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001
원리원본 원문 0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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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원본 1952. 5. 10 (필사본: 1953) * 본 내용은 참아버님께서 직접 쓰신 진본(眞本. 1951.5.11-1952.5.10)을 정확하게 필사한 필사본임(1953. 9월 전후) * 제목차례(편, 장, 절) 및 체계(제목 구분)는 누군가 붙였음. 제목차례 제 1 편 총론 1 제1 장 하나에서부터 전존재로 1 제2 장 생의 발원은 선유에서부터 5 제3 장 무형세계와 유형세계의 동화적 근본의의 10 제4 장 영인세계와 실체인세계와의 상대성 창조원리 12 제5 장 하나님의 이상 중심은 모시는 종교로 12 제 2 편 창조원리와 타락섭리 17 제1 장 창조원리와 타락원리는 사랑에서 시작 17 제1 절 어떻게 지으셨나. 21 제2 절 그렇다면 타락의 시작을 알아보자. 24 제3 절 왜 타락케 하였는가. 28 제2 장 하나님은 나를 앎으로 알 수 있음 32 하나와 영은 경계를 정하지 못함 35 제3 장 원리로 찾으려니 성경은 직접교시치 못함 43 제4 장 그러면 왜 모세부터 직접 뜻 공작못하였는가 45 제5 장 생명수에 대한 근본 뜻 46 제 3 편 복귀섭리 47 제1 장 하나님은 아담부터 찾는 공작못하고 아벨로부터 노아까지 사탄 대한 근본의의 47 제2 장 제1차 하나님적 책임분담 섭리기간은 노아부터 예수까지 52 제1 절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섭리노정의 근본의의 52 제2 절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섭리하신 근본의의 55 제3 절 모세에게 대한 하나님의 역사의 노정이 왜 예수의 노정 전모되는 이유 65 제3 장 제2차 하늘 뜻 성사책임사명자로 오신 예수의 책임분담 섭리기간에 대한 근본의의 78 제1 절 지상섭리 노정에 대한 근본의의 78 제2 절 세례요한이 엘리야되는 근본의의 81 제3 절 세례요한 인간성 표준으로 예수를 대함. 86 제4 절 복귀섭리 표시로 된 예수 조상의 혈통 92 제5 절 예수 3년 공생애의 노정은 뜻 성사의 터를 찾기 위함 96 제6 절 예수 십자가의 승리적 근본의의와 승리적 신앙자 109 제7 절 나를 더 사랑하라는 근본의의 111 제8 절 지옥가서 전도하는 예수의 근본의의 113 제4 장 예수 승천 후도 섭리하는 책임적 근본의의 114 제5 장 부활의 근본의의 117 제6 장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재림과의 근본의의 121 제7 장 심판에 대한 근본의의 121 제8 장 40일 복귀코저한 섭리노정의 근본의의 151 제 4 편 섭리로 본 역사적 변증 126 제1 장 인류역사 발전과 하나님의 섭리로 본 변증 126 제2 장 역사발전 한계를 복귀로 본 변증 130 제3 장 역사로 본 악이 선 대하여 승리한 원리적 변증 136 제4 장 복귀역사로 된 인류발전역사 139 제 5 편 이상섭리 163 제1 장 창조성 복귀로 된 이상론 163 제2 장 재림주는 이상론 완성의 기본존재 173 제3 장 역사적 실마리의 원리적 해결은 한국에서 시작 180 제1 절 역사적 실마리의 원리적 해결은 한국에서 시작 180 제2 절 한국의 기후는 세계문명의 표본될 상징 186 제3 절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세계의 중심지 191 제4 절 한국은 제종교의 총결실지 194 제2 편 제1장 제4 절 왜 타락케 하고 섭리하는가 200 제 1 편 총론 제1 장 하나에서부터 전존재로 태초는 하나이시다. 이 하나가 즉 태초의 근본이다. 이 근본이 즉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의 존재야말로 무한소에서 무한대의 존재에 근본이다. 이 하나의 근본이 전체의 근본이요 또 전체의 중심의 근본이요 또 전작용의 외력에 대한 평형의 기본지점이다. 우리가 현과학 시대에 처하는 생활과정에서 수학을 떠나서는 그 기본발전의 궤도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현실사회의 구성의 기초로 수의 단위인 하나를 중심하고 그 중심을 주로삼고 전개시켜 대수의 실체를 자아내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그러므로 무슨 존재의 기본을 세우기 위하여는 하나의 존재의 확정적 존립이 중대한 것이다. 이 존재가 결정되면 다시금 하나로부터 증수의 중대요소를 가감조합하여서 나가는데 발전이 있는 바이며 발달이 있는 바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물의 근본을 추측하려 할적에 하나되는 단위적 근본이 절대 중요 요구요소이다. 이 요소의 결정은 우리가 중대 중대관계를 시작케하는 외부적 동작을 결정하는 기인이 되는 것이다. 이 근본이 즉 외부의 동작을 자유궤도로 옮겨주는 중심점이다. 이 중심점이 공식의 기본단위며 타사물체에 미쳐지는 제일존재다. 이 존재가 제이존재까지 도달케하는 결정적 중심점으로 되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제이존재의 중심요구는 무엇인가 하면 제일존재의 결정적인 단위로부터 끊을 수 없는 관련된 증수단위라 할 수 있는 바이다. 이와 같이되어 기본적 단위수로부터 무한수까지에 도달하는 진급과정의 표시가 공식이라 한다. 그렇다면 현사회의 모든 존재의 자체는 단위를 떠나 또 공식원리를 떠나서는 존재의 결정적 존립을 보장할 수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현실체사회의 제사물은 단위를 중심한 공식발달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현세기 문명도 단위를 중심한 공식발달이다. 그러나, 결정적 논리를 내린다면 현과학세계도 단위를 토대로 한 공식발전세계이다. 그런고로 사물의 존재를 인정할진대 근본 하나의 단위로부터 증수적 단위까지가 일평선 노정을 이탈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 일평선 노정이야말로 타아닌 각단위의 공통노정됨은 사실인 것이다. 그런고로 이 노정의 어느 부분에 서서 좌우를 혹은 상하를 잡아서 자기존재를 결정짓고자 할 때는 자기는 독립적 존재와 같은 것이다. 실상은 우가 있고 좌가 있고 상이 있고 하가 있음을 누구나 부인 못한다. 그렇다면 좌우의 존재와 또는 상하의 존재에 대하여서는 지금 자아의 결정적 해결을 짓고자 할 적에 좌도 우도 상도 하도 모두다 결정적 해결의 간접으로 성립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아와 즉 하나를 중심하고 고찰하려 할 적에 나아닌 타의 존재의 확정을 요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고보니 큰 문제는 자기 하나를 공식의 근본되는 단위의 실격존재로 되어지는 것이 필연적 요구조건인데 이 조건을 우리 인생은 즉 나는 어디서부터 잡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중대 과업이며 의무이다. 이 과업과 의무를 다하는 근본단위라는 실체를 알고나게 될 때 타에 대한 근본실체단위로 역시 관련적으로 해결됨이 사실이다. 그러니 만유에 있는 존재물은 한 공통노정(창조기준)을 넘어 존재할 수 없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 공통노정은 즉 평형적 노정인 동시에 결정적 어떤 존재에도 기본되는 안정점이다. 이 점에 도달하여서만이 단수 하나 즉 나로부터 대수 즉 타에 영향되는 근본원리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 해결을 완전히 받았다 할진대 그 자체는 무한한 타자체까지 직결되어 있는 자기 사명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이 사명을 감당치 못하였다고 하면 자기는 타자체의 존재할 수 있는 필요적 요소를 파하는 존재이니 어찌 그 범죄적 추궁을 받지 않으랴.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자아에 대하여서 천주(실체세계우주+하늘무형세계)와 여하한 관계적 입장에 있는가가 해결의 문제인 동시에 일대고심되는 사실의 과업이다. 이상 예를 보면 과학은 유형체를 공식으로 찾는 반면에 그 단위가 실체적인 유형이니 문제는 그리 난하지 않으나 우리 인생은 그 외에 무형의 활동작용을 무시하거나 포기하거나 할 수 없는 타력의 힘의 작용과 충동을 부인 할 수 없는 순수한 양심적 작용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아를 중심하고 어떤 단위를 근본하고 공식적 원리로 나에게 추궁시켜주는 근본 단위체 되는 제일존재를 인식치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식을 보아 자아의 존재를 표징케 될 때 자아라는 존재는 벌써 제이존재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양심이 있나니 이 양심이 자아에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 못한다. 그렇다면 양심이 바라는 바는 자체 개성존재와 타성적 존재간에 절대적인 단위가 평형선 노정을 통하여 공동한 이상체를 향하여 어떤 사명적 책임감을 추궁시켜주는 큰 힘이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본체를 인간의 근본단위본체라고 할 수 있는 세밀하고 고상한 존재의 근본이라는 것을 논할 수 있다. 이 존재를 말하기를 양심 본체이라고 하거나 또는 절대선이라고 하거나 또는 하나님이라고 하거나 명칭의 문제가 아니고 존재의 결정적 사실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내 양심이 어떤 최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절대적 공통단위와 같은 공식원리를 향하여 움직여지는 사실이 즉 절대중심의 역이요 이상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중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절대적 역을 제일존재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라 할 수 있다. 이 절대적인 역은 이상본체까지 도달케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일존재로부터 제이존재 제삼존재등을 통하여 공통되는 절대단위체까지 즉 개성적 절대단위가 완성할 때까지 역은 작용하는 바이다. 이 양심에 작용하는 힘을 중심하고 나아가는 무형실체로부터 유형실체에로 평형상형이 없는 노정을 요구하며 나아감은 우리는 감촉을 보아서라도 알 수 있는 바이다. 이렇게 실행하면 자아를 완성하는 길인 동시에 좌의 제일존재, 우의 제삼존재를 완전존재시키는 사명적 책임을 다하게 된다는 것이 전례로 잘 알 줄 안다. 이 관련적 노정은 과학세계의 공식과 한가지 원리원칙으로 질서정연한 천주체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형체인 제일존재(원리)로부터 자아와 제삼존재등을 살펴보면 근본 하나의 하나님으로부터 단수로부터 복수에로까지 공통적 노정은 무형세계로부터 유형세계로까지 유형으로부터 무형으로한 회로의 통성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실체세계는 사람과 만물의 전개를 말한다. 이 유형계는 무형세계의 표시적 영체로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즉 창조적 의의이다. 간단히 표시하면 신(하나님)=사람+만물세계이라고 표시한다. 그렇다면 창조한 의의는 하나님 자체 하나이나 성에서는 양성이었다. 이 하나님의 자체인 자아(하나님)를 복수체계로서 벌려 놓은 것이 창조적 근본의의이다. 실체세계+사람과 무형세계+하나님과는 상대로 되 전부를 공통하게 하나님의 본의궤도로서 무에서 유에로 완전 수수하는 노정에 완전대상존재의 목적을 달성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창조란 것은 하나님의 성품 이성 즉 남성 여성 즉 양성 음성의 자체를 무한소에서 무한대까지 벌려 놓은 것이 천주의 진상이다. 그런고로 무슨 사물체에서라도 이 성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천리니 그것은 근본의 뜻에서부터 시작됨의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에서 시작하여 복수로서 되었고 이 복수존재는 다시금 완전한 본성인 완전단수로 귀인케하여 제일단수로부터 단위복수로서 번식증대케 함이 근본 하나님의 이상으로 되었다. 그 이상의 중심점이 사람을 중심하고 천주창조 하였음을 알게 될 때와 우리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큰 중대문제다. 그래야만 우리 인간문제 근본 해결 문제책으로 결단짓는 바이다. 하나님은 뿌리고 사람은 줄기와 가지고 만물은 엽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을 닮기 위하여 마음으로 살고 만물들은 사람을 돕기 위하여 사람에 취게 되어 근본체 하나님의 뿌리를 돕기 위하여 사람한테 취케 될 때 하나의 관련작용은 반복되어 근본완성을 돕는 것이 창조적 중심 의의다. 이런 창조원리로 되어진 개성진리체 인간이 찾아 나아가는 진리라는 것까지와 그 진리와 하나님과의 이상까지에 대한 근본 섭리노정을 찾아서 대수가 총결된 단수로 귀결하는 전부를 알아 볼 수 있다. 즉 천주도 합하면 동성체로 하나되고 헤치면 무수하게 된다. 이것에 가감함의 묘미가 천주의 원리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천주라고 하는 그 속에는 극소로부터 극대까지가 무단히 질서정연한 창조적 상대성 원칙과 대상원리 완성으로써 배열됨이 즉 하나님의 존재의 근본부터 만물존재의 근본과 일실통지하여 가감하여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찾아볼 때에 그 심대 심광 심고한 묘리를 어느 방향으로 보든지 금지무수이니 그러므로 천주 전체는 신묘한 묘리로 전개되나 그 묘리에 대하여 내 자신이 단위로 되어 동형체로 설 수 있으며 대할수 있을적에 무한한 신진리가 출현됨을 체험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러나 과금을 통하여 이런 신진리가 다시금 요구되는 바이다. 그 진리본체에 대한 진상에 대하여는 체증의 중대성을 요구하는 세계이니 즉 과학적이 요구됨으로 다시 말하면 공식적 요구가 추구된다. 그 진리본체야말로 현실적 입장과 미래에 대한 현실과의 여일한 활미를 부단히 체득케함이 충분하여야 하며 발전할 수 있는 진미와 충동이 현실적 자아생활을 통하여 생애로 생존의 이상을 연지함이 없다 할진대 생존의 요소임을 자극못하나니 그러므로 이 진리본체야말로 직접인 동시에 이상인 동시에 영원할 수 있는 이상의 실아를 파악하는 공식됨의 중요한 요구의 본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과학적인 원리를 통하여 보여지는 창조주의 섭리와 인간의 중심으로 되어 만 천주의 창조적 의의 등등에 대한 근본문제며 또 그에 대한 중요 해결이 되나니 그 중요함이 철학의 근본이면서 종교이념의 궁극의 점이면서 만 인간이 찾고자하는 천주의 근본이 되나니 이 근본이 대중인간의 바라는 바의 이상인 터이며 또 생존의 근본이 됨이니 누가 피할수 없는 공리니 그 공리가 바로 우리 전부의 해결을 초래하여 주는 근본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나는 뭇 인생에게 대하여서 인간이 찾아야 할 중대요소를 세상에 전하려는 바이니 전함을 받은 자는 영을 통하여서 알려지는 사실을 육을 통하여 능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니 그야말로 누가 반박할 수 없는 천리원칙이다. 선과 양심을 사랑하는 사람일진대 본 중요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적으로 노력이 조금만 있으면 기필코 지명함이 유함으로 누구든지(특히 신앙이상을 바라는 자는 빠름) 해결됨으로 결정적인 실체증거로서 천주이상의 본로를 찾게 될 터이니 어찌 이 근본을 찾지 않으랴. 그러면 지금부터 근본진리를 알고 찾는 데까지의 경로를 살펴보기로 하자. 제2 장 생의 발원은 선유에서부터 그렇다면 진리로 되는 근본체라는 존재에 있어 우리와 제1 문제로 되는 생의 근본문제가 해결의 요점으로 전개됨을 피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생하여지는 원인과 생하고 있는 원리와 생할 수 있는 원인 등에 대한 만상체의 근본원인에 귀인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 3대 원인을 알고자 할 적에 현실적이 유심론적 견지와 유물론적 견지를 살펴서 시찰치 않을 수 없는 사실로 되어 있나니 이 양 방향이 이상으로 바라는 종점이 하나로 되어야 할 것이 분지되어지고 있나니 즉 유심론으로는 신을 세우지 않을 수 없고 유물론으로는 물질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생에 대한 근본문제에 상용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니 창조의 조화로 된 우주이냐 진화로 조성된 우주이냐가 문제로 되어 있는 바이다. 그렇다면 생하여지는 문제가 중대문제다. 천주의 생물이 생하여지기 위하여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거기에는 구비조건으로 태양광선, 공기, 수, 체를 구성할 수 있는 물질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진화적 입장에서 보면 한 생이 존재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다시 말하면 한 진리구성체로서 존재하기 위할려면 반드시 소생으로부터 장성까지 장성부터 완성까지에 대한 일관한 과정을 통하여지는 시간적 이동성으로 보여지는 진화적 법칙궤도를 보여준다. 즉 진화법칙이 있을 바인데 어떤 목적물이 구성될 수 있는 외부적 조건 즉 진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기타 생을 보존 시킬 수 있는 제조건과 요소 즉, 힘과 광, 공기, 수, 토 등등의 존재할 수 있는 보장조건은 무엇 때문인가. 제조건 등등의 여러 가지 요소를 살펴볼 적에 진화적 법칙은 이변체형을 취하는 자체 외에 외부적 제요소존재까지 창조시켜 가면서 진화한다면은 모르거니와 그렇게는 되지 못함을 우리는 속히 관측될 때 진화할 수 있는 외부적 기존환경은 여하히 되었는가. 