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교리 원문/원리원본/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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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야만 예수 와서 전하는 바의 복음에 순응함으로 예수의 몸될 수 있는 성전에서부터 우리는 한 분성전 건설이상을 조성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承 수 있는 터를 성사하여야 할 사명단계가 즉, 솔로몬 왕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짊어진 근 중대목적이었다. 그런 반면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묘한 수단을 하여서라도 하나님이 직접 취하여 나오는 그 뜻 성사의 길을 분열하고자 하여서 여러 모양으로 불순과 불신의 씨를 찾아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침입의 마수를 뻗치려는 시도에 강경히 대상하여서 하나님 편에 더 깊이 서서 나아가야 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왕으로부터 백성은 음란의 신의 근본인 원수를 섬기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백성을 또 쳐打서 각심케 하여 오면서 가진 수단을 다하여서 이 백성을 보호하여 왔는바였다.
그러나 그 심정을 알고 안타까하는 자는 점점 그 뿌리조차 보기 어렵難게 성전을 더럽힌 행동이 몇번이었든고 하나님은 성전을 세워서 뜻 성사기초의 표시는 완성한 목적기본을 잡아서 약속은 시작하였으니 그만 둘 수 없는 책임감 그 외 사탄은 기세당당하여 하늘뜻을 파괴하는 그것을 볼적마다 공드렸던 이스라엘 백성을 파기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파기하면 전부가 사망의 괴로움苦에 삼켜질 것이며 하나님 역시 불안할 근본의의를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 아무리하여도 그 뜻을 성사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의 과업이니 선지들을 세워서 그 뜻을 백성들이 연화할 수 있도록 성전 뜻 유지를 계속하여 왔든바이다. 그런고로 그 뜻 근본목적은 예수 한 존재가 중심이었다.
그 다음은 예수께 합하여 한몸되어 제2차 예수 존재와 같은 번식이상목적시작의 전부가 이스라엘 백성행동 여하로 기반을 잡을 수 있는 바이니 얼마나 아버지 뜻에 안타까운 심정이랴.
그런고로 성전지키면서 하늘 뜻을 받들 수 있는 주위공작을 계속하면서 기본되는 자체인 메시아를 보내여서 뜻 성사할 최고목적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고하여서 그 뜻을 받들 수 있는 그 노정을 지켜나가게끔 하여서 선지자를 통하여서 메시아 보내실 것을 예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자극하시었다. 그러나 그 뜻을 바라면서 십수백년 동안을 계속하면서 권고하여 왔든 바이었다. 그러나 그 뜻을 이스라엘 백성이 적극협조못하여서 이와 같이 뜻 성사의 시일을 연장 시켜왔든바이었다.
메시아 약속을 받고 바라는 백성은 조급하게 바랐으나 하나님의 뜻 중심하고 실천에 대하여서는 망각하고 자기의 요구들만 바라는 그 자체는 타락의 피血를 받은 패역의 백성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면서 메시아 오기 전에 대한 기간도 알려주어 그의 바라는 희망성을 높여주어왔다. 메시아 오기 전에 먼저 그의 전목적을 받들 수 있는 준비공작사명자로 오는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약속하여 그 시기적 한도를 보여주었든 바이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은 전부가 메시아 강림이 전 바라든 소망으로 그를 생활내로서 뜻을 찾아 나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중심하고 메시아 소망이 한 목적으로 바라오면서 희망을 높이하여 자연적으로 자기들의 준비를 계속하여왔든 바였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합하여서 기초공작과 함께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주어 그들의 소망을 성사하여주는 동시에 자기의 목적실행의 한 기쁨과 기대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메시아 보내주면 전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대신 귀하게 알면서 그의 전 주위에 대한 단속을 지어 성전이상을 실현하고자 함이었는데 그 뜻을 아는 자 몇명이였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한 소망을 갖고 제1차 하나님적 책임시기는 끝 맞추어 제2차 책임사명분담의 행로를 잡아주고 섭리계속하여서 자기몸으로 지었든 아담 해와의 사명적 분담성사노정으로 옮기기 위하여 오신바가 즉 예수였다.
예수는 제2 아담이다. 성경에는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아도 로마서 5장 14절을 보아도 예수는 제2아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시켰으니 원리대로 자기들의 범한 책임사명을 다 찾아 복귀하여야만 근본뜻을 성사할 수 있는 창조이상이 됨이었다.
제3 장 제2차 하늘 뜻 성사책임사명자로 오신 예수의 책임분담 섭리기간에 대한 근본의의
제1 절 지상섭리 노정에 대한 근본의의
구약시대의 전목적 종결은 예수 한분에 기인하며 그의 완성적 사명도 예수 한 존재가 중심이었다. 성전을 세우기 위한 행의의 노정은 구약시대의 한 중심노정이었고 그 노정탈선은 불의라는 사망의 시작이라 한 것은 잘아는 바다. 예수 한 존재의 가치는 즉 전 이스라엘 성전 + 이스라엘 백성보다도 귀한 한 존재였다. 즉 4천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섭리한 결실의 자체가 예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 전천주목적은 예수로부터 다시금 찾는 가치의 존재니 이 모든 것보다도 예수는 하나님 앞에 귀한 존재였다. 예수 완전히 살아서 천주살고 하나님 완전히 살며 예수뜻 성사하여야 하나님 뜻 성사라는 한 중심점의 존재가 지상 예수였다.
하늘 성사로 예수 하나로부터 시작이라는 원인은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알줄 안다. 이 천주의 중심점 예수의 한 존재가 지상에 오는 바는 땅地 아니면 뜻 성사 못하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의 중심지가 즉 지상이었다. 지상에서 사람 조상 아담 해와는 타락하였으니 땅 중심하고 복귀하여 그냥 하나님의 만세 전 이상 즉 창조이상을 원리대로 성사할 수 있는 조건성사를 보는 바이었다. 그런고로 땅 없으면 하늘은 미완성하여만 하늘 뜻 원만성사하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니 모두가 동일한 기점상을 분리할 수 없는 이유는 한몸된다는 기본인과로 되어 있기에 이와같은 귀한 한 존재가 예수인데 이 예수를 보내기 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마 하심은 예수한테 사탄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게하기 위하여서 엘리야를 보내어 이 근본자체 오신 다음에 전이스라엘 백성의 대환영 받게하여 전 백성은 예수한분 만으로 무한한 영광이며 그들의 자랑으로 믿信고 모셔侍야할 사명적 책임들을 다할 수 있는 구비조건을 지어 놓기위하여서 엘리야를 보내주마 하신바가 그 목적이 있는 바이었다.
