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004
원리원본 원문 004/005.
- 문헌 색인: 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
- 시작 부분: 기독이상으로 귀결하여야 한다.
- 이전/다음: 이전 · 다음
원문
잡아야 한다. 본래부터 세계는 원리세계이니 반이란 존재는 완성노정을 취할 수 없는 것은 대상목적을 위한 세계의 근본인바다. 그러니 반은 미완성이다. 즉 파괴를 조성하여 준다. 그러니 발전하는 이상 존재한다면 정을 돕기 위한 중간시기에는 인정하나 목적시기에는 그 동향을 무로 하고마는 것이 원리세계의 현상인바다. 그런고로 반이 먼저 시작함을 대하여 정으로 회복하려는 결론으로 되니 역사발전은 반이 시작보기 전 원시시대로 돌아간다. 그런고로 정반합 논리는 근본적으로 보면 반, 정, 합 논리로서 되어야 하는바가 근본인바다. 반대되는 것이 나타났으니 이 원리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으나 정으로 향하는 노정이 인류발전사인 바이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적 편으로서 원리적 입장에서 시찰하니 반, 정, 합 논리가 하나님편 쪽으로는 그 근본적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여기에 반이란 존재는 사탄이요 이것은 파괴형 무를 조성하니 그 목적을 막고 완전계속하려니 정이란 위치로 넘겨받은 노정이 인류발전사인바이다. 그리하여 반은 정을 성사하는 한 본과 같이 보이나 본래부터 그 자체는 근본아니고 근본으로 표현화 하는 것이니 정의 위치를 정한다. 그러니 본래는 정되어야 할 것이 반이 되었으니 지금까지 큰 난사의 시작을 계속하였다. 그러면 반이란 존재가 계속할 수 있는 한계는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 완전 정 하나님 편쪽에서 만이 반은 정체를 중지할바이다. 그러니 이 반이란 존재를 처치하고자하여 근본정이 끝까지 찾아 올라온 것이 인류발전역사이다. 그런고로 반, 정, 합 논리의 결말은 본래부터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이상논리로 하지만 그 말점에 가서는 파괴라는 결론점을 봉착하는 것으로 된다. 그것은 발전하는 바는 향진인데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발전사라는 상충하는 논리인바이다. 그러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사회발전논리는 근본적으로 이런 근본중심점을 미해결이니 그것은 물론인바이다. 그런고로 여기에 그네들이 말하는 정, 반, 합 논리에 대하여서는 우리는 근본적 시찰로서 그 말로를 결정하는 바이다. 그러니 반에 대립한 정만이 남는 것이 천주천리인바다. 이 정이란 곳은 타락전이닌 즉 시작점으로 되는 바니 인류역사는 시작점을 찾아 올라가지 않으면 조물주가 계시지 않는 결론이 성립된다. 그러니 정이란 존재가 정으로써 출발하려고 하는 바의 목적이 조물주의 목적인바다. 그러니 역사의 끝을 정이라고 결론한다. 그러니 최고문명세계는 정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편쪽이란 완성을 결론한다. 그러니 지금 세계를 정이 주관하여야 하는 바가 원리적 목적이니 하나님 편 정과 사탄 편 반과 대하는 끝에는 정만이 남는다. 그러니 정이 주관하는 세계이니 이 세계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기독이상으로 귀결하여야 한다. 그러니 현신앙자들은 동원하여 반에 대한 정에 설 주관세계를 조성할바가 지금 세계의 기독교의 사명인바이다. 그러니 그 방책은 자연히 하늘뜻을 합하여야 하는 바이다. 이 근본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사탄 대하여서 총돌격하여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바이다. 소위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인류역사발전을 단계로써 기록하여서 하나님적 복귀역사로 된 인류발전역사와 비교하여 보자. 하나님이 계시니 이런 발전을 본다. 유물론적 발전사 단계 즉 1. 원시공산주의시대 2. 씨족사회주의시대 3. 노예주의시대 4. 봉건주의시대 5. 자본주의시대 6. 제국주의시대 7. 사회주의시대 8. 공산주의시대 이와 같이 역사발전을 잡고 있다. 과연 그들이 이런 인류발전역사를 잡고 있지만 왜 이런 발전을 하는가는 근본문제는 미지이다. 왜 원시공산주의시대에서 씨족사회주의시대로 떨어지는가 하는 기본원인은 미지인바다. 이런 발전진상을 보여주는 바는 내가 논하는 반이 먼저 시작함으로 논한데서 시작이란바를 다들 알 줄 안다. 다시 그 단계를 잡아 밝혀보면 원시공산주의시대에서 씨족사회주의시대로 되는 바는 사탄 대한 하나님 편쪽 대책으로 인한바이다. 즉 분립하려니 씨족주의로서 전부가 통할수 없는 분기를 정하니 자연적 세계상에는 이런 형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내려온다. 또 씨족사회가 변하여서 노예주의시대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과 사탄은 사람 중심하고 빼앗는 역사를 하니 하늘편쪽 사람과 사탄 편쪽 사람과는 원수니 반을 대하여 정이 반을 지배하여 그 재물을 취하여지게되니 이런 시대로 들어간다. 이리하여 하늘은 사람과 재물을 취하려니 자연적 선물로서 긴 역사로서 풍습화한 시대로 되니 이런 시대가 보여짐이다. 그러면서 노예주의로부터 봉건주의시대로 나타나는바는 서로 사람을 자기편으로 보수하여 분립을 보려니 서로 서로 통하는 길을 막으려니 이런 경향이 표현화 하여지니 이런 봉건주의시대로서 사탄은 자기의 존재유지를 도모한바이다. 그리하여서 이 봉건시대를 넘어서는 자본주의시대로 나타나는 바는 이도 역시 하늘편과 사탄편이 서로 세계를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하니 자본을 먼저 취하게 되는 바이다. 이 자본의 시작은 노예시대로부터 봉건시대로서 또 이 이상시대로 중심은 자본을 중심하고 모든 방향은 시작된다. 그러면 자본을 중심하고 왕성하여 그 세력은 자연히 제국주의라는 목적으로 향하는 바이다. 그러니 자본을 가지고 나라까지 주관하여 세계까지 좌우하는 시대로 나타난다. 그 다음은 무슨 시대냐 하면 사회주의시대가 온다. 그 다음은 공산주의 시대가 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과연 하나님의 뜻이 성사할 미래에 대한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역사도 이런 방향으로 나오는 바다. 그러니 지금까지 보면 현세계는 소위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시대라고 하여 공산주의시대를 향하려는 시작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정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은 역사발전을 지배하여오니 자연적으로 그 역사상에는 반이 먼저 시작하였으니 먼저 사탄이 흉내 내어 나타나서 정으로 인계하여 주는바가 원리인데 그러면 금후세계는 자연히 이런 노정으로 방향을 행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중에 완성하려니 기독사회주의세계를 목적으로 하여 악 대하고 다음은 전세계전부를 합하여 기독공산주의시대로 목적하는 바이다. 그러니 세계는 과연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는 바가 사실인바는 하나님의 기본출발 기점으로 향하게 하니 필연적 노정으로 보여주어 원시시대형으로 돌아가는 양으로 보여준바다. 그러면 현기독교를 중심한 국가는 언제나 그 목적에 있어서는 안 될 시대를 보는바다. 그런고로 나는 여기에 이런 원리적 시찰을 보아서 이 기독사회주의시대와 기독공산주의시대를 중심한 곳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지향을 밝혀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세계를 기독이상화를 본하여서 발표한바가 즉 원리적공생공의주의로 하여 원화세계로서 발표한바다. 하나님이 계시는 이상에는 반드시 이런 발전노정은 필연적 노정이니 사탄도 결국 하나님의 길 돕는 격으로 원리목적하여서 하나님 편에 굴복을 요하여서 나오는 바이다. 그러니 지금 3차전을 말하는 비시여 세계기독교신앙계는 통일전선을 취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본으로 하여 재림주를 대하기 위한 준비를 완성하였는가 하는 입장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이런 목적을 원리적으로 실행하는 시대가 재림이상시대이다. 이 이상시대가 가까워 오니 그 반면 사탄은 강제로써 하늘 흉내를 먼저 내는 것이 그 기본진상이니 전기독교주의 중심한 “UN"은 단호한 대책을 취하여야 한다. 이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발전사도 한 일리있는 거짓 흉내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편적 복귀역사발전단계를 중심하고 그 한계를 비교하여 보면 이러하다. 정 반 원시공산주의시대---(분별시대) --- 원시공산시대, 씨족사회주의시대 씨족→민족→국가---(소생, 구약시대)--노예주의시대, 봉건주의시대 국가→동맹국→국제--(장성, 신약시대)--자본주의시대, 제국주의시대 국제→하늘세계→천주-(완성, 성약시대)-사회주의시대, 공산주의시대 이와 같이 정과 반의 발전사로 보면 한 목적으로 합하는 역사는 발전하여 나온 바이다. 그러니 지금 조류는 이 두 진영이 대상하여서 승패를 결하는 조류시대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있는 이상에는 이 승패하기 전에는 평화는 없는 바이다. 그러니 지금 기독이상을 중단하여 성사하여야 할 국제연합에 사명은 중대하면서 앞날 현기독이상을 중심으로 한 미, 영을 중심한 U.N 기구는 특히 사명이 큰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미영 유대 그 외 기독이상을 가진 국가들에게 축복한 바도 끝날 뜻 속진화를 위하여서 축복한바이다. 그러니 전부는 합하여 예수의 최고이상인 유물상통세계를 지구상에 건설하고자 하는바가 목적인바이다. 이것 위하여 예수는 재림하는 바다. 그러니 뜻 합하여서 재림주를 중심하고 뜻 시봉으로 근본복귀를 완성하는데 전부 합하여 동원하여야 하는 시대는 왔다. 무엇이나 뜻 못 받드는 자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은 전세계를 중심하고 그 존재위치를 달리하여서 대할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복귀노정을 받들어 지상천국의 건설로서 신출발하여 한 원리적 가정으로 하는 부모없는 자식의 입장을 변하여 부모를 세계적으로 복귀하여 잃어버렸던 전세계 인류는 한 형제로써 대가정인 원화적 이상을 건설하려니 하나님은 현금 기독교 대하여서 분립을 보게하여 자연적으로 현기독교계는 이런 경향선을 보게할 바가 하나님이 계시는 이상 나타나는 바이다. 그러니 이런 근본을 알고 기뻐서 하늘 자녀의 입장을 복귀하여 빨리 사탄 대하여서 집결하게 할 책임이 기독교의 사명과업인 바다. 그리하여 이 목적으로 전세계에 분립된 기독교는 통일로써 볼 것이며 세계통일을 중심한 기독교의 최고목적을 완수할 바가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인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사탄은 우리를 향하여 계속되는 대립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근본 뜻을 연장하는 두려운 결과를 초래하는 바이다. 그러니 현금 기독교는 전세계를 중심한 중심국가들을 주로하여 합하여야 할 책임이 중한바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하늘 중심하고 하나되어 국경을 넘고 민족을 초월하여서 합동한 통일전선으로 하여 사탄의 여명을 근절하여 전세계 각자가 한 목적으로 향하여야 할 바가 목적으로 된다. 그런고로 기독교는 현사회를 움직이는 중심동력으로 하여서 모든 미급적 부분을 완성에로 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여야 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영원한 영원주의를 건설하여서 지상천국을 달성하여 재림주와 합하여 하늘 전체와 합하는 직접동거시대로 향하여야 하는 바이다. 이것이 인류가 바라던 이상이요 역사적 목적이요 조물주와 예수의 목적이면서 사탄 근본추방성사를 완성 하는 바이다. 이런 중대한 입장을 알지 못하고 현사회를 포기하여 온 현기독교신자는 과연 하늘적으로 기뻐하는 입장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바는 사실이다. 이제는 알았으니 추상적 신앙관념의 잠을 깨뜨리고 신아침의 새新소식에 합하여 전세계를 하늘 주관으로 나가지 않으면 아니되는 바이다. 그러니 과거미지였든 입장의 부족을 용납하여 전세계 인류는 앎의 형제로서 국경을 넘어 하늘나라 국제를 목적하고 활동하여 전인류에 대한 평화건설을 국제적으로 하면서 국제통치목적으로 하나의 근본목적을 완수하여야 기본창조목적이 완성되는 바이다. 그러니 내가 이런 것을 발표함을 보고 의심되는 자는 진심으로 하늘 대하여 사실 여하를 문의하여 해결받음으로서 최고위신자는 한곳으로 합함을 바라는 사명을 받들어 전세계 신앙계에 대하여 전하는 바이다. 그러니 앞날은 국제통치시대가 반드시 온다. 그리하여 재림이상을 지구상 한 중심지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로부터 전체로서 국제와 연하는 목적을 완성하게 하고자 하는바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인바이다. 제8 장 40일 복귀하고자한 섭리노정의 근본의의 인간세계에 해와로 인하여 타락이 시작하여지니 그때부터 인간세계에는 비원리존재에 속하여 나오는 반면에 하나님은 원리적으로 복귀하고자 태세를 취하여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원리적으로 직계의 혈대는 지금까지 섭리의 한 소망으로 남아지고 그 직계적 혈계는 비원리적으로 시작한바는 사실이다. 이런 근본 뜻은 다시금 찾아 근본혈계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의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타락된 인간일망정 포기하지 못하고 원리적 복귀원칙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역사를 본바는 논한바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자녀 중 가인 아벨의 대한 제물받는 근본 뜻도 알 줄안다. 가인은 사탄의 초혈계 표시자요 아벨은 아담의 나중에 해와 대한 표시적 자임에 근본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자임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자 할 때에 첫 생산자보담 다음 자 아벨을 사랑으로 대한 원인은 알바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아벨 제물받게되는 이유는 미지로 나타나있다. 그것은 그 시대적으로 먼저 알 수 없는 원리복귀하고자하는 역사적 뜻의 성사를 볼바가 되지 못함으로 지금까지 미지로 되었다. 아담 해와 중심하고 찾고자 하나님은 하지 못한바도 비원리 존재가 먼저 한 주인격 상대으로서 있기에 한 주인 상대로 원리로된 창조적 원리가 있기에 아담 해와로 인한 복귀 못하고 가인과 아벨로서 이성분립을 보아 순종과 불순종을 작정케 하는 표시물이 즉 아담 두 아들의 제물인바다. 왜 가인 제물 안 받는 바는 사탄적 생산혈계의 결실존재였으므로 가인 제물보담 아벨의 제물을 받음이었다. 아벨이 성심 다하였다는 바는 성경에도 없는 바이다. 이 근본적 원리가 이런 원리로 되어있는 원리라는 바를 알게 될 때에 근본 타락에 대한 내 발표가 정론임을 알바다. 가인도 아벨 대한 반격이 없었으면 다시금 기쁜 복귀로 될 바이었으나 하늘의 뜻 알지 못하고 하늘 대하는 반격의 시작이 있으니 하늘 뜻 파괴를 시작하게하는 기원점을 시작한바이다. 만일 가인이 아벨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품으로 찾아드렸으면은 사탄 소유물이란 분립을 방지하였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가인 한 자체의 행동이야 인간의 제일 슬픔의 시작의 기점을 짓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아벨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세워서 섭리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였다. 셋을 주어서 역사를 경과하는 도중에 셋 자손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가인 자손이 좋아하는 사탄 편 짝으로 전인류는 사탄 소유란 비원리 세계를 조성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청산하고 뜻의 사람 택함이 노아였다. 노아는 그 시대적으로 하나님의 소망의 존재이면서 그 시대 세계인류보담 귀한 소망존재였다. 노아를 중심하고 하나님은 뜻의 인간을 조성하고자 하니 전세계에 전부를 분립하는 하늘편쪽으로 분별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니 사탄 소유물 불순자 합하여 전멸하게 하는 바이었다. 그 목적은 불순자 소유물을 세계상에서 추방하고자 함이 시작이었으니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물만 세계상에 시작보고자 함에서 대책 취함이 노아 심판이다. 