이것은 진화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니 누가 이를 부인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생물은 물론, 기타 제사물이 존재하기 위하여 근본적으로 필요조건을 공통적으로 보유하게 하는 선유 존재물이 절대로 요구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생하여 지는 원인을 조성하기 위하여서는 이상형으로 생하여 질 수 있는 외부력의 보장과 생하고 있는 필요요소의 보장과 생할 수 있는 장래의 불변의 조건의 확보 등등이 요구된다. 이 절대적인 힘의 존재와 절대적인 불변요소가 구비됨이 전제조건으로 되는 것을 볼 적에 생의 공통적인 요소면서 필요적 요소로서 인정할 수 있는 동시에 목적완성을 위한 생의 요소적 존재를 확정시킬 수 있는 근본존재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볼 적에 어떤 목적을 조성하기 위한 존재로써 생존하여 나아가는 데는 이변상태를 볼 수 있나니 이 부분은 진화적 부분으로 보여지는 바이다. 한 부분적으로 소생에서 장성으로 완성되는 것임도 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그러므로 한 생물 또는 물체가 존재하기 위하여서는 절대적인 공동단위의 힘과 요소를 보여주는 그 자체가 즉 창조적 진화인 동시에 목적물 근본체라 力 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천주 전부 즉 소에서 대까지를 망라하여서 창조적 묘미를 무수히 발견하게 된다. 이 창조적 묘미야말로 원리 원칙을 중심하고 절대 이상형을 향하여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즉,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온 천주의 존재하여 나아가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은 즉 절대이상과 창조이상을 완성케하여 주관하는 그런 존재가 신이라고 하여 또 하나님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의 뜻은 실체만상을 주관하여 무형이상인 본의세계에 대한 영상으로 짖고 합류, 합화, 합체를 이루어 주관을 이상목적하고 이 천주를 창조케 된 이유의 원인이 있다. 즉 창조이상 목적은 하나님과 천주와 동일체형으로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이면서 연관성을 중심케하여 하나의 근본적인 원리원상으로 표현화 하려고 하신 것이 만물창조이다.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면서 유형의 존재인 생의 근본본체까지 되어있음에 모든 생물은 하나님 성상되로 지음받고 그 중 전생물과 만물의 중심은 사람을 표증하여 창조하심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무형 하늘이 우좌하면 사람도 우좌하고 사람이 우좌하면 만물전체가 우좌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무형 하늘 세계를 주관하는 동시에 유형실체세계까지 총결주관을 하여야 하는데는 실체세계 중심은 사람이니 사람만 주관하면 만물은 사람으로부터 주관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창조할때 하나님이 자기형상되로 창조하시어 실체세계 주관 완격자로 창조하심이 즉 대신 주관자 확립이었다. 이 확보이야 근본하나님의 동상 동성체으로 대변격 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람은 격과 형상으로나 동체형으로 되어 있기에 주관격을 구비할 수 있는 것은 사실로 된다. 그리하여 만물의 주인격 되는 사람은 만물이 구비하고 있는 완성격 요소로도 충분한 구체적 형체로 지어졌다. 그러나 그 체의 물체적 존재에 있어서는 만물의 체의 존재적 요소와는 다름 없었으니 생심의 존재가 만물보담 나은 존재이었다. 사람도 육신은 만물요소와 별반 차이없었으나 그 양심적 구조에는 하나님인 성품이 분재할수 있는 존재 즉 생심이 특유점이다. 이 생심이 장성하여 영형체를 이루고 영형체는 또 다시금 생명체와 생령체로서 완성되어 직접 신의 지시에 좌우되게 되어 있음이 특유요점이다. 다른 생물은 육신은 다 갖고 있으나 생심이 없다. 육신에는 육심과 육체가 합하여 동일목적행동을 하게 되나니 이 작용부분은 동물성의 본능성이다. 이 본능성은 육신적 활동으로 되어 생존의 지각과 보호의 지각과 번식의 지각 등으로 구분되어서 생존체를 계속하는 바이다. 사람은 내외에 영적작용을 근본하는 영원존재인 하나님의 부분성존재를 가졌기에 영원 선으로 향하고자 함의 자연작용으로 되어있다. 그는 즉 동성 동질적 자체는 합하려는 음양 원인에서도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만물에 생이 주입된 근본은 하나님으로서지만 그 사실적 경로를 찾아보자. 하나님은 생물의 중심생명의 본체이며 사람은 만물의 중심의 표현체이니 그 요소에 있어서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품, 영원생명 요소도 갖고 능지할 수 있는 지성을 갖고 그 반면 물질적 부분에는 만물의 요소를 겸유하여 있는 중간매개작용을 감당지었다. 사람을 지으실 때 토와 수를 조합하여 체를 조성하고 공기와 태양빛을 주어 실체 생의 체 육신에다 영체와 영원존재할 수 있는 생을 주입시켜 심장을 기동하는 작용을 일으켜 생의 기본을 세우셨다. 이 생이 기존하기 위하여는 유형체의 본질인 흙과 물을 대하여 무형인 무통체인 빛光과 공기로서 대하여 음양적 수수적 반복작용인 호흡을 시작용하여 원만히 수수작용이 계속하여 생의 유지를 보나니 이 생의 근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입된 바이니라. 그리하여 호흡은 생력의 요소를 돕고 즉 혈액을 맑히고 만물섭취 식물의 영양소는 체를 배양하여 육체의 불균형을 도와 병조 병동하여 육신안전노선을 취케하는 호흡으로 산소와 영양소와 원만히 수수작용이 회복유지 할 때에 여전히 생의 보장을 이루는 바이다. 그 생의 자체인 육신위에 무형체이며 근본체이신 하나님의 생심이 중심이 되어서 외부체 구조인 육신의 동작과 차이없는 일평선상에서 생심의 요구되로 생존함의 목적을 향하여서 나아가여야만이 원만생존하는 것이 근본이며 인생의 창조하신바의 목적이다. 즉 생심이라고 하는 영소의 부분은 하나님의 몸에 일부분에 번식을 육신을 통하여 배양받게되어있는 것이므로 이 생심이 육신내의에 어느 기간까지에 장성하여 완전한 영인으로 제이세적과 같은 존재의 영인이 무형세계의 한 신격과 같은 자격으로 옮겨지게 하고자 하심이 생심을 육신에 주입하신 근본목적이다. 그러므로 생심이 육신에 있는 동안은 생심이 중심이 되어 육신을 지배하는 바가 근본인데 육신의 요구대로 나아간다면 생심은 구속받음과 동시에 자유장성을 못하게 되어 있나니 이 자유장성을 못하게 되는 이유는 타락이후에 시작되었다. 육신생활을 중심한 생애는 영이 장성하는 한 기간의 터인데 영의 요구대로 그 육신이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면 영은 미형체와 자유형체를 조성케됨이 원칙인데 육신이 영(생심)을 반하여서 지내면 영체는 흠이 많은 동시에 자유없는 영체로서 되나니 그러므로 사람은 육신생전에 충분히 영체의 요소를 취하게하는 생애의 목적이 생전의 중요목적이다. 이 목적을 조성하기 위하여 타락된 세계에는 도를 통하여 영체의 자유장성을 배양하려는 것이 기본공작이다. 예를들면 육신은 채소밭에 있는 청충의 시대와 같은 것이다. 이청 충의 시기에 충분히 영양요소를 취키에 노력하여 충분히 취하였다면 원만히 장성하여 완전한 나비로소 무한대공을 자유천지로서 향화감밀을 즐겨 활동하려면 청충의 시기에 영양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였다면 나비는 자체에 불구의 상태를 주어 본목적을 성취못함과 같이 우리 육신시는 영심의 요구를 중심하고 나아가는 육신은 청충기에 영양을 잘 취한 나비와 한가지로 우리의 영체가 미형체면서 자유형체를 구비하여 무한이상 경 무대를 활동하게 되는 것이 충실하다. 이와같은 모양으로 육신 시에 노력이 영체의 요구대로 나아가는 바가 절대적 의무로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영이 육신을 지배함의 근본된 원리로 되어 있음을 아니 우리 영체의 요구에 육신이 동일행동하여 차이없는 생활을 육신생전에 하여야할 의무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우리 육신을 영체의 터로서 지어 자기의 이상번식을 시작케 하고자 함이 근본인간창조의 원인이다. 그러니 우리는 육신생전에 영심이 원하는 중심점에서 식생활을 하여 창조본체인 하나님의 인간을 지으신 본의를 완성하여서 천주의 대이상을 충분히 완성시키는데 사람은 중심적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사람은 천주에 있어서 중심으로 되어있다. 즉 만물의 생물은 사람을 기준삼고 지음받은 동시에 만물보아서 사람은 행복과 이상생활에 자극받고 살게끔 만물은 위로물로 되어 있다. 사람의 생의 생활에 상호협조하는 작용을 갖추어서 원만히 생활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식물은 우리의 육신의 생을 돕는 산소를 배양하고 사람과 동물은 식물의 장성요소인 탄소를 배급하여서 생의 요소를 수수하는 협조작용을 돕는 그 이치는 근본창조하심의 일체를 완성하려는 상대 될 수 있는 대상존재를 확정짖는 사실이다. 그 외 동물과 생물(성충)은 우리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이상형의 한 표형을 보여주어 위로와 충동과 자극을 받게끔 창조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타락이 없었으면 만물만상은 자아생활에 큰 흥미와 행복됨을 절감하게끔 전우주 만상은 표징의 위로의 대상으로 되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타락되고 보니 만물만상으로 하여금 전하여주는 위로대상이 취하는 그의 요구의 목적을 직접 대할 수 없는 무감각의 존재로 되어 있음을 자각치 못하니 그 어찌 본창조이상의 위로적 대상 존재인 만물만상에 대하여 연관성을 알지 못하게 되니 인간도 역시 무의미로 보여 지며 동시에 만물 자신에 대한 보호성과 가 치성을 몰라주니 만물의 존재의 근본창조 의의도 파하는 작용이 시작되니 만물의 존재의 근본목적은 아무런 사명적 역할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존재를 몰각하는 생활은 즉 타락생활을 하고나니 전우주는 사람을 위하여서 화동하여서 협조이상을 완성하여 사람과 만물로서 인간이상을 표징시켜 하늘의 이상을 대상적으로 대할 수 있는 제일이상작용을 파하게 되니 제일이상실념인 하늘의 이상도 나와 화동의 작용을 합성화 할 수 있는 자격이 없게되니 이 어찌 무서운 행동이라 아니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사람하나 타락되고보니 만물의 목적이 무가치존재로 타락체를 받게 되고 그러고 보니 하늘과의 대상형 이상근본도 그 목적을 완전히 계승 못하게 되니 사람은 하늘에 대한 타락을 초래한 중심체형으로 되었으니 인간타락은 즉 만물타락 또 하늘 타락으로 간접적 행동으로부터 직접적 행동 부분까지 범행한 사실을 누가 책임을 져야 되는가! 이것이 인간의 중심 책임 과업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온 천주는 탄식의 기인을 가져온 바이다. 성경에도(롬8:19-27) 만물탄식, 성도 탄식 하늘 탄식의 시작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시작된바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타락이 없었더라면 이야말로 천주는 전부가 이상실형 생활로 안정된 영원한 행복생활을 육신생전부터 시작될것이었겠는데 타락됨이 우리 전체생활을 구속생활로 인도함이 금 인간생활의 전현적 표현이다. 그러니 타락전 사람으로 복귀하는 것이 인간책임적 의무이다. 제3 장 무형세계와 유형세계의 동화적 근본의의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무형의 자체가 유형의 성체로 전개시켜 놓은 것이며 그의 각개성체가 사람의 성품자체를 표본삼고 지었으며 그 사람은 다시금 생심을 중심하고 무형의 본형체에로 환존케 하려는 제일존재세계를 부여 하심이 근본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을 중심하고 하나님 자신이 무형체에서 유형체로 환존 할 수 있는 원리로서 창조하심이 근본 중심 목적이다. 하나님=사람+만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영인+육신이다. 영인은 무형체이면서 영원존재이다. 그는 하나님이 영원이니 그도 영원존재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인을 완성하는데는 육신을 터로 주어서 소생으로부터 장성케함이 목적이다. 육체는 만물의 생의 체의 요소를 취케 함이다. 육신은 육심과 육체로 조성되어 있으니 육체 인 유기체는 육심으로 인하여 그 기체에 완전존재체형을 보장키 위하여 노력을 하고 그리하여 생심은 육심이 이상형 체계로 나아갈길을 明示하여 그 이상체계를 탈선 못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생심은 육신배양상 즉 생심의 본노정선으로 이끌고저 함이고 육신은 타락성을 받고 있으며 본로상을 반하여 행동하고자 함이다. 사탄이 작용하는 것은 즉 육신을 통하여 본능적 기관을 통하여 전면적으로 활동무대로 하고 있다. 모든 존재의 생물은 근본생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생력은 완전히 계속작용을 하여만이 생존이란 조건이 성립되는 바이다. 즉 육신이 생하려면 유기체로 식물을 무기체로 공기와 태양을 받아 호흡기동으로부터 심장기동으로 작용할 수 있는 외부적 힘力을 주입받아 생의 기동을 받음이다. 생이 계속하려면은 사람에게는 육신에서는 호흡을 통하여 피血를 맑히는 작용과 피血를 공급하는 작용이 공동적 병조병행하여 수수작용을 계속하여야 하는 동시에 생심에 있어도 또한 실체적 작용과 동일한 제이작용을 요하는 바로되여있다. 즉 생심에 있어도 육신이 생하는 작용을 보장한 그 위에 제이작용을 계속하는 바이다. 그것은 육신이 생심의 영양과 같은 것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이 영양은 생심의 장성할 수 있는 필요소를 수급하여야만이 되는데 생심이 장성할수 있는 필요적 요소야만된다. 이 필요적 요소로 되기 위하여는 생심에 반하는 요소를 허여치 않는다. 그러므로 양심적 입장에서 육신 생의 보장이 요구된다. 그리하여 보장되는 육신생력요소는 생심 요소의 피血의 작용과 같은 작용으로 되어 생의 근본되는 무형세계의 생소를 호흡하여 육신으로 받은 생력요소와 합하여서 완전 수수작용의 보장이 근본적 요구됨을 알아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 인간은 무형세계의 생의 이상요소를 받아야 하는 것이 근본이고 이를 협조 병조하여 무형세계와 유형세계와의 공생기준점으로 시작됨을 알아야만 된다. 사람은 유형 생에서 무형 생의 세계까지 호흡하여 생의 근본요소를 받고 있음으로 이 두 작용을 우리는 아한 자체에서 인식할 수 있는 바이다. 즉 무형의 요소의 장성이 요구되는 충당은 원만한 양심 노상에서만이 시작되는 바의 원리로 되었다. 그러므로 이 작용은 나我를 이기는 힘으로 현실체아에게 강력히 요구하는 바의 실감력이 양심의 활동인인이다. 사람의 가치는 이 근본체와 합할 수 있는 영원생요소를 가짐이고 저 만물은 만물생력이 작용할 수 있는 필요요소를 자연계를 통하여 수수하는 작용 생의 계속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생하다가 사하면 자연계로 환인함이고 사람은 만물보다 제이환원존재가 있으므로 사하면 후, 생이라는 것이 시정되는 바이다. 그래서 우리말에 죽는 것을 돌아갔다고 하는 격언은 이것을 양심직고하는 제이환인생을 증거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영원성 이상을 통함으로 그 양심 고백의 말은 현 세계에 사실적 실체를 예증함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타락된 세상에서도 된다 된다 하면 그것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근본 생심 작용은 영원 본체와 연락하여 그의 계획적 노정을 예감하는 표시로써되는 예고적 사실을 우리 생애노정에서 많이 보는 사실이다. 이는 사람의 영원존재할 수 있는 제일존재의 실체의 확정적 존재를 명백히 알려주는 간접적 증거의 표시다. 제4 장 영인세계와 실체인세계와의 상대성 창조원리 하나님께서 사람은 창조하실때에 자기로부터 분립성으로 표현하심에 창조에는 남성, 여성 즉 양성과 음성 또는 수수작용성 등의 완전히 존립됨에만이 생이 창조되었다. 그런데 사람의 한 존재의 즉 상대성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 한 존재를 다시금 분석하여보면 그 한 존재 각자에 이성형인 성품을 알 수 있다. 한 존재가운데 그 본체인 형상인 영체구조를 찾아볼수 있는바이다. 각 부분에면 부분에서 상대적 유기점을 중심하고 작용의 시작 또는 작용전달 시작 등이 기초로 되어 있음을 우리 사람 하나를 중심하고도 그 자체 중에 하나님 본성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천주의 창조원리를 구분 분별로서 전체구성이 표시발견 할 수 있는 창조화의 원리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하한 관계로부터 이와 같이 창조하심인가. 본래 사람에는 전우주 중심이다. 표현화된 연결성이 표시되었다. 즉 사람은 실체생존을 유지하려면 내한 자체에서 삼부분의 생의 기동작용이 요구되는 바이다. 즉 위의 작용, 심장의 작용, 호흡작용 등이다. 그 외에 대상된 존재로서 신경계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를 중심하고 보면 외부로부터 식물을 받아 영양소를 공급하여 혈을 돕고 즉 받았으니 주는 작용이며 또 심장은 혈을 받아 동맥으로부터 통하여 정맥이 있음을 알수 있다. 또 폐를 통하여서 공기를 받아들였으니 내보내는 작용 등이다. 전부는 수수작용을 원만하게 하여서만이 생의 한 존재를 유지시킬수 있는 체를 가질 수 있다. 이 사람 실체존재와 영인존재와는 한 작용법칙과 같은 원리로서 표징되어 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육신이 생하려면 위부의 동적작용과 심장의 동적작용과 폐의 동적작용이 동일하게 병동병조하는 노선에서만이 기관 동력 전부인 심장을 기동함이 시작을 보게된다. 이 시작은 외부부터 완전 보유하여 주는 무대는 ①은 위를 취하는 실체만물존재 ②는 무형세계의 한 표시적 존재인 공중세계부터의 취하는 호흡작용 또는 광선의 작용 등의 구비됨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환경적 구비체는 창조시부터 우리 영인세계에서도 이 상대 될 수 있는 환경적 구비존재를 상징시킨바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육신이 생하여 생활체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만물의 은택과 공중의 은택을 받아 심장의 동함과 동시에 신경계의 작용을 요케되어 한 존재를 유지한다. 