 성신역활과 합하여 성립된다. 그런고로 사랑愛를 세우심이다. 소망을 세우심은 아담 해와가 소망성사를 하지 못하였으니 우리로 인하여 소망인 목적지를 복귀코자 하시어서 기독생활 삼요소를 세우심은 전부가 기본목적 달성을 목표하여서 세우심이다. 또 십자가로서 승리하여서 무엇을 표시하였는가하면 사탄의 피血는 영체적 실체인 천사장 누시엘의 피血를 받아서 사망이었든바를 다시금 예수로 영체적 실체로서 영적 피血를 받은 길을 막아 생명혈을 계승하기 위하여서 부활체로서 승천하신바의 근본뜻이 있는 동시에 전인류를 영적으로 다 찾아서 뜻 성사까지 옴이 근본의의를 알아야 한다. 만일 십자가의 길이 아니었다면 영과 육 합하여서 성사코자 하시었다. 그렇다면 재림은 불요구의 원인이 성립될것이었는데 그것은 사람과 사탄 합함의 시작이 분립하여 지금까지 영적으로 찾는 역활을 예수는 하늘의 사랑을 갖고 땅 성을 대하여 미적존재를 취하여 나온바의 기독교신앙역사다. 이런고로 십자가의 의의를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사탄은 불신, 불순, 불시로 취케하고 믿信고 순종, 모심으侍로 하늘로써 역사적 고마운 분기는 취하여왔다. 그런고로 예수 이하부터 사탄은 실패한 발족을 짓게 되었다. 이리하여서 사탄 상대하여 바로 앞에 모세가 3일기간을 출발한 시작을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예수 신앙생활은 전부 구약역사舊史 출애급부터 가나안과 같은 영적 노정이 승리의 노정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출발할 수 있는 모든諸조건을 구비하였다. 즉 예수는 승리적 뱀蛇으로 모세가 제2차 손手를 넣어 문둥병癩病을 낫게한
것과 같은 생명의 길로 생명의 피血를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으로 그 다음은 신성적 성신 합함에서 광야를 향할 수 있는 구비조건성사를 지어서 믿는 신자와 합하여 출발케 함이다. 그런고로 먼저 믿고 나서려할 때는 세상과 하늘, 사탄과 하나님과에 바로와 같은 싸움으로 끝까지 참고 승리하여야 하는 자가 되어야 출발한 것이 사실과 같은 한 표시적 역사와 그 노정으로 시작하게 하심이었다. 그런고로 믿信고 이런 세상 조건 승리할 바가 신앙생활한 출발점이라는 것은 역사적 표시노정이었음으로 이와같은 노정으로 인하여 나아가는 그 생활 중에서는 절대신앙하면 만사승리나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것의 여실의 표현화를 보게 되는 바가 사실이다. 3기간을 찾아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원수의 한 대할 수 있는 홍해와 광야고난생활과 아멜렉 공격 등과 뱀들蛇等의 출현할 수 있는 길인 믿음信, 불신을 좌우로 놓고 출발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한 노정이다. 그런고로 광야노정은 한 십자가를 지어야만 된다는 것이 한 원인으로 된다. 그런고로 뜻 성사하는 자에 너희는 누구보담 나를 사랑치 못하는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않고 나를 제일 사랑하여만 된다는 선언을 환희하는 자야만이 나의 제자가 된다고 하심이다.


제7 절 나를 더 사랑하라는 근본의의
③ 이것을 보아 <ruby>불순종자<rt>不順從者</rt></ruby>의 한 <ruby>사망<rt>死亡</rt></ruby>의 <ruby>표<rt>表</rt></ruby>를 삼아 <ruby>순종<rt>順從</rt></ruby>케 하여 <ruby>불순종<rt>不順從</rt></ruby>의 <ruby>시작<rt>始作</rt></ruby> 없게 하기 <ruby>위<rt>爲</rt></ruby>하여


지금까지 불신세계에서 신앙세계로서 출발하려고 하려면 누구誰보다도 예수 자기를 사랑치 않으면 안된다는 원인의 정도는 여하인 정도까진가 하면 성경에 말하기를 “내我가 세상을 화평케 하려 온 줄로 알知지말라. 화평케 하려온 것이 아니오 병기를 일어起키러 왔來노라. 내我가 온 것은 아들子이 아버지父와 불화하며 딸女이 어머니母와 불화하며 며느리婦와 시어미姑와 불화하게 함이니 사람人의 원수仇가 그집안其家內의 식구니라. 아버지父나 어머니母를 사랑愛하기를 나我보다 더하는 자는 나我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십자가를 지負고 나我를 따르從지 않는 자는 나我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자기 생명을 아끼惜는 자는 특이 잃失고 나我를 위하야 생명을 잃失는 자는 특이 찾으索리라 하시었다.
④하나님만이 사람 <ruby><rt>對</rt></ruby>하기 <ruby>위<rt>爲</rt></ruby>하여
이와같은 말씀을 선포하심은 예수 당시 시대적으로나 모든 방향으로 보아도 용서할 수 없는 일대 혁명적 선포이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생활하여온 전부가 하나님의 뜻 성사할 수 있는 가정이면서 하늘뜻 성사할 수 있는 가정이냐하면 그렇지 않다. 전일의 그 가정은 전부가 사탄의 뜻과 이상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추진시키는 길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는 미워하는 그 가정이었고 그 생활무대
이었다. 그런고로 지금까지 사랑하든 부모, 형제, 처자들은 사탄이 기뻐하는 생활의 사랑 무대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가정이었다. 하나님이 선의를 높여 찾고자 할적에 악에 속한 터를 지나서 선에 속할 수 있는 곳이 시작되어야만이 시작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가정생활하면서 살던 너희가 그 가정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 믿고 나서 예수를 더 사랑하여만 하늘의 한 뜻 성사의 뜻을 볼 수 있는 한 뜻이 있는바이다. 10정도로서 예수를 사랑하면 지난날昔日 사탄 사랑함을 비교하는 급까지니 그런고로 지난날昔日 사탄의 무대에서 사랑하든 이상의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은 사탄 취하든 한 터위에서 시작하는 양이 됨으로 지난날昔日 10만큼의 사랑보담 남을 수 있는 10이상의 사랑이 시작되어야 하늘 사랑할 수 있는 한 터를 잡을 수 있으니 예수는 사랑하려니 이런 모순과 같은 한 선포하심이다. 10사랑이면 10사랑으로 탕감하고보니 아무도 남지 않는 양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으로 한터의 사랑 부분이 없기에 10사랑 이상을 요구하심은 전부가 하나님 사랑을 주입하고자 하는 근본의의가 있는바이다. 이 부분이 시작됨으로 소위 중생이 시작의 기본점 시작과 같이 하늘 사랑 대하여 생명 시작의 기인을 보니 이런 시기에 곤란難한 선포가 즉 사랑에 대한 선포였다.
이와 같이 하늘사랑 찾아나서니 사탄은 적극적으로 그런 노정을 지키려니 식구를 통하여서 대립하게하는 공작이 시작되니 즉 사람 중심하고 하나님과 사탄의 대적을 보니 직접 원수仇가 가정식구라고 하심의 직접 원수구자된다는 기본원인이었음이다. 그러나 그것 문제하지 않고 한 십자가가 될지라도 끝까지 생명을 다하여 승리하여야할 인생의 근본의무적 관계를 타개하여야할 근본적 의의였다하심의 의의있는 한 선언이었다. 이런 신관 목적을 달성하는 신앙 생활자가 몇 명이나 되는가. 전하여야할 예수의 심정과 받으셔야할 인간의 책임적 사명의 하나一로써 세계가 시작을 얻는 때가 언제일까하고 바라든 책임적 사명에 대하여서 얼마나 서러워 하였을까. 우리로 최후적 승리한 십자가의 노정을 성사하는 것과 같은 뜻을 생각하여서 사탄 패케 하는데 여하한 십자가라도 개이치 않고 나아가는 자라야만 예수의 제자가 될것이었다. 또 신랑이되어야겠으니 예수 대한 단적 사랑愛이 각자가 소유하여 하늘 생명번식을 하여야할 책임이 있기에 이런 사명을 원만히 완성하기 위한 선포가 근본의의를 둔 바이었다.
제8 절 지옥가서 전도하는 예수의 근본의의


본래부터 사람이라는 존재에게는 지옥이라는 있을 수 없는 곳이었는데 사탄의 유인받아 분기를 본 뒤後부터는 지옥이라는 비원리존재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 지옥가게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원수 되는 죄와 결탁한 보답의 곳임은 틀림없으나 창조할 전부터가 원수될 수 있었든 존재로 근본적으로 아니었음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 영들도 타락됨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이와 같은 불순종자의 영의 처벌하는곳이 즉 지옥이다. 이와 같이 곳에 와 있는 영도 역시 타락된 세계로부터 시작한바는 사실적의 원인이니 이 근본책임적문제는 전부가 사람들이 부족함이 있다할지라도 그 근본책임은 타락하게 한 아담, 해와가 근본적 책임을 져야하는 명백한 기본사실이다.
⑤ 뜻 <ruby>성사<rt>成事</rt></ruby>의 터를 잃지 않기 <ruby>위<rt>爲</rt></ruby>하여
그런고로 지옥간 것은 결국은 아담 때문에 이와 같은 곳이 생기는 터를 지었으니 이곳까지 제2 아담 격으로 온 예수 앞에는 책임적 사명을 짊어지게하는 한 목적이 남아있음이었다. 그들도 근본은 나한테 속하여야 할 존재였든 것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들 한테도 한 생명받을 수 있는 길을 세우고자 함의 시작을 보아야 하겠으니 지옥까지 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안될 근본목적이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 십자가 후부터는 지상뿐이 아니고 지옥부분까지 한 생명의 길이 틔어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지옥에 있는 곳까지도 소생할수 있는 길을 찾아 무한한 괴로움苦과 싸워가면서 말할 수 없는 먼 기간을 두고 구원복귀노정이 시작됨을 알아야한다. 즉 그들의 범한 죄는 그 몸의 짐이 되고 가시가 되어 그 집을 다 풀어 맑혀야만 빛을 찾아 장성할수 있는 특사의 노정시작을 봄이었다.
그런고로 영의 세계는 선에 대한 자극은 강하지만 악에 대한 자극은 심하지 않기에 악이 그 영인체로부터 잘 분립하기 어려難움으로 그 기한적 규정은 무한수에 비하여 장기간이 요하면서 장성 선을 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지옥전도 근본의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육신생활에는 죄에 대한 자극이 강함으로 속히 선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이 근본창조원리였다. 영인 세계는 이상만으로 충만하게하는 것이 근본뜻으로 되었기에 악에 대한 처치방법은 창조이상 원리가 아니기에 과연 그 기간적으로 선에 향할 수 있는 대향을 볼적 만 생명요소를 볼 수 있도록 되었다. 그런고로 지옥에 가 있는 자들도 선한 근본을 기본으로 하여 악에 대비하여 선 장성을 도움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고로 사람이 지상에서 선만을 지향한 소유자가 되면 전적으로 이상요소인 선을 취할수 있는 것이 기본이니 도라는 것과 이상준비라는 지상이 원리의 터로 되었기에 예수도 지상강림 아니고는 뜻 성사할 수 없겠기에 지상강림의 근본의의가 있음이다. 지옥에 예수의 생명요소는 한 터의 시작을 잡는 양이니 이 터에 부합할 수 있는 선한 것을 놓여야만 소생할 수
있는 부분요소를 받을 수 있다. 이리하여 지옥도 한 혜택의 시작이 예수 십자가로부터 시작이다. 사탄이 예수가 지옥 전도할 수 있는 길을 허여치 않을 수 없었으면 근본원리로 되는 주인자체의 복귀의 터의 시작을 주었으니 할 수없이 허여한바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생명소생권한은 천주 어디나 시작되는 것이니 지옥에도 한 길이 시작됨이다. 성경에는 베드로전서 3 장 19절에 예수가 또한 그 신으로부터 가去서 옥에 있는 신에게 선포하신지라. 그들은 지난날昔日에 노아 이 일에 방주를 예비할 동안을 하나님이 오래참으久忍시고 기다리侍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신이라 하시었고 또 베드로 전서 4장 6절에 죽은死자에게도 복음을 전한 것이 다르지않無他다. 그其 육체로는 사람人처럼 심판받고 그其신으로는 하나님처럼 활동하게 하심이니라 하시었다. 이 말씀들을 보면 특별한 은사를 가르쳐주는 근본적인 뜻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옥 철폐이상이 완성하여야만 하나님의 뜻 원만성사라 할 수 있다. 이 시기가 과연 언제나 되겠는지 그其 시기는 한정 못한다.


제4 장 예수 승천 후도 섭리하는 책임적 근본의의
<ruby>이상<rt>以上</rt></ruby>과 같은 뜻을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ruby>심판<rt>審判</rt></ruby>은 하였으나 <ruby>근본적<rt>根本的</rt></ruby>으로 <ruby>생각<rt>生覺</rt></ruby>하면 하나님께 있어서 <ruby>자기<rt>自己</rt></ruby>의 <ruby>책임성<rt>責任性</rt></ruby>을 느껴짐을 <ruby>자각<rt>自覺</rt></ruby>치 않을 수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사람을 <ruby>타락<rt>墮落</rt></ruby>하게 한 것은 <ruby>결과<rt>結果</rt></ruby>는 <ruby>자기자신<rt>自己自身</rt></ruby>이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ruby>최종국<rt>最終局</rt></ruby> <ruby>책임<rt>責任</rt></ruby>은 <ruby>자신<rt>自身</rt></ruby>에 <ruby>결과점<rt>結果點</rt></ruby>을 두고 있고, 그 다음 아담, 해와 이러니,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람 찾기 <ruby>위<rt>爲</rt></ruby>하여 <ruby>자기<rt>自己</rt></ruby>와 아담, 해와의 <ruby>책임<rt>責任</rt></ruby>이니 이 <ruby>공작<rt>工作</rt></ruby>을 <ruby>시작계승<rt>始作繼承</rt></ruby>하여야 할 <ruby>대신적<rt>代身的</rt></ruby> <ruby>역할<rt>役割</rt></ruby>이 남아지게 하였다. 그런고로 처음으로는 하나님이 <ruby>책임<rt>責任</rt></ruby>지고 사람을 <ruby>구원<rt>救援</rt></ruby>할 수 있는 <ruby>기초<rt>基礎</rt></ruby>를 닦아주어야 할 <ruby>책임<rt>責任</rt></ruby>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ruby>기초<rt>基礎</rt></ruby> <ruby>공작<rt>工作</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할려니 <ruby>구약<rt>舊約</rt></ruby> <ruby>역사<rt>役事</rt></ruby>에로 들어간다.


본래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지음받은 인간 조상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종국 목적 단계급까지 이르못하고 타락하게 되었다. 만일 타락 없이 완성하는 자리까지 나갔더라면 하나님의 몸과 함께 지상에 지상천국으로 전개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고로 아담 해와로서 뜻 완성부분까지는 아직 남아있는 한 과정에서 타락하였다. 그런고로 처음 아담 해와는 미도달부분부터 향상으로 전진함이 아니고 퇴보의 일로로서 밟게 되었다. 그런고로 그로 인하여 비원리적 자녀 번식으로 하나님의 미워하는 세계를 이루어 나온바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찾고자하니 이 전세계에 인간을 전부 타락하든 미도달부분이었든 아담 해와가 하나님 대하든 곳까지를 옮겨 놓아야만 하나님은 근본 뜻이 완성할 수 있는 곳으로 전개할 수 있는 바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전인류를 합하여서 타락 전 급까지 옮겨 놓아야 하는 책임적 사명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십자가로 인하여 이 기초를 잡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락시킨 동급까지 올려 놓아야할 책임이 완성을 보아야만 그 이상 부분으로 예수도 제일보를 옮길 것의 기본되는 이유니 그 이상을 성사하고자 하는 점은 즉 하나님을 중심한 아담 해와가 지상에 완성할 수 있는 세계인간에 숨어든 어두움과 사탄을 제거하는 역사를 두고 섭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그 터가 되면 <ruby>무<rt>無</rt></ruby> <ruby>타락<rt>墮落</rt></ruby> 아담, 해와의 <ruby>분담사명적<rt>分擔使命的</rt></ruby>으로 <ruby>시작<rt>始作</rt></ruby>되었다. 그래야만이 <ruby>창조원리<rt>創造原理</rt></ruby>의 <ruby>성립<rt>成立</rt></ruby>을 볼 수 있는 바이다. <ruby>본래<rt>本來</rt></ruby> 사탄은 하나님에게 <ruby>순종<rt>順從</rt></ruby>하여서 <ruby>굴복<rt>屈伏</rt></ruby>함이 없다면 <ruby>원리인<rt>原理人</rt></ruby>(<ruby>무악인<rt>無惡人</rt></ruby>) 사람한테도 사탄은 <ruby>굴복<rt>屈伏</rt></ruby>치 못함이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니 하나님은 모세 <ruby>시대<rt>時代</rt></ruby>까지 <ruby>자기<rt>自己</rt></ruby>가 <ruby>활동<rt>活動</rt></ruby>할 <ruby>기초공작<rt>基礎工作</rt></ruby>을 하여만 되게 되었다. 이 <ruby>기초<rt>基礎</rt></ruby>되어야만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보내서 <ruby>공작<rt>工作</rt></ruby>할 수 있겠으니 <ruby>공작<rt>工作</rt></ruby>하여야 하는 <ruby>책임<rt>責任</rt></ruby>노아 <ruby>이후<rt>以後</rt></ruby> <ruby>공작<rt>工作</rt></ruby>이다. 하나님 앞에 <ruby>순종굴복<rt>順從屈伏</rt></ruby>없다면 예수와 <ruby>성신<rt>聖神</rt></ruby>한데도 사탄은 굴복할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 뜻과 <ruby>섭리<rt>攝理</rt></ruby>의 <ruby>최고<rt>最高</rt></ruby> <ruby>목적<rt>目的</rt></ruby>은 하나님으로부터 사탄을 <ruby>굴복<rt>屈伏</rt></ruby>케하여 사람 <ruby>조상<rt>祖上</rt></ruby>으로부터 사람<ruby>전부<rt>全部</rt></ruby>에게 사탄을 <ruby>굴복<rt>屈伏</rt></ruby>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떨어져 내려오던 부분급은 하나님 보다는 낮은 부분 생명급이었다. 생명급은 영인체의 한 장성한 부분을 표시하는 것인데 구약시기를 통하여 한 기대를
잡아주는 영형체적 기대위에 신약적 생명급까지 끌어올리는 예수의 남은 사명분담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하늘에 승천한바는 먼저 하늘에 있는 성도까지 가져다 놓아야 아담이 타락한 부분을 충당하는 것으로서 예수는 이 부분까지 채우려는 역사가 성신(해와의 신)과 협조하여 기독교 역사발달을 움직여서 나온 원인이다. 그런고로 하늘에 있는 성도도 지금까지 노력하는 바는 지상에 빨리 생명급까지 복귀적 사업의 역사를 도와서 빨리 뜻 완성 표준까지 도달을 보고자 하여 온 하늘은 총동원하여서 지상을 대하여왔다. 그런데 사탄은 이에 반하여 지상 뜻 성사의 길을 사람을 통하여 반대하여 대립을 보여 왔던 바다.
그러나 사탄은 패하여 내려가는 방향쪽面으로 전진하여왔다. 그런 중에 역사를 통하여서 사탄은 신자를 박해하여왔다. 사탄은 먼저 주권 국가들을 달성하였었기에 그 주권기관을 통하여서 기독학살주의 등으로 반대하여 나왔다. 악이 주권을 잡았으나 점차로 하늘쪽으로 옮겨지게 하는 격으로 되는 중 기독에 속한 의인은 많은 살해를 입어왔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해받게 하는 이유는 이 의인들의 피血가 악의 피血에 더럽힌 세계를 씻는 대신탕감으로 역대의 피血을 밝혀왔든 바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피血과 합하여 세계를 맑히는 양으로 지금까지 왔든바이다. 이와 같이하여 세계를 더럽힌 어두움이 탕감되어 맑혀서 하나님의 뜻을 성사할수 있는 시기를 고대하기 위한 준비적 시기가 즉 예수와 성신과 하늘 성도들과 땅 성도들이 하여온 역사이었다. 그리하여 빨리 세계를 맑혀서 어두움을 청산하는 시기가 즉 재림전 심판시대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이 땅에 전부가 하나님의 이상건설에 제일보를 시작하는 것이 근본목적 지상재림부터 시작되는 바의 목적이 되어있다. 그런고로 아담 해와의 자체들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한 사람 성사 부부를 요구하여 지금까지 영으로는 상대되어 역사하여온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은 한 육신이고 근본자기들이 타락하지 않아서 나아갈 부분 즉 뜻의 부부는 성사못하였었다. 그런고로 땅 향하여서 신자에게 신랑 신부라는 역사를 두고 한 터 성사를 본으로 삼고 어두움을 소제하며 완성할수 있도록 고대함이 전목적이니 시기와 함께 하늘도 완성할수 있는 기본이유가 결점의 한 시작이 됨으로 천주의 전성도들은 합하여서 목적성사를 하늘은 고대하는 바다.
그리하여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창조이상인 부부를 찾아서 전인간의 조상으로서 간접적 계대와 같은 양자와 같이 신도였든 자들은 땅으로부터 하늘 완성할 수 있는 시작이 보는바가 사실 원리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이리하여 하나님의 몸으로 합한 한 부부의 출현성사 때時의 잔치가 즉 어린양의 잔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근본 아버지 어머니를 찾으시어 모侍시는 첫 출발
일이 즉 재림성사적 중요점으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땅의 창조인간조상을 이제야 찾아 놓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근본이상이면서 본목적의 시작을 성사하고부터 하늘 생활시작이 되는바를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지금까지 하나님 아버지 한분으로 어머님 없는 아버지로써 역사를 통하여 왔든바를 사람은 알아야 한다. 어머님 없는 하나님 아버지였든 근본 뜻을 생각조차 못한 부모잃은 자식을 볼 적에 아버지의 그 아픈 통분이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 간 인생이 미해결적 고통은 역사를 통하여 나온 사실이었다.
그런고로 하늘 아버지 어머님의 성립이 되어야만 자녀의 가정조직성사가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므로 성도나 하늘 사람은 한날을 길이 고대하여 왔든 것이었다. 그런고로 땅이 완성하여야할 존재가 즉 재림주니 이 분은 지상에 있다 할지라도 하늘 전부는 그분을 아버지와 어머님으로 모侍셔야만 이루는 것에 대신 이루어 채우는 역사를 하여서 하늘 성도는 우리를 찾아 합하고자 하는 바의 근본의의이다. 하늘 사람이나 땅 사람이나 이 근본 아버지 어머님을 모侍셔야만 땅에서부터 영원생활 시작으로 그 땅 부부는 하늘 부부로서 영원가정건설이 시작되는 시대가 즉 재림주 아버지 격으로 오신 분이다. 그런고로 이때가 빨리 오게하기 위하여 예수와 성신은 힘써 왔든 바이다. 그런고로 재림기대 잡아주는 역사 시기가 예수 승천후 섭리하는 근본목적이다. 그런고로 이와 같은 한 뜻 성사에 제2 아담 예수가 미완성한 이상부분 제3차 아담 격으로 나타現나 근본 뜻을 완성하여서 부부로부터 새로운 천국가정건설에 목적과 합하여 혈대 전환하는 신랑 신부의 성례식으로 전세계로 전하여 하나님의 몸 부분을 분배받아 근본 이상까지로 옮기는 도가 즉 재림주 모侍시는 도며 아버지급 완성부분 영인체를 조성하는 생령의 도가 만천주 합하여 시작하는 것이 근본목적이다.
그런고로 지금은 예수와 성신으로 인하여 장성한 생명급까지 온 자들에는 반드시 아담 해와라는 것으로 봉착을 본다. 그러나 이것은 타락전 아담급까지 와서 한 부부급을 성사할 있는 격자라는 것을 교시받는 신자도 지금은 많아야 한다. 그리하여 재림주 근본인간조상 아버지를 모侍실수 있는 터를 세우기 위한 기본준비의 터는 세계 각 곳에 시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고로 예수와 동급적 생명급자가 되면 주라고도 교시함은 있는 바다. 그런고로 끝날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주라고 하는 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 중 한 뿌리는 한 곳이다. 그곳은 전천주에 숨은 하나님의 전부를 합하여 발표하는 곳을 향하여 준비적 완성자로 하늘 가정 과정으로 한 과도 분기를 잘
잡아야하는 근본 뜻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녀 근본 이상조직으로 하늘인 근본 땅이 시작을 본다는 바를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생령체까지 완성하여만 하늘 이상인형체구조를 완성하는 바이다. 이 뜻을 성사하려면 모侍시는 생활세계로 세계주관복귀에로 될 것이다. 그러니 재림의 구름타고雲乘 강림이라고 비사한바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세례요한이라 하심과 같이 같은 이유로 뜻 중심하고 말한 것이기에 뜻은 하나이나 사람은 두 사람과 같은 이유는 말하였기에 논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예수는 어찌되나 하면 장자로서 모든 사람의 모侍시는 중심의 본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나중 오시는 재림주가 근본된다는 바를 알바는 두말 할바도 없다. 이 분 중심하고 땅이자 하늘의 한 부분이라는 시작이니 6천년의 역사완성과 하늘의 한 목적 달성의 시작을 보는 사실이니 세계의 기쁨이며 하늘의 기쁨이로다. 이런 시대가 와야만 전부 하늘뜻은 한 완성의 기대는 잡아 탄식없는 세계에로 제일보의 시작을 볼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성경 마태 복음 16장 27절에 인자가 아버지父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오偕來겠으니 그其 때時에 사람마다 행한대로 갚으報리라 하심이었다. 그런고로 재림은 아버지로 오시는 것도 밝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상과 같은 원리로 볼 때 우리도 영으로 이룬다는 자가 하나님 앞에 어떤 자라는 것은 결론적으로 각자 해결로 맡기자.