이스라엘 백성 대하여서는 직접인도하여 뜻 시봉으로 배양하였지만 세계적으로는 하나님은 전인류에게 모실수 있는 공작도 역사적 성인들을 통하여서 동서양에 섭리를 하여 합성화 하려고 하는
뜻 성사 예비 공작도 시작케 하심이다. 그其 사명적 대표 인물들이 즉 공자며 석가였다. 또 철인 소크라테스 등등의 양심적 도를 중심한 선을 표준하고 교시케함도 그 근본의의였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종교든지 근본을 선한 신을 표준케 함은 즉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을 근본하고 있다는 바를 명시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 근본 뜻 성사하면 그 자체인 가르침들도 한 근본상에서 총합을 보여야 되는바도 원리로 되었다. 그런고로 예수 한 존재의 이상중에 뜻 중심이니 전 하나님의 이상을 완성할 근본체이니 예수의 뜻 성사시는 전 천주는 한 중심에서 기동되어야 한다. 종교도 경제도 과학도 합하여 한 기본상에 기동될 바이다.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시어 찾아 맞추고자 함의 근본의의가 있다. 이와같은 크나큰 사명적 중심 존재의 강생과 함께 온 천주는 큰 복음의 소식을 보았다.
하늘은 물론 예수의 뜻 성사를 바라는 바 그 땅은 예수의 앞에 지도받고자 함이 요구였다. 예수 한분이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해방의 주인공이었다. 그것은 즉 사탄 세계인 비공식세계에서 원리세계 예수의 세계에로 건설목적의 완성의 요구가 예수의 할 책임인 동시에 우리는 그에게 순종 신종 시종하여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 땅의 백성이 짊어진 책임사명이었다. 이 책임의 요구를 성립하려니 엘리야 와서 할 사명전부는 전백성 합하여서 엘리야와 합심일체가 되어서 뜻 원만성사고자함이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은 잘알고 있는 승천한 존재였다. 그런고로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하였으니 틀림없이 올 줄알았다. 승천한 엘리야 언제나 오실까하고 바라는 데는 하늘 향하여서 바라보는 것이 중심으로 되었다. 즉 하늘로 올라갔으니 하늘로써 나려올 줄 만 바라본 바는 사실이었다. 승천한 엘리야로 그 당시 제일 귀하게 바라는 한 상대로 된 바는 메시아 때문이었다.
메시아를 모실수 있게 하여주는 바도 엘리야니 엘리야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 요구이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늘로 내려오니라고 바라는 자는 지금까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함은 유대교적 신자 등이다. 메시아로 왔든 것은 사실이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역사를 통하여 확고한 것으로 되었으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되었든 바는 성경보아 잘 알 수 있는 바이다. 즉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은 예수 대하여 몇 번씩이나 묻기를
그대가 메시아면 엘리야는 왜 오지 않았는가? 엘리야는 어디에 왔는가? 하면서 예수 대하여 반문한바는 자기들이 역사적으로 바라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바이다. 과연 당시에는 참말 믿고 순종할 수 없는 바이었다. 메시아라는 그 존재는 그대들이 잘 아는 요셉의 아들子로서 집에 묻혀 목수업으로서 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이며 그 내용내막까지 잘 아는 그 자체이며 생활체형으로 보아도 우리들과 다름없는 그 자체인데 어디 그 존재가 자기들이 바라는 이상한 중심존재라고는 생각하는 점에 하도 먼 거리의 존재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게 보였다. 우리가 바라든 그 존재는 천수백년간 약속의 존재요 희망의 존재든 자체가 예수라하니 이스라엘 백성은 무슨 영문인지 큰 환난의 한 존재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메시아를 바람은 전부 뜻 중심하고 바라는 것 보다도 먼저는 자기를 중심하고 바란 것은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베들레헴에서 날줄로 알았다. 그러면 자기들의 메시아 오면 한 조각의 식물이나 거처할 방이나 의복이나 그 중 한가지라도 준비해놓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먼저 무슨 색다른 소식이나 있는가 하여서 고대한 자 만일 있다면 메시아 탄생도 알았으리라. 그런 존재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볼때에 그들의 메시아 고대는 벌써 전부가 자기 중심이었고 자기들이 메시아의 힘을 빌려서 좀더 좋은 것을 바랐든 것이 사실이라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런고로 각자 각자는 자기들이 이상에 부합하는 이상의 존재로 바랐다는 그其 입장에 있을 때 예수란 자가 출현하여 너희들의 이상의 존재라는 선언은 하도 너무한 동시에 분개할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과연 예수는 육신쓰고 나니 자기들과 동일양식으로 살아왔고 또 지금도 변함없이 동일한 양이니 과연 그 자체에 대하여 의심하는 바 당연지사였다.
이와같은 예수를 대하여서 더 의심케 된바는 엘리야가 전제문제의 존재였다. 자기들이 엘리야라고 하는 그 자가 왔다면 예수니 메시아니 여하튼 문제는 해결인데 엘리야도 오지 않고 메시아 왔다니 그 어찌 신임할 수 있으랴! 지금 우리는 바꾸어 생각할 필요를 느끼면서 석일에 이스라엘 백성을 욕하여 되는 문제다. 그러면 지금은 예수 즉 메시아가 만민의 구주요 이스라엘이 희망한 중심존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인식과정으로 나왔으니 예수는 메시아며 뜻하신 예언의 실체라는 것을 알며 그 전에 올 엘리야도 왔었다는 바를 세상 교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즉 엘리야는 왔는데 세례요한이라는 것을 역사로서
인정하여주는 성경을 보아 아는 사실이다. 또 예수는 엘리야가 왔으나 임의로 대접하였다고 하면서 복음서에 세례요한을 지적하여 말한 바를 보아서 아는 간접적 앎知이었다. 과연 그 당시의 입장을 바꾸어 가지고 생각하면 지금은 과연 메시아로 믿고信 모시고侍 순종을 할 자 몇 명이나 될까? 지금 현교인들이 바리새 교인신앙 만치도 못한 자 많은 이때에 생각할 문제이면서 염려할 중대문제이다. 그것은 그렇다고 하고 어찌하여 세례요한이 엘리야가 되는가 그 근거는 무슨 뜻이며 하나님이 섭리하는바는 무슨 의의를 두고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하고는 세례요한이를 보내였는가 하는 문제의 근본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근본의의를 밝히지 못하는 현실세계가 하늘이 섭리하는 뜻의 시봉을 완성할 것인가. 지금은 말세라고 하는 때이니 성경 중에 미지였든 사실이 명백히 되어야만 성경목적을 끝내고 재림주를 영접할 수 있는 결정적 관문을 삼을 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런 중대시 되는 미지의 근본을 밝히기로 하자.