단 심장기관은 동력기관이며 신경계통은 감각기관(기관)이다. 이것이 상호협조하여 한 목적으로 작용성사 완성 시에만이 한 우리 생의 감미를 취케 되나니 이 자체인 구조야말로 우리 영인세계 구조를 표징시켜주느니라. 그러므로 영인의 존재하여 생하려고 할 때에 우리 육신은 우리 육체의 위의 작용과 같은 혈을 돕는 것과 같이 영인이 생장할수 있는 영양요소를 수급하여야 한다. 그러면 이 영양요소는 육신생활 원만으로부터 시작됨이다. 즉 생심요구되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심은 한 폐장과 같은 작용으로 무형공중세계로부터 무형생심요소인 호흡을 시작하여 영인체를 구성코저 함이다. 이것이 구성되면 영인체의 감각성 본체인 하나님의 실체와 연관을 이루어 영인 신경선과 같은 무한 생의 동력을 감각하여 그의 완전존재인 한 분체로서 장성코저함이 중대요구이다. 그리하여 내 자체 한 존재가 완전한 분체존재로서 장성되면 무한대의 생의 이상요소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내한 자체에서 특히 하나님의 사랑의 충족함을 받아 희열과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한 완전한 상대성 존재인 이성체를 요구시키고자 함이 하나님이 사람을 分性하게 지었고 이 分性을 다시금 合成化하게 하고자함이 창조목적이다. 이 합성화를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노정이 한 이상노정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창조받은 만물은 물론이고 그 중 사람도 역시 남성이면 이 존재가 완전 장성하면 여성을 요구하게 되니 이 요구하면서 찾아나아가는 것이 한 행복의 노정으로 되어있다. 이 행복된 노정에 취함에 인간의 최대이상으로 하나님은 창조하였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사랑에 취하며 번식케하여 창조주가 우리를 사랑하는 대신 사랑으로서 자를 사랑하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를 창조코저함이 목적 이상이다. 그러므로 남성 여성이 있고 상대성세계를 창조함이니 그 얼마나 고마운 창조들이랴. 그럼에도 사람은 그들 중에서 최고 이상 영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중심하고 만물을 대하여 완전사랑을 줄 수 있는 중심존재로 되어 있으니 어찌 사랑치 않으랴. 이 원만 사랑을 성사코저 함이 하나님의 근본 인간 대한 사랑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한 하나님의 신경존재와 같은 중심 작용인 대상격 존재다. 기 외 만물은 인간의 신경작용 부분을 자극하여 주는 대상존재로 되어 서로 사랑을 통달시켜 한 중심을 이상 원만 사랑에 처케 하고자 함이 전우주를 하나님이 사랑하는 목적이다. 만물은 사람이 이상 사랑을 하게끔 자극 충동을 보여주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상 사랑으로 발동시키는 존재로 되어야 한다. 하늘은 우리를 위하여 사랑을 주고자하나 그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없고 보니 어찌 하늘이 사람을 사랑하랴. 그러므로 사람이 사랑받지 못하니 만물 역시 그 사랑의 목적도 달성 못함이다. 이런 모순이 타락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이나 만물이나 전부가 번식할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남성은 사랑愛, 여성은 미로서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되는 미의 존재가 요구된다. 그 존재를 소유하여 사랑하는 성교는 즉 창조적 본성 사랑愛인 한 순간이라도 공동하게 절감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곳에서는 생에 대한 기본토대를 작성하느니라. 그 때時에 남성이나 여성이나가 사랑에 대한 취감이 있어서만 또한 조건은 남성의 동맥적 동과 여성의 동맥적 동이 공일 수수하게 되어야만 생의 출발이 시작된다. 즉 임신된다. 동맥고동은 제이존생의 존재의 생의 기동력이 되어 원만하게 수수만족으로부터가 제이 생의 시작은 창조원리로 보아 알아야 한다. 우리 육신 생명도 생겨나기 위하여는 특별한 사랑愛의 수수작용을 통하여만 성립되거든 우리 영인의 생을 받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무한 사랑과 하나 되는 일체 이상 노정을 취하게 될 때에 생의 시작은 물론이고 생의 장성이 있나니 그러므로 우리 사람 자체는 하늘 대하여서는 완전 미의 존재로 나타나야만 된다. 완전 미만 소유하면 완전 사랑愛 즉 하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하여 유동작용의 시작과 같이 흘러들게 되나니 이 작용이 우리 사람에게 미치게 될 때에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게 되며 만물까지도 사람을 존경하게 된다. 하나님은 완전 사랑을 사람에게 하여서 사람으로 하여금 개성체 대상체로 이성을 주어 하늘 사랑의 한 고귀한 표시를 보고자 함이 목적이고, 이 사람이 남성으로부터 여성으로 동체의 사랑愛를 주고받을 적에 하늘에는 그의 사랑의 전성이 하나님의 창조이상형을 들어내게 됨으로 비로소 하늘의 무한 사랑을 인간에게 부여하여 주는 바가 목적이다. 그런데 창조세계가 타락받고 난 후에는 우주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적으로 주고받는 한 존재도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이 존재를 세워 찾고자 함이 목적이다. 이것을 찾아야 만물과 우주가 다시금 소생하는 근본이 생기게 되나니 그런고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역사는 즉 섭리는 여기에 중요요점이 있음이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표시하면 하나님 하나에서 사람 이성(남성+여성)으로 분립시켜서 장성케하여 사랑 이상을 주어 행복케 하는 동시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들의 양성이 일체가 되어서 사랑하는 그 자체들을 볼 적에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는가를 사람에게 알게 하기 위하여서 번식을 주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로 되게 함이 번식체 자식을 위한 부모들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상 사랑하면 이와 같이 귀하게 보여지는 자체가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육신이 있고 영인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에게 육신의 부모와 영의 부모가 딴 존재들과 다르게 소유함이 특유점이다. 이 점이 유함으로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이상세계는 영의 부모를 모시고 각자가 사랑 이상점을 매일 생에 취한 생활이 우리 인생의 이상이며 창조주의 이상이며 영의 아버지 어머니의 이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신 부모가 있는 동시에 영의 부모가 있는 것을 찾아 모셔야만 우리 근본점을 찾아 사는 자가 된다. 그러므로 오늘 세계에 이 근본원리를 밝히지 못한 것을 천명을 통하여 밝히고자 하는 바이다. 먼저 선언하는 바는 영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는 자는 이 원리와 본론에 대하여 사실의 근거점을 알기 위하여 문의하면 그 결정적 자체를 알려 주리라. 제5 장 하나님의 이상 중심은 모시는 종교로 하나님께서 세계를 주관한다면 그 주관은 필연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중심구조를 중심하고 나타날 것은 우리가 상상적으로 추측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세계도 종교이상형태을 가진 국제구조가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된다. 그렇다면 우리 이상은 즉 하나님의 이상이 세계적으로 실현될적에야 인생은 행복으로 살 수 있으며 길이 길이 행복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종교는 세계의 중심으로 움직임을 부인 못한다. 그러하면 현금세계를 볼 적에 세계적 중심을 이루고 나아가는 하나님을 모시는 종교는 무슨 종교인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 종교는 기독교를 잡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그 기독교의 중심진리와 하나님의 이상과는 동일하며 그 이상과 세계와는 동일한 노정을 떠나서 나아갈 수 없는 바이다. 이것이 없다면 종교로 모시는 신의 존재에 대하여서도 다시금 의심치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세계는 하나님을 중심한 국가들이 연합한 국제기구와 반대인, 신이 없다는 국가구조인 공산주의 국가체계가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조물주의 뜻이 완성을 보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여 나아가는 그 존재들은 악신의 주관국가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서로 소유하고자 하는 신적 싸움 즉 하나님과 악신 사탄과의 사람을 찾고자 함의 하나님의 뜻을 반하여 사람을 빼앗기지 않고자 하는 사탄의 반상이 즉 현대 조류의 진상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하나이니 하나님은 기필코 천주로 하여금 그 뜻을 성사함의 목적이 달성되는 데까지는 전쟁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선악의 분기가 먼저 문제로 우리가 고심하여도 해결할 수 없는 사실이며 어찌하여 지금 세계까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근본문제 등등을 찾아보아서 누구나 전인류는 하나님의 근본뜻과 그 이상을 전력 다하여 협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책임적 의무의 근본 등등을 밝히기로 하여보자.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독교를 세워 인류를 대한 섭리노정과 기독교의 지금까지 감추어진 진리의 근본문제 등등이 명백히 나타나야만 된다 이 사실이 나타나면 말세인 동시에 우주적 심판시기는 초래하는 사실의 근거 등등을 알아야 한다. 끝날이 되면 성경도 완성하여야만 될터인데 성경의 근본문제가 명백히 되지 않는다면 말세라고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재림이라는 명사조차 성사치 못한다. 재림되기 전에 성경중심 근본을 해결하여만 되는 것이 현기독교 신자의 중대한 문제이면서 세계 신학계의 중대과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전세계의 신자들에 대하여서 이 근본문제를 밝혀서 선포치 않을 수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로 자기를 찾아 나오는 신앙생활노정에 반대된다고 반대하지말지어다. 먼저 직접 하나님의 교시를 받는 신자들은 밝힘을 받아 이를 지지하여 뜻 완성에 협조하여야할 중대의무를 알아야 한다. 누가 먼저 본시적으로 알고 모시는 자는 저 나라에서 큰 영광의 존재일 것이며 세상에서도 그 존시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근본을 알고 나면 우리는 여하하게 행동하여야하는가가 중대 책임감이다. 이리하여서 우리는 뜻 실현하는데 협조할 근본의의도 잘알면서 급속한 시일로 실현을 피하면 하나님 앞에 범행이라 아니할수 없다. 모르면 용서받지만 알면 책임사명에 대하여 각자는 전부를 봉헌하여 기쁨으로 나아가야만 된다. 그러야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고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그 목적은 우리 인생이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는데서 완성된다.(5.22 기?년 기념일 기)(51. 10. 1 정서 소자) 제 2 편 창조원리와 타락섭리 제 1 장 창조원리와 타락원리는 사랑에서 시작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심도 자기자신이 지극한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함이었다. 즉 하나님은 중화성으로 계시는 본형상를 분성화 하신 것이 사람 창조며 만물창조의 표징이다. 하나님은 분성을 보게 될 때에 지극한 사랑을 현실화 시키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만물전부는 하나님의 이상을 더욱 미화하기 위하여서 만물을 지으셨다. 만물체에서 사랑성을 볼수 있게 되니 그 본성인 사랑 이상을 표징시켜 내부로는 외부부터 표징 체계로 전하여주는 자극을 가하여 내부자극을 조장시켜서 내부적으로 더 높은 사랑 즉 어떤 만물에서도 볼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을 할수 있도록 사람을 지으신 것이다. 다시말하면 사람의 사랑은 어느 만물성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사랑성을 갖고 있게 지으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 사랑성을 원만히 가져야할 목적이었는데 그 목적의 원만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타락성의 출발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 나타나고 사람의 사랑을 만물에게 표징되어 미적세계를 이루어 온 천주는 화동하여 일체적 희락을 보이고저 함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 천주 이상의 극국의 중심이며 또 희락과 행복과 만족과 주륜과 근본이니 그 사랑을 사람과 만물과 하늘 천사들이 즐겨 사모하면서 더욱 많이 받고자 함이 직접적 요구였었다. 그러면 인간세계에는 선악이 없어야 할 것이었는데 선악의 시작도 사랑을 중심하고 되었었다. 즉 선은 하나님의 사랑 권내며, 악은 하나님의 사랑 권외다. 본래 선의 세계뿐이만이 목적이었는데 악의 세계의 출현이 즉 타락이 거래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천당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천당은 선의 세계 즉 하나님의 사랑 권내요, 지옥은 악의 세계 하나님의 사랑 권외의 세계니 즉 사망세계라고도 한다. 그것은 생명의 근본 하나님 사랑을 떠난 세계이므로 그렇게 부른다. 그러면 인간의 타락근본과 악의 기원점은 성경을 비추어 또는 악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등을 밝히기로 하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때에 선을 중심하고 지으셨다. 선은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존 재요 선에는 하나님이 영원하심과 같이 영원성이 있는 동시에 사랑 이상성을 완성한 근본존재다. 창세기를 살펴 볼 적에 모세가 기록할 때 알려주신 창조설을 그 본의대로 발표키 위한 것이 아니고 즉 문자 그대로가 아니고 영적으로 미래에 대한 비밀을 두고 교시한 바이었다. 그 당시에는 근본을 밝혀서 발표할 수 없었든 것은 그 당시 인간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창세기 창조설 가운데에서 보여주는 타락 근본자체인 선악과를 근본 존재케함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타락이 시작된다는 논리는 너무나 다 잘아는 사실이다. 그 외에 뱀蛇의 존재와 해와의 유인이 그 근본 중심들이다. 그러면 이 사실의 사실은 사실이나 그 근본의의에 있어서는 큰 문제로 되어 인간세상의 중대한 난관의 화제거리였다. 사람은 묻기를 하나님은 능력이시며 알지 못함이 없으시며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시다는데 왜 타락되게 하며 또 타락적 요소를 배치케 하였는가? 등등을 살펴 볼 적에 하나님은 사랑이니 무엇이니 한들 근본적으로 악이 시작을 하게끔 지어 놓고는 무엇이 선하라 선하라 하고 인간 대하여 한다고 누구나 문제의 초점으로 말하고 있다. 악의 주인공은 사탄인 동시에 역적된 천사이며 그 존재에 있어서는 누시엘 천사장의 일명의 시작이 있음을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탄이 근본 역적될 수 있게 하나님이 지으셨는가. 그 천사장은 왜 주관못하였는가 중대문제이다. 창세기 3장을 잘 보면 1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야수 중에 뱀蛇이 가장 간교한지라, 뱀이 여인에게 일러 가로되 하나님이 동산의 과실을 따 먹지말라고 하시드냐”고 물은 것이 뱀이 타락케 하는 시작이었는데, 잘 보면 뱀에게 이 사탄이 들어가서 운운한 구절이 없나니, 그래서 뱀이자 즉 사탄임을 알수 있다. 사탄의 존재가 즉 뱀으로 표시됨을 알아야 한다. 즉 뱀은 사탄이며 사탄은 즉 누시엘이다. 뱀이라는 명사를 빌려서 유인 대상의 표시격에 흡사함으로 이런 표시적으로 사용한 명사인 것이지 그 자체가 뱀蛇이 아니다. 현 신자들은 기 자체가 뱀으로부터 유인받게 된 줄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벌써 인간에게는 타락시킬 권한없는 존재로서 사탄은 유인 노정을 성사코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벌써부터 만물에 대한 주관을 부여받고 지었기 때문에 사탄도 이것을 알 터인데 주관받을 뱀 가지고 유인공작을 하리라고는 생각되지도 않는 사실이다. 