제5 장 부활의 근본의의
==== (1) <ruby>제일<rt>第一</rt></ruby>은 하나님한테 <ruby>순종굴복<rt>順從屈伏</rt></ruby> ====


신앙역사적으로 전인류는 누구를 막론勿論하고 부활의 이상을 다 갖고 왔다. 그러나 그 부활은 지금 기독교신앙자의 모두全의소망의 대상으로서 역사적 한 동경의 한 중심이다. 그런데 부활에 대한 그 중심의 의의는 무엇을 표준하고 있느냐 하면 그리스도와 같은 육신부활을 기본점으로 하고 있는 바가 현신앙생활자들이 바라는 전부로 되어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 바며 우리들의 부활은 무엇을 의의로서 찾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된다. 예수의 육신부활은 사탄이 간섭을 받지않은 하나님의 재출발점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승리적 부활권한을 조성하기 위하여 육신부활을 성립시킨바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신자들이 육신부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완성하심이다. 즉 예수 부활이 없다면 우리 육신은 전부가 사망권에 속하여 있기에 하나님의 생명을 주입받아 다시금 장성할 수 없는 더럽힌 몸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사망의 터로 된 육신들이 한 부활요소 즉 그리스도의 생명을 다시금 소생 할 수 있는 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함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근본사로 육신을 생명육신으로 시작 할 수 있는 허여의 시작을 봄이었다. 그런고로 신앙생활함으로 내적생명성사 수 있는 기본터가 그리스도 부활로
==== (2) <ruby>제이<rt>第二</rt></ruby> 아담, 해와 (예수, <ruby>성신<rt>聖神</rt></ruby>) <ruby>순종굴복<rt>順從屈伏</rt></ruby>, ====
인하여 시작함이다. 그 터위에 생명을 완전히 장성시켜 나와 다시금 우리는 부활을 바라는 제2부활인 재림부활을 바라게 되는 바다. 예수 십자가 죽음死은 사망의 터를 청산함이고 부활은 다시금 생명의 길로 영원히 시작할 수 있는 기대를 닦음이었다. 사탄이 주관하에서 있는 바를 분기하게한 바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함이니 사탄이 없어서 예수 생명받으니 부활터를 우리 몸에 시작하였다.
  그런고로 예수 부활과 함께 사망의 육신에서 다시금 창조원리적 생명소생받은 잃어버렸든 바를 시작하니 한 부활을 표시함이다. 부활이란 말도 우리 조상 아담해와가 육신을 더럽혔던 바를 시작하니 한 부활을 표시함이다. 부활이란 말도 우리 조상 아담해와가 육신을 더럽혔던 사실로 인하여 생겼生起던 것이다. 타락이 없었으면 우리는 부활 명사조차 아무 상관없는 바이었지만 타락함으로 부활을 바라게 되었다. 그런고로 우리가 타락전의 입장으로 한 다리를 놓아 들어서는 양이니 그리스도로 인하이다. 혹은 한 것이라는 명사를 부쳐 부활한다고 하는 의의를 알아야한다. 사탄으로 죽死었던 바가 다시 예수 부활로 인하여 살았生으니 고생에서 돌아오니 즉 부활이라는 뜻이 있는 바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부활할수 있는 생명을 받고 있는데 무슨 또 재림부활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을 알아야한다.
모두가 근본을 알지 못하는고로 우리는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를 밝혀보자. “본래 사람은 타락이 없었다면 부활 요구없는 완전 완성한 영인체를 조성하였을 것이다. 영인체가 완성하려면 하나님의 몸과 합한 일체적 계대를 성립하여야만 완성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즉 예수(아담)는 하나님의 일체몸까지 나가지 못하여서 타락한 바를 이미 아는바다. 하나님의 몸 받은 급이 즉 생영체를 조성함인데 이 생영체를 받아야만 우리 근본창조인 이상적 삶生이었는데 이것이 타락으로 인하여 나누어서 찾아 채우는 양으로 되는 것은 먼저 타락하기 전까지 생명급 정도는 예수로 인하여 받았지만 아직 생령급까지는 다시금 나와 있지 못한지라 이 부분까지 받으려면 재림주로 인하여 충당하여야 할 것이 남아있는 미소생부이다. 이 부분은 역사를 통하여 천국에 가서있는 사람도 미소생으로 되었다. 땅 중심하고 소생할 수 있는 근본이상의 부모가 나타나야만 전천주인은 이상인형인 본생영체를 완성한 영인체를 구성하는바다. 그런고로 이 생령체를 찾을 수 있는바는 다만 재림하여서만 성사할수 있는 급이다. 재림성사하여야 그 근본타락전 생령체구성으로 나아간다. 그전에 못되는 원인은 근본생령의 부모가 없는 입장에 어찌 먼저 생령을 받는다는 것은 조상없는 자식을 성립하는 양인 비원리적 사실이므로 하나님은 이 목적이 재림부터 완성함을 받게끔 역사하는바니 전천주도 이날을 갈망하여 바라는 바는 다시금 하늘에도 부활한 완성급을 부여 받은바를 말하면 지상에서도 우리도 영계 생령급한 부활의 시작을 본다는 근본원리가 있기에 재림부활을 말함이다.
공중에 혼인잔치라는 영광을 받을수 있는 자격자는 예수 생명급까지 완전장성한 자만이 자격이 있어 그 잔치로 인하여 부활의 생령체를 가진 한 근본자녀의 입장을 조성하여 하늘 가정조직의 시작인 영광을 부여 받는다. 그런고로 재림시까지 낙원에 가 있는바는 근본하늘에서 생활못하고 준비기간에 처하여 있었다는 바가 사실이다. 재림하여서만 시작한다. 즉 근본아버지 어머니가 생겨生起야 아들과 딸이 생령의 시작을 보겠으니 이 부모 생生起기까지 고대가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는 재림시기인바다. 그러므로 하늘간 사람은 잃어버린 아버지 어머님의 복귀고대가 즉 재림고대라는 근본의의를 알아야한다. 그런고로 근본육신에서 완성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합하여 하늘 땅 일체시, 천주완전부활일”이니 누구나 고대한 원인이다. 하늘에도 영으로 한 급 부활시작. 땅에서도 근본완성시작이 되니 이 어찌 고마운 부활이 아니랴. 이상과 같은 원리적 사실이 구약시기가 신약시기와는 영적급으로 한 급차를 갖고 있는 바다. 구약은 터를 닦는 급이므로 생심에다 영체를 시작케하여서 생명급 계승으로 할 기본 터이었다. 그런고로 영체적 구약시기서부터 신약생명체급까지에도 한 급적 부활의 역사가 있다함을 근본 논한 원리와 같은 이유를 구약시대의 영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동시에 한 생명급으로 계승하는 부활의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성경 마태 복음 27장 51절부터 52절까지를 보면 성전 휘장이 위上로부터 아래下로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地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인의 몸身이 많이 일어나多起되 하는 구절이 있는바다. 위의 구절을 보면 그 당시에 예수 부활과 성인부활의 시작을 말함이다. 그러면 이 성인이 무덤墓에서 많이 일어났多起다 하는데 예수와 같이 부활하였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럼 무엇을 말하는 바냐하면 구약적 완성자는 즉 영체부분부터 생명부분으로 계승하여 성사하는 한 부활시작을 말함이다. 이 길의 시작이 구약영인들에는 큰 영광이었던 바다. 이것을 볼 때에 한 영인체가 역사를 두고 이와 같이 부활단계를 가진 역사적 시일의 하늘간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고대라 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부활장성으로 하늘사랑 이상가정까지가 목적이 전천주는 지상재림과 동시에 지상천국의 건설을 목표하고 바라고 있다. 하늘 사람도 지금 우리 재림주 대하는 자를 무한히 바라고 있다. 하늘에 가서 좋은 것 같이 생각하면 큰 오해다.
하늘에서 미완성 부분을 대신 청하기가 곤란難하다. 하늘에 생령을 받을 길은 재림주를 시봉함으로 잡았으나 땅에서 하여야 할 부분으로 되어있는 것이 근본창조하심이 목적었든 것이니 하늘 영인들도 사람도 땅 성도와 협조하여 대신 미성사부분을 충당하여 받은 양으로
완성된다. 그런고로 땅 성도는 자기 분과 동시에 하늘한 자체면 자체가정이면 가정을 대신하여서 채우는 길을 대신하여야 하는 목적였음으로 전 하늘 성도는 우리 땅에서 재림주를 시봉하는 성도들과 합하려고 여러 모양으로 하늘의 사실을 표시적으로 교시함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세계 시기란 이 목적이 완성하려니 이와 같이 땅을 중심하고 충당 완성하려 하는 시기를 말함이다. 이 시기에 전목적은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생령 번식 세계를 온 천주에 전할바 전도사명이다. 그런고로 예수도 말씀하시기를 마태 복음 18장 18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무엇이든지 너희들이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심이었다. 이와 같이 말씀하심의 근본목적은 뜻의 완성지는 땅이라는 것을 중심하고 말한바를 현신앙자는 알아야한다.
그런고로 땅에서 중심 자체인 예수를 모신자는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부러워하든 바며 또 재림주 자체를 모侍시는 자들은 예수를 모시든 영인들이 부러워하며 자기들이 땅에서 미성사하였든 부분을 위임하면서 완성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고로 신약시대에 예수를 모시던 자들은 구약시대의 완전한 영인들보다 높은 위에 거하는 바는 사실이며 또 성약시대에 재림주를 모侍시는 자는 신약시대에 예수를 모侍시든 자들보담 높은 위에 거하는 바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약시대에 재림주를 시봉하는 자들로 인하여 자기들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을 끝맺어 완성함으로 인함이다.
  그러니 땅에 있는 직접 재림주를 시봉하는 성도들의 영광이야 무엇으로 보답을 하랴! 이러한 원리가 있기에  성경 히브리서 11장 39절에서 40절까지에 이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찬함을 얻었으나 허락하신 것을 얻지 못하였으니, 대개 하나님이 우리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은즉 만일 우리들이 아니면 너희들로 하여금 완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심이니라 하시었다. 이것은 종말에 있는 자가 먼저가 되고 먼저 있는 자가 나중이 된다고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바도 이와같은 원리적 근거를 두고 말함이었다.
이와 같이 먼저 될 자가 먼저 못되고 나중으로 된다 하는 것은 타락함으로 역사적 거리를 두고 삼단계 분담으로 성사하려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와 성약시대로 뜻의 성숙을 보는 바로 기인된다. 이와같은 섭리의 노정은 지루하고도 무서운 고난시기로 전개된 것을 우리 인간은 생각하였는가 하면 지금까지 미지의 사실이었다. 그런고로 재림시 육신부활을 바라는 자는 지난날昔日의 바리새교인과 서기관적 존재와 같은 자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상과 같은 부활원리 근본의의를 알고 뜻을 받들지 못하는 자라면 그 얼마나 하늘이 슬퍼할 자일까. 이와 같이 숨었든 오묘를 밝히는 근본목적은 뜻 성사를 가속하게 함에서다.


제6 장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재림과의 근본의의
==== (3) <ruby>제삼<rt>第三</rt></ruby> <ruby>전<rt>全</rt></ruby>사람한테 <ruby>순종굴복<rt>順從屈伏</rt></ruby> ====


하늘에 천사나 땅에 사람이나 전부는 타락으로 인하여 자기들의 전부 잃어버렸든바다. 그런데 근본 타락케한 존재가 누구였나하면 천사장이라는 존재가 기본문제의 근본 자체였다. 타락으로 인한 세계가 되고보니 땅이나 하늘이나 전부가 어두움에 잠기게 되었다.
<ruby>이상<rt>以上</rt></ruby>의 <ruby>목적<rt>目的</rt></ruby>을 <ruby>완성<rt>完成</rt></ruby>하여 나중에는 사탄의 <ruby>소유<rt>所有</rt></ruby>가 사람도 없게하여 사탄까지 <ruby>종국<rt>終局</rt></ruby> <ruby>자연굴복<rt>自然屈伏</rt></ruby>으로 하여야 <ruby>원리<rt>原理</rt></ruby>로 되는 바다. 그런고로 사탄은 이 뜻을 <ruby>반<rt>反</rt></ruby>하여 <ruby>역사<rt>役事</rt></ruby>하는 것이 <ruby>즉<rt>卽</rt></ruby> 아담부터 <ruby>구약시대<rt>舊約時代</rt></ruby>로
이리하여 하나님의 근본 최고 이상은 파괴를 보고나서이니 원수를 대하여 다시금 빼앗아서 찾고자 하는 비공리 부분 일을 시작케 되었다. 그런고로 천사세계에서는 하루바삐 하나님의 근본 시대가 오기를 일일 천추로 고대하여 온바이었다. 이 전부의 책임은 천사장 누시엘이 실패케 하였으니 다시금 천사장들은 이 목적 복귀를 자기들이 대신이라도 하여야 할 간접적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런고로 지금까지 천사들과 천사장들은 역사를 통하여 기본복귀로서 많은 노력을 계속하여 왔던 바인데 목적 성사는 두말할 것 없이 재림이 지상에 시작하여만이 자기들이 전책임도 완성하는 동시에 지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 도와주는 근본출발점을 보게 되니 천사장은 물론 재림과 함께 와서 지상에 하나님의 근본 뜻을 협조하는 근본생활체계에 제일보를 보아 재림주 앞에 하나님 뜻 성사에 많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나팔喇叭로 소리音을 발하여서 준비적 협조를 시작하는 바를 완성하니 천사장 강림이 되어 주 뜻을 대신 고하여 대중 대하여 선포적 존재가 있는 것을 표시함이다.
나팔이란 뜻 본 실체의 목적을 대신표시하여서 알리는 사명이 나팔이니 이와 같이 지상에는 재림주의 뜻의 한 기대준비가 지상에 있어서 합하여 뜻 성사하는 근본목적이 있는바이다.
그리하여만 천사세계도 최후 목적을 달성 보아 같은 기쁜 이상 시작을 볼 것으로 되어 있기에 천사와 천사장 책임적 분담도 있는 바이다. 특별한 존재도 그의 뜻의 사명을 천사장적 사명 담당자가 지상에 빨리 많아지는 것이 기뻐할 바다. 이와 같이 천사등도 하늘 완성으로 발달하여 나오는 것이 자기들이 기본해방의 시작이니 그 얼마나 기뻐할 바일까.


제7 장  심판에 대한 근본의의
<ruby>구약시대<rt>舊約時代</rt></ruby>로부터 <ruby>신약시대<rt>新約時代</rt></ruby> <ruby>신약시대<rt>新約時代</rt></ruby>로부터 <ruby>재림시대<rt>再臨時代</rt></ruby>까지로 <ruby>전개<rt>展開</rt></ruby>를 보게 되는 <ruby>노정<rt>路程</rt></ruby>으로 하나님의 <ruby>섭리<rt>攝理</rt></ruby>의 <ruby>역사<rt>役事</rt></ruby>는 <ruby>역사<rt>歷史</rt></ruby>를 통<ruby>하<rt>下</rt></ruby>여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람을 <ruby>대<rt>對</rt></ruby>하여 사랑하여 나오신 바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ruby>적<rt>的</rt></ruby> <ruby>책임분담역사<rt>責任分擔歷史</rt></ruby>가 <ruby>구약역사<rt>舊約歷史</rt></ruby>고 아담, 해와 (예수, <ruby>성신<rt>聖神</rt></ruby>)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 <ruby>책임분담역사<rt>責任分擔歷史</rt></ruby>가 <ruby>신약역사<rt>新約歷史</rt></ruby>다. 그래야만 <ruby>본<rt>本</rt></ruby> <ruby>타락전<rt>墮落前</rt></ruby> <ruby>기본점<rt>基本點</rt></ruby>을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이 <ruby>재림성사시대<rt>再臨成事時代</rt></ruby> <ruby>즉<rt>卽</rt></ruby> <ruby>성약시대<rt>成約時代</rt></ruby>면서 <ruby>이상시대<rt>理想時代</rt></ruby>가 이런 <ruby>노정<rt>路程</rt></ruby>으로 <ruby>복귀<rt>復歸</rt></ruby> <ruby>시작<rt>始作</rt></ruby>이 하나님이 뜻하고 사람 <ruby>대<rt>對</rt></ruby>하여 사랑하는 <ruby>중심의의<rt>中心意義</rt></ruby>다. 그런고로 사탄과 하나님은 사람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하나님 뜻 <ruby>성사<rt>成事</rt></ruby>로서, 사탄은 뜻 <ruby>파괴<rt>破壞</rt></ruby>가 <ruby>역사상<rt>歷史上</rt></ruby>의 <ruby>전쟁<rt>戰爭</rt></ruby>으로 <ruby>전개<rt>展開</rt></ruby>되어진 것이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인류역사와 하나님이 섭리하신 바의 노정과는 동일한 기점상을 이탈할 수 없는 양으로 전개하여 온 바는 벌써 논한 바다. 그런고로 역사를 두고 하나님과 인생과의 관계가 지금까지 계속하는 한 목적 도중에서 있기에 여전히
=== <ruby>제<rt>第</rt></ruby> 2 <ruby>장<rt>章</rt></ruby> <ruby>제<rt>第</rt></ruby>1<ruby>차<rt>次</rt></ruby> 하나님<ruby>적<rt>的</rt></ruby> <ruby>책임분담<rt>責任分擔</rt></ruby> <ruby>섭리기간<rt>攝理期間</rt></ruby>은 노아부터 예수까지 ===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역사노정 부인할 수 없다.  그런고로 역사를 두고 하나님이 미워하게 되는 근본목적은 다름 아니고 사람 대한 한 비원리적 존재가 생기므로 그에 대한 방비적 대치진을 취하기 위하여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은 여사한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부터 인간 앞에 심판이라는 가공할 형벌은 왜 생겼生起나 하면 그는 두말 할 것 없이 사탄이란 비원리존재가 있어 원리적존재인 우리 인류를 침해하는 고로 그其 결과에 대한 한 원리적 대상이 즉 하나님이 인간 대한 심판이다.
이 심판의 결과가 역사상에 보여지는 한 전쟁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니 이 심판이 요구하는 기본 주인공격으로 되는 바는 사탄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여야 할 존재가 뜻 외의 존재에 속하게 될 때에 심판의 시작을 본바를 우리는 역사적 사실들을 보아서 부인할 수 없다. 제일심판은 “노아 홍수심판”이다. 이 심판한바는 사람의 전부가 하나님께 속한 자체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 원수 상대하여서 하늘 대한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니 그는 원리만인 주인세계니 그 자체에게는 영육합하여서 하나님이 취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시대 사람들을 전부 다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기본존재를 요구하심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를 택하여서 그 식구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시금 복귀의 한 기초를 잡고자 하심이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그 시대적으로 본다면 하나님 앞에는 노아 식구가 전세계 인류와 비례되는 가치격 이상으로 보았으며 동시에 한 목적의 기점의 존재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인류를 전부 전멸하는 중 노아 여덟 식구만이 시대적 하늘의 요구인 소망의 존재였다.
이 기본 식구로 인하여 하나님은 사탄을 본격적으로 추방하고자 하였으니 그 뜻 성사를 보지 못한 바이었다. 그런고로 기본 목적 달성하여야 할 제일보에 다시금 사탄의 유인을 보게 되었다. 노아 심판은 전부의 근본목적은 사탄 대한 소유존재 전무케 하기 위하여서가 심판의 요구하든 근본목적되는 상대였다. 그랬든 그 근본자체 사탄이 다시금 침입할 수 있는 한 노정시작이 있었기에 우리 인류사회에 있어서는 한 심판되는 한 섭리부분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 원인은 아직까지 사탄이 인간세계에 침입하고 있으니 언제나 이 존재가 남아있다는 곳에는 반드시 심판의 한 대상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탄과 합하는 사람과 하나님과 합하는 사람과가 역사를 통하여서 분립을 보게 되니 언제나 비원리 존재세계가 원리적 존재세계의 뜻에 극배치에 설적마다 한 심판이 시작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립을 보는 세계가 되었으니 세상에 되어지는 심판은 노아 이후에는 사람을 중심하고 심판하게끔 섭리하여왔다. 즉 하나님의 한 택한 사람 혹은 씨족,
민족, 국가를 세워서 심판의 뜻을 계승하여온바는 역사를 보아서 잘아는 바이었다. 그런고로 제일심판의 주권자는 하나님이다. 이 심판을 추진시켜 성사케 하는 바는 사람을 세워서 그 목적을 성사하여 섭리하시는 바다. 그것은 사탄을 사람한테서 멀리 하기 위한 목적이며 사람과 합할 수 없는 공작을 세우기 위하여서 반드시 심판 뜻 목적성사는 사람이 완성할 수 있는 그 노정으로 나온바다. 그것은 또 사람이란 존재는 최종국에 가서는 사탄까지 주관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하나님 그 권한을 완성할 수 있는 자격을 세우기 위하여서 그 심판 목적을 달성하여온 바이다.
그런고로 세상에서 사탄이 좋아하는 목적에서 처하는 자는 기필코 어느 시기나 한 심판시기가 있는 바다.
하나님의 직접하는 심판의 벌을 받는 자도 있고 또 사람으로 인하여서 그 벌을 받는것도 있는바다. 병으로 인한 자도 있다. 사람이 사탄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님 편으로 옮겨오면 올수록 사람에 대하여서는 하나님은 그其 창조이상적 권한까지 주려고 하니 시기를 두어서라도 사람으로 인하여 사탄을 전부 굴복하게 하고자 하는 바가 목적의 요구로 되는 바다. 그래서 노아 심판은 하나님이 사탄 대하여서 청산하고자하는 심판이었으나 그 목적 미달성하고 기대만 잡고 사탄 대하여서 싸울 수 있는 씨족 선택과 동시에 하나님의 이상 기대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직접지도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있어서는 그 중에 사탄에게 속하는 자만이 생기면 용서없이 한 심판대상으로 취급 하였다. 그것은 여러 가지 양식으로 하였다. 직접하지 않으면 병으로 그 외에 간접적 사람으로써 취하여서 왔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탄 편에 속하면 물론 심판은 면할 수 없었거니와 그 반면 이스라엘 백성 대하여서 대립으로 나오는 사탄에 대하여서도 방비적 심판으로 태세를 취하여왔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하고 자기의 보호권내로 정하고 이 권내에 침범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단호한 처벌로서 대하여왔다. 즉 심판 대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세계상에 심판이면 전부가 하나님 편에 속하는 그 시기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심판이란 목적이 없겠는데 아직까지 역사노정에는 사탄의 행동이 계속하여 나오니 아직까지 심판은 제외되지 않음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심판이란 명사의 최고목적은 사탄을 전부 굴복케 하는 시에는 우리 세계 상에서 필요치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이런 의의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것을 사람한테 전하여왔다. 그러니 심판시기는 큰 무서운 시기인 동시에 큰 기쁨의 한 경계 분기령이라 할 수 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바라는 바는 전세계가 하나님의 품에 돌아와 합하