제2 절 세례요한이 엘리야되는 근본의의
하나님이 근본 뜻을 성사하시려 할 때에 그 뜻 성사에 제일 요점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 외 사탄 존재가 있有는 것인데 이 존재가 하나님의 근본 뜻을 파괴하였고 지금까지 적으로 나와 뜻을 성사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있기에 큰 중대한 문제가 된다. 만일 사탄이 없다면 뜻 성사는 문제되는 것이 아닌데 사탄이 있어서 인간을 대하여 자기의 소유권외로 보내지 않으려고 극성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대하여서 역사를 하여 나옴으로 하나님의 뜻의 성사는 역사로 연장을 거듭하게 하여 온 바이다. 이 사탄을 전폭적으로 굴복시켜서 뜻을 미성사케 하는 공작이 없도록 사탄 전멸을 기약하는 바가 요구되는 바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근본 뜻은 뜻을 방해하려는 사탄을 뜻의 노정에 없게 하고자 함에 근본 뜻 중심이었다. 그런고로 이 근본 뜻을 성사하려고 메시아를 보내기 전에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반대하는 사탄을 굴복시켜 다시는 예수의 뜻(메시아의 뜻) 성사 노정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작이 먼저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자로 보내마 하신 존재가 즉, 엘리야였다. 엘리야는 잘 알다시피 하나님 앞에 혼자서 사탄 전부하고 싸운 최승세자이었다. 엘리야가 요구하는 당시의 최고 목적은 사탄 전멸의 목적이었다. 다시는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막는 곳 없
게끔 바라든 바가 엘리야가 바라든 목적이었다. 그 목적이 즉, 하나님이 바라는 뜻 성사 노정을 두고 바라보는 목적과 같은 목적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바알신(사탄) 800여를 멸한 자이며 뜻 성사 노정을 완성 할 수 있게 하는 사탄 대한 중요존재였다. 엘리야의 목적은 완성하였는가 하면 그 당시 사탄 대한 목적은 미완성하였다. 왜냐하면 다시금 사탄이 침입을 보아서 예수앞에까지 침범할 우려성이 있음으로 다시금 이 사탄에 대립하여 엘리야가 바라는 근본목적을 완성시켜서 예수 앞에 사탄 자체의 종적이 없게하기 위한 대표자를 보내어 엘리야의 바라든 사탄 전멸공작성사할 것을 바람에서 엘리야를 새로 세례요한으로 표시한바며 세례요한이 엘리야되는 바의 목적이 있는 바이다. 즉 엘리야의 목적이 세례요한으로 완성할 사명적 역할을 가지고 있었든 바이었다.
하나님의 뜻 중심하고 말 할적에 엘리야의 목적의 성사는 세례요한으로 종결짓게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와서 한 사명달성하면 하나님 뜻은 완전성사하므로 사탄을 하나님 뜻 노정상에서 없애고자 함에서 예언하신 엘리야가 세례요한이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인데 뜻 성사하는데는 갑(엘리야)과 을(요한)이 완성하였다.
그런고로 뜻은 하나이고 사람은 둘이다. 뜻 하나 중심하고 말할때 갑=을 이라는 한 몸으로 완성한 것과 같은 근본의의를 두고 예언하심이 있기에 엘리야=세례요한 이라고 하심이 근본목적이 완성되는 바이다.
하나님의 뜻 = 갑\을
이런 뜻으로 말씀 하심을 알지 못하는 백성은 큰 범행의 행로를 취하면서 자연스러운 뜻의 행함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엘리야 대신으로 보냄을 받은 세례요한의 사명은 무슨 목적이 남아 있나 하면 하나님의 목적 뜻 성사가 완성 하여야할 토대를 조성하여 메시아 즉 예수 자체한테 피해 없게끔 하여야 할 역사적 책임이 부담되어 있다.
세례요한의 하여야 할 사명은 엘리야의 심정과 재능으로 예수앞에서 아버지로 아들을 사랑 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자식으로 그其의 아버지께 효도하게 하여 줄 역사적 사명성을 말라기 4장 5절, 6절에 기록함을 보아서 알 수 있는 바이다. (누가복음1/16-17)
그런고로 예수는 즉 누구나 다 전인류의 조상인 동시에 전인류는 예수의 자식이라는 창조원리로 되어있는 목적 찾아서 맞출수 있는 길을 닦아야할 책임이 요한의 사명이었다. 밖으로는 사탄을 방비하고 내적으로는 백성으로하여금 자식된 도리를 알려주어
아버지를 모시어 사랑 받을수 있도록 그其 시대에 대한 책임을 겸유한 중대입장에 요한은 서 있었다. 그런고로 세례요한의 전 목적은 메시아의 도를 준비하는 자로써 즉 메시아 한 분만이 그의 생명의 대신이며 희망과 소망의 전부의 존재였을 것이었다.
또 자기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었다. 그리하여야 세례요한의 광야생활이라는 전 목적은 여기에 완성을 가져오는 바이었다. 예수보담 6개월 전에 사가랴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 자체는 하늘이 무한한 기대로서 보낸 자이면서 사탄이 제일 미워하는 존재였다. 그其 시대를 대표하여 뜻을 세우기 위한 30여년생애 모두가 예수(메시아) 한 존재가 목적인데 그 메시아를 모시는 그 한날의 기쁨의 영광이 그대의 목적이었다. 세례요한의 뜻을 전 이스라엘 백성앞에 세례를 시행하게되었다. 세례는 예수의 그 근본 뜻을 성사할수 있는 한 터의 자격을 부여하여 주는 약속의 표시의 예였다.(요한 복음 1장 31절~34절)
세례요한이 이 예식을 시행 함은 자기 뜻을 성사하기 위함이 아니고 예수의 뜻을 계승키 위하여서 하심이라는 바는 다 잘아는 사실이다. 당시 세례요한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이 보내신 한 선지자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례요한한테 이스라엘 백성은 세례식이나마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은 하늘로써 보내심을 받은 자로 알고 있던 까닭이므로 신법(요한복음 1장 15절) 그其 세례를 받음이었다.