이 심판은 무슨 의미냐 하면 창조하였던 근본원리적 입장을 복귀하고자 함에서 시작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먼저 사탄 침입받은 아담 해와로 인한 만물은 사탄 피血로 인하여 하나님과 떠난 것이므로 전부를 청산한바이다. 노아를 택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아세우는 모양으로 노아의 방주에 모든 생물을 노아에게 준바이다. 이것은 제2 창조이상 시작이 목적이었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 성사하여야 할 의무적 입장이란 바는 말할 바 없는 바이었다. 그런 노아도 인간 제2 조상으로 계대를 잡고자 하는 기반공작은 어찌되었느냐하면 함의 행동으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혈계적 증거격으로 서니 하나님 앞에 자기의 혈족이 있음을 세워서 다시금 침입하여 취케 되니 함이 가나안의 아비父로 되는 바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나체로 인한 행동으로 시작함이다. 이것이 지금 본다면 좋은 행동 같은데 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행동이 되며 하나님과 원수된다는 행동인가는 두말할바 없이 해와의 타락 근본을 표징한 사실인 근본과 합하는 혈연적 관계로 표시하였기에 사탄 침입을 또다시 가나안 아비父격으로 함을 통하여 시작본바가 근본이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이 심판한 목적은 제2차적으로는 근본시작을 보아 출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찾고자 하는 전목적을 잃어버린 반대목적이 결과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심판은 하였으나 심판하기 전과 같은 시작점을 본 것으로 되니 하나님은 근본목적의 요구를 다시금 찾아야 하게 되었다. 즉 심판할적에 하나님은 40주야를 두고 심판하였다. 이 40일은 하나님의 뜻 성사의 시작잡은 기본을 작정하는 기간임은 사실이다. 이 40일에 대한 목적은 사탄 전부를 추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사탄 추방목적은 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침입기대를 잡고 하나님의 근 본 뜻을 미성사로 시작을 본셈이다. 하나님의 40일 심판은 무효과로 되어졌다. 40일을 뜻맞게 찾으면 근본목적 성사를 볼 바이었는데 40일을 미성사한양으로 나아가니 40일의 목적의 전부가 잃어버린 목적으로 시작을 본바이다. 하나님께 있어서 40일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 되었으니 다시금 뜻 세우는 길에는 40일이라는 근본목적성사가 최고목적이면서 이것 찾아 세워야만 뜻 성사란 목적완성이니 이 40일을 중심하고 사탄 분립을 작정하기 위한바이다. 이 40일을 사탄 대하여 찾아 세워야하는 한 분기점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40일을 중심하고 섭리의 시작은 언제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의 40일 기간이 즉 심판의 전목적이니 40일 끝났을때의 행사로 하나님이 창조하든 완성을 표준한 때와 한가지로 출발하고자 하시었다. 노아는 40일 지난 후에는 까마귀鴉를 내보냄이었다. 이것은 창조 받은 세계에 사탄이 먼저 시작하였든 바를 다시금 찾아 성사할 표시의 상징이었다. 즉 까마귀鴉를 내보내었으나 돌아 들어오지 않았다. 창세기 8장 7절에 보면 까마귀鴉는 세상의 물水이 마르기까지 왕래하는지라하시었다. 먼저 내보낸 까마귀鴉는 왜 노아한테 돌아 들어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가行하는가 하면 먼저 사탄이 이와 같이 되어서 간行다 하는 표시로서 까마귀鴉를 내보내심이었다. 사탄이 물로 심판받은 물위水上를 다니면서 쉴 곳을 찾고 있다는 한 표시로 됨이 까마귀鴉 내보내심의 상징이었다. 다음에는 비둘기鴿를 내보내었으나 비둘기鴿는 지면의 물水로 인하여 발붙이지 못하고 다시금 노아 방주로 돌아오니 노아가 손手을 내밀어 받아들이受入고(창8/8~12) 7일을 기다려서 비둘기鴿를 내놓으니 저녘때夕時에 비둘기鴿가 감람나무잎橄欖樹葉을 입口에 물고 들어오는지라. 그 후 또 7일을 지내서 비둘기鴿를 놓아주니 다시금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비둘기鴿로 인하여 3차나 보내서만 비로소 완전히 지상을 찾아서 번식할 수 있는 배船없이 직접 살 수 있다는 한 표시로 되어있다. 이 표시도 무엇이냐 하면 타락 때時부터 진리전부에 대한 복귀의 한 표시로 되어있다. 첫 번 비둘기鴿는 제일차 아담의 시작을 보려고 하였으나 비둘기鴿가 물水로 인하여 돌아온 것과 같이 그 영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바와 마찬 가지고 즉 노아가 손을 내밀어 비둘기鴿를 받아들이심과 같이 아담 영을 받아드리심이었다. 비둘기鴿를 방주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그 방주는 하늘 전부의 표시였다. 즉 삼층천 표시로 된 바였다. 방주도 상, 중, 하로 된 바도 하늘 삼층천 표시로서 기인한 바다. 다음 비둘기鴿는 2차 아담, 예수를 표시함인데 예수는 아담 영이 보내심을 받아 땅을 찾아 번식 살生 땅地을 찾고자 하였으나 감람나무잎橄欖樹葉만 물고 왔다 하는바는 예수와서 뜻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는 땅이 못됨으로 찾을 수 있는 약속을 세워서 기대성사한 표시로 된 바며 3차 비둘기鴿는 완전히 뜻 성사 시작을 완성하신다는 한 표시적 내용을 보여주심이다. 고로 진리복귀에는 소생부터 장생으로 완성으로 한 목적달성한다는 만우주 창조원리를 표준하였기에 이렇게 표시된바이다. 하나님이 7일간격 둔 바는 첫 번도 완성하려고 한 것이 연장되니 즉 7일 이상연장되니 이런 간격을 두어 역사함이다. 제1차는 한 기간을 두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뜻을 제1차 비둘기鴿적으로 성사하고자 하였으나 땅을 사지권에 잠기었기에 돌아왔고 제2차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받지 못하여서 돌아오고 제3차 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성사한다는 한 한계를 표시함이다. 그런고로 성사치 못한바는 하나님이 미성사케 한바가 아니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연장된다는 한 표시로서 제1차 제2차 제3차로 연장된다는 바를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 타락으로 인하여 비둘기鴿가 돌아온 바와 한가지로 제2차 아담 완성자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성사하고 돌아오고 완성 제3 아담 와서 완성된다는 뜻이므로 비둘기鴿 3차는 돌아오지 않음은 뜻 완성할 바를 보여주심이다. 이리하여 노아는 비둘기鴿 돌아오지 않음으로 자신의 몸이 지상에서 생활할수 있는 것과 한가지로 하나님도 3차 아담 재림주로 인하여 지상에서 창조이상생활을 시작하여 직계적 세계를 조성할 바를 표시되는 바가 목적으로 되었다. 그런 목적이 근본인데 노아 아들 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목적파괴를 시작하는 비원리존재를 유인하니 하나님은 근본40일 심판목적은 불성사로 되어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섭리하는 피血계대에 사탄 침입 불성사로 되어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섭리하는 피血계대에 사탄 침입의 종적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400년 연장을 보는 바다. 그 근본 뜻은 40일을 중심하고 사탄 대립의 성사를 시작하였으니 기본 40수가 기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40일수를 기본복귀하여 다시금 성사하려고 하니 40일 가지고는 아니되고 40년 가지고서도 안되겠으니 400년으로 연장시켜서 400년 후에야 근본적으로 제2 인간조상의 성사할 믿음信 기본성사인 노아의 믿음信완성기대를 아브라함을 택함으로 시작하였다. 이 믿음信을 세우 심은 아담의 불신으로 인한 것이므로 다시금 기대를 찾아세워야 사탄 대할 수 있는 기본이니 믿음信조상 아브라함은 노아의 근본뜻 신계승완성자로 택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믿음信조상되는 근본의의가 있는 바다. 왜 아브라함을 택하였나 하면 노아 가정으로 택함에서 실수하였으니 아브라함 한 자체로서 시작하고자함이 목적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믿음信의 기본을 세울 수 있는데까지는 어떤 경로를 밟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흉년을 당하여 아브라함이 애급으로 내려가는지라. 그 당시에 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아름다움에 염려하여 남매로 하자는 약속과 동시에 애급에 감이었다. 이 사라는 아브라함의 처로 매의 입장에 서게 됨도 아담 해와 입장인 원리적 사실을 찾아 세우고자 함에서다. 그것은 애급은 사탄 대신국인데 그 국왕 바로는 아브라함의 처를 자기가 취하여 처로 삼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바로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찾아주니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소유물을 주어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인한 연고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뜻을 성사하는 노중에 제일문제는 애급가서 처를 소유한 바와같이 하나님은 근본 한 해와가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앗으려 한 바를 다시 찾는다는 한 표시를 보여 그 후 가나안에 돌아와서 시작한 바와 같이 원수의 모략중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아 복귀함으로써 땅에서부터 뜻을 성사함의 기대를 조성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하신다는 근본 뜻이 있음이었다. 그 후 아브라함이 애급서 가지고 온 소유를 기본으로 하여서 뜻 기본을 삼아서 하나님의 뜻이 성사할 기본을 잡았다. 이것은 만물전부를 취하여 뜻 기대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다음은 롯이 잡아간 원수를 대하여 승리한 후에야 아브라함은 뜻 성사의 시작이 결정받게 되는 바다. 이것은 택한 자 전부를 복귀한다는 바이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은 사탄 소유의 귀한 자와 같은 데라의 아들子을 빼앗아 내었음으로 사탄은 아브라함이 뜻하는 하나님 대하여서 아브라함의 무엇이나 불순된 무엇이 소유만 되면 소유하고자하여 아브라함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아브라함과 하나님과는 중대 약속 성립을 시작하게 되니 사탄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될 터를 시작함으로 이때 하나님 대하여 사탄은 대립하여 서게 되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제물을 드렸으면 아브라함부터 기본기대를 잡아 400년 역사상 연장생활인 애급 생활은 없고 직접 하나님 책임분담 사명으로 볼 바이었다. 이 목적은 무슨 목적이냐 하면 아브라함만 완전히 뜻 성사하면 사탄 대한 근본 추방을 시작하여 40일에 대한 그의 심판하였던 기본목적은 완성되어서 출발을 볼 바이었다. 아브라함이 실수하고 나니 40일에 대한 뜻은 아직 완성적 기대를 잡지 못하고 그의 연장적 400년이 탕감시대이므로 시작 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 400년이란 년대는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연장보아 사탄이 침입한 것이니 이 400년대 탕감하여야만 노아적 시대입장에 입각함으로 아브라함에게 400년 연장을 보았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에 남아지는 바는 40수가 남아있는 양으로 되니 40수가 만사를 해결하는 뜻 성사의 완성점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섰든 아브라함은 뜻의 미성사로 인하여 자손이 400년 고역생활을 봄이 크나큰 화근으로 되는 기간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를 청산하여서 사탄 침입을 방지하고자하니 제물표시는 되었던 실체자로 인하여서 제물대신 찾아 세우고자하니 이삭을 모리아산의 제물로서 헌제를 명령하심이었다. 이 뜻을 아브라함이 3일기간을 두고 헌제함에 합의를 봄으로 하나님이 섭리하는 노정에 사탄을 방지하였으나 사탄 역시 이삭에 대하여 선유 소유물 될 수 있는 제물소유로 인하여 미련을 가지고 대하게 되니 이삭 자식중 두二성품적 표시적 자식으로 분립하여서 하나님은 뜻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야곱이 모친과 합하여 에서의 기업을 빼앗아 넘기는 뜻이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복중에서부터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하나님께 아뢰니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言하여 왈 두나라二國가 네 복중에 있음이여 두二민족이 너爾복중으로부터 나뉘分리라. 이此민족이 저被민족보다 강함이며 큰大자가 작은小자를 섬기리라. 하시었다.(창25/23-24) 이것을 보아도 아브라함이 실수한 근본을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시어서 분립케하는 야곱은 다음번임으로 하나님의 뜻 중에서 사탄이 뜻하였던 소유물 전부를 빼앗음을 표시하기에 이와 같은 대립을 보게한 바이다. 이것이 즉 후일의 예수의 한 역사의 본되는 사실들로 되는것도 알 줄 안다.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탄이 아브라함 자식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뜻 성사를 보려고 하든 것이 이삭으로 통하여서 비로소 성사하게되니 아브라함을 대하였던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으로서 야곱까지와서 첫아브라함 대한 하나님 뜻 성사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3인을 상대하여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연장을 본바의 근본원리를 가지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 3인의 하나님으로 인한 명사가 지금까지 좋은 명사로 된듯하고 현 신앙자는 알고 있지만 크나큰 오해로 알아야 한다. 그런 역사적 하나님편적으로 원리를 중심하고 있다는 바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런 원리로 전부는 사탄 침입방지키 위한 목적인 동시에 근본 타락시작의 복귀를 위하여라는 바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야곱부터 애급 출발은 야곱이 아브라함의 본 뜻 4백년 탕감노정 출발이 시작함이다. 왜 이삭부터 안되었는가 하면 이삭은 아담과 같이 두二주인 상대존재였기에 이삭부터 애급 4백년 시작은 못한바는 논한바다. 야곱이 시작하였다는 바는 야곱은 근본 뜻 성사를 잡은 자니 야곱이 애급 출발하는 바의 근본원인이 있음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뜻 성사한 완성존재가 못됨으로 애급을 향할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삭 자식에 에서라는 존재는 사탄 상대자라는 서러움이 시작된바이다. 어찌 실수없었으면 아브라함 자식에는 에서라는 존재는 없이 근본 뜻 시작이 볼 바이었다. 그러기에 이삭 자체로서도 40을 중심하고 리브가를 취하여 처를 택함이었다.(창 23/20) 이리하여서 하나님의 뜻의 시작을 봄이었다. 야곱도 40를 중심하고 에서의 에서의 기업을 빼앗는 기본역사를 시작할 바가 원리로서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기에 야곱이 40수는 없으나 짐작키는 에서가 40세에 햇 족속의 딸을 처로 취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근심하더라 하는 것 보면(창26/34) 야곱 년대도 40세를 중심하고 섭리하여야할 바가 원리로 되어있다. 이런 40년대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본을 잡으심은 기본노아 심판 40일수 복귀할 기본 수로 인하여서 이와 같이 시작한 역사적 기원으로 인한바다. 야곱이 사후에 그 몸에 방부제를 40일 바르심은 야곱의 몸은 하나님의 뜻 완성자이므로 이 한 존재는 사망하여서도 40일 기간과 같은 사탄 대한 40일 심판을 받아 사망한 자와 같은 사망이 아니고 40일을 완성한 성사자로서 하늘 뜻 40일 기간 위에 처하여 죽死은 자라는 표시로 40일 방부제를 바르게한 뜻이 있음이다. 이리하여 40일되는 사망기를 방지한 중심 존재가 된 바라는 근본의의로서 40일을 바르게 한 것이다. 40일은 즉 사탄 추방기간이면서 생명소생기간이다. 