여야 할 것인데 사탄이 남아 있기에 여전 목적 미달성이니 우리 앞에도 한 심판이란 비원리 시대에 남아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근본심판을 완성하여 뜻 성사하는 그 시기를 바라왔든 바는 사실이다.
==== <ruby>제<rt>第</rt></ruby>1 <ruby>절<rt>節</rt></ruby>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ruby>섭리노정<rt>攝理路程</rt></ruby>의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 ====
  이 목적은 어느 시기에부터 시작하나 하면 예수와서부터 시작할 것이니 이 예수 한 존재가 이 전부의 심판을 좌우하는 한 중심존재였다. 이 존재가 확립되어야만이 하나님은 완성심판성사한 목적으로 되는 바니 이 예수 한 존재는 그 시대에 있어서 한 전역사를 좌우하는 한 기본존재였다. 즉 예수 와서 사탄을 전복시키는 목적이 시작하겠으니 하나님은 이 시기를 미리부터 선지자를 통하여서 전하여 왔다. 그런고로 세계전부를 좌우하는 주인공이었다. 심판의 근본목적은 악한 사탄을 치는 것인 동시에 사탄 편 아닌 자 향하여서는 근본 해방시기다. 그런고로 사탄 편쪽 자도 크고 두려움의 날日이요 하늘 편쪽 자에게도 크고 기쁨의 날인바는 틀림없다. 심판 받는 자도 사망이요 받지 않는 자는 생명즉 영생이니 예수 한 존재로 인하여 이 근본 분기점이 완성하겠으니 사람 앞에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의 날이었다. 그런고로 예수에 속하면 생명이고 그 외 사람은 사탄이란 두갈래 길이 지어지게 하는 중심 존재가 예수였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 앞에도 예수 한 존재는 크고 두려운 존재였다. 전부가 예수 앞으로 합하여 나아가던가 가지 않던가 하는 바는 사람들 앞에 허락되어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까지도 죽는 길의 시작도 예수로 인하여 시작하니 크고 두려운 날이었다. 예수를 믿지 못하고 순종치 못하고 모侍시지 못하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전부가 하나님과 상관 없는 존재입장으로 나아가니 과연 두려움의 한 기점인 존재가 예수니 과연 역사를 통하여 예수가 오는 날을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구약에 많이 말한 바다. 옛적에 올때도 말라기서 보면 즉 만유 여호와 왈 그其 날日이 이르至리니 형세는 열한 풀무와 같如고 무릇 교만한 자와 행악한 자는 초개와 같如아 그其이르른至 날日에 진소하여 뿌리根와 가지枝를 남기餘지 아니하되 오직 내이름我名을 경외敬畏하는 너희에게는 반드시必 의로운 날日이 승하여 치료하는 기운이 광선하에 있으有리니 너희가 내달리出躍기를 굴레勒를 벗脫은 송아지 같이 하리라 하시었다. 이와같은 말씀을 보면 예수 자신은 기쁨의 존재인 동시에 한 심판의 존재였다.
이와같은 말씀은 무엇을 말씀인가 하면 예수 자신으로 인하야 이와 같이 될 것을 교시한바인데 예수 자신이 세상에 오실때에 그와 같이 되었냐하면 그렇게 됨이 아니고 그 내용 뜻은 사탄 대한 절대적 승리로서 사탄이 근절됨이 불에 탐과 같이 하는 것이라는 그 뜻이 있는 바이다.
예수는 악(사탄)을 태워 없애燒無게 하기 위한 존재니 예수 앞에 있지 않으면 그 불사르燒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니 과연 두려운
날이라는 것을 교시한바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 대한 적극적 반대 입장으로 예수를 협조하여서 심판적 입장을 취하여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에로 나아가니 즉 예수까지 대하는 반역자 행동이니 이 얼마나 두려운 행동이었으랴. 그리하여서 사탄에게 적극적인 심판을 하지 못하고 다시금 목적 달성을 역사를 두고 시작하여왔다. 그리하여 재림 때時에 완전히 이 목적을 달성할 것을 예고 하심이다. 그리하면 이 심판 근본목적은 사탄 전멸이 전목적이다.
그런고로 심판은 모든 세계만물에 대한 것보다도 사탄 대하여서가 근본문제로 되어 있는바이다. 그런고로 예수가 직접성사할 부분을 남긴 것은 세계상에 하나님 품 외에 처하는 존재가 남기지 않는 그 때時가 즉卽 심판목적을 완성하니 이 완성시가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전권을 갖고 사탄 대하여 심판하여서 사람을 전부 하나님 편 쪽으로 주관 당하게 하는 그 시대가 즉 심판시대다. 전세계적으로 두 분립이 되어 투쟁시기가 되면 벌써 심판목적달성 시대를 예증하는 바이다. 그리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은 지상에서 사람들을 통한 국가, 국가 합하여 하늘쪽 반대 국가 대하는 시기가오면 그 시대도 뜻 성사의 기대시기라는 바를 알아야 한다.
사람으로 인한 국가가 사탄으로 한 국가와 대립하여 승리하면 재림이상은 벌써 시작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지상에서 이와 같이 대립 두二 체계국가조류로써 하나의 승리가 되면 벌써 재림주가 와서 이상성사의 터는 완성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 주의가 되는 동시에 재림주는 시작을 볼 것이다.
그전에 벌써 와있다는 것를 알아야 한다. 그 근본이상 시작은 재림주를 통하여서 우주는 완성이상의 제일보를 옮기게 된다. 그리하여 사탄은 우주 어느 곳에서나 자기의 있을 곳을 주지 못하고 공중 어두운 한 곳을 잡게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탄은 하나님한테 굴복하였으나 예수한테 승리하고자 하였으나 그도 실패로 돌아가고 다음에는 사람한테도 패하게 되는 동시에 재림주가 나타나니 사탄이 처할 곳은 지구상 어느 부분이라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최고목적이 이것이다.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이 합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합하고 또 만물과도 합하고나니 그 목적으로 싸우던 그 근본 전부를 소유치 못하여 하나님이 섭리하던 노정에 미련을 두지 못하고 나중에는 사탄까지 굴복하여서 본원리로서 그基귀환하여야 할 때가 재림과 동시에 시작됨을 원리로 보아도 알 것이다.
그런고로 지금 현교인들이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중심목적을 알지 못함으로 지금까지 자기들이 취할 방향을 잡지 못하는 바다. 이 근본 뜻을 알고 전세계는 합하여 뜻 성사의 목적으로 필연적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 뜻 목적에 서지 못하는
자는 세상에서 그 고통의 생활을 피할수 없는 시기가 반다시 온다. 선의 전승시대며 악의 굴복시대니 전세계는 악의 한 모양이라도 없는 이상세계건설을 재림주를 중심하고 전개할 것이다.


4 편 섭리로 본 역사적 변증
<ruby>심판<rt>審判</rt></ruby>을 <ruby>통<rt>通</rt></ruby>하여서 노아의 8<ruby>식구<rt>食口</rt></ruby>는 <ruby><rt>第</rt></ruby>2<ruby>차<rt>次</rt></ruby>로도 <ruby>번식<rt>繁殖</rt></ruby>하여지는 <ruby>동시<rt>同時</rt></ruby>에 하나님의 뜻 <ruby>섭리완성<rt>攝理完成</rt></ruby>으로 <ruby>시작<rt>始作</rt></ruby>과 <ruby>동시<rt>同時</rt></ruby>에 <ruby>결과<rt>結果</rt></ruby>로 나아가야 할 <ruby>사명적<rt>使命的</rt></ruby> <ruby>책임<rt>責任</rt></ruby>의 <ruby>분담<rt>分擔</rt></ruby>은 <ruby>즉<rt>卽</rt></ruby> 하나님의 뜻을 믿고 <ruby>순종<rt>順從</rt></ruby>하는 것이 노아 <ruby>후손<rt>後孫</rt></ruby>에 맡겨진 <ruby>중대과업<rt>重大課業</rt></ruby>이었다. 그런데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를 <ruby>심판<rt>審判</rt></ruby>하고나니 사탄은 <ruby>자기<rt>自己</rt></ruby>를 <ruby>숭배<rt>崇拜</rt></ruby>하며 섬기는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를 잃고나니 사탄은 뜻 붙일 곳 없이 되었다.


제1 인류역사 발전과 하나님의 섭리로 본 변증
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떨어질 수 없는 <ruby>관계적<rt>關係的</rt></ruby> <ruby>인연<rt>因緣</rt></ruby>이 있는 <ruby>이상<rt>理想</rt></ruby> 하나님 뜻 <ruby>외<rt>外</rt></ruby>에 <ruby>부분<rt>部分</rt></ruby> <ruby>존재<rt>存在</rt></ruby>가 있으면 <ruby>자기<rt>自己</rt></ruby>의 <ruby>소유<rt>所有</rt></ruby>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다시금 하나님 한테 <ruby>자유<rt>自由</rt></ruby> <ruby>굴복<rt>屈伏</rt></ruby>치 않고 노아의 8<ruby>식구<rt>食口</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하여 <ruby>미련적<rt>未練的</rt></ruby> 립<ruby><rt>章</rt></ruby>으로 <ruby>자기<rt>自己</rt></ruby>의 뜻 <ruby>소유<rt>所有</rt></ruby>가 될 수 있는 <ruby>존재<rt>存在</rt></ruby>가 있는가 또는 <ruby>자기<rt>自己</rt></ruby>가 <ruby>취<rt>取</rt></ruby>할 수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나 없는지가 사탄에게 있어서는 <ruby>요구<rt>要求</rt></ruby>하는 <ruby>중대<rt>重大</rt></ruby> <ruby>주목점<rt>注目點</rt></ruby>이다. 이 어마 어마한 <ruby>입장<rt>立場</rt></ruby>에선 <ruby>자<rt>者</rt></ruby>들이 <ruby>즉<rt>卽</rt></ruby> 노아 8<ruby>식구<rt>食口</rt></ruby>였다. 이 <ruby>식구<rt>食口</rt></ruby>들은 하나님과 사탄사이에 있어 <ruby>자기<rt>自己</rt></ruby>들의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책임<rt>責任</rt></ruby>을 <ruby>감당<rt>勘當</rt></ruby>하는 <ruby>방향<rt>方向</rt></ruby>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인류역사는 전부가 사람끼리 합하여서 발전하여 왔다는 것은 아니고 신을 대한 사람들이 관계로써만 역사발전은 시작하여 한 목적을 완성표준하고 나온 바는 잘 알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탄이란 대상진하에서 인류역사는 승패의 한 노정으로 최후승리는 착한善자로 하여 반복하여 왔다.  하나님께 속하여야 할 인간이 사탄을 따라 합하면 그것은 어떠한 발달된 세계라 할지라도 그 말로의 한 관문에 봉착하였다는 바도 잘 알 줄 안다.  사람 중심하고 하나님 편으로 향하여 합하여서 악에 대한 더럽힘이 탕감되면 하나님은 다시금 섭리하여서 뜻을 세우시곤 하신 바다. 왜냐 하면 사탄에게 속하였던 그 자체에 흔적 없는 터를 잡고야 만이 시작하여야 다시금 사탄의 침입을 방지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바이므로 하나님은 불순, 불신, 불시종의 백성을 대하여서 그 한계를 두고는 반드시 그 악을 청산하는 것으로 되니 인류역사는 계속하여 승패하는 전쟁역사의 반복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인류역사는 전쟁역사라는 것으로 장식되는 바는 선과 악이 대립되어 있기에 전쟁역사 전개를 피할 수 없었던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인류역사 전부는 하나님의 섭리 중심으로 되는 기독교역사와 부합하여서 한 목적으로 종국을 완성하는 양으로 발달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결론도 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는 이상 우주역사 즉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지배하에서 움직여 나오지 않으면 아니 될 원리로 되어있다. 하나님의 뜻 성사에 표시적 증거로서 역사발전은 하여 왔던 바도 사실이다. 사람이 없으면 역사도 없을 것이고 역사가 없으면 그 역사의 본 노정의 방향에 대한 관찰을 수 없는 바이다.  세계역사는 전부가 선악신의 싸움의 한 표시적 원리가 즉  인류역사다. 그런데 언제나 세상에는 악이 먼저 시작하였으니 악의 세상에는 먼저 하나님의 근본 창조원리 법리상으로 계속 발전하여 왔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이 악을 패할 한 대상진을 취한 것이 인류역사시작이다. 그런고로 이와 같이 악이란 비원리 존재인 한 형체를 가진 악의 주권역사와 대 하나님의 복귀섭리하는 주권회복역사와 서로 대립을 보아왔다. 사람이 하나님 편으로 되면 악주권은 패하고 신주권으로 반복하여서 인류세계에 악을 제외하고 선이 승리하는 양으로 발전하여 왔다. 그런고로 역사과정은
<ruby>즉<rt>卽</rt></ruby> 하나님<ruby>편<rt>便</rt></ruby>으로 가려면 사탄이 따르고 사탄이 따르면 하나님이 <ruby>멸<rt>滅</rt></ruby>하는 이런 <ruby>입장<rt>立場</rt></ruby>에 서 있다는 바를 그때 <ruby>원리적<rt>原理的</rt></ruby>으로 안다면 모르지만 이 <ruby>원리<rt>原理</rt></ruby>를 알지 못하는 8<ruby>식구<rt>食口</rt></ruby>는 그저 하나님에 <ruby>대<rt>對</rt></ruby><ruby>적극성<rt>積極性</rt></ruby>을 <ruby>체득<rt>體得</rt></ruby>하여야 <ruby>존재<rt>存在</rt></ruby>들이었는데 그런 <ruby>방향<rt>方向</rt></ruby>으로는 <ruby>여하<rt>如何</rt></ruby><ruby>결과<rt>結果</rt></ruby>를 가져오는가는 <ruby>인간<rt>人間</rt></ruby>에게 <ruby>특유성<rt>特有性</rt></ruby> <ruby>자유행동결과<rt>自由行動結果</rt></ruby>가 <ruby>좌우<rt>左右</rt></ruby>하는 <ruby>문제<rt>問題</rt></ruby>였다. 노아 <ruby>식구<rt>食口</rt></ruby>는 <ruby>전<rt>全</rt></ruby>하늘의 <ruby>기대<rt>期待</rt></ruby>인 <ruby>소망존재<rt>所望存在</rt></ruby>요 또 사탄이 빼앗고자 하는 <ruby>소망<rt>所望</rt></ruby>의 <ruby>기대<rt>期待</rt></ruby>의 <ruby>존재<rt>存在</rt></ruby>였다. 그런 <ruby>입장<rt>立場</rt></ruby>에 있는 <ruby>존재<rt>存在</rt></ruby>들 <ruby>즉<rt>卽</rt></ruby> 하나님 보시기에 <ruby>의<rt>義</rt></ruby>로 여기는 <ruby>존재<rt>存在</rt></ruby>들이다.
악청산 과정기간이라는 것이 사실로 되어있다. 악을 제거하여 선의 시작의 터를 넓혀서 온 바가 즉 인류역사이다. 그런고로 나중乃終에는 善만이 남는 주권세계를 조성하여서 하나님의 뜻 성사하고자 하는 바가 근본이니 역사의 흐름은 필요적으로 대립된 전쟁의 한 승패의 역사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세상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 중심하고 나온 세계라면 전쟁이란 필요없을不要인 것이었는데 사람의 타락으로 인하여서 이와 같은 종말론적 역사발전이란 서러움의 한 장면이다.
만약 하나님 편권에 속하여 온 중에서 역사발달이 되어 왔다면 한 국가면 국가가 패하는 것이란 명사는 관계없는 바이었는데 악에 처한 그 발달된 문명사회나 국가라도 여지없이 한 말기를 피할 수 없게 한 전복의 말로를 밟게 한바는 종국으로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여 자각할수 있게 섭리하심을 밝히는 바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류선조들은 하나님의 근본뜻을 알지 못하고 나왔다. 또 인간이 근본에 대한 원리를 알지 못하고 나왔음으로 하나님 대한 반역의 시작과 동시에 한 심판에 처하여 왔다. 이 모든 역사를 볼 적에 우리는 하늘 대하여서 말할수 없는 죄송한 심정을 갖고 탐지하여온 역사가가 몇 명이나 되는가! 과연 하나님의 심정에 대한 슬픔의 역사의 한 표시가 과거역사중 문명의 발자취지적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뜻하고 섭리함은 사람들 중에 대하여서 반대섭리하여왔다. 하나님이 건설하려면 악은 파하는 공작하고 사탄이 건설한다면 하나님은 파하는 공작 이와 같이 서로 뜻 세우고자 하는데는 반대공작이니 세계역사는 시작하였다가 끝나綜고 끝났綜다가 시작하고 이와 같이 하여 긴 역사를 거듭 반복하여왔다. 이 사실로 되니 인류사회에도 선인나면 악인나서 파하고 악인나면 선인나서 승하여 또 시작하였으나 또 다시금 뜻을 받들지 못하여서 또 패하는 양으로 나오는 역사의 왜곡이야 과연 쓸쓸한 슬픔의 발로라 할 수 있는 역사노정이었다. 개인으로 사회로 국가로서 나아가 전부가 이와같은 한 공식과 같은 원리를 표시하여서 발전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세계역사는 한 하나님만이 전세계가 점유되는 때時는 전쟁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종국을 완성할바다.
이 전쟁의 역사 없는 시대 전세계적으로 완성할 시대가 오면 하나님의 뜻 성사의 시작한 기초완성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흐름은 무전쟁 평화이상 시기가 목적의 종국이면서 한 형제로서 전세계가 하나되는 시대가


이와같은 <ruby>인간가치<rt>人間價値</rt></ruby>를 알고 보니 이 사람이 그다지도 하나님을 받들지 못하였는가 하는 <ruby>탄식<rt>歎息</rt></ruby>이


즉 그其 시대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끝까지 놓지않고 목적 향하여 섭리하여 오는 바다. 사탄은 이에 반대하여온 바다. 사탄이 먼저 역사를 시작하였으니 세상에는 참 것 오기 전에 거짓것이 먼저온다. 거짓것이 참이라고 먼저 서두르는 바를 알아야 한다. 못한 자가 먼저 발뺌하는 것은 타락본성받은 인간임을 표증하는 사실이다. 세상진리도 악한 것이 착한善양으로 먼저 시작과 표시하여 그 진리본체를 대상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ruby>자연<rt>自然</rt></ruby> 나올 것이었다. <ruby>지금<rt>至今</rt></ruby> 우리는 <ruby>원리<rt>原理</rt></ruby>로 보아 <ruby>긴장<rt>緊張</rt></ruby><ruby>입장<rt>立場</rt></ruby>들인 줄을 알 수 있는 <ruby>복<rt>福</rt></ruby>된 <ruby>시기<rt>時期</rt></ruby>를 만나니 <ruby>무한<rt>無限</rt></ruby><ruby>행복<rt>幸福</rt></ruby>스러운 것이었으나 <ruby>시대<rt>時代</rt></ruby>에는 <ruby>근본문제<rt>根本問題</rt></ruby>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수수께기의 <ruby>문제<rt>問題</rt></ruby>였기에 그다지도 <ruby>자기<rt>自己</rt></ruby>들 <ruby>존재가치<rt>存在價値</rt></ruby>와 하나님에 <ruby>대<rt>對</rt></ruby>함과 사탄 <ruby>대<rt>對</rt></ruby>함에 <ruby>대<rt>對</rt></ruby>하여서는 그저 <ruby>근본<rt>根本</rt></ruby>을 알지 못하고 <ruby>결과<rt>結果</rt></ruby>만 보아서 하나님과 사탄의 <ruby>관계<rt>關係</rt></ruby>가 <ruby>반대성<rt>反對性</rt></ruby>으로서 서 있다는 것만을 <ruby>역사<rt>歷史</rt></ruby>를 <ruby>통<rt>通</rt></ruby>하여 알 뿐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섭리하는 내부까지도 사탄의 한 공작이 있음에 이와같은 경향이 많아지는 바가 지금 말세시기가 가까워오는데로 많이 보여진다. 그런고로 참 것이 참 것같은 거짓것한테 희생당하는 사실을 역사를 통하여서 많이 볼 수 있다. 예수는 그 시대에 있어서는 한 비원리에 대상 취급당하였고 참 진리자들은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이었다고 그 시대는 전부가 알았기에 진리본체 예수까지 십자가로 넘겨준 바가 아니었든가. 진리는 최후승리니 역사를 보내놓고야 그 자체의 근본을 만들어서 무엇하랴.
지금 세상에서 많이 허시받는 곳에는 진리에 가까운 거리에 서 있다는 것을 이 원리로 살펴서도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역사적으로 고찰하면 이와 같은 기사의 기록이 즉 역사발전 역사로 되어 있다. 그러면 지금 세계 상에 극한 두 진영을 표준하고 발달하는 원리도 이와 같은 두 신격 존재가 있有는 섭리하에 처하여있는 인류세계는 불가피한 결실의 노선이다. 이것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으로 속하여 인류세계가 좌우하는 시기는 반드시 온다. 즉 지금 세계상 두 조류는 극반대니 하나가 되어야 한다. 유심(신)과 유물이란 대상진이 즉 그 표시되는 하나님 대 사탄 대하여 사람과 만우주를 서로 소유하고자 하는 원리로 된다. 인류역사가 존재하는 이상 그 목적은 전부가 이상을 표준하고 역사는 움직여나왔다. 그런고로 지금 인류역사상 6천년 역사의 한 결실적 표시가 지금 두 진영이다. 두 진영은 역사의 열매이다. 역사적으로 발전하는데 있어서 진리의 노정을 통하여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발달의 목적은 즉 역사목적한 진리세계가 표준이니 그 곳 향하여 나오는 바는 틀림없다. 그런고로 진리가 성립하는 한 과정단계는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로서 한 섭리적 발전사를 두고 나온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지금까지 이 두 주의 진영이 되기 위하여서 여러 주의자가 많았으나 그들 주의자는 한 시대적 소생적 역활이든가 장성의 역활이든가를 하여왔다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이와 같이 지금이 세계상에 한 조류도 없어서는 안되는 원리상에서 있는 바다. 그러니 역사적 진리의 본체는 누구인가. 그 중심 기점은 즉 하나님께 속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진리는 그 요소적으로 본다면 유일이 되는 동시에 불변이어야 되며 영원이어야 되는 바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기점으로


한 진리세계란 유일주의 세계요 불변주의 세계요 영원주의 세계가 역사적 최종국의 진리인 이상의 종점이다. 이와 같이 되는 세계가 되면 우리 인류전부는 창조 본원리세계로 돌아가는 바는 신(하나님)과 동거하는 목적세계 무궁세계에로 향하는 신에 대한 질의없는 본창조근본노정출발을 볼바가 하나님이 인류 대한 섭리의 근본뜻이다. 그런고로 세계상이 지금 두 주의니 하나되어야만이 되는 바다. 적백의 표시 적(좌)은 사탄이요 백(우)은 하나님이다. 이로 왜 백, 적(우,좌)가 아니고 적백(좌,우) 된 이유는 사탄이 먼저 시작한 바를 표시하는 역사적 근본의의가 있는 바를 알아야 한다.
<ruby>시<rt>時</rt></ruby>에 노아는 <ruby>천지<rt>天地</rt></ruby>의 <ruby>주인공격<rt>主人公格</rt></ruby>이면서 <ruby>제<rt>第</rt></ruby>2<ruby>차<rt>次</rt></ruby> <ruby>인간<rt>人間</rt></ruby>의 <ruby>조상<rt>祖上</rt></ruby>이 되는 <ruby>존재<rt>存在</rt></ruby>의 <ruby>행동<rt>行動</rt></ruby> <ruby>여하<rt>如何</rt></ruby>부터가 하나님과 사탄이 <ruby>행동<rt>行動</rt></ruby>의 <ruby>여하<rt>如何</rt></ruby>를 <ruby>시작<rt>始作</rt></ruby>하는 <ruby>기초<rt>基礎</rt></ruby>였다. 그때 노아의 8<ruby>식구<rt>食口</rt></ruby> <ruby><rt>中</rt></ruby>에 <ruby>죄<rt>罪</rt></ruby>라는 <ruby>생각<rt>生覺</rt></ruby>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ruby>존재<rt>存在</rt></ruby>들이고 하나님의 <ruby>의<rt>義</rt></ruby>만이 <ruby>시작<rt>始作</rt></ruby>되어야 할 <ruby>존재<rt>存在</rt></ruby>로써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양이나 흉내가 보여지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 없어야 할 <ruby>입장<rt>立場</rt></ruby>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노아는 <ruby>농부<rt>農夫</rt></ruby>가 되어 <ruby>포도농사<rt>葡萄農事</rt></ruby>를 하였다. <ruby>포도주<rt>葡萄酒</rt></ruby>를 먹고 취하여서 <ruby>장막<rt>帳幕</rt></ruby> <ruby>내<rt>內</rt></ruby>에 <ruby>나체<rt>裸體</rt></ruby>로 누워서 잠자고 있을 때에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父가 벌거 벗고 자는 고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ruby>자기형제<rt>自己兄弟</rt></ruby>들에게까지 가서 부끄러운 <ruby>행동<rt>行動</rt></ruby>의 <ruby>표시<rt>表示</rt></ruby>를 하니 셈과 야벳은 옷衣을 <ruby>취<rt>取</rt></ruby>하여 아버지 벗은 것도 보지 아니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ruby>나체<rt>裸體</rt></ruby>를 덮은 지라.
그런고로 적이란 사탄이 경계한 근본존재다. 그 적은 반드시 망한다. 그런고로 제3차 전쟁 유무는 근본적으로 보아 어찌되는가 하는가는 각자의 추측으로 맏긴들 명백한 사실의 한 결론점상을 누구나 이탈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3차 대전이 없다면 적이 자연굴복하여야 하는데 아직 미련이 있으니 세계 대하여 자기 야욕 충족시켜 보려고 그 거짓 본성을 여실히 발휘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3차전 이후는 국제연합적으로 하늘뜻 표준으로 움직여지게 될바다. 그런고로 그 시대가 즉 하나님 직접주관시대라. 그런고로 재림성사시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갖고 나오는 국제적 성원국가들이 가지고 나온 주의도 아닌 새로운新주의가 출현하여야 한다. 이 주의는 창세전이상의 한 주의인 동시에 다시는 전쟁없는 하늘과 땅 합하는 주의로서 출발을 하게 된다. 그 주의는 유일의 주의요 불변의 주의요 영원의 주의이다.
이 시대까지 역사상으로 발전하여온 역사적 분로의 중심섭리하신 변증적 사실을 표시하여보자. 하나님을 중심하고 세계는 좌우하여오니 그 역사는 기독교 성서상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시는 곳이나 그 목적을 협조하여야 할 종교가 즉 기독교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기독을 중심하고 그 목적달성을 지상에 예수를 보낸 후부터 시작하여 단서를 잡은바는 사실이다. 기독교와 현대세계와는 역사적으로 동일한 노선상에 속하여서 섭리하였다. 기독교는 세계역사발전상 모든 한 지향으로 되었으나 종교없는 국가는 패한바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은 우주주관주인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서 사람과 합하려고 섭리하였기에 어느 종교라도 선을 표준한 것이면 하늘 속하는 것이 원리로 되어있다. 악은 선을 표준한 곳을 절대로 주관할수 없다. 선은 어디나 하늘쪽으로 속하니 하나님은 인류세계의 종교를 통하여 목적한 바는 종국목적 소유를 바라서 종교로써 동서양 세계를 섭리하였다. 그 제일중심의 본부가 즉 기독교이다. 그런고로 최종국에도 어느 종교라도 하나님에게로 기인한다. 세계일면 종교는 물론으로서 누구나 그 생활무대상에서 이와같은 기점상을 떠나서는 살수 없을 때가 즉 이상시대다. 즉 종교통일은 인간
이 국극의 사실이 명백하여지면 다 하나로 기인된다. 기독교는 말하면 하나님의 직계정부와 같은 것이고 그 외 종교는 한 사회단체와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전부 합하여서 완성할수 있으니 여러 종교가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최종에는 어느 종교나 바라지 않는바다. 어느 종교이념에도 하나님의 요구하는 한 중심점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역사와 세계발전역사와는 반대되는 한 적과 같은 역사노정은 어느 시대라도 여실하게 명시되고 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유대 민족은 세계 역사상에 원수 대상하여 나오는 바도 원리가 있는 바이다.
또 하나님의 목적달성하려니 전부를 유대민족을 세계발전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위치에 두심과 전세계의 경제력을 갖게 함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한 터가 되겠으니 지금과 같은 현세가 성립됨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국가들은 유대민족과 합하여 뜻에 협조하여 최고이상성사치 않으면 안될 중대책임이 있는바이다. 그런고로 이상세계에는 종교와 과학과 경제가 기대위에서 움직이는 시기이다.