이 세례요한은 증거하기를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다음 오시는 메시아는 불火과 성신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시며 대중앞에 선포하심은 자기자신의 사명과 메시아의 사명은 격별하게 상이있음을 고백하는 바이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전목적 실체 메시아의 한 존재가 소망성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에 예수는 갈리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至 요한한테 세례를 받고자 할때에 세례요한은 사양하야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나한테 나오시나이까하니 예수 말씀하시기를 허락하라. 우리들이 의를 행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하신데 세례요한이 허락하여 세례를 시행함을 받고 물水에서 올라오시니 하늘天이 열리開고 하나님의 신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 그其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天로써 소리聲있어 말씀言하시대 이此는 나我의 사랑하는 아들愛子요 나我의 (기뻐하는 자라) 하시더라.
비둘기 모양으로 성신이 내린 근본의의는 이와같은 하늘의 뜻의 존재라는 것은 세례요한 스스로가 알게 되었다. 그其때 누구나 전부가 이 사실을 듣고 보았든가 전부는 알지 못하였지만
세례요한만은 잘 알고 있었다. 이렇듯이 한 목적을 책임진 세례요한한테 알려 전이스라엘 백성한테 전하여서 하늘뜻을 성사하게 하고자 하심이 뜻이었다.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예수는 메시아라는 것과 하늘로 보내신 특별한 자라는 것은 알려주었으나 세례요한한테 예수는 메시아라고까지는 지적하여 교시하여 주지 않았다. 지혜롭게 행동을 취하여야 하는 한 단계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에 세례요한은 자기가 바라든 메시아를 만났음은 그 이상 무슨 딴 목적이 어디에 있으며 다시금 무엇할 사명적 다른외부분을 요구할 무엇이 없었든 것이 사실인 동시에 기뻐서 대중을 대하여 적극 예수는 보내시마 하신 메시아라고 선포하여서 대중이 예수앞에 집결하게하는 동시에 자기도 역시 예수 앞에 있어서 모든 대표적 태도로 나서게 되었든가. 그 자체의 태도 여하로 인하여 대중에게 큰 영향을 전하는 중대입장에 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 대하여 적극적으로 예수 자신은 우리가 바라는 목적의 존재 메시아라고 대중앞에 선포 못함은 사실이었다. 그저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때만 알 뿐이고 세례요한은 그냥 그대로 자기가 처음 시작한 세례나 주면서 다니는 행동을 계속하게 되니 예수를 대하여서도 대중은 메시아라고 보는 것 보다도 세례요한의 행한 행례의 도움자로써 아는 자라고 생각하는 자는 있는 정도였다. 세례요한의 목적은 그저 세례나 주고 다니는 것이 역사적으로 부여받은 전사명이었든가. 너무나 가치없는 행동이였었다. 모든全이스라엘 백성대하여 생명 계승의 한 중계존재가 그냥 멋대로 사방을 자유로히 다니면서 세례만 준다는 행례에는 우리는 한심한 태도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세례요한 자신은 역시 예수 앞에 서서 나타난 엘리야의 대신 존재라는 것을 잘알았는가 하면 의심할 문제이다. 요한 복음 1장 21절에 요한이 엘리야도 아니라 하심 보아도 자기 자체가 그 사명적 입장을 명백히 알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알았으면 왜 대중앞에 자기를 선포하여서 이스라엘 백성의 의문점을 없이하여야 할 책임도 준비 못하였든 바이었다. 세례요한 자신이 엘리야란 것을 알았으면 대중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여야 할 존재
로서 어디에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서 싸워서 그 기대를 세웠든가 자기 자신도 확고한 엘리야의 대신자라는 것은 자각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세례요한은 자신사명에 대하여 적극적 준비 공작을 하여서 그 목적 본체로 오신 예수 앞에 모두全를 시종의 중심 존재로 서서 예수의 모든全 사명의 협조자로서 또 제일 큰 사랑받을 수 있는 예수의 한 제자로서 시봉하는 외에 더 큰 다른 무슨 목적이 있었으랴.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와 분립하여 행하신데는 세례요한이 하늘 앞에 중대한 책임 미완성을 가져오는 기본적 대신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성경을 보면 세례요한은 전폭적으로 메시아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지 못함을 알려주고 있다. 옥중에 있어서 제자들을 보내며 묻기를 그대가 오실바의 메시아니까 하는 질의,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까 하는 것을 보면 세례요한 자신도 메시아에 대한 해결을 못하였든 바를 알려 준다. 이와 같이 뜻 시봉자가 되어야 할 그 존재조차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알려주지 못하니 예수 자신에 있어서의 전기대와 소망은 여하한 정도이였을까? 과연 통한치 않을 길이 없을까. 누가 그 심정을 알 자 있었으랴. 여기에 세례요한이 예수 앞에 하늘 앞에 큰 범행의 시작이 있다는 것을 아는자가 현기독교계에 없는바를 나도 통분하는 바이다.
그저 세례요한은 귀하고 하나님 앞에 없어서는 아니될 존재 대우하는 것은 용서 할 수 없는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는것이다. 그런고로 자기 책임 다하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행하는 세례요한은 아버지 앞에 귀함의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 때문에 온 자가 그其 본사명 중심지를 떠나서 행하는 그其 자체는 물론이며 그其의 시종자까지 하늘로서 선하게 대할 수 없는 존재로써 그 말로에까지 하나님은 귀히 보지 않음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중대지사 여하가 예수 앞에 크나큰 광야생활이라는 고통의 노정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광야에 나아갈 때에 고독한 심중을 헤아려 동정하는 자 세상에 몇사람이었든가?
여기에 人間을 상대하여 예수의 사명범위는 한 어두운길暗路에 봉착하였음을 누가 아는가 아는 자 아버지와 예수뿐이었다. 그 광야의 적막감은 예수 앞에 큰 낙망과 동시에 다시금 재출발의 한 노정을 결심케 하는 노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광야까지 예수를 시봉하여 따른 자 한 사람도 없다. 그때 먼저 예수를 메시아로 모시는 자 있다면 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큰 상을 받을
존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생각하면 동방박사는 어디에 갔는고, 목자는 어디에 있는고. 모친은 어디에 갔는고. 세례요한은 어디에 갔는고. 모두 자기 뜻 중심하고 행동하는 그其 자체들은 예수 앞에 기쁨을 변하여 탄식하게 하는 한 존재 등에 불과하였으며 더욱 슬픔을 격동시켜주는 기대에 틀림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심정을 품고 광야생활에 있어서는 제1차 낙심을 다시 복귀하기 위한 목적인 동시에 적극적 원수 사탄 대하여 최종 결판시기였다. 사탄이 벌써 하늘 뜻 성사할 터를 침입하여서 뜻 순종 노정을 받들지 못하는 세례요한의 기대는 보았으니 그 다음엔 그 중심 자체인 예수까지 와서 시험의 시도는 원리적 한 행동이었다. 그러니 광야생활 중 사탄의 자유행동에 대비한 예수에 시험이었다함을 알아야 한다.