여기에 지금 야곱까지 연장보아서 애급 출발하게 되어 한 하나님의 기대를 잡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란 연장은 우리는 생각하면 원통한 기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기간을 두고 하나님은 약속제물에 실수한 전부를 청산하여서 사탄 분립을 성사할 때까지는 어느 곳까지나 하면 야곱의 식구가 밧담, 아람, 라반에게서 얻은 소유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돌아온 후에 뜻 성사의 시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이삭부터 야곱이란 삼대란 것도 하나님이 뜻하는 약속제물 중에 3제물 표시로 된바는 소생부터 장성으로 장성부터 완성으로라도 진리단계를 보여주는 바이었으니 아브라함이 뜻 합의에 성사하였으면 3대 없었던 바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하여 3대후에 완성한 것도 전하나님의 뜻을 이 3대 즉 단계로서 찾고자 하는 역사적 진리노정 전부로 표시함이 시작하였다. 그는 실수로 인하여 분립보아서 아브라함으부터 이삭으로 이삭으로부터 야곱으로 하여 뜻 성사하려는 진리노정에 대한 기본적 표시로 전개를 보게 되었다. 즉 아브라함은 아담 상징으로 이삭은 예수의 한 상징으로 야곱은 완성상징으로 됨이었다. 예수는 이삭과 같은 입장임에 사람들人만 믿었으면 주검없이 야곱의 뜻 합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삭도 주검 면함은 뜻을 세우심으로 면한바와 같이 될 바이었다. 그러나 그 뜻 잡지 못하니 미성사 할 수 있는 표시적 일대 복귀 역사와 모세로 인하여 민족복귀노정 실수로 인하여 십자가까지 관련을 가진 것이다. 그런고로 뜻 완성자는 야곱이었다. 야곱이 뜻 성사하기 위하여서는 제1 차 가나안을 떠나는 생활이 야곱 앞에 있었다. 즉 장자 기업을 취하고는 야곱은 기업성사할 자로 라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여기에 야곱 앞에 전개된 전부가 후일에 예수가 할 사명적 표시로 되는 바는 한 뜻 기대성사는 야곱이므로 야곱은 뜻 기대완성이 있어야겠으니 야곱은 하란 생활의 시작을 보는 바이다. 여기서 가나안 복지까지는 전부가 이스라엘이 나아가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기대가 되어야 하겠으니 1대에서 하나님의 뜻의 전부를 표시한 역사로 전개할 의의로 보는 바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3대제물은 아브라함을 소생으로하고 사탄 대하여 장성적 이삭의 시작을 보고 야곱의 시작으로 노정 완성이니 이 역사적 3대조상은 인류 대한 하나님의 역사적 전부를 표시하는 바로 전개를 보여주심이다. 그것은 제물의 전부는 전인류 대한 하나님의 섭리임으로 실수복귀는 전인류 대한 한 표징적 사실로 전개를 보아야 되는 바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1대 가나안 복귀까지의 전부는 가나안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 4백년 생활과 상대되는 기본일대복귀역사다. 이 야곱의 가나안 복귀노정은 이스라엘 전민족이 가나안 복귀노 정의 본되는 노정이다. 이리하여 야곱은 복귀노정에 야곱의 뜻을 성사케 하는 에서가 있었다는 바는 아담 자 가인과는 반대로 야곱 대함의 시작보니 기본 가인과 아벨적 근본뜻을 합의 본 셈임으로 근본 아담 두 아들 가인 아벨이 뜻에 속한 것과 같은 완성을 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이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찾아들게 되는 바이었다. 그 때 에서가 야곱을 대하여 반대하여 원수 시 하였다면 하나님의 뜻 성사에 큰 문제가 될 바이었으나 에서가 야곱을 환영하며 에서도 후일에 하나님 대하여 순종의 한 간접적 기본을 찾아 세우심이었다. 그런고로 에서의 후손은 가나안 땅에서 원수 대립이 안되고 가나안 땅에서 기업지를 소유 계속한 원인을 세우심의 기대가 에서가 야곱 대하여 환영한 결과로 가져온 바이다. 그러니 야곱 가나안 복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생활로부터 가나안 복지로 오는 한 본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야곱이 하란 생활노정에서 대하는 라반이란 존재는 사탄의 대상존재로서 야곱의 전부를 탐하여 자기의 욕망충당을 세우려고 하는 자이었다. 라반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우상숭배자였다.(창 21/19) 이리하여 하란 생활에서 재물을 취하여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하려고 할 때에 라반이 대하여 야곱이 취할 수 있는 자유 3일이 있었던 바라. 이 3일간을 중심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전소유를 분립케 하여 소유권으로 세우신바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3일 후에야 길느앗산에 대하였으나 하나님의 허하지 않음으로 자기 뜻을 성사 못하고 자기의 우상을 가져간 것을 찾다가 라헬이 그 아비父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우상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낙타駱駄안장밑鞍下에 두고는 지금 딸은 경수가 적출하야 일어나 환영치 못한다 하여서 우상을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야곱한테 공격을 본바이었다. 야곱에게는 레아, 라헬 두二처가 있었다. 그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대하고자 하는 뜻 중에는 하나님의 두二여성이 있다함을 보여줌이었다. 야곱의 뜻 아닌 레아적 여성과 야곱의 뜻의 중심인 라헬적 여성이 있다는 표시로서 보여줌이었다. 여기에는 근본해와의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할 근본적 여성이 있다는 바라는 것의 표시였다. 그것은 라반의 뜻 이룬 레아의 존재와 한가지 표시였다. 이것은 먼저 잃어버린 전인류 대한 타락 시작 본 모 해와로 표시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7일 기간을 채운후에 라헬을 처로 삼게 하시었다. 이 7일 기간(창세기 29장 28절 참조) 일수는 즉 노아가 비둘기鴿을 내보내듯 한 섭리완성적 일수로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 성사하고야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는 바이었다. 그리하여 라헬 찾는 바는 하나님이 후일에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 근본 뜻 성사할 목적을 표시한바이었다. 그런고로 레아 아들子과 라헬 아들子 합하여 뜻 성사를 표준한다는 전세계 인간을 찾아야할 근본목적을 표시한바이었다. 또 여기에 라반이 행한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탄 세계의 불신으로 인하면 이와 같이 야곱의 목적이 두 번만에 성사한 것과같이 예수는 이와같은 한 완성을 성사할바의 뜻을 표시한 바이었다. 그리하여 야곱과 합하여서 아비父 라반을 대하여선 처 라헬의 태도와 같이 하여야만 후일에 하나님의 뜻이 완성 본다는 한 표시로 되었다. 라헬이 만일 우상을 아비父한테 보였으면 야곱과 전부는 큰 미성사를 가져오는 문제로 되는 바이니 라헬의 한 승리를 가져온 중심은 경수로 인하여서 우상을 없게 한 바와 같이 후일 하나님 뜻 노정에 이와 같은 여자의 경수로서 사탄 전부를 승리하는 기대가 시작한다하는 내용을 표시한 바이다. 이것은 라헬의 태도와 같이 제2차 해와로 인하여 사탄을 굴복시켜 뜻 완성한다는 한 승리적 표시였다. 이 야곱의 1대의 전개가 예수의 노정으로 시작된다는 것도 한 표시로 된 바이다. 이 야곱의 전목적 성사는 애급 노정상에 다시금 시작의 본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 대하게 하는 근본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전하나님의 표시적 존재들로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아담 실수한 것을 이삭으로 복귀와 같은 예수 제물표시로 불신하니 십자가로 시작하고 야곱과 같은 재림주격 성사로 완성되는 한 표시로 된 자들이기에 하나님 대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대상자의 뜻의 섭리를 표시한 존재들이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연장된 후일의 전부를 표시한 기본들이니 믿음信이 기본되는 바가 성립되니 믿음信의 조상이라는 기본의의가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 노정은 구약역사에 전부 표시하여 맞추고자 함이 근본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성사부터 할 바가 모세부터 시작한바다. 모세는 야곱의 근본목적 완성하여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서 후일 예수의 제2 책임노정을 표시로 하면서 하나님의 직접 책임 기대 잡는 노정의 시작을 보는 바다. 그러므로 모세 역시 야곱 계승적 성사로서 출발하심이 출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브라함 + 자손 = 제물찾음 = 하나님 취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의 본되는 노정을 하나님과 합하여 성사하여 놓았다. 그런고로 야곱 나간 것이 모세의 완성의 본으로 모세는 출발하게 되었다. 이 본될수 있는 노정이 완성을 시작하였기에 믿음信의 조상들로 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예수 앞에도 이와 같은 완성목적 가지고 나가야할 표시의 노정으로 모세도 출발을 보는 바이다. 이와 같이 섭리하는 바의 근본의의는 사탄 대한 40일 완전 복귀 문제로 기인하는 바이다. 이 모든 어려운 역사시작의 연장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모세도 애급 바로 궁중에서 자라게 하는 것도 택한 백성을 제2차로 노아 이후에 사탄한테 빼앗겼으니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 대하여 반대노정을 세우려니 모세 역시 40년 때時를 바로 궁중에 있다가 40세재가 되매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케 함도 이 근본 40수가 시작의 여하가 근본 뜻 성사목적이었기에 모세 역시 40세재에 애급 대하여 반대하는 바이다. 모세가 40세재를 바로 궁중에서 전부를 잘 보낸 후에(사도행전 7장 23절 참조) 하나님은 택하여 또 40년간을 두었다가 역사하게 되는 바이다. 모세가 바로 대한 출발시는 40세재이었다.(출애급기 7장 7절 참조) 이와 같이 40수를 두고 역사한 것은 40일수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었든 것을 찾아서 탕감을 정하려니 40세재에 택하는 섭리를 시작케하여서 40세재에 성사로서 모세를 세워서 역사시킨바이다. 이리하여 재출발하는 모세는 승리노정을 잡고 나아간 바는 40일 복귀의 목적완성이니 40년후 40년 하늘뜻 준비기간으로 대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 이 모세 40년 애급의 바로한테 준 것은 전이스라엘 백성을 바로가 지배하니 기본 40일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하여 4백년이란 연수로 보았으니 모세는 이 40일을 사탄으로부터 하늘 40으로 찾아 세워야겠으니 애급 40을 주었다가 하늘 40으로 탕감하여 하늘의 기본 40일수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서는 양이니 애급 출발이라는 시작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40일을 전체적 완성을 하여야 하는 바는 이스라엘 전부가 40일 완성 하여야만 노아 심판 근본 목적달성한 하늘 백성으로 보는 바겠으니 즉 근본 하나님이 창조본의인 말씀을 복귀하겠으니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하여 놓고 근본 뜻 성사의 기본 말씀言 성사의 약속을 받게 되는 바이다. 즉 40일 주야로 통하여 금식하여서라도 성사할 목적으로되니 모세는 40일을 완성하려니 금식하여 40일 심판 근본목적 복귀가 목적이니 40일로 인하여 말씀言에 대한 두二석판 받음이다. 이것은 무엇이나 40일의 완성이 다시금 성사한 기반되는 아담 해와의 성사를 완성한 본이라는 것이 시작을 보는 바이었다. 그리하여 전백성은 말씀言과 하나 되어야만 뜻 완성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가 근본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됨에 40일에 대한 제2차 완성도 다시금 미완성을 본 바와 같이 되니 이스라엘 백성에는 다시금 고통수 40수로 남아지게 되었다. 40수 미완성은 재창조 복귀 미완성수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정탐군이 가서 정탐한 날 40일이 최후의 이스라엘 백성이 전 뜻 성사냐 미성사냐 하는 간격을 둔 대상일수가 40일이었다. 이 40일을 두고 한 전부를 믿고 나아가면 근본 40일은 승리의 기대 될 날이 있는데 이 정탐기 40일을 잘 믿고 넘지 못함과 같은 결과로 나타나니 광야 40년의 고난의 시작을 본 것이었다. (민수기 14장 30절에서 34절) 이리하여 40일 기본은 완성 못하고 40일 완성으로 바라보는 전백성 대표자는 다시금 사탄 소유물이 되어 광야에서 40년간에 사망하는바가 시작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노정에서 40일의 승리적 목적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 세워야 하는 중대한 기간으로서 남아지게 되었다. 40일 세우는 날이면 사탄 추방의 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40일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앞에 찾아세워야 하는 날이다. 이것을 탕감과 동시에 완성할 것이 섭리노정의 한 뜻으로 되었다. 모세 40일 목적 미완성하여서 사탄은 여전하게 침입하여 전목적 파괴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리야를 세우심이었다. 엘리야는 사탄 전멸시키기 위한 대표적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알신 800여를 멸하고는 40주야로 호렙산까지 가는 것도 무엇이냐하면 모세 40일에 대한 승리점을 완결짓는 한 표시로서 엘리야 호랩산까지 40일 기간이 있음이었다. 이리하여 엘리야로부터 노아 심판 40일을 완성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기본출발할수 있는 터를 조성하기 위한 총결전자가 엘리야였다. 그것도 백성이 불신, 불순, 불시로 인하여서 사탄을 침입연장을 보아서 메시아 전까지 당도하겠으니 하나님은 40수 10진배수 년수로써 4백년 기간인 40수 연장으로 인한 메시아 재림시까지 침입하여 역사하겠으니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서 목적성사를 예고함이었다. 이 엘리야라는 존재는 세례요한으로 시작하여 사탄 전멸목적 완성하여야 할 엘리야적 목적달성 못한 셈으로 되니 예수 앞에까지 40일에 대한 역사적 탕감과업이 연장을 본 바이다. 그런고로 이것을 탕감하기 위한 총결산기가 예수 40일 금식기간인 광야생활이다. 이리하여 승리함으로 심판목적은 완성할 기대는 잘 있으나 사람이 합하여야만(누가복음 4/13 참조) 성사란 결과로 인하니 40일에 대한 미성사를 본 바와 한가지로 되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사탄 대한 승리를 목적케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패한 듯 하나 40일간을 찾을 수 있다는 목적을 완성할 수 있다는 바는 십자가후로 인하여 예수 앞에 복귀되면서 기본완성의 터를 시작하여서 출발의 영광을 본 바다. 이 성립을 보아서 하나님의 기본 40일 노아 근본 사탄 추방목적을 성립하여 놓은바가 근본목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40일 기간이 문제로 되어왔든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역사적 모든 완성자로 뜻 출발 중심존재로 되는 바이다.(51. 10. 26 기) 제 5 편 이상섭리 제1 장 창조성 복귀로 된 이상론 본래 하나님이 천지창조할때 어느 존재물이라든지 전부는 상대할수 있는 존재를 대하게 하여 지으심이었다. 피조물중에 상대할 수 없는 격없이 지은 것은 없다. 직접으로 대하는 상대격이라든가 간접적이라는 상대라든가 전부 어떠한 상대위치를 잡고 있는 동시에 그 상대들로 인하여 자아의 한 완전조성을 보충하는 작용인 연관성으로 천주의 존재물들은 서로 상대를 필요케 되었다. 그 상대를 잡으면 그로 인하여 자아를 중심하고 전요구의 한 목적성사를 시작하여서 자아아닌 타자아격으로 대상 존재격으로 조성하고자 그 목적의 작용을 시작케 된다. 그런고로 상대가 나타나면 그 상대는 나의 한 대상될 수 있는 한 자격을 추궁하게 된다. 상대는 시작이고 대상은 자아를 중심하고 한 목적과정을 경과한 성사격이 즉 대상이다. 어떤 존재든가 전부는 자아의 행복을 표준하고 대상격을 요구하게 된다. 상대없는 자는 존재의 가치가 없게 된다. 상대로부터 대상을 완성하면 할수록 그 가치와 행복세계를 전개하는 바다. 그런고로 천주만상은 전부가 대상격 체계내에서 완전대상의 한 시작을 보아야만 이상이란 세계를 보는바가 사실이다. 