이것이 <ruby>성경<rt>聖經</rt></ruby>을 보면 왜 이런 <ruby>행동<rt>行動</rt></ruby>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인가하는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는 오늘 <ruby>미해결<rt>未解決</rt></ruby> <ruby>문제<rt>問題</rt></ruby>이나 그 <ruby>근본원리<rt>根本原理</rt></ruby>로 볼 적에 그 <ruby>사실<rt>事實</rt></ruby>은 <ruby>명백<rt>明白</rt></ruby>하여지는 바이다. 이 <ruby>행동<rt>行動</rt></ruby>은 무엇을 <ruby>상징<rt>象徵</rt></ruby>하여주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ruby>지극<rt>至極</rt></ruby>한 미움의 <ruby>행동<rt>行動</rt></ruby>이며 사탄 <ruby>대<rt>對</rt></ruby>하여는 한<ruby>편<rt>便</rt></ruby> 될 수 있는 아담, 해와의 벗음의 수치를 다시금 증거하며 <ruby>타락성<rt>墮落性</rt></ruby> <ruby>계승<rt>繼承</rt></ruby>을 <ruby>표시<rt>表示</rt></ruby>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며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ruby>자기<rt>自己</rt></ruby>의 <ruby>입장<rt>立場</rt></ruby>을 세울 수 있는 <ruby>근거<rt>根據</rt></ruby>적 <ruby>문제<rt>問題</rt></ruby>였다.


제2 장 역사발전 한계를 복귀로 본 변증
<ruby>즉<rt>卽</rt></ruby>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은 <ruby>타락<rt>墮落</rt></ruby>된 부끄러움의 <ruby>자체<rt>自體</rt></ruby>임을 아직 잊지 못하는 <ruby>존재<rt>存在</rt></ruby>의 씨라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을 <ruby>표로<rt>表露</rt></ruby>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면서 또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를 <ruby>심판<rt>審判</rt></ruby>하심도 그것의 <ruby>시작<rt>始作</rt></ruby>으로 <ruby>인<rt>因</rt></ruby>하여 <ruby>결과<rt>結果</rt></ruby>에 <ruby>도달<rt>到達</rt></ruby>하여 지는 바에서 나온 바를 <ruby>생각<rt>生覺</rt></ruby>하니 하나님은 <ruby>통분<rt>痛憤</rt></ruby>하지 않을 수 없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을 보여줌인 <ruby>동시<rt>同時</rt></ruby>에 사탄의 <ruby>성품<rt>性品</rt></ruby> <ruby>즉<rt>卽</rt></ruby> <ruby>범죄<rt>犯罪</rt></ruby>한 <ruby>직후<rt>直後</rt></ruby>에 <ruby>행동<rt>行動</rt></ruby>의 <ruby>계승<rt>繼承</rt></ruby>을 <ruby>증거<rt>證據</rt></ruby>하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니 또 <ruby>역시<rt>亦是</rt></ruby> 하나님의 뜻하는 <ruby>근본목적<rt>根本目的</rt></ruby>의 <ruby>미완성요소<rt>未完成要素</rt></ruby>가 <ruby>번식<rt>繁殖</rt></ruby>함을 알게됨이 또 다시금 사탄의 <ruby>기착점<rt>起着點</rt></ruby>을 보여주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이었다.


하나님이 뜻한 세계에 뜻 아닌 세계의 전개라는 것이 시작되었으니 하나님이 다시금 찾으셔야 할 기본원리가 시작되게 되었다. 하나님께 속한 선한 터위에 악의 시작을 보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기본 뜻에 합의하게 되어 있지 않음은 사실이다. 사탄의 침입으로 인하여 전 땅은 더럽혀서 하나님의 뜻 성사할수 없는 부정이 전체로 되어졌다. 그런고로 다시금 찾고자 할 때에 이 세계를 다시금 청산하여서 하나님의 뜻에 합의할 수 있는 처단을 취한 것이 즉 노아 심판이다. 이 심판과 동시에 하나님은 뜻의 한 시작을 보려한 바는 사실이다. 인생 제2 조상되는 노아 자식 함으로 인하여 목적성사의 한 기초를 잡지 못하고 아브라함까지 기다期待려서 시작케 하심이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보면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약2천년 역사를 갖게 되었다. 아브라함을 택함도 근본이상세계를 다시금 찾고자하여 시작의 터가 즉 아브라함 택함이다. 아브라함 택함은 역사적으로 흐린 전부를 다시금 맑혀야 책임적 사명이 부여되었든바다. 만일 아브라함이 실수하지 않고 뜻을 모시고 받들侍應게 되었으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한터를 시작하는 구약역사시작 이상에 더 이상적으로 시작하였겠는데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하여 애급 4백년이란 시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하여주어 실수의 근본대가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면 4백년이란 년수는 무엇 때문인가 하는 근본문제를 알아
그런고로 다시금 사탄은 <ruby>행동<rt>行動</rt></ruby> <ruby>개시<rt>開始</rt></ruby>를 보게 <ruby>근거<rt>根據</rt></ruby>를 삼고 나서니 <ruby>요구<rt>要求</rt></ruby>의 터를 막을 수 없이 사탄의 <ruby>번식<rt>繁殖</rt></ruby>을 <ruby>시작<rt>始作</rt></ruby>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행동을 <ruby>직접<rt>直接</rt></ruby> <ruby>개시<rt>開始</rt></ruby>하게 한 그 <ruby>존재<rt>存在</rt></ruby>가 사탄 <ruby><rt>便</rt></ruby><ruby>자<rt>者</rt></ruby>이니 함을 <ruby>대<rt>對</rt></ruby>하여
야 한다.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원인의 연대인가 하면 하나님은 사탄한데 더럽힌 터 위에다가 시작코저 함이 본의안이었다. 결국은 아브라함 택한바도 왜 아브라함이 믿음信의 조상으로 약속받게 되었는가 하면 노아 자식부터 실수하여 다시금 그 자식들에게 사탄 침입을 보게됨으로 하나님은 노아부터 섭리시작하려고 하는 바를 아브라함께 연장하신바다. 근본은 노아가 아브라함의 뜻 계승자가 되어야 할 바가 이와 같이 연장하였다.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는 그 연대수로 보면 약 4백년 연대였다. 이 연장은 노아 자식으로 인하여 불순종조상 사탄을 유인하게 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시작 보았으니 아브라함 택한 바는 이 침입 사탄 방지하고자하여 택함에 약속한 제물실수로 인하여 다시금 사탄을 실체자식까지 하나님의 섭리연대를 연장본 4백년의 한 기간까지 더럽힌 바를 청산하여야만 그 자격성사할 수 있는 한 탕감시기가 즉 4백년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은 한 탕감의 수가 차기를 고대하여 모세를 세워서 소생에 착수공작인 하나님적 책임사명시기에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애급 4백년이후 약 1600년에 예수가 온바이다. 그 1600년 기간은 아담부터 노아 시기적 년수의 기간이다.
그리하여 이 근본시대까지 이 백성들을 완성한 탕감을 역사적 시기를 두고 탕감하게 하심이었다. 그런고로 아담부터 아브라함 시기까지 약 이천년 연대로 경과 중 더럽힌 경과니 아브라함이 실수가 없었으면 이와같은 기간은 한 한계로 될 터인데 다시금 사탄 침입보니 노아 심판하지 않은바와 같은 원인으로 되었으니 4백년과 모세 이후 1600년 연대가 탕감시기로 소모되는 원통한 역사적 연장이 시작되었다. 그런고로 예수와서는 다시금 구약완성과 동시에 노아 이전까지 완전히 탕감되어 완성하여야할 역사적 탕감책임분담이란 노정에 서게되었다. 예수는 구약완성인 동시에 사탄 방비의 한 중심자체였다. 그런데 노아부터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하나님은 사탄 대한 방기시기 4백년간이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십자가로 인하여서 역사적 모든 미탕감근본 사탄 대한 한 방비의 길은 닦아 놓고 가게 되었다. 예수부터 지금 이시대까지 약 이천년 역사의 간격을 두어 나왔다.
그런데 예수께 있어서는 복귀의 한 실천노정의 본노정으로 올라가는 역사적 복귀시기를 잡고 시작하게 되었다. 예수가 모세부터 1600년간이니 이 이상 4백년간은 탕감시기였으니 그其 이상 4백년간 즉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4백년은 사탄 대한 방기시기였으니 예수의 한 노정에도 이와같은 역사적 복귀노정의 반복의 노정을 보게되는 바다.
예수 이후 6천년간은 사탄 대한 악 대한 성도들 합하여 역사적 탕감시대였으나 4백년간 시기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시기는 예수에게 있어서 한 사탄 대한 하나님의 방기시기였기에 예수 앞에도 이와같은 한 자유롭게 사탄 대한 자유권으로 취하는 기간 안內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고로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부터 약 4백년전부터는 예수의 한 자유향상으로 기인한 이념출발을 본바는 이와같은 역사복귀적 근본원인이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 중심한 국가와 세력 씨족들의 역사는 4백년 기간내에서부터 시작됨이 있는 큰 근본의의를 알아야 한다. 지금 세계에서 발달된 영, 미의 국가도 이기간내에 발달한 국가이다. 그리하여서 승리할 수 있는 한 세력기대를 조성하여 지금까지 나오는 도중에서 예수 중심한 영미를 중심한 국가들은 자유무대로 하나님이 직접지배하는 국가로 되어왔다. 그리하여서 사탄과 한 대립국가진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제와 과학과 종교 이상을 중심하고 경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발달하여오면서 하나님을 모시러 나아왔다. 이 시기는 하나님 편으로 승리의 한 터를 잡아가지고 국가대적으로 동맹국가체계를 조성하여서 영, 미는 합하여 하나님의 뜻한 표시성사할 국가의 책임국가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 중심한 국가체계가 성립과 대비하여 사탄 국가 한 대비로 서게 되었다. 그것이 제일차 진영으로 취한바가 독일이었다. 그런고로 세계대전이란 명분 밑에서 제일차 하나님의 뜻의 성사의 한 존립을 보장하는 때時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고로 하늘 대한 사탄이 역사상 먼저 하늘의 한 흉내의 전개의 양으로 태세를 취케 하여 나선 존재가 즉 카이젤(에도카르 8세)그 존재였다. 세계에 한 왕이 있어야하며 한 통치가 있어야 된다고 주권을 세워 나옴이 사실이다. 이 카이젤의 출현은 사탄의 한 대신으로 되어 세계를 자기의 수중에 넣어보겠다고 하여 주장하여 준비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을 초래하게 하였다. 이와같은 존재가 세계적으로 나오는 바는 하늘적으로 이와같은 존재가 시작하여 지상에 시작될 한 예정의 표시이다. 이 제1차대전과 함께 하나님은 전세계 대한 승리권내로 제일보를 시작한 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근본이상세계에로 전개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이와같은 하늘 세계주권자는 이 시대를 중심하고 승리하여진 터 위에다 이 우주이상 주인공의 지상탄생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의 기대를 잡게 되는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 대하여서 사탄은 제일 아담 과 제이 아담 예수를 패케 하였으니 이런


사탄 주권자를 세우심은 제일차 아담격 대신자 흉내와 같은 존재니 하나님은 제일차 아담을 사탄이가 패하게 한 것과 같은 것이 복수적 태세가 즉 에드가도 8세- 카이젤을 패케 한 원인의 존재였다. 그리고 제2차 대전까지 불과 20여년간에 다시금 독일이 발달되는 원인은 첫 아담 뿌리를 중심하고 제2차 아담 예수까지 사탄이 범하여 패하는 양으로 나갔으니 하나님은 이 복수적 대상자로서 패하게 한바가 있는바이다. 이것이 즉 히틀러와 그 외 삼국동맹국 일, 이이었다. 이와 같이 제3차대전은 상대격을 요구시켜 놓고 나왔다. 그 동맹국가내에는 일본과 같은 나라는 여성적 국가였다. 독일은 남성적 국가였다. 이탈리아伊國는 천사장국가였다. 이와 같이 되는 동시에 일본은 여신국가였든 바다. 이와 같이 신과 사람人이 합하여서 이와같은 국가형체 합하여 자기들의 이상을 전개코저 함은 이와같은 존재로 되었든 제3 아담 격 예수의 한 목적 상대국가로 되어왔었다. 이리하여 패하는 동시에 하늘의 한 근본존재되는 자체가 세계를 통일한다는 한 사실의 시작이 전재 표시국가체계였다. 그런고로 히틀러는 성경개조와 하나님 대신자라고 일본천황은 현인신이라고 그와 같은 한 표시적 상징의 사실체가 출현한바는 하늘적 재림주 실체가 이와 같은 양으로 오는 사실을 예증하여 왔다간 자들이다. 그런고로 히틀러 존재가 미분명은 예수 무덤 없는 바와같이 독신으로 있다간 것조차 알수없는不知것으로 되는 이와 같은 하늘뜻 노정에 한 탕감복수로 전개하여 왔다. 그리하여 사탄은 역사를 두고 갈 곳 없으니 끝내乃終는 소련을 위시로 한 성원국가들을 조성하여서 공산주의라는 국가체계를 갖고 나타나서 세계의 태양이란 한 국제의 주권자격으로 으르릉吽音대며 전세계를 직접 우좌하는 존재로 되는 바는 즉 사탄이 하늘의 진리존재인 재림주의 권한의 한 표시적 상징으로 나타나서 제3차적으로 전세계를 결판짓는 자의 모양의 위증자가 출현한 원리를 알아야 한다.
가나안의 <ruby>조상<rt>祖上</rt></ruby>되어 하나님의 <ruby>원수<rt>怨讐</rt></ruby>가 되리라는 것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하여 기필코 사탄은 금번 소련 스탈린을 중심하고 30여년 역사로 종국은 패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바가 한 원리로 되는 바이다. 이와 같이 하여 근30여년내에 제1차 제2차 제3차로 전세계에 대전이 시작되는 바는 30여년내에 벌써 하늘이 근본존재가 지상에 출현을 보았기에 이 시기에 하늘의 근본 뜻을 성사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출현하려니 이 한 존재중에는 사탄의 전역사를 두고 하늘 대한 역사의 전부의 완성체이면서 미성사부분의 성사체이니 이 30여년내에 제1차 아담 제2차아담 제3차 아담 격 양으로 실패한 전 청산 표시적 기간
이다. 이 30여년간이란 시대내에 세계는 사람 국가 합하여 하나님 뜻 성사하여야 할 책임성사의 터를 닦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고로 제3차 대전은 없으면 안될 역사적 조건들이 여하히 되나보라. 사탄은 거짓과 배신자 아비父며 파괴자의 아비父인 자체는 언제나 그 포악성을 표시하여 최후 발악을 하여서만이 패하는 것이다. 거짓 제3차 아담격자를 지구상에서 추방과 동시에 근본하늘 3차 아담주를 지상에 맞을 시기는 되었다.
그런고로 3차전 문제는 이때에 벌써 면양과 산양과 같이 분립하여 심판단계에 들어가 있으니 재림주는 성숙하여있는 바는 사실이다. 세계청산과 함께 그 자체의 연령은 30여 청년으로 세상에 와서 있는 바를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역사의 중심도 하늘 중심하고 사탄 대하니 3차전 문제 단서도 주 오신 나라로부터 시작한다. 그 나라를 중심하고 세계는 싸우는 나라라는 것은 하늘에서 중심하는 나라니 세상에서도 싸움 중심 나라되는 바는 악과 선의 총중심 해결 중심지니 그 국가 통하여 세계는 싸운다. 그런고로 지금보면 세계의 전주목을 받는 나라는 한국이니 한국사람 중심하고 재림주는 올바를 이와 같이 원리적 표시로도 짐작하여야 한다.
지상에서 문제국이니 신앙계도 문제국이니 그 뜻 깊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 뜻 성사의 한 시기는 오는 바는 감사한 사실이다. 그런고로 이 국가는 모든 것으로 보아도 전우주의 중심지가 될 것이 한국 역사적예언서 중 정감록 상에도 명백히 기록된 그 존재 즉 의의 왕인 존재면서 세계의 이상존재란 그 분을 약속한 예언이다. 그 분이 누구냐하면 재림주 제3차 아담 재강림이라는 것이 역사적 결론으로 합하는 한분의 섭리가 나타나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노아 시기와 겸하여 아담 시기에 한 근본복귀목적달성으로 시작을 볼바다. 이렇듯이 역사는 근본이 점으로 복귀하여 올라가는 역사가 지금의 역사다. 그런고로 이 세계상에 이와같은 주의국가체진이 생기는 것은 전부가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모양으로 되는바는 원리로된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에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역사는 한 기점을 향하여 흘러내려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도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은 양으로 전개되어 내려왔다. 그러면 도면으로써 밝히자. 원리는 타락이 없었無墮落으면 A, O, B 선간을 중심하고 평형으로 되는 동시에 1. A, O, B, 2 선간까지 연장하여 평형을 취할것이었는데 타락됨으로 A, O, B 선간이하로 인류역사향선이란 B, O´선의 시작을 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탄의 인류역사향선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1, A, A´, 1´,(A´), (1´)= 하늘 표시  2, B, 2´, B´,(2´), (B´)= 사탄 표시  O= 역사적 기점


그리하여 또 다시 하나님과 사탄은 <ruby>대립<rt>對立</rt></ruby>을 보게 되어 <ruby>자손<rt>子孫</rt></ruby>을 <ruby>번식<rt>繁殖</rt></ruby>하니 또 다시 그 <ruby>자손<rt>子孫</rt></ruby>들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으로 흘러나가게 되었고, 노아 <ruby>전<rt>前</rt></ruby>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탄의 뜻 <ruby>번식<rt>繁殖</rt></ruby>에 <ruby>협력<rt>協力</rt></ruby>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뜻 <ruby>중<rt>中</rt></ruby>에 품으려하는 <ruby>자<rt>者</rt></ruby>들을 빼앗긴 셈이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이 사탄한테 <ruby>속<rt>屬</rt></ruby>하지 않게 하기 위한 <ruby>대안<rt>對案</rt></ruby>이 <ruby>요구<rt>要求</rt></ruby>되는 바이다.


  2                                    (1´)                                1´
때 마침,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곳으로 흘러나가는 <ruby>행동<rt>行動</rt></ruby>뿐이었다. 그것은 사탄이 즐거워하는 <ruby>행동결과<rt>行動結果</rt></ruby>이니 이것을 그냥 두어 둘 수 없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ruby>언어<rt>言語</rt></ruby>하나이니, <ruby>전부<rt>全部</rt></ruby>가 <ruby>의사<rt>意思</rt></ruby>가 <ruby>통<rt>通</rt></ruby>하여 한 곳으로 <ruby>동작<rt>動作</rt></ruby>하는데, <ruby>전체적<rt>全體的</rt></ruby>으로 움직이게 되니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하늘 <ruby>편<rt>便</rt></ruby>의 뜻 <ruby>성사<rt>成事</rt></ruby>하기 위하여 도움되는 <ruby>언어<rt>言語</rt></ruby>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바벨<ruby>탑<rt>塔</rt></ruby>을 쌓아 사탄 뜻 <ruby>협력<rt>協力</rt></ruby>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의 <ruby>기인<rt>基因</rt></ruby>을 가져오니 하나님은 <ruby>언어<rt>言語</rt></ruby>를 <ruby>상반<rt>相反</rt></ruby>되게 함은 뜻을 <ruby>반<rt>反</rt></ruby>하여 <ruby>행동<rt>行動</rt></ruby> <ruby>협조물<rt>協助物</rt></ruby>이 <ruby>언어<rt>言語</rt></ruby>로써 한 <ruby>방향<rt>方向</rt></ruby>으로 <ruby>전인류<rt>全人類</rt></ruby>가 흘러들어 나갔으니 <ruby>언어<rt>言語</rt></ruby>를 <ruby>혼잡<rt>混雜</rt></ruby>케 하여서 그 사탄 뜻 돕는 길을 막고자 함이 <ruby>인간<rt>人間</rt></ruby> <ruby>언어<rt>言語</rt></ruby>를 <ruby>혼잡<rt>混雜</rt></ruby>시킨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였다. 그런고로 <ruby>만약<rt>萬若</rt></ruby> 뜻 <ruby>중<rt>中</rt></ruby>에서 <ruby>인간<rt>人間</rt></ruby>이 이런 <ruby>탑<rt>塔</rt></ruby>을 쌓았으면, 또 이 뜻 <ruby>성사<rt>成事</rt></ruby>로 나갔으면, <ruby>언어<rt>言語</rt></ruby>를 <ruby>혼잡<rt>混雜</rt></ruby>케 할 리 만무한 일이다.
아담 B                          (A´)  生靈                          A´
      1600                            生命
未          노아 아브라함  모세  나      靈形体                                                    理
    O        400    400  1600  예수    (O´)            義向線      O´                        想
成                                      다                                                        線
事                                                    사람 역사 향선
  A                                    (B´)                            B´


  1                                  (2´)                                2´
그런고로 <ruby>세상<rt>世上</rt></ruby>에 뜻 <ruby>성사시기<rt>成事時期</rt></ruby>가 오면 <ruby>언어<rt>言語</rt></ruby>는 하나의 <ruby>목적<rt>目的</rt></ruby>으로 하늘적으로 <ruby>시작<rt>始作</rt></ruby>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뜻을 <ruby>성사<rt>成事</rt></ruby> <ruby>협조<rt>協助</rt></ruby>하여서 <ruby>통일<rt>統一</rt></ruby>된 <ruby>언어<rt>言語</rt></ruby>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 <ruby>시작<rt>始作</rt></ruby>은 <ruby>중심존재<rt>中心存在</rt></ruby> <ruby>즉<rt>卽</rt></ruby> <ruby>재림주<rt>再臨主</rt></ruby>가 오면 그로부터 하나님의 <ruby>언어<rt>言語</rt></ruby>와 <ruby>창조적<rt>創造的</rt></ruby> <ruby>주관<rt>主管</rt></ruby> <ruby>허락<rt>許諾</rt></ruby>이거든 <ruby>세계주관세계<rt>世界主管世界</rt></ruby>는 근본적으로 <ruby>복귀<rt>復歸</rt></ruby>되어야 한다.