제3 절 세례요한 인간성 표준으로 예수를 대함
세례요한의 행동이 어찌 용서받겠는가 생각하면 몸에 솜서리 치는 한 행동이 아니었는가. 세례요한 역시 예수를 대하여서 뜻 중심하고서 대하지 못함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세례요한도 사람인지라 메시아라는 자체는 좀더 고귀한 위치에서 자기에게 보여졌을 것이 없는데 별다름 없는 존재의 용모이면서 자기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뜻의 성사의 노정을 취하여 나가지 못하는 존재로써 어찌 메시아의 자격이란 너무나 거리가 멀었었다. 요한 역시 그 시대적으로 대하든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한 관점으로 서게 됨이 큰 실수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두 말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 세례요한은 예수 앞에 메시아라면 전 시종하기 위하여서 자기를 중심하고 그其 외 제자들까지도 함께 데려와서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할 입장이었는데 그것이 과연 인간성에서 나온 파괴행동이었다. 자기 제자들과 함께 예수 제자가 되어 어제昨日의 선생의 입장을 변하여 예수 앞에 제자 양으로 서니 제자였든 자들과 동급적 입장에서 그其 입장이 과연 인간세계에서는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 등은 인간의 전부가 자기 중심하고 하늘을 대하고자 하는 대신 사탄 공작이라고 보여주는 결과를 초래하여 사탄과 합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셈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와 같이 논하는 것은 무근거한 원리위에서 논함이 아니다. 성경에서 세례요한이 일대 실수의 행동을 폭로한 구절을 찾아서 해설하여 보자. 지금까지 신학계
에는 난해 문제의 구절일 것이다. 즉 마태복음 12장을 보면 그 내용적 사실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즉 예수께서 12제자에게 명하심을 필하시고 거기에서 이사 교주하시며 영포하시라고 각성에 가往시더라. 그때 왜 요한이 옥에 있어 그리스도의 행함을 듣聞고 그 제자들을 유야 예수께 단야 왈 당신이 오來실이니까. 선생임이 오니까 우리들我等이 다른사람他人을 기다待리이까 예수 대답하여 왈 너희들爾等이 왕하야 듣聞고 보見는 것으로 요한에게 고하대 귀머거리가 들으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나자가 깨끗潔하며 눈먼 자가 보며 빈자가 복음을 전한다하라. 그런지 나我로 인하여 범죄하지 아니한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고 저들被等이 흩어짐離에 군중衆들에게 요한을 가르켜指하야 말씀言하시매 너희들爾等은 무엇何을 볼視려고 들野에 갔去더냐. 바람風에 움직動이는 갈대냐 또 너희들爾等이 무엇何을 볼視려고 갔去더냐. 미복을 입衣은 사람人이냐 아름다운 옷 입美服衣은 사람을 대궐에 있나이다. 너희들爾等이 어찌 갔去더냐. 선지자를 보見려더냐. 옳是도다. 내我가 너희들爾等에게 말하노니 이사람此人은 선지자보다 크勝니라. 이사람此人을 가리켜指 기록하였으며 볼見지어다. 내我가 나我의 사자를 너희들爾等 앞前에 전遺하노니 저被가 너희길爾路은 너희앞爾前에 예비하리라 하였나이다. 내我가 진실로 너희들爾等에게 논하노니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는 세례요한보다 웅대한 자가 일어起남이 없으無나 그러然나 천국에서는 지극 어린아이小子라도 그被보다 크大니라. 세례요한이 올來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용역함으로 얻得나니 용력한 자는 빼앗奪느니라. 모든諸 선지자와 율법에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 도달至하였으니 만일 너희들爾等이 그것을 수긍할진대 오來리라한 엘리야가 그사람此人이니라. 귀耳가 있有어 듣는자聽者는 들을聽지어다. 차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데 아이兒孩가 시장에 앉座아 동류를 불러 왈 우리들我等이 너희를爾等을 향하야 나팔을 불吹어도 너희들爾等이 춤추舞지 않고 우리들我等이 슬픈 울음소리를哀音 내어도 너희들爾等이 울지 않았다함과 같으니 요한이 와서來 먹食지도 않고 마시飮지도 아니함에 그들被等이 말語하기를 사귀가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來 먹食고 마시飮에 또 말語하기를 먹食기를 탐貪하고 술酒을 즐기嗜는 사람人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라하니 다만 지혜는 그 행사로 의를 나타내顯느니라고 이상과 같은 말씀言을 선언하였다. 이 내용전부는 세례요한 대하여 놓고 한 말이었다. 그러면 요한 제자와서 물을때에 본대로 말하라.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으나 너희는 스스로 자각하여라 하면서 여러 이적 기사로써 표시하였다.