어느 사회나 국가라든가 그 목적달성할 수 있는 대상경을 떠나서는 발달도 없고 이상도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존재하는 그 자체는 이상경의 한 영체적 한 본이상체에서 보는 위치를 요하는 바는 필연적요구이다. 그런고로 나我와 이상과는 하나면서 한 동작형선을 떠날 수 없는 동격 응할 수 있는 한 요구적 입장에 처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 요구를 충당하여야 하는 우리의 사명이 매일 생의 한 과업이다. 이런 과업을 하게하며 달성케 하려니 나로 하여금 그 이상에 대하는 향심인 자극과 충동심이라는 유지가 제일중요문제이다. 이 마음 없다면 이상과 나와는 벌써 성사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바와 한가지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한 대상격위에 있어 그 이상을 성사하려는 충동심이 작용을 갖게하는 것이 있어서만 그 이상과 나我와는 응선상격으로 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에는 언제나 향상을 표준하고 이상을 마음으로 자기도 알지 못하게 더 요구되는 존재격에 있다는 바를 부인못한다. 그런 그 작용심요소의 시작과 자극과 충동의 시작을 지금나와 관계상에 있어 한 부합응선을 취하여지는 한 불가피한 입장을 체득하게 될 때 나는 벌써 더 높을 수 있는 한 요구에 응하는 제2 존재격에 처함은 사실이다. 그러니 요구에 응할수 있는 길을 잡고 나간다면 그는 벌써 행복과 함께한 이상의 흥미를 체득할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여기에는 벌써 인간은 창조적 원리로 완전을 표준하고 지었던 그 원리적 힘이 나와 연하여 있기에 이 힘의 요구에 대상가치추궁이 인간이 이상을 생각케하는 원인인 바다. 이런 관련된 자아라는 존재를 시정하는 곳에는 한 대상격 완성을 요케하는 위치와 입장을 떠나서는 그 근본원리와 배치로 된다. 그런 조화로 지음받은 인간이니 이 대상이상을 충당할 목적과 배치되는 입장에 처하면 자연적 원리 성품되는 양심적 추궁은 필연적으로 나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원리탈선이니 이를 보장하기 위하려는 작용이 양심작용이다. 그런고로 우리 인생은 벌써 나 아닌 한 본체를 중심하고 한 대상격 달성이 남아진 한 과업으로 알아야 한다. 이 대상격 완성이 즉 이상의 길인 동시에 행복이 기본인 바다. 나는 하늘 대하여서 한 대상격존재로 기본하고 창조받았다. 그런고로 하늘 대한 완전대상격 가치자로서 되었기에 하늘의 요구하는 원리적 요구이다. 이 요구는 근본 힘의 작용과 공통하니 어느곳이나 통할수 있는 원리요소로 피조물세계는 공히 통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완전격 대상목적을 공통히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대상격을 하늘 대하여 나 자체가 완전하는 동시에 현실계에 있어서는 상대격을 취하여서 그 목적을 한 회로적 노선격인 한 딴 대상체를 성립하여야만 본 하늘의 대상가치와 합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나我는 하늘 대하여 대상완성하는 동시에 상대성의 한 대상을 완전성사하여야 만 근본과 합하는 삼위일체격 한 회로를 조성하고자함이 창조원성인 것이다. 그러니 양심적으로는 몸이 지향을 받고 다음에는 이와 함께 우리는 상대성을 취하여 완전하나되는 대상격성 존재를 합체하여야만 기본원리상선이 비로소 설 수 있는 바이다. 그러한 곳에는 근본 하나님은 거할수 있는 창조원리적 기대이다. 이런고로 이 기대조성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이상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흔히 말하는 이상의 곳은 어디냐 하면 양심이상요구본체와 합하는 곳이다. 즉 이 점은 모든 완성된 원리상점이니 행복이나 희락이나 전부가 시작하는 근거지다. 그런고로 기본이상은 즉 하나님과 동거하여 한 원리상에서 만사를 바라볼 그때가 인간에게는 최고 기쁨이다. 이곳에 처하면 지금까지 찾아올라온 한 절정상에서 처하여 지난날昔日의 하부분 향하여 볼 수 있는 그곳을 알게 될 때 모든 새 시작이 생활경지로 한 부여를 시작하니 즉 이상세계다. 그야말로 행복세계다. 문제는 이 근본시작을 하여야 할 사명적 존재에 처하니 양심은 나로 인하여 완성에로 재촉하는 것이다. 이것이 양심과 육신이 상충형체를 취케하는 원인 인바다. 나我 하나를 중심하고 보아도 행복하려면 먼저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그 기점을 이탈하면 벌써 불만이 시작한다. 이 각도가 심할수록 고통이 심하다. 이 각도 합하여 한 목적기점상에 뜻 성사를 볼 적에는 행복이란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본래인간은 내가 마음과 몸이 완전 하나 되어 양심요구를 육체가 완전히 채워줄 수 있다면 그곳은 벌써 원리성사이니 그곳은 즉 하나님이 지으신 근본형이니 이곳에는 하나님이 계실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장기간 유지할수 있는 생활형체가 이상생활이다. 그런 생활체를 취한곳이 즉 선한 곳이다. 선한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하면서 근본행복요소와 합할수 있는 시작이다. 이곳을 인생은 잃어버렸던 바다. 이곳을 다시금 찾아서 채워야할 존재이니 어찌 양심적으로 그 목적달성을 추궁받지 않으랴. 그러면 하늘의 요구성사가 시작하니 나도 또 하늘이 줄 바를 받을 수 있는바니 이곳이 즉 하늘 대한 대상격 완성위치이니 그야말로 원리적인 곳이니 행복이다. 사람은 본래 이와 같은 이상원리상점에서부터 시작함이 근본목적으로 되었던 바다. 그것이 타락으로 인하여 이 기본원리점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한 근본체에 대하여 한 대상격 존재의 본노선인 근본원리를 복귀하여야 할 중요한 책임이 누구로 인하여 생기었나 하면 그는 두말할 것 없이 비원리존재인 한 악의 주인공 사탄으로 인한 것이다. 이 사탄 대하여 지금 우리는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자체의 부족과 미흡함에 탄식을 하게되는 바도 사탄으로 인하여 너무 유린받은 자체가 되어 감각하지 못하는 바다. 이와 같이 근본대상적 위치를 잃어버린 인간이지만 그 근본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근본 위치에 대한 요구를 시작하여 주기를 요하는 바다. 어떤 사람이나 전부가 자기가 제일이라는 한 개성요구를 세우고자 한다. 그것은 누가 갖지 못한 개성진리체이기 때문에 그 요성성품을 어느 곳에서라도 한 상대되는 위치를 잡아 완전한 대상격 성사를 요케하고자 하는 제일원리본체와 합하려하는 제일기점을 잡고자 함에서 시작한다. 이와 같이 근본 한 개성을 중심하고 한 상대시작의 완성인 대상격 존재성으로 완성만 하면 그 기대상에는 한 대상격 완성으로 원리노선상을 성사하는 원리적목적을 조성하니 그곳은 벌써 근본 창조원리로 나타난 바이니 선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통성을 취할수 있는 행복의 한 기점위치인 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세계에는 누구나 자기중심 제일주의로 나아가는 바는 자기로 인하여서 근본기점상 원리위치를 취하는 데는 제일가까운 거리를 자기가 누구보다 더 가까운 바이므로 타중심하고 성사보담 자기중심하고 개성이상을 성사하고자 하여서 자기 제일주의로 취케 하는바는 사실이다. 이것이 소생 장성 완성하여 한 목 적달성하면 그 다음은 제2차적 대상위치를 널리하여 전체 기본목적으로 연장되는 바다. 그런고로 제일 자기부터 시작하여 전체에로 완성이상을 협조하게끔 본래 인간은 되어있다. 그런고로 사람이 본래 이러한 기본원리상에서 지었기에 타락은 되었을 망정 자아중심을 주로 하는 바는 사실이다. 순수한 양심적으로 선으로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그 한 자체들 합하여 나아가면 언제든지 그 기본점상 선을 합하게 되는 바이다. 이러니 우리가 상대를 요케될 때 상대된다든가 상대안된다든가 하는 곳은 벌써 선한 이상이 시작인가 아닌가의 결정적 해결의 표시로서 보여주는 사실을 증거하는 바다. 상대된다 하면 벌써 대상격위치인 한곳을 소망케 하여 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면 선과 이상성사니 나我에게 큰 기쁨의 시작이니 자기를 중심하고 이런 결단을 짓게 하는 바다. 이런고로 사람은 자기를 닮아라 하는 상대격 존재를 점유할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상성사를 잡을 수 있다. 전인간은 선한 자를 대상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의 한 목적달성을 속진시키려고 하는 바는 원리로 된 바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자기를 세워서 대중의 한 중심되고자 하는 그 본심 마음은 나我자신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한 근본체다하는 선언의 표시인 바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보아도 나 닮아라하는 요구를 세우고자 하는바는 나는 본래 한 선한 표준상 존재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와 합하면 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아도 벌써 자기는 제일존재선경의 한 표시적 역활을 주어서 상대를 잡아 대상을 세워서 그 선을 직접 자기와 연결 짓고자 하는 제2존재 선을 목표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자아란 존재는 제2존재며 그 목적은 제1존재의 한 대상격의 존재로 되어야 된다는 바도 원리적으로 감촉받는 바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에 대한 문제도 문제 외로 되게 된다. 제일존재 선 + 제2 존재선 = 하나님 + 나我 = 하나님 + 대상 = 하나님 +자기(나我+대상)라는 표시로 규정된다. 제일 먼저 문제는 자기다 내가 먼저 제일존재의 완전 대상자 성사할 것, 즉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 선하여지는 기본점상 자기를 조성할 것이다. 다음은 이런 자기를 중심하고 제2자아격 대상격자 완성할 것이다. 이것이 시작하면 창조성이 완성된다. 즉 이곳은 남자면 여자가 요구된다. 상대로부터 대상추궁을 요케 된다. 다음은 이것이 기본적 창조성 제2 대상존재다. 하나님과 사람은 한 몸이니까 이런 기본원리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독신생활이란 바는 비원리가 존재하는 악에 속한 세계니 그런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이상시대가 되면 기본원리배치행동이란 결론이 나온다. 다음은 대중 대하여서도 한 상대로부터 그 어떤 목적완성할수 있는 이와 같이 나의 한 상대로서 대상격적 태도로 대하여서 그 사업 목적인 바다. 이러한 목적으로 한 상대로 하나님은 인생 대하여 대상 번식을 요구하고 제일존재의 선을 사업체와 자기 대하는 어디나 선한 것으로 하늘과 합할수 있는 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전천주도 근본부터 사람과 하나 되면 사람은 만물세계상까지 하나 되게 하면 목적달성하여야만 하나님이 선히 계시는 발등상이 되는 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근본 선이상전개를 제일은 사람이 중요한 위치에서 위上로는 하늘 아래下로는 만물 우로는 가정 좌로는 사회 또 크게 보면 원화세계에로서 근본창조이상조성이 목적인바다. 그런고로 나我를 중심하고 자아 선으로부터 가정 선으로 사업 선으로 이것이 제일책임완성함의 하나님의 창조한 대상 선 목적인 바다. 이와 같이 전인류에게 요구하는 하늘 제일세계의 요구이다. 즉 하나님의 요구목적이다. 세계 떠난 하나님은 세계 위上에 쓸데 없는 바다. 하나님= 전천주= ①되는 세계가 선세계이다. 선은 하나님이시다. 선에는 성분별시작으로부터 개성완성으로 상대개성완성이 합하여서 한 회로의 조성으로 요구하는 근본존재다. 선은 대상위치확보가 요구조건이다. 이와 같이 천주는 상대성으로 대상으로 단위하고 전천주까지 선을 조성하고자 함이 사람을 창조면서 천주창조이다. 사람은 천주중심이다. 사람 중심하고 제일존재 하나님 사람 중심하고 제3존재 만물이다. 하나님은 사람 통하여 선의 번식을 시작하며 그 선을 사람은 개성선으로 만물선까지 조성하여 선의 주관노선을 세우는 바다. 그러니 사람이 없는 하늘이 없고 사람이 없는 만물은 없다. 사람이 천주의 중심이니 사람 타락하니 하늘 탄식이 생기고 사람 타락하니 만물의탄식도 생기였다.(롬8/18 참조) 이것 복귀사업의 목적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지금 이상과 같은 원리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상대 될수 있는 제일자격성사가 무엇보다도 귀한 바다. 내가 하늘 대하여 제2존재로써 제일 존재의 한 대상의 요구가 전목적됨은 사실이다. 그러니 상대할수 있는 위치를 취하여야 하겠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사람은 제일존재의 이용물인가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이 상대의 요구는 제일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은 물론이나 나로서는 완성하는 기 본 완성이란 목적으로 되어 결국은 나 때문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하늘의 요구하는 바의 목적은 주기 위한 목적이고 나는 받기 위한 목적이 즉 내가 하늘 대한 상대시작으로 대상완성을 위한 바다. 그런고로 하늘은 주고자 하나 줄 수 있는 상대없으니 그 얼마나 서러우랴 서러움이 생기는 것은 주고받고 할 존재가 없게 되는 것에서 시작이다. 이런고로 참주고 받고 하는 자의 요구로서 대상이 요구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제2 나에게 준다면 거기에 벌써 기쁨이다. 그런고로 자녀 대한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남편 대한 사람도 여기서부터고 사회(사업체)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하늘 대한 사람도 여기서부터다. 이와 같이 귀한 근본상 자아가 되면 참 받을수 있는 자이다. 위上으로는 참주는 자를 갖고 아래下으로는 참 줄 자를 가졌다. 이 얼마나 행복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을 곳을 소유한 자는 언제나 기쁨의 동력이 약동하는 바다. 그 표시가 자녀 대하여 주고 싶고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근본원리인 표시다. 이 모두가 완성은 하늘과 합하여야 되는 바다. 하늘은 발전소고 우리는 배전소와 충전소와 같고 만물은 수급소와 같은 것이다. 발전소 있는 배전소 수급지는 원리이나 이 중간 우리되는 배전소, 변전소가 없으면 모두가 생명사명이 중단인 바다. 이와 같이 주고 받은 변전소 배전소의 위치가 즉 우리 인생이며 나이다. 이런 원인으로 받고 주는데 원리소모없는 것을 바란다. 전기로 말하면 손실없는 것을 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실이 많으면 기본 전기가 소모된다. 손실은 그 도선물질로 인하여 우좌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물질의 에너지力되는 전기를 잡아먹는 작용이 생기게 하는 적 작용의 시작은 전기요소를 반하는 작용을 갖고 있는 존재니 그런 손실을 가져오는 것과 동일하게 우리는 전선과 같은 육신을 갖고 있는 그 자체와 양심과 합하여서 완전히 하나가 되면 양도체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그렇지 못하면 불량도체와 같은 부작용 손실을 생기게 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주고받는 대상을 연속적으로 어떤 방면으로 한다면 그는 다시금 주인에게 돌리는데도 손실없는 원리복귀가 성립하는 바와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워 돌리수 있다는 것이 제일요구목적인 동시에 선계속이다. 전기가 잘되게 하는 것이 전선류에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성사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나 잘받으려니 잘 접촉하여 완전도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생명의 중심지이며 희락의 중심지이다. 생명의 중심과 희락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하늘 희락도 행복도 모두가 하늘 사랑 받을 때에 시작이니 제일 요구가 하늘 사랑 받는 것이 목적이다. 하늘 사랑 받으면 행복도 희락도 시작이다. 완전한 하늘 사랑 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성립이 요구되는데 사랑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미가 있어야만 완전 사랑을 줄 수 있는 바다. 하늘은 주고자 하니 사랑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미이다. 이와 같은 상대요구성사조건이 시작은 사랑愛이었다면 미가 있어야 한다. 사랑愛을 +라고 한다면 미는 -라는 상대존재다. 이것이 완전히 주고받는 것이 선이다. 선=사랑愛+미+(의)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자 하는 바는 미의 한 존재이다. 