타락됨으로 사람을 중심하고 역사는 시작하는데는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고 사탄 편되는 B가 위上가되고 하늘편 A가 아래下가 되어서 시작하였다. 시작을 보았으니 하나님이 다시금 찾고자 하여 역사적 기점 O´점을 향하여 전멸하고 완전복귀하고자 하심이 섭리노정이다. A 하늘은 본위치상으로 향하는 동시에 B 존재란 O´, B´, 2´선상으로 향하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권외로 추방하고자 하시어서 섭리하신바가 인류역사다. 그런고로 역사는 기점 O´점을 향하여 반복하면서 사탄 추방하는 노정으로 나왔다. 그런데 역사를 움직여 나오는데 그 중심선은 O O´의향선을 취하여 하늘과 사탄과 분기향선으로 취하였다. 의면 하늘 불의면 사탄이란 양으로 나오면서 역사하였다.
사탄 뜻 돕는 바벨은 <ruby>분기<rt>分岐</rt></ruby>하는 <ruby>공작<rt>工作</rt></ruby>이었으나, 하늘 <ruby>대<rt>對</rt></ruby>하는 뜻의 <ruby>탑<rt>塔</rt></ruby>은 <ruby>합체<rt>合體</rt></ruby>하여 하나되게 하는 <ruby>공작<rt>工作</rt></ruby>이다. 하늘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ruby>복귀<rt>復歸</rt></ruby>된 사람들이 뜻의 <ruby>탑<rt>塔</rt></ruby>을 높이 쌓는 것을 보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 , 우리 <ruby>이상<rt>理想</rt></ruby>의 터다.
B를 O´2´선상 무한선으로 추방하려니 직접대상진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 아브라함 택함과 예수 강림과 재림이란 바로써 대상을 취하였다. 예수 한 자체와서 과거 사탄 침입한 터를 전부 청산하기 위하여서 십자가까지 지셨다. 예수 전 4천년 역사를 완성 성사하기 위한 동시에 사탄 굴복의 길로 향하여야 하게되었다. 예수는 인류 4천년 역사의 한 결실의 자체면서 하나님께서 제일 귀한 존재다. 그래서 예수 죽어 악혈을 선혈로 맑히는 길을 열고 부활하여 승리노상을 시작하여 나서게 되었다. 도면상 나 점으로 시작하니 역사적으로는 가 점과 B점간의 전부를 회복하여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본 잡아준 구약역사의 재완성을 하여서 나아왔다. 그러면 돌아가는 노정으로 시작하니 6천년간은 성도가 합하여 전인류와 합하기 위한 사탄 대한 역사면서 그 후 단계부터는 우세로서 4백년간 지금까지 발전을 시작하여왔다. 그런고로 사탄은 자기의 본기점 O´점 향하여 급속도로 향하면서 자기의 전력 을 다하여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향하였다. 그러나 비원리존재의 아비父인 사탄 역시 그 본향은 원리세계된곳 어느곳이든지 용납하지 않는 시기를 향하여 오는 역사경로를 보게 되었다. 만일 아브라함의 실수가 없었으면 가 점을 중심하고 가, (A´)점으로 향하려고 하였든 바이었다. 그리하여 사탄이 위上 흑선은 가 점을 중심하고 가, (2´) 점으로 향하는 것이 될 것이었는데 실수로 인하여 다시금 사탄은 가 점에서 나 점을 향하여 흑선을 취하여 다시 시작하
게 되니 예수의 역사는 곤란을 가져온 바이다. 예수와서 사람 전부와 합하였으면 하나님은 B O´선 아래下점선이 나 점을 중심하고 사탄은 나 (2´) 흑선으로 향하게 할터인데 다시금 예수 대하여서 대립으로 취하니 하나님 점선은 B O´ 선상에 흑선 사탄과 합하여 싸우는 본단계 시작을 잡게 되어 구약소생에서 신약장성에 한 길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근 1600년 이란 장기간을 두고 싸워서 다 점을 중심하고 사탄을 대하여 다, (2´)선외로 향하게 하여 나왔다. 점점 사탄은 종점을 향하여 오니 사탄은 최후 발악하여 하나님의 본 전부를 취하여 먼저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벌써 원리 기점을 빼앗긴 사탄은 자기의 기점을 향하지 않을 수 없는 종점에 도달하게 되어 패하여 나왔다. 그런고로 사탄은 하나님의 뜻의 흉내로 전부 한 성사를 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승리하니 그其 표시적 사실들이 세계전쟁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그런고로 지금 세계상 전쟁역사를 볼 적에 먼저 사탄 편적 국가가 먼저 공세를 취하였으나 벌써 하나님은 기본 뜻 성사할 기본국가진영을 우세하게 하였기에 사탄은 마침내乃終 패하는 말로를 밟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다, (A´) 점을 향하여 본복귀 근본점을 향하여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예수는 자기가 찾고자하는 전인류를 끌어서 목적지까지 가져 옮기는 즉 (A´)점까지 옮기는 역사가 2000년 역사였다. 그其 외 (A´), (1´) 간은 아담 해와의 타락전 미급부분인 생령세계급이다. 이 생령세계급 시작이 즉, 이상시작이다. 이 부분은 재림주 강림하여 담당할 부분인 완성시기되는 성약시대다. 그런고로 재림성사하면 역사향선과 같은 A´, B´, 1´, 2´이란 곳에서 시작함이 아니고 O´점 기점과 함께 시작함은 기본점 복귀니 즉 미타락부분상점이니 (1´), (2´) 선 상에서 시작함은 사실이다.  이리하여 다시는 분기도 합함도 없는 영원 평형으로 취하여 나아가되 의향선을 중심하고 상 하로 한 회로를 중심하면서 계속하게 하고자 하는바가 하나님의 뜻이다. 위上는 하늘이요 땅은 아래下임에 주고받는 이상상대로 나아가 대상이상의 성사를 목적으로 주고 받는 완전을 표준하고 나아간다. 이것이 이상원리인데 나중에 논하기에 여기서는 약한다.
사탄은 이와 같이 우리 사람을 놓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나아왔다. 사탄이가 전부 패하면 선의 주권시대다. 그其 때는 선자만이 또 뜻 합의자만이 출세할수 있는 시대다. 즉 이상시대다.


제3 장 역사로 본 악이 선 대하여 승리한 원리적 변증
이렇게도 하나님은 사탄 <ruby>대<rt>對</rt></ruby>하여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ruby>언어<rt>言語</rt></ruby> <ruby>혼잡<rt>混雜</rt></ruby>케 하신 것이야. <ruby>인간<rt>人間</rt></ruby>에게 <ruby>복<rt>福</rt></ruby>된 일이 아니냐! 이와 같이 안타깝게 한 사람의 <ruby>죄<rt>罪</rt></ruby>를 누가 <ruby>감당<rt>勘當</rt></ruby>하랴! 이렇게 하였으나, 사람은 <ruby>여전<rt>如前</rt></ruby>하게 뜻을 멀리하여 뜻을 세워서 받들면서 거기에 <ruby>성심<rt>誠心</rt></ruby>을 다하는 <ruby>자<rt>者</rt></ruby>를, 보기가 <ruby>심<rt>心</rt></ruby>히도 드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에 품으려던 노아의 <ruby>자손<rt>子孫</rt></ruby>들을 또 다시 사탄한테 빼앗겼으니 이것을


역사상에는 본래가 악의 시작이 없어야 하는데 악의 출발과 함께 인류는 전
다시금 빼앗는 <ruby>역사<rt>役事</rt></ruby>를 <ruby>시작<rt>始作</rt></ruby>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탄의 사랑하는 <ruby>상대자<rt>相對者</rt></ruby> <ruby>우상<rt>偶像</rt></ruby> 장사商하는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다시금 사탄품으로부터 빼앗아서 <ruby>자기<rt>自己</rt></ruby> 뜻의 <ruby>자손<rt>子孫</rt></ruby>을 빼앗긴 것을 다시 갚는 양으로 <ruby>즉<rt>卽</rt></ruby>, <ruby>반대노선<rt>反對路線</rt></ruby>으로 찾아 세우기 위하여서, 사탄 <ruby>단체<rt>團體</rt></ruby> 쪽인 <ruby>우상<rt>偶像</rt></ruby>장사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ruby>택<rt>擇</rt></ruby>하신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가 있다. 그 <ruby>이유<rt>理由</rt></ruby>는 사탄이 <ruby>제일<rt>第一</rt></ruby> 싫어하는 바인 동시에 <ruby>통분<rt>痛憤</rt></ruby><ruby>존재<rt>存在</rt></ruby>였고 하나님 <ruby>편<rt>便</rt></ruby>에 있어서는 지극히 <ruby>귀<rt>貴</rt></ruby>히 보는 <ruby>존재<rt>存在</rt></ruby>이었다. 왜냐하면, 사탄품에 있다가 빠져나온 <ruby>대표자<rt>代表者</rt></ruby>요, 뭇사람의 <ruby><rt>本</rt></ruby>될 <ruby>행동<rt>行動</rt></ruby>이면서, 다시는 사탄한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왔으니 들어갈 없는 <ruby>입장<rt>立場</rt></ruby>을 <ruby>취<rt>取</rt></ruby>하게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ruby>택<rt>擇</rt></ruby>하여 하나님이 뜻하시려는 딴 <ruby>지역<rt>地域</rt></ruby>으로 <ruby>인도<rt>引導</rt></ruby>함이 즉, 아브라함에게 <ruby>요구<rt>要求</rt></ruby>한 것이 <ruby>고향산천<rt>故鄕山川</rt></ruby>인 갈대아우르를 떠나라는 <ruby>근본목적<rt>根本目的</rt></ruby>이었다.
부가 악의 전주관하에서 먼저 출발하였다. 즉 악의 주권구역내에 처하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사탄이 출발한 뒤를 이어 빼앗는 경로를 취하여왔다. 다시 전부를 빼앗은 후라야만 악이 패하겠으니 지금까지 이 인류역사는 전부가 악의 주권구역내에 속하였기에 악자만이 승하여서 역사를 통하여 선하고자 하는 자와 양심적인 인물과 사회는 패하는 제압을 피할 수 없는 원리적단계 기간이다.
이와 같이 양심적 선한 인사들이 사회적 모순에 반하여 선의를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여왔으나 그其 당시에는 대중 앞에 반대를 받아 피해를 당한 후 시대에 와서 그 자체들이 선의에 굴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바를 역사를 통하여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바다.
원인은 악의 시대가 먼저이므로 선의에 대하야 직접 파괴공작을 할 수 있는 권한시대임에 그 결과적 행동을 맞춘 후에야 하나님은 먼저 선의의 인사들이 취하든 본의를 나타낼 수 있는 비준을 세워서 대중 앞에 그 선의를 인정 시킬 수 있는 바로 되는 것은 사탄이 먼저 출발하여 파하는 공작을 하나님은 뒤를 이어 세우는 공작의 사실을 역사적으로 나타난 선인들의 희생과 그 당시 당연한 일로 취급됨은 사탄과 하나님의 선후적 시기를 표시한바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사탄의 주권을 빼앗기 위하여 나중 태세를 취하면서 나왔다. 그리하여 예수와서 승리권내를 세울때까지는 전부가 악의 지배하에 선과 양심적 인사들은 희생하여 나왔다.
이것은 원리로 되는 악주권시대이니 그리하였다. 그러기에 선인과 양심적 인사는 어느 시대나 출세하여 오지 못하였다. 전인류 역사를 살펴볼 적에 세계상에 어느 계급이나 다 출세하였다. 사탄이가 먼저는 재능자와 재국가를 중심하고 주권을 잡고 나왔기에 그것 빼앗는 역사로하여 하나님은 한 대상국을 세워 그 목적달성을 방지함이 제1차 대전 이상 역사였다.
다음은 군국시대로 들어온다. 그것은 하나님은 제2차 대전으로 취하게하고 다음은 사탄은 지구상 다시 취할수 있는 무대의 계급을 잡으려니 위上되는 급 사람들은 다 빼앗기게 되니 취할바 밖에 없는 노동자 농민이란 말단급을 취하여 하나님을 대상하여 나온바다. 이리하여 시작하는바가 공산주의이다. 이 급이 사탄은 최종말점이다. 그러니 다시금 하나님한테 빼앗기면 자기의 갈 곳 없는 곳으로 추방당하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자기가 시봉 받든 인류전부를 하나님편으로 옮겨지겠으니 자기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봉하겠으니 사탄은 이 길을 막고자 하니 자기도 모심을 못 받는 동시에 하나님까지 시봉받지 못하게 하고자 하여서 부르짖는 것이 신이 없다는 유물사상이다.
이와 같이 사탄은 말단에 와서 하나님 대하여 인류역사를 가진 수단으로 취하여 나온바는 사실이다.
부체 소련은 자연히 한 말로는 지구상에서 용서할수 없는 원수의 주의국가이다. 하나님까지 없다고 하여 사람들의 길을 막고자하는 유물사상을 어찌 용납할수 있으랴. 이렇듯이 어느 시대나 사탄의 주권으로 승급자들은 대개가 그 사탄 뜻 잘 받드는 자들이었다는 바는 사실이니 선자와 양심자들은 출세못하였다. 역사를 보면 양심적 출세를 부른 시대가 없다. 그것은 악의 지배구역권내에 처하였기에 없었다.
이제부터 시대는 선자와 양심적 인사가 출세할 수 있는 주권시대가 하나님만 주권하시는 직접주관시대다. 그것은 역사기점이 종국과 함께 이상출현시대의 제일요구존재들이다. 그런고로 선은 최후 승리가 있으니 역사를 통하여 선하라 의로워라하여 그 교양목적으로 한바다. 이리하여 양심적 인사 중심한 주권 시대는 누구나 요구하는 시대다. 계급이 문제가 아닌 양심적 존재가 출세할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와 세계는 재림주 주관시대다. 이런 기초가 있기에 예수도 빈자에 복음을 전한다 하라한 원리가 있다. 그리하여 이런 존재를 기초로 하여 지금과 같은 장성을 나오게 하였다.
이제는 부자가 하늘쪽이니 양심적 사람의 자유권한의 터를 악 대하여 하나님은 취하여 놓았다. 그리하여 사람과 만물 전부를 찾아야 하는 목적성사를 하는 바다. 이 터 위에 뜻하고 하나님은 양심적 인사를 높여서 어느 시대의 사람한테도 지지 않는 출세를 하게 하고자 하는 시대가 우리 이상시대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육천년 역사를 통하여 가진 고통을 통하여서 전쟁역사로 회복에 의한 목적지로 옮겨옴이다. 여기에 전쟁에 대한 죄라는 것은 국가적으로 의가 되며 개인적으로는 죄가 된다는 이유도 사탄 대한 전쟁국이니 의도 개인적으로 빼앗고 죽이는 것이 죄됨은 사탄 침입 방지하려니 죄라한다. 이런 사회적 모순과 같은 표시는 물론 있어야한다는 것이 원리로 시작된바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와같은 근본 뜻을 알지 못하매 지금까지 전인류는 신음하여 오면서 그저 무목적자 모양으로 동작하여 나왔다. 역사발전은 목적을 향하여 나오는데 사람은 무목적한 생애로 나오는 그其 인생은 누구 때문에 이와 같이 무지자로 나왔나 하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전부가 사탄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 인류는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근본목적을 향하여 무엇이든 아낌없이 뜻 성사를 시봉하여야 할 것이 사실이다. 그런고로 다시금 뜻 반대하는 자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가족적으로나 어느곳에서라도 누구에게나 책망받는 시기가 온다. 그 시대가 양심주권시대다. 즉 선한 것 취하여만 진보하면서 출세할수 있는 때時가 즉 이상시대이다. (51. 6. 28 기)


제4 장 복귀역사로 된 인류발전역사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ruby>명령<rt>命令</rt></ruby>을 따르니 하늘 대해서는 기쁨의 <ruby>존재<rt>存在</rt></ruby>며, 사탄 <ruby>대<rt>對</rt></ruby>해서는 슬픔의 <ruby>존재<rt>存在</rt></ruby>로서, 한 <ruby>분기노선<rt>分岐路線</rt></ruby>을 세울 수 있는 <ruby>중심존재<rt>中心存在</rt></ruby>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아브라함 뒤에는 <ruby>원수<rt>怨讐</rt></ruby> 사탄이 <ruby>미련<rt>未練</rt></ruby>을 갖고 따라들게 되었다.


타락됨으로 인류발전역사상에는 두 대립적 위치로서 대치하여 나온바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원리창조이상을 찾고자 함이고 사탄은 비원리세계를 그냥 창조세계에 유지하고자 함이 시작부터 역사를 통하여 그 본체들이 좌우하는 목적으로 향하여서 나왔다. 그러나 사탄은 비원리존재며 우주에 비원리 사람의 생명의 근본이며 사랑의 근본이며 이상의 근본이며 그 자체와 하나되는 것이 크나큰 목적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절대적으로 믿음信, 순종, 모심侍가 전목적되는 원리였다. 신종, 순종, 시종하면 원리에 입각되는 바니 사탄은 원리적 존재는 주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원리로 될 신종과 순종과 시종을 통하여서 원리에 세워서 자기소유로 하게 하기 위한 것이 인류대한 섭리와 동시에 사탄을 분립시키고자함의 근본목적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바는 타락 이전전 시대가 요구이다. 그리하여 직접주관목적성사가 아버지가 창조하신 근본목적이면서 그것이 한 이상이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들 대하여서 하늘적으로 취하여 세우고자 함의 시대가 즉 구약시대다. 이 시대가 복귀의 한터가 되어 하나님의 복귀역사할 상대시대이다. 이 시대 이하가 요구하는 목적은 타락전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 <ruby>제<rt>第</rt></ruby> 2 <ruby>절<rt>節</rt></ruby>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ruby>섭리<rt>攝理</rt></ruby>하신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 ====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한 소생시대의 시작이다. 그 소생의 터를 중심하고 예수와서 직접 그 복귀목적을 하고자 하였으나 장성 부분만이고 한 완성목적을 남겨두고 역사한 것이 신약시대다. 그 장성되었으나 완성하여서 전천주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 복귀이상을 완성하여야 할 시기가 즉 완성시기 재림주 역사시기로다. 이와 같은 역사를 두고 지금 그 목적시대를 향하여 왔다. 그런고로 그 경로를 회고하여 보면 하나님의 복귀섭리전 시대가 있었든 바는 사실이다. 그 시기는 아담부터 노아 시대까지이다. 그 기간은 어떤 시기인가 하면 악 대한 하나님의 분별시대이었다. 그 시대로부터 노아 이후 아브라함으로 모세로 예수로 재림주로서 복귀목적완성하고자 하나님은 인류역사를 경과하게 하여 나오신 바다. 이 역사의 전목적은 어느 시대를 표준하고 하나님은 섭리하나 하면 타락전 아담 해와 시대이다.
그러면 그 시대의 사회와 하나님과의 어떤 체계를 가진 형체의 사회였는가가 지금 복귀완성을 바라는 우리 현세계사람들이 바라는 근본목적이다. 이 목적이 앞날 신시기의 이상사회라는 것은 사실이다. 본래 하나님을 중심하고 나왔다면 모두가 한 형제면서 한 자녀란 것은 물론이다. 그런고로 전부가 한 아버지 뜻을 중심하고 전 생애를 완성하여 자기의 이상생활 육신생활 영원이상생활의 연장이란 목적으로 통하여 하늘과 합한 이상국가 인식사회가
될바는 논할바 없는 사실인 바다. 그런고로 인류는 찾아 올라가나 그 시대는 이 근본타락전 시대 이상으로 표시되면서 세계 역사상에 발로됨은 사실이다.
지금의 세계조류도 전부가 진리이상세계를 찾아 들어가는 한 관문 앞에 당도하여지는 시대가 즉 지금 시대다. 세계상에서 자연적으로 그 발전을 보아서도 그 목적 시대를 추측할수 있다. 그러니 역사발전은 복귀 역사발전이다. 역사는 발전단계를 취하여 나온바이다. 즉 소생단계로부터 장성단계로 장성단계로부터 완성단계에로 나왔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단계시대냐하면 장성단계로부터 완성단계로 넘어가는 초점시대다. 즉 이 시대는 타락하는 시기단계까지 복귀된바를 표시하는 시대다. 즉 장성시기 예수를 중심한 국가들이 합하여 세계통일진영성사시대다. 그런고로 우리가 알아서 한 목적과 세계정견을 가진다면 하나님의 복귀이상을 알바가 지금 이후의 큰 중심점이다. 그것은 복귀라는 섭리가 있는 바를 확인할진대 금후 세계관은 자연적 이해할바다. 타락전 시대는 하나님을 기반으로 한 부모를 중심한 자녀형제시대이니 한 가정을 중심한 세계인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어디나 모侍시지 않음이 없는 세계란 바로 사실이다. 한 형제이니 또한 가정이니 한 자녀이니 또 아버지는 한 혈통이면서 한몸이니 그야말로 차별을 두어 대할수 없는 가정적을 중심한 사회제도라는 바도 안다. 여기에는 마음 통하여 아버지와 합하게 노력하면서 나가는 시대이니 물질이란 것이 상통이면서 공동소유라는 각자가 입장을 같이 한 世界로 된다. 그런고로 그 세계는 유물상통시대요 하나님 뜻 합하여 행복희락시대란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그야말로 이상공산주의시대가 타락이 없었든 세계이상임은 사실이다. 속된 세상말로 하면 이상공산시대가 그其 시대였다.
그런고로 세계발전은 한 표시로서 이와 같은 주의가 나온바도 사탄이 그 큰 목적을 전제로 증거한 표시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역사를 두고 타락한 단계까지 전세계를 복귀하게 하려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수의 근본주의는 지금 이상주의를 갖고 시작한바다. 본래 창조세계에는 전주인은 아버지라는 것은 사실이다. 소유권이란 명사가 적극성을 갖고 나온바는 타락세계였기에 즉 사탄을 구분하려니 하나님은 사람, 사람사이에 소유권이란 것을 세운바이다. 전소유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또 인간의 아버지이시다. 이와 같은 근본이상을 두었기에 앞 이상시대는 아버지 소유인 동시에 우리 소유면서 우리 집 소유니 즉 자기소유라는 목적을 두게 될 것


이다. 그런고로 문제는 진정한 자녀로 다시금 복귀되어 아버지 몸을 받아 혈계를 완성하여 그 뜻을 취하여 나아가는 자녀에게는 세계는 경계없는 자유가정으로써 이상생활을 각자가 시작할 바다. 그 생활이 직접영원의 시작이니 양심아닌 선 외 것으로는 취할 수 없는바가 사실이다. 그 세계가 즉 이상세계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ruby>자기<rt>自己</rt></ruby> <ruby>고향산천<rt>故鄕山川</rt></ruby>과 <ruby>정<rt>情</rt></ruby>든 <ruby>향토<rt>鄕土</rt></ruby>와 <ruby>정<rt>情</rt></ruby>든 <ruby>부모<rt>父母</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정리<rt>情理</rt></ruby>라든가 <ruby>친척<rt>親戚</rt></ruby>에 <ruby>대<rt>對</rt></ruby>한 <ruby>정리<rt>情理</rt></ruby>라든가 아브라함에는 큰 <ruby>고통<rt>苦痛</rt></ruby>의 <ruby>상대<rt>相對</rt></ruby>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ruby>노정<rt>路程</rt></ruby>은 이 모든 것이 <ruby>문제<rt>問題</rt></ruby>있는 곳에는 <ruby>시작<rt>始作</rt></ruby>할 수 없는 <ruby>사실<rt>事實</rt></ruby>이다. 이와 같은 <ruby>정<rt>情</rt></ruby>은 하늘 <ruby>정<rt>情</rt></ruby>을 <ruby>성사<rt>成事</rt></ruby>하고자 하는데는 <ruby>반대<rt>反對</rt></ruby>되어 <ruby>직접행동<rt>直接行動</rt></ruby> <ruby>여하<rt>如何</rt></ruby>를 가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ruby>불구<rt>不拘</rt></ruby>하고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것을 <ruby>문제<rt>問題</rt></ruby>로하지 않고 갈대아 우르를 <ruby>출발<rt>出發</rt></ruby>하는 <ruby>행동<rt>行動</rt></ruby>은 <ruby>과연<rt>果然</rt></ruby>, <ruby>인간<rt>人間</rt></ruby>으로써 <ruby>찬양<rt>讚揚</rt></ruby>하여야 할 <ruby>문제<rt>問題</rt></ruby>인 <ruby>동시<rt>同時</rt></ruby>에 사탄에게 대한 <ruby>복수적<rt>復讐的</rt></ruby>인 하나님 뜻을 <ruby>성사<rt>成事</rt></ruby>하는 터의 <ruby>행동<rt>行動</rt></ruby>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ruby>자기<rt>自己</rt></ruby>의 <ruby>기본<rt>基本</rt></ruby> 뜻을 아브라함으로부터 <ruby>본격적<rt>本格的</rt></ruby> <ruby>출발<rt>出發</rt></ruby>을 보고자 함이었다. 사탄은 아브라함을 빼앗기고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ruby>회귀<rt>恢歸</rt></ruby> <ruby>공작<rt>工作</rt></ruby>을 <ruby>시작<rt>始作</rt></ruby>하는 <ruby>동시<rt>同時</rt></ruby>에 하나님의 뜻 <ruby>성사<rt>成事</rt></ruby>를 <ruby>파괴<rt>破壞</rt></ruby>하고자 함이었다.
1) 개성완성복귀시대
2) 자유이상복귀시대
3) 사랑 이상복귀시대