그러면 예수는 왜 이런 대답을 하였는가. 그저 묻는 그대로 대답하여 옳도다. 내가 오리來라고 한 자로라 하면 그만 해결을 짓는 일인데 이와 같이 예를 들어 말한 바는 인간으로 하여금 깨달을수 있도록 교시하였으니 그것 보아서 알라는 큰 의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귀하고 높은 예수를 찾으면 그야말로 그에 더 성공은 없는 것인데 누구나 전부가 가르쳐주고 전부 끌어다 주면 그 귀한 자체를 찾지 못한 자 어디에 있을까 밝히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으면 자기들이 지혜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세워야만 그 뜻 성사는 물론 하늘의 협조하여 주었지만 자기 노력으로 찾아야만 타락하지 않고 이루었다하는 결과를 보기 위하여 그 찾는 상급에 대한 영광받을 자격이 결정되는 바이므로 최종점까지는 교시하여 주지 않는 바이다. 예를 들면 100까지를 찾아야 하는데 95가량만 알려주고 5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 한 뜻의 노정의 표시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100까지 중 100까지 전부를 교시하면 그 상급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 앞에서라도 그 영광누릴 자격완성자라 할 수 없기에 95까지만 가르쳐주고 5는 자기 지혜를 통하여 찾아 100까지를 채우시기를 바라서 교시하는 바가 지금 역사 노정에서 많이 보여지는 사실이다. 이 5이란 그것 찾아 성사하는 그 사실은 100의 성사한 영광을 누리고 기본권한을 결정하는 사실이니 이와같은 예로서 세례요한 대하여서 대답한바도 사실이다. 또 세례요한한테도 하늘로써도 이와 같이 교시하였다. 지혜로 찾아서 의로 정함을 주시고자하여서 예수는 메시아라고 확정지어 교시치 않은 바이다. 이런 것이 지극한 하나님이 사랑 하시어 하시는 섭리인 동시에 누구에나 허락한 예수니 지혜있는 자만 합하여만 원수의 지혜를 파할 수 있는 기본동력이라는 근본의 힘力의 터가 되기에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섭리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특히 어떤 목적을 교시하였다가 다시금 시험하여 그 목적 대한 의심을 발하게 교시하여 주는 때도 있다. 그것은 지혜로서 그 근본을 확득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하나님 자신이 직접간섭하지 않아도 사탄 원수 대하여 승리할 자격자로 세우려니 이런 시험도 있는바는 영교시로 받는 자들의 체험하는 사실적 근본의의로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즉 사탄이 대하여 반대역사할 수 있는 것이기에 또 그리하여 완성격자 되면 전부를 하나님의 간섭을 하지 않고 자유성사를 표준하기에 이와같은 자리를 바라서 우리에게 대취하기 위하여 섭리하심은 알아야 한다. 지혜로서 뜻 찾아 완성하는 자는 저 하늘 권에서도 말할수 없는 귀한 존재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존재의 자격은 지혜를 찾음으로만 존경의 가치를 볼 수 있는 근본의 행동이 즉 지혜로 뜻 성사를
완성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빈자에게 복음을 전한다 하심은 큰 의미가 있다. 즉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메시아를 고대하기를 자기들이 더 좋아지기 위하여서 고대하였기에 지금 이와 같이 나 자신은 너희들이 바라는 목적상대로 되지 못하여 빈자와 같은 자 밖에 상대할 수 없는 모양에 있다함을 고하는 동시에 너희들은 마음으로 부한 것이었기에 나 대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사탄이 주관세상에서 선은 밝혀 빈자급에 많은 것을 말하는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악의 주관세상이니 악한사람惡者은 잘살富고 착한사람善者은 가난貧하니 이런 원리적 언사로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 마태복음 11장 6절에는 말씀하시기를 누구誰든지 나我로 인하여 범죄하지 아니한 자는 복이 있有도다 하심의 구절을 보게 된다. 이 구절이야 예수님의 숨은 심정을 표시한 말씀이었다. 즉 이 말씀에는 벌써 세례요한은 나에게 범죄하였다는 결론적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범죄하지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하였으니 벌써 복된 입장에서 이탈한 존재하는 것을 암시한 바이었다. 과연 예수 앞에 세례요한 한 자체는 크나큰 타격의 존재였다. 예수의 전목적의 대부분에 일대난사를 초래케 한 큰 범죄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은 너희들爾等은 무엇 보려 광야에 나갔出더냐. 그 목적이 무엇이든지 그 들野에 나아감은 전목적은 예수 한 자체를 보기 위하여 행동한바가 아니냐. 또 들野에서 요한 자체가 증거한바가 아니었든가. 그런데 그때 벌써 알아야 할 시기를 놓치고 지금와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암시하면서 책망하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 증거한 세례요한은 과연 선지자 중에서는 제일큰 자라고 하면서 말씀하시었다.
들野에서 본 세례요한은 과연 선지자 중에도 큰 자라고 하나 할 책임을 담당하지 못하였다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말씀이 내我가 진실로 너희爾等에게 이르論노니 여인으로 난 사람 중에는 세례요한보다 웅대한 자가 일어남起이 없도無다.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至極者라도 그被보다 크大니라 하심에 결론적 판결을 내리웠다. 이 말씀이 지금 신학계에서 미해결점이나 그 근본의의는 예수 대한 세례요한의 범죄행위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라는 것을 밝히 이제는 알아야 한다. 즉 근본의의는 무슨 뜻인고 하니 여인으로 난 사람 중에 세례요한보다 웅대자가 일어起남이 없無다함은 이 말씀에 대한 근본의의를 알아야 한다.
지난날昔日의 선지자도 여인을 통하여 태어生고 지금 세례요한도 여인女人을 통하여 태어生난 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왜 세례요한이 제일로 큰 존재라고 하였는가 하면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셔서 뜻을 알려주는 대변인임에 틀
림없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역시 하나님 뜻을 알리는 대변인이라는 것은 같은 뜻의 존재이나 그 자체들이 증거 입장을 취하여 보면 지난날昔日 선지자 전부는 증거하되 예언적 증거로서 예수를 증거하였으나 세례요한은 증거하되 직접적으로 증거하였으니 증거적 입장을 중심하고 말할 때 세례요한의 이상가는 자 없음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증거적 입장을 두고 세례요한에 대하여 말할 때 과연 세례요한은 여인으로난 사람중에는 제일큰 존재라는 근본의의가 확실하다는 것을 명백 히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그러然나 천국에서는 지극자라도 그被보다 크大니라 하심은 무슨 의의냐 하면 근본의의가 이러하다.
천국에 간 자도 여인으로 난 자들이다. 그렇다면 여인이 난 사람 중에는 세례요한이 제일 크大다고 하였는데 왜 천국에서도 커야 할터인데 제일 작은 자가 세례요한이가 되는가 하는 것이 의심아니될 수 없는 수수께끼의 한 관문이다. 이 근본의의도 세례요한의 범죄적 행위를 책망한 중대구절이란 그 뜻은 이러하다. 지금 세례요한은 예수를 메시아로 증거하여 놓고는 자기는 자기 멋대로 행하였으니 예수에 대하여서 적극 존재가 되어 행하여야 할 입장을 떠나서 행동하였으니 큰 범죄라 아니할 수 없다. 예수를 메시아로서 시봉하여야 할 중심 존재가 시봉하지 못하고 도리어 뜻 파하는 행동을 하였으니 그 자체에서는 과연 하늘에서 작은 자天微者의 행동력이 아니라 할수 없다. 세례요한이 적극시봉하였으면 그는 두말할 것 없이 하늘에서는 지극히 큰 존재가 될터인데 시봉치 못하니 하늘天에서 작은자微者보다도 못한 존재로 되었다하는 의미였다. 즉 천에 있는 성도나 또 천사나 어떤 존재라도 예수 대하여서는 메시아란 근본존재라는 것을 다 알고 극심으로 시봉하고 있는데 시봉할 중심존재가 시봉하지 못하니 시봉에 있어서는 최고작은자最微者가 되었다하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말씀은 시봉을 중심하고 말씀하여서 세례요한에게 대한 범죄행위를 꾸짖策음이라는 중대한 근본의의를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세례요한 올來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용역함으로써 득하나니 용역하는 자는 빼앗奪느니라 하심의 말씀도 역시 세례요한 대한 범죄지사를 지적함의 말씀이었다.