설마 유인하려면 더 고귀한 격의 존재로만이 필요함을 우리는 상식적 판단으로도 명백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아직까지 하나님의 근본진리노정을 밝히지 아니 하였기에 지금까지 확실한 근거를 잡기 못하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다 되었으니 세상에서 성사하여야 할 시기도 왔으니 필연코 역사적으로 미분명한 차 창조근본과 타락근본의 출발점을 밝혀야만 하나님의 뜻이 성사될 시기를 알려주는 것이니 반드시 근본을 표시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세상을 찾고자하는 하나님은 사람의 근본으로부터 섭리의 근본문제의 뿌리(근)가 되는 것이므로, 지금 세상에는 뿌리를 요하는 말세기라고도 부르는 시기에 당도하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새로 온 천주에 발표하는 바이다. 본래 하나님은 무형세계에 계셔서 천사 등을 지으시고 다시금 유형만물실체세계를 하늘 무형세계의 그림자 모양으로 지으시기 시작하였다. 만물유형실체세계를 지으시기 전에 천사를 지으심은, 하나님의 유형실체이상 세계 창조함을 돕게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로 문의와 의논의 상대로 하여 왔든 것이었다. 천사 등 중에는 천사장이 있었다. 그 천사장이 즉 역적 궤도를 밟게 된 누시엘이었다. 천사 등을 지으심은 유형실체세계를 지어 하나님의 이상 전개할 세계를 도와주면서 협조적 존재로 지으셨고 그리하여 이 실체 세계와의 이상의 시작을 보게 될 때에 역시 천사세계도 이상을 부여받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의 근본의의는 천사도 알지 못하였든 것이었다. 만물실체세계가 실현되면 하나님은 물론이고 천사들까지도 기쁨이 되어 온 천주는 하나님의 이상 기쁨에 충만하여 그야말로 이상세계를 조성코저 함이 목적이었는데 목적이 미도달시에 타락이라는 비공식적 존재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즉 누시엘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됨이다. 이 행동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무한의 고통의 근본이 되어 시작하였다. 이것이 즉 지옥분기의 시작점이다. 즉 죄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본래 만물을 지으실 때에 그 본의는 하나님의 본형전개면서 본성전개와 모든 각만물자체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근본을 상징하는 개성진리체로 되어 근본진리체되는 하나님의 본성품의 표시가 충분히 요구됨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유일이며 영원이며 불변의 존재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리의 근본이며 진리의 중대삼요소란 유일성, 영원성, 불변성을 지음 받은 만물로 구비하여 이성적 생활형태를 보장될수 있어야만 된다. 그러므로 만물에로 하나님의 성품이 표시될수 있는 개성진리형태를 갖추어 지으셨다. 그러므로 이 개성진리체로 지으시기 위하여는 소생으로부터 장성으로 장성으로부터 완성으로 되는 계급을 두어서 조성하였다. 한 존재가 완성존재로 되려면 소생이 시작을 보아 장성으로 장성을 다하여 완성으로서 만물을 궤도내를 통하여서 창조받게 되었다. 다시 표시하면 ①진리에는 소생이 있고 장성이 있고 완성이 있다. 이와 같은 시기적 과정을 경과하여야만이 한 진리체가 완성된다. ② 진리에는 유일성, 영원성,불변성이 있어서만이 하나님이 지으신 선에 속하여 이상존재물로서 취급하게 되어있다. 제 1 절 어떻게 지으셨나 말씀(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었다고 하시었지만 그 말씀言이란 명사 그대로가 아니라 말씀이라는 명사 가운데는 하나님의 이상의 한 표시체의 증거로 되어 이상을 그대로 딴 존재물로 실현시키고자 함에 말씀(言)의 중요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 2절에 말씀言이란 태초에 하나님과 같이 계셔서 말씀言으로 만물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물건이 말씀言이 없이는 지으신 것이 하나도 없나니라. 이 말씀言이란 의의는 하나님의 이상인 제일존재의 마음적 계획을 말씀을 통하여 제이존재의 확립을 요한 중매적 분담과정 기간이 말씀이 점유한 부분이기 때문에 말씀이라고 표시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말하는 바는 마음의 실상이 제이실체실상을 완성코져 하는 것이 중심목적이다. 말씀으로 지으셨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이상형을 그대로 만물실체형으로 전개시켰기에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말씀이 실현되는 곳에 이상이 전개되는 것이 근본말씀의 목적임으로 이런 명사를 대용하신바를 알 수 있는 바이며 또 사실적 의의로 되어있다.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셨다고 하는 것은 벌써 하나님이 직접자기의 체로 되어있는 제이존재성을 알려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형태와 성상을 그대로 벌려 놓았다는 의의가 있단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상대성을 말하면서 음양성을 말하는 바를 알려주는 사실이다. 이 말씀이라는 의의는 여기에 시작되는 바이다. 이 말씀에 대한 의의가 지금까지는 해득이 난한 문제이었지만 창조원리를 살펴볼 적에 아무런 난한 문제가 아니고 사실적 실체로서 취급되는 바이다. 이러한 의의를 두고 만물을 지으셨기에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선언하심이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무엇이 있으라 하시면 그대로 된지라 그대로 된 존재에 대해서 선하신지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몇째 날이더라 하신 구절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절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몇째 날이더라 하는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저녁부터 아침까지를 하루로 잡고 있는데 그것을 세상적으로 살펴보면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으면 날수는 이틀인데 왜 한날로 하였나 하면 여기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 기간은 한 개체의 존재가 창조될 때에 소생으로부터 장성으로 장성으로부터 완성까지에 도달한 개체존재가 하나님의 뜻에 합치될때에 선하신지라고 명명하시었다. 그러기에 그 기간은 시완할 수 없는 것이다. 저녁이라 하신바는 한 개체물이 창조하심을 필하시든 때를 두고 말함이다. 즉 한 피조물체를 중심하고 말함이다. 아침이라 하는 것은 한 밤 시기를 지나서만이 오는 바인데 이 아침이라고 하는 것이 이 물체가 완성되어 새출발하는 것을 아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존재물이라도 저녁서부터 밤 기간을 통과치 않으면 안되었었다. 이 기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통과하여서만이 하나님께서 선하신지라 하시었다. 그러면 이 밤 기간이란 무엇일까 하면 피조물은 한 진리체로서 영원하면서 불변하며 불변하면서도 또 이상형을 표시할 수 있는 존재로 되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한 시험기간이 즉 밤 기간이다고 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한 시험기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결과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존재로 보게 되어서 만이 선하신지라고 명명하심이다. 이 선이라고 하는 말씀중에는 하나님의 지으신 물건은 영원할 수 있어하는 완전 대상존재임을 말하심이다. 이렇게 만물을 5일간 지은 물건은 무엇이나 저희가 밤과 아침 기간을 하나님의 뜻에 알맞게 통과치 않으면 선하다고 명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하신지라고 명명받은 바가 창조하심을 받은 만물의 한 공통적 노정이었다. 그런데 제6일째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대 일남일녀를 창조하시고』라고 창세기 1장 27절에 있는 것을 보아도 전에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 속에는 여성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음받은 인간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존재임으로 창조함을 받은 모든 물건이 통과한 공통적 창조과정을 다 원만하게 통과하여만이 주관격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바이니 사람 역시 이 저녁기간되는 지음받음을 필하고는 밤기간과 같은 시험기간이 있고 그 시험기간을 통과한 후 아침 기간부터 만물 주관이상의 근본출발코저 함이 근본목적으로 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만물주관을 하라는 예약을 받고 난 후 실제주관으로 한 밤기간인 시험기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아침기간에서부터 이상기간이었는데 이 밤 기간에 사람은 타락적 유인을 받게 되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 밤 기간은 어떤 기간이었는가 하면 소년시기로부터 장성하여 성숙시까지 인지라. 성숙시부터 이상사랑을 할 수 있는 격을 완성할 때까지가 그 밤 기간이 요구하는 기간이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선하신지라 한 것은 만물통합하여서 말씀하신 바이지 특히 사람만을 중심하고 심히 선한지라 함이 아니다. 즉 사람에게 있어서는 밤 시기를 통과치 않았을 때에 심히 선하셨다고 하였기에 그 선이란 것은 예약적 선이지 실격적 선이란 명명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만물을 주관하라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만물의 전부를 주관할 수 있는 실격부여를 이루고저 함이 밤 기간이 요구하는 기간이었다. 만물을 주관하려함의 근본목적은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화하는 목적이었다. 그 주관할 수 있는 존재 아담 해와는 만물의 전부를 주관할 수 있는 권한과 그의 자격격위는 어디서 받을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 목적은 즉 하나님으로부터이었다. 그런고로 만물주관완성자는 하나 님이었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만물의 주관주인격으로 주신바의 근본의의는 누구를 상징시키냐 하면 하나님을 상징시키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근본 사람을 창조하신 의의는 실체만물 주관자로 지음 받은 아담 해와가 실체를 가지신 하나님의 몸들이었다. 그리하여 천주를 친히 하나님 자신이 주관코저 함이 목적으로 창조함을 받았다. 만물의 주인공 되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존재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타락되고 보니 그에게 달린 만물은 근본주인을 잃어버린 존재로 되었다. 제2 절 그렇다면 타락의 시작을 알아보자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기 전에는 무형세계의 천사들은 천사장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았다. 그때 천사장 누시엘은 하나님의 여러 가지로 의논상대로 되었고 전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의 생명의 근본이면서도 모든 행복과 요소이었다. 하나님이 무형세계를 지어놓고 천사들로 협조하게 하면서 실체만물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유형실체세계를 지으심은 무형실체의 자기의 존재를 유형실체세계를 통하여 번식의 터로 하시고자 하심이 목적이었는데 그 중심이상은 하나님만이 알고 천사장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유형실체세계를 창조하시매 자기 이상의 전개와 함께 기뻐하며 동시에 천사장도 기뻐하였다. 그런데 만물의 주인공격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하나님은 아담, 해와에 대하여도 사랑을 하시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서 천사장에 대하여는 대하는 일이나, 사랑하는 일이나 멀리 함이 아니었는데 천사장 누시엘은 아담 해와가 존재하지 않으실 때보다 자기 자체에 있어서는 더욱 만족감을 느껴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아담, 해와가 받으니 자기에게 대한 사랑의 감소되는 감을 느껴서 다시금 이런 감도 느끼지 않는 동시에 사람에게까지 가는 사랑을 자기가 소유하려는 마음으로 공작함이 시작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해와를 지극히 사랑하시니 그 해와 자체를 자기 소유로하고자 하여서 천사장 누시엘은 아직 성숙치 않 은 해와를 대해서 유인키 시작하였다. 창세기 2장 9절에『생명수와 선악과수가 있더라 하시니 무엇인가 하니 생명수는 (양)아담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표시함이고 선악과수는 (음)해와를 표시함이다.』천사장이 해와를 보니 아름다우매 과연 하나님이 사랑할만한 존재이었다. 이 해와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매 그 사랑을 빼앗기 위하여 해와의 사랑의 실체인 정조를 소유할 공작을 시작하니 천사장 누시엘은 하나님이 허락치 않는 행동을 시작하매 그 자체의 마음에는 공포심과 원리적 가책이 있었다. 공포심을 가지고 해와의 사랑을 소유하려 하기 위하여서 해와의 정조를 유린하고 보니 누시엘의 마음에 있는 공포심과 동시에 천사장의 지혜가 해와와 사랑의 일체를 이루고 나니 해와는 천사장의 지혜 소유자가 되는 동시에 공포의 마음을 자극받았다. 그리고 보니 해와는 미성숙기에 있었지만 자체의 지혜가 밝아짐을 통하여보니 해와의 자기의 남편은 아담이라 하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담이 자기의 남편이므로 다시금 남편대로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와는 아담한테 사랑을 강요하게된다. 그 강요하는 해와의 지각을 피치 못하고 그의 요구에 응하니 벌써 해와의 공포심 아담에게도 생기게 되어 하나님의 법리탈선함을 알게 되니 아담 해와는 나무 아래에 숨게 되는 행동이 시작되어 무화과나무 잎으로 범행한 부분을 가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하나님과 직접 사랑의 일체를 이루어야 할 목적이 근본이었는데 비원리 존재인 천사장 누시엘과 사랑의 일체를 받아 비원리적 타락 시작을 보게 됨이다. 그러나 타락이란 근본 시작에 있어서는 하나님한테 더 사랑 받고자 하여 행한 행동의 결과가 되었다. 누시엘은 사람에게 가는 사랑까지 소유코저 함이고, 해와는 근본 아담의 사랑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행동에서 아담을 주관하고 나니 비원리 출발이 시작됨이다. 이 해와의 행동으로 인하야 하나님의 근본목적을 파하는 행동이 시작되었기에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는 여인들이 파멸과 압제와 무시에서 하나님이 미워하는 입장에 있게되어 여자들이 인류 역사상 부자유 한 구속에서 나온바도 근본 여인 대표 해와의 실수로 인한 보응이었다. 지금 와서야 남녀 평등 권한이 생기는 것은 역사발전 시작과 동시에 시작을 보아야 할 것이었는데 이와 같이 진행 됨은 타락이 초래한 선물이었다. 그런고로 남녀 평등 권한이 시작됨은 인간이 타락전 궤도에 설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 대하여 사랑 받을 수 있는 한 해와의 완전 존재가 시작을 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류역사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복귀역사라는 것을 이 한 사실을 보아도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근본이 타락의 기원점인데 만일 사람이 선악과를 손으로 따먹었으면 그 부분을 가릴 터인데 이 부분을 가렸음은 이 부분으로 범죄한 자체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자체이었다. 본래 지음 받은 몸에 있어서는 선으로 지음 받았는데 어디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아니었는데 이런 부끄러운 부분의 구별은 타락 본체부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해와의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이라는 출발이 시작되어 악의 기본이 되었다. 선악과라고 하심은 만약 하나님의 뜻대로 성숙하여 이상격 사랑愛를 주고 받을 존재로 된 후에 하나님의 신이 아담 마음에 임재하여서 사랑 성사하였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만물 주인공으로 완비되는 동시에 이것이 이상이련만, 그와 반대의 행동이야 탄식치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해와의 사랑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 즉 아담 사랑 받았으면 지극히 선한 근본을 시작하는 열매果의 행동이 시작하여 영원생이 될것이었는데 그 반대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악의 근본의 열매果의 행동이 해와의 사랑에 달려서 시작한 자체이니 선악과로 표시한 바이다. 과(열매)라는 말은 씨라는 뜻이다. 선의 씨도 해와와 사랑 일체로부터인데 악의 씨로 되고 보니 해와의 행동을 누가 탄식치 않으랴. 그런고로 여인이 지금까지 구속받고 있는 사실은 그 원인으로 시작된다. 이 구속이 해방되어 평등시기가 오면 재림시가 가까워온 줄도 알 수 있는 원인이다. 