예수는 사람 중심인 동시에 하늘 사람 대신자이다. 예수 보내심은 완전 하늘 사람을 인간들한테 줄 수 있는 기초작업을 시작키 위하여서다. 예수 사랑愛+ 나我 = 선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늘 대한 대상격완성 내我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나我는 하늘 사랑 대하여 받을 수 있는 미가 요구조건이다. 완전 사랑 대하여서 완전 미를 상대하여 시작을 보아 완전히 주고받는 하나一로 되는 대상존재가 손이다. 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상대를 결정하여 대상시작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노정적 요소가 의라한다. 예수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하심은 자기자신이 의를 세울 수 있는 한 상대자의 시작을 보지 못함을 표시한 바다. 그런고로 지금 천주는 선을 완성하려니 사랑과 미가 생기여 의의 한 노정을 지어야만이 하나님이 이상시작이다. 우리가 하늘 대하여서 아름다美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저 원리로 돌아서는 것이 기본목적이다. 그런고로 양심이상존재 위치위까지 필요하다. 그러니 양심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나我는 하늘을 대하여 미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전기의 한 원리와 같은 것이다. 완전 (-)가 되면 자연적으로 (+)는 생기는 것과 한가지다. 원리적으로 미가 완전히 조성되면 하늘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작용을 시작한다. 이 작용이 시작하여 계속하는 것이 한 의다. 이 작용이 계속하여 완전 합하는 것이 선이다. 작용을 계속하는데는 부작용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의의 사명위치이다. 의는 선한 노정을 결실하게 하는 요소이다. 예로 표시하면 선하려고 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미로 의로가 경과 합하여 하나一 되는 바다. 하늘 대한 사랑을 받으려니 아름다워야하는데는 여기에 양심 대하여서 몸을 그 양심에 중심하게 한 유지계속하게 하는 것이 즉 의다. 그러니 하늘은 제일존재 양심을 제2존재 몸을 제3 존재로 하면 의는 제일존재 사랑에 대하여 제2존재 양심과 합하게 하는 제3존재 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양심요구대로 계속유지하여 완전 미를 갖게 되어 완전 사랑을 받아 합하게 하는 그其 제3 존재를 제1 존재까지 합하게 하는 요구가 의다. 이와 같이 하늘 사랑 받으려면 양심만으로는 아니 되고 몸이 합하여야만 시작되는 바다. 이렇게 우리 사람에게는 삼위요소 위를 세워서 하나一로 되는 원리 창조성이 있다. 의라는 것은 제3 존재 위치를 제1존재 위를 속하게 하는 기본작업의 실과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의는 몸에서 양심이 합하게 하는 요소가 의다. 나를 중심하면 한 대상을 대하여서 의하면 그其 대상이 나와 같이 설 수 있는 위치를 조성하여야 의다. 사업을 대하여서 역시 나를 제2존재 위치에 두면 제3 위치는 사업이니 이 제3 존재위치가 나와 하나의 위치를 계속 취하게하는 바가 의다. 의없는 곳에는 하늘의 미를 조성하지 못한다. 그러니 하늘이 나를 대하여서는 대상본체니 사랑이고 나는 미적이고 나를 중심하고 대상격자에 대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대상위치가 미이다. 의는 대상미를 조성하게 하는 평형요소다. 그러니 의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유지하는 생활이 요구되는 중요생활이다. 의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제3존재가 완성조성이 되어야 되는 한 분립성 대상 조성을 목적으로 인하여 필요한 바다. 인간사회에서 의가 제일 나와 직접적 관계의 위치에 있는 바다. 나도 먼저 마음 중심하고는 몸 자신 중심하고는 대상으로 대상중심하고는 만물세계로 이와 같이 관계적 인연을 중매하여 주는 그 자신은 의라는 존재다. 의는 완전미를 조성하는 한 기본에 향하여 이동하는 장성요소이다. 그런고로 완전 사랑과 완전미가 조성되면 완전의는 조성되는 바면서 선은 완성된다. 예를 들면 10 사랑을 줄려고 할 적에 10 미를 보여 주어야 한다. 10만큼의 사랑 받고 10만큼의 미를 돌리는 완전 하나一되는 한 회로를 조성하여야만 선인 것이다. 의는 완전 사랑에 대하여 완전미를 유지하게 하는 과정이 의의 분담과정이다. 그런고로 미의 위치는 가감적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의와 불의와는 한 경계선상에 서 있다. 그러므로 대상격 우좌여하로 사랑과 합하여 선성사를 우좌하는 중요위치가 미적 위치이다. 그러니 의는 한 기본선중심체 모양과 같은 것으로 나에게서는 작용한다. 줄래도 대비되는 미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늘 존재는 불의인 행동으로 된다. 그러므로 하늘의 사랑을 받는 자라면 주는 것도 하늘화하는 기대선상에 서야만 된다. 그런고로 우리 인생앞에 구약시대는 행의로 신약시대는 신의로 성약시대는 시의로서 한 인류생심중심으로 되었다. 예도를 보면 사랑 선과 미선과는 대상되어 한 회로를 조성한다. 의는 한 중심 B 점이 되어 A, C를 연결한다. 이와 같이 한 선상에서 설때에 선이 A ㄱ 사랑愛 B ㄴ 의 C ㄷ ㄹ 미 성립된다. 한 목적 대상 취하면 의를 중심하여야 시작된다. 한가지 목적을 이루면 그其목적 종결을 짓는다. 즉 도면 A, B, C 선을 중심한 한 회로는 조성되어 선성사한다. 다음은 딴 목적물 대할때도 전번 의를 기대로 하여 미를 찾게 된다. 그러므로 전번 의와는 계속하여야만 따른 뜻 성사미로 이룰 수 있는 연결선을 조성한다. 도시 ㄱ, ㄴ, ㄷ 선 선 회로완성하고는 ㄱ, ㄴ, ㄷ 선으로 타에로 시작하여 언제나 영원 표준 선 완성 목적을 요구하는 회로를 영원히 계속하고자 하는 바가 인생 생애의 목적이다. 이와 같이 하늘 대하여 미로 시작성사가 시작되어야 다른 상대를 취하여 사랑격으로 대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하늘 사랑과 합하는 미를 찾았던 자격자니 선 소유자라는 입장을 복귀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대상격자를 나로 인하여 세우면 이상시작이다. 그곳에서 하늘 사람 대신 사랑으로 부부 사랑 자녀사랑을 취할 수 있는 자격자다. 그리해야만 하늘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대상자 기뻐하는 제1 제2 제3 존재 전부가 기뻐할 수 있는 한 목적 회로선상을 완성하게 될 때에 선한 가정이라 하는 바다. 선한 나我 중심한 선한 가정으로부터 선한 사회의 시작이니 여기에는 의의 사업이 요구케된다. 그런고로 나我중심하고 그 사업을 한 미로서 보면서 한 대상격적 선을 조성하여야 하는 한 몸 대신적 마음으로 대하여 한 미의 대상격 사업 시작이 조성하여야 만 의의 사업이다. 그런고로 한 대신 나의 사업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 사업은 그 사람이 대신이니 한 연결된 의를 중심한 한 목적상에서 있기에 의와 선을 표준하고는 하나라고 표시하여지는 것이므로 사업은 그 본인대신이라는 바다. 그러면 온 천주는 한 몸과 같은 구조로써 되어 있다. 물질세계도 한 하늘의 표시체이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사업을 통하여 생활을 시작하여 사랑 성사목적과 이상합합은 그 이상을 세우는 것이 우리 생활상 중심이다. 그러니 의의 사업이 미를 조성하는 것이며 선을 조성하는 중심도 된다. 내가 중심도 되고 사업이 중심도 되고 하늘이 중심도 된다. 이것은 한 회로잡고 되어있기에 시작하면 선이나 의로만 시작하니 그 선상에서 어디나 동성요소를 감각하니 그 중심도 각위치 한 대로 표시도 된다. ① ② ③ 이와 같이 자유기대선상을 어디를 탈선하여도 우리 양심가책이 시작된다. 가정이나 사회나 나혼자나 전부가 한 회로 선상에 있다는 결론적 존재니 그 자연법리와 같다. 그런고로 이상가정을 생각하기 전에 이상 사랑 받으라. 다음에는 이상사업하여라. 그러면 이상가정도 필연적으로 유지하는바다. 인간세상에는 먼저는 이상같은 것이 점점가다가 중단되나 하면 기본원리를 탈선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기본이상 향상 요소가 그 양심 가책으로 인하여 장성하지 못하고 중단됨으로 시작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이 근본원리상에서면 시작과 동시에 영원표준이상하고 나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영원이고 의면 영원 표준한 의로서 계속하고자 함이 근본이다. 그런고로 하늘뜻 합한 사랑부터 이상가정의 복귀로 이상사업복귀로 제1단계를 천주지간에 시작을 보고자 함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목적이다. 이곳이 자유이상세계다. 사람은 하늘 대하여서 사랑愛으로 대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중심으로 온 천주가 화동하는 작용 시작이 이상론의 결실목적지다. 그리하여 온 천주는 하나의 뜻으로 시작하여 끝끝내乃終 또 시작으로 하여 알파와 오메가적 원리성립을 보는 동시에 만세전 이상실현인 바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인간들 향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성사하여야 한다. 이 크나큰 이상의 근본을 사람 대하여 부여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늘로 연장으로 영원생활을 시작하는 자가 되어지는 행복의 창조섭리를 누가 감사치 않으랴. 이와 같은 생활하는 자라면 하늘은 나我를 중심하고 교시하면서 모든 것을 지도하는 한 목적이 시작한다. 그런고로 이 원리 상 이상은 하늘의 중심존재인 한 존재 재림주 중심하고 시작을 보는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재림주와 합하여 뜻 성사하는 세계자녀가 되어지는 것이 하늘의 한 소망인 것이다. (51. 6. 30) 제2 장 재림주는 이상론 완성의 기본존재 인간이 바라든 재림주라는 한 존재는 천지창조로부터 하나님도 또한 바라든 한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 한 존재가 다시금 지상에서 찾아져야만 창조적 본뜻 성사의 제일보를 볼 것이므로 이 한 존재가 전 중심적 목표로 되어왔다. 그는 즉 자기의 몸인 동시에 천주의 한 중심이겠으니 이 자체를 사랑하는 이유로 되어왔다. 재림주는 타락하지 않았을 때無墮落時의 한 존재야 되는 바는 사실이다. 이 존재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전부가 완성을 시작하는 동시에 지상에 대하여서는 하나님이 사랑하되 재림주를 중심하고야만 사랑할 수 있는 세계로 전개하게 된다. 그는 즉 재림주는 세상사랑하던 중심목적인 존재며 기본존재이므로 이 존재가 하나님이 지상 사랑하든 한 총결실존재니 그 존재가 오면 하나님의 전사랑은 천주 어디에 무엇보담 재림주이므로 이곳으로 시작하여 근본 창조적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바이다. 즉 그其존재가 출현하면 하나님이 세계 사랑하든 전부를 합하여서 재림주와 하나되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그러니 재림주 떠난 곳에는 하늘 사랑이 없음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 떠난 곳이 고통의 곳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 권내인 지상이 되면 그곳은 재림주를 중심하고 되는 곳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곳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받는 곳은 생명은 물론이면서 행복과 희락과 만족이 시작되는 세계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완성적 원리본채이므로 그 세계는 원리복귀의 세계이니 지상천국의 한 기본을 시작하는 세계이다. 재림주 전까지는 사랑하여 온바는 전부가 소생시켜서 재림주에게 합하게하는 본의였다. 그러니 재림주가 현현하면 천주는 하나님이 바라든 사랑 중심체인 재림주와 합하여야 할 터인데 합하지 못하면 그는 한 심판하여오던 대상의 모양으로 되니 그곳 향하여서는 단호한 무자비한 심판처럼樣 대할 시기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예수로 인하여 사랑을 주어서 무조건 사랑을 주었음은 재림주로 인하여 전부 합한 천주사랑 복귀코저 함에서다. 그런고로 주었으니 그 가치추궁과 거두기 위한 존재가 재림주다. 재림주는 사랑을 거두시는 존재이므로 재림주 오신 후부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는 자는 재림주 품에 와야만 다시금 창조 근본성인 사랑 이상의 자격을 받을 수 있는 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재림주를 통하여 돌려 드려야 할 책임이 있음으로 재림주를 사랑하며 한 회로적 대상을 성립시키지 않으면 안될 바가 끝날에 처한 사람들의 의무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보수적 사랑이라고 하여서도 아니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성적사랑이다. 즉 나我를 中心하고 받고 주어야 창조원리를 완성하는 바이므로 재림주를 통하여 사랑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는 바이다. 재림주를 다시금 사랑하면 근본적 창조이상전부가 시작을 보아서 자기로 인하여 완성을 지어 근본이상 생을 보장하는 터가 되는 원리를 세우려고 하니 재림 외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시기이다. 그런고로 사랑을 예수로 인하여 온 천주에 뿌려서 천주를 소생케 하여서 재림주로 인하여서 거두심이 목적이니 이 목적 외에 처하는 자도 하나님의 미움의 자라는 바는 두말할 바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귀한 사랑을 주어 온 바는 더 높은 사랑을 목표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이 사랑한 바는 예수로 인하여 사랑을 번식코저 함이 목적이었다. 예수 하나로 인하여 많은 사랑이 완성하여서 사랑을 시작케 하였다. 시작하였으니 그 결말은 있지 않겠는가? 이 사랑을 거두는 때時가 즉 재림주를 중심점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사랑하였으니 사랑받아야 하는 시대가 된다. 즉 재림시대부터 시작한다. 그러면 원리복귀가 시작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다시금 사람으로 통하여서 재림주에로 회로를 지어 한 일체적 사랑 이상을 완성한다. 즉 창조이상적 한 주고받고하는 회로를 조성하여 근본원리복귀 세계로 전개를 보는 바다. 다시 말하면 재창조 이상이 시작되는 바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두고 지금까지 사람을 사랑하여 왔지만 재림주이후는 사랑치 않는 자를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는 바이다. 하나님이 사랑치 않는 자를 위하여 사랑하면 사탄 짝하는 두려운 한 행동의 출현을 보는 바이다. 그런고로 사랑을 주기 위한 예수 이후에는 적까지 사랑하여 왔던 바도 적에 속한 사람을 대하여 사랑을 줌으로써 사랑의 소생을 보아 번식하게 하려니 적을 대하여 사랑하라고 한 것이 예수의 근본목적이었다. 그러기에 예수는 왼뺨을 치면 오른뺨까지 돌리는 근본목적이 있었던 바이다. 그것은 사탄보다 더 높은 사랑을 주어 사탄 대한 사랑 받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하여서고 또 사람은 사랑을 근본생명으로 하고 있기에 사탄의 사랑 이후의 사랑을 주어 소생시켜 전인류를 빼앗아 넘기려니 또 악 번식을 방지하여 속히 결실하게 하려니 이런 사랑을 취하였던 바이다. 그러니 재림주 옮으로 사탄은 패하고 사람은 재림주를 중심하고 근본원리가 완성하여지겠으니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서 받은 사랑에 대신 사랑을 주어야만 하늘과 나와는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한 선을 조성하여지는 근본이 됨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사랑하여 돌리는 회로를 조성하여 영원 삶生을 유지하여야만 타락전 세계를 조성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재림주를 중심하고 사랑을 주는 길을 돌려서 찾는 회로를 잡고자 하는 바는 선하게 하고자 하는 바가 근본이니 그래야 전부가 살 수 있겠으니 이런 목적으로 되는 것이기에 이상론을 완성하게 하는 바이다. 재림주가 오면은 그곳 시봉자는 지난날昔日에 사랑 줄 시대와 반대 방향으로 우리는 태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줄때는 뿌리일 때요 재림주 나타난 후에는 사랑의 결실을 거두는 때니 재림주 품 외에 있는 자를 사랑하면 거두는 때에 뿌리는 것과 한가지니 하늘의 사랑이 무효과됨을 정하는 시대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 존재들이 하늘 존재아닌 자한테 왼뺨 맞으면 사랑愛으로 대하지 않고 오른뺨까지 쳐서라도 하늘의 의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시대이다. 