요한 올來때부터 지금까지라는 말씀은 무슨 뜻의 말씀인가 하면 먼저는 세례요한 자체가 뜻을 받들어서 시봉하였다면 예수님의 수제자는 세례요한이 될바는 정한 하늘의 목적이었는데 용력하지 못하였기에 즉 시봉하지 못하였기에 요한부터 지금까지라는 중에 요한이 선유권리를 주었든 큰 위치를
지시한바였는데 그 위치를 지키지 못하니 그 지정되었는 위치는 용력하는 다른 제자에게로 옮겨지었다는 것을 지적함이었다.
그런고로 천국은 용력하는 자는 빼앗奪느니라 하심이었다. 예지 예정은 근본을 두고 하신 말이란 뜻이 근본이다. 그런고로 용력하는 다른 제자들한테 그 자리位를 빼앗奪으심이라는 근본의의를 명백하게 표시한바를 보아도 여기에 세례요한이 범행한 자체이면서 예수 앞에 큰 하늘적 반역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존재 대하여서 오늘날까지 존시하였다는 과거 신앙자의 무지의 서러움을 무엇으로 방지할까. 과연 통분한 사실이다. 이 사실의 행동으로 인하여 예수의 십자가의 어려움難의 시작을 재촉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밝히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세례요한은 엘리야라고 말하고 그는 세상이 먹고식구 마시飮지 않으니 사귀가 들렸다하고 나도 먹고 마시食口飮니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하니 다만 지혜는 행사로 의를 나타내顯느니라 하시었는데 이 말씀 중에는 세상이 함부로 하늘뜻을 모르不知면서 자기 멋대로 정하여 평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뜻을 갖고 온 자를 대하여 조금도 응하는 자 없다함을 비유하여 아이兒孩가 시장에서 앉座아 동료同類를 불러吹 말하되曰 우리我等가 너희爾等를 향하여 나팔을 불어도 너희爾等가 춤추舞지 않고 우리가我等이 애곡哀音하여도 너희들이 가슴胸을 치拍지 않는다는 것으로 세상을 비유하여서 현재 뜻 중심한 자기의 목적요구에 조금도 응치 않음을 지적하심이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만이 하나님의 뜻을 행의로 나타顯낸다하심의 경고를 볼 수 있다는 바를 지금 교인들이 아는가. 이와 같이 초림예수 앞에 전개되었든 진상이 지금 재림을 바라는 세계신자들과 바리새 교인들과 비하여 볼때에 뜻에 속한 존재가 지금 신도 중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와 같이 근본원리들은 말세가 되니 뜻 성사시기가 오리니 명백하게 되어야만이 재림은 오는 바가 아니겠는가. 이 근본의 뜻 알고 시봉자는 하늘에서 제일큰 자라는 것이 끝날도 부여하는 사실이다. 이와같은 환경을 본 예수 앞에는 광야라는 서러움의 노정을 전개시킨 근본원리라고 위에 논한바를 이해할 줄 안다. 이런 근본을 밝히지 않으면 적극반대할 자들은 현교계 신앙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뜻과 근본을 알적에 큰 두려운 문제라 아니할 수없다.
이상 논한바 근본문제는 세례요한 자체는 하늘적으로 예정적 존재였으나 그 사명을 시봉 못하게 될 때에 하늘은 뜻 시봉의 가치를 알고 시봉하는 자가 하늘적 예정적 목적을 계승하여 완성하는 바로 하나님은 뜻의 섭리를 돌리어 역사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예지 예정적이라는 것은 뜻을 중심하고 말씀한 바이지
뜻 대하는 사람을 대하여서 말씀한바아니다. 이것 보아도 현실 신앙계의 예정론 등은 그 문제외 위치것으로 된다.
제4 절 복귀섭리 표시로 된 예수 조상의 혈통
인간은 해와의 실수와 아담의 실수는 전인류로 하여금 사망에 지도받아 하나님과는 먼 거리에서 반대방으로 나아가는 것을 다시 찾고자 하시어서 역사를 통한 섭리노정에 전폭적 뜻 표시로 전하여 왔음을 이상 논한바에 의하여 잘 알줄 안다.
그런데 특히 예수의 직계의 혈통을 가진 역사적 조상들의 전부를 살펴볼 적에 우리가 근본원리를 알지 못할때에는 한 의심되는 혈통을 가진바를 누구나 다 절감하여왔는 사실이 되어 왔다. 예수의 조상의 혈통은 전부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뜻을 중심하고 조상의 하나님을 대하여 왔든 바이다. 역대의 조상의 전표시적 중심되는 일은 후일 예수의 역사적 사실을 전부 완성할 수 있는 원리대로 표시하면서 예수까지 인도하여 경유하심이었다는 바를 알아야 한다. 즉 예수와서 타락한 전인류를 근본대로 회복하여야 하는 존재가 되려니 그 역사에 대하여서 근본 하나님의 뜻에 대한 표시적 계통을 취하여 왔든 바이다.