그런고로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라고 하는 명사가 무엇이냐하면 즉 하나님 아담 해와가 완전하게 일체가 되어야 할 중심의의를 두고 말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사람과는 부자지관계로 되어있다. 하늘 중심한 삼위일체가 악 중심하고 삼위일체가 되고 마니 악세계인 사탄 세계에도 삼위일체가 있는 바이다. 그리하여 사탄은 우리 사람의 부격으로 대입받아 불순, 불신, 불시의 한 본체로 역사한 셈이다. 신약에 보면 예수도 불순, 불신, 불시자를 대하여 요한복음 8장44절에 책망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너희들의 아버지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들은 너희 아버지의 욕심을 행하고자 하느니라” 하시었다. 이 말씀은 타락근본의 주인격의 본체는 사탄이라하는 것을 밝히 말한 것이다. 그러기에 뱀이란 사탄이를 표시한바를 밝히는 것이며 또 해와를 대하여 정조를 빼앗어 거짓 아버지 격으로 되었다는 것을 밝히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원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알고 다시금 본 아버지를 찾아 모시게 하려는 노정이 구원노정이다. 아담 해와가 범죄하고 보니 본래 아담 해와에게 주입하여준 하나님의 근본자체인 터 즉 생심을 중심하고 장성하여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터, 자체 즉 아담의 영인체는 악을 범한 자체의 몸에 있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거두심이었다. 그런고로 범죄하기 전에 영인체 자체가 하나님 우편에 계셨다가 제이 아담 격으로 모내심을 받은 그 분이 즉 독생자 예수였다. 독생자라는 명사도 여기에 명백하게 되는 바이다. 죄를 짓기 전 아담의 영이 예수의 영에 주입받아 오심이 근본목적이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죄를 짓기 전 아담의 완전 성숙한 존재로 나타나서 복음을 시작하심은 무슨 목적이냐하면 잃어버린 자녀들을 다시금 찾아서 타락전 하나님의 자녀로 찾아 옮겨 놓고자 함이 근본목적이다. 그런고로 오늘 인간은 원수의 몸에서 구속받고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사니 그 양심적 고통은 이 사실을 알려주는 간접적 자극 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의 품으로 옮겨 놓아 하나님을 근본아버지로 직계혈통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될 중대 책임이 남아 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성사를 완성치 못하였기에 재림의 요구가 되게 되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악의 피血을 받았으니 양자의 관계로서 근본혈을 받아서 소생되어 창조이상인 부모를 복귀함이 우리 인간의 전목적이다. 탄식할바는 양자와 같은 존재로된 우리들이 생각하면 고통지사라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이 악으로 인하여 시작되니 이런 명사가 생기였구나. 우리 근본 아버지는 영원의 아버지이며 사랑하여 찾아주신 아버지시다. 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모시며 또 어머님을 모시는 그 시기 즉 지상의 재창조이상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알아서 아버지 어머니를 다시 찾는 그 기쁨이 온 천주를 찾고자 함의 근본목적이다. 이 목적은 재림시부터 시작된다. 제3 절 왜 타락케 하였는가 하나님이 본래 사람을 지으심은 개성실체가 완성하여서 영원할 수 있는 한 이상존재를 보존할 수 있도록 지으셨는데 그 시기까지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성숙시기까지가 표준장성하여 영원하신 존재의 터를 확보함으로써 하나님의 실체 사랑을 주고자 함이 목적이다. 그 기간까지 장성을 통하여 완성까지 도달케 하심은 직접 하나님이 주관으로 하심이 아니고 그저 피창조물원리를 통하여서 완성 성숙단계까지 도달케 하시도록 지으시었기에 하나님은 원리 주관격으로 계시어 그 결과를 보아가면서 하나님은 기뻐하시었으며 빨리 이상 감필함을 지극히 요구하였다. 그리하고 하나님의 사람 대한 이상은 즉 하나님의 이상은 자유이상을 표준하시고자함을 지으셨으며 그 이상에는 조금도 손실이 없도록 지으셨다. 그러므로 그 자유이상을 찾아 성사할 수 있는 표준궤도는 선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사할 수 있는 존재의 터, 생심이 사람 자신에게 있어서 부여받은 근본체 터로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완성기까지에 도달할 때까지도 하나님이 이러구 저러구(여러 모양으로) 자유이상완성을 간섭하지 않아도 뜻이 합당할 수 있도록 양심과 생심 은 그 중심 뜻(선)을 직향하여 나아가도록 지향하여 가게끔 원리지으셨기에 간섭 주관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일존재의 완성을 무시하는 것인 동시에 원리를 어기는 것이 됨으로 원리완성하여 뜻 성사코자함이 근본으로 됨이었다. 만일 하나님이 그 자체를 직접 주관하여 사랑하지 않았든가 하면 하나님은 원리를 미완성하여 개성자체를 미완성한 것을 사랑하여 일체적 이상을 성사하였으면 미완성체의 불완전적 사실이 됨으로 그 근본 원리기준까지를 기다리심이 중심의 의의이었다. 만일 미완성시에 사랑 받으면 사랑 받는 그 자체는 사랑만을 요구하여 근본개성원리완성을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원리규정을 반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나 사랑하는 자체가 즉 이상 사랑을 성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을 지극한 사랑 이상형체를 완성코저 함이었든 것이다. 사람이 완전한 하나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하였으면 원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완전 미로서 보여질 수 있는 동시에 그 자체들의 사모함이 직접 하나님의 자체에로서 통할 수 있는 작용의 시작을 볼 수 있게 지으셨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계셔서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이 완성되면 자연적 원리로 사랑할 수 있는 자극을 알아서 사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즉 하늘 사랑은 양이면서, 완전음적 사랑 대상본체요 사람이 사모하는 사랑 마음心의 기동의 목적은 기 상대존재이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하나님은 원리주관격으로 계셨다. 그 시기에 사람들의 타락이 시작되었다. 사람도 자유궤도로 천사장도 자유이상궤도 세계의 원리로 활동하면서 살 수 있는 자유존재들이었다. 그 자유 이상 중심한 자유성사세계를 조성하여서 기 창조 전자유이상을 완성하기 위하여서 개성완성과 자유체 이상세계 존재들이 하나님의 근본 이상이었다. 그러면 자유이상을 완성하여야만이 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자유이상을 기대로 하고 기 위에다 사랑 이상 원리 창조체들이 영원존재하여 하나님의 근본사랑 이상을 표현화하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세계에서 자유찾기 위하여 야단하는 그 원인은 타락한 연고이다. 이 자유를 찾으면 이상자유를, 자유이상 갖고 찾으면 사랑으로써 이상사랑으로 역사는 필연적 궤도를 밟게 될 것이다. 그것은 원리를 보아서도 이론적이 가져다주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자유와 사랑 이상이 한 기대로 하여 개성완성을 요하는 곳으로 인류역사가 흘러 나가는 것의 시작을 보는 이것은 복귀로 되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타락시켰는가 하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유무대의 세계에서 자유생활하면서 완성점 도달시까지는 원리주관이니, 그 자체들의 행동을 직접 간섭치 않고 양심과 생심을 통하여 본노선확보를 요하게 하였기에 사람으로서도 하나님을 직접 부를 수 없는 원리적 거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고로 부를 수 있는 정도는 완성 사랑을 성사하여야만이 생각하여도 하나님을 알게 되며 응하게 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직접적으로 알리려는 사람 자체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그 행동의 결과만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사탄의 행동에 동하는 기시에는 사람이 양심적으로나 생심적으로나 합하여 행동하여서 하나님이 직접 자극할 수 있는 행동으로는 아직까지 미도달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행동결과를 보아 기 타락된 사실을 아시게 되신 것이었다. 이렇게 지으심은 완전한 사랑을 하기 위하여 간접적 거리성을 두신 것은 극에 계시는 하나님이 사람도 유형체의 축의 존재로 서 있어 서로 합체할 수 있는 전기원리와 한가지로 지극히 큰 사랑을 시작코저 함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라고 한다면 사람 사랑 (-)는 직접 대할 수 있는 것으로 존재 완성이 미완성한 기이니 타락행동들은 (-)에 작용함이었다하여도, 직접적 감응되지 못한 것과 같이 지으신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자체로서는 극에서 축의 고내를 통하는 사랑을 하시고자 하여서 지었기에 만물자체들의 사랑까지 인간을 통하여야만이 연결되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사랑의 미성사가 타락이면서 선에 존재 외의 존재인 비원리존재가 법리무대로 출현하여지게 되니 선과 악의 분기점을 성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사람이 중심이니 이 사람의 번식발전과 함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발전하는 세계의 역사의 궤도는 자연계의 원리적 움직임 위에 그냥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세계는 악에 속하는 주관본의 아닌 비공식 주관궤도로 무목적 세계로 달리는 예로 시작되니 그 세계의 생존한 사람은 어찌 안락과 평안이 있으랴? 이렇게 됨바는 사탄의 공작이라고 지금 알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를 타목적처로서 끌어온 기 중심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생은 무한 고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됨은 창조본의 아니매 하나님은 본의대로 다시금 찾아 창조본의 이상체하로 회귀하고자 함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한 노정이다. 그런고로 사람 중심하고 선신과 악신이 대립을 시작한 결과는 역사 발전사를 지배하게 되었다. 즉 사탄은 원수 부모격으로 사람을 주관하고자 함이고 하나님은 근본 자녀를 찾고자 함이 목적이다. 이것을 안 우리는 어찌 아버지 어머니 앞에 회개치 않으랴. 이것이 이 기독교의 회개의 근본의의다. 그러므로 근본회개하지 않을 내(우리) 존재가 지금 회개하는 것은 참 부모를 몰라보고 박대함의 심중으로 통분한 사실을 알게하는 결합의 정경이다. 이 시간의 기쁨이야 무엇으로 살수 있을 건가. 그러고 보니 근본만사는 평안으로 원리로 시작되며 양심적 해방의 시작이요, 참 기쁨의 시작이다. 새 복음 중심이다. 이같이 세상은 악이 먼저 시작하였기에 그 뒤를 이어 선완성을 이루고저 함이 목적하는 하나님의 뜻이요 또 하지 않으면 아니될 의무이니 기필코 성사 시까지 하늘은 승리하고야 만다. 그러므로 세상은 지금 악이 주관하는 시기이니 악자승 세계에는 선자들이 많이 밟히고 있다. 세상에는 거짓것이 먼저 왔다가는 것이 세상이 보여주는 지금 현사회의 실상이다. 그 후로 선이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로 지음받은 온 천주는 이 뜻 성사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현기독인이 알지 못하는 것이 통분지사이다. 악이 시작하였으니 그도 원리노정을 밟아 결실하여야만 된다. 그런고로 악의 완성시기가 즉 기독교의 말세시기인 재림시이다. 세상이 절대로 없어지는 바가 아니고 세상에서 지상천국을 완성하여만이 근본목적이다. 그런고로 오시는 주도 완성주로 사람 몸을 쓰시고 오신다. 그것은 원리보아도 알 수 있는 바이다. 즉 육신완성을 못하였기에 근본을 찾아 맞추는 시기가 말세며 심판시기이다. 즉 근본 사람, 아담 해와를 찾아야 되며 선을 찾아 터로 세워야 되는 시기가 말세다. 그러니 악은 자기본체의 노정으로 향하기 시작하는 때時가 즉 말세다. 이상의 원리를 살펴 볼 적에 하나님은 원리를 통하여 만사를 성사하고자 함이 근본의의이다. 그러므로 사탄까지 강제굴복을 요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굴복을 요하며 6천년 역사를 나오심은 전원리창조세계를 완전히 찾고자 함이니 그래야만 원리창조세계 창조 이상체를 시작할 수 있으니 사탄까지 자유행동케 하심을 잘알아야 한다. 성경역사를 통하여서 사탄이 하나님께 대하여 말한 것이든가 참소함이든가 예수의 시험이라든가 등등을 보아도 그 자유허락 이상무대를 근본의의로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바로를 강퍅하게 하심도 완전굴복과 자유굴복을 요하신 까닭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그 결과적 행동 여하를 갖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신 사실은 인간이 근본 자유행동 결과를 주관함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전우주이상과 천주이상을 완성하고자 하여서 지금까지 고심하시는 그 자체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우리들에 있어서는 극심을 다하야 근본 창조이상을 완성하여야 할 책임을 각자가 다하여야 할 것이다. 제 2 장 하나님은 나를 알므로 알 수 있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근본에 대하여 까지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 과연 기 자체가 명백하여서 천주의 전부를 원만하게 이해하고자 함에서 시작이라고는 할 수 있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람은 하나님에서 시작하였으며 만물도 역시 하나님부터라고 시정할 수 있지만 근본되는 하나님은 여하하게 시작하였으며 그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의 근본보다도 실제문제는 제일 가까운데 있는 자기가 문제이다. 현실 자기의 존재의 근본을 안 후에야 다음 문제 하나님으로 옮겨져야 할 사실인데 자기의 존재의 근본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존재의 여하를 말한댓자 기 자체는 예를 들면 공식의 근본단위로 될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단위수로 있는 자체의 문제를 확정하여야만이 기 공식의 제일보 응용의 시작을 계속하여 광대한 기본공식과 연결도 지을 수 있으면서 기 자체의 공식도 물론 명백하여지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먼저 한 단위체의 공식 근본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자아의 한 존재만 확정하면 기타의 존재결정은 여실한 결과로서도 추측하여 그로 미쳐지는 근본자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고로 사람들은 자기들이 유나 무나 하는 것을 먼저 의심하여야 할 사실이 근본으로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자기가 있다면 무엇 보아서 알 수 있는가. 양심보아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감각을 보아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체형을 보아서인가 하는 데에서 문제는 시작되는데 양심과 감각과 체형이 유라고 하면 무엇을 표준잡고 말하는가를 다시금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유라고 하는 것과 무라고 하는 것은 최초의 분기점을 무엇으로 잡고 있는가가 생각할 중요문제이다. 유하다면 상대인 무하다는 것을 연상시키는 사실인데 사람들이 유하다는 그 자체는 무엇을 표준하고 시작케 되며 그 시작은 어느 한도까지 확대하고자 하는가. 또 그와 반면에 무하다는 것도 어느 한도의 무를 규정하고자 하는가가 문제이다. 무하다면 실체 무한 존재는 시작점을 잡아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고로 사람 자체들이 무하거니 유하거니 하는 것은 어느 한 존재를 벌써 유에 처케하든가. 무에 처케 하든가의 실재 존재를 규정지은 위에서 말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내가 있다고 하는데는 무한 실체에 대하여서 성립되는 명사이다. 그렇다면 무는 어디에 한 가부존재의 근본결정을 지어주는 한 중심존재는 무엇인가가 요구되는 바인데 이 존재는 자기를 전제조건으로 규정한 기반위에 서 시작하였기에 유무의 결정적 판결을 내리는 행례가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범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은 자기를 중심하고 있는 사실을 생각치 않고 타 자체에로부터의 시작점을 보고서 하는데에서 여러 가지 존재의 확정을 알 수 없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자기가 한 무한유와 무한무와의 중간존재이며 한 공식단위체형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이 금일 사람들이 짊어진 과업이다. 