다시 말하면 아벨적 하늘 존재가 가인적 하늘 존재 아닌 자를 대하여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순종자로 하여 근본 복귀해 세워야 하는 시대이다. 그런고로 시대적으로도 자연히 이러한 경향으로 역사는 흐르고 있는 바는 이 근본 뜻이 완성하려는 시기가 가까워 오는 것을 보여주는 바이다. 그러나 재림주를 시봉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각자 각자가 하늘의 아버지 어머니의 분체로서 완성하여야 할 존재들이므로 함부로 손을 들어 칠 수 없는 바이다. 뜻 안에 있는 자를 치면 하늘의 아버지 어머님의 몸을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바이므로 사랑을 중심하고 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즉 한 형제면서 한 몸임으로 예수가 전하는 사랑을 갖고 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만일 뜻에 반하는 자가 있어 뜻을 세우려하기 위하여 충고를 받게 될 때에는 순응하여 뜻을 세워야 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자신으로 하여금 대신 감사의 표시로서 뜻 번식에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될 책임이 있는 바이다. 지금까지 역사를 두고 악 지배하에 속하여 있던 성도들은 가진 수모와 압제와 업신여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 소생시켜 장성시키기 위하여서 사랑 중심으로 양보하여 왔던 바이다. 재림주 이후에는 선 지배를 세우는 동시에 사랑을 찾아 건설하기 위한 역사적 수확의 시기이다. 재림주 모시는 자들은 수확과 동시에 건설을 추진시켜 나가야 할 의무를 각자가 갖고 있음으로 재림주의 뜻을 중심하여야만 상대를 대해서 사랑을 주며 또 받아야 하는 바다. 제삼자를 대하여 서로 함부로 줄 수 없고 함부로 받을 수 없다. 오직 뜻의 보장을 중심하고야 주고받고 할 수 있는 바는 사실이다. 이것은 선을 성사하려니 이런 창조원리를 요구케되는 바이다. 이리하여야 하늘의 선의 곳이니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을 침범하는 행동으로 되는 바이다.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입장을 정하고 뜻밖에 속하는 악 대하여서 무자비한 분별시대가 재림주를 중심하고 즉 이상시대이다. 그러니 양심적 선을 중심하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자아로서 선을 완성하여서 상대를 잡아 대상 선으로 시작하여 하늘 선을 중심하고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자아로서 선을 완성하여서 상대를 잡아 대상 선으로 시작하여 하늘 선에 합하여야만 비로소 창조원리를 성사한 선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하늘과 합한 이상 선으로 사회와 연결지어 온 천주에 이상 선과 합하는 기본원리점이 시작하게 될 때에 천주는 기쁨이 나로 인하여 시작하게 되니 창조로부터 부여받았던 원리적 중대과업은 완성을 보게 되는 바이다. 완전히 주고받고 하려니 우리는 재림주를 중심하고 하늘 대한 사랑으로 하늘 부모를 모셔야 된다. 이것이 창조이상 선 완성의 근본 뿌리이다. 이 하늘 부모와 하나되어야 창조이상 선을 시작한다. 그러니 하나님과 합하려니 하늘 부모 품으로 합의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창조이상 원리완성이니 이상 선이다. 또 그 외에 우리 사람은 육신이 있나니 하늘 부모를 제일위로 하는 영상인 육신의 부모가 있는 바이다. 이 육신의 부모가 하늘 부모를 모侍시는 뜻에 서서 완전히 시봉하는 부모면 그 부모로 인하여서 육신받은 자식은 한 몸과 같이 되어야 할 바가 근본창조원리상점이다. 그러니 하늘 부모를 시봉하는 대신 존봉하여야하는 창조원리가 있기에 효도하지 않으면 아니될 원리를 갖고 있는 것이기에 효도하라는 유교의 기원이 있는 바이다. 또 나라적으로 대할적에는 재림주를 왕으로 시봉하여야 하며 또 지금까지 의 미지의 근본을 교시한 것으로는 스승師으로 시봉하여야 하는 바가 창조적 원리상점임으로 공자를 통하여 삼강이란 원칙을 세워서 역사를 시작하게 한바다. 그 목적은 지금 창조원리점 완성을 돕게 하기 위하여서 역사상에 남아지게 한바이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늘 사랑을 계대로 받아 번식하여야 하겠는데 먼저 하늘 부모의 뜻에 하나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며 세상의 부모를 위하여 뜻에 합당하게 노력할 것이며 그 다음은 내 대상 존재로 하나 되어서 전체가 하나로 완성하여야 할 바가 인생의 제일책임인 바다. 즉 하늘 부모 + 육신부모 + 부부(자녀) 합하여서 하나 되어 분립 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창조성상대로 대상이상형을 전개케 한 바가 근본창조원리이었다. 이것이 하나로 하늘의 뜻을 성사한 자라면 재림주를 시봉하는데 완전 자격인 제일책임은 완성하는 바이다. 그러니 효자 충신이 되어서 하늘 부모를 시봉하여야 자기를 완성하고 하늘 대하여 완전중개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바다. 특히 세상에 부모된 입장은 어떤 입장인가. 이상론으로 보아 살펴 볼 때에 즉 나我를 예로써 잡는다 하면 나我는 육신적 위치이고 부모는 마음적 위치이므로 하늘 대해서 완전한 영상으로 되어 자식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상대위치를 갖고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식 대하여서 마음이 몸을 지배하듯이 부모는 자식에게 하늘의 한 모형의 본이 되어 나타나서 뜻 성사에 노력하여야 하는 책임적 의무가 있는 바이다. 그렇지 못하면 하늘 뜻 성사하기 위하여서 몸이 마음을 지배하여서라도 완전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즉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서 뜻을 잘못 행함이 있다하면 시정할 책임이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재림주를 모시는 자는 나를 중심하고 먼저 가정을 완성하여 이상론 삼위격 영상을 완전히 조성하는 것이 제일책임인 것이다. 그리하여 제2책임부분인 사업과 사회를 뜻 합의자로서 대할 수 있는 자격이 성립하는 바이다. 제일책임부분을 완성한 자라면 제2책임 대상인 사업으로 사회를 대하여 나가는데 자격이 있는 동시에 그 뜻 미추진자 대하여서 무엇이나 충고할수 있는 바이며 지도할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곳에 작금 문제 보다도 뜻 중심하고 완성자는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 어느 곳에든지 있는 바이다. 이것이 원리적 책임이면서 선 번식의중심이 되는 바이다. 그러니 재림주를 시봉하는 세계는 이 이상을 표준한 세계이므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국가에서나 세계 어느곳에서나 원리아닌 곳을 책망하여 정의로 배양할 사명적 연결이 각자에게 부담되어 있는 바이다. 만일 만의를 그냥 두면 그 존재 역시 뜻 미성사의 한 상대 결정자 입장이 되니 불의라는 타락 상대 근본을 보는 바이다. 이러니 누구나 다 하늘 뜻 성사를 표준하고 지상에서 불의에 대한 방위태세를 취하는 것이 재림주 이후에 처하는 우리 인생 생애의 맡겨진 한 사명이다. 이 완성된 시대에 속하게 되면 사람들은 하늘 자녀의 시작을 보는 바는 물론이며 또 그 시대의 부부도 영원한 부부로서 하늘 부모의 한 대신분체로서 영원한 이상부부로 시작하는 동시에 하늘에 가 있는 영인들이 땅에서 완성하여야할 미완성부분까지 충당하여 채우는 역할을 하여야한다. 즉 각자는 지상의 자아를 완성하는 동시에 하늘에 가 있는 식구 있으니 그 어찌 중대한 책임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지상에 있는 나 자체로 인하여 지상완성이면서 대신천국완성이라는 뜻 완성하여 근본 해방시작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천국영인들은 우리 지상 사람과 합하여야 자기들이 지상에서 완성하여야 할 미완성 부분을 완성하겠으니 이 시대(재림주)를 하늘 영인까지 고대하는 바이다. 이리하여 자유가정시작과 동시에 천국완성의 제일보를 시작하는 바이다. 하늘은 이상론으로는 나에게 제1대상본체요 부부들은 각자에게는 제2대상존재이다. 그러니 창조원리선을 합하여 완성할 의무가 있는 바이다. 남편된 자여 그 의무는 하늘 대하여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움의 자체로 서야 할 것이며 그리하여 사랑을 받고 미를 돌려서 선을 완성하면 하늘 대신 사랑을 가진 하늘 대신아버지 격으로 제2대상자 처를 대하여 사랑으로 나타나라. 그리하여만 원리인 남자인 주관자격자다. 그런 남편을 대하는 부인은 미로 나타나서 하늘 어머니 대신분체로서 제2선을 사랑 일체로 인하여 완성하여서 기본 선의 한 회로를 찾아 세워야만 이상선을 조성하는 바이다. 그러니 부부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대신자격자들이므로 지극히 귀한 대상위에 서 있기에 각자는 하늘 부모 대신 서로 존봉하여야 한다. 이리하여 번식된 자녀들은 하늘 자녀이라는 영광을 보는 바이다. 이 자녀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한 본체인 표시 존재들이다. 즉 아버지 어머니의 한 표시로서 사랑하여야한다는 증거도 된 자가 자녀이다. 그러니 그 자체는 귀한 자체이다. 부모는 이 귀한 자녀에게 대하여서 사랑하는 만큼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표시적 존재가 자녀란 존재들이다. 그러니 하늘 사랑의 진주를 알려주는 바가 부모의 자녀 대한 사랑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마음 있는 바와 같이 하늘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이와 같이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체득케 하는 증거이다. 자녀 생각하듯이 하늘 사랑하는 자라면 그는 모든 것을 완성할 본 되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바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먼저 하늘 사랑이 제1위로서 세워야 부부대한 사랑이 제2위로서 보며 자녀대한 사랑이 제3위로서 나타나 분립된 듯 하나 하나의 사랑으로서 귀결되어야 함이 하늘 사랑인 동시에 이상시작이 되는 바이다. 이런 창조원리를 중심하고 되었기에 타락되었으나 나타난 가정조직의 근본원인으로 되었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녀를 사랑할 줄 알고 자녀는 부모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름답게 나타나게 될 때 부모가 기뻐하고 자녀들은 만족하여 원리적 선을 조성하게 되는 바이다. 이런 원리를 가졌기에 자녀된 자로서는 효도하여야만 원리인 자녀로서 설수 있겠기에 인간 세상에서 타락되었을 망정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되어왔다. 자녀가 완전히 부모의 사랑에 대상으로 서면 창조성 원리를 완성하는 것이므로 하늘 사랑에 대하여 하나될 수 있는 이상선을 찾아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중심하고 선의 번식을 완성하는 입장에 서 있으니 얼마나 귀한 존재들이면서 하늘의 이상실현을 완성할 수 있는 입장에 사람들이 아니랴? 그런고로 완성된 사람들을 재림주를 찾아 근본원리를 복귀하여야겠으니 먼저 어머니를 찾아 부모를 시작하여서 자녀찾아 가정건설의 시작을 보아야 하며 사회찾아 국가로 국가 찾아 세계로 세계찾아 온 천주를 찾아 원리를 세워야 하는 것이 근본목적이다. 그러니 말세에 처하여 있는 신도는 하늘 부모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부모는 누구신가 하면 재림주로 인한 근본부모며 타락전으로 복귀한 부모로서 사탄 대하여 지배할 수 있는 창조인 근본부모로서 자녀를 찾아 타락전 본계대를 성립하는 바이다. 그런데 지금 하늘 자녀될 신자는 누구나가 그 본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특별한 교시로 인한 존재들이 먼저 합하여 시봉하여서 출발할 바다. 영이 완전히 장성한 생명급 자라면 알 수 있는 바이다. 이 재림주를 찾는 것이 현실 신도들의 큰 의무이다. 찾아드는 세계신도들을 합하여서 이상적 가정의 시작을 지상에서 시작할 바이다. 그리하여 가정 중심한 사회로 국가로 세계로 천주로서 대가족이상을 완전성사하게 할 의무가 재림주를 시봉하는 자들의 생활과업이면서 생애의 목적이다. 이 시대는 악 대해서 무자비한 시대이면서 의와 선 대하여는 영광이 되는 시대며 양심적인 인사들이 해방을 받아 원리를 세우면서 출세하여야 할 시대다. 그리하여 하늘의 한 모형을 완성하여 육천년 역사를 종결지어 안식연대를 보고자 하는 것이면서 영원성의 시작을 보고자 함이 재림주를 중심하고 완성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의 근본 뜻이다.(51. 10. 18 기) 제3 장 역사적 실마리 원리적 해결은 한국에서 시작 제1 절 역사적 실마리의 원리적 해결은 한국에서 시작 역사의 실타래는 하나를 단서로 하여 시작하고 돌고 돌아서 육천년 연한을 두고 돌아왔지만 시작된 끝과 종식되는 끝은 자유롭게 감기어 나온 것이 아님에 틀어지고 헝클어져 시작과 끝을 잡을 수 없는 실타래처럼 엉키게 된 역사의 실상은 누가 탄식치 않으랴. 이 탄식을 헤치려니 현실과 지내온 역사와의 알 수 없는 헝클어짐으로 나온 것에 대하여 이 실타래처럼 얽히게 된 역사의 끝을 잡아 종식점을 찾아 한 자유의 실타래로 만들어 보려고 소망하여 나온 바가 역사적 소망성으로 되어 뜻 있게 왔던 성현과 위인열사들은 이 길이 잠겨진 단서의 한 끝을 잡아 당겨보나 제 멋대로 헝클어진 실타래는 자유롭게 나가게 한 뺨의 길이도 융통 못하니 이 끝을 잡고 나타났던 위인 성현들은 절망과 함께 탄식의 악우의 근거지로 저주하고 나니 이 실타래는 여전히 회전을 계속하여 변함 없는 하루의 연장을 헝클어지면서 굴러나오고 있다. 이 헝클어진 역사적 실마리를 골라 펴놓아 자유의 실마리로 하고자함이 역사적 요구였고 굴러 나가는 미래의 요구가 된다. 이 실마리가 자유단서로부터 자유 종식점까지 남길 수 있는 실마리를 본래부터의 원리를 가지고 존재하는 실마리의 목적이었건만 존재할 수 없는 헝클어진 모양이란 전부 전체에 대하여 존재의 실상이 실마리를 슬프게 하는 모순의 시작이다. 이 시작은 존재하는 가치성을 파괴하여 찾을 수 없는 애로의 무더기로서 그 진상으로 그 진상은 전부가 원한의 근거지로 되어 사망의 구렁텅이로 통하게 되는 처량한 모습으로 변하여 나왔다. 그러면서 인간들은 찾고 찾아 시작된 단서와 끝 된 단서를 찾아 당기어보니 당기면 당길수록 실타래는 당겨 옮으로 되어 한 덩어리 죄의 실타래처럼 엉키게 되어 당기는 자의 멋대로 이 실타래는 움직이게 되니 끝은 있으나 그 계속은 그 계속을 연한 실타래로 한 갈래 갈래에 연하여 있는 실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이 한 실오라기도 보이게 되니 끝을 잡고 있는 자들의 마음대로 끌리어 당기는 엉킨 실타래의 놀음 놀이가 오늘의 역사의 표현으로 된 현실의 실상이다. 시작한 첫 끝을 잡으려할 때 유심의 문은 열리게 되고 나중의 끝을 잡으려 할 때 유물의 문으로 통하게 되니 시작의 문을 나온 역사의 출발은 구르기 시작하는 노정을 취하여 꼬부라지고 헝클어진 궤도를 잡아 굴러나와 돌고돌아 엉킨 실타래의 길을 잡고 나오고 있으니 뒤를 도라 보아도 헝클어진 실타래로 앞을 보아도 헝클어진 실타래니 이끝 저끝 을 헤아릴 수 없는 한 뭉치를 이루어 나중 끝으로 조이게 되는 것이 유물의 문으로 기착점을 잡게 되어 있는 바가 역사적 실마리며 인간세계의 실마리인 바다. 처음 잡고 있는 자가 유심이요 나중 끝을 잡고 있는 자가 유물이니 서로 당기어 이 실마리를 자기편으로 가까이 옮겨 놓으려고 하고 있으되 옮기면 옮길수록 자기에게 가져 놓을수록 옮겨지는 자체에 대하야 한 끝은 반작용의 원리에 비례되는 힘力의 작용을 받게 되니 하늘이 당기면 상대편이 헤기우고 상대편이 헤기우면 이 편도 당겨져 점점 의심하게 헝클어지는 것은 실꾸러미의 실타래 뿐이다. 이것을 풀려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유심적 끝의 부분과 유물적 끝의 부분만이 원리선인 모양으로 보게 됨에 유심은 유심편에서 해결향선을 향하여 나오고보면 유물에 고착되어 당겨져 있는 실마리를 봉착하고 유물에서 자유향상을 찾아 올라가면 유심편에서 당기고 있는 실마리에 봉착하게 됨이니 유심에서 유물로 통하여야 하는 것이 원리의 끝을 가진 연하여 있는 실타래의 노정을 통하여야만 되겠고 유물에서 유심으로 통하여야 하는 것이 원리인데 이 얽히게 된 실타래를 통하여야 만이 끝에서 끝을 통하는 바인데 이 얽힌 실타래의 통하는 길을 찾아보려 요길도 고길같고 고길도 여기 같아 붙잡을 수 없는 형상을 취한 노정이니 통하는 길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얽힌 실타래의 노정은 제하여 놓고 끝만으로 보여주는 그 자체들만 가지고 처음과 시작으로 맺고자하니 유심편만으로 하고 보면 유물이 달려오고 유물편으로 하고 보면 유심이 달려오고 하는 것은 헝클어진 실타래가 나타날 미지의 노정으로 그 존재를 갖고 있기에 그 취하는 자체들의 시작 끝에는 자연적 선물로서 보여줌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풀기 위하려는 것이 인간의 이상인 동시에 창조주의 바라는 바의 소망이며 두 길을 그냥 잡고 있어서는 풀길이 만무하므로 한 끝만을 고착시켜놓고야만 다음 끝을 되풀이한 노정을 반박하여 풀어 올라가야만 될바가 지금 실뭉치를 풀려고 하는 것이 현시적 과업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 끝을 놓아야 하겠는데 조물주가 계시므로 뿌리되는 유물론적 근거를 놓을 수 없는 바다. 