1) 하나님 천주소유주인복귀시대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대하여 <ruby>축복<rt>祝福</rt></ruby>하려할 때 아브라함 <ruby>자체<rt>自體</rt></ruby>에 대한 <ruby>축복<rt>祝福</rt></ruby>보다도 뜻 <ruby>중심<rt>中心</rt></ruby>하고 <ruby>축복<rt>祝福</rt></ruby>하는 것이 하나님의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이다. 아브라함의 <ruby>복<rt>福</rt></ruby>의 <ruby>기관<rt>機關</rt></ruby>될 <ruby>축복<rt>祝福</rt></ruby>을 하여주며, 그로 하여금 <ruby>대족속<rt>大族屬</rt></ruby>을 이루리라고 <ruby>축복<rt>祝福</rt></ruby>하여 주마하신 뜻을 받들어서 <ruby>고향산천<rt>故鄕山川</rt></ruby>을 <ruby>출발<rt>出發</rt></ruby>하는 아브라함 <ruby>자체<rt>自體</rt></ruby>에는 하늘의 <ruby>공작시작<rt>工作始作</rt></ruby>을 받게되는 하나님 <ruby>대신<rt>代身</rt></ruby> 뜻 <ruby>성사<rt>成事</rt></ruby>의 <ruby>기본행동<rt>基本行動</rt></ruby>의 <ruby>시작<rt>始作</rt></ruby>은 <ruby>완성<rt>完成</rt></ruby>되었다.
2) 근본부모를 복귀하여 모侍시는 시대
3) 형제도로 찾아 공의공생으로 한 대가족건설시대
4) 하나님 자녀찾아 사랑하며 동거시대


이 모든 것을 찾는 세계에는 주의가 없는 세계다. 즉 근본은 하나니 대립되는 무엇이 없는 공일 동일한 세계이므로 주의없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주의라는 것은 진리를 찾아 나오는데 한 지팡이와 같은 것이다. 그 진리체에 합하여 그저 진리란 세계가 되는 시대다. 이 목적이 전세계적으로 전개하기 전에는 주의 양으로 나아가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계속섭리하여서 온 육천년 역사는 너무나 긴 시대였다.
아브라함을 빼앗아낸 하나님은 <ruby>자기<rt>自己</rt></ruby>가 하고자하는 <ruby>전목적<rt>全目的</rt></ruby>을 두고 <ruby>축복<rt>祝福</rt></ruby>과 <ruby>약속<rt>約束</rt></ruby>에 <ruby>대<rt>對</rt></ruby>새로운 <ruby>결정적<rt>決定的</rt></ruby> <ruby>언약<rt>言約</rt></ruby>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ruby><rt>卽</rt></ruby>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ruby>결정적<rt>決定的</rt></ruby> <ruby>언약<rt>言約</rt></ruby>을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ruby>족속<rt>族屬</rt></ruby>에게 잡혀간 롯을 다시금 찾아와 <ruby>승리<rt>勝利</rt></ruby><ruby><rt>後</rt></ruby>에 <ruby>시작<rt>始作</rt></ruby>이었다.
그 과정을 다시금 역사적으로 회고하여보자.
아담  ---  노아  --- 아브라함 시대는
원시분별시대인 동시에 원시공생주의시대
이 시대는 물론 하나님을 멀리하여 사탄과 합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잡으려하나 잡지 못한 시대다. 아브라함을 보아도 희망없는 세계였다. 그런데 그 시대는 타락하여 내려왔음으로 그 사회형체는 공산주의시대였다. 자유영농시대면서 자유유목시대였다. 집단공생체를 가진 공산주의시대였다. 그런고로 이 시대를 한계를 두어 하나님은 청산하는 심판을 하심이었다. 그것이 노아 심판이었다. 그리하여서 다시금 찾아 세우려고 하는 바는 근본자유이상세계가 목적이니 심판후부터는 분별하여 택한 씨족을 중심하고 복귀하려고 하여 노아를 택하였다. 그러나 뜻 합의를 보지 못하여 아브라함부터 첫 공작시작하심이 아브라함 택함이다. 다시 발전단계를 구별하여 표시하여 보면
  원시공생주의시대(분별시대)
  씨족- 민족 - 국가 (소생구약시대)
  국가- 동맹국- 국제(장성신약시대)
  국제- 하늘 세계- 천주(완성성약시대)
하나님이 다시금 근본 뜻을 복귀하고자하니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뜻의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씨족을 중심하고 번식하게 하여서 한 계족체계로부터 민족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서 사탄의 대립을 세워 나가게 되었다. 본래 씨족을 택하여 직접 근본으로 복귀할 수 없고 대적되는 사탄 지배국 대하여 설수 있는 체계를 갖게 되었다. 아브라함 택한 벌써 사탄의 지배국가체계를 조성하여 있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도 한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씨족으로 번식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애급 4백년 탕감시대를 통하여 가면서 씨족의 한 부족으로 조성케 되게 하여서는 그와 겸하여 재물이란 것을 소유하게하는 것이 시작하였다. 그것은 사탄 소유세계를 빼앗아야겠으니 부족으로 즉 민족으로 조성하여서 애급을 출발한 후부터 전생활은 타락전 기본형체란 표시적 단계를 취하여 공생주의인 생활양식을 중심하고 하나님을 중심케 하심이었다. 그 당시 뜻에 합의치 않는 외 사람은 벌한바는 사탄 침입하니 직결처분하였던 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은 가나안 땅을 향하여 찾아들게 될 때는 벌써 토지나 모든 소유할수 있는 재물이란 것은 공생이념 밑에서 분배하는 그 양식을 갖게 한바다. 그 이유는 전세계를 복귀하고자하는 그 시대의 한 소생시대이니 국가조성하여서 악 대립하여 나왔다. 그런고로 소생시대의 한 완성을 보기 위하여서 씨족부터 민족으로 국가로 한 단계발전하여서 한뜻의 성사의 터를 잡은 바를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탄이 대립이 되니 인간사회에서도 지배로 하여 학대하여 온바다. 그 대립적 피지배자인 사람 세계에는 노예시대와 같은 비원리시대가 출생하는바다. 먼저는 택함 받은 씨족 아브라함 자손이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다. 또 이스라엘 백성한테도 사탄 대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 사이에는 패하면 노예적 지배시대가 생기는 비원리시대였음이었다. 이리하여 역사적으로보면 이 노예적 시대는 주로 자본을 주로하여 역사발전사상에 표시로 된다. 그 이유는 승하면 자본을 취하는 것이고 패하면 그에 대한 구속을 받음으로 노예적 시작과 동시에 긴 역사로 흘러온 이 경향이 사회적 한 풍습화하여서 동족간에도 이와 같은 경향이 역사를 보게 되는 바다. 이 모두가 그 반대되는 비원리존재가 있었기에 이런 시작이 역사상 필연적한 산물로 보여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민족이 한 국가를 조성하게 됨에 그 본목적은 국가자본을 축적하게 하여 신 대한 지배국가간으로 흐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세계의 전부를 찾고자하여 소유한계를 정하여서 나왔다. 여기에 침략이란 원인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하고 한 국가를 조성하여서 한 뜻의 기대를 잡고 그 기대위에 이상복귀


실천자로서 예수가 오게 되었다. 예수 온바는 그 한 국가를 뜻 중심한 국가조성할 수 있도록 하여서 하고자 하심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한 國家 소생기대위에 장성사명과 완성사명을 겸하여 성사하고자 하였으나 사람이 불신, 불순, 불시이니 원리아닌 목적국가체계로 서게되니 십자가로 인하여 그 목적을 향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근본목적은 파한 백성이니 택한 자지만 예수 죽인 죄와 역사적 죄에 대한 탕감기간을 긴 역사를 두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전세계에 학대받는 민족으로 국민으로써 각지에 헤어져서 그 탕감사명과 동시에 그때를 채워서 다시금 뜻을 계승한 신앙국가들과 합하여서 한 국가를 시작하게 하여서 전예수의 목적에 합한 국가를 중심하고도 사탄 대하여 공세를 취하는 한편 승리적으로 보기 위하여 각 국가들은 두 진영으로 동맹이란 명칭으로 합국으로 나와 한 상대국들을 대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한바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ruby>민족<rt>民族</rt></ruby>과 대립케 함은 하나님 자신이 뜻을 세울 수 있는 <ruby>확고<rt>確固</rt></ruby>한 <ruby>기초<rt>基礎</rt></ruby>를 세우는 <ruby>동시<rt>同時</rt></ruby>에 벌써 하나님이 미워하는 나라와 <ruby>원수적<rt>怨讐的</rt></ruby> <ruby>입장<rt>立場</rt></ruby>에서 하나님 <ruby>편<rt>便</rt></ruby> 쪽에 섰기에 <ruby>결정적<rt>決定的</rt></ruby> <ruby>언약<rt>言約</rt></ruby> <ruby>성사<rt>成事</rt></ruby>를 <ruby>시작<rt>始作</rt></ruby>함이 있었다. 이 <ruby>언약<rt>言約</rt></ruby>이란 아브라함의 <ruby>자손<rt>子孫</rt></ruby>으로부터 <ruby>시작<rt>始作</rt></ruby>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ruby>민족건설<rt>民族建設</rt></ruby>의 <ruby>시작<rt>始作</rt></ruby>이며 이를 <ruby>확대<rt>擴大</rt></ruby>시켜서 <ruby>국가건설<rt>國家建設</rt></ruby>에로 그리하여 <ruby>세계복귀<rt>世界復歸</rt></ruby>의 <ruby>근본의의<rt>根本意義</rt></ruby>를 두고하신 <ruby>언약<rt>言約</rt></ruby>의 <ruby>전부<rt>全部</rt></ruby>의 <ruby>시작<rt>始作</rt></ruby><ruby><rt>卽</rt></ruby>, 아브라함의 <ruby>전<rt>全</rt></ruby> <ruby>언약<rt>言約</rt></ruby>중에 <ruby>포함<rt>包含</rt></ruby>되어진 <ruby>근본<rt>根本</rt></ruby> <ruby>사실<rt>事實</rt></ruby>을 알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이 한 국가로부터 딴 국가를 합하려니 주의국가가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 중심한 국가주의국과 그 대 진영은 역사상에 필연적 표시로 전개한바다. 그 결과로서 대립으로 보는 진영으로 나왔다. 하나님편에 속하면 원리적이니 자연 그 발전과 함께 자본축적은 자연부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런고로 지금 보면 유대 백성과 미영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지배하는 한 백성들이다. 그런고로 사탄은 점점 그 말로를 당하여서 지금에는 최종점상으로서 그 위치를 세울 수 없게 될 때가 멀지 않아온다. 그리하여 장성시대가 완성을 볼바다. 그런고로 사탄을 중심한 공산국가는 자연적으로 패망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오면서 언어에 대한 구분을 파하는 방언 말하는 제자의 역사도 벌써 바벨탑부터 언어불통이든 것이 그 본의의는 파하는 표시면서 뜻의 한 시작이면서 전세계적 재창조 시작의 섭리라는 사실의 표증함을 고하는바다.
이와 같이 예수의 최고목적도 종국 공생공의주의이상이니 이런 모양으로 나온바다. 그런고로 예수로 인하여 장성시기가 가까워오니 공산주의자들이 먼저 흉내 체계로 나타남은 그 원리적 사실이다. 그런고로 예수로 인한 이상세계가 즉 재림주시대이다. 이와 같이 역사는 복귀노정을 따라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움직여온 것을 보아도 앞 이상세계를 알 수 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사회주의국가시대를 지나 공의공생주의시대로 들어가게 하는바가 지금 이후시대의 요구목적이다. 즉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이상원화세계가 된다. 원화세계란 것은 하늘과 땅 어디나
화합하여 한 원형체를 완성하여 다시는 충돌없는 자유라는 뜻이다. 온 천주가 화하여 원일하는  그其 세계가 원화세계다. 또 세계를 천주주의세계라고도 한다. 이 세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면서 복귀목적이다. 원화세계는 전세계가 하나一되는 때이다. 그 단계까지 나가는데는 공의주의라고 하여 나아가 원화세계로 완성을 볼 바다. 목적달성이 완성시대 재림주시대다. 이 시대는 무전쟁시대이다. 사람에 투쟁이 있었음은 삼원리로 기인하여 생기었다.
1. 원리기본에 배치되는 존재 있음有으로 -----신대
2. 주의상이함으로 --------------------- 인대    통일하는 것이
3. 생활상이 함으로 -------------------- 물대    인류의 사명
이상과 같은 기본원리에 대비되는 딴 존재가 있었기에 인류역사상 전쟁의 자국을 보게 되었다. 그러든 그 원리기본배치존재는 없어지니 주의상이하게하는 자없으니 생활상이한 모양도 없게 되니 그 시대는 필연적으로 무전쟁시대가 되는바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는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되는바는 각자에게 있어 누구보다도 전천주에 남아진 충당사명을 다하여야 된다. 그리하여 영원가정건설을 천주에 달성하여야 한다. 지금 세계를 보면 자유를 찾기 위하여서 싸우며 그리하야 자유찾은 후면 사랑 이상 찾아야 하며 그 후에는 개성이상완성하기 위한 명위(개성 존중) 세우기 위한 양으로 지금세계는 움직여지는 바는 전부가 미래의 뜻 성사의 한 표시적 상징이다. 지금 자유국가 최고위에 가 있는 국가들은 벌써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해야 인간이 근본을 찾는 것이다. 사람 한 자체에게는 자유이상이 있고 사랑 이상이 있고 개성완성할 때侍가 가까워오는 복귀노정에 서 있으니 필연적 봉착인 바는 사실이다. 만일 과도단계에 처하여 그 사명을 빨리하여야할 자유국가들의 사명이 중대한바다. 그리하여 전세계는 재림주를 중심하고 먼저 생활통일 주의통일 우주통일 천주통일 그 중 사탄으로 인한 분기된 언어통일로 이와 같은 근본기일세계로 되어야 하는바가 세계인류의 역사적 이상종점이다.
하나로부터 시작한 것이 영수로 다수로 단위를 합하여 기일점으로 기동작용하는 바가 창조근본목적이다. 이 목적을 반하는 자는 어떤 자라는바는 잘 알 바는 영생생활세계를 파하는 자라는 바는 물론이다. 이런 자는 개인으로도 물론 국가적 세계적으로 대 벌받아야 한다. 그러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사회발전원인과 발전역사를 두고 하늘 섭리적 사명으로 비판하여보자.
그러므로 하나님이 <ruby>비몽사몽간<rt>非夢似夢間</rt></ruby>에 말씀하시기를 두려워懼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盾이다. 네가 받을 <ruby>보상<rt>報償</rt></ruby>이 크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나는 <ruby>무자<rt>無子</rt></ruby>하오니 나의 <ruby>상속자<rt>相續者</rt></ruby>가 없다하니,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의 <ruby>친자식<rt>親子息</rt></ruby>으로 <ruby>인<rt>因</rt></ruby>하여 <ruby>후사<rt>後嗣</rt></ruby>가 되게 하리라 하시며 데리고 <ruby>외<rt>外</rt></ruby>로 나아가 가라대, 하늘天을 우러러仰 보라 하시며 별들衆星을 헤아릴計數 수 없는 바와 같이 너의 <ruby>자손<rt>子孫</rt></ruby>이 이와 같이 되리라 하시매 아브라함이 이를 믿으니 <ruby>의<rt>義</rt></ruby>로 여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ruby>목적<rt>目的</rt></ruby>을 <ruby>완성<rt>完成</rt></ruby>키 위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ruby>인도<rt>引導</rt></ruby>하였다 하시면서 땅을 너에게 주어 <ruby>기업<rt>基業</rt></ruby>이 되게하리라 하시었다.
유물론자들은 사회발전 원인에 대하여 정, 반, 합 논리를 주로 하고 있다. 그러면 세계상에는 원리적으로 본다면 그 노정은 원리에는 변함없이 그 존재위치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를 보면 어느 것이 참 원리적 입장인지 확실하게 보여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것은 아직까지 세계상에 참 원리가 나와있지 않음을 증거하는 사실이다. 지금 유물사관은 현세계에 있어서 크나큰 전정에 대한 인생에게 큰 난관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유물사관의 목적하는 인류역사발전은 어떤 곳으로 향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 역시 원시시대형을 향하여 발전단계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는 물론 발전한다. 발전은 완성을 목표하는 동시에 이상을 소개하는 바는 사실일터인데 그 발전최고지는 원시시대형으로 귀결하는가. 여기에 큰 의심이 생기는 문제이다. 그들이 말하는 정, 반, 합 발전이론은 근본적으로 그 목적표준에 있어서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금 퇴보하는 원리를 찾는다는 결론을 보니 그것 발전목적은 미완성형으로 된다. 반드시 발전하려면 정을 대하여 반이란 존재위치에서 시작을 본다면 정에 대하여 왜 반은 생기는 가는 미지이다. 그러면 왜 합하여 나가는가 그 나가는데는 필연적 종적 목적을 향하여 나간다. 그런 종점 목적은 딴 것으로 나타나서 정, 반, 합 논리의 이상형을 완성하여야 하는바인데 최종점에는 다시금 시작한 기점으로 귀결하니 그 발전논리에는 발전이 아닌 파괴형로를 취하였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면 정과 반이란 명사를 세운바는 그 원리로 보면 과연 유한바다. 본래 천지창조부터 정이란 존재에게는 반이란 명사는 없는바이다. 정이라면은 그 정중에는 소생으로부터 장성으로 장성으로부터 완성으로 하는 진리노정을 갖고 이변형을 보여주나 근본적으로는 변함이 아닌 완성노중에 서 있음을 보여줌에 불과하다. 또 반이란 존재가 있有다면 그 반이란 존재는 본래부터 있을 수 없는 바도 된다. 반이란 명사가 제일중요점으로 되어서 인류는 지금까지 미지의 중심을 잡게 하는 기원이된바이다. 원리를 중심한 세계에 반이란 존재할 수 없음이다. 그런데 반이란 존재가 생기는 것은 비원리로부터 시작이다. 이것의 주인공이 즉 사탄인바다.
그러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정, 반, 합 논리는 정이 먼저 할바가 아니고 반이 먼저 시작한 것이기에 정으로 되기 위하여는 노정이 인류발전역사면서 발전원인인바다. 본래 세계상에는 정이먼저 시작본바가 아니고 반이 시작하였기에 정으로 하려니 역사는 원점지인 원시시대형으로 나가고자 하는 바는 기본 정으로 출발본바와 같이하여 찾아 맞추기 위하는바다. 그러니 유물론자들이 발전사를 말하려면 정을 먼저 세우지 말고 반을 먼저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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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
  • 시작 부분: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유에서 절대무의 기본존재이므로 어느 면에서도 단위적 노선에서만 서서 존재를 찾으면 그 존재는 자연적으로 체감된다. 그 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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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유絶對有에서 절대무絶對無기본존재基本存在이므로 어느 에서도 단위적單位的 노선路線에서만 서서 존재存在를 찾으면 그 존재存在자연적自然的으로 체감遞減된다. 그 체감體感으로써 하나님의 존재存在하여 확실確實근본문제根本問題해결解決할 수 있는 바이다. 왜냐하면 무한대無限大에서 무한소無限小공통노선共通路線으로 흐르는 무한대無限大에서 무한소無限小의 힘을 보아 이 힘은 공식公式과 같은 원리原理하여 연결連結되고 있으며 어떤 중간입장中間立場에서라도 자기自己만이 그 힘과 감응感應할 수 있는 연체聯體평형선상平衡線上에 서게 되면 무한대無限大에서 무한소無限小에 흐르는 그 감지感智를 통하여서만 알 수 있는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대無限大에서부터 무한소無限小에까지 연관聯關하는 중심中心 동력체動力體이다. 그러면서 영원永遠표준標準하고 시작始作하며 나아간다. 그런고로 사람은 중간존재中間存在다. 이 중심존재中心存在완성完成하여야만이 천주적天宙的 기본원리基本原理원만화圓滿化를 가져오게 된다. 하나님은 에서 에로

작용作用하고 사람은 에서 에로 수수작용授受作用 원만화圓滿化하여만이 원만존재圓滿存在으로 되는 것이 천리天理이며 창조원리創造原理다.

+ (無限有實體世界) +

사람

① ①

사람

ⓞ ⓞ

하나님

- (無限無 無形世界) -

표시도表示圖를 보면 사람은 단위적單位的 위치位置한다. 사람을 하여만이 우주宇宙천주이상天宙理想완성完成하게끔 지으셨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몸으로 지은 특유特有존재存在로 되어있다. (+) (-)라고 표시表示하면 사람은 (+)(-)의 중화체中和體로 되었다. (-)는 으로 (+)는 육체肉體로서 합체合體되어 있다. 사람은 경계선境界線치 못한다. 그런고로 사람은 육신肉身하여야만이 완전完全한 사람이다. 우리는 장성長成시켜서 영인체靈人體완전完全 조성造成하면 세계世界까지 할 수 있는 중간존재체中間存在體다. 그런고로 본래本來 사람은 영인체靈人體완성完成하여야 한다. 그러면 영인체靈人體라면 어떠한 구조構造로 되어 있는가 하면 영체靈體, 생명체生命體, 생령체生靈體로 되어있다. 육신肉身에는 육체肉體육심肉心으로 되어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영인체靈人體에는 생심生心중심中心하고 영체靈體부식附殖할 수 있는 기본基本 터를 이루며 장성長成하여서 생명체生命體로 나아가 그 생명체生命體가 되어만이 하늘에 한 장성체長成體를 가진 자체自體로서 생활生活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체生命體에다 생령체生靈體를 이루어야 본창조이상本創造理想영인체靈人體로 된다.

그런데 지금至今까지 타락墮落되니 인간人間들은 영체靈體근본根本되는 생심生心까지 보유保有하는 존재存在가 없다하리만큼 타락墮落되었다. 이 인간人間들에게 영체靈體구성構成시켜서 장성長成하여 생명체生命體까지로 목적目的하고 역사歷史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信, 신앙생활信仰生活배양培養하는 목적目的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오셔서 생령체生靈體까지 완성完成코저 하였으나 불신不信하고보니 미완성未完成하여 생명체급生命體級까지 전인간全人間장성長成시켜야 할 책임사명責任使命 부경部境이다. 그 후 생령체生靈體완성체完成體인데 재림시再臨時부터 시작始作코저 함이 목적目的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타락墮落치 아니하였으면 육신肉身완성完成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 중심中心하고 생심生心은 그 본노정本路程으로 영인체靈人體 구성構成동일시同一時연합聯合하여 완성完成에로 나아갈 인간人間들이 타락墮落으로 하여 전인간全人間에게(하늘도) 구분區分하여 장성長成시켜서 완성完成모양模樣으로

되었다. 2 예수는 장성長成 생명체生命體까지 3 재림再臨하여서 완성체完成體 생령체生靈體주입注入시켜서 이상理想 영인체靈人體조성造成하고자 함이 근본根本으로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시작始作 할터를 닦고자 하니 구약역사舊約役事가 있고 신약新約은 그 터위에 장성長成하여 전세계全世界에 터를 닦고 그 위에다 다시금 완성完成이상理想 생령체生靈體를 땅과 함께 하늘까지 연식聯殖시켜 이상천주理想天宙 완성完成 목적目的으로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구약시기부터 절대絶對 뜻을 중심中心하고 인간人間들이 시봉侍奉하였으면 직접直接 뜻을 중심中心하고 터를 세우면서 이상理想 전개展開코저 함이었으나 불신不信으로 하여 그 목적目的 미달성未達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요구要求 구원요구救援要求가 남아지는 뜻으로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사람을 찾아서 원리상原理想 영인체靈人體회귀恢歸하여 창조이상創造理想성사成事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유絶對有존재存在이며 절대무絶對無주인공主人公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人間은 어느 방면方面으로든지 을 찾아 가면 갈수록 하나님에 각요성各要性절실切實하게 감각感覺되게 하는 것이 현천주現天宙 만상萬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전부全部천주天宙공로公路정당正當하게 설수 있는 자아自我를 찾으면 전체全體중심문제中心問題까지 해결解決을 가져오는 사실事實창조創造하신 만상萬相공동共同중심中心하여 있기에 어느 곳으로 하든지 중심中心 결국結局종점終點을 찾으면 동일同一 근본원리根本原理하여서 작용作用시작始作되어 있기에 자아自我 자신自身근본원리根本原理로 설 수 있는 기본基本을 찾으면 전부全部중심中心인 하나님에 문제問題자연적自然的으로 알게된다. 또한 하나님이 근본존재根本存在 하심은 실감적實感的으로 자각自覺할수 있게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자기自己가 없다고 하면 자기自己 자체自體로서 자기自己도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自己 자체自體하여 라하면 자연적自然的 하신 그 근본존재根本存在 예정豫定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고로 자기自己하면 자기自己하기 부모父母가 찾아지며 부모父母하면 선조先祖 , 수백대數百代계속繼續하여서 지금至今 자아自我존재存在함을 알 수 있다. 이렇듯이 에서만이 가 시작된다. 에서 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천리天理다. 현과학現科學은 이 천리天理를 떠나서는 시작始作발전發展을 못한다. 그리고 자아自我 이후에는 할 수 있는 후손後孫에 대한 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至今 보이지 않는 후손後孫 라고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다면 자체自體원리原理합격체合格體완성격完成格존재存在 못됨을 말하는 것이다. 원리적原理的으로 보면 후손後孫은 있게끔 에서부터 모두 만상萬相이 지어졌기 때문에 후손後孫필요必要적 한 공리노정公理路程으로 함을 알 것이다. 보지 못하였다고 있어야 할 존재存在들을 부정否定하면 자체自體부정否定함에 근본원리적根本原理的 해결解決을 주는 부정否定이 되는가? 그렇지 않음은 누구나 다 잘안다.