그러므로 유하고 하는 것은 자체가 양심으로나 감각으로나 체형상으로나 실정할 수 있는 사실들을 부정 못함으로 유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자체인 자아는 지금 무의 시작을 결정짓는 기본행동으로 시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고로 무를 결정한다면 그 결정한 자체가 무의 최대치를 가결하였는가 무에 대한 정도는 여유인가가 의문되니 그 무라고 하는 그 점은 유와는 어떤 거리를 갖고 있는지 대단한 중요문제다. 즉 무라고 하는데는 우리가 보고 보이지 않는 정도인지 또 감각할 수 없는 정도인지 체형을 구성할 수 없는 정도인지 그 입장이 명백한 점은 여하한가 하면 물론 이 실재 감각내에 속하는 데서만이 유무의 출발점을 잡고 있다. 그러면 사람이 유라든가 하는 것은 실체로서만이 문제하지말고 무하다고 하는데에 있어서 그 무는 우리가 무라고 하는 최대치가 아니고 유와 연관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의 계속체로서 우리 감각내로 감촉할 수 없는 범위 외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여 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무라고 하는 것은 더 적은 무에로 나 갈 수 있는 중간존재임을 알려준다. 나를 유로하는 자체를 수로 표시하면 ① 이라고 할 수 있다면 무하다는 것은 영(0)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나 ① 수자를 보아서 영이 있다고 지금 수학세계에서는 보고 있지만 이 영이라는 존재가 수자상으로는 표시되나 실제에 있어서는 영이 무가 아니고 무를 상징하기 위한 추상적 존재와 같은 것이라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즉 무에는 무한무를 한정 못하니 그 무의 중심이야 영가지고는 표시도 못한다. 그런고로 영을 잡아보면 영이라는 것은 수자상 이론상 존재라고는 인정할 수 있으나 수자상으로는 영이라고 하는 영점이 있는 위치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영과는 판이한 자체이다. 그런고로 영이라고 현사회에서 쓰고 있는 것은 유의 소형체의 것이며 더 소로써 무한대하여지는 존재의 중간자체임을 부정 못한다. 유와 무의 한계선은 즉 하나이다. 그런고로 이러한 나를 잘 알려면 무한유의 시작이면서 무한무의 시작의 기초를 알아야 할 중대한 문제가 생기는 바이다. 하나와 영이 동일점이라고 보니 무한유와 무한무의 존재의 제일 중심 거점이 즉 하나와 영선의 경계점이다. 그러므로 나 하나는 무한유의 시작의 존재며 극소유의 존재를 알고 있는 바이면서 또 무한무의 최대 존재라는 기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자체가 즉 ① 하나인 것이라는 존재다. 하나와 영은 경계를 정치 못함. 수자상으로는 영과 ①하나와의 상이 위치를 갖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동일점을 이탈 못하는 공통 노선상의 존재다. 그러므로 실제상으로는 1=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1= 영 1= 절대치수의 기본수이며 유의 기본존재다. 영= 무한무의 절대치수면서 유의 무한소수의 중간존재다. 그런고로 문제되는 바는 나 한 자체가 중대 문제인데 나는 지금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잡은 존재라고 하고 싶은가? 그것은 각자의 자유로 맡기기로 하자. 즉 ①에서 시작하였으면 그 하나가 갖고 있는 존재의 가치가를 전부 인식하여만이 되지 않겠는가가 선결문제다. 즉 무한대와 무한소의 문제보다도 기 중간자체인 하나의 존재의 규정이 큰 난관봉착이라 아니할 수 없는바다. 이 하나되는 자아를 알면 무한대에 대한 위치부터 무한소의 위치가 갖고있는 중간존재에 대한 전부를 알아야만 자기에 대한 확실한 규정을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그 존재를 전부 밝혀서만이 기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한 근거를 해결할 자격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사람들은 자기가 있다고 하여 놓고 무한 사실이니 무하다느니 하는바는 즉 수세계에 있어서 영이라하여 절대무의 존재를 결정한 듯이 하고 있는 바와 동일한 생각으로 되어 있는 바와 한가지라. 없다할진댄 무한소에 까지 도착한 기 세계가 자기의 결정 범위 내에 들어서게 될 때에는 무에 대한 결론은 가할것인데 그것 조차 생각도 못하고서 그저 무라면 자기가 무라고 하는 바가 그냥 무로서 만사를 해결하여주는 중심 존재로 되는가.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행동이다. 유라할진대 기 존재의 가치는 절대유까지 계속 존재하고 있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런고로 유로 하는 자기와 무의 중심 입장의 자기에 대하여서 알려고 할적에 제일 큰 문제의 중심점이다. 즉 유로 내가 있어야 되며, 무로 내가 있어야 된다. 문제의 결정적 존재는 즉 자기이다. 이 자기가 지금 해결의 수수께기가 되는 근본문제다. 그런고로 먼저 천주의 기본단위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기를 해득하여라. 그렇게 하므로써 딴 존재가 문제로 되는 바이다. 자기를 명백하게 해결하면 기 이상에 대한 연관적 사실에 대하여서는 인식할 수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자기 하나 알고보면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대한 문제는 크게 논할 문제도 아니다. 그런고로 알아야 한다는 하나님에 대한 근거의 여하는 먼저 피조체인 자기의 근거에 대한 실감성을 먼저 알고 나아가면서 탐구하면 제일존재의 확실성은 자연적 의식존재로 계시는 것이다. 그것의 명백한 체험을 실행하여 찾아보면 기 자체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유에서 절대무의 기본존재이므로 어느 면에서도 단위적 노선에서만 서서 존재를 찾으면 그 존재는 자연적으로 체감된다. 그 체감으로써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확실한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이다. 왜냐하면 무한대에서 무한소에 통한 공통노선으로 흐르는 무한대에서 무한소의 힘을 보아 이 힘은 공식과 같은 원리를 통하여 연결되고 있으며 기 어떤 중간입장에서라도 자기만이 그 힘과 감응할 수 있는 연체로 평형선상에 서게 되면 무한대에서 무한소에 흐르는 그 감지를 통하여서만 알 수 있는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대에서부터 무한소에까지 연관하는 중심 동력체이다. 그러면서 영원을 표준하고 시작하며 나아간다. 그런고로 사람은 기 중간존재다. 이 중심존재가 완성하여야만이 천주적 기본원리는 원만화를 가져오게 된다. 즉 하나님은 무에서 유에로 작용하고 사람은 유에서 무에로 수수작용 원만화를 취하여만이 원만존재으로 되는 것이 천리이며 창조원리다. + (無限有實體世界) + 사람 ① ① 사람 ⓞ ⓞ 하나님 - (無限無 無形世界) - 이 표시도를 보면 사람은 단위적 위치에 거한다. 사람을 통하여만이 우주와 천주이상이 완성하게끔 지으셨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몸으로 지은 특유의 존재로 되어있다. 유(+) 무(-)라고 표시하면 사람은 (+)(-)의 중화체로 되었다. (-)는 영으로 (+)는 육체로서 합체되어 있다. 사람은 영과 육의 경계선을 정치 못한다. 그런고로 사람은 영과 육신이 합하여야만이 완전한 사람이다. 우리는 영을 장성시켜서 영인체를 완전 조성하면 무의 세계까지 통할 수 있는 중간존재체다. 그런고로 본래 사람은 영인체를 완성하여야 한다. 그러면 영인체라면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는가 하면 영체, 생명체, 생령체로 되어있다. 육신에는 육체와 육심으로 되어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영인체에는 생심을 중심하고 영체를 부식할 수 있는 기본 터를 이루며 장성하여서 생명체로 나아가 그 생명체가 되어만이 하늘에 한 장성체를 가진 자체로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기 생명체에다 생령체를 이루어야 본창조이상인 영인체로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타락되니 인간들은 영체의 근본되는 생심까지 보유하는 존재가 없다하리만큼 타락되었다. 이 인간들에게 영체를 구성시켜서 장성하여 생명체까지로 목적하고 역사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信, 신앙생활을 배양하는 목적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오셔서 생령체까지 완성코저 하였으나 불신하고보니 미완성하여 생명체급까지 전인간을 장성시켜야 할 책임사명 부경이다. 그 후 생령체는 완성체인데 재림시부터 시작코저 함이 목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타락치 아니하였으면 육신의 완성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 중심하고 생심은 그 본노정으로 영인체 구성을 동일시에 연합하여 완성에로 나아갈 인간들이 타락으로 인하여 전인간에게(하늘인도) 구분하여 장성시켜서 완성의 모양으로 되었다. 제2차 예수는 장성 생명체까지 제3차 재림하여서 완성체 생령체를 주입시켜서 이상 영인체를 조성하고자 함이 근본으로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기 시작 할터를 닦고자 하니 구약역사가 있고 신약은 그 터위에 장성하여 전세계에 터를 닦고 그 위에다 다시금 완성의 이상 생령체를 땅과 함께 하늘까지 연식시켜 이상천주 완성 목적으로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구약시기부터 절대 뜻을 중심하고 인간들이 시봉하였으면 직접 뜻을 중심하고 터를 세우면서 이상 전개코저 함이었으나 불신으로 인하여 그 목적 미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요구와 기 구원요구가 남아지는 뜻으로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사람을 찾아서 원리상 영인체를 회귀하여 본 창조이상을 성사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유의 존재이며 절대무의 주인공이 즉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느 방면으로든지 극을 찾아 가면 갈수록 하나님에 대한 각요성을 절실하게 감각되게 하는 것이 현천주 만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전부가 천주의 공로를 정당하게 설수 있는 자아를 찾으면 전체에 대한 중심문제까지 해결을 가져오는 사실은 창조하신 만상을 공동한 중심에 속하여 있기에 어느 곳으로 통하든지 기 중심은 기 결국의 종점을 찾으면 동일한 기 근본원리를 통하여서 작용이 시작되어 있기에 자아 자신의 근본원리로 설 수 있는 기본을 찾으면 전부의 중심인 하나님에 대한 문제는 자연적으로 알게된다. 또한 하나님이 근본존재 하심은 실감적으로 자각할수 있게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자기가 없다고 하면 자기 자체로서 자기도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체에 대하여 유라하면 자연적 유하신 그 근본존재 유를 예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고로 자기가 유하면 자기가 유하기 전에 부모의 유가 찾아지며 부모가 유하면 선조의 수 십, 수백대에 계속하여서 지금 자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렇듯이 유에서만이 유가 시작된다. 무에서 무이지 유할 수 없는 것이 천리다. 현과학은 이 천리를 떠나서는 시작과 발전을 못한다. 그리고 자아 이후에는 유할 수 있는 후손에 대한 유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보이지 않는 후손 무라고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다면 기 자체는 원리의 합격체로 완성격의 존재 못됨을 말하는 것이다. 원리적으로 보면 기 후손은 있게끔 유에서부터 모두 만상이 지어졌기 때문에 후손은 필요적 한 공리노정으로 유함을 알 것이다. 보지 못하였다고 기 있어야 할 기 존재들을 부정하면 기 자체의 부정함에 근본원리적 해결을 주는 부정이 되는가? 그렇지 않음은 누구나 다 잘안다. 그런데 무라고 부정한다면 그 존재는 천리근본을 반역하는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고로 천주만물은 전부가 원리적 유에서 시작함으로 유라고 하는 기본점에서만이 만원리와 이치의 부합을 볼 수 있으나 무라고 하면 기 근본을 유에서 전개키 난한 원리적 결론으로 된다. 그런고로 지금 자아라는 자체는 유무의 한 중심의 존재면서 그의 작용적 목적으로 유를 전적으로 상대물로 하기 위한 행동으로 생활하는 바는 잘 체득하는바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유라는 원리적 존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정하는 바이다. 무라고 하는 존재는 사실체 유의 세계에서는 자아로부터 표시로 되어 있다. 그 자아가 즉 유무의 근거점으로 하고야 유무라는 말을 할 수 있는바이다. 그런고로 나는 유에 속하는 동시에 무에도 찾아가는 중간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중간존재로서 되어 있는 나에게 유무의 근본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런고로 자기가 유무의 근본의 위치이니 즉 창조적 원리로 보아 하나님과 직접 동일점선에 유한한 존재임을 체득하여야 된다. 자아는 유무의 중화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중심하고 계실 신성은 나와 중화성적 관계로써 유에서 무의 세계에 전개의 노정을 통하게 되어있다. 우리가 만일 무하다고 하는 곳에 처하여 있어서 인식한다면 나에게 유에 대한 인식은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식할 수 있는 환경과 그 위치를 갖고 있다는 그것 스스로가 벌써 인식시켜주는 유에서부터만이 시작되는 바는 지금,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즉 지금 과학세계에 있어서 모든 원리와 공식을 이용하여 응용 유에로 전개케 하는 것도 즉 근본 유가 있는 원리가 존재함이 유하다는 원칙위에서 만이 시작하여 목적달성으로 진급됨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바도 전 유적 그 원리적 보유가 기본되어 그 기본 상에서만이 그 목적 표시적인 발달된 존재를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무에서 유라는 원리는 본래부터 우리가 세울 수 없다. 무라면 무이지 유가 되겠는가? 그러니 유물론적 원리도 자연 그 말로는 미해결로 되는 것이 원리다. 무가 되는 까닭이다. 즉 시작이 무니 말도 무로 결과한다. 무하고하는 존재를 세우기 위하여는 전유 존재를 세워 놓고야인데 이 선유존재는 즉 주관적으로 보면 자기, 혹 객관적으로 보면 타물이나가 벌써 선유한 사실을 결정지어 놓고 말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근본은 유에서 시작하였다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사람은 근본유라는 존재부터며 만물의 유도 역시 동일한 바이다. 어떤 작용의 시작은 유의 시작으로만이 시작된다.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관계적 감각성도 존재하여 나에게 미치고 있다. 작용은 근본적 유의 작용이 연장화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무라는 점유위치는 시각또는 감각성 외의 존재를 두고 말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우리 자아인 유가 감각하는 그 감각적 작용은 즉 유에서부터 파급이 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각으로 볼수 있는 권외의 유의 존재하는 그 자체와 즉, 하나님과 우리는 연관적 한 위에 속하여 있는 양심의 기존유의 존재로부터 우리에게 작용되는 감각을 알 수있는바이다. 그런고로 사람 한 나는 유무의 중화물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우리가 즉, 무아라는 위치를 찾아 들어가면 중화체에서 음양분도 같은 작용을 이르키는 것과 한가지로 무인식에로 나가면 상대적 절대유에 비례되는 절대유의 힘과 작용의 상봉을 본다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무아에게 찾아들어 가면( 즉 감각무와 인식무에로) 상거적 무의 위치에 대비되는 유의 감각과 인식의 경지는 나타난다. 이것은 수양탐중에서도 많이 체험하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고요하다는 그곳을 찾으면 본심의 작용무대를 딴 무경에로 존재하는 절대유의 감각을 체험하여 새로운 신기한 인식권을 찾는 것이 자연적으로 표시되는 듯이 되나 그 원리는 내 자신들의 이상각성을 취할 수 있으며 그 만족감을 취할 수 있는 근본이상이 유할 수 있는 근본에 속하여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새로운 쾌감이 나와 기쁨의 표시로 전개시킨 것 밖에 지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볼 적에 우리는 유에서 처하여 있으니 유의 대한 감성이 각면에 감화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되어 있기에 대 유에서부터 접하여 주는 감력에 대하여 진동감을 느낄 수 없고 또 외력 감력에 대하여 예민하게 사용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양이니 기도니 하는 것이 미쳐지는 외력 감력에 대비하여 진동할 수 있는 대 감력의 존재의 위치를 취코저 하는바가 원리로 되어있다. 그러기에 무의 경, 고요한 곳을 요구한다. 그런고로 누구나 하나님이 유하다면 무아의 경지에 찾아 들어가면 초자연 감력 절대유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체증한다. 