예수 조상에 보면 세상 사람보기에는 불결한 혈통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 혈대는 순수한 혈계가 아니고 여러 여인들 대표적 존재들이 나타나고 있다. 즉 다마, 라합, 룻, 밧세바 등의 여성들이다. 이와같은 혈계를 가진바는 본래 인생조상 아담 해와들이 더럽힌 자의 행례로서 하나님의 직계를 떠나서 사탄과 합하여 사망의 혈계를 받은바를 다시금 복귀하여 근본에 옮겨 놓고자하니 사탄한테 빼앗긴 사실적 예와 같은 반대행동으로 하나님께 속하게 하여서 사탄의 근본 더럽힌 원리를 찾아 세우고자 함이 중대요소이다. 그런고로 이런 더럽힌 여성들과 같은 자들이 행동의 뜻 성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근본, 순종, 시봉, 신종할 수 있는 그때야만이 뜻 성사된다는 원리성사를 시작할 수 있는 바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런고로 예수와서 복귀하여야 할 근본 뜻들을 전적으로 표시적 순, 신, 시종의 나타나는 곳에서만이 뜻이 시작한다는 표시로서 역사의 조상의 행동의 성립의 표시가 합의를 보아 예수의 근본되는 조상 자격자로서 부여하신 바이었다. 야곱은 에서를 두고 장자의 기
업을 빼앗아서 하나님의 기업을 성사할 표시적 사실의 성립을 보았으나 이제는 다음 번째도 선 자가 먼저 자에로써 본 계대를 성사할 시작은 즉 유다부터였다. 유다에게 있어서는 뜻 성사적 사실의 표시와 동시에 뜻 실천 성사출발을 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런고로 유다 지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 성사할 것을 미리 말하였든 바이나 뜻 성사의 첫 계대자로서 베레스와 세라를 보여 주심이었다. 이 유다부터 하나님은 뜻의 기본 시작을 보는 것이었기에 다말에게 한 쌍태를 주어 베레스와 세라 역시 야곱과 같이 복중에서 싸워서 그 뜻의 기본 확립에 한 표시를 성사함이라는 큰 의의가 있는 바이었다.
그러면 다말이 한 행동으로부터 알아보자. 다말은 本來 하나님 뜻으로 허락한 계대를 계승하여야할 입장이었는데 그 남편 죽고 혈대를 계대하여야 자기 존재에 대하여 많은 고심한 존재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 하려는 혈대를 계승하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고통과 함께 그其 혈대의 가치성을 안 여성이었다. 그리하여 자신 뜻을 성사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계승하기 위하여 부끄러움도 사망도 제이차적 문제시하고 목적달성의 행동으로 나간 바이었다.
그때 이런 행동이라면 용서없는 죽음의 길이 다말 앞에 시작되는 바도 알고 있지만 그런 문제를 문제시 보다는 차후의 문제로 하고 아무리 하여도 유대의 자손을 통하여서 계대를 못할 것을 아는 다말은 부득이 자기의 시부를 통하여서 계대를 잇지 않으면 안될 바를 각오하고 그其 노중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때 마침 시부가 양모를 깎으剪려 딤나에 온다는 말을 듣고 과부의 의복을 입고 너울을 쓰蒙고 딤나 노측에 앉坐으매 유다는 창녀로 여겨 자부인줄 모르고 나我와 상관함이 어찜이뇨하니 허락하여 동침하니라. 그리하여 잉태된 것이 베레스와 세라였었다.
이런 비원리인 행사가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즉 다말은 비원리로 계대를 잇는 존재가 되었다. 이 다말의 행동은 즉 무엇을 표시하는 바냐 하면 해와가 사탄한테 정조을 빼앗겨서 비원리적 계대를 세운자가 되었으니 타락을 시작케 하였는데 그와 반대로 다말은 뜻 성사하기 위한 하늘 편쪽에서 계대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 뜻인 한 해와가 잃었든 존재로 후일에 나타나서 다말과 같이 행동하는 것과 동일한 사실이 뜻 노중에 있음을 표시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타락된 세상에 한 여성이 하나님의 근본뜻 성사할 수 있는 한 여성이 다말과 같이 비원리적과 같은 양으로 사탄 세상 상대를 대하지 않고 하늘 상대자로 계대하여야 한다는 한 사실의 내포되어 있는
표시적 존재 즉 다말이었다. 그런고로 다말과 같이 사탄 세상 여인이 하늘 남편 맞았어야할 근본한 해와가 나타나서 신부단장하여 세상 보기에 비원리양으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뜻 계승을 찾아 준비하는 여성이 있어야 할 후일의 목적이니 이 다말은 그 실체를 표징하는 한 존재로 됨에 이런 다말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혈통적 계대 잇는 제일 조상이 됨이다. 예수와서 이와 같은 한 해와를 찾아 하나님의 뜻을 성사할 암시적 숨은 표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말과 같이 해와는 아버지품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다말 모양으로 세상에서 하늘로 옮겨지는 한 행로가 있다함도 표시함이다. 유다는 하나님의 대상적으로 표시된 바고 다말은 다시 찾아져야할 한 해와를 표시함이니 그 표시가 즉 예수의 뜻 중심이니 예수의 조상의 계대로 원리상으로 허여되는 뜻으로 되는 바이다. 남편되어야 할 존재를 두어두고 시부의 품으로 들어가야 하나님이 사탄한테 다시 빼앗는 양식을 실성하여서 근본복귀를 성사할 수 있겠으니 이런 표시로 됨이 사실이다.
이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의 쌍태는 본래 하나되어야 할 존재가 둘이 되었다는 것을 표시함이다. 사탄에게 속한 자와 하나님께 속한 자가 있다함의 표시이다. 타락이 없었으면 그냥 처음 태어난 자가 장자가 될터인데 서로 장자되겠다고 싸운 것은 타락의 피血를 받은 자가 되었기에 서로 뜻을 계승받은 자가 되기 위하여서 싸웠음을 알아야 한다.
야곱 때時에는 나온 동생으로부터 빼앗을 것을 표징하여 그 기업을 빼앗고는 기업성사자 베레스와 세라는 하나님의 기업계대에 들어왔었으니 먼저 태어난 자가 뜻 계승자가 되는 바는 사실이니 베레스와 세라는 싸워서 먼저 나오려는 세라를 물리치고 베레스가 난 것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와서 원수의 세상에서 원수 물리치고 장자의 기업성사 할 것을 표시함이었다. 즉 같은 세상에서 장자되려고 하는 자를 물리치고 근본자리에서부터 장자를 성립시켜 기업성사할바를 알아야 한다. 이와같은 원인으로 인하여 다말은 하나님의 뜻에 성사자의 어머니母가 되었음이다. 그 아들 베레스가 장자됨이었다.
이 전부는 예수와서 직접 싸워서 승리하여 기업성사함을 역사적 거리를 두고 표시한바이다. 라합 역시 그러하고 룻 역시 그러하다. 이 여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서 지금 현실의 입장을 떠나는 존재들로서 되었기에 그런 비원리행례양과 같은 허락으로 뜻의 성사를 계승한다는 하나님의 근
본뜻을 암시하는 표시적 존재들이었다.