이를 놓으면 중심을 잃어버린 존재물과 같이 거처없는 방향선을 취하여 회전하다가 파괴를 이루는 것이 원리적 사실이며 지엽적인 유물론적 사실이 놓여야할 책임이 자연적 공식원리로 되는 바다. 그럼에 실타래의 현실의 역사적 조류는 한 기착점을 보아야 할 바가 요구되는 노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필연적으로 끝을 잡고 있는 유물적 고착점은 끊게 되어야 되는바가 원리로 되는 바다. 그렇게 하면 이 얽힌 실타래는 유심편으로 옮겨 놓아 창조주인 근본체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이 실타래의 단서로부터 낱낱이 골라놓아 역사적 노정에 펴 놓아 유물적 근거지까지 일년선 노정으로 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즉 역사노정을 주관하여왔던 주인공이기에 이런 실뭉치의 헝클어진 통로를 움직여 나왔기에 이것을 풀 수 있는 존재는 기본되는 창조적급에 속하는 하늘 존재가 아니겠는가. 이 목적 과업을 감당하기 위한 그 존재가 역사적 중심존재며 원리완성할 바도 말할 바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 존재도 하늘적으로도 중심존재요 역사적 인류에 대한 중심존재로 되는 바는 사실이다. 인간은 그저 인류의 역사적 실타래를 푸는 그 중심존재를 소망성으로 하여 그의 뒤를 연하여 풀어야 할 제2차적 입장에 세우려 하여서 창조주는 그 중심존재로 인하여 풀 수 있으며 뭇 인류에 대하여 이 존재에게 합하여 하나되라고 요구한 바도 보내신 존재가 즉 그리스도 예수이었다. 예수는 이 전부의 노정의 목적을 풀 수 있던 길을 재촉하지 못하였기에 재림이라는 명사를 남기고 가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적 모든 인류는 예수를 중심하고 설 수 있게 되며 다시 인류 앞에 남아진 근본의 노정을 밝혀주어야 할 하늘의 책임이 있기에 다시 지상에 나타나 원리의 노정을 찾아 주어야 하겠으니 지구상 남아져 있는 유물사관을 통하여 역사하는 사탄의 고착점을 끊어야 할 바이니 이것이 끊겨야만 하늘의(창조주)의 뜻대로 이 실마리를 풀 수 있겠으니 이것을 취케 하는 것이 종말심판의 획기선이다. 그리하여 한 끝을 끊었으니 하늘은 자유로 원리노선을 찾아 전개시킬 수 있겠으며 이 뜻 목적을 두고 보내신 그 존재가 나타나야 할 재림주의 존재이다. 이로 인하여 끝에서 통할 수 있는 헝클어진 실뭉치를 펴 놓은 자유노정을 건설하는 목적의 완성을 볼 수 있음으로 타락이 없었던 그 원리적 세계를 문으로 하여 온 인류가 이로 인하여 헝클어졌던 실뭉치를 보지않던 끝에서 끝을 통할 수 있는 자유노정을 취할 수 있는 원리를 다시 찾아 이룰 수 있는 것이므로 복귀라는 명사로 완성되어 무한히 통할 수 있는 시작점부터 종식점까지 통하여 거리낌 없는 향 선으로 다시 시작점의 기획을 보게 될 때 원리적 로선을 완성되므로 영원히라는 바는 자유원리인 것이다. 이 노선에 선 자는 시작과 끝을 잡은 자로서 처음과 나중을 일맥상통할수 있는 요소로서 알파와 오메가적 이상을 완성하여 원리탈선 없으면 영원 자유향선에서 활동할 수 있는 해방 존재로 하게 하고자함이 인류를 대하여서 약속하였던 중심존재로 인하여 누구도 해결짓지 못하든 헝클어진 실뭉치를 헤쳐나와 원리적 노정으로서 건설하려니 역사적으로 미지였던 단서적 노정이 보여져 만고원리와 통할수 있는 공통기점으로 되어야 할바이므로 헝클어진 역사적 실마리를 해결할수 있는 바이다. 그러니 누구나 이 기반 위에 서서 자유이상을 되찾復得게 될 때 지금까지 원한의 근거지로 움직여 나오던 회전은 변하여서 소망의 회전으로 영원무한세계로 향진할 바가 목적으로 되었다. 지금 이와 같은 원리세계를 목적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서 있음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지금보면 두 노선은 비원리로 출발한 선물로서 나타나는 결과적 노선이니 원리적 유심과 비원리적 유물이 상격을 취하여 얽힌 실타래인 실마리를 중간에 놓고 자기편으로 (우, 좌. 상, 하) 당기고 있는 현실적 실상이니 어찌되어야하는 결론은 각자의 추측으로 맡기고 동일한 답으로 나타날 바이다. 지금 지구상에 유물주의가 나타나서 모든 원리적 진리라고 말하는 바는 한끝만 쥐고 얽힌 실타래를 중간에 놓고 한끝의 부분인 헝클어지지 않는 부분이 전부인것처럼 되어 있다. 즉 해결해야 할 실타래를 모든 기본의 중심으로 하는 물질격 중심지로 잡고 있다. 그러니 여기에서 연락되어 있는 유심적 한 단서의 입장을 잡지 못하는 말급적 단계에서 논리라는 사실을 적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주의를 근본적으로 파괴시켜 실마리를 통과하여 유심적 단서의 기착점을 연하게 하여주어야 할 사명적 조류시대가 현 조류적 상징인 바다. 역사는 시작하였음에 완성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나니 이 우좌의 판결을 짓는 데가 원리상에 나타난 비원리시작의 완성기다. 그리하여 새로운 원리세계의 출발을 보아야 할 것이 지구상 한 기점을 중 심하고 나타나야 할 바가 요구되는 바이다. 여기에 비원리적 시대로부터 원리세계에 들어서게 될 때는 전에 논한 역사적 기점은 작정하여야 할 바이므로 원리와 비원리와는 상대를 지어 한 선을 경계로 하여 대진하지 않을 수 없는 중심선 기점으로 된다. 이 기점의 입장이야 비원리의 최고부의 말로이며 원리인 시작의 기점인 바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세계상에 이 기점지대도 새 출발의 기점지대로서 나타나야 할 바가 근본으로 되어야 할 바는 사실이다. 그것이 즉 역사적 소망의 터요 희망의 터였다. 즉 비원리존재인 사탄과 원리존재인 하늘과 결전할 승패를 결정하는 기점지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기점지부터 역사적 새로움의 단서가 시작되어야 하는 바가 역사적 요구로 바라던 소망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이 기점선상을 분립하여 싸우게 하는 중심기점과 그 선을 세계상에 찾아보게 될 때 한국이라는 나라를 기점으로 하고 삼팔선이라는 선을 분립으로 하여 역사적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일이야 말로 인류의 서러움과 비애의 기점이 되는 동시에 행복과 기쁨의 기점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적 결론상을 이탈할 수 없으며 그 기점을 향하여는 하늘이 총동원하는 기점임은 사실이다. 그 반면에 악이 총동원하여 나타나는 기점임은 사실이다. 이 원리적 대상전을 바라보는 세계인간들은 불안으로 바라보아야 할 초점지라는 것은 사실인 동시에 반면에 희망의 초점지라는 것도 사실로 되어야 하는 바가 사실임에 세계상에 없는 새로운 사실들이 이 기점지 한국을 중심하고 이루어 진바는 위에서 논한바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 세계평화의 새로운 구조로 된 UN은 한국에서부터 그 출발을 보는 바이고 반대인 공산위성국가도 한국을 대하여 상충을 보지 않으면 아니될 역사적 섭리노정의 근본지로 되기에 이러한 현상을 전개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한국평화는 세계평화의 기점되는 한국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한국전쟁은 세계전쟁으로 나타나는 바가 결론적 목적으로 되는 바이다. 또 이 한국은 하나님과 사탄과 사람人을 중심하고 대상되는 전쟁이며 그리스도 이상의 출발을 볼 수 있는 해결짓는 근본의 전쟁임에 하늘의 총동원하여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이루어져야 할 사탄의 근본적인 추방으로 하는 심판목적을 완성하는 근거지임에 성경완성하여야만 하나님이 섭리하여오던 역사적 새로운 출발은 기대잡을 수 있는 바이므로 하나 님을 중심한 세계인은 총합하야 하늘 직접주관으로 나타나야 할 바가 목적이므로 한국 전쟁중에 역사상에 보지 못하였든 그리스도의 공중현현함이(기독신문 발표 1951년 10월 31일 수) 신기한 일로 세계 사람은 생각하고 있는 바이다. 이리하여 한국전쟁은 세계전쟁으로 또 한국 전쟁은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으로 기필코 승리할 면양적 하나님 편되는 UN기구는 산양적 공산국가를 패망시킨 후에야만 평화이상을 시작하는 바가 원리로 된다. 이것은 사탄이 최후굴복이므로 완성되는 동시에 비원리적 역사를 종결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원리적 평화이상을 중심한 신천신지의 신세계는 희망의 세계란 전개를 볼 바가 원리적 근거점으로 되어 있다. 이리하여 헝클어진 역사적 실마리는 원리 근거점으로 되어 있다. 이리하여 헝클어진 역사적 실마리는 종지부를 찍고 시작 끝에서부터 나중 끝으로 통할 수 있는 한 회로적 이상을 완성할 수 있고 이상론을 중심한 선의 세계의 목적을 중심하여 유심 유물의 분별없는 일체적 목적을 완성하여 원화세계를 건설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이 바라는 바의 목적이며 또 인류가 짊어진 과업으로 되어있다. (1951년 11월 18일 아침) 제2 절 한국의 기후는 세계문명의 표본될 상징 넓고 넓은 세계를 두고 기후가 사시사절을 두고 명료하게 공식적으로 표현화하여 보여지는 기후는 세계어디서라도 찾아 볼 수 없는 과연 찬호할만한 것은 한국 기후인 것이다. 세계를 두고 보면 이 기후는 역사발전상에 위대한 공헌을 가지고 지금까지 찾아 나오고 있다. 세계를 기후적으로 구별하여 보면 열대기후권내와 온대기후권내와 한대기후권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후적 관계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지금 인류역사는 움직여 나온 것이다.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를 집어서 기후적으로 보면 온대권내에 속하여 있으면서도 온대적 기후로서만 보여짐이 아니고 사시사철을 두고 전세계적 기후를 전부 표현화하고 있음을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즉 춘하추동 사절이 있다. 이 사시는 또다시 12달朔을 가지고 한 공식과 같은 궤도적 기후로 전개를 가지고 사시궤도를 지내는 바는 사실이다. 한국의 기후는 과연 전세계에 기후의 표본으로 창조받고 있음을 누가 변경할 수 없는 한 천리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기후적 입장과 창조주와는 어떤 관계로 지었는가 생각하여보면 여기에 신기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의 중심지는 모든 박물에 대한 한 중심지로서 세계상에 없는 동식물이 집중한 곳으로 자연계의 서식장을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이렇듯이 동식물계에 대하여서나 또 인간에 있어서나 전부는 기후에 대하여 생에 대한 중요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에 기후가 자기들의 생의 완전을 보존할 수 있는 이상적 기후를 요구케 되는 사실이다. 그러면 지금 세계를 보면 열대지역과 한대지역을 상 하에 두고 있는 온대지역은 열대와 한대에 대한 중부에 위치하여 있음으로 그 지대에 대비되는 생을 보존하는 체형으로 되어지게 되어있다. 그런고로 기후의 관계도 세계상에 오색인권을 구별하여 놓은 바면서 또 그 본성분과 성품까지 전부는 기후를 중심하고 우좌하여 보여지게 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그 민족이면 민족 백성이면 백성 전부는 순생지역에 기후로 인하여 전부는 우좌되는 바는 사실이다. 또 수명의 문제도 자연적으로 이 기후적 관계로 우좌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이 기후란 목적이 앞날 인류발전사적으로 보아도 인류이상과는 언제나 합하여 보조를 움직이게 되는 바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보면 모든 만상은 기후를 중심하고 발달도 우좌하는 시대가 온다는 바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기후는 세계없는 최고이상적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면 이것은 창조주의 큰 근본은택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본래 천지창조는 한 중심을 표준하고 만상은 지음받은 바는 사실이다. 세계를 창조하시는 창조주도 한 중심지로 하여 각양으로 벌려 놓은 것이 만물창조다. 그런고로 그 중심지는 세계상에 무엇으로나 세계적 표본으로 되어야 하는 바는 원리적 사실로 되는 바이니 반드시 기후적 문제로서나 각방면으로서가 전부가 한 표본적 입장으로 되어지게 되어야만 원리적 사실이다. 이 중심지를 향하여 최고 하나님의 이상은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바의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표본적으로 보여지는 그 지역은 만우주의 전부의 한 표본상을 보여지는 곳은 창조주를 가진 피조물 세계에 보여져야만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세계상에 중대한 관계로서 인류역사를 우좌하는 기후적 관계와 인간을 생각하여 볼 적에 인간의 이상적 기후권내를 자연적 요구할 것이니 그 기후적 목적지는 자연적으로 세계상에 찾아 놓아야 하는 것이 필연적 요구로 된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를 보면 한국의 기후는 세계의 제일위를 가지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 기후는 일년을 중심하고 사시를 통하여 전세계 전부의 기후의 감미를 체득하는 바이다. 이 기후야말로 누가 찬양치 않으랴. 봄이면 꽃피는 그 자연의 미 여름이면 녹엽이 무성한 자연미 가을이면 단풍의 자연미 겨울이면 장엄한 은세계로 되는 자연미 전부가 인간이상의 절경으로 시적 감상을 전하여주는 인생 이상의 한 자연경을 보게 되니 그 얼마나 창조적 고마운 사실이랴. 이렇게 창조하신 창조주도 전세계를 보게 될 때에 기후적 중심지로 된 그 곳을 향하여서 찬양하는 중심지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겠는가. 세계에 한국은 자연적 복을 갖추어 지음받은 지역이라면 창조주가 계시는 이상에는 한국을 자기가 제일 귀하게 이상지로 할 것은 자연적 원리요구로 되는 바이다. 한국의 기후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렇듯이 창조주 편으로도 중요한 목적지로 되어야 하는 것이 세계적 기후를 중심하고 볼 적에 생각하여지는 바는 사실이다. 한국의 기후의 환경 전부는 창조주의 이상형을 표시한 중심지로서 한국의 기후란 자체는 이상세계인 창조주의 본경세계의 전표시적 구조를 터로 하여서 지음받아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늘의 한 구조적 사실형을 표시하여 있는바가 목적으로 된다. 그렇기에 천국구조의 한 영상으로서 보여져야 하는 원리적 구조를 요구하게 된다. 천국의 구조를 살펴보면 보좌가 있고 12사도 중심한 24 장로가 있고 4영물이 있는 바이다. 여기에 한국 기후를 중심하고 4영물 구조야말로 천국의 한 영광의 터를 상징시킨 한 표시적 피조물 중심지라는 바를 표시한 바이다. 한국의 사시 즉 춘하추동은 4영물이니 사시되어 그를 중심하고 사방을 보게 되면서 12개월을 중심하고 24절기를 즉 하늘 전부의 한 영상의 표시로서 전세계를 대하게 하는 한 중심구조의 한 표본으로 되어 있다. 이 전부는 하늘 중심지를 본으로 하여 세계를 창조하였기에 이런 구조인 바이다. 이런 지상 중심지는이런 공식적 세계의 한 표준으로 표현화되어야 하는 원리적 창조목적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전세계적으로 사시를 중심하고 12삭으로 되어 한국을 중심하는 24절이 전부가 한 창조적 원리를 완성하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기에 한국의 기후는 세계의 기후의 중심지로서 앞날 이상세계에 많은 공헌하여야 하는바도 생각되는 사실인 것이다. 고로 지금 세계상 무슨 물건이나 전부는 춘하추동과 같은 기후적 은택을 받고 존재하는 피조물보다는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도 원리로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한국의 생산물은 세계 어느 나라國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 중심격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원리로 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동식물계나 광물계나 전부 가치적 최고위로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되는 원인이 있는 바이다. 왜냐하면 기후적으로 완전적 은택을 받아 존재하는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 식물 중에 최고위의 미를 가지는 식물도 한국의 기후의 은택과 풍토에 속하는 것이라는 바도 사실이다. 또 광물로 보아도 제일위를 차지 할 바도 물론이다. 그리고 특히 앞날 최고의 문명의 제일공헌할 수 있는 지역도 한국은 한 광물의 권위를 보여 줄바이다. 