그것은 즉 하나님이 유하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그 근본 유의 작용과 합치한 점에 내가 서면 내 자체에는 초자연 작용의 감력과 실감이 내 현자아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불교의 무아경이라고 하여 찾는 일리도 여기에 있는 바이다. 예를들면 과학세계에도 공리나 공식같은 것도 간접적으로 그 자체를 접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바로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이와 같이 된 것은 타락성 받은 인간임으로 이것이 요구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양심과 생심의 기본은 하나님이니 하나님은 만물의 절대단위의 근본이면서 원리의 중심이며 근본이며 모든 만상의 단위체 중심이니 이 중심점인 하나님과 직접 통하게 되면 절대단위력에서 지배받고 존재함으로 생심의 장성체인 영체를 가지면 기 단위를 직접 소유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단위야 절대단위 하나님의 단위에 한 부분적 기본으로 있기 때문에 만물의 모든 근본을 알 수 있는 곳으로 전개시킬 수 있는 존재가 즉 사람이다. 그런고로 도통이라고 하는 것이 이러한 근본사람의 창조본경을 체득할때에 느끼는 체험이다. 이 창조본경을 체득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미래의 모든 사실도 알아야 할 사람이었는데 타락으로 인하여 미지의 존재로 처하게 되었으나 그 근본 본성심은 타락성을 받은 육신을 넘어서 창조본경을 수시로 체득하려함이 근본 요구로 되어있다. 사람이 이 목적을 가능하게 못된 타락의 존재임으로 육신의 활동의 감력이 정지상태에 처하는 때를 타서 본성심은 무한대의 창조본경을 찾아 활동하려고 한다. 이 사실에의 표현이 사람에게 몽시로 나타나 미래의 사실을 예고하는 것이 즉 몽시라 한다. 그러기에 본래, 사람은 자기들이 생함의 목적과 해야 할 목적과 살아야 할 목적을 알아야 할 것이었는데 미지에 처하여 있기에 본성심은 이 어느 부분을 몽시를 통하여 알게하여 주는 것이다. 타락이 없었더라면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알고 살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 육신감력이 활동할 때에는 예를 들면 흙물을 그릇에 담았는데 그것을 휘저어 놓을 때와 한가지 이유다. 그러기에 육신활동의 감력이 침중에는 흙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이 우리의 본성심도 육신감력을 넘어서 본성노정에 활동이 시작됨으로 몽시가 보여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본심은 창조본경 세계를 통하고자 하는 것이 본 창조성품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실체 유의 세계에서 무형의 세계로 연결을 가져야만 되게 지음받았다. 그러기에 나를 유로하면 유의 끝은 하나님이며 무의 끝도 하나님이다. 다시말하면 무의 끝은 유요, 유의 끝은 무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중심삼고 지음받은 천주는 한 동로를 갖고 있다. 예를들면 우리 혈관을 보면 동맥이 심장에서부터 점점 작아져 세관까지 속한다. 끝은 없어지는 정도를 향하여 세분된다. 그러면 세관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끝은 딴 동로인 반대작용 노정으로 통하여 근본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한 작용체를 구성하여 한 회로를 조성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역시, 이 표시와 같은 것이다. 혈관이 작아진다고 하여서 무하여진다고 결론하는 것과 같은 행동의 사람들이 유무의 결론을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런고로 끝 부분 그 자체는 중화의 점이다. 혈관도 모세관에서 돌아오는 정맥부분이 유하여서만 원만하지 않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동맥을 유라 하는 것과 정맥을 무라하는 결론적 사실을 체득할 수 있다. 그런고로 유무는 하나의 유에서 시작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유무의 근본체이다. 영은 유에서 무에로 통할 수 있는 자체다. 그런고로 영은 유라고 하는 감각범위 내 존재에 속하지 않고 감각 외 범위에 속하여 유의 권위까지 자유로 통할 수 있는 특유존재다. 이 성품이 즉, 하나님이 부여하여 준 일체가 될 수 있는 특유성품이다. 즉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러니 우리 이상세계는 참 자유세계이다. 즉 거리지배를 받지 않는 세계며 공간의 지배도 받지 않으며 시간의 지배도 받지 않는 세계이다. 그저 생각과 동시에 결과가 현립되는 자유이상세계다. 이 세계가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다. 제 3 장 원리로 찾으려니 성경은 직접교시치 못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창세기를 교시할 때에 왜 근본의의를 전부 밝혀서 교시치 아니 하였는가 하면 여기에는 교시할 수 없는 중심의의가 있음이다. 본래 사람의 조상인 아담 해와도 하나님의 근본의의를 알지 못하고 있는 도중에 처한 존재로써 타락을 시작하고 보니 근본 하나님의 본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중도에서 타락한 셈이다. 모세를 세워서 역사하는 그 뜻은 타락없는 그 세계에서 이상의 회귀을 보고자 함이었다. 그 때 모세 자체로서는 사람 조상 아담 해와가 미완성하고만 부분은 조상자신 역시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모세와는 아주 거리가 먼 위치에 처한 뜻이므로 그 뜻은 인간 조상될 수 있는 그 자체들이 문제로 해결할 문제였기에 모세에는 근본 뜻되는 타락원리에 대하여 전부에 관련되어 있는 것을 밝힐 수 없었다. 아담 해와가 더 하나님 앞에서 완성하여야만이 될 분담 책임부분이다. 그런고로 타락함으로 그 분담 책임은 미급의 사실로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고 사람 조상도 사탄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실인 동시에 미완성에 처하는 사람을 대한 하나님이 한 뜻의 과업이었다. 이 뜻의 성사를 보려면 사람 자체들이 이까지(타락전) 처할 수 있는 한 세계가 회귀되야만 이 뜻은 실제로 하나님 자신을 통하여 실천될 근본문제였기에 하나님이 이 뜻 성사할 수 있는 무타락시대에 아담 해와 보다는 하늘적 완성존재가 나타나서만이 시작할 부분의 뜻이니 그 자체를 모세에게 직접적으로 교훈하지 않았다. 원리적으로 볼 적에 근본 인간조상 되어야 할 존재들이 미지로서 되었던 사실을 모세로서 아는 것은 원리적 순서로 허여되지 않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원리적 존재될 수 있는 한 자체를 세워야 되는 것은 타락됨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 성경중에 우리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하나님은 미분명한 성경으로 우리를 구원코자 하는가. 지금 그 원리되는 근본자체 즉 선에 속하는 인간조상이 나타날 때까지는 근본을 밝히지 않고 지금까지 나온 바를 알아야한다. 여기에 하나님은 원리근본으로 사람을 찾고자 하는 원리적 순서를 세움에서이다. 그래야만 창조이상을 완성하게 되는 바이다. 예수 당시에도 비유로 교시한 바도 역시 원리 성사적 시기를 찾지 못하였기에 많이 비유로 말하였다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를 밝히 가르켜 말하리라.(요16장25절) 하심은 근본 이러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지금은 때가 아니었기에 세상이 감당치 못하여 말하지 못하는 미교시부분을 발표하게 하는 의의가 있는 바이다. 또 요한복음 16장 12-14절에 "내가 아직도 많은 것으로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 있으나 너희들이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신이 이르면 모든 진리 중으로 너희들을 인도하리니 그 마음에로 할 것이 아니라 듣는것으로 말할 것이요, 또 장래일로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성신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셨으니 나의 것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나타나리라" 하심은 비유로도 말할 수 없는 미래에 남아 있는 뜻이 있다 하는 것을 밝혀서 하는 말하는 바이다. 그러나 성신이 이르러 장차 예수가 밝히지 못한 것을 밝혀준다고 하신 바는 시기적 경과를 두고 성사할 뜻의 부분이었기에 밝혀 말하지 못한 바이다. 이 부분은 예수에게 있어서 시기를 두고 더 이루어야 할 부분이었기에 이렇게 말한 바다. 이런 부분을 간접적으로 교시하기 위하여서 많이 비유로 말하는 이유다. 이 밝히지 못한 미분명의 사실이 때가 이르면 성신을 통하여 가르쳐 준다는 약속이 성사를 보았기에 끝날에는 성경상에 밝히지 못한 것 즉 너희들이 감당치 못하리라 한 부분이 밝히셔야 뜻 성사할 바이니 성경 외 부분이 성신교시 받는 자로 하여금 발표를 보아야 할 바이므로 보통신자로다 하는 자는 감당치 못할 부분으로 되나 성신교시 받는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나타난다는 바를 지적하여 말한 바이다. 예수 당시에 제자들까지 감당치 못한 부분이 예수의 뜻 노정에는 있다 함을 밝힌 말씀이었다. 그런고로 가르킴 받는 자만이 예수의 참 신부 될 수 있는 뜻 시봉자가 되는 것을 끝날 믿는다 하는 자들이 알아야 할 바다. 제 4 장 그러면 왜 모세부터 직접 뜻 공작못하였는가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악의 혈을 받고 나니 자손들에게 악의 피血가 흘러 들게 되었다. 이 더럽힌 피血를 받지 않을 사람이 더러운 피血를 받아 사탄의 자손으로 사람들은 순종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즉 사탄 하나부터 번식되어진 사람을 다시금 하나님이 취하여 뜻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더럽힌 바의 피血를 맑혀야 할 것이었다. 이것을 맑히기 위하려니 하나님을 절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세워서 사탄으로 받은바 피를 맑히기 위한 섭리를 세우셨다. 그런고로 사탄은 뜻을 반대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반하여 대립적 원수로 되어 나왔다. 역사적으로 시작되는 악의 피血로 세상은 더럽혀졌으니 선의 혈로서 맑히고자 해야 선이 악에 반대하게하시는 공작을 섭리 하시었다. 더럽힌 피血를 세상에서 끊으려니 전인간이 하나님께 속하여지는 바가 문제였는데 이 공작을 돕고 나오는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 희귀하였다. 그런고로 선한 피를 흘리게 하여서라도 선의 한 기본적 중심 토대를 잡고자 하여 하나님은 노력하였다. 그 노력의 성과를 보아서 전세계에 악의 피血가 다 선의 피血로 인하여 맑힘 받고 난 후에야 하나님은 뜻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원리이었다. 그래서 석일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악한 자에게 죽게 하신것은 그들로 인하여 세상의 악의 피血를 맑히기 위하여 탕감적 입장으로 죽게 하신 것이었다. 그런고로 모세를 세워서 직접 역사하신 것은 다시금 뜻을 성사할 수 있는 기초를 닦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 뜻이었다. 이 터가 성립되고 난 후에만 하나님의 뜻을 시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래서 모세는 하늘 성사를 준비한 입장에 처한 존재이므로 하나님은 근본 뜻 공작을 밝혀 시작하지 못한 것이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 떨어지고 하나님의 뜻 중심하고 살면 악의 피血를 제하여 의로 세워 하늘에 속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공작을 사람들이 절대로 받들지 못하여 하나님은 지금까지 뜻 성사를 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세상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바이다.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한테 따르면 떠러지는 것은 근본원리에 서니 사탄 역시 할 수 없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탄도 원리에는 굴복한다. 제 5 장 생명수에 대한 근본 뜻 아담 해와를 중심한 에덴 동산은 자유 이상세계인 동시에 희망의 세계이었다. 자유근본과 사랑 근본을 잃고 보니 사람에게 있어서는 타락의 고통이라는 것이 전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에 사람은 영원할 수 있는 생명수를먹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 뜻 중심하고 따 먹어야 할 생명과는 먹지 못하게 되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 지각을 받고나니 다시금 이상세계인 하늘 세계까지가 우리와는 직접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다. 그것이 즉 (창세기 3장24절) 그룹들이 돌며 빛나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과의 길道를 지키게 하심이었다. 이 생명수라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속할 수 있는 자체를 막아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이 하늘을 대하여 한 간격이었었다. 이 간격을 열려면 원리적 존재가 나타나야 시작된다. 그 존재는 즉 제2 아담인 예수와 해와 성신이 출현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예수가 땅에 와서 자기 근본 사명적 역할을 택하고 승천하고 난 후에 성신강림에서 부터가 다시금 (사도행전2장 1~4절) 화염검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적 원리이므로 성신은 오순절에 불(火)같은 설(舌)을 가르면서 각인에게 임하심은 이 생명수인 길을 하늘적으로부터 열리기였기에 우리는 다시금 영생할 수 있는 생명수의 길道를 찾게 되어 생명과까지 취하여 영원이상 영생을 취하여야 할 노정이 허여되었다. 그런고로 생명수는 예수님이고 생명과는 예수가 완전 신부격 성사 하여만이 우리에게 허여받을 수 있는 영생요소다. 제 3 편 복귀섭리 제1 장 하나님은 아담부터 찾는 공작못하고 아벨로부터 노아까지 사탄 대한 근본의의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때 하나인 자기를 중심하고 아담, 해와를 통하여 자녀번식을 하기 위하여 창조하시였다. 그런고로 사람의 자손은 하나님의 자손으로 될 것이였는데 사탄 유인받고나니 아담 해와는 중심에서 탈선하는 행동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탄은 비공식적으로 사람을 대하여 나타난 존재로 되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 한분을 상대하여야 할 존재였든 것이 근본인데 지금 비공식존재 사탄이 한 존재로서 생기게 되어 하나님을 대립하여 나타났다. 여기에 하나님은 근본 자기에게 속하여야 하게끔 원리를 세워 창조하였는데 다른 존재 사탄이 생기게 되니 사람하나 중심하고 그 상대존재가 있게되니 근본원리와는 배치되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소유하려고 하나 벌써 사탄이 먼저 원리존재로 대하여야 할 하나님의 존재모양으로 사람을 소유하고 말게 되니 하나님은 사람 대하여 두 주인을 공작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이 사람 아담, 해와를 다시금 자기소유로 하여 보려고 하니 여기에 원리순서를 배치되는 두 주인격을 성립시키는 행동이니 하나님은 다시금 이 실패성을 취소시키는 공작을 하려고 할 때에 즉 원리대로 사람을 찾으려 할 때에 아담, 해와의 그 자체에는 벌써 실패하였으니 그 자체에는 비공식적 사탄 소유인 동시에 또 창조원리적으로는 타락이 없었으면 물론 하나님의 소유자는 정한바이나 타락되어서 그 원리적 입장은 벌써 하나님편에 속하지 않는 근본원리 모양樣으로 사탄이 사람을 취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로 자기 몸으로 지은 사람을 포기 할 수 없는 원리적 결탁이 있으니 하나님 역시 아담, 해와를 포기 할 수 없는 원리적 책임이 있는바였다. 이런 책임적 근본을 가진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하고는 직접 대하여 찾으려고 공작하려고 하니 먼저 비원리적 존재의 주인공이 소유함이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담, 해와를 두고 그의 자손중을 통하여 이 두 주인격으로 분립시켜서 아담, 해와의 실패를 찾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자손중에는 두 성품적 결과의 자손번식이라는 타락세계의 존재를 보게 되었다. 즉 비공식적 주인성품에 속한 자손의 분립을 요하게 되었다. 아담, 해와는 실패함으로 이성품격의 모체의 주인공으로 출발하니 창조원리적이 아닌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대하여서 직접찾는 공작은 시작못하고서 그 자를 두고 복귀공작을 시작하니 즉 아담, 해와의 자인 “가인”, “아벨”에 대한 섭리의 노정을 시작하였다. 그런고로 아담, 해와 사탄 피血를 받고 난 맏 가인이니 첫 생산자는 사탄에게 속하는 비원리적 존재의 입장이다. 그 다음 존재는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입장 속하는 존재로 되었다. 