그런데 라고 부정否定한다면 그 존재存在천리근본天理根本반역反逆하는 행동行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고로 천주만물天宙萬物전부全部원리적原理的 에서 시작始作함으로 라고 하는 기본점基本點에서만이 만원리萬原理이치理致부합符合을 볼 수 있으나 라고 하면 근본根本에서 전개展開원리적原理的 결론結論으로 된다. 그런고로 지금至今 자아自我라는 자체自體유무有無의 한 중심中心존재存在면서 그의 작용적作用的 목적目的으로 전적全的으로 상대물相對物로 하기 위한 행동行動으로 생활生活하는 바는 잘 체득體得하는바의 사실事實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自身라는 원리적原理的 존재存在라는 것은 근본적根本的으로 시정是定하는 바이다. 라고 하는 존재存在사실체事實體 세계世界에서는 자아自我로부터 표시表示로 되어 있다. 그 자아自我 유무有無근거점根據點으로 하고야 유무有無라는 말을 할 수 있는바이다. 그런고로 나는 하는 동시同時에도 찾아가는 중간존재中間存在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중간존재中間存在로서 되어 있는 나에게 유무有無근본根本되는 하나님의 존재存在하여 의심疑心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런고로 자기自己유무有無근본根本위치位置이니 창조적創造的 원리原理로 보아 하나님과 직접直接 동일점선同一點線한한 존재存在임을 체득體得하여야 된다. 자아自我유무有無중화체中和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중심中心하고 계실 신성神性은 나와 중화성적中和性的 관계關係로써 에서 세계世界전개展開노정路程하게 되어있다.

우리가 만일萬一 하다고 하는 곳에 하여 있어서 인식認識한다면 나에게 인식認識물론勿論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식認識할 수 있는 환경環境과 그 위치位置를 갖고 있다는 그것 스스로가 벌써 인식시켜주는 에서부터만이 시작始作되는 바는 지금至今,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지금至今 과학세계科學世界에 있어서 모든 원리原理공식公式이용利用하여 응용應用 에로 전개展開케 하는 것도 즉 근본根本 가 있는 원리原理존재存在함이 하다는 원칙原則위에서 만이 시작始作하여 목적달성目的達成으로 진급進級됨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과학科學발전發展할 수 있는바도 유적有的원리적原理的 보유保有기본基本되어 그 기본基本

에서만이 그 목적目的 표시적表示的발달發達존재存在를 볼 수 있는 것은 사실事實이다. 그런고로 에서 라는 원리原理본래本來부터 우리가 세울 수 없다. 라면 이지 가 되겠는가? 그러니 유물론적唯物論的 원리原理자연自然말로末路미해결未解決로 되는 것이 원리原理다. 가 되는 까닭이다. 시작始作결과結果한다. 하고하는 존재存在를 세우기 위하여는 전유前有 존재存在를 세워 놓고야인데 이 선유존재先有存在 주관적主觀的으로 보면 자기自己, 객관적客觀的으로 보면 타물他物이나가 벌써 선유先有사실事實결정決定지어 놓고 말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근본根本에서 시작始作하였다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사람은 근본유根本有라는 존재存在부터며 만물萬物역시亦是 동일同一한 바이다. 어떤 작용作用시작始作시작始作으로만이 시작始作된다. 인식認識할 수 있는 모든 관계적關係的 감각성感覺性존재存在하여 나에게 미치고 있다. 작용作用근본적根本的 작용作用연장화延長化존재存在임을 알 수 있다. 라는 점유위치占有位置시각視覺또는 감각성感覺性 존재存在를 두고 말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우리 자아自我감각感覺하는 그 감각적感覺的 작용作用 에서부터 파급波及이 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각視覺으로 볼수 있는 권외圈外존재存在하는 그 자체自體, 하나님과 우리는 연관적聯關的에 속하여 있는 양심良心기존유旣存有존재存在로부터 우리에게 작용作用되는 감각感覺을 알 수있는바이다.

그런고로 사람 한 나는 유무有無중화물重貨物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우리가 즉, 무아無我라는 위치位置를 찾아 들어가면 중화체中和體에서 음양분陰陽分도 같은 작용作用을 이르키는 것과 한가지로 무인식無認識에로 나가면 상대적相對的 절대유絶對有비례比例되는 절대유絶對有의 힘과 작용作用상봉相逢을 본다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무아無我에게 찾아들어 가면( 즉 감각무感覺無인식무認識無에로) 상거적相距的 위치位置대비對比되는 감각感覺인식認識경지境地는 나타난다. 이것은 수양탐중修養探中에서도 많이 체험體驗하는 사실事實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고요하다는 그곳을 찾으면 본심本心작용무대作用舞臺를 딴 무경無境에로 존재存在하는 절대유絶對有감각感覺체험體驗하여 새로운 신기神奇인식권認識權을 찾는 것이 자연적自然的으로 표시表示되는 듯이 되나 그 원리原理는 내 자신自身들의 이상각성理想覺性할 수 있으며 그 만족감滿足感할 수 있는 근본이상根本理想할 수 있는 근본根本하여 있는

존재存在이기 때문에 새로운 쾌감快感이 나와 기쁨의 표시表示전개展開시킨 것 밖에 지나지 않는 사실事實이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볼 적에 우리는 에서 하여 있으니 감성感性각면各面감화感化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유理由로 되어 있기에 에서부터 하여 주는 감력減力에 대하여 진동감振動感을 느낄 수 없고 또 외력外力 감력減力하여 예민銳敏하게 사용使用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양修養이니 기도祈禱니 하는 것이 미쳐지는 외력外力 감력減力에 대비하여 진동振動할 수 있는 감력減力존재存在위치位置코저 하는바가 원리原理로 되어있다. 그러기에 , 고요한 곳을 요구要求한다. 그런고로 누구나 하나님이 하다면 무아無我경지境地에 찾아 들어가면 초자연超自然 감력減力 절대유絶對有경지境地가 있다는 것을 체증體証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다는 것을 아는 동시同時에 그 근본根本 작용作用합치合致에 내가 서면 내 자체自體에는 초자연超自然 작용作用감력減力실감實感이 내 현자아現自我연결連結됨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불교佛敎무아경無我境이라고 하여 찾는 일리一理도 여기에 있는 바이다. 를들면 과학세계科學世界에도 공리公理공식公式같은 것도 간접적間接的으로 그 자체自體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바로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이와 같이 된 것은 타락성墮落性 받은 인간人間임으로 이것이 요구要求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양심良心생심生心기본基本은 하나님이니 하나님은 만물萬物절대단위絶對單位근본根本이면서 원리原理중심中心이며 근본根本이며 모든 만상萬相단위체單位體 중심中心이니 이 중심점中心點인 하나님과 직접直接 하게 되면 절대단위력絶對單位力에서 지배支配받고 존재存在함으로 생심生心장성체長成體영체靈體를 가지면 단위單位직접直接 소유所有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단위單位절대단위絶對單位 하나님의 단위單位에 한 부분적部分的 기본基本으로 있기 때문에 만물萬物의 모든 근본根本을 알 수 있는 곳으로 전개展開시킬 수 있는 존재存在가 즉 사람이다. 그런고로 도통道通이라고 하는 것이 이러한 근본根本사람의 창조본경創造本境체득體得할때에 느끼는 체험體驗이다. 이 창조본경創造本境체득體得하는 동시同時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미래未來의 모든 사실事實도 알아야 할 사람이었는데 타락墮落으로 하여 미지未知존재存在하게 되었으나 그 근본根本 본성심本性心타락성墮落性을 받은 육신肉身을 넘어서 창조본경創造本境수시隨時체득體得하려함이 근본根本 요구要求로 되어있다. 사람이 이 목적目的가능可能하게 못된 타락墮落존재存在임으로 육신肉身활동活動감력減力정지상태停止狀態하는 때를 타서 본성심本性心무한대無限大창조본경創造本境을 찾아 활동活動하려고 한다. 이 사실事實에의 표현表現이 사람에게 몽시夢示

나타나 미래未來사실事實예고豫告하는 것이 몽시夢示라 한다. 그러기에 본래本來, 사람은 자기自己들이 함의 목적目的과 해야 할 목적目的과 살아야 할 목적目的을 알아야 할 것이었는데 미지未知하여 있기에 본성심本性心은 이 어느 부분部分몽시夢示하여 알게하여 주는 것이다. 타락墮落이 없었더라면 우리 인간人間근본적根本的으로 알고 살 수 있는 존재存在들이었다. 그 육신감력肉身減力이 활동할 때에는 를 들면 흙물을 그릇에 담았는데 그것을 휘저어 놓을 때와 한가지 이유理由다. 그러기에 육신활동肉身活動감력減力침중寢中에는 흙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이 우리의 본성심本性心육신감력肉身減力을 넘어서 본성노정本性路程활동活動시작始作됨으로 몽시夢示가 보여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본심本心창조본경創造本境 세계世界하고자 하는 것이 창조성품創造性品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실체實體 세계世界에서 무형無形세계世界연결連結을 가져야만 되게 지음받았다. 그러기에 나를 로하면 의 끝은 하나님이며 의 끝도 하나님이다. 다시말하면 의 끝은 요, 의 끝은 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중심中心삼고 지음받은 천주天宙는 한 동로同路를 갖고 있다. 를들면 우리 혈관血管을 보면 동맥動脈심장心臟에서부터 점점漸漸 작아져 세관細管까지 한다. 끝은 없어지는 정도程度하여 세분世紛된다. 그러면 세관細管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끝은 딴 동로同路반대작용反對作用 노정路程으로 하여 근본根本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한 작용체作用體구성構成하여 한 회로回路조성造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역시亦是, 이 표시表示와 같은 것이다. 혈관血管이 작아진다고 하여서 하여진다고 결론結論하는 것과 같은 행동行動의 사람들이 유무有無결론結論을 말하는 것과 동일同一하다. 그런고로 끝 부분部分자체自體중화中和이다. 혈관血管모세관毛細管에서 돌아오는 정맥부분靜脈部分하여서만 원만圓滿하지 않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동맥動脈라 하는 것과 정맥靜脈라하는 결론적結論的 사실事實체득體得할 수 있다. 그런고로 유무有無는 하나의 에서 시작始作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유무有無근본체根本體이다. 에서 에로 할 수 있는 자체自體다. 그런고로 라고 하는 감각범위感覺範圍 존재存在하지 않고 감각感覺 범위範圍하여 권위權位까지 자유自由할 수 있는 특유존재特有存在다. 이 성품性品, 하나님이 부여賦與하여 준 일체一體가 될 수 있는 특유성품特有性品이다. 하나님의 성품性品이다. 그러니 우리 이상세계理想世界는 참 자유세계自由世界이다. 거리지배距離支配를 받지 않는 세계世界공간空間지배支配도 받지 않으며 시간時間지배支配도 받지 않는 세계世界이다. 그저 생각生覺동시同時결과結果현립現立되는 자유이상세계自由理想世界다. 이 세계世界가 하나님을 중심中心세계世界다.

3 원리原理로 찾으려니 성경聖經직접교시直接敎示치 못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창세기創世記교시敎示할 때에 왜 근본의의根本意義전부全部 밝혀서 교시敎示치 아니 하였는가 하면 여기에는 교시敎示할 수 없는 중심의의中心意義가 있음이다. 본래本來 사람의 조상祖上인 아담 해와도 하나님의 근본의의根本意義를 알지 못하고 있는 도중途中에 처한 존재存在로써 타락墮落시작始作하고 보니 근본根本 하나님의 본의本意의 뜻을 알지 못하고 중도中途에서 타락墮落한 셈이다. 모세를 세워서 역사役事하는 그 뜻은 타락墮落없는 그 세계世界에서 이상理想회귀恢歸을 보고자 함이었다. 그 때 모세 자체自體로서는 사람 조상祖上 아담 해와가 미완성未完成하고만 부분部分조상자신祖上自身 역시亦是 알지 못하는 사실事實이었다.

그것은 모세와는 아주 거리距離가 먼 위치位置한 뜻이므로 그 뜻은 인간人間 조상祖上될 수 있는 그 자체自體들이 문제問題해결解決문제問題였기에 모세에는 근본根本 뜻되는 타락원리墮落原理하여 전부全部관련關聯되어 있는 것을 밝힐 수 없었다. 아담 해와가 더 하나님 앞에서 완성完成하여야만이 될 분담分擔 책임부분責任部分이다. 그런고로 타락墮落함으로 그 분담分擔 책임責任미급未及사실事實로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고 사람 조상祖上도 사탄도 확실確實히 알지 못하는 사실事實동시同時미완성未完成하는 사람을 한 하나님이 한 뜻의 과업課業이었다. 이 뜻의 성사成事를 보려면 사람 자체自體들이 이까지(타락전墮落前) 처할 수 있는 한 세계世界회귀恢歸되야만 이 뜻은 실제實際로 하나님 자신自身을 통하여 실천實踐근본문제根本問題였기에 하나님이 이 뜻 성사成事할 수 있는 무타락시대無墮落時代에 아담 해와 보다는 하늘 완성존재完成存在가 나타나서만이 시작始作부분部分의 뜻이니 그 자체自體를 모세에게 직접적直接的으로 교훈敎訓하지 않았다. 원리적原理的으로 볼 적에 근본根本 인간조상人間祖上 되어야 할 존재存在들이 미지未知로서 되었던 사실事實을 모세로서 아는 것은 원리적原理的 순서順序허여許與되지 않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원리적原理的 존재存在될 수 있는 한 자체自體를 세워야 되는 것은 타락墮落됨으로 시작始作되었다. 그래서 지금 성경聖經중에 우리 사람을 사랑하기 한 하나님은 미분명未分明성경聖經으로 우리를 구원救援코자 하는가. 지금至今원리原理되는 근본자체根本自體 하는 인간조상人間祖上이 나타날 때까지는 근본根本을 밝히지 않고 지금至今까지 나온 바를 알아야한다. 여기에 하나님은 원리근본原理根本으로 사람을 찾고자 하는 원리적原理的 순서順序를 세움에서이다. 그래야만 창조이상創造理想완성完成하게 되는 바이다. 예수 당시當時에도 비유譬喩교시敎示한 바도 역시亦是 원리原理 성사적成事的 시기時期를 찾지 못하였기에 많이 비유譬喩로 말하였다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譬喩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를 밝히 가르켜 말하리라.(요16장25절) 하심은 근본根本 이러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지금至今은 때가 아니었기에 세상世上감당勘當치 못하여 말하지 못하는 미교시부분未敎示部分을 발표하게 하는 의의意義가 있는 바이다.

또 요한복음 16장 12-14절에 "내가 아직도 많은 것으로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 있으나 너희들이 감당勘當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眞理성신聖神이 이르면 모든 진리眞理 으로 너희들을 인도引導하리니 그 마음에로 할 것이 아니라 듣는것으로 말할 것이요, 또 장래將來일로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성신聖神께서 나를 영화榮華롭게 하셨으니 나의 것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나타나리라" 하심은 비유譬喩로도 말할 수 없는 미래未來에 남아 있는 뜻이 있다 하는 것을 밝혀서 하는 말하는 바이다.

그러나 성신聖神이 이르러 장차將次 예수가 밝히지 못한 것을 밝혀준다고 하신 바는 시기적時期的 경과經過를 두고 성사成事할 뜻의 부분部分이었기에 밝혀 말하지 못한 바이다. 이 부분部分은 예수에게 있어서 시기時期를 두고 더 이루어야 할 부분部分이었기에 이렇게 말한 바다. 이런 부분部分간접적間接的으로 교시敎示하기 위하여서 많이 비유譬喩로 말하는 이유理由다. 이 밝히지 못한 미분명未分明사실事實이 때가 이르면 성신聖神하여 가르쳐 준다는 약속約束성사成事를 보았기에 끝날에는 성경상聖經上에 밝히지 못한 것 즉 너희들이 감당勘當치 못하리라 한 부분이 밝히셔야 뜻 성사成事할 바이니 성경聖經 부분部分성신교시聖神敎示 받는 로 하여금 발표發表를 보아야 할 바이므로 보통신자普通信者로다 하는 자는 감당勘當치 못할 부분部分으로 되나 성신교시聖神敎示 받는 자만이 감당勘當할 수 있는 부분部分이 나타난다는 바를 지적하여 말한 바이다.

예수 당시當時제자弟子들까지 감당勘當치 못한 부분部分이 예수의 뜻 노정路程에는 있다 함을 밝힌 말씀이었다. 그런고로 가르킴 받는 자만이 예수의 참 신부新婦 될 수 있는 뜻 시봉자侍奉者가 되는 것을 끝날 믿는다 하는 들이 알아야 할 바다.

4 그러면 왜 모세부터 직접直接공작工作못하였는가

아담 해와의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을 받고 나니 자손子孫들에게 의 피血가 흘러 들게 되었다. 이 더럽힌 피血를 받지 않을 사람이 더러운 피血를 받아 사탄의 자손子孫으로 사람들은 순종順從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즉 사탄 하나부터 번식繁殖되어진 사람을 다시금 하나님이 하여 뜻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더럽힌 바의 피血를 맑혀야 할 것이었다. 이것을 맑히기 하려니 하나님을 절대絶對순종順從하는 사람을 세워서 사탄으로 받은바 피를 맑히기 위한 섭리攝理를 세우셨다. 그런고로 사탄은 뜻을 반대反對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여 대립적對立的 원수怨讐로 되어 나왔다. 역사적歷史的으로 시작始作되는 의 피血로 세상世上은 더럽혀졌으니 로서 맑히고자 해야 반대反對하게하시는 공작工作섭리攝理 하시었다. 더럽힌 피血를 세상世上에서 끊으려니 전인간前人間이 하나님께 하여지는 바가 문제問題였는데 이 공작工作을 돕고 나오는 절대絶對 순종順從하는 사람이 희귀稀貴하였다. 그런고로 한 피를 흘리게 하여서라도 의 한 기본적基本的 중심中心 토대土臺를 잡고자 하여 하나님은 노력努力하였다. 그 노력努力성과成果를 보아서 전세계全世界의 피血가 다 의 피血로 인하여 맑힘 받고 난 후에야 하나님은 뜻을 시작始作할 수 있는 것이 원리原理이었다.

그래서 석일昔日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에게 죽게 하신것은 그들로 인하여 세상世上의 피血를 맑히기 위하여 탕감적蕩減的 입장立場으로 죽게 하신 것이었다. 그런고로 모세를 세워서 직접直接 역사役事하신 것은 다시금 뜻을 성사成事할 수 있는 기초基礎를 닦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 뜻이었다. 이 터가 성립成立되고 난 후에만 하나님의 뜻을 시작始作할 수 있는 바였다. 그래서 모세는 하늘 성사成事준비準備입장立場에 처한 존재存在이므로 하나님은 근본根本공작工作을 밝혀 시작하지 못한 것이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 떨어지고 하나님의 뜻 중심中心하고 살면 의 피血를 하여 로 세워 하늘에 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공작工作을 사람들이 절대絶對로 받들지 못하여 하나님은 지금至今까지 뜻 성사成事를 보지 못하고 지금至今까지 세상世上을 대하여 섭리攝理하시는 바이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한테 따르면 떠러지는 것은 근본원리根本原理에 서니 사탄 역시亦是 할 수 없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탄도 원리原理에는 굴복屈伏한다.

5 생명수生命樹근본根本

아담 해와를 중심中心한 에덴 동산은 자유自由 이상세계理想世界동시同時희망希望세계世界이었다. 자유근본自由根本과 사랑 근본根本을 잃고 보니 사람에게 있어서는 타락墮落고통苦痛이라는 것이 전부분全部分에서 시작始作되었다. 성경聖經에 사람은 영원永遠할 수 있는 생명수生命樹를먹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 뜻 중심中心하고 따 먹어야 할 생명과生命果는 먹지 못하게 되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墮落 지각知覺을 받고나니 다시금 이상세계理想世界인 하늘 세계世界까지가 우리와는 직접直接 관계關係는 끊어지게 되었다. 그것이 즉 (창세기 3장24절) 그룹들이 돌며 빛나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과生命果의 길道를 지키게 하심이었다. 이 생명수生命樹라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直接 할 수 있는 자체를 막아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이 하늘을 대하여 한 간격間隔이었었다. 이 간격間隔을 열려면 원리적原理的 존재存在가 나타나야 시작始作된다. 그 존재存在는 즉 제2 아담인 예수와 해와 성신聖神출현出現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예수가 땅에 와서 자기自己 근본根本 사명적使命的 역할役割을 택하고 승천昇天하고 난 후에 성신강림聖神降臨에서 부터가 다시금 (사도행전2장 1~4절) 화염검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적事實的 원리原理이므로 성신聖神은 오순절에 불(火)같은 설(舌)을 가르면서 각인各人에게 임하심은 이 생명수生命樹인 길을 하늘적으로부터 열리기였기에 우리는 다시금 영생永生할 수 있는 생명수生命樹의 길道를 찾게 되어 생명과生命果까지 하여 영원이상永遠理想 영생永生하여야 할 노정路程허여許與되었다.

그런고로 생명수生命樹는 예수님이고 생명과生命果는 예수가 완전 신부격新婦格 성사成事 하여만이 우리에게 허여許與받을 수 있는 영생요소永生要素다.

3 복귀섭리復歸攝理

1 하나님은 아담부터 찾는 공작工作못하고 아벨로부터 노아까지 사탄 근본의의根本意義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創造할때 하나인 자기自己중심中心하고 아담, 해와를 하여 자녀번식子女繁殖을 하기 하여 창조創造하시였다. 그런고로 사람의 자손子孫은 하나님의 자손子孫으로 될 것이였는데 사탄 유인誘引받고나니 아담 해와는 중심中心에서 탈선脫線하는 행동行動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탄은 비공식적非公式的으로 사람을 하여 나타난 존재存在로 되었다. 본래本來 사람은 하나님 한분을 상대相對하여야 할 존재存在였든 것이 근본根本인데 지금至今 비공식존재非公式存在 사탄이 한 존재存在로서 생기生起게 되어 하나님을 대립對立하여 나타났다. 여기에 하나님은 근본根本 자기自己에게 하여야 하게끔 원리原理를 세워 창조創造하였는데 다른 존재存在 사탄이 생기生起게 되니 사람하나 중심中心하고 그 상대존재相對存在가 있게되니 근본원리根本原理와는 배치背馳되는 사실事實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소유所有하려고 하나 벌써 사탄이 먼저 원리존재原理存在하여야 할 하나님의 존재存在모양으로 사람을 소유所有하고 말게 되니 하나님은 사람 하여 두 주인主人공작工作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이 사람 아담, 해와를 다시금 자기소유自己所有로 하여 보려고 하니 여기에 원리순서原理順序배치背馳되는 두 주인격主人格성립成立시키는 행동行動이니 하나님은 다시금 이 실패성失敗性취소取消시키는 공작工作을 하려고 할 때에 원리原理대로 사람을 찾으려 할 때에 아담, 해와의 그 자체自體에는 벌써 실패失敗하였으니 그 자체自體에는 비공식적非公式的 사탄 소유所有동시同時에 또 창조원리적創造原理的으로는 타락墮落이 없었으면 물론勿論 하나님의 소유자所有者한바이나 타락墮落되어서 그 원리적原理的 입장立場은 벌써 하나님便하지 않는 근본원리根本原理 모양樣으로 사탄이 사람을 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로 자기自己 몸으로 지은 사람을 포기抛棄 할 수 없는 원리적原理的 결탁結託이 있으니 하나님 역시亦是 아담, 해와를 포기 할 수 없는 원리적原理的 책임責任이 있는바였다. 이런 책임적責任的 근본根本을 가진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中心하고는 직접直接 하여 찾으려고 공작工作하려고 하니 먼저 비원리적非原理的 존재存在주인공主人公소유所有함이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담, 해와를 두고 그의 자손중子孫中하여 이 두 주인격主人格으로 분립分立시켜서 아담, 해와의 실패失敗를 찾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자손중子孫中에는 두 성품적性品的 결과結果자손번식子孫繁殖이라는 타락세계墮落世界존재存在를 보게 되었다. 비공식적非公式的 주인성품主人性品자손子孫분립分立하게 되었다.

아담, 해와는 실패失敗함으로 이성품격의 모체母體주인공主人公으로 출발出發하니 창조원리적創造原理的이 아닌 결과結果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하여서 직접直接찾는 공작工作시작始作못하고서 그 를 두고 복귀공작復歸工作시작始作하니 아담, 해와의 인 “가인”, “아벨”에 섭리攝理노정路程을 시작하였다. 그런고로 아담, 해와 사탄

피血를 받고 난 맏 가인이니 첫 생산자生産者는 사탄에게 하는 비원리적非原理的 존재存在입장立場이다. 그 다음 존재存在는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입장立場 하는 존재存在로 되었다. 그것은 사탄의 피血를 받은 사람을 찾으려 할 때에 첫번 해와는 사탄한테 하였지만, 다음은 아담한테 하는 으로 해와는 행동行動하였으니 비록 타락墮落자체自體들이었지만 아담 사랑은 나중이나 그 자손子孫에는 두 성품적性品的으로 흐름이 있는바는 사실적事實的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타락墮落자체自體들의 입장立場으로 보아도 사탄이에게서는 첫것 사랑이었으니 첫것보다 나중사랑 즉 아담사랑이 비원리非原理 입장立場에는 한 사랑이었으나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미움이 아닌 사실事實이다.