최고열을 대하는 최고정밀기의 제작도 기후적 최고은택 받은 곳에서 산출하는 광물만 가지고 안 되는 귀중한 역활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기후적 최고 표준을 가진 이런 한국은 하늘 창조주 편으로 지극히 귀한 국가라는 것은 물론이면서 20세기 이상 문명과 한국과는 떨어질 수 없는 천연적 은택을 받은 지역이니 이 지역은 하늘적으로 귀하게 찾고자 하는 반면에 악 사탄도 한국을 찾아보려고 여러 모양으로 대비하여 나타나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지역을 가진 한국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하면 세계상에 있는 최재능적 지혜를 자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바도 사실이다. 그런고로 한국의 한 완전무대만 잡고 세계무대에 나서게 될 때에는 전세계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존재로 나타날 바도 천연적 창조 허락을 업은 곳이니 자연 원리로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늘의 뜻으로 보면 한국민족은 앞으로 한 지혜의 민족으로 세계 어떤 기후적 지대에서도 살 수 있으면서 세계상에 많은 공헌할 바는 하늘의 목적으로 하는 나가國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기후는 역사발전 전부에까지 영향되어 인류생활과 발달과 문명과 여러 방면으로 서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찾아 볼 적에 지금 한국까지 찾아나온 인류 발전 지역과 역사적 입장을 생각하려고 할 때 기후와 문명과는 중대한 관계를 가지고 나오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역사적 발전을 잡은 기후적 관계적으로 고찰하면 열대지대문명에서 온대지대문명으로서 한대지대문명으로 이동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주 주인으로 계시는데 왜 근본원리의 세계로 출발 못하고 지금까지 이와 같이 이전하여짐을 알 줄 안다. 즉 비원리 존재로 인하여 먼저 시작을 보았기에 다시 찾기 위하여 하나님은 역사하면서 최고 표준을 향하여 나오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하늘 승리로서 역사를 대하여 최종점 한국을 중심하고 두 대상진은 나타나는 바이다. 이 목적은 하나님의 이상인 목표를 완성하려니 이런 섭리노정을 향하여 나온바다. 비원리를 중심하고 출발하는 대상진으로 하나님은 역사를 경과하여 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소생으로 장성으로 완성을 목적하고 전세계상에서 섭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문명역사를 살펴보면 사탄은 열대권내에서 출발하게 되는 바이다. 그 이유는 원시생활이 편리하니 사람들은 집중하여 출발을 보는 바이다. 그 지대를 중심하고 사탄은 사람人을 중심하고 역사를 대하여 하나님도 그곳 대하여서 빼앗는 공작을 시작하는 바이다. 이러니 기후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열대지역을 중심하고 사탄 대하여 나온 역사적 노정이 과거 고대문명시대인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나오게 되니 고대문명은 사탄 대상으로서 전부가 패하게 되는 바이다. 이런 관계는 고대문명은 주로 열대지역을 중심한 지대라는 바도 알아야 한다. 즉 고대문명으로 보면 동양으로는 인도문명을 중심하고 지방문명 서양으로는 애급 문명을 중심하고 바빌론 문명 전부는 열대권내에서부터 시작한 문명의 발자취趾蹟를 알 수 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문명인을 찾으려 하나 완전 하늘 뜻 성사를 못보아 전멸하고 택한 백성을 중심하고 이 지역을 떠나 온대지역권내로 옮겨서 역사를 시작하는 바다. 그러나 사탄 역시 온대지대로서 대립을 잡아 반대역사하니 그 역사적 노정이 지금 20세기까지 하나님은 순종하는 민족을 중심하고 원리복귀하려는 역사적 계승을 유지하여 나오는 바이다. 그러니 지금 그 보응으로 역사적 모든 시대도 열대지역 사람人들은 한 노예적 입장에 처하게 되어 나오는 것는 옛날 사탄 대한 사람이라는 것이 원인이다. 그리하여 반복되는 역사로서 20세기까지는 온대지대 문명으로 열대지대와 합하여서 사탄 소유에서 빼앗아 나와 한 장성을 보았다. 그러니 그 반면 사탄은 자기의 뜻을 연장해 보려고 하나님 대하여서 끝으로 남은 한대지대를 잡고 반대하니 한대지대의 문명의 한 명칭으로 세계에 대립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사탄은 열대로부터 온대를 따라 나왔으나 뜻을 못보니 한대로서 그 경로를 세워 나왔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완성의 목적을 성사하려니 사탄은 하늘 흉내로서 주권을 세워서 나타난 것이 공산국가이다. 이리하여 한대문명이라는 위세로서 나타나니 결국 사탄은 말단지대를 잡는 것이 즉 기후적으로 보면 중심지대와 같은 한국을 중심하는 바이다. 그러니 열대문명으로 온대문명으로 한대문명으로 한 분기를 정하고 신문명은 기후적 중심 지대인 한국으로서 뜻 목적하고 하나님은 사탄 수중에서 찾아 복귀하기 위하여 그 역사목적을 유지하여 온 것이다. 그런고로 최후문명은 열대지대의 문명이 아니고 온대문명도 아니고 한대문명도 아닌 완성문명시대가 즉 전세계 기후적 중심지대를 중심한 이상문명이라 하는 바로 된다. 즉 하나님의 창조부터 이상문명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상목적 완성할 존재를 보내려니 한국인 중심하고 나타나는 바이다. 그 존재는 즉 전세계적으로 바라는 기독교리상존재인 재림주 예수로 약속된 역사적 소망존재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국 예언서 중에 정감록에 예언한 존재도 이런 목적으로 섭리한 하늘의 중심존재로 될 천지창조로부터 하늘로 정한 존재라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전세계 대할수 있는 중심존재로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이 기후에 한 중심지대는 세계상에 한 귀한 목적위치로서 되어 있는 동시에 천지창조로부터 한 귀중한 위치로 예정되어 있는 곳이 한국임을 알아야 한다. 기후는 태양을 중심하고 그 위치가 제일 귀한 위치에 있어 그 기후는 제일귀한 기후적 표시를 보는 동시에 그 지역적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이나가 귀한 위치를 차지하는 바는 창조주의 창조적 묘미를 완성목적 기후지를 향하여 육천년 역사는 흘러나오는 바이다. 그런고로 기후를 중심한 역사적 방향을 보면 최후의 완성 기후지에 기착점을 잡고 최고문명의 시작을 보아야 하는 바이다. 이런 지역만이 미문명 지역으로 남아 있으니 반드시 문명은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기후적으로 보아서도 이동하여 발전하여 오는 바를 역사적 고찰로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최후부는 세계에 총합적 기후의 중심지대가 문명할 지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도 짐작하는 사실이다. 이런 이상적 기후로 된 지대이니 과연 창조주의 이상하는 목적지로 되게 하려니 지금까지 한국의 지역을 두고 역사적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원인도 하나님과 사탄 대하는 나라로 되어지기에 서로 한국 때문에 극동에서는 문제의 중심지로 되어왔다. 그것이 최종에는 세계의 문제를 우좌하는 위치를 취하여서 한국을 중심으로 하여 사탄을 패케 하는 최종목적을 완성지을 것이 하나님의 한 뜻으로 되어있다. 제3 절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세계의 중심지 한국은 삼천리반도로서 극동에 위치하여왔다. 보기에 아담하게 아세아 대륙을 연하고 있지만 그 지역적으로는 특수한 형태를 조성하고 있는 바이다. 아세아 대륙을 연하는 무슨 산맥의 지배를 받지 않고 특별히 분립된 구조로서 중심지대로 하여 북에는 장백산맥으로 아세아 대륙을 가로막아 아세아대륙과 분계로 하여 동서로 압록강 두만강을 두어 갈라놓고 동편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 보기 좋은 소백산맥을 중심하여 서부평원지대인 자연의 옥토로 단장되어 있어 모든 방면으로도 중요위치에 처하는 것은 사실이다. 교통적으로 보아도 한국은 극동의 한 중심지대로서 역활하는 바는 사실이다. 아세아 대륙을 통하려고 할 때에 한국은 한 문호적 입장으로 되어 있기에 중국이나 일본이나 소련 등이 한국을 중심하고 대하여 통할수 있는 중심적 입장으로 되어 있음에 자연적 한국은 정책상으로 보아도 중요적 입장으로 그 중심 역할을 하여야 할 입장도 물론이면서 교통적 중심으로 되어 있는 바도 사실이다. 극동에 있어서 육해공로를 통하여 교통의 중요 중심을 가지고 있는 위치로 나타나있다. 그러기에 극동에 있어서는 한국이 중심위치에 있기에 극동에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국가들은 먼저 한국을 대하여 침입적 태도를 보여지는 것이 이와 같은 교통적 중요위치로 되어 있는 동시에 모든 구비적 귀한 자연이 은택받음을 누가 탐내지 않을 수 없으리만큼 복된 지역으로 되어 있기에 물론인바다. 이 땅 위의 농산물을 보면 오곡을 중심한 곡물과 그 가치는 어느 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 음미인 오곡을 볼 수 있는 바이다. 특히 한국의 쌀은 과연 他 지대에서 볼 수 없는 귀한 보물인 바다. 그 외 한국산물인 농작물은 천연적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동물계로 볼 적에도 곤충계라든가 조류계라든가는 세계의 최고위에 가치를 점유하고 있는 바이면서 딴 동물에도 역시 그 위치를 가치높이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특히 한국이 산출하는 가축으로서 소牛나 돼지豚나 닭鷄은 세계에서 산출하는 가축에 비교하여 볼 때에 그 음미는 과연 제일위를 점유하고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모두 기후로 인한 은택으로 되어지는 바다. 또 무생물계를 살펴보면 현대 최고문명이 요구하는 귀한 광물류를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표장된 매장량은 과연 세계사람이 부러워 할만한 고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바이며 그 품질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 산품에 비할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누구나 감탄하는 진귀한 바로 되어 있다. 그것도 이상적 기후로 인한바다. 이와 같이 육지에서 산출되는 물건의 귀한 가치도 천연적 은택이라는 바는 물론이고 그 外 해산물을 찾아보면 삼천리 반도를 중심하고 서해로는 황해를 두고 난류의 환로를 보는 동시에 동해에는 한난류 합하는 지역을 겸비하여 있기에 찾아 볼 수 없는 세계3대어로장에 하나로서 되는 지역을 대하고 있는 바이니 세계에 그 어적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입장은 가장 귀한 바다海의 혜택을 받고 있음은 과연 세계인이 부러워할 바이다. 그 외 경치와 풍경방면을 살펴보면 크게 보면 한국 자체 한 인간이 정감을 다하여 하늘 대하여 쌍수합장하여 꿇어 앉아 기도하는 양모이며 동은 동해로 서는 서해로서 씻고 맑혀주는 듯이 놓여 있으며 대륙에서부터 삼천리 반도로 한 지반을 잡고 있는 바다. 과연 세계지도를 볼 적에 제일지형이 귀하게 보이는 것이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한국반도를 중심하고 일본은 한 성과 같이 북남으로 가로막고 있으며 아세아대륙은 한 일터로서 약속하여주는 듯한 불변의 보호적 위치양으로 반도를 안으려 하고 있다. 황해와 동해는 조수와도 같고 바다와 같이 지구의 전경치의 한 표본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 깊이 잠긴 삼천리를 중심한 향기의 동산을 바라보게 될 때에 자연계의 용세로서 보여지는 북에 우뚝솟아 지켜주는 양으로 그 꼭대기에 천지를 가진 세계상 희귀한 고산 백두산이 있음을 누가 칭호치 않으랴 이 백두산을 중심하고 삼천리는 길이 뻗어서 널려진 곳을 찾아드니 금수강산 명성 높은 평양을 중심한 목단봉 과연 새예루살램 명성도 알맞는 하늘의 귀한 택한 땅의 광경을 보게 됨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동방쪽으로는 경치풍경의 왕관인 금강산이 있는 바이다. 이 금강산이야말로 세계의 경치의 한 끝으로 나타난바가 금강산인바이다. 이 금강산은 한국의 보화인 것이며 앞날 한국의 민족과 세계민족에게 많은 안위의 중심지로 공헌할 명승지라는 바도 사실이다. 또 평양중심하고 북쪽으로 찾아오면 묘향산을 비롯한 동룡굴이란 지하 금강 명성을 가진 명승지를 보게 될 때에 과연 기묘함을 칭찬하는 바는 당연한 일로 나타나는 바이다. 그 외에도 팔경명승지인 명망 높이는 풍경지 과연 우리 삼천리 반도에 자랑과 보화로 단장된 창조적 혜택을 깊이 생각하면서 창조주의 본의적 목적을 찾아 세워야 할 책임이 한국인바다. 이와 같이 한국이란 소반도를 중심하고 전세계에 없는 경치와 명양 귀한 지하자원과 산물과 귀한 위치와 기후로도 세계에 없는 삼한사온으로 사시 통한 명랑한 기후산수등 전부도 창조주를 목적하고 지었다는 것은 짐작하는 사실이다. 이런 귀한 지리적 기후을 가지고 있는 바이니 하나님이 세계를 대할 때 사랑하려고 하는 중심 목적지라는 것도 알게 될 바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한국을 통하여 섭리 중심지로 하겠기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의 의의 왕으로 나타난다고 전한 한국예언서인 정감록에 예언케 한 바도 하늘의 섭리의 한 뜻이 있기에 맞는 바는 사실이다. 그 예언을 완성할 수 있는 그 존재는 하늘로 정한 왕이라는 존재인 만왕의 왕되는 재림주 존재를 말하는 바와 합하여 서양의 문명을 중심한 기독교와 동양종교 중에 시작된 예언이상과 합한 뜻을 보아서 세계통일이상을 완성한 하늘 섭리하는 목적의 땅地이니 본래부터 창조주의 바라던 땅으로 되어 왔다는 바를 표징하는 사실인바이다. 그러기에 한국은 지리적 최고 가치지역라는 바도 이런 하늘적 입장으로 목적하여 있었다는 바를 명백하게 알바이다. 그리하여 재림 예수를 중심하고 한국은 뜻의 완성을 보아 과연 세계의 한 중심지로서 세계상에 귀한 문명의 중추부를 조성하고자 하는 바가 하늘의 목적인 바다. 그런고로 한국 전부는 후일의 국제의 이상 동산으로 한 유견목적지로 하고자 하는 이상경으로 바라고 하늘은 처하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창조이상지는 한국을 표준하였기에 이 한국은 세계상에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창조목적 중심 지대로 이른至 바를 알아야 한다. 이 목적 완성하게 할 사명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 하면 재림주가 중심이 되어서 한국인 협조하여 나아가 세계기독교를 총합시켜서 세계적 중심지대를 조성하여야 하는 바가 전인류의 목적이며 또 하늘의 목적이면서 하나님의 목적인 바이다. 그러니 하늘 뜻에 반하는 사탄은 한국 중심하고 반기를 취하여 서게 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인은 하늘 대하여서 선 자로서는 지극한 선위에 속한 자 있는 반면에 사탄 속한 존재도 지극히 악한 자로 세계에 유래類를 보지 못함도 그 진상의 발표하는 바도 원리로 된다. 하늘이 지극히 사랑하는 자 있는 반면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한국은 하늘 중심하고 이런 분립을 보니 가정에서 이런 원수적 분립을 보는 바는 한 진상으로 되는 원리인 바다. 이런 뜻이니 성경 전부는 한국에서 완성해야 끝맺는다. 우리 한국인은 총동원하여 하늘 뜻 성사하여서 세계의 중심지로서 건설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하늘에 합하여 기쁨의 복귀 에덴 동산을 지상에 건설할 바가 최종적 사명인 바다. 그러니 지금 한국 중심하고 싸우는 목적은 한국 독립 위한 목적이다. 한국 중심하고 최후 발악을 다하고 있다. 하늘 대신한 U.N.은 제1차 제2차 제3차로서 뜻을 찾아 평화를 목적하고 나왔지만 결국은 목적 달성으로 귀결하여지는 바가 원리인 바다. 어떻게든지 UN과 한국은 합하여서 한국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완성하여야 할 바가 하늘의 한 뜻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하늘 중심지이니 인류의 중심지며 인류의 기본 조국으로 되니 하나님은 UN을 동원하여 협력하게 하는 바다. 그리하여야 본 뜻을 계대할 수 있는 바다. UN이 만일 양보한 되는 사탄 편쪽은 결국 반대로 대립으로 나타나는 바가 원리인바다. 그러니 한국을 중심하고 완전히 사탄 추방이 하늘의 목적으로 되는 바이다. 이렇게 하여야만 보다 하늘 뜻 성사의 첫발걸음第一步으로써 한 소망의 시작을 전세계는 보인다. 그리하여야 한국을 중심하고 전세계의 최고 신앙자는 동원하여 하나님의 뜻 완성에도 협력하여야 하는 바가 금후의 한 목적과업이며 한국 신앙자는 먼저 뜻 시봉의 중심이 되어 세계의 신앙자들과 합심하여 협력 중심적 사명을 다하여야 하는 바가 현한국 기독교인 한 사명인 바다. 또 그 완성함으로 창조적 은택을 받은 삼천리 반도동산을 우리가 기리고 높이 단장하여 세계를 빛내는 바며 창조주 뜻 완성을 보아 기본 복귀로 시작을 볼 바이다. 제4 절 한국은 제종교의 총결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