그것은 사탄의 피血를 받은 사람을 찾으려 할 때에 첫번 해와는 사탄한테 속하였지만, 다음은 아담한테 속하는 양으로 해와는 행동하였으니 비록 타락된 자체들이었지만 아담적 사랑은 나중이나 그 자손에는 두 성품적으로 흐름이 있는바는 사실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타락된 자체들의 입장으로 보아도 사탄이에게서는 첫것 사랑이었으니 첫것보다 나중사랑 즉 아담사랑이 비원리 입장에는 속한 사랑이었으나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미움이 아닌 사실이다. 또 이런 원인으로 보아도 첫 자손은 보다 미움의 자손이며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런고로 아담 자손중심하고 이런 이유에 대비되는 입장은 사람 대하여 취케 되었다. 그래서 사탄도 역시 하나님 대하여서 비원리나마 자기가 소유할수 있는 한 상대의 혈적의 자손이 사람한테 소유되어 지는 것을 자연적으로 바라게 되어 사람을 중심하고 하나님과 사탄은 대립되어 자기 소유물 확립을 보게 됨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탄도 역시 처음에 비원리라고는 알고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사람이 자기소유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앎으로 자기편에 순종 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어야만이 자기것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아담 자손 가인과 아벨에 대하여서는 비공식존재와 공식존재와의 대립헤서 보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것으로 되었기에 하나님이 먼저 취할 수 있는 원리적 권리는 유한바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을 유인하였으니 간접적 태도로 나아가는 입장에 처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은 여기서 복귀공작 시작을 보려니 불순종으로 타락한 인간이니 순종으로서야만이 하나님의 편에 서서 원리를 찾을 수 있는 바이고 불순종이면 불순종의 주인공이 사탄 소유라는 두갈랫길이 지어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사람 자손 가인과 아벨이 드리는 제물은 근본적으로 순종이나 불순종에 의하여 취하고자 하는 이성품적으로 소유물, 결정적 표정물이었다. 두 형제가 각기 제물을 드렸으나 왜 아벨의 제물은 축복하고 가인 제물은 불축복이었든가 하는 것은 첫 자손 가인은 사탄의 피血를 계승할 수 있는 표시로 된 자요, 다음 자손 아벨은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자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가인보담 아벨이니 아벨의 제물을 받고싶음이었다. 그 외 가인 제물은 받지 않은바이었다. 그래서 이때에 가인 제물은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편에 서기 위하여 살려고 자기의 자체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벨을 사랑하면서 자기의 사랑받지 못하는 자체에 대하여 후회하면서 하나님이 다시금 사랑받을 걸을 찾았으면 즉 하나님이 하시는데 기뻐 감사하는 태도었다면 가인 역시 하나님편으로 취케되는 원리적인 사탄 소유하는 불순종권내에서 순종권내에로 옮겨지면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손을 취하는 곳에 대비니 가인도 역시 하나님이 취하게 될것이었다. 여기에 가인은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벨 대하여 원망시하는 행동, 즉 사탄 불순종의 근본되는 사탄의 행동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 아벨을 죽이고 나니 하나님이 뜻하였든 첫 복귀원리는 가인 행동으로 전인간에 사망의 터를 자아내게 되었다. 즉 사탄은 그때까지 가인을 자기소유로 할 수 없고, 자기소유물되기를 고대하는 입장으로 하나님 대하여 서게 되었다. 성경(창세기 4/7)에 하나님이 가인보고 말하기를 죄가 문에 엎드려伏 틈을 엿보나니 저彼를 방비하려는 것은 사탄이 가인 너를 삼키고자 한다는 이 근본의의를 밝히는 바의 말씀이다. 이런 가인의 행동이 있었으니 불순종 사탄은 자기편 가인 소유를 갖고 아벨을 죽이는 바는 여기에 하늘을 대하여 반역 시작의 예고를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 행동은 즉 전인류의 조상급에서 되어지는 이런 행동들은 전인류를 좌우하는 간접적 행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은 사탄은 내 소유만 만들겠다는 악의의 발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대신 셋을 준 것(창 4/25)은 아벨의 계승 뜻을 세워서 다시금 하나님편적 존재로 세우셨다. 불순종하는 가인, 즉 사탄은 셋을 대하여서 공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은 본래 어두움의 불순종 피血를 받고 났으니 선혈적 관계로써 하나님을 따르는 것보다도 사탄을 따르는 방향으로 흘러나려 오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근본목적을 달성하기 위하려니 원리적 순종자를 찾아서 공작계승하여 왔든 바인데 사람들은 즉 셋 자손까지 가인의 자손들이 좋아하는 생활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인류는 하나님의 뜻을 세운 자는 점점 적어지고 사탄 뜻세워 따르게 되는 양으로 타락성 근본체인 음행은 팽창되었고 사탄 대하여 섬기는 것은 전부가 즐겨하는 행동이었다. 여기에 하나님이 참을 수 없이 전 인류를 처서 없애고 이 뜻에 맞는 자의 자손으로 뜻 공작을 계획하시기 위하여 노아를 세우심이었다. 즉 노아는 불순종을 반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대표자이었다. 그런고로 노아를 두고 하나님이 근본복귀 계승 하여서 뜻 성사를 볼려고 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은 제일은 사탄 숭배하는 것이고 제이는 음행 하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타락의 씨가 되었으며 이것으로 통하여 사탄의 뜻 번식함과 같은 협조행동이니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눈꼴사나운 상대 이었기에 제일 미워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인간세상에서는 남녀가 사랑하는 것과 남녀의 음양부가 부끄러운 실체며, 죄의 실체며 악의 실체며, 또한 천한 욕이 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세상에서는 남녀의 제일 귀한 사랑이 실체들을 천한 것으로 인정하는 바는 이 근본 타락성 근거이므로 말도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람이 타락한바를 양심직고하는 바의 사실을 증거하는 바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욕이 왜 생식기에 관한 것인가 욕이면 왜 좋아하는가? 세상의 제일 귀한 것이 사랑인데 사랑에 속하는 실체 즉 제일 귀한데 속하는 실체가 왜 욕이 되는 것인가. 이 근본만 찾으면 인생문제는 해결이다. 이 사실은 생식기에 관한 욕이 아닌 제일 좋은 것이 생식기로 되었으니 즉 비원리적 출발을 가져오는 근본이 되었다. 즉 사망이 시작되는 것의 시작의 근본이 되었으니 이런 고백으로 표시됨이라. 그런고로 세상은 비원리중에 있다는 사실적 양심 고백의 말이 많이 쓰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음양, 좌우라는말, 흑백, 지금 많이 쓰는 적백 등등은 전부가 선후가 반대로서 쓰는바는 인류역사 시작이 반대로 되었다는 바를 증거하는 사실이다. 즉 좌니 음이니 흑이니 적이니 하는 말은 비원리세계 시작이 먼저 되었다는 것을 상증시켜 주는바이다. 즉 직고대로 우좌, 양 陰, 백흑으로 백적으로 되는 세상이 와야 만 우리 원리 찾은 세상이요 이상 세계의 요소이다. 이렇게 사탄의 창성을 보니 선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 원수로 나아가니 석일부터 의인들의 참사가 많은 바는 원리로 보아 응당하다. 이와 같이 노아의 시대까지도 전부가 불순의 자식들로 전세계가 되고 보니 하나님은 전멸시켜서 다시금 뜻을 공작하는 결과로 노아 심판이 되게 되었다. 그 때에 노아는 순종자를 찾았으나 한 사람도 보지 못하고 전부가 사망으로 들어갔다. 심판하고 나니 하나님은 통분! 근본에서 시작되었으면 자기의 자손들이었는데 사람의 행동이 전인간을 사망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와서 심판은 하였으나, 통분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탄 때문이지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하는 생각은 하나님 역시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런고로 다시는 이와 같은 심판은 하지 않을 것을 세웠다. 심판한 근본의의는 ① 사탄을 사람한데 떼기 위한 것 ② 순종자로 되니 사탄을 원수시하게하기 위하여 ③ 이것을 보아 불순종자의 한 사망의 표를 삼아 순종케 하여 불순종의 시작 없게 하기 위하여 ④하나님만이 사람 대하기 위하여 ⑤ 뜻 성사의 터를 잃지 않기 위하여 이상과 같은 뜻을 중심하고 심판은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께 있어서 자기의 책임성을 느껴짐을 자각치 않을 수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사람을 타락하게 한 것은 결과는 자기자신이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최종국 책임은 자신에 결과점을 두고 있고, 그 다음 아담, 해와 이러니,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람 찾기 위하여 자기와 아담, 해와의 책임이니 이 공작을 시작계승하여야 할 대신적 역할이 남아지게 하였다. 그런고로 처음으로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아주어야 할 책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기초 공작 시작할려니 구약 역사에로 들어간다. 그 터가 되면 무 타락 아담, 해와의 분담사명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야만이 창조원리의 성립을 볼 수 있는 바이다. 본래 사탄은 하나님에게 순종하여서 굴복함이 없다면 원리인(무악인) 사람한테도 사탄은 굴복치 못함이 사실이니 하나님은 모세 시대까지 자기가 활동할 기초공작을 하여만 되게 되었다. 이 기초가 되어야만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보내서 공작할 수 있겠으니 그 공작하여야 하는 책임이 노아 이후 공작이다. 하나님 앞에 순종굴복이 없다면 예수와 성신한데도 사탄은 굴복할 수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 뜻과 섭리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사탄을 굴복케하여 사람 조상으로부터 사람전부에게 사탄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1) 제일은 하나님한테 순종굴복 (2) 제이 아담, 해와 (예수, 성신) 순종굴복, (3) 제삼 전사람한테 순종굴복 이상의 목적을 완성하여 나중에는 사탄의 소유가 한 사람도 없게하여 사탄까지 종국 자연굴복으로 하여야 원리로 되는 바다. 그런고로 사탄은 이 뜻을 반하여 역사하는 것이 즉 아담부터 구약시대로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 신약시대로부터 재림시대까지로 전개를 보게 되는 노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는 역사를 통하여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여 나오신 바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적 책임분담역사가 구약역사고 아담, 해와 (예수, 성신) 전인류 책임분담역사가 신약역사다. 그래야만 본 타락전 기본점을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이 재림성사시대 즉 성약시대면서 이상시대가 이런 노정으로 복귀 시작이 하나님이 뜻하고 사람 대하여 사랑하는 중심의의다. 그런고로 사탄과 하나님은 사람 중심하고 하나님 뜻 성사로서, 사탄은 뜻 파괴가 역사상의 전쟁으로 전개되어진 것이 사실이다. 제 2 장 제1차 하나님적 책임분담 섭리기간은 노아부터 예수까지 제1 절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섭리노정의 근본의의 심판을 통하여서 노아의 8식구는 제2차로도 번식하여지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 섭리완성으로 시작과 동시에 결과로 나아가야 할 사명적 책임의 분담은 즉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노아 후손에 맡겨진 중대과업이었다. 그런데 전인류를 심판하고나니 사탄은 자기를 숭배하며 섬기는 전인류를 잃고나니 사탄은 뜻 붙일 곳 없이 되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떨어질 수 없는 관계적 인연이 있는 이상 하나님 뜻 외에 부분 존재가 있으면 자기의 소유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다시금 하나님 한테 자유 굴복치 않고 노아의 8식구에 대하여 미련적 립장으로 자기의 뜻 소유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는가 또는 자기가 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이나 없는지가 사탄에게 있어서는 요구하는 중대 주목점이다. 이 어마 어마한 입장에선 자들이 즉 노아 8식구였다. 이 식구들은 하나님과 사탄사이에 있어 자기들의 근본 책임을 감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즉 하나님편으로 가려면 사탄이 따르고 사탄이 따르면 하나님이 멸하는 이런 입장에 서 있다는 바를 그때 원리적으로 안다면 모르지만 이 원리를 알지 못하는 8식구는 그저 하나님에 대한 적극성을 체득하여야 할 존재들이었는데 그런 방향으로는 여하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는 인간에게 특유성 자유행동결과가 좌우하는 문제였다. 노아 식구는 전하늘의 기대인 소망존재요 또 사탄이 빼앗고자 하는 소망의 기대의 존재였다. 그런 입장에 있는 존재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 여기는 존재들이다. 이와같은 인간가치를 알고 보니 이 사람이 그다지도 하나님을 받들지 못하였는가 하는 탄식이 자연 나올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이 원리로 보아 긴장한 입장들인 줄을 알 수 있는 복된 시기를 만나니 무한한 행복스러운 것이었으나 이 시대에는 이 근본문제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한 수수께기의 문제였기에 그다지도 자기들 존재가치와 하나님에 대함과 사탄 대함에 대하여서는 그저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 결과만 보아서 하나님과 사탄의 관계가 반대성으로서 서 있다는 것만을 역사를 통하여 알 뿐이었다. 그 시에 노아는 천지의 주인공격이면서 제2차 인간의 조상이 되는 존재의 행동 여하부터가 하나님과 사탄이 행동의 여하를 시작하는 기초였다. 그때 노아의 8식구 중에 죄라는 생각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존재들이고 하나님의 의만이 시작되어야 할 존재로써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양이나 흉내가 보여지는 행동이 없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노아는 농부가 되어 포도농사를 하였다.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서 장막 내에 나체로 누워서 잠자고 있을 때에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父가 벌거 벗고 자는 고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자기형제들에게까지 가서 부끄러운 행동의 한 표시를 하니 셈과 야벳은 옷衣을 취하여 아버지 벗은 것도 보지 아니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나체를 덮은 지라. 이것이 성경을 보면 왜 이런 행동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인가하는 근본의의는 오늘 미해결 문제이나 그 근본원리로 볼 적에 그 사실은 명백하여지는 바이다. 이 행동은 무엇을 상징하여주는 사실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지극한 미움의 행동이며 사탄 대하여는 한편 될 수 있는 아담, 해와의 벗음의 수치를 다시금 증거하며 타락성 계승을 표시하는 행동이며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입장을 세울 수 있는 근거적 문제였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은 타락된 부끄러움의 자체임을 아직 잊지 못하는 존재의 씨라는 사실을 표로하는 행동이면서 또 전인류를 심판하심도 그것의 시작으로 인하여 결과에 도달하여 지는 바에서 나온 바를 생각하니 하나님은 통분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보여줌인 동시에 사탄의 성품 즉 범죄한 직후에 행동의 계승을 증거하는 사실이니 또 역시 하나님의 뜻하는 근본목적의 미완성요소가 번식함을 알게됨이 또 다시금 사탄의 기착점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런고로 다시금 사탄은 그 행동 개시를 보게 할 근거를 삼고 나서니 그 요구의 터를 막을 수 없이 사탄의 번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행동을 직접 개시하게 한 그 존재가 사탄 편의 자이니 함을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