또 이런 원인原因으로 보아도 첫 자손子孫은 보다 미움의 자손子孫이며 미움의 대상對像이었다. 그런고로 아담 자손중심子孫中心하고 이런 이유理由대비對比되는 입장은 사람 하여 케 되었다. 그래서 사탄도 역시亦是 하나님 하여서 비원리非原理나마 자기自己소유所有할수 있는 한 상대相對혈적血積자손子孫이 사람한테 소유所有되어 지는 것을 자연적自然的으로 바라게 되어 사람을 중심中心하고 하나님과 사탄은 대립對立되어 자기自己 소유물所有物 확립確立을 보게 됨이 사실事實이다. 그래서 사탄도 역시亦是 처음에 비원리非原理라고는 알고 있으므로 적극적積極的으로 사람이 자기소유自己所有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앎으로 자기편自己便순종順從 할 수 있는 조건條件성립成立되어야만이 자기自己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아담 자손子孫 가인과 아벨에 하여서는 비공식존재非公式存在공식존재公式存在와의 대립對立헤서 보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본래本來 하나님의 것으로 되었기에 하나님이 먼저 할 수 있는 원리적原理的 권리權利한바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을 유인誘引하였으니 간접적間接的 태도態度로 나아가는 입장立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은 여기서 복귀공작復歸工作 시작始作을 보려니 불순종不順從으로 타락墮落인간人間이니 순종順從으로서야만이 하나님의 便에 서서 원리原理를 찾을 수 있는 바이고 불순종不順從이면 불순종不順從주인공主人公이 사탄 소유所有라는 두갈랫길이 지어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사람 자손子孫 가인과 아벨이 드리는 제물祭物근본적根本的으로 순종順從이나 불순종不順從에 의하여 하고자 하는 이성품적二性品的으로 소유물所有物, 결정적決定的 표정물表定物이었다. 두 형제兄弟각기各己 제물祭物을 드렸으나 왜 아벨의 제물祭物축복祝福하고 가인 제물祭物불축복不祝福이었든가 하는 것은 첫 자손子孫 가인은 사탄의 피血를 계승繼承할 수 있는 표시表示로 된 요, 다음 자손子孫 아벨은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은 원리적原理的으로 가인보담 아벨이니 아벨의 제물祭物을 받고싶음이었다. 그 가인 제물祭物은 받지

않은바이었다. 그래서 이때에 가인 제물은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편에 서기 하여 살려고 자기自己자체自體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벨을 사랑하면서 자기의 사랑받지 못하는 자체自體하여 후회後悔하면서 하나님이 다시금 사랑받을 걸을 찾았으면 하나님이 하시는데 기뻐 감사感謝하는 태도態度었다면 가인 역시亦是 하나님便으로 케되는 원리적原理的인 사탄 소유所有하는 불순종권내不順從圈內에서 순종권내에로 옮겨지면 하나님은 순종順從하는 자손子孫을 취하는 곳에 대비對比니 가인도 역시亦是 하나님이 하게 될것이었다.

여기에 가인은 그와 반대反對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벨 하여 원망시怨望視하는 행동行動, 사탄 불순종不順從근본根本되는 사탄의 행동行動과 같은 방향方向으로 나아가 아벨을 죽이고 나니 하나님이 뜻하였든 첫 복귀원리復歸原理는 가인 행동行動으로 전인간前人間사망死亡의 터를 자아내게 되었다. 사탄은 그때까지 가인을 자기소유自己所有로 할 수 없고, 자기소유물自己所有物되기를 고대苦待하는 입장立場으로 하나님 하여 서게 되었다. 성경聖經(창세기 4/7)에 하나님이 가인보고 말하기를 에 엎드려伏 틈을 엿보나니 저彼를 방비防備하려는 것은 사탄이 가인 너를 삼키고자 한다는 이 근본의의根本意義를 밝히는 바의 말씀이다. 이런 가인의 행동行動이 있었으니 불순종不順從 사탄은 자기편自己便 가인 소유所有를 갖고 아벨을 죽이는 바는 여기에 하늘을 하여 반역反逆 시작始作예고豫告를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 행동行動 전인류全人類조상급祖上級에서 되어지는 이런 행동行動들은 전인류全人類좌우左右하는 간접적間接的 행동行動시작始作이라 할 수 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은 사탄은 내 소유所有만 만들겠다는 악의惡意발로發露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대신代身 셋을 준 것(창 4/25)은 아벨의 계승繼承 뜻을 세워서 다시금 하나님편적便的 존재存在로 세우셨다. 불순종不順從하는 가인, 사탄은 셋을 하여서 공작工作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은 본래本來 어두움의 불순종不順從 피血를 받고 났으니 선혈적先血的 관계關係로써 하나님을 따르는 것보다도 사탄을 따르는 방향方向으로 흘러나려 오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근본목적根本目的달성達成하기 하려니 원리적原理的 순종자順從者를 찾아서 공작계승工作繼承하여 왔든 바인데 사람들은 즉 셋 자손子孫까지 가인의 자손子孫들이 좋아하는 생활체生活體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인류全人類는 하나님의 뜻을 세운 점점漸漸 적어지고 사탄 뜻세워 따르게 되는 으로 타락성墮落性 근본체根本體음행淫行팽창膨脹되었고 사탄 하여 섬기는 것은 전부全部가 즐겨하는 행동行動이었다. 여기에 하나님이 참을 수 없이 인류人類를 처서 없애고 이 뜻에 맞는 자손子孫으로 뜻 공작工作계획計劃하시기 하여 노아를 세우심이었다. 노아는 불순종不順從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順從하는 대표자代表者이었다. 그런고로 노아를 두고 하나님이 근본복귀根本復歸 계승繼承

하여서 뜻 성사成事를 볼려고 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은 제일第一은 사탄 숭배崇拜하는 것이고 제이第二음행淫行 하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타락墮落의 씨가 되었으며 이것으로 하여 사탄의 뜻 번식繁殖함과 같은 협조행동協助行動이니 하나님께서는 지극至極히 눈꼴사나운 상대相對 이었기에 제일第一 미워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인간세상人間世上에서는 남녀男女가 사랑하는 것과 남녀男女음양부陰陽部가 부끄러운 실체實體며, 죄의 실체實體실체實體며, 또한 천한 욕이 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세상世上에서는 남녀男女제일第一 한 사랑이 실체實體들을 천한 것으로 인정認定하는 바는 이 근본根本 타락성墮落性 근거根據이므로 말도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람이 타락墮落한바를 양심직고良心直告하는 바의 사실事實증거證據하는 바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욕이 왜 생식기에 관한 것인가 욕이면 왜 좋아하는가? 세상世上제일第一 한 것이 사랑인데 사랑에 하는 실체實體 제일第一 한데 하는 실체實體가 왜 욕이 되는 것인가. 이 근본根本만 찾으면 인생문제人生問題해결解決이다. 이 사실事實은 생식기에 관한 욕이 아닌 제일第一 좋은 것이 생식기로 되었으니 비원리적非原理的 출발出發을 가져오는 근본根本이 되었다. 사망死亡시작始作되는 것의 시작始作근본根本이 되었으니 이런 고백告白으로 표시表示됨이라. 그런고로 세상世上비원리중非原理中에 있다는 사실적事實的 양심良心 고백告白의 말이 많이 쓰여지고 있다.

를 들면 음양陰陽, 좌우左右라는말, 흑백黑白, 지금至今 많이 쓰는 적백赤白 등등等等전부全部선후先后반대反對로서 쓰는바는 인류역사人類歷史 시작始作반대反對로 되었다는 바를 증거證據하는 사실事實이다. 이니 이니 이니 하는 말은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 시작始作이 먼저 되었다는 것을 상증想證시켜 주는바이다. 직고直告대로 우좌右左, 陰, 백흑白黑으로 백적白赤으로 되는 세상世上이 와야 만 우리 원리原理 찾은 세상世上이요 이상理想 세계世界요소要素이다.

이렇게 사탄의 창성昌盛을 보니 하여 적극적積極的으로 원수怨讐로 나아가니 석일昔日부터 의인義人들의 참사慘死가 많은 바는 원리原理로 보아 응당應當하다. 이와 같이 노아의 시대時代까지도 전부全部불순不順자식子息들로 전세계全世界가 되고 보니 하나님은 전멸全滅시켜서 다시금 뜻을 공작工作하는 결과結果로 노아 심판審判이 되게 되었다. 그 때에 노아는 순종자順從者를 찾았으나 한 사람도 보지 못하고 전부가 사망死亡으로 들어갔다.

심판하고 나니 하나님은 통분痛憤!

근본根本에서 시작始作되었으면 자기自己자손子孫들이었는데 사람의 행동行動전인간前人間사망死亡으로 몰아넣는 결과結果를 가져와서 심판審判은 하였으나, 통분痛憤사실事實이다. 왜냐하면 사탄 때문이지 사람에게 무슨 가 있는가 하는 생각生覺은 하나님 역시亦是 생각生覺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런고로 다시는 이와 같은 심판審判은 하지 않을 것을 세웠다.

심판審判근본의의根本意義

① 사탄을 사람한데 떼기 한 것

순종자順從者로 되니 사탄을 원수시怨讐視하게하기 하여

③ 이것을 보아 불순종자不順從者의 한 사망死亡를 삼아 순종順從케 하여 불순종不順從시작始作 없게 하기 하여

④하나님만이 사람 하기 하여

⑤ 뜻 성사成事의 터를 잃지 않기 하여

이상以上과 같은 뜻을 중심中心하고 심판審判은 하였으나 근본적根本的으로 생각生覺하면 하나님께 있어서 자기自己책임성責任性을 느껴짐을 자각自覺치 않을 수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사람을 타락墮落하게 한 것은 결과結果자기자신自己自身이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최종국最終局 책임責任자신自身결과점結果點을 두고 있고, 그 다음 아담, 해와 이러니,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람 찾기 하여 자기自己와 아담, 해와의 책임責任이니 이 공작工作시작계승始作繼承하여야 할 대신적代身的 역할役割이 남아지게 하였다. 그런고로 처음으로는 하나님이 책임責任지고 사람을 구원救援할 수 있는 기초基礎를 닦아주어야 할 책임責任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기초基礎 공작工作 시작始作할려니 구약舊約 역사役事에로 들어간다.

그 터가 되면 타락墮落 아담, 해와의 분담사명적分擔使命的으로 시작始作되었다. 그래야만이 창조원리創造原理성립成立을 볼 수 있는 바이다. 본래本來 사탄은 하나님에게 순종順從하여서 굴복屈伏함이 없다면 원리인原理人(무악인無惡人) 사람한테도 사탄은 굴복屈伏치 못함이 사실事實이니 하나님은 모세 시대時代까지 자기自己활동活動기초공작基礎工作을 하여만 되게 되었다. 이 기초基礎가 되어야만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보내서 공작工作할 수 있겠으니 그 공작工作하여야 하는 책임責任이 노아 이후以後 공작工作이다. 하나님 앞에 순종굴복順從屈伏이 없다면 예수와 성신聖神한데도 사탄은 굴복할 수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 뜻과 섭리攝理최고最高 목적目的은 하나님으로부터 사탄을 굴복屈伏케하여 사람 조상祖上으로부터 사람전부全部에게 사탄을 굴복屈伏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1) 제일第一은 하나님한테 순종굴복順從屈伏

(2) 제이第二 아담, 해와 (예수, 성신聖神) 순종굴복順從屈伏,

(3) 제삼第三 사람한테 순종굴복順從屈伏

이상以上목적目的완성完成하여 나중에는 사탄의 소유所有가 한 사람도 없게하여 사탄까지 종국終局 자연굴복自然屈伏으로 하여야 원리原理로 되는 바다. 그런고로 사탄은 이 뜻을 하여 역사役事하는 것이 아담부터 구약시대舊約時代

구약시대舊約時代로부터 신약시대新約時代 신약시대新約時代로부터 재림시대再臨時代까지로 전개展開를 보게 되는 노정路程으로 하나님의 섭리攝理역사役事역사歷史를 통여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람을 하여 사랑하여 나오신 바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책임분담역사責任分擔歷史구약역사舊約歷史고 아담, 해와 (예수, 성신聖神) 전인류全人類 책임분담역사責任分擔歷史신약역사新約歷史다. 그래야만 타락전墮落前 기본점基本點을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이 재림성사시대再臨成事時代 성약시대成約時代면서 이상시대理想時代가 이런 노정路程으로 복귀復歸 시작始作이 하나님이 뜻하고 사람 하여 사랑하는 중심의의中心意義다. 그런고로 사탄과 하나님은 사람 중심中心하고 하나님 뜻 성사成事로서, 사탄은 뜻 파괴破壞역사상歷史上전쟁戰爭으로 전개展開되어진 것이 사실事實이다.

2 1 하나님 책임분담責任分擔 섭리기간攝理期間은 노아부터 예수까지

1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섭리노정攝理路程근본의의根本意義

심판審判하여서 노아의 8식구食口2로도 번식繁殖하여지는 동시同時에 하나님의 뜻 섭리완성攝理完成으로 시작始作동시同時결과結果로 나아가야 할 사명적使命的 책임責任분담分擔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順從하는 것이 노아 후손後孫에 맡겨진 중대과업重大課業이었다. 그런데 전인류全人類심판審判하고나니 사탄은 자기自己숭배崇拜하며 섬기는 전인류全人類를 잃고나니 사탄은 뜻 붙일 곳 없이 되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떨어질 수 없는 관계적關係的 인연因緣이 있는 이상理想 하나님 뜻 부분部分 존재存在가 있으면 자기自己소유所有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다시금 하나님 한테 자유自由 굴복屈伏치 않고 노아의 8식구食口하여 미련적未練的으로 자기自己의 뜻 소유所有가 될 수 있는 존재存在가 있는가 또는 자기自己할 수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行動이나 없는지가 사탄에게 있어서는 요구要求하는 중대重大 주목점注目點이다. 이 어마 어마한 입장立場에선 들이 노아 8식구食口였다. 이 식구食口들은 하나님과 사탄사이에 있어 자기自己들의 근본根本 책임責任감당勘當하는 방향方向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하나님便으로 가려면 사탄이 따르고 사탄이 따르면 하나님이 하는 이런 입장立場에 서 있다는 바를 그때 원리적原理的으로 안다면 모르지만 이 원리原理를 알지 못하는 8식구食口는 그저 하나님에 적극성積極性체득體得하여야 할 존재存在들이었는데 그런 방향方向으로는 여하如何결과結果를 가져오는가는 인간人間에게 특유성特有性 자유행동결과自由行動結果좌우左右하는 문제問題였다. 노아 식구食口하늘의 기대期待소망존재所望存在요 또 사탄이 빼앗고자 하는 소망所望기대期待존재存在였다. 그런 입장立場에 있는 존재存在 하나님 보시기에 로 여기는 존재存在들이다.

이와같은 인간가치人間價値를 알고 보니 이 사람이 그다지도 하나님을 받들지 못하였는가 하는 탄식歎息

자연自然 나올 것이었다. 지금至今 우리는 이 원리原理로 보아 긴장緊張입장立場들인 줄을 알 수 있는 시기時期를 만나니 무한無限행복幸福스러운 것이었으나 이 시대時代에는 이 근본문제根本問題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한 수수께기의 문제問題였기에 그다지도 자기自己존재가치存在價値와 하나님에 함과 사탄 함에 하여서는 그저 근본根本을 알지 못하고 그 결과結果만 보아서 하나님과 사탄의 관계關係반대성反對性으로서 서 있다는 것만을 역사歷史하여 알 뿐이었다.

에 노아는 천지天地주인공격主人公格이면서 2 인간人間조상祖上이 되는 존재存在행동行動 여하如何부터가 하나님과 사탄이 행동行動여하如何시작始作하는 기초基礎였다. 그때 노아의 8식구食口 라는 생각生覺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존재存在들이고 하나님의 만이 시작始作되어야 할 존재存在로써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양이나 흉내가 보여지는 행동行動이 없어야 할 입장立場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노아는 농부農夫가 되어 포도농사葡萄農事를 하였다. 포도주葡萄酒를 먹고 취하여서 장막帳幕 나체裸體로 누워서 잠자고 있을 때에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父가 벌거 벗고 자는 고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자기형제自己兄弟들에게까지 가서 부끄러운 행동行動의 한 표시表示를 하니 셈과 야벳은 옷衣을 하여 아버지 벗은 것도 보지 아니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나체裸體를 덮은 지라.

이것이 성경聖經을 보면 왜 이런 행동行動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行動인가하는 근본의의根本意義는 오늘 미해결未解決 문제問題이나 그 근본원리根本原理로 볼 적에 그 사실事實명백明白하여지는 바이다. 이 행동行動은 무엇을 상징象徵하여주는 사실事實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지극至極한 미움의 행동行動이며 사탄 하여는 한便 될 수 있는 아담, 해와의 벗음의 수치를 다시금 증거하며 타락성墮落性 계승繼承표시表示하는 행동行動이며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자기自己입장立場을 세울 수 있는 근거根據문제問題였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은 타락墮落된 부끄러움의 자체自體임을 아직 잊지 못하는 존재存在의 씨라는 사실事實표로表露하는 행동行動이면서 또 전인류全人類심판審判하심도 그것의 시작始作으로 하여 결과結果도달到達하여 지는 바에서 나온 바를 생각生覺하니 하나님은 통분痛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事實을 보여줌인 동시同時에 사탄의 성품性品 범죄犯罪직후直後행동行動계승繼承증거證據하는 사실事實이니 또 역시亦是 하나님의 뜻하는 근본목적根本目的미완성요소未完成要素번식繁殖함을 알게됨이 또 다시금 사탄의 기착점起着點을 보여주는 행동行動이었다.

그런고로 다시금 사탄은 그 행동行動 개시開始를 보게 할 근거根據를 삼고 나서니 그 요구要求의 터를 막을 수 없이 사탄의 번식繁殖시작始作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행동을 직접直接 개시開始하게 한 그 존재存在가 사탄 便이니 함을 하여

가나안의 조상祖上이 되어 하나님의 원수怨讐가 되리라는 것을 말함이다.

그리하여 또 다시 하나님과 사탄은 대립對立을 보게 되어 자손子孫번식繁殖하니 또 다시 그 자손子孫들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行動으로 흘러나가게 되었고, 노아 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탄의 뜻 번식繁殖협력協力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뜻 에 품으려하는 들을 빼앗긴 셈이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이 사탄한테 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안對案요구要求되는 바이다.

때 마침,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곳으로 흘러나가는 행동行動뿐이었다. 그것은 사탄이 즐거워하는 행동결과行動結果이니 이것을 그냥 두어 둘 수 없는 사실事實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언어言語가 하나이니, 전부全部의사意思하여 한 곳으로 동작動作하는데, 전체적全體的으로 움직이게 되니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하늘 便의 뜻 성사成事하기 위하여 도움되는 언어言語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바벨을 쌓아 사탄 뜻 협력協力하는 행동行動기인基因을 가져오니 하나님은 언어言語상반相反되게 함은 뜻을 하여 행동行動 협조물協助物언어言語로써 한 방향方向으로 전인류全人類가 흘러들어 나갔으니 언어言語혼잡混雜케 하여서 그 사탄 뜻 돕는 길을 막고자 함이 인간人間 언어言語혼잡混雜시킨 근본의의根本意義였다. 그런고로 만약萬若에서 인간人間이 이런 을 쌓았으면, 또 이 뜻 성사成事로 나갔으면, 언어言語혼잡混雜케 할 리 만무한 일이다.

그런고로 세상世上에 뜻 성사시기成事時期가 오면 언어言語는 하나의 목적目的으로 하늘적으로 시작始作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뜻을 성사成事 협조協助하여서 통일統一언어言語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 시작始作중심존재中心存在 재림주再臨主가 오면 그로부터 하나님의 언어言語창조적創造的 주관主管 허락許諾이거든 세계주관세계世界主管世界는 근본적으로 복귀復歸되어야 한다.

사탄 뜻 돕는 바벨은 분기分岐하는 공작工作이었으나, 하늘 하는 뜻의 합체合體하여 하나되게 하는 공작工作이다. 하늘 뜻 중심中心하고 복귀復歸된 사람들이 뜻의 을 높이 쌓는 것을 보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 , 우리 이상理想의 터다.

이렇게도 하나님은 사탄 하여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언어言語 혼잡混雜케 하신 것이야. 인간人間에게 된 일이 아니냐! 이와 같이 안타깝게 한 사람의 를 누가 감당勘當하랴! 이렇게 하였으나, 사람은 여전如前하게 뜻을 멀리하여 뜻을 세워서 받들면서 거기에 성심誠心을 다하는 를, 보기가 히도 드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에 품으려던 노아의 자손子孫들을 또 다시 사탄한테 빼앗겼으니 이것을

다시금 빼앗는 역사役事시작始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탄의 사랑하는 상대자相對者 우상偶像 장사商하는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다시금 사탄품으로부터 빼앗아서 자기自己 뜻의 자손子孫을 빼앗긴 것을 다시 갚는 양으로 , 반대노선反對路線으로 찾아 세우기 위하여서, 사탄 단체團體 쪽인 우상偶像장사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하신 근본의의根本意義가 있다. 그 이유理由는 사탄이 제일第一 싫어하는 바인 동시에 통분痛憤존재存在였고 하나님 便에 있어서는 지극히 히 보는 존재存在이었다. 왜냐하면, 사탄품에 있다가 빠져나온 대표자代表者요, 뭇사람의 이 될 행동行動이면서, 다시는 사탄한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왔으니 들어갈 수 없는 입장立場하게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하여 하나님이 뜻하시려는 딴 지역地域으로 인도引導함이 즉, 아브라함에게 요구要求한 것이 고향산천故鄕山川인 갈대아우르를 떠나라는 근본목적根本目的이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命令을 따르니 하늘 대해서는 기쁨의 존재存在며, 사탄 해서는 슬픔의 존재存在로서, 한 분기노선分岐路線을 세울 수 있는 중심존재中心存在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아브라함 뒤에는 원수怨讐 사탄이 미련未練을 갖고 따라들게 되었다.

2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섭리攝理하신 근본의의根本意義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기自己 고향산천故鄕山川향토鄕土부모父母정리情理라든가 친척親戚정리情理라든가 아브라함에는 큰 고통苦痛상대相對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노정路程은 이 모든 것이 문제問題있는 곳에는 시작始作할 수 없는 사실事實이다. 이와 같은 은 하늘 성사成事하고자 하는데는 반대反對되어 직접행동直接行動 여하如何를 가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不拘하고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것을 문제問題로하지 않고 갈대아 우르를 출발出發하는 그 행동行動과연果然, 인간人間으로써 찬양讚揚하여야 할 문제問題동시同時에 사탄에게 대한 복수적復讐的인 하나님 뜻을 성사成事하는 터의 행동行動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자기自己기본基本 뜻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본격적本格的 출발出發을 보고자 함이었다. 사탄은 아브라함을 빼앗기고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회귀恢歸 공작工作시작始作하는 동시同時에 하나님의 뜻 성사成事파괴破壞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대하여 축복祝福하려할 때 아브라함 자체自體에 대한 축복祝福보다도 뜻 중심中心하고 축복祝福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의의根本意義이다. 아브라함의 기관機關축복祝福을 하여주며, 그로 하여금 대족속大族屬을 이루리라고 축복祝福하여 주마하신 뜻을 받들어서 고향산천故鄕山川출발出發하는 아브라함 자체自體에는 하늘의 공작시작工作始作을 받게되는 하나님 대신代身성사成事기본행동基本行動시작始作완성完成되었다.

아브라함을 빼앗아낸 하나님은 자기自己가 하고자하는 전목적全目的을 두고 축복祝福약속約束한 새로운 결정적決定的 언약言約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결정적決定的 언약言約을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족속族屬에게 잡혀간 롯을 다시금 찾아와 승리勝利시작始作이었다.

이와 같이 한바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민족民族과 대립케 함은 하나님 자신이 뜻을 세울 수 있는 확고確固기초基礎를 세우는 동시同時에 벌써 하나님이 미워하는 나라와 원수적怨讐的 입장立場에서 하나님 便 쪽에 섰기에 결정적決定的 언약言約 성사成事시작始作함이 있었다. 이 언약言約이란 아브라함의 자손子孫으로부터 시작始作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민족건설民族建設시작始作이며 이를 확대擴大시켜서 국가건설國家建設에로 그리하여 세계복귀世界復歸근본의의根本意義를 두고하신 언약言約전부全部시작始作, 아브라함의 언약言約중에 포함包含되어진 근본根本 사실事實을 알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말씀하시기를 두려워懼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盾이다. 네가 받을 보상報償이 크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나는 무자無子하오니 나의 상속자相續者가 없다하니,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의 친자식親子息으로 하여 후사後嗣가 되게 하리라 하시며 데리고 로 나아가 가라대, 하늘天을 우러러仰 보라 하시며 별들衆星을 헤아릴計數 수 없는 바와 같이 너의 자손子孫이 이와 같이 되리라 하시매 아브라함이 이를 믿으니 로 여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목적目的완성完成키 위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引導하였다 하시면서 이 땅을 너에게 주